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90화 (90/221)

90화.  < 악마 숭배자들, 시가전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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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상황 속에는 ‘분위기’라는 게 있다.

에를 들어서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는 무언가 터질듯한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런 걸 감지하고 앞서서 행동 하는 게, 세상살이의 꽤 중요한 기술이었다.

그런 걸 흔히 ‘눈치’라고 한다.

‘그런데 씨발, 방금 그 대화에서 그런 게 있었나?’

어두운 복도, 그곳에서 울렸던 이현욱의 목소리에는 의구심 같은 건 없었다.

그는 적당한 경계심을 유지한 채, 겁에 질린 여자 연구원을 진정시키며 다가왔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학살을 저지르러 온 전사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퓩—하는 작은 파공음과 함께 우르르 쓰러지는 부하들을 내려다보며…….

‘참나, 어이가 없네…….'

최태준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맥락 없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건, 너무나 단단히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리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이곳 ‘실버 라인’ 연구 시설의 출입은 사고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완벽하게 통제되었다.

또한, 연구원들은 전부 악마와 계약하여, 그와 관련된 내용을 발설할 시 ‘사망’한다.

‘즉, 우리의 정보는 새어나갈 수 없다. 자금을 대주는 구광 그룹 측조차 모르니…….'

그런 확고한 생각을 하고 있기에, 공격받을 우려를 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역으로 ‘기만’ 당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었다.

“바, 박사님! 컥—"

2번째 파공음, 안전문 근처에 서 있던 2명이 무언가에 꿰뚫려 쓰러졌다.

저벅— 저벅—

벽 너머, 복도에서 발걸음이 천천히 다가온다. 그리고 이내, 안전문 앞에 그가 나타났다.

검은 전투복, 피부 위로 돋아난 금속 갑주, 등 뒤에 1개의 검과 1개의 샷건이 눈에 띈다.

그리고 그의 오른쪽 어깨 위, 단 한 발의 은색 화살이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 화살촉 끝에서 마치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사나운 사냥개의 모습이 보였다.

최태준은 그 남자, 이현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그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또렷했다.

즉, 불안이나 의심 같은 감정은 조금도 없었다.

‘역시 저놈은 우리의 정체를 알고 아주 확고한 판단력으로 공격해온 거다.’

즉, 저 남자를 설득할 여지 따위가 없다는 것을, 최태준은 직감했다.

저벅— 저벅—

그는 주저 없이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고 8명의 연구원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 당당한 모습에, 최태준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뒷걸음질 쳤다.

‘좋아, 그렇게 더 들어와라…….'

그리고 이현욱이 연구실의 가운데에 서는 순간, 삑—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눌렀다.

쿵—!

그러자 이현욱의 등 뒤, 안전문이 저절로 닫혔고 이어서 천장에서 무언가 내려왔다.

그건 2개의 자동 포탑이었다. 이 기밀 시설에는 이런 무식한 것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삑— 두 번째 버튼을 누르자 무자비한 기관총 소사가 시작되었다.

타—다—다—다—당——!

그런데, 포탑의 총구가 저절로 회전하더니 오히려 연구원 몇 명을 긁어 버렸다.

"억!”

“으아아—!”

그러나 최태준은 그렇게 될 걸 예상했다.

"잘 들어라! 지금부터 ‘주인님’의 힘을 받아들여서 여기에서 놈을 죽인다!”

그는 그렇게 외치며 등 뒤에 숨기고 있던 ‘연막탄’을 뽑아서 바닥에 내던졌다.

퍼—엉—!

작은 폭음과 함께 회색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최태준은 그 속에 몸을 숨기고는 의자에 묶인 채 기절해 있는 여자에게 달려갔다.

"크아아아—!”

"끄어어어—!”

직후, 연구원들의 육성이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악마 ‘몰렉(Molech)’에게 인신 공양한 대가로 ‘힘’을 받은 악마의 종자들…… 그들은 연금술사 플레이어지만, 이제는 웬만한 전사 플레이어보다 강력한 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쿵! 쿵! 쿵! 쿵!

그것들이 험악하게 발을 구르며 이현욱을 향해 돌진했다.

"죽어어어—!”

그때였다.

콰—드—드—드——!

난데없이 천장의 패널이 뜯겨 나가더니 케이블과 전선 다발이 일제히 쏟아져 내렸다.

전선을 이루는 ‘구리선’ 역시 금속, 그것이 이현욱의 의지에 따라서 연구원들을 옭아맸다.

“끄으으——"

그러나 질긴 게이블로 온몸을 칭칭 감았음에도 그리 오래 잡아두지는 못할 듯했다.

쫘—악—!

엄청난 괴력, 연구원들은 수십 가닥의 케이블을 마치 거미줄처럼 간단하게 찢어냈다.

어느새 그들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진 상태였으며 머리에서는 갈색의 뿔이 돋아났다.

크아아아——!

그것들이 더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이현욱은 알 수 있었다.

- 몰락의 자식 : 1단계 (LV 43)

이렇게 ‘인사이트 렌즈’에 정보가 떠오르는 건 ‘몬스터화’되었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한 가지 이상한 건, 그것들의 레벨에 점점 상승한다는 점이었다.

- 몰락의 자식 : 2단계 (LV 49)

‘시간이 지날수록 악마의 힘을 받아서 점점 더 강해진다.’

이현욱 가장 가까이에 있는 놈을 향해 페일노트를 날렸다.

푹—!

그러나 페일노트는 놈의 머리를 관통하지 못했고 놈은 그걸 손으로 잡아챘다.

이현욱이 페일노트를 다시 가져오려고 했지만, 연구원의 악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역시…….'

악마의 가호를 받는 족속들에게는 ‘신성력’이 담기지 않은 무기는 잘 먹히지 않았다.

"이현욱, 강철을 조종하는 플레이어…… 이 안에 네 무기가 될만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연막 너머에서 최태준이 그렇게 말했다. 그는 어느새 웬 여자를 들쳐 매고 있었다.

"이 친구들을 죽이려면 마법 금속이 잔뜩 필요할 텐데, 여기는 스테인리스뿐이다.”

이현욱은 그런 말에는 관심 없다는 듯, 최태준이 들쳐 맨 여자를 가리켰다.

"그 여자, 구광 그룹의 손녀, 구효민인가?”

"너 이 자식, 어디까지 알고 온 거야…… 누가 보낸 거냐!”

이현욱은 말없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뭐, 상관없다. 네놈은 무기도 없이 들어온 그 거만함 때문에 여기에서 죽는 거다.”

그 말에, 이현욱이 피식 웃었다.

"미안하지만, 착각하고 있나 본데…… 나는 빈손으로 온 게 아니야.”

"야, 뭘 가지고 왔던 저 안전문은 뚫지 못할 거다. 이 시설의 보안은 보통이 아니야.”

그는 킬킬 웃었다. 저 안전문은 금속이 아니라 ‘바벨탑의 석재’라는 재료 아이템으로 만든 오브젝트였다. 이 시설의 보안을 위해서 특별히 제작한 물건으로 쉽게 뚫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 보안은, 사람 막기 위한 거잖아?”

“뭐?”

"사람이 통과할 수 없는 곳에는…… 구멍이 아주 많아.”

이내 케이블 다발을 뜯어낸 연구원들이 이현욱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고,

그 순간, 그들의 머리 위에서 웬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과——!

그건, 엄청난 숫자의 금속들이 이리저리 부딪치는 소리였다.

“……뭐, 뭐야!”

아귀들을 상대할 때 사용했던 엄청난 숫자의 쇳조각들,

그것 중 일부를 건물 환풍구를 통해서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는 천장 안쪽에서 ‘변형’을 걸어서 나선형의 가시로 뒤엉키게 했다. 그러자 마치 동굴의 종유석처럼, 천장을 뚫고 나온 금속 가시가 급속도로 자라나더니 연구원들을 내리찍었다.

푹—! 푹—! 푹—! 푹—!

그것들은 몸 이곳저곳을 긴 가시에 의해 꿰뚫리며 바닥에 내리박혔다.

크아아아——!

그렇게 버둥거리는 놈들의 머리통을 향해 말뚝이 날아들어서 마무리 일격을 날렸다.

그것들은 ‘신성력’이 인첸트 된 금속이었기에 놈들에게 치명적이었다.

"......."

홀로 남은 최태준은 잠시 멍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큭, 젠장! 가까이 다가오지 마! 이 여자가 죽는다!”

"......."

"괜히 금속 조각 우, 움직일 생각하지 마! 내가 힘을 주면 이 여자는 즉사야!”

최태준은 기절한 여자를 앞세운 채 뒷걸음질 치며 품속에서 무언가 꺼냈다.

그건 웬 작은 앰플이었다.

그는 이빨로 뚜껑을 뽑은 뒤 내용물은 집어삼켰다.

그러자…….

"끄아아아——!”

절절한 비명과 함께 온몸이 붉게 물들더니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우득—우득—

뼈가 변형되고 피부가 늘어나고 털이 자라난다.

이내, 3m 크기의 거대한 물소—미노타우로스 같은 모습이 되었다.

"크— 너 이 새끼…… 어, 언젠가 죽여버릴 거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오른 벽을 들이받아서 간단히 뚫어버렸다.

쿵—! 쿵—! 쿵—! 쿵—!

이어서 그 너머의 벽, 또 그 너머의 벽, 계속해서 벽을 으스러뜨리며 어디론가 달려나갔다.

그런 무지막지한 도주를 바라보며, 이현욱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그래, 열심히 뛰어라, 곧 따라갈 테니……."

놈이 방금 마신 건 신의 음료라고 불리는 ‘넥타르’를 이용한 각성 물약이었다.

일시적으로 엄청난 능력치 상승이 있을 터, 지금은 상대하기 어려웠다.

물론, 어떻게든 잡으려고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이현욱은 구태여 그러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의도적으로 놓아준 감이 없지 않았다.

‘놈이 밖으로 나가서 논란을 만들어주면, 결과적으로 내가 더 큰 이득을 본다.’

최태준 추격전이 시작되고 놈을 잡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 이현욱은 그걸 노렸다.

우선, 최태준이 들쳐 엎고 간 여자 구효민은 이곳 연구소의 <구광>그룹 회장의 손녀딸로, 그녀를 납치한 이유는 타국으로의 탈출 과정 동안의 보험, 일종의 인질용일 것이었다.

‘분명히, 구광 그룹 측에서 나한테 구출을 부탁해올 거다.’

원래대로라면 구광 그룹 측이 최태준과 직접 협상하여 그의 탈출을 돕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현욱이 대활약을 했으니, 이현욱에게 기대를 걸 가능성이 컸다.

무려 한국 재계 서열 2위에 빛나는 <구광>이므로 뜯어낼 게 아주 많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는 놈이 탈출하는 루트 곳곳에 있는 이득까지 알고 있다.’

이 사태를 만드는 놈들이 아무런 뒷배 없이 이런 사태를 저질렀을 리가 없었다.

세계 각지의 악마 숭배자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이번 음모를 위해서 외국의 악마 숭배자 그룹이 입국하여 근처에 대기 중이었다.

즉, 최태준은 그것들을 한 번에 청소하기 위한 일종의 거대한 미끼가 될 예정이었다.

"어차피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이미 손에 쥐기도 하고……."

그는 웬 카드키를 집어 들었다. 그건 최태준의 ID 카드였다.

방금, 그 난리 통 속에서 금속 조각을 움직여서 낚아챘던 것이었다.

이현욱은 연구실 안쪽으로 들어갔고 이내 잠겨 있는 문이 하나를 마주했다.

그곳에 최태준의 ID 카드를 가져다 댔다.

- 삑— 인증되었습니다.

문이 열리고 불이 켜졌다. 멸균실, 그 안에는 온갖 설비가 가득했다.

그리고 중심부의 어느 유리 상자, 그 안에서 붉은 일렁임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고—오—오—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일대의 액체라니…….

"신들의 음료 넥타르, 한 컵이 한 세트이니, 절반 정도 남았군?”

이걸 얻은 뒤 이런저런 실험을 거치며 절반 정도가 남은 듯했다.

그 용량이 한 150mL 정도 되어 보였다.

이현욱이 유리 상자에 부착된 디바이스에 ID카드를 대자 유리 상자가 열렸다.

그 안에 들어있는 작은 병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 신의 음료 ‘넥타르’를 획득했습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넥타르(전설)

- 효과 : 알 수 없음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들의 음료를 모티브로 한 아이템,

인간이 이걸 마시면 불로불사가 되거나 신이 될 수도 있다는 전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전설을 믿고 그냥 마시면, 반드시 죽는다.’

이 소비 아이템 역시 여타의 전설 등급 아이템처럼 엄청난 ‘오버 핸디캡’이 존재한다.

‘이걸 흡수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엄청난 생명력,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죽음이다.’

훗날, 권왕 한태산이 이걸 마시고 불사에 가까운 방어력을 얻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적은 아니었다. 신의 힘을 뚫어낼 무기도 존재한다.

일명 신살(神殺)의 무기들, 대표적으로 지금은 이현욱이 소유한 ‘미스텔테인’이 있었다.

'어쨌든, 이 넥타르를 어떻게 배합하는가에 따라서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그건 ‘연금술’의 영역이었으므로 앞으로 연금술 분야도 개척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단초를, 연금술 분야 선구자인 구광 그룹에게 뜯어낼 만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는 연구소 안에서 몇 개의 아이템을 얻은 뒤 밖으로 나갔다.

***

"하……."

AMT특수전사령부의 사령관 곽상필 중장, 그는 사건 현장에 도착한 뒤 탄식을 내뱉었다.

처음에는 그저 인질극인 줄 알았거늘,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 연금술 연구소 지하에서 어떻게 저런 악마들이 튀어나올 수 있는 거야?”

그런 사태를 도대체 누가 예상하느냐마는, 누군가가 이 일에 책임을 지긴 져야 했다.

그리고 그 책임의 범주 안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았다.

또한, 그가 신경 쓰이는 게 또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구광 길드 측의 압박이었다.

‘하—그 노인네가 그렇게 성질내는 건 또 처음 봤네…….'

이처럼 곽상필은 구광 그룹 일가와 유착 관계에 있었고,

앞으로 전역 후, 구광의 아이템 사업부의 임원 자리를 약속받았거늘,

하필이면 퇴역을 반년 앞둔 시점에 이런 사태가 터진 것이었다.

3시간 전, 구광 그룹의 회장 구한철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 야! 곽상필이, 이번 강동구 현장, 직속 책임자가 자네 맞지?

79살 먹은 노인네치고는 아주 쩌렁쩌렁한 목청이었다.

"예, 어르신, 제 소관이 맞습니다!”

- 그러면 그 안에 내 손녀딸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아! 그, 그렇습니까?”

- 씨발, 너는 그 중요한 걸 모르고 있어? 어쨌든!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아이, 효민이 사지 멀쩡한 상태로 내 앞으로 데려와! 잘 하면 너 사장하는 거고 아니면 국물도 없어!

‘미친, 이 사태를 만든 게 누군데, 왜 나한테 책임을 떠넘기는 건데?’

하지만 이미 그에게 미래를 맡긴바,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금 당장은 현장을 폐쇄하고 혹시 모를 2차 피해를 막는 게 최선이지,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구덩이로 병력을 밀어 넣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런 면에서 유일한 희망은…….

"이현욱 병장은 아직 소식이 없나?”

"예, 아직 안에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하......."

그래, 이현욱이었다.

서울의 구원자라고 불리는 영웅이 홀연히 나타나 재앙을 막아냈다.

그런데 그 직후, 난데없이 구덩이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런 돌발행동의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그 장면을 바라보며 모두가 같은 생각을 품었다.

‘부디, 그가 이 사건을 종결지어주기를…….'

그런데 웬걸, 비보가 먼저 찾아왔다.

"사, 사령관님! 이것 좀 보셔야겠습니다!”

전속 부관이 내민 핸드폰에는 웬 뉴스가 재생되고 있다.

제보 화면이라는 문구, 그건 터널 내 CCTV 화면이었다.

잠시 후, 일순간 화면이 크게 흔들리더니, 좌측 벽이 무너졌고,

그곳에서, 거대한 괴물이 튀어나왔다.

"이 연구소로부터 890m 떨어진 터널입니다. 아마도 연구소에서 탈출한 몬스터 같습니다."

"뭐? 망할…… 그래서 저게 뭐지? 소처럼 생겼잖아? 미노타우르스 같은 건가?”

"언뜻 봐서는 몬스터인 듯한데…… 저기 오른쪽 팔 부근을 보십시오.”

그 거구의 소 몬스터는 무언가를 둘러매고 있었다.

그건…… 가운을 입고 머리가 긴 사람이었다.

"서, 설마…… 여자를, 납치하는 건가?”

"예, 그런데 인상착의가 구광 그룹의 손녀, 구효민으로 추정됩니다.”

그 말에 곽상필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필이면…….

"하…… 미, 미치겠네…… 그래서 저게 뭔데? 뭐 정보 들어온 거 없어?”

"저, 저게 뭔지 파악이 되지 않았으나 아무래도, 연구소에서 탈출한 듯합니다.”

그때였다.

"—사령관님!”

한 소령 계급의 장교가 그렇게 외치며 작전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거수경례를 하며 곽상필이 기다리고 있던 소식을 전해왔다.

"이현욱 병장이, 방금 구덩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

"이현욱 병장! 이쪽입니다!”

이현욱은 구덩이 밖으로 나온 뒤 오성훈 팀장의 인도를 받았다.

그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성물’ 설치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이 지역 전체에 광역 축복을 걸려는 겁니까?”

"예, 지금 작업 진행 중이고 약 12시간 정도 걸릴 예정입니다.”

아귀 떼거리는 이현욱에 의해서 거의 다 죽었지만, 아직 몇 마리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근처에는 여전히 아귀 떼의 시체에서 피어난 검은 연기가 자욱했다.

그것에 잘못 접촉했다가는, 지옥의 주민으로 변해버릴 터, 일종의 정화 작업이 필요했다.

그리고 북쪽 하늘에 KOR AMT 신성기사단의 기함, 비공정 오룡거(五龍車)가 떠 있었다.

"오룡거, 신성기사단이 왔군요?”

"예, 그들이 6시간 뒤에 현장 진입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때, 정면에서 웬 높으신 분들이 허둥지둥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 중심에는 투스타, 곽상필 사령관이 보였다.

"이현욱 병장, 나는 곽상필 사령관이라고 하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이현욱에게 불쑥 손을 내밀었고 이현욱은 관등성명 없이 가볍게 맞잡았다. 그런 군 기본에 어긋나는 태도에도 곽상필은 그다지 기분이 상하지 않은 듯했다.

이렇듯, 이현욱의 입지나 업적은 이미 병사로 치부될 게 아니었다.

"이쪽, 이쪽으로 오게! 나와 잠시 이야기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예, 물론입니다.”

“하하— 고맙네! 역시 영웅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아량이 달라도 다르군!”

오히려 중장 계급자가 이렇게 아부를 떨어대는 상황은 퍽 우스울 지경이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이현욱의 입지가 아니라 이현욱이 가진 정보가 주요했다.

그런데 지휘 막사에서 그를 기다리는 건 곽상필 중장과의 대담이 아니었다.

그곳에, 웬 양복 차림의 남자 셋이 앉아 있었다.

"곽 사령관님, 잠시 자리 좀 비켜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물음에 곽상필은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아, 이현욱 병장…… 괜찮겠나?”

"예, 저는 상관없습니다.”

"큼, 그러면…… 10분 정도 시간을 드리죠.”

이런 현장에서 무려 최고 책임자에게 자리를 내어달라고 하다니,

이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누구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구광 그룹 회장의 심복들이다.’

이현욱은 곽상철 중장의 구광 그룹 라인이라는 걸 눈치챘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이런 사람입니다.”

한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명함을 내밀었다.

- 구광 그룹 전략기획실 : 한희준 실장

"이현욱 병장, 저희 연구 시설에 잠입했었다고 들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그 안에서—”

"—구효민 씨, 그 여자를 봤냐고 물으시는 겁니까?”

이현욱이 선수 쳐서 물었고 한희준 실장의 얼굴이 다소 딱딱하게 굳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 여자가 납치되는 걸 제 눈으로 봤으니까요.”

그 한 마디는 이 테이블의 분위기를 송두리째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아직 협상이 채 열리고 전, 이현욱이 판을 차지한 것이었다.

이현욱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한희준 실장의 눈을 마주 본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 일을 꾸민 건 최태준 박사라는 사람이던데……."

"......."

"그 남자가 그 여자를 어디로 데려간 지, 알 것 같습니다.”

일순간 침묵이 돌았다.

꿀꺽—

한희준 실장 옆에 앉아 있던 거구의 남자가 마른침을 삼켰다.

"......."

구광 그룹 회장의 심복인 전략기획실의 직원들, 이들은 분명 협상을 하러 왔다.

이현욱이 혹시나 연구소 안에서 구효민을 발견했는지,

그리고 이현욱, 이 남자의 능력을 활용해서 구효민의 찾을 수 있는지,

가능하다면, 그때부터 협상을 이어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 먼저 선수를 쳐서 구효민의 이름을 언급하다니…….'

그건 단지 자신이 아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니라 어떤 ‘수’라는 걸, 한희준 실장은 눈치챘다.

‘역시 이 남자…… 고단수다. 그리고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구효민 양을 직접 보셨습니까?”

"예, 맞습니다. 실버 라인이라는, 아시겠지만 가장 은밀한 연구 시설에서 있더군요.”

이현욱은 몸을 뒤로 젖히며 깍지를 꼈다.

그리고, 회심의 한마디를 던졌다.

"그런데, 제가 본 게 구효민 씨만은 아닙니다.”

"예?”

"구광 그룹이 저기 지하에서 아주 은밀한 놀이를, 많이 벌였더군요?”

"......."

"흑마법 중에서도 악질인 혈마법…… 회장님 건강이 그렇게 안 좋으신 건가 했습니다.”

한희준 실장의 침묵 속에서 이현욱은 피식, 허탈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런데, 아무리 생체 실험은 너무 했다 싶습니다. 한 2년 전이었나요? 필리핀 출신 플레이어 노동자 몇 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실체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이현욱이 쏟아내는 정보에 그들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 같이, 구광 그룹에게 있어서 너무나 아픈 곳이었다.

이현욱이 연구실 지하에 들어갔다 나온 건 고작해야 오십여 분,

그 짧은 시간 안에 그런 정보들을 어떻게 취합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거…… 이번 사태가 구광 쪽에는 꽤 치명적인 문제가 될 듯합니다.”

이현욱은 이렇듯 협상을, 제대로 할 생각이었다.

'구광, 그들이 가진 재계 서열 2위라는 타이틀은 견고하다.’

그들은 가진 건 아주 많다.

그렇기에 잃은 것도 아주 많다.

‘그리고 그것들을 잃지 않으려고 사용하는 비용도 상당하다.’

이현욱이 그들의 불편해하는 곳에, 아주 끈적하게 눌러앉을 생각이었다.

이내 한희준 실장이 입을 열었다.

"이현욱 씨…… 원하는 게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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