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91화 (91/221)

91화.  < 악마 숭배자들, 시가전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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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 그룹과의 협상 테이블, 이현욱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주 당당하게 제시했다.

‘이 자식……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하다니…….'

그건 너무나 과도한 제안이었으나 구광 그룹의 협상자, 한희준 실장은 선뜻 거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면에서 구광 그룹 측이 완벽하게 불리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회장의 손녀인 구효민의 목숨이 위험했고,

더 나아가서 구광 그룹의 어두운 비밀까지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이 남자는 그 모든 걸 손에 쥐고 아주 능수능란하게 휘둘러댔다.

‘이현욱, 강철만 휘두를 줄 아는 게 아니었군…….'

원래 협상이라는 건 상황이 유리하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결과를 얻는 게 아니었다. 오고 가는 대하, 그 줄다리기에서 페이스가 무너지며 저도 모르게 밑지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든 압박해서 굽히게 할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재계에서 꽤 오래 구른 한희준 실장이건만, 그의 압박이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그는 헛기침한 뒤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이현욱 씨……‘아킬레우스의 방패’ 대신 그만한 가치의 현금은 안 되겠습니까?”

이현욱의 몇 가지 요구 조건 중 첫 번째가 그 영웅 등급의 아이템이었다.

그는 한희준의 제안에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구광 그룹의 회장, 구한철의 취미 중에서 하나가 아이템 수집이다.’

그는 이 재앙의 초창기부터 수많은 아이템을 재테크와 취미를 겸하여 수집하듯 모았다.

그래서 괜찮은 컬렉션을 몇 개 보유했는데, 그중 하나가 <아킬레우스의 무구 세트>였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품인 <아킬레우스의 창>이 바로 내 손에 있다.’

구한철 회장이 제 손자 구동훈의 데뷔전을 위해서 과감하게 내어주었건만,

이현욱이 공략했던 청담동 ‘레드 게이트’ 안에서 사장되고 말았다.

구광 그룹으로서는 그렇게만 알고 있을 그 물건은 현재 이현욱의 소유였다.

‘즉, 내가 여기에서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얻으면 <세트 효과>가 발휘된다.’

서로 연관성이 있는 아이템을 소유할 경우 발생하는 일종의 시너지 효과로서, 아킬레우스의 무구 세트는 일시적으로 무적이 될 수 있는 <스틱스강의 축복>을 품고 있었다.

이현욱은 창과 방패, 두 가지를 모두 손에 넣어 그 효과 중 일부를 얻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저쪽에서 그걸 선뜻 내어줄 리가 없었다.

"그게…… 그 아이템이 영웅 등급인 데다가 회장님께서 아끼시는 물건이라서 말입니다.”

"그래도 손녀딸보다 소중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되는데, 그건 회장님 의견입니까?”

이현욱은 뻣뻣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리고 시선을 괜스레 허공에 두었다.

이 부분에서 타협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무언의 표현이었다.

그 모습에, 한희준은 여기에서 자신이 좌우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구한철 회장이 그를 보내기 전에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한 실장, 한시가 급해!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정답을 찾아와!’

결국…….

"큼…… 잠시,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후…… 이현욱 씨, 좋습니다. 회장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한희준 실장은 형식적인 미소를 머금은 채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구한철 회장이 자신의 보물 상자에서 그깟 방패 하나쯤 제외해버리기로 한 것이었다.

결국, 이현욱이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

그러나 무슨 일인지, 이현욱은 한희준의 손을 맞잡지 않았다.

"그것 말고, 강원도 산간 지역 공략권, 그 제안도 확인된 겁니까?”

이렇듯, 이현욱이 요구한 건 ‘아킬레우스의 방패’ 하나만이 아니었다.

‘무려 구광 그룹한테 아이템 한 개만 얻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구광 그룹은 자체적으로 길드를 운영하지는 않았으나, 지방 지역을 관할 하는 여러 중소 길드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현욱은 그들의 ‘공략권’ 중 일부를 달라고 요구했다.

"예, 그것도 18%를 내어드릴 겁니다. 일주일 내로 희망 길드로 권리 이전될 겁니다.”

그제야, 이현욱이 한희준의 손을 맞잡았다.

이로써 앞으로 희망 길드의 성장 동력이 되어줄 강원도 지역의 ‘공략권’을 얻었다.

‘그리고 앞으로 강원도 지역에서 열릴 게이트 중에서 괜찮은 게 몇 개 있다.’

그렇게 협상을 마친 뒤, 한희준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직하게 한 마디를 남겼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던 대로 구효민 박사는 조금도 다치면 안 됩니다.”

그녀는 미래가 촉망받는 연금술사 플레이어로서, 구광 그룹의 미래를 이끌어 갈 재목으로 평가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한철 회장에게 어여쁨을 받는 몇 안 되는 핏줄이기도 했다.

"그리고…… 저 안에서 벌어진 일들은, 무조건 함구해주셔야 합니다.”

그 ‘일’은 연구소 지하에서 혈마법 실험 과정에서 벌어진 반인륜적인 행태들을 뜻했다.

물론, 희생자인 필리핀 노동자들, 그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진행된 연구였겠지만, 결과적으로 불법적인 실험의 사고로 인해서 적지 않은 목숨이 사라진, 분명한 중범죄였다.

그러나 그 문제는 이현욱이 건들지 않더라도 훗날 모종의 이유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자,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지휘 막사를 나간 직후, 곽상필 사령관이 들어왔다.

"......흠, 이현욱 병장, 어떻게 이야기는 잘 끝났나?”

이현욱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곽상필을 바라보았다.

"사령관님, 혹시 최태준 박사의 위치는 확인되었습니까?”

"음, 그게, 아직은 확인된 바가 없네만……."

놈은 아마도 은신, 변장 등 온갖 술수를 써서 감시망을 피해 나갔을 터였다.

‘악마의 힘을 얻은 연금술사인 만큼, 온갖 기괴한 약물을 개발했을 것이다.’

이현욱은 곽상필을 지나쳐서 작전 상황판에 걸려 있는 서울시 전도 앞에 섰다.

"사령관님, 제가 놈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납치된 구효민을 구하겠습니다.”

"오…… 그게 정말인가?”

"예, 그러니까…… 저한테 이번 작전권을 주시겠습니까?"

그 말에, 곽상필은 기다렸다는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거듭해서 끄덕였다.

아마도 이미 구광 그룹 측과 모종의 신호를 주고받은 듯했다.

"그래! 자네가 나서준다면 우리야 감사할 따름이야! 혹시 필요한 게 있나?”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람이 몇 명 필요합니다. AMT 소속 병력입니다.”

"아, 그거야 몇 명이든 말만 하게나!”

"그리고…… 오리할콘 원석이 100g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대목에서는 곽상필 역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전설의 금속인 오리할콘 100g이라면, 무려 12억 원어치가 넘는 양이었다.

AMT특수전사령부 사령관이라는 지휘라면, 어떻게든 구하긴 하겠다만…….

“……응? 그런 건 왜 필요한가? 상당히 고, 고가의 물건이지 않나?”

"죄송합니다만, 이유를 묻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구광 그룹 측이 난감해질 겁니다.”

"아……."

"그래서, 그 어떤 기록에도 남지 않게 은밀하게 마련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는 새카만 거짓말이었지만, 구광이라는 이름에 곽상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런 거라면 알겠네!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게나!”

그리고 당연하게도, 오리할콘은 이 작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처럼, 한 입 크게 뜯어먹을 수 있는 건 구광 그룹만이 아니었다.

***

이 세상을 위협하는 건 ‘빌런’만이 아니었다.

애초에 ‘플레이어’라는 건 일부 개인이 공권력을 초월하는 힘을 갖게 되는 현상으로, 세계 곳곳에서 무법적인 폭력 조직이 우후죽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그리고 ‘악마 숭배자’는 그런 족속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종류였다.

‘그놈들은 우연히 얻은 악마의 오브젝트를 통해서 힘을 얻고 서로 교류한다.’

그렇게, 세계 각지에 떨어져 있음에도 비밀결사 단체처럼 은밀하게 ‘연결’을 유지했다.

‘최태준의 탈출 경로 역시 또 다른 악마 숭배 조직이 나서서 마련해준 것이었다.’

이현욱은 오늘, 복수의 악마 숭배 조직을 깡그리 잡아 버릴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현상금과 아이템 등, 상당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지금쯤, 놈들이 내가 놓아준 최태준이라는 미끼를 물었을 텐데…….'

이현욱이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였다.

절그럭— 절그럭—

쇠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작전 천막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서은하였다.

그녀는 회색 전신 갑주를 입고 방패와 대검을 둘러매고 있었다.

"소대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이현욱…… 나를 호출해달라고 했다고 들었는데, 맞아?”

"예, 추가 인원이 도착한 뒤에 브리핑할 예정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잠시 후 그 ‘추가 인원’ 중 한 명인 박준모가 등장했다.

"어, 충성! 충성! …… 충성!”

그는 일개 일병답게, 바짝 군기든 채 간부들에게 연달아 경례하며 등장했다.

"저…… 이현욱 병장님, 혹시 이번에도 어딘가로 가야 하는 겁니까?”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고 박준모의 얼굴은 더욱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

그리고 그다음 추가 인력인 김세희는 어딘가 심술이 난 표정으로 나타났다.

"아니, 전역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군인들 사이로 불러요?”

"그래도 이 각 잡힌 분위기가 가끔은 그립지 않아요?”

"아, 말도 안 되는 소리…… 으, 판초 우의 냄새, 으, 두드러기 날 것 같네……."

그렇게 이현욱이 요청한 제3항마여단 1대대 출신의 플레이어 4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서은하와 김세희는 그간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는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어, 안녕하세요. 서 중위님, 오랜만이에요!”

"아, 김세희 병장, 아니, 이제 민간이지?”

"네, 맞아요. 하하……."

"안 그래도 이뻤는데 전역 이후에 더 이뻐졌어?”

그녀들이 형식적인 인사를 나눌 때, 이현욱이 테이블 위로 테이블 PC 한 대를 올렸다

"자, 작전 브리핑 시작합니다. 사담은 나중에 하시죠.”

"뭐? 잠깐만…… 설마 우리 넷이 전부야?”

서은하의 물음에 이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이번 작전에는 우리 넷만 동원됩니다.”

그러자 네 사람 모두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직 어떤 작전인지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뉴스에 등장한 소 형태의 괴인을 쫓는 임무라는 것을…….

“……우리만 동원된다면 수색 작전이 필요 없다는 뜻인데, 위치 파악이 이미 된 건가?”

이현욱은 예리한 질문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지하 연구 시설에 침투했을 때, 놈들의 탈출 정보를 획득했습니다.”

이는 거짓말이었지만, 이현욱은 최태준 그놈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는 건 사실이었다.

‘놈은 지금쯤 서울의 악마 승배 시설에서 다른 악마 숭배자들과 접선했을 거다.’

지금은 베일에 싸여 있지만 앞으로 몇 년 뒤, 모종의 사건으로 서울 내 악마 숭배 시설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때, 최태준 역시 그곳을 이용하여 도주했다는 게 밝혀졌다.

이현욱은 그 사실을 기억했고, 놈이 지금 그곳에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아무리 그래도…… 4명으로는……."

서은하는 다시금 의구심을 품었다가도, 이내 생각을 고쳐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그녀 역시 뉴스를 통해서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을 봤다. 이현욱이 홀로 저 구덩이를 틀어막던 장면을…… 그리고 그전에도 이현욱의 활약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수차례 지켜봤다.

‘검성 구타자도 진짜라는 걸, 내가 직접 봤고…….'

이현욱에게 있어서 과도한 인력은, 어쩌면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은밀하게 급습해야 하는 작전에서 혹시 모르는 정보 누출이 있을 수도 있고…….

"자, 우리는 최태준이 은거한 곳을 칠 겁니다. 참고로, 그는 악마 숭배자입니다.”

"아…… 악마 숭배자라니, 그래서 나를 부른 거야?”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성기사 중 소대장님만큼 믿을만한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 칭찬에, 서은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묘하게 뿌듯함을 느꼈다.

‘나 뭐야, 이 녀석한테 칭찬 한 마디 들었다고 뿌듯함을 느끼는 거야 지금?’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이질감을 느끼며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

1시간 뒤…….

서울시 마포구의 한 모텔,

카운터에 대머리 남자가 앉아 있었다.

째깍— 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그는 무료한 표정으로 TV를 보았다.

짤랑—

그때, 문이 열리고 남녀 한 쌍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그는 커플의 차림새를 훑었는데, 그건 흡사 초병의 눈초리에 가까웠다.

"큼, 흠, 그게……."

커플 중 남자는 딱 봐도 군인처럼 보였다. 그들이 벗지 못하는 특유의 티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장소는 처음인 듯 어리바리하게 굴었고 이에 여자가 인상을 팍 구겼다.

"아 씨, 뭐해?”

“아, 어, 으, 그게……."

"비켜, 방 하나 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지갑을 꺼내려는 듯 핸드백을 뒤적거렸다.

‘오, 여자는 왜 이렇게 이뻐?’

이 숙맥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미녀였다. 그런데 또 성질이 급하고 더럽다니, 비실비실한 남자를 괴롭히는 사디즘 쪽인가? 대머리 남자는 그런 망상을 펼치며 피식 웃었다.

"하하, 예쁜 아가씨, 이거 어쩌죠?”

“네?”

"오늘은 방이 다 나갔는—”

그 순간, 그녀의 핸드백에서 웬 돌풍이 터져 나오더니 단검 한 자루가 치솟았고, 여자는 그걸 낚아채, 대머리 남자의 목덜미에 가볍게 툭— 가져다 대었다. 핏방울이 살짝 맺혔다.

"헉—”

이 말도 안 되는 전개에, 대머리 남자는 멍하니 눈을 끔벅일 수밖에 없었다.

“……평일 이 시간대에 방이, 어떻게 없을까?”

"응? 오늘 무슨 특별한 행사라도 있나 봐?”

여자의 살벌한 목소리가 나직하게 다가왔다.

"......."

그는 숨을 참고, 카운터 위에 올려놨던 왼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카운터 아래에 한 자루의 레이피어를 숨겨뒀다.

‘그걸 집을 수만 있다면…….'

그는 자신의 ‘스킬’을 이용해서 카운터 째 이 여자를 꿰뚫을 자신이 있었다.

그때—

턱—!

어디에선가 날아온 단검 한 자루가 남자 왼손 바로 옆에 내리꽂혔다.

그리고 그 단검의 자루 위에 바람의 정령이 걸터앉아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야— 그 꼬맹이 녀석도 한 성질 하거든? 그 손, 더 움직이면 잘리는 거다.”

파지지지——!

그러는 동안 숙맥의 남자는 CCTV를 향해 전류를 쏘아 먹통으로 만들어버렸다.

"너, 너희, 뭐야……."

여자는 그 말을 무시하며 남자의 등 뒤, 열쇠 함을 힐끗거렸다.

"어디 보자…… 진짜로 6층 방 열쇠만 없잖아? 아저씨, 6층은 왜 없어?”

"오, 역시 6층에 뭔가 있긴 있나 본데……."

그때, 뒷문이 열렸다.

짤랑—

남자는 자신의 동료이길 바랐지만, 아니었다. 웬 키가 큰 여자가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녀는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입었는데, 이상하게도 걸을 때마다 쇳소리가 울렸다.

절그럭— 절그럭—

"언니, 6층, 맞아요.”

그런데 그때, 계단실의 문이 열리고 여종업원 둘이 걸어 나왔다.

"어?"

아주 잠깐, 정적이 흘렀다.

"젠장!”

아주 미세하게나마 먼저 움직인 건 여종업원 쪽이었다.

하지만 숙맥의 남자—박준모가 더 빨랐다.

그의 손아귀에서 전류가 거미줄처럼 뻗어 나갔다.

파지지지——!

“꺅—"

두 여자가 동시에 휩쓸리며 온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하지만 뒤에 서 있던 여자는 어떻게든 정신을 붙들더니 완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아무렇게나 휘둘러 자신의 앞에 ‘얼음 장벽’을 형성했다.

쩌저저저——

그렇게 계단실 문을 막아버린 뒤 위로 허겁지겁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

잠깐의 정적 속에서 김세희의 탄식만이 울렸다.

"아, 진짜! 둘 다 노렸어야지—박준모! 센스 뭐야!”

"그게…… 둘 다 맞추긴 했는데, 기절을 안 했어요."

뻑!

김세희는 카운터의 대머리 남자의 턱을 쳐서 기절시킨 뒤, 마나 메신저를 들어 올렸다.

"사장님, 듣고 있어요? 우리 들켰는데 어쩌죠? 그냥 뚫고 올라가요?”

그러나 위에서 들리는 소란의 규모를 볼 때, 여기에 있는 악마 숭배자가 한 둘이 아닌 듯했고, 좁은 비상계단으로 정직하게 올라가는 건 온갖 스킬에 범벅이 되어서 죽을 짓이었다.

- 칙— 서 중위님, 밖으로 나오세요. 우리는 다른 루트로 6층에 올라가죠.

그 말을 들은 서은하가 뒷문으로 나갔다.

그곳, 주차장에 이현욱이 있었다.

“……다른 루트라니, 사전에 그런 건 말 안 해줬잖아?”

"아, 방금 구상했습니다.”

"그래서, 그게 뭔데?”

이현욱은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서 중위님, 혹시 낙법 할 줄 아세요?”

"……뭐? 무슨 말이야?”

서은하는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아, 그러고 보니 평소에도 슈퍼히어로 랜딩, 그거 잘 하셨잖아요.”

"야…… 지금 나랑 농담하자는 거 아니지?”

"물론 아니죠. 죄송하지만, 시간 없으니까 바로 갑니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이 수직으로 치솟았다.

"윽!"

이현욱이 그녀의 갑옷에 금속 통제력을 부여하여 하늘로 띄운 것이었다

훙——

그렇게 순식간에 6층 부근에 도달한 뒤, 창문을 향해 수평으로 쏘아졌다.

쾅——!

그러나 그건 평범한 창문이 아니었다. 꽤 단단한 방범창, 서은하는 그것을 반강제적으로 들이 받아 박살을 내고, 건물 안으로 굴러 들어가면서 뒤늦게 몸에 방어막을 걸었다.

"캑, 쌍…… 이현욱……."

그녀는 이를 갈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그 뒤로 이현욱이 아주 부드럽게 날아서, 착지했다.

"흠, 평소에는 착지 잘하시더니……."

“—입 닥쳐!”

그녀는 그렇게 악다구니를 내뱉는 순간, 방문이 벌컥 열렸다.

“—너희 뭐야!”

"그냥 죽여버려!”

검을 든 여자와 도끼를 든 남자였다. 둘 다 얼굴에 웬 붉은 물감을 칠한 상태였다.

“역시—”

이현욱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서은하가 바닥을 박차고 나아가 놈들과 맞붙었다.

뻑!

그녀의 오른손 스트레이트가 남자의 코뼈를 박살 냈고, 남자가 휘두른 도끼는 허공을 갈랐다. 이어서 그녀의 앞차기가 여자의 복부를 강타, 여자는 날아가 장롱에 처박혔다.

쾅—

서은하는 순식간에 2명을 제압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후— 여기…… 맞긴 맞나 본데?”

마치 피칠을 한 듯 검붉은 색의 벽지에 온갖 부적과 기이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자욱한 향 연기까지…… 아무리 봐도 평범한 모텔은 아니었다.

"그렇죠?”

딱 봐도 악마 숭배자들의 비밀 거처, 그런 곳이었다.

두 사람은 조심스레 복도로 나갔다.

그 순간, 양측 문과 비상구 문이 동시에 열리며 종업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저기 있다!”

총 17명이 복도를 가득 메웠다. 그리고 문 뒤에 몇 명이 더 있는 듯했다.

“……저것들, 전부 플레이어입니다.”

이현욱이 속삭였다. 놈들이 들고 있는 무기로 볼 때 알 수 있었다. 전부 아이템이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서은하의 눈에는 그들의 몸에서 일렁이는 붉은 기운이 보였다.

악마 승배자들, 악마의 힘으로 보호 받는 것이었다.

즉, 웬만한 공격은 쉽게 먹히지 않으며 저것들과 부딪히면 ‘저주’를 받는다.

"후— 악마의 힘이 담긴 디버프는 내가 받아낼 수 있으니까, 뒤에서 엄호해.”

서은하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현욱이 구태여 자신을 지목해서 데려온 것, 그 기대에 부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현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은 제가 한 번에 뚫을 테니까, 귀만 막으시면 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서은하를 지나쳤다.

그리고는 등 뒤에서 무언가를 끌어내렸다.

그건…… 한 자루의 샷건이었다.

철컥—

펌프를 당겨 장전하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리자,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던 이들의 얼굴에 어렴풋이 균열이 일어났다. 그건 인간이 총구를 마주할 때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감이었다.

"저거, 산탄총이다! 방어막 전개해!”

누군가 그렇게 외쳤고 흑마법사 두 명이 회색의 방어막을 전개하여 복도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콰—앙——!

이어진 단 한 번의 폭음에,

복도가,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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