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87화 (87/221)

87화.  < 연금술 공장, 혈마법, 역병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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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T 소속 플레이어는 민간 길드 소속 플레이어보다 ‘수준’이 낮다.

그건 플레이어의 위계를 나눌 때 작용하는 일반적인 시선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병’을 기준으로 볼 때나 그렇지, 장교만 되더라도 웬만한 중견 길드보다는 좋은 대접을 받았으며 특별한 병과의 경우는 ‘랭커’들이 다수 속해 있을 정도였다.

<999특수임무대대>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그들은 대테러 작전에 특화된 최정예 플레이어 부대로, 웬만한 거대 길드 부럽지 않은 급여와 대우를 받는다. 그렇기에 자부심이 대단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기도 했다.

그런 그들이 오늘, 강동구 연금술 연구 단지 화재 현장에 투입되었다.

이는 그리 좋지 않은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해당 사건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테러’라는 뜻을 내포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 뉴스 속보입니다! 5분 전인 14시 55분, 강동동의 연금술 연구소 화재 현장으로 국내 최고의 플레이어 대테러 부대로 널리 알려진 <999특수임무대대>의 작전 차량이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며 화재 현장 안에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다수…….

이렇게 모든 언론이 그들의 행보를 토대로 사건의 심각성을 전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내 경찰에서 공식 발표를 통해 비보를 전했다.

해당 현장을 정체불명의 테러리스트 집단이 점거했으며,

현재, 수백 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인질이 잡힌 상태라는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이 또 한 번 뒤집혔다.

하지만, 그 아래, 지하에서 꿈틀거리는 어떤 존재…….

그 진짜 위협을, 아직은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

“……저기 봐! 코브라 스쿼드다!”

"외 진짜다! 그들이 왔다!”

강동구 연금술 연구 단지 테러 현장,

한 방탄 트럭에서 내리는 플레이어 무장 병력을 향해, 그런 외침이 들려왔다.

코브라 스쿼드는 <999특수임무대대> 중에서도 ‘저격술’에 특화된 팀으로, A등급의 사수 플레이어인 팀장을 주축으로 국내외에서 벌어진 굵직한 사태를 다수 해결해낸 바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코브라 스쿼드의 등장에, 기자들은 카메라부터 들어 올렸다.

"—저들의 사진을 실은 기사는 클릭률이 남다르니 놓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코브라 스쿼드! 믿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좋은 결과 부탁드립니다!”

심지어 사심을 담아서 응원을 보내는 기자들도 있었다.

이렇듯, 이들도 대한민국의 ‘영웅’의 대열에 합류해 있는 플레이어들이었다.

하지만 페이스 마스크에 가려진 그들의 얼굴을 한껏 구겨진 상태였다.

"하…… 날씨도 좋은 날에 이게 무슨 좆 같은 상황이냐?”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이 시대에 어떤 새끼들이 인질극을 벌이는 건지……."

그 이유는 이번 작전의 주요 목표가 ‘인질구출’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제아무리 <999특수임무대대>일지라도, 인질극은 골치 아픈 일이었다.

"젠장, 그것도 총화기로 무장한 놈들이랍니다.”

일반 총화기는 플레이어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지만, 민간인에게는 그 무엇보다 위험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스킬이라고 해도 인질의 머리에 겨누어진 총구를 돌릴 수는 없다.

즉, 웬만해서는 ‘협상’을 기대해야 하는 법, 작전이 아주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 골치 아파질 게 눈에 선하다.”

그들은 이내 작전 지휘소 안에 모였고 작전 팀장, 오성훈이 중령이 들어왔다.

그는 A등급의 마법사 계열 플레이어로, 대테러 작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좋아, 모두 자리했으니 이제 브리핑을 시작한다.”

지금까지 수십 건의 대테러 사건을 해결한 오성훈이었거늘, 지금은 표정이 어두웠다.

그리고 그가 내뱉은 첫 마디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비관적이었다.

“……예상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

그가 리모컨을 조작하자 영사기가 켜지고 등 뒤 스크린에 화면이 떠올랐다.

그건 연구소를 드론 카메라로 찍은 듯한 사진이었는데,

창문 안, 복면을 쓴 테러리스트들이 AK-47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현재 파악된 테러리스트의 숫자는 18명으로 자동 소총과 폭발물로 무장한 상태다. 그리고…… 몇몇 인질들한테는 마나 회로가 달린 폭탄 조끼까지 입혀 놓은 상태라고 한다.”

그 말에, 대원들 전체가 얼굴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 미친…… 마나 회로 폭탄이라니—!”

마나 회로 폭탄, 마법 시전자의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폭발 스위치가 점화되는 방식이었다.

그런 게 있다면 대테러전에서 가장주요한 방법인 ‘저격’이 불가능해져 버린다.

즉, 현재로서 인질을 구해낼 ‘무력적인’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쌍…… 이거 꽤 규모가 큰 악질들 같은데, 정체가 뭡니까?"

"그것 역시…… 아직 아무런 정보가 없고, 어디로 침투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하…… 그럼 그 새끼들이 원하는 게 뭐랍니까? 이 정도면 그냥 들어줘야 하지 않습니까?”

이런 난제를 마주할 때는 역시나 ‘협상’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게 최선이었다.

"아직 특별한 요구사항은 없고 그냥 허튼수작하면 다 죽인다고, 그런 말만 반복 중이다.”

정체불명의 테러 집단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인질극이라니…….

인질구출 작전의 1단계인 ‘협상’의 여지마저 꺾이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목적이 적어도 ‘돈’은 아니라는 뜻이겠습니다?”

"그래, 아마도 연구소 내에서 어떤 기술을 빼내기 위해 시간을 버는 듯하다.”

여러모로 막연한 상황…… 여기저기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일단은 놈들과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며 그 의도를 파악하는데 주력할 생각이다. 그러는 사이에 2팀 정령술사 듀오가 건물 내부로 정령들을 투입해서 내부 상황을 살핀다.”

결국, 당장은 그저 ‘감시’하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채로 2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언론에서는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하는 경찰에 대한 의구심을 표하기 시작하는 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 ……현재 연구소 B동 건물 내부에 298명의 인질이 잡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경찰 당국은 테러리스트와 협상을 시도하는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2시간 넘도록 협상에는 이렇다 할 진전이 없으며 인질들의 안전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앞선 두 차례의 대테러 작전을 성공적으로 치러 명성을 얻은 <코브라 스쿼드>가 동원되었지만, 그들 역시 특별한 동향이 없는 상태로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좀처럼…….

"쌍, 민간인들이 고기 조각이 되게 생겼는데, 어떻게 들어가라고 지랄이야?”

"에이, 구 중사님, 메인 탱커가 언제나 냉정을 유지하셔야지,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니미럴, 내가 냉정하면 안에 인질들한테 마나 실드라도 생기냐?”

차량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특보를 들으며, 코브라 스쿼드 멤버들은 이를 갈았다.

"하…… 하필이면 우리 몸값이 한창 치솟고 있을 때, 이런 좆 같은 일이 벌어지냐?”

앞서 기자들의 반응처럼, 현재 ‘코브라 스쿼드’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지난 3차례의 작전을 아주 멋들어지게 해결하며 영웅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또 한 건 제대로 처리한다면, 이들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상승할 것이었다.

그리고 달리 말하자면, 실패할 경우 주가가 하루아침에 대폭락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 이거 타이밍 엿 같네, 진짜.”

이들은 연예인이 아니었지만, 세간에 퍼지는 명성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명성이 자신의 ‘몸값’을 결정하기 때문이었다.

국가 소속의 공무원이지만, 잘나가는 플레이어는 국가와 몸값을 협상할 수 있었다.

즉, 성적은 곧 돈이었다.

"아, 반년 정도 더 있으면서 몸값 좀 불린 다음 길드 공략팀장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에이, 팀장님이 놓아줄 것 같습니까? 2년은 더 하셔야 할 겁니다.”

그때,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음, 무슨 소리야? 헬리콥터 아닌가?”

지휘소 안쪽에서 작전 상황판을 보고 있던 작전 팀장, 오성훈이 그렇게 물었고,

행정 부사관 한 명이 지휘소의 입구의 천막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이곳에서 50m쯤 떨어진 공터로 헬리콥터 한 대가 내려앉고 있었다.

"음…… 누가 온다는 소식은 없지 않았나?"

헬리콥터를 타고 나타날 정도라면 꽤 직급이 높은 인물일 터,

이 작전의 책임자인 오성훈은 본능적인 껄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오성훈의 부관이 뒤늦게 소식을 전해왔다.

"저, 팀장님! 방금 상부에서 긴급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곧 도착할 지원 병력과 협력해서 작전을 진행하라는 내용입니다.”

그 말에 오성훈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 지금 병력이 부족한 게 아닌데 갑자기 웬 지원 병력이야? 그거 누구 명령인데?”

"어…… 단장님이 직접 전화하셨는데, 그게, 청와대의 명령이랍니다.”

"처, 청와대라니……."

여기에서 청와대는 대통령을 뜻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 직속 기관 <국가게이트대응전략실>을 의미했다.

그쪽에서 직접 개입하다니……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역시 저 연구소 지하에 뭔가 있는 건가?’

그렇기에 오성훈은 그런 의구심을 품었다.

"그래서, 그쪽에서 투입할 그 대단한 지원 병력이 누군지 말 안 해줬나?”

한편으로는 청와대가 파견한 대단한 인물이 누구인지 기대가 되었다.

"그, AMT 병사라는데…… 병장, 이현욱 병장이라고 합니다.”

***

현장으로 가는 헬리콥터 안, 이현욱은 이교준 팀장에게 현재 상황을 전해 들었다.

“……테러리스트들이 ‘마나 회로 폭탄’까지 동원해서, 인질구출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현장 CCTV를 확인한 결과, 외부 침투 흔적이 없어서 포탈 사용이 의심되고요.”

그러나 그 내용은 전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조차 모르는, 숨겨져 있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연구소를 점거한 테러리스트들은 외부의 침입이 아니라 내부의 반란이다.’

재계 서열 2위의 <구광>그룹이 설립한 한 연구 재단이 운영하는 연금술 연구 단지,

그곳에서는 ‘마나 스톤’이라는 에너지원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위장막일 뿐이고, 실제로는 혈마법 비밀 연구 시설이었다.’

혈마법(血魔法), 말 그대로 피를 매개로 하는 마법으로 흑마법의 일종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음료 <넥타르>를 얻은 뒤부터 시작된 사업.......'

그리하여 ‘불로불사’나 ‘진화' 같은, 필멸자의 뻔한 소망이자 과업을 목표로 하는데, 신비를 실현하는 마법이라는 게 실재하는 시대인 만큼, 그런 게 가능하다고 여길 법도 했다.

‘그리하여 돈은 많으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이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런 이들의 막대한 후원을 받으며 온갖 방법을 동원, 금기를 깬 실험이 자행되었다.

그리고 그 실험 내용 중에서는 ‘악마’의 힘이 담긴 ‘오브젝트’ 연구도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연구원들은 하나둘,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그리하여 결성된 악마 숭배자 단체, 그들이 오늘 이 사건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때, 헬리콥터가 공터에 내려섰다.

"이현욱 병장, 도착했습니다. 아마도 AMT 병사로서 마지막 임무가 되겠군요?”

이현욱 아직 ‘의무 임무 기간’이 남은 상태였다. 우성문의 비호로 사실상 민간인처럼 활동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AMT 병사였다. 그렇기에 지금도 AMT 전투복 차림이었다.

이현욱은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헬리콥터에서 내렸다.

그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 기자들에게 유출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때, 작전 지휘소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AMT 검은색 전투복, 중령 계급이었다.

"이현욱 병장, 나는 작전 팀장 오성훈이요. 그쪽이 병사 신분이지만 이제 사실상 병사도 아니고 앞으로 엄청난 거물이 되실 인물이니까 조금 어렵게 대해야겠지, 아마?”

그는 다소 비꼬듯이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편하신 대로 하면 됩니다.”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병장 신분으로 중령의 손을 맞잡았다.

이제는 구태여 군 간부들에게 굽힐 필요가 없었다.

이현욱 오성훈을 따라서 작전 지휘소로 들어갔다.

"역시 서울의 구원자는 달라도 다르네요. 청와대 연줄을 타고 작전 참여를 하다니요?”

사실, 이현욱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우성문에게 자신이 나서겠다고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우성문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이 인질극을 해결해달라고 부탁했다.

이현욱의 ‘금속 통제력’이 인질범들의 ‘총화기’를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일단 우성문이 직접 부탁해왔다는 건…… 그 역시 무언가를 눈치채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우성문은 이곳에 움트는 재앙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 재앙이 터져 나오는 걸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제 능력이 인질구출에 특화되어 있어서, 명령을 받고 급파됐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특화라, 인질구출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뜻이신지요?”

오성훈의 거듭된 물음에는 날이 서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대테러 전문가인 자신들이 몇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데, 난데없이—그것도 홀몸으로 나타나서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 이들로서는 상황과 내가 아니꼬울 수밖에 없겠지…….'

아니나 다를까, 지휘소 안의 특수부대원들이 전부 도끼눈을 뜨고 이현욱을 쳐다보았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단순합니다. 제가 인질범들의 총화기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아, 말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는 걸, 물리적으로 제한한다는 뜻으로 보면 됩니까?”

"예, 총구를 휘게 하거나 내부 노리쇠뭉치를 작동 불가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때, 지휘소 한쪽에서 콧방귀 소리가 들렸다.

"아니 참나, 총만 있으면 애초에 처리했겠지,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중얼거린 건 대위 계급의 남자였다.

이름은 이길현,

화살을 쥐고 있는 걸 보아하니 궁수 계열로, 아마도 코브라 스쿼드 대원인 듯했다.

그가 팔짱을 낀 채, 이현욱을 노려보았다.

"이보시오, 영웅 나리, 마나 회로 폭탄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예, 그것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결국 폭탄, 금속 격발 장치를 필요로 합니다.”

이현욱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드론 카메라에 찍힌 사진 속 폭탄 조끼를 볼 때, 8개월 전, 우크라이나 헤르손 시장 인질극 때 벌어졌던 것과 같은 모델로 보입니다. 헝가리제죠. 시전자의 몸과 ‘마나’로 연결되어 시전자가 사망하면 ‘마나 회로’가 작동 ‘격발 스위치’가 눌리는 방식일 겁니다.”

"......."

"다시 말해서 그 금속 재질의 격발 스위치를, 제가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게 말로는 쉽지만, 사실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이현욱은 그걸 해낼 자신이 있었다. 이미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약 또 다른 방식…… 그러니까 금속 격발 장치가 필요하지 않은 형식의 마법 회로라고 할지라도, 마법 시전자를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누구나 몸에 금속 재질의 물건을 잔뜩 가지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이 세상 거의 모든 물건과 무기는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법,

그렇기에 이현욱을 특정하여 대비하지 않는 한, 그의 손짓만으로 제압할 수 있다.

거기까지 듣자, 오성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습니다. 애초에 그쪽의 명령은 우리가 반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그 역시 이현욱의 등장이 영 탐탁지 않겠지만, 그런 개인적인 감정보다 작전 성공이 중요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소문만 무성한 ‘영웅’의 진면모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자, 그렇다면 이현욱 병장, 우리 쪽 저격수들과 사인을 맞춰야 하니까 이제……."

그런데 이현욱은 그의 말을 채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저격수 지원은 필요 없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처리하겠습니다.”

“—뭐요?”

그 저격수 요원 중 한 명인 이길현 대위가, 이번에도 발끈하고 나섰다.

"지금, 우리가 필요 없다고요? 대체 어떤 작전에 저격수의 도움이 필요 없습니까?”

코브라 스쿼드, 그들은 최고의 저격술 분대로서 자부심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저격수가 필요없다는 말에 발끈한 것이었다.

"오히려 제 통제 사이사이에 이질적인 연계가 끼어들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제가 통제하는 금속에 저격수의 총알이나 화살이 맞아서 유탄되어 인질이 맞을 수도 있고요.”

지금, 이 새파랗게 젊은 남자가 이 작전을 자기 혼자서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봐요, 당신이 잘난 건 알겠지만, 적당히 하시죠.”

이길현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 갑자기 와서 우리를 들러리 취급하다니…… 당신이 잘난 사람인 건 알겠는데, 이건 당신이 겪은 것들과 전혀 다른 일입니다. 우리나라 역사 속 최고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님도 대테러전은 못 하실 거라고요. 그런데 영웅이라고 불린지 얼마나 됐다고, 남의 영역을—”

"이 대위, 그만—거기까지만 해.”

"하— 과장님, 아니, 팀장님 이건 아닙니다. 이런 중요한 일에, 저런 애송이를……."

이에 이현욱도 참지 않고 한마디를 던졌다.

"이 대위님, 죄송하지만 중요한 사건이니까 제가 온 겁니다.”

“뭐?”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하고 계셨으니까, 선수 교체된 거죠.”

그 말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미치겠군, 얼마나 잘 하는지 한 번 봅시다.”

이길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

연금술 연구 단지 B동,

18명의 테러리스트가 AK-47을 쥐고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때, 인질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젠장— 이봐! 이 실장! 제발, 이야기 좀 해!”

철컥—

그를 향해 4개의 총구가 겨누어졌다.

"자네가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 한 마디 정도는 좀 해 봐!”

“……오 박사, 입 닥치고 있으세요. 저기 지하에 던져지고 싶어요?”

"야, 이 개새끼야! 너, 너희가 지금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아?”

이 대화에서 알 수 있듯, 테러범과 인질들, 그들은 한때 동료였다.

"어, 어떻게 한솥밥 먹는 식구들을…… 어떻게 그, 그 괴물들에게……."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 실장이라는 이의 눈을 보았다.

그자의 눈은 어딘가 이상했다. 흐리멍덩한 한편 검은자가 검붉은 빛으로 빛났다.

"여 역시! 그 눈깔…… 너희 전부 정상이 아니야!”

생각해보면 언젠가부터 사내에 괴소문이 돌았었다.

지하에서 흑마법 연구가 이루어지며 매일 새벽 4시, 해당 부서원들이 악마 숭배 의식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말 그대로 소문이었고 그 실체를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 그리고 연구소 지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옥과 같은 일…… 그 모든 게 진짜였다.

"너, 너희가 고대 유물 연구라인 놈들, 이상한 물건에 손을 대더니 드디어 미쳐버렸구나!”

"하…… 안 되겠다. 오 박사님, 지하로 내려가셔야겠다.”

이 실장이 그렇게 말하자, 테러범 둘이 다가와서 그의 양팔을 붙잡았다.

“……아, 안 돼! 안 돼! 이거 놔!”

"아니, 그러니까 잠자코 계시지 갑자기 왜 발작을 하고 그러세요?”

그들은 오 박사라고 불린 이를 엘리베이터 쪽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도어를 열었는데, 승강기는 없고 까마득한 어둠뿐이었다.

그들은 그 안으로, 오 박사를 내던져 버렸다.

"으아아아——”

그의 비명이 저 아래로 떨어지며 점점 흐릿해졌고,

이내 그 소리가 끝나는 순간, 전혀 다른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캬아아아——

가래 끓는 괴성, 무언가 뜯기는 소리, 그리고 씹고 삼키는 소리까지…….

"......."

그 소리를 들으며, 다른 인질들은 바들바들 떨 수밖에 없었다.

그때, 테러리스트 한 명이 이 실장에게 다가왔다.

그는 마나 메신저를 흔들어 보이며 짜증이 난다는 듯 인상을 팍 구겼다.

"하…… 실장님, 저쪽에서 또 협상을 위해서 들어오겠다고 하는데요?”

“쯧, 우리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아직도 모르는 건가?”

이들이 원하는 건 오로지 시간, 저 아래에서 어떤 작업이 끝날 때까지 버티는 것이었다.

"혹시나 멋대로 다가오면 인질들한테 총 갈겨버린다고 해.”

"그런데, 저 새끼들이 혹시 은신 같은 스킬로 접근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 인질들 죽일 수 있는 짓은 안 할 거야.”

그는 그렇게 확신했다.

"애초에, 쟤들이 지하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턱도 없고, 인질 목숨 하나만 보고 있을 테니......."

그런데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건물 입구 쪽에 웬 낯선 얼굴이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그는…… 검은색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저벅— 저벅—

그런 인물이 여기 있으면 안 되거늘, 너무 당당하게 걸어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일까…… 이 실장은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지며 그 모습을, 몇 초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너, 너, 뭐야!”

그는 다소 늦게, 그렇게 소리쳤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인질 협상을 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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