93화. < 악마 숭배자들, 시가전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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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서서히 어둠이 내리는 시간의 마포구 구도심, 그 일대에 정전이 일어나며 모든 불빛이 일시에 사라졌다.
그런데, 단 한 지점만은 시퍼런 불빛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파—지—지—지—지——!
그곳에는 뿔이 돋아난 15m짜리 괴물이 우뚝 서 있었다. 지옥의 악마가 현현한 것만 같은 기이한 광경…… 그러나 놈의 사지는 전깃줄로 칭칭 묶여 있었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시퍼런 스파크가 온몸을 짓이기며 퍽— 퍽—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송배전 설비상, 이렇게 과전류가 경우 퓨즈가 터지며 전류 공급이 중단되겠지만, 박준모의 힘은 흐름이 멈춘 전류를 억지로 뽑아낼 수 있었으며 동시에 ‘방전’까지 최소화할 수 있었다.
“으아아아——!”
그리하여 본디 이리저리 날뛰며 노면으로 흘러 들어가 버려야 할 전류를 통제—계속해서 저 괴물의 몸 안으로 욱여넣고 있었다.
이내 그것의 몸 표면이 이글거리며 그을리는 냄새가 진동했다.
‘박준모, 이제 정말로 쓸만한 무기가 됐다.’
그는 이현욱이 발견한 전생에는 없는 인재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저 괴물을 죽일 수 없다.’
아무리 이현욱일지라도 ‘평범한 금속’으로는 몬스터를 죽일 수 없는 것처럼, 박준모 역시 ‘평범한 전기’를 아무리 많이 공급받는 다고 해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건 이 시대에는 당연한 법칙이었다. ‘마법적인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무기로는 몬스터의 ‘배리어’를 깰 수 없으니…… 그것도 심지어 90레벨짜리 악마의 화신이라면 말이다.
‘그래도 감전은 유효하니, 저렇게 묶어 두기에는 충분하다.’
철컥—
저 거구의 몸이 전류에 완전히 절어갈 무렵, 이현욱은 ‘블랙라이노’를 꺼내 들고는 놈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갔다.
그것의 거대한 눈깔이 뒤집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즉, 적어도 지금만큼은 확연한 무력화 상태…….
"좋아, 그렇게 확실하게 붙들어 둬! 내가 처리한다!”
그러는 사이에 서은하와 김세희는 반쯤 무너진 모텔 건물을 주시했다. 최태준이 다른 악마 숭배자와 함께 있었다는 걸 아는 만큼, 그놈들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들뿐만 아니라, 주변 건물의 옥상에 AMT 병력이 등장하여 저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또한, 알게 모르게 냄새를 맡고 찾아온 기자들이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카메라를 세우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이현욱이라는 유례 없는 특종을 놓일 수 없었다.
그들의 시선이 한 대 모인 가운데,
이현욱이 총구를 들어 올리고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콰—앙——!
철컥—
콰—앙——!
이현욱이 노린 지점은 놈의 양쪽 무릎이었다. 감전으로 인해 근육과 힘줄이 뻣뻣하게 굳었지만 각기 한 방씩 먹이자 피가 터져 나오며 그 두꺼운 다리가 쩍— 닭 뼈처럼 구부러졌다.
쿵——!
그러자 자연스레, 총구가 놈의 머리를 향하게 됐고,
웅—
- ‘블랙라이노’의 스킬 ‘괴멸 분사’가 사용 가능 상태입니다!
“이걸로, 끝이다.”
이현욱은 방아쇠를 당기기에 앞서 온몸에 강체화를 걸었다. 특히나 관절 부위에 그 두께를 집중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는 동시에, 자신의 몸에 금속 통제력을 부여하여 뒤로 튕겨 나가지 않게, 반동을 대비했다.
그리고 격발—
콰—과—과—과—과—과——!
3개의 마법진이 피어오르며 ‘아공간 탄창’에 남아 있던 ‘셸’들이 일제히 뿜어진다.
그렇게 뿜어지는 수백 발의 ‘펠릿’이 탄도 곡선상의 공기를 격렬하게 진동시키며 가시적인 파동을 자아냈다.
마치, 총구에서 제트 엔진이 분사되는 것만 같은 그 장면은 ‘강철 폭풍’이라고 부르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후—두—두—둑——
그 강철 폭풍을 뒤집어쓴 몰렉 화신의 얼굴 가죽이 갈가리 찢겨나갔다.
눈알이 움푹 패고 찢긴 코와 귀 조각이 근처의 전신주에 걸렸으며, 등 뒤, 건물 벽면에 검붉은 혈흔이 퍽— 튀며 기이한 모양새의 그라피티(graffiti)를 남겼다.
하지만.......
꾹— 꾹—
기괴한 소리와 함께, 놈의 상처 부위에서 부글부글 거품이 끓어오르며 피부가 빠르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젠장, 이걸로도 안 되는 건가……."
회심의 일격이었거늘, 이 괴물…… 악마의 힘을 직접으로 공급받는 만큼 그 방어력과 회복력이 생각 이상으로 엄청났다.
제아무리 동급 최고의 화력을 가진 ‘블랙라이노’라고 할지라도 절대적인 ‘격’이 부족한 것이었다.
쾅! 쾅! 쾅! 쾅!
이현욱은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이제는 ‘셸’이 다 떨어져서 ‘아그니 크리스털’에서 뿜어지는 화염만이 분사되었다.
사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화력이었다만, 이 괴물의 털끝을 그을리게 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이현욱은 결국 총구를 내렸다.
그의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놈이었다.
‘하긴, 저런 형태는 본디 지금 나타나선 안 되는 것이니…….'
훗날 빌런의 선봉장으로 불리게 될 ‘닥터 불(Dr. Bull)’ 최태준…… 저런 화신체 상태는 본디 몰렉에게 엄청난 공양을 하여 거의 4년 뒤에나 완성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넥타르를 통해서 강제로 끌어낸 것이었다.
즉 오버 파워로서, 지금으로서는 상대하기 힘든 게 당연했다.
‘아무래도…… 방법을 달리해야겠군.’
그는 '체내 용광로’를 최대치로 가동했다.
- 체내 용광로가 작동하여 금속 흡수 효율이 급상승합니다. (+200%)
그러자 위장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쓰렸다.
"큭......."
이현욱은 작전에 투입되기 전에 곽상필 사령관에게 오리할콘 100g을 요구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받자마자 삼켰고 지금까지 천천히 소화 중이었다.
‘금속 통제력이 500kg에 도달하기 직전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에—
‘—저 덩치를 으깨버릴 수 있는 무기가 생긴다.’
이는 여기에서 공개하지 않고 나중에, 결정적인 순간에 꺼내 들, 흔히 말하는 ‘비장의 카드’로 남겨두려고 했건만 지금은 사치를 부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현욱은 박준모를 돌아보았다.
"박준모, 조금만 더 버틸 수 있겠어?”
“—큭, 예! 해보겠습니다!”
이현욱은 AD-1 중 하나에서 아이템 하나를 소환했다.
거검 모글레이, 그것이 자유 낙하하여 바닥에 내리박혔다.
쿵——
이현욱은 속이 타들어 가는 느끼며, 모글레이의 자루를 움켜쥐고는 서은하를 돌아보았다.
“서 중위님, 여기에 신성력을 부여해주시겠습니까?”
***
"끅......."
이현욱의 무차별 공세로 인해서 완전히 짓이겨진 모텔 안, 누군가 옅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썅, 그딴 눈먼 공격에 맞을 줄이야……."
희끗희끗한 턱수염이 난 일본인 노인이 복도에 주저앉은 채 옆구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흑인 소년이 가방을 뒤적이는 중이었다.
“스승님,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저 운이 안 좋았을 뿐입니다.”
"아니, 다 늙어서 그런 거다. 네 녀석은 약삭빠르게 그 팔찌의 1인용 보호막 스킬을 썼지 않느냐?”
“그거야 제가 암살자 플레이어인지라, 반응이 좋았을 뿐입니다. 제가 더 실력이 좋았으면 팔찌를 빼서, 스승의 팔에 채워드렸을 텐데……."
“쿨럭— 지랄은……."
이현욱이 AD-1을 통해서 모텔 건물 5층을 마구잡이로 조져 버렸던 바로 그 순간에 이들이 거울 속—악마의 통로에서 빠져나왔다.
나름대로 긴장을 하고 나왔음에도, 노인은 한 번의 데미지를 허용하고 말았다.
"큭, 이거야 원, 장기까지 다쳤는지 피가 멈추지 않는군…… 잘못하면 객사하겠어……."
악마의 힘을 받아서 어둠 계열의 극단에 이른 이들의 최대 약점이라면 ‘힐’을 통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거야 힐의 원천이 ‘신성력’인 만큼 당연한 메커니즘이었다.
물론, 흑마법 중에서도 회복에 관련된 것들이 있긴 했다만, 대다수가 타인의 ‘생명력’을 취해야 하기에 그 과정이 힐에 비교하면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스승님, 생명수 찾았습니다! 아…… 그런데 병이…… 깨져서 …… 그래도 3분의 1 정도는 남아 있네요!”
"그래, 그래도 7살짜리 여아의 피를 정제해서 만든 진액이기 때문에, 끅— 이 노인네의 명줄을 잡아줄 만한 물건이지—쿨럭!”
그는 그런 끔찍한 성분의 생명수를 복용했다.
"흐…… 고통이 좀 가시는군.”
그리고는 검지에서 연기를 피워내더니 웬 날벌레 한 마리를 소환했다.
그것은 날개를 펴고 건물 밖으로 날아갔고, 노인은 그 벌레의 시선을 빌려서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강철의 조종자, 이현욱……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놈이다.’
최태준, 몰렉의 하수인이 무려 ‘넥타르’라는 전설 마신 뒤 뒤 몰렉과 직접 접신(接神)하여 화신체가 되었다.
그 힘을 아는 노인으로서는 당연하게도 저 괴물이 이 도시를 초토화할 것이라고 여겼고,
그러는 사이에 자신은 회복을 마친 뒤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저것을 꼼짝 못 하게 구속하는 것도 모자라서 머리통을 날려버리려고 하다니…… 무시무시한 놈이야.’
그는 만신창이가 된 몰렉 화신체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저 정도 급의 존재가 저리도 허무하게 두들겨 맞고 있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 장면처럼 느꼈다. 마치, 원숭이가 사자를 농락하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후…… 아무리 그래도 몰렉의 화신체는 죽지 않을 거다.”
저것을 묶어둘 수는 있을지언정, 죽일 힘은 없어 보였다. 그것 역시도 원숭이가 사자를 농락할지언정, 죽일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러나 사자를 잡아먹을 만한 또 다른 맹수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서둘러서 이곳을 빠져나갈 수단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고 보니 듣기로는 강서윤, 그 여자가 이 땅에 있다고 하던데— 오지랄 많은 그년의 화살이라면, 몰렉의 화신체도 버티기 힘들 거다. 서둘러야겠어.’
그때였다.
훙——
그의 그림자가 갑자기 길어지기 시작하더니, 그곳에서 무언가가 치솟았다.
그건, 두 명의 사람이었다.
"그림자 남작……."
회색 가면을 쓴 남자, 그는 그 유명한 ‘그림자 남작’이었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는 후드를 눌러 쓴 남자가 서 있었다.
“후! 올드 맨 신쇼쿠(神職), 그쪽의 핏방울을 보관하고 있기를 잘 했지 뭐야? 이건 영업 비밀인데, 그걸로 누군가의 그림자를 찾아낼 수 있거든!”
“쿨럭—”
“웅? 그런데…… 왜 그렇게 비실비실한 표정으로 누워 있는 거지? 관절염이 도졌나?”
그 말에 신쇼쿠라고 불린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쯧, 자네가 조금만 더 일찍 나타났으면 좋았으련만……."
“뭐? 애초에 우리 손님 여러분들께서는 인천의 마계에 계신다고 하시지 않았나? 헛걸음한 건 오히려 우리야. 섭섭한데......."
이처럼 악마 숭배자들이 최태준을 탈출시키기 위해서 준비한 방법은 바로 그림자 남작이었다.
그는 거금의 이용료를 치른다면 아주 편리한 이동수단을 제공하는 범죄자들의 특급 열차로 유명했다.
그리고 때마침, 빌런 세력 쪽에서도 최태준은 눈여겨보고 있던 참이었기에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큼…… 사정이 생겨서 암시장 쪽으로 가지 못했다.”
그 말에, 그림자 남작의 가면 안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 그 사정이, 혹시 예상 못 한 ‘비’를 만나서 홀딱 젖은 건가?”
그는 벽에 박혀 있는 금속 파편 하나를 뽑아 들었다. 이렇듯, 이 건물 안은 강철비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역력했다.
“……지금 피 흘리는 노인네를 놀리는 건가? 그쪽의 비즈니스에는 서비스 정신이 영 없군?”
“아니, 그게 아니야. 공감하는 거지! 우리도 한 방 맞아 봐서, 그 기분 잘 알거든! 안 그래? 으흐흐—”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과 함께 온 후드를 쓴 남자를 돌아보았다.
“그 입, 닥쳐……."
그 남자는 뿌득— 하고 이를 갈며 후드를 벗었다.
그는 검성, 오키타 카이토였다.
그런데, 그의 앞니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 그렇지, 여기에 ‘미스터 스틸 레인’이 있으니까 자네가 내 농담을 받아줄 기분이 아니겠군?”
"제발, 닥치라고……."
"그래, 그런데 오늘은 자네의 이빨 값을 받아낼 타이밍도 아니니까, 부디 자네의 급발진 버튼이 실수라도 눌리지 않게 꽁꽁 싸뒀으면 해.”
실제로, 오키타 카이토는 당장이라도 뛰어내려서 이현욱에게 복수를 이루고 싶은 마음을 꾹꾹 억누르고 있었다.
그림자 남작의 말대로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개인적인 감정에 휩싸이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래…… 오늘은 오로지 최태준을 구하는 데만 집중하고 이현욱, 그 자식의 목은 나중에, 반드시 취할 거다.”
“어…… 그런데 저기 봐, 닥터 최가 지금은 정신이 좀 나간 것 같은데? 뭐 <블랙 도어> 그놈들이 알아서 잘 치료해주겠지?”
빌런 조직 내에는 꽤 유능한 ‘과학자’집단이 있으므로 어떻게든 되돌린 방법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뭐, 그게 아니라면…… 그냥 ‘무덤지기’ 꼬맹이한테 가져다주면 알아서 더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젠장, 그 끔찍한 꼬맹이 이야기는 집어치워……."
오키타 카이토는 그 이야기가 거슬리는지 혀를 쯧— 하고 찼다.
“뭐야, 검성, 그 꼬마한테 질투심을 느끼나? 그래도 그 녀석은 자네를 좋아하지 않았나?”
“……개소리하지 마.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가져다 달라는 게, 그게 마음에 들어 한 건가?”
"으흐흐…… 죽음의 왕자께서 왕위에 등극하면 기사 작위를 내려주시겠다고 약속한 거지! 어쨌든, 저런 커다란 장난감을 가져다 주면 그 녀석, 아주 신이 나 할 거야.”
오키타 카이토가 인상을 구기며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개소리 그만하고, 빨리 내려가지?”
“그래 , 멋있게 등장해서 깜짝 놀라게 해 줘볼까?”
이내, 두 사람이 모텔 밖으로 뛰어내렸다.
‘이현욱.......'
오키타 카이토는 솔직히,
자신이 참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