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 연금술 공장, 혈마법, 역병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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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 박준모, 여상민 세 사람은 신길의 <강정두 아이템 제작·연구소>에 도착했다.
"어…… 며칠 사이에 뭐가 막 생긴 것 같습니다?”
박준모가 그렇게 말하며 연구소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의 말처럼 보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건물만 달랑 있던 곳에 철조망, CCTV, 마법 경보기 등 온갖 설비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는 이현욱이 박철수에게 부탁하여 ‘쉘터 컨설팅’ 전문 업체에 시공을 맡긴 결과물이었다.
"그래도 우리 길드에 몇 없는 중요 시설물이니까 보안에 신경 써야 하잖아?”
"아! 예, 맞는 말씀입니다. 진귀한 아이템이 잔뜩 만들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기 본관에는 마법 방어막도 설치되어서 유사시에 개인 ‘쉘터’역할도 할 수 있을 거야.”
"헉! 그 정도입니까? 와……."
쉘터, 그게 이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물론, 국가에서 운영하는 초대형 쉘터 수준은 아니겠다만, 웬만한 몬스터가 공격해오더라도 며칠 동안은 버틸 수 있을 것이었다.
‘앞으로 여기, 강정두 연구소가 라퓨타와 더불어서 마법공학 발전의 핵심이 될 거다.’
그렇기에 아낌없이 투자해서 보안의 수준을 최고 수준으로 높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인데요?”
그렇게 물은 건 여상민이었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 레드홀 마을로 들어갔기에 암시장이나 인천의 슬럼가를 벗어나서 서울로 들어온 것도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이 모든 상황이 낯설고 신기한 표정이었다.
"아, 너도 온 김에 무기 하나 장만하면 되겠다.”
“……네? 저요? 제 무기요?”
"그래, 너도 플레이어니까 자기를 지킬 줄은 알아야 해.”
물론 여상민은 비전투 계열이기에 싸울 일이 거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위기가 닥쳐올지 모른다.
"혹시 다룰 줄 아는 무기 있어?”
"어…… 권총 같은 건 쏴 보긴 했는데요. 꽤 잘 맞췄어요.”
"아니, 강도 시절 쓰던 무기 말고 제대로 된 거 없어?”
"네? 강도 시절이라니, 저는 강도질은 안 했어요! 그래도 지킬 건 지켰다고요.”
"그래? 네 친구들은 종종 하던 것 같은데, 넌 안 끼워줬나 보네?”
"......."
잠시 후, 세 사람은 창고에서 강정두와 강희설을 만났다.
그런데, 프리드웬이 들어갈 정도로 널찍했던 창고가 사격장으로 변해 있었다.
웬 모래주머니가 이곳저곳에 쌓여 있었고 저 멀리 구멍이 뚫린 철판 과녁 걸려 있었다.
"자, 이 물건입니다. 한 번 살펴보시지요.”
텅— 강정두가 테이블 위에 웬 철제 케이스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뒤로 강희설이 헐레벌떡 따라 나왔다.
"물주님, 이거요 진짜 대박이에요! 진짜 무슨 대포 쏘는 것 같다니까요!”
"……이것아, 위험하니까 여기에서는 오두방정 좀 떨지 마!”
"아! 할아버지! 이번에는 나도 좀 이바지했잖아! 한 마디 정도는 하게 해줘!”
"......."
"아 진짜…… 그리고 이 샷건 이름도 제가 지은 거잖아!”
강희설의 호들갑을 배경음으로 강정두가 케이스를 열었다.
"제가 겉치레를 꾸미는 일에는 재주가 없어서, 투박하지만 성능은 괜찮습니다.”
그의 말처럼 그다지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펌프 액션’ 방식의 산탄총이었다.
‘영웅 취급받는 플레이어들은 종종 스타가 된 듯, 스타일에 신경을 쓰지만, 나는 아니다.'
이현욱은 오로지 성능만을 중요시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블랙라이노(숙련)
- 효과
1) 아(亞)공간 탄창 : 30개의 ‘셸(shell)’을 아공간에 ‘삽탄’할 수 있습니다.
2) 괴멸 분사 : 아공간 탄창 안의 모든 탄창을 소비하여 일제히 격발합니다.
‘<숙련>등급, 벌써 이 정도 아이템을 만들어내다니…….'
숙련 등급은 제조 아이템의 등급 중에서 3번째에 해당하며 ‘영웅’ 등급에 준한다고 하지만, 본디 제조 아이템에는 ‘스킬’이 부여되지 않기에 웬만해서는 한참 아래 등급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헤파이스토스의 망치 덕분에 이 아이템에는 ‘스킬’이 무려 2개나 붙어 있었다.
‘즉 사실상 영웅 등급이나 마찬가지…… 아니 그 이상이다.’
이현욱은 강희설이 명명했다는 ‘블랙라이노’를 다시 한번 천천히 살폈다.
그러는 동안 강정두가 옆에서 그 기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청동 거인의 부품이었던 그 뭐시기였지…….'
“아— <아그니 크리스털>이라고! 아, 답답해!”
"그래 이것아, 막 기억나려던 참이었다! 예, 그게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더랍니다. 그래서 그놈의 힘을 일종의 장약 삼아서 탄환을 발사하는데, 그 위력이, 예, 무시무시합니다. 그리고 만약 탄환이 없다면, 그…… 단발 분사식의 화염 방사기처럼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장약’ 대신 ‘화염 마법’의 힘을 응축—분출시키는 방식으로 탄두를 발사한다.
‘거기에다가 아공간 탄창이라…….'
총화기 유형의 아이템에 아공간 탄창이 붙는 건, 가장 좋은 옵션 중 하나였다.
'훗날 최고의 마탄 사수로 불리게 될 프랑스 영웅 장 드 튀흐렐(Jean de Thurrell)은 대물저격총에 아공간 탄창과 속사 스킬을 달아놓고는 중기관총처럼 쏘아대곤 했었지…….'
그가 옆구리에 그 대물저격총 2자루를 끼고 저벅저벅 걸어가며 마치 람보가 된 양 난사, 트롤 두 마리를 특유의 재생 속도마저 씹어버리며 곤죽으로 만드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럼 이거, 한 번 사격해봐도 되겠습니까?”
이현욱의 말에 강정두는 창고 한쪽을 가리켰는데, 그곳 벽에 구멍이 흉하게 뚫려 있었다.
"저게, 철판을 수십 개 덧댄 과녁을 세웠는데도 저렇게 됐습니다. 그리고……."
강정두는 그렇게 말을 얼버무리며 누군가를 가리켰다.
그는 연구소 직원 중 가장 젊은 편인 40대 남자였다. 무슨 일인지 그는 오른쪽 어깨에 깁스하고 있었는데, 정황상 시험 사격을 하다가 그 반동에 어깨가 탈구된 듯했다.
‘하긴, 그 미친 화력의 크리스털을 박아서 장약으로 쓰는데, 감당할 수 있을 리가…….'
하지만 이현욱이라면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것이었다.
"저는 괜찮을 겁니다.”
이내 공방의 직원들이 과녁을 마련했고 유탄을 대비하여 뒤쪽에 모래주머니를 쌓아두었다.
이현욱은 모두에게 뒤로 물러나라고 한 뒤, 가변식 개머리판을 견착했다.
철컥—
총열 덮개의 펌프를 잡아당기자 노리쇠가 셸을 삼키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웅——
총신에 붉은색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최고 수준의 화염 매개체 <아그니 크리스탈>이 화염 마법을 발현하는 것이었다.
화— 악——!
그 찰나의 순간, 총안에서부터 엄청난 열기가 올라왔고,
콰—앙——!
이어서 귀를 때리는 폭음— 이현욱은 그 충격에 뒷걸음치고 말았다.
"미친……."
진짜, 절로 욕이 나왔다.
약 오십여 미터 앞의 과녁,
3cm짜리 강판은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 튕겨 나가, 저 멀리 창고 벽면에 박혔다.
"어때요! 엄청나죠!”
강희설의 외침에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개인 병기라고 하기는 파괴적인 위력이었다.
하지만 테스트는 아직 끝이 아니었다.
"후......."
이현욱은 이어서 2번째 스킬을 사용해볼 차례였다.
그 전에 강체화된 신체에 무게를 부여하여, 그 충격을 대비했다.
- ‘블랙라이노’의 스킬 ‘괴멸 분사’가 사용 가능 상태입니다!
이현욱은 총신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붉은 마법진이 무려 5개나 떠올랐다.
콰—과—과—과—광——!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폭음과 충격, 이현욱은 양손에 있는 힘껏 힘을 쥐었다.
아공간 탄창에 들어 있는 잔여 탄창, 14발의 ‘셸’이 일제히 분사된 것이었다.
1개의 셸당 9개, 총 126개의 펠릿이 공기를 찢고 날아가,
퍼—버—버—버—버——!
전방의 드넓은 면적을 말 그대로 짓이겨 버렸다.
후우우우——
그 일격의 후폭풍으로 희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와, 미친……."
등 뒤에서, 여상민이 중얼거렸다.
"저, 저도 그런 무기 써야 하는 건 아니죠? 너무 무서운데……."
이현욱은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강체화가 없었더라면, 쓸 수 없는 무기였다.
‘이 정도 화력이라면, 근거리에서 쏜다면 한 방에 트롤도 고꾸라뜨릴 수 있을 거다.’
이현욱의 공격 방식이 ‘화력’에 집중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물량’에 의존했다.
즉 ‘확실하고 강력한 한방’이라는 점에서 다소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나마 모글레이를 이용한 공격 이후 ‘쇼크웨이브’를 사용하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실, 전설 등급의 아이템 <게 볼그>가 내 소유이긴 하지만…….'
그 아이템을 구태여 가지고 다니지 않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창은 지금의 내가 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게 볼그는 ‘트윈 오우거 챔피언’을 한 방에 보내며 유명세를 치른 무기였다.
하지만 덜 알려진 사실로는, 후긴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오버 핸디캡’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즈믄나래 측에서도 쉽게 사용하지 않는, 일종의 계륵이었던 것이었다.
‘한 번 찌를 때마다 생명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지금으로는 탈진하거나 죽을 수도 있다.’
이현욱은 그 사실을 알기에 구태여 즈믄나래 길드로 찾으러 가지 않고 있었다.
‘좋아 언젠가 그걸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이 샷건을 이용하면 되겠군.’
그런데 이번에 준비된 선물은 ‘블랙라이노’뿐만이 아니었다.
"아, 그리고 공중투하장치를 제 손녀딸이 개량했는데, 한 번 보시겠습니까?”
"아 맞아요! 그거 진짜 좋아졌어요! 그래서 제가 이름도 새롭게 붙였어요!”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이 아이템을 ‘공중투하장치’라고만 부르고 있었다.
잠시 후, 강희설이 끌차를 끌고 왔다.
"이게 AD-1 이에요!”
그 위에 실려 있는 새로운 버전의 공중투하장치였는데, 외양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했다.
“AD-1 이라면, 서기 1년이라는 뜻은 아니겠지?”
"아니! ‘에어 드로퍼(Airdropper) 마크 1’이라는 뜻이에요!”
“……뭐야, 공중투하장치를 그냥 영어로 말한 거잖아?”
"그래도 이게 더 간지나지 않아요?”
그는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제작자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어쨌든, 강희설의 업그레이트를 거친 결과, 더 가벼워졌으며 무게 중심이 더욱 잘 잡혔다.
“……마법 사출구의 위치를 조절해서 무게 중심을 보완했고요. 사출구의 조절해서 명중률이나 탄속을 강화했고…… 어, 그리고 상단부에 ‘플라이 아이’를 2개 탑재…… 또……."
강희설은 이렇게, 자신의 작품을 신나게 떠들어댔다.
"좋아, 확실히 더 괜찮아졌네? 계속 업그레이드 부탁해도 될까?”
"네! 얼마든지요!”
강희설은 칭찬을 받자 의욕을 불태우며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곧 저 녀석의 능력을 대폭 상승시켜줄 드워프들이 나타날 거다.'
이현욱은 이 ‘AD-1’ 12대를 프리드웬의 짐칸에 탑재한 뒤 ‘방패’로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작은 방패 안에 수도 없이 많은 아이템을 담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걸 또 오른쪽 손목에 ‘각인’했다.
즉, 다중 아공간을 이용하여 엄청난 숫자의 무기를 몸에 장착한 것이었다.
이제, 과장을 조금 보태서 그는 걸어 다니는 항공모함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
이튿날 저녁, 이현욱은 한 사무실에서 우성문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우성문에게 자신이 ‘라퓨타의 관리자’라는 사실을 밝혔다.
"......."
그런데 이현욱의 충격적인 선언에도 우성문은 그다지 놀라지 않은 듯했다.
"역시…… 솔직히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허탈한 웃음을 띠더니, 한편으로는 다소 서운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숨기신 겁니까? 혹시 저를 못 믿으시는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고…… 사실은 얼마 전에 비로소 이 능력을 깨달았습니다.”
이현욱은 그렇게 대충 둘러댔지만, 이걸 숨긴 진짜 이유야 명확했다.
이현욱 스스로가 이 ‘권한’을 완전히 독점할 수 있는 상황이 올 때까지 버틴 것이었다.
만약, 이 ‘고대 유산의 마스터키’의 존재를, 얻자마자 공개했더라면…….
‘4차 웨이브가 끝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사실, 언젠가 스스로 밝혀주시기를 기다리고 있기는 했는데…… 얼마 전에 중국의 모 길드가 라퓨타의 열쇠를 얻었다는 소문이 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여쭤보려던 순간에, 마침 이렇게 말씀해주셨네요. 잠자코 기다리기를 잘 했습니다.”
우성문이 푸념 늘어놓듯 말했다.
그런데 그의 말 속에 거슬리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라퓨타의 열쇠라니, 그게 무슨 말이죠?”
"그게 아직은 그저 소문인데, 그 소문의 출처나 확산 경로가 다소 의심스럽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의도적으로 그 소문을 퍼뜨리려는 정황이 포착되었죠.”
이현욱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열쇠라…… 라퓨타의 관리자 권한이 열쇠라는 걸 아는 건가?’
물론 그저 관용적인 표현이 헛소문처럼 돌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빌런들은 결코 라퓨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건 확실하다.’
그런데 이 땅의 전초기지인 태산 길드가 무력화되었으니 가장 가깝고 강력한 세력인 중국 쪽에서 뭔가 작당을 벌일 것이라는 건, 이현욱이 이미 예상하는 순서였다.
‘그리고 특히나 그쪽은 빌런이 공안부터 장악해서, 지금쯤이면 완전히 넘어간 상태다.’
중국의 가장 큰 세력인 공안부 쪽 사조직 암성(暗星), 그놈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이현욱은 그런 것들을 알고 있었기에, 단편적인 상황만 보고도 사건의 흐름을 짐작했다.
‘곧, 필연적으로 놈들이 무슨 수를 쓸 거다.’
그 순간을 대비하고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실장님, 그 지점을 계속 응시해주셨으면 합니다.”
이현욱의 부탁이 우성문의 눈빛이 빛났다.
"음 혹시 뭔가 걸리는 게 있으신 겁니까?”
"글쎄요. 하지만 수많은 이들이 라퓨타를 눈독 들이고 있을 테고, 누군가는 언제가 행동에 옮기겠죠. 그런 움직임을 사전에 감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성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 있는 말씀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주시 중이었습니다."
이 땅을 노렸던 테러리스트를 색출하기 전까지는 방심할 수 없다고, 우성문은 생각했다.
그리고 특수비밀경찰국 안에 ‘신도시계획부서’라는 새로운 부서가 신설되었다.
그곳은 이현욱을 부서장으로 하여 라퓨타 ‘개발’을 주도하는 부서였다.
이현욱은 우선 10명의 ‘분석가’ 플레이어를 데리고 라퓨타 곳곳을 탐방했다.
그 거대한 시설의 지도를 작성하고 활용 방법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곧 닥칠 또 다른 사건을 ‘중요 목표’로 설정했다.
‘이제 슬슬 거대한 사건이 하나 다가온다.’
곧 서울 동부의 한 ‘연금술 연구 센터’에서 큰 사건이 한 터질 예정이었다.
***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이현욱은 희망 길드 사무실에서 김세희와 마주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김 팀장, 실망하지 말아요.”
“……누가 실망했다고 그래요?”
"그것도 충분히 잘하신 겁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공략을 마친 게 중요하죠."
어제, 유해나와 계약했던 대로 2번째 합동 공략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김세희가 공략 팀장을 맡아서 22명의 길드원을 지휘했다.
그러나…… 공략 결과, 희망 길드의 기여도는 고작 17%였다.
그녀는 의외로 경쟁심이 강한 편인 둣,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쪽에서 저번에 당한 것 때문에 과도한 화력을 투입했을 겁니다.”
"그것도 맞지만, 결국…… 아직 제가 부족한 거죠. 그 누구랑은 다르게요.”
"뭐, 이제 막 첫걸음 뗀 거잖아요? 라퓨타 초현실 훈련장 좀 쓰실래요?”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요. 그리고…… 거기에 좀 오래 있어도 될까요?”
그녀의 눈에서 불꽃이 튀는 듯했다.
'그래, 계기가 있어야 빨리 성장하는 법이다.’
그녀의 잠재력을 알고 있기에, 이런 식의 호승심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그리고 그날, 레드홀 마을에 있던 소일러를 라퓨타로 데리고 왔다.
“—마, 말도 안 돼!”
소일러는 프리드웬이 라퓨타로 긴급 복귀하는 순간,
그 작은 몸뚱이로 껑충— 상당히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이현욱과 함께 오더 타워라고 가는 내내 ‘말도 안 돼’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자, 자, 자네가 말했던, 그 이주지라는 곳이 설마 이곳인가?"
그는 오더 타워에서 라퓨타의 ‘상부 도심 지역’ 내려다보며 입을 쩍 벌렸다.
"예, 맞습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여, 여기는 라퓨타가 아닌가! 맙소사, 내가 여기에 직접 와보다니—!”
역시, 노움의 기술을 동경하는 드워프인 만큼, 라퓨타라는 걸작을 모를 리가 없다.
그는 오더 타워의 유리 벽을 따라서 원형의 오더 타워를 빙글빙글, 쳇바퀴 돌리듯 돌며,
마치 몽유도원의 절경을 본 안평대군인 것처럼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그, 그렇다면 우리 부족이 저, 저기 저런 살게 되는 건가?”
"예, 맞습니다.”
"헉— 우리 부족 전체가 지금 축축한 땅굴 속에서 숨어 있었거늘, 이런 축복이……."
그러자.......
- (!) 퀘스트 내용이 업데이트됐습니다.
[히든 퀘스트]
- 차원 여행자와의 조우 - 3
당신은 그레이 마운틴 드워프의 이주지를 지명했습니다.
그들은 8일 뒤에 ‘균열’을 통해 등장할 예정입니다.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세요,
* 퀘스트 보상 :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됩니다.
‘좋아,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
무려 3단계의 연계 퀘스트였다. 이걸 성공적으로 이룬다면 상당한 보상이 따를 것이었다.
“8일 뒤, 여기에다가 차원의 문을 열어서 우리 부족을 데리고 올 수 있을 걸세!”
"예, 그런데 혹시 부족이 몇 명이나 됩니까?”
"음…… 여러 사건 이후 뿔뿔이 흩어졌고 지금은 415명에 불과하다네……."
소일러 입장에서는 비극적인 이야기겠지만, 그 이현욱으로서는 딱 좋은 숫자였다.
너무 많은 숫자가 몰려오면 여러모로 관리하기가 벅차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후 더 많은 그레이 드워프가 합류하는 이벤트가 있을 거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저 퀘스트 내용에 쓰여 있는 ‘사고’가 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저번에도 웬 까마귀...... 혹시 미리 대비해야 할 문제가 있을까요?”
그 대목에서 소일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래, 와이번…… 그놈들이 우리의 하늘을 점령한 상태야.”
"그렇다면, 8일 뒤 이주 때 방해가 될만한 놈들입니까?”
소일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좀 크다네…… 차원문은 우리 산의 꼭대기에서 열 수 있는데, 그 순간을 놈들이 덮칠 우려가 커서 말일세......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군.”
와이번(Wyvern), 드래곤의 하위호환이라고 불릴 만한, 상당한 수준의 비행 몬스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리 지어 다닌다는 게 위협적이었다.
‘그래, 이런 중요한 이벤트인 만큼 그 정도 수준의 몬스터가 나올법하다.’
그리고 아마도 첫 합류 때, 전투 이벤트가 있을 듯하니 대응 준비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다른 일에 매진할 때다.’
일주일 전부터 준비해온 어떤 중대한 사건을 맞이할 때가 왔기 때문이었다.
***
이현욱은 뉴스 채널을 켜 놓고 어떤 사건의 시작을 기다렸다.
이내.......
- ……뉴스 특보입니다! 서울 강동구의 한 연금술 연구 단지에서 원인 불명의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경찰 당국이 10분 전, 화재 발생 장소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 당국은 화재와 신고 전화가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시작되었다.’
전생에는 그렇지 않아도 웨이브로 인한 침식 때문에 나라가 혼란스러운 와중에, 저곳에서 또 하나의 큰 사건이 터진다. 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 나라가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이현욱에 의해서 미래가 바뀌었음에도 이 사건은 변함없이 발생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낫지만, 막을 수 없는 문제인 건 여전할 거다.’
- ……경찰의 현장 탐문 결과, 현장을 정체불명의 맹독 가스가 뒤덮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플레이어 감식반이 도착하여 현장 감식에 들어간 가운데…….
이현욱은 저 현장이 어떤 지옥도로 바뀔지 알고 있었다.
연금술을 빙자하여 연구된 혈(血)마법…….
그것을 탄생한 수도 없이 ‘실험체’가 지상으로 범람한다.
'그때, 엄청난 전력이 투입되어서 그것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엄청난 물량 공세를 막지 못하고 결국 뚫리고 말았다.
그렇게, 그것들이 땅 위로 기어 나와서 끔찍한 ‘역병’을 퍼뜨렸고,
남양주시, 하남시 등 수도권 동부권 폐쇄되고 ‘프리스트 동원령’이 내려진다.
‘그때 그 문제로 죽은 희생자가, 추산 20만 명에 달했지…….'
몬스터의 공격도 공격이지만, 그와 동반된 ‘역병’이 문제였다.
그게 쉘터 안에서 퍼지며, 수많은 민간이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제, 그 결과는 사뭇 달라질 예정이었다.
이현욱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애초에, 그것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틀어막으면 된다.”
그의 양손에는 이제, 압도적인 화력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가 통로를 막고 화력을 전개한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재앙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숨겨져 있는 전설 등급의 소비 아이템 넥타르...... 그걸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