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92화 (92/221)

92화.  < 악마 숭배자들, 시가전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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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첫 번째 폭음과 함께 복도—벽, 천장, 바닥이 갈기갈기 찢기며 온갖 파편이 흩날렸다.

동시에, 흑마법사가 전개한 회색의 방어막이 소멸하고 선두의 7~8명이 트럭에 치인 것처럼 튕겨 나갔다. 그들이 쏟아낸 선혈이 뿌옇게 퍼지며 좁은 복도가 자욱한 피 안개로 뒤덮였다.

“컥!”

"끄아아아—”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철컥—하는 살벌한 펌프 소리 직후 폭음이 울렸으나, 대다수가 그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직전의 사격 이후 삐——하는 이명이 귓속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만큼은 확실했다. 황급히 방 안으로 피신하지 못한 4명이 후속 사격에 휩쓸리며 고꾸라졌다.

"콜록! 콜록!”

서은하는 기침을 토하며 뒷걸음질 쳤다. 흡사 모래폭풍인 일어난 것처럼 복도를 가득 메운 채 달려드는 뿌연 먼지— 그 안에는 진한

피비린내가 담겨 있었다.

"커, 컥— 사, 살려…… 컥!”

“으아아— 죄, 죄송합니다!”

이어서 온갖 비명들이 뒤엉킨 채 절절하게 흘러들어왔다.

"아……."

그 순간, 서은하는 저들도 결국은 사람이라는 걸 인지했다. 그러나 그들의 절규 소리는 빠르게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푹! 푹! 푹! 푹!

6개의 나이프, 그것도 ‘신성력’이 담긴 나이프가 말벌처럼 날카롭게 비행하며 그들의 목덜미에 처박혔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방 안으로 도망간 이들을 추적하여 기어코 그들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그렇게, 단 몇 초 만에 상황이 정리되었다.

"......."

서은하는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묘한 거부감을 느꼈다.

"그, 그거, 총…… 사람한테 쓰는 건 좀……."

이현욱이 사용한 정체불명의 샷건은 흔히 말하는 ‘비인도적인 무기’처럼 느껴졌다. 너무나 잔혹하여 사용이 금지될 법한…… 그런데

방아쇠를 당기는 이현욱의 눈에는 단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이게, 예, 파괴력이 과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닌 짓을 하는 놈들인 만큼 마땅한 벌을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이현욱은 다소 잔혹한 말을 내뱉으며 핏빛의 복도를 걸어 들어갔다. 그의 양어깨 위로 6개의 나이프가 빙글 돌며 주변을 경계했다.

"이것들을 살려두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그것도 민간인이 소리소문없이 죽을 겁니다. 그것도 고통스럽게요.”

이현욱은 악마 숭배자들이 벌이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벌일 짓을 알았다. 이것들 단 한 놈도 살려둬서는 안 됐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이었다.

아직 PVP, PK를 자주 치르지 않았을 서은하에게는 기겁할 만한 장면이지만, 앞으로는 이보다 잔혹한 것을 더 많이 볼 수밖에 없는—

그리고 직접 행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플레이어 간의 전쟁은 자주 일어나게 된다.’

앞으로 <세계 플레이어 대전>이라고 불릴 만한 전쟁도 터진다.

그러는 사이, 김세희와 박준모가 6층으로 올라왔다.

“헉—

"

그들은 복도를 수놓은 끔찍한 풍경에 놀랐지만, 서은하보다는 익숙한 표정으로 이현욱 쪽으로 다가왔다.

"저기 끝에 방, 저 안에 몇 명이 더 있습니다.”

이현욱은 복도 끝쪽, 유독 단단해 보이는 철문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금속 3개를 감지했다.

"저 문에 마나가 느껴지는 걸 보니까, 마법 방어막으로 덮여 있는 것 같아.”

"예, 제가 뚫겠습니다. 이거라면 가능할 겁니다.”

샷건을 이용한 도어 브리칭(Door Breaching)을 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보호 마법이 걸려 있다고 해도 웬만한 수준이 아니고서야 이 '블랙라이노’의 화력을 견딜 수 없을 것이었다.

철컥—

"모두, 뒤로 비켜 있어요.”

이현욱은 손잡이 부근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콰—앙——!

제대로 들어간 한 방이었으나 문은 멀쩡했다. 그래도 겉에 씌어 있던 방어막이 흐릿해지며 문짝이 덜컥이는 걸 보아하니 충격이 있는

듯했다.

철컥— 이현욱은 재차 펌프를 당겼다.

콰—앙——!

이어진 사격에 기어코 문짝이 우그러지며 작은 틈이 발생했다. 이현욱은 그 틈 사이로 ‘플라이 아이(프로토타입)’을 날려 보냈다.

윙——

그것은 희뿌연 먼지를 연막 삼아서 방 안으로 침투했다.

'어디, 뭘 하고 있는지 좀 볼까?’

이현욱은 플라이 아이의 시선을 통해서 방 안을 살폈다.

"젠장, 저, 저거 도대체 뭘 쏴 대는 거야? 대포야?”

"몰라! 곧 쳐들어올 것 같으니까 마법이나 준비해!”

4명의 악마 숭배자가 가구로 바리케이드를 쌓아 엄폐한 뒤 문을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이현욱은 그들의 사정권 안으로

순순히 걸어 들어가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저건……’

웬걸, 그놈들이 한 명의 여자를 잡고 있었다.

심지어 그 여자는 최태준의 인질, 구효민이었다.

‘정작 최태준은 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여기에서 구광 그룹과 협상하려다가 우리가 급습하니까 모종의 방법으로 급하게 탈출한 모양이다. 그런데 어찌나 급했는지 구효민은 두고 갔군?’

저놈들로서는 이런 급습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어이! 밖에 누군지 몰라도, 함부로 들어오면 죽는 거야!”

"아, 그리고 구광 그룹의 손녀딸을 인질로 잡고 있다!”

그런 고성을 들으며, 이현욱은 구효민을 어떻게 안전하게 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저 방 안에 있는 금속을 조종해서 처리할까?’

하지만 그건 일반 금속이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는데…… 한 번에 쓰러뜨리지 못하면 낭패였다.

그러다가 문득, 박준모가 눈에 들어왔다.

"박준모, 사람이 죽지 않고 일시적으로 신경이 마비될 정도의 전류를 방 전체에, 순식간에 채워버릴 수 있겠어? 개미 한 마리 못 빠져

나갈 정도로 말이야.”

"아…… 그게…… 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살짝 머뭇거리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자신감을 되찾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벼락을 맞으며 능력 성장을 거듭했으며 라퓨타의 ‘초현실 훈련장’에서 보낸 시간도 짧지 않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진 상태였다.

"후—"

박준모는 긴 날숨을 내뱉더니 사뭇 비장해진 표정이 되었다.

파지지——!

이내 그의 손아귀에서 시퍼런 전류가 뻗어 나왔고, 그것들은 마치 실타래처럼 동그랗게 뭉치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가 문 쪽, 구멍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그것이 구멍 안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방 안을 새파란 불빛이 가득 채웠다.

파—지—지—지——!

그와 동시에, 이현욱은 금속 문짝을 ‘금속 통제력’으로 밀어버리고는 6개의 나이프를 선두로 세운 채 방 안으로 진입했다.

“으그그—!”

정면, 악마 숭배자 4명이 감전된 듯 뻣뻣해진 자세로 이현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놈들의 손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고 이현욱 놈들의 이마를 향해 ‘쇠 구슬’을 날렸다.

뻐—버—버—벅——!

그렇게 쓰러진 놈들의 손등을 향해 나이프를 발사, 마치 곤충 박제처럼 마룻바닥 위에 고정해버렸다.

"끄아아아—”

그리고는 한 명씩 얼굴을 확인했다.

“……너, 검은 가면, 이타야 시게노리, 맞지?”

“큭— 나, 나를 알아?”

“95만 달러, 차드 공화국에서 수배를 걸었잖아? 거기 너는 얘랑 작년 ‘오사카 제물 사건’ 때 같이 있었던 47만 달러짜리…… 아니, 더

올랐으려나?”

이들은 일본에서 활동하는 악마 숭배자 그룹인 <올드 고트>였다. 상당한 악질들로 온갖 엽기적인 범죄를 저지르며 그를 통해서 자신들이 섬기는 악마에게 일종의 ‘후원’을 받는다.

이현욱은 쇠 구슬 몇 개를 변형시켜서 놈들의 손과 발을 속박했다.

그러는 사이, 김세희가 구효민의 상태를 확인했다.

"어, 인질은 괜찮은 것 같아요. 어디 다친 곳도 없고요.”

아마도 어떤 약물로 인해 계속 기절해 있었던 듯했다.

"최태준, 그 인간 어디에 있어?”

서은하가 그렇게 물었지만, 놈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 너희는 차드 공화국의 세인트 돔으로 보내질 거다.”

이현욱의 말에 놈들의 표정이 창백하게 굳었다.

"헉! 서, 성녀 그 미친년에게 보내는 것만은……."

"안 돼! 제, 제발 그냥 죽여줘!”

성녀, 에밀리아 뮐러는 어둠 계열 플레이어를 ‘징벌’하며 능력 성장을 얻는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세인트 돔이란, 최악의 최후가 기다리고 있는 극악무도한 장소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데 이현욱, 아무리 봐도 최태준은 여기 없는 것 같은데? 구효민이 여기에 있는 걸 보면 들리긴 들린 것 같고……."

서은하가 방 내부를 수색하며 그렇게 말했다.

이곳이 악마 숭배자 그룹의 비밀 시설인 건 확실했다만, 최태준이 없으면 이번 작전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 하지만 방금, 우리가 들어오기 직전까지만해도 이 방에 있었을 겁니다. …… 그렇지?”

이현욱은 이타야 시게노라의 허벅지를 짓이기며 물었다.

"윽!”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악마 숭배자로서 내부의 비밀을 누설하면 곧장 ‘사망’ 처리되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한 3명이 정도 더 있었다는 거, 이미 알아.”

이현욱은 복도를 박살 내 직전, 이 안에 있던 3개의 ‘움직이는 금속’ 갑자기 사라지는 걸 느꼈다.

즉, 누군가가 마법적인 힘으로 다른 공간으로 순간 이동했다는 뜻이었다.

"여기, 방 안을 조금 더 살펴보죠.”

이내 침대 아래에서 수상쩍은 물건을 발견했다.

"서 중위님, 이 물건 좀 봐주시겠습니까?”

그건 웬 거울이었다. 서은하는 그걸 집어 들었다.

그러자…….

- 주의! 어두운 힘이 깃든 아이템과 접촉하셨습니다.

"……맞아, 이건 악마의 힘이 담긴 물건이야.”

그녀는 성기사 플레이어로서 그 거울에서 피어나오는 시커먼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또한, 신성 계열의 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암흑 계열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거울의 용도는 일종의 ‘통로’야."

"네? 통로라면……."

김세희가 물었고, 서은하는 C등급이 되었을 때 세인트 돔으로 파견 가서 받았던 ‘성기사 연수’의 기억을 되새기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이 안으로 들어가면 악마의 영역이 펼쳐지는데, 그곳에서 특정 지점에 도달하면 밖으로 나가는 문을 마주하는 형식이고......."

그 순간, 서은하의 얼굴이 서서히 구겨졌다.

“……즉, 어딘가에 그 반대쪽 문이 되는 거울이 있을 거야. 최태준은 이 안으로 들어가서 다른 곳으로, 젠장, 쉽게 말해서 우리, 이미

놓친 거야. 악마 숭배자들은 이런 걸 통해서 은밀하게 지역을 오고 가는데 이건 웬만해서는 잡을 수가 없어.”

그런데, 이현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놓친 게 아닙니다. 놈들은 다시 나올 겁니다.”

"뭐?”

"이 그룹이 다른 곳에도 은거지를 두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쪽으로도 병력을 보내놨고요. 아마도 출구가 되는 거울 아이템은 그쪽에 있겠죠.”

그는 그런 황당한 소리를 아주 당당하게 말하며 핸드폰을 켜더니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 암시장의 나쁜 놈들 아지트 접수했습니다. (고)

그 메시지는 레드홀 마을의 고진화, 그녀의 대포폰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이현욱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고진화에요.

"이현욱입니다. 잘 처리됐다는 문자 받았습니다.”

- 네, 당신 말대로 시장 구석진 곳의 인첸트 상점을 확인했더니, 진짜로 악마 숭배자 새끼들 근거지였어요. 이거 어떻게 안 거예요?

안 그래도 근래에 아이들이 실종되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이 새끼들 짓이더라고요. 아무리 암시장이라지만 이런 버러지 새끼들까지 있게 할 수는 없죠!

고진화는 씩씩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마계의 암시장이 아무리 사람이 쉽게 죽어 나가는 무법천지의 동네라지만, 아이들을 노리는 범죄는 못 봐줄 일이었다.

"그것보다, 거울 형태의 아이템은 제대로 확보했죠?”

- 네, 맞아요. 때마침 꺼내 놓고는 무슨 의식 같은 걸 하려는 모양이었는데, 아무튼, 거기다가 ‘성수’ 싹 뿌린 다음에 신성력이 담긴 나무로 만든 상자에다가 아주 봉인해버렸어요.”

"잘 했어요. 그 상태면 기능 하지 못 하겠지만, 함부로 건들면 위험합니다. 거울 안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요. 나중에 제가 사람을 보낼 테니까 그때 거울을 넘겨주시면 됩니다.”

이현욱은 그렇게 전화를 마친 뒤, 서은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그 다른 거울을 확보한 듯합니다.”

그녀는 이현욱을 올려다보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너, 어떻게 그런 것까지……."

그녀는 예전부터 계속해서, 이현욱이 마치 모든 걸 꿰뚫어 보며 제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저 거울 안으로 들어간 놈은 출구를 잃었기에 돌아서 다시금 입구인 이 거울을 통해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쪽이 출구인 게 확실해?”

그녀로서는 솔직히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만에 하나라도 헛짚었다면 이대로 놈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여기, 거울 세계 안으로 입장해서 놈들을 잡는 방법도 있는데……."

"아니, 그건 좋지 않습니다. 이 안은 악마 숭배자들에게 아주 유리한 환경일 겁니다. 아무리 서 중위님이라도 이 안에서는 신성력을

발휘하기 힘들 테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확실합니다.”

하긴, 악마의 영역에서 악마 숭배자와 맞서는 건 미친 짓이다. 그건 언데드가 성소 안에 들어와서 성기사를 잡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즉, 저 안으로 입장하는 동시에‘저주’받고 시작할 게 뻔했는데, 중요한 인질인 구효민을 여기에 두고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일 터였다.

"자 그럼…… 이제 이쪽으로 병력이 도착하면......."

그때였다.

푸—쉬—이—이—이——!

서은하가 쥐고 있던 악마의 거울 표면에서 웬 시커먼 연기가 상당한 압력으로 뿜어져 나오며 그녀는 거울을 놓치고 말았다.

"뭐, 뭐야!”

그녀는 어떻게든 잡으려고 했지만…….

"큭—"

손이 타는 듯한 고통 때문에, 결국 놓치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놈들, 생각보다 출구에 빨리 도달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출구가 열리지 않으니 상황 파악을 하고, 이쪽까지 막히기 전에

급히 나오는 거고요.”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창문에 달린 방범창을 우그러뜨려서 창문을 깨트려버렸다.

푸—쉬—이—이—이——!

그런데 연기가 생각 이상으로 훨씬 빠르게 차올랐고 어느새 방 안을 가득 채우고 복도에서까지 넘실거렸다. 마치 물속으로 가라앉는

차 안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주의! ‘심연의 안개’에 오래 노출될 경우 능력치 감소가 발생합니다!

"젠장! 이 정도면, 그냥 창문으로 뛰어내려야 해요!”

김세희의 하늬가 돌풍을 일으켜서 그것들을 밀어냈지만, 한계가 있었다.

일행은 방을 빠져 나와서 반대 측 방으로 들어갔다. 이현욱은 창문을 깨버린 뒤, 생포한 악마 숭배자들을 밖으로 내던지고는 자신도

뛰어내리며 금속 통제력을 발휘, 안전하게 착지했다. 그리고 뒤이어 뛰어내린 서은하의 착지까지 도왔다.

"김 팀장, 거기 두 사람은 알아서 착지 해요!"

김세희와 박준모는 몸에 지닌 금속이 거의 없었기에 이현욱이 아니라 하늬가 몸을 띄워주어서 천천히, 바닥에 내려섰다.

코—오—오—오——

어느새 8층짜리 모텔 건물의 상층부가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로 몇 개의 마법 드론이 다가왔다. 군용 모델,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AMT 병력이 출동한 것이었다.

이현욱은 곧장 ‘프리드웬’을 소환한 뒤 12개의 ‘AD-1’을 꺼내어 건물을 포위했다. 그리고 ‘마법 사출구’를 열었다.

기—잉——

“……이현욱, 뭘 하려는 거야?”

"지금, 건물을 날려 버릴 겁니다.”

"뭐?”

악마 숭배자들에게 시간을 주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상위 등급의 흑마법 중에서는 캐스팅 시간이 길고 그 대가가 크지만, 그 강함이 동급 마법사와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범위 마법이 존재했다.

‘그리고 저 안에는 지금 네임드 흑마법사도 같이 있다.’

그렇기에 놈들이 머리를 굴릴 시간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모두, 머리 조심하세요.”

콰—과—과—과—과——!

12대의 AD-1 6층 부근을 빙글빙글 돌며 쇠 구슬, 쇠말뚝 등 온갖 발사체를 미친 듯이 쏟아부었다. 그렇게 쏘아진 발사체 이현욱의 손짓을 따라서 되돌아 재장전되었다.

즉, 무한에 가까운 화력이었다.

그렇게 수백, 수천 방을 쉬지도 않고 때려대자 6층 전체가 완전히 으스러지는 건 당연했고 건물 외벽이 쩍— 쩍— 소리와 함께 갈라지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

그렇게 3분여간 계속되는 소사(婦射)…… 뭐가 됐든, 6층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제 형태를 유지할 수 없을 듯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크아아아아——!

웬 괴성이, 건물 안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미, 미친…… 또 뭐야……."

그 울림이 어찌나 큰지, 창문이란 창문은 죄다 으스러져 내렸고 주차장에 서 있던 차들의 경보기가 합창처럼 울렸다.

"그래, 못 참고 나올 때가 됐지?”

그 괴성의 수준을 보며 이현욱은 직감했다.

최태준, 그놈이 그 소 형태의 괴물로 변신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라면, 넥타르를 또 먹은 거다.’

넥타르, 신의 음료로 불리는 그 아이템을 섭취하면 일시적으로 엄청난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걸 오남용할 때는 돌이킬 수 없는 ‘저주’를 받게 되며 더 나아가 죽을 수도 있었다.

‘씁, 이거, 생각보다 좀 더 까다로운 상황인데…….'

이현욱은 불길함을 느끼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자…… 모두 이곳에서 이탈할 준비를 하세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건물 벽면이 무너졌다.

콰—앙——!

그리고 무언가 거대한 게 건물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것이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아스팔트가 비죽비죽 튀어 오르고 그 아래에 매설되어 있던 배관이 끊기며 물이 뿜어졌다.

크아아아아——!

그건 붉은색의 뿔이 달린 소 형태의 괴물이었다.

족히 15m 정도는 되어 보이는 근육질의 몸뚱이, 작살처럼 생긴 꼬리, 그리고 온몸에서 피어오르는 흑색의 일렁임까지.......

저건, 악마 ‘몰렉’의 ‘화신체(化神體)’였다.

"미친—저게 뭐예요!”

김세희가 기겁하며 2개의 단검을 들어 올렸고,

서은하도 마른 침을 삼키며 방패를 끌어 내렸다.

"어……."

어딘가 얼이 나간 것 같은 박준모, 그의 손에서는 전기가 질질 세고 있었는데, 마치 오줌을 지리는 것만 모습이었다.

"저, 저건…… 우리가 상대할 게 아니야!”

서은하가 그렇게 외쳤다. 그녀는 AMT의 공략소대장으로서 던전 안에서 온갖 거대 보스 몬스터와 맞서 봤다. 그리고 B등급의 탱커 플레이어로서 최전방에서 그런 것들과 힘겨루기도 해보았다.

그런데, 저것에게는 맞설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직감했다.

“……그리고 이현욱, 너라도 힘들 거야.”

서은하는 이현욱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그렇게 말했다.

이현욱, 이 남자를 섣부르게 평가하는 건 바보짓이라는 걸 알았다만, 이번만큼은 그녀의 직감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현욱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 최태준 : 몰렉의 화신체 (LV:90)

‘무려 90레벨…….'

저 정도의 괴물과 힘겨루기를 하기 위해서는 못해도 권왕 한태산 정도는 나서야 할 것이었다.

"최태준, 결국 몬스터화를 선택했군......."

저게 바로 넥타르를 과복용 한 결과물이었다.

쿵— 쿵— 쿵— 쿵—

그것이 일행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한걸음에 족히 십 미터는 좁혀지는 듯했다.

이현욱의 AD-1들이 발사체를 쏘아 댔지만, 몰렉의 화신체의 두꺼운 가죽을 뚫을 수는 없었다.

‘역시, 90레벨이다. 평범한 공격은 먹히지 않아.’

그것은 마치 모기에게 쏘이기라도 한 듯 팔을 휘휘 젓더니— 이내 양쪽 손아귀에 검은색의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대한 불덩이가 치솟았다.

쾅—! 쾅—!

그 두 발이 하늘을 불태웠고 3대의 AD-1이 허무하게 추락했다.

"이현욱, 역시 안 돼! 지금 당장 후퇴해야 해!”

서은하가 다급하게 말했고,

"이, 이, 이현욱 병장님…… 방법이, 없는 겁니까?”

박준모가 초조하게 물어 왔다.

그는 겁에 질렸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은 상태였다.

왜냐하면, 이럴 때마다…….

"아니, 아니야.”

지금처럼, 이현욱이 답을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박준모, 내가 레이드의 기본은 뭐라고 했지?"

"예? 아!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네가 활용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그 말에 박준모는 눈을 치켜뜨고 주변을 살폈다.

"네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게 뭐야?”

재차 질문, 그때, 박준모의 시선이 어딘가에 맺혔다.

“—아!”

"박준모, 현대의 도시는 너와 나에게는 최고의 무대야.

이에 박준모 역시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자 그럼, 시작한다. 우리 둘이 합을 맞춰야 해.”

"예!”

이현욱이 양손을 위로 뻗었고,

박준모도 따라서 위로 뻗었다.

그들이 집중한 것은 골목을 타고 흐르는 ‘전선’이었다.

이곳은 여전히 전신주가 서 있는 구도심이었고,

그곳에 걸려 있는 전선 역시 금속 성분이었다.

이현욱은 하늘에 떠 있는 그 길디긴 금속 줄을—

파직—!

—잡아 뜯었다.

그것들이 발광하듯 이리저리 튀었지만, 이내 이현욱의 손을 따라서, 몰렉의 화신체를 향해 올가미처럼 날아들었다.

‘전선은 얼마든지 있다.’

한 가닥이 아니었다. 그의 손을 따라 수십 가닥의 전깃줄이, 몰렉의 화신체의 목덜미, 팔, 다리들을 이리저리 휘감았다.

크아아——!

그것만으로도 전류가 흐르며 놈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진짜 공격은 지금부터였다.

"박준모, 정전 따위는 걱정하지 말고 전부 끌어 와서......."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박준모를 바라보았다.

파지지지지——!

그의 두 눈이 새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저 거대한 고깃덩어리를, 튀겨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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