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85화 (85/221)

85화.  < 인천, 마계, 암시장 - 6 >

===========================

이현욱은 드워프의 등장과 함께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했다.

[히든 퀘스트]

- 차원 여행자와의 조우 - 1

당신은 차원의 균열에서 등장한 ‘드워프 방랑자’와 조우했습니다.

그는 이제 막 낯선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기에 경황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를 돕는다면 예기치 못한 보상이 찾아올 겁니다.

* 해당 퀘스트 진행을 위해서는 ‘선행 조건’이 필요합니다.

‘선행 조건 필요라…… 이건 어떤 큰 퀘스트의 시작이다.’

이런 형식의 퀘스트는 일명 ‘의뢰 퀘스트’라고 불렸다. 시스템이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지성을 가진 NPC와의 관계에 따라서 목표와 보상도 달라진다.

즉, 어떻게 상황을 이끌어가느냐에 따라서 퀘스트 내용이 천차만별이 되는 것이었다.

이현욱은 드워프의 비공정을 바라보았다. 총 전장이 3m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작은 크기였는데, 버려진 자동차의 부품을 용접해서 이어붙인 것처럼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표면에 어떤 짐승에게 쥐어뜯긴 것인지, 큼직한 발톱 자국이 여럿 나 있었다.

“……젠장! 거기! 이 문을 여는 걸 좀 도와주면 안 되겠나? 응?”

그 안에서 ‘드워프 방랑자’라는 이름을 가진 NPC가 그렇게 소리쳤다.

그는 힘이 부족한지, 우그러진 비공정 문짝을 도저히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간절한 부탁에도 일행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저, 저거…… 몬스터인가요?”

고진화가 그렇게 물었다. 다른 이들도 그녀와 같은 심경이었다.

이때는 아직 인간에게 우호적인 NPC가 별로 없던 만큼 이런 반응이 당연했다.

이현욱은 어깨를 으쓱하며 그것에 다가갔다.

"글쎄요. 뭐가 됐든 그리 위협적인 존재는 아닌 것 같네요.”

"잠깐만요! 저, 저렇게 지성을 가진 몬스터는 블랙 오크나 레드 드레이크 종족인데......."

그녀는 뒷말을 얼버무렸지만, 그 두 종족이 아주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즉, 저것도 그 정도로 위험할 수 있다고,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것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유사시에 저 비공정 자체를 터뜨려 버릴 수 있으니까요.”

이현욱 왼손을 뻗어, 그 고물 비공정의 우그러진 부분에 ‘금속 변형’을 가했다.

끼기기기——!

그러자 갈색의 고물 같은 비공정 문짝이 텅— 하고 뜯기며 드워프가 튕겨 나왔다.

그는 흙바닥 위를 한바탕 과격하게 뒹굴더니 간신히 자세를 잡았다.

“큭— 돼, 됐다!”

이현욱은 그 드워프의 생김새를 살폈다.

약 130cm의 키에 두꺼운 몸통, 큰 주먹코에 회색의 수염, 얼굴에 그려진 하얀 문신.......

'생김새로 보면, 그레이 마운틴 드워프, 줄여서 그레이 드워프다.’

지금껏 본 오크의 종류가 한둘이 아니었던 것처럼, 드워프도 역시 다양한 종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건축과 조선에 특화된 기술을 가진 부족이다.’

그 어떤 종족보다 큰 아이템을 만든다는 걸, 즐기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원래대로라면, 그레이 드워프는 빌런 측의 조력자가 된다.

‘그레이 드워프 부족의 대리자는 태산 길드였는데…… 그게 이렇게 시작된 거였군?’

전생이 어떤 상황으로 흘러갔던 건지 대강 그림이 그려졌다.

‘그놈들이 스왈로우를 퇴치한 이후 어떤 퀘스트를 받고, 부족 전체를 집어삼킨 거다.’

이후 그레이 드워프들은 빌런 측의 요구에 따라 각종 초대형 병기를 제작하는데…….

'그건 정말이지 하나하나가 끔찍한 대량살상무기였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라퓨타에 장착된 <수다사나르>였다.

라퓨타를 포위했던 연합군의 수상 함대를 일격에 날려버렸던 그 캐논이 그레이 마운틴 드워프의 작품이며, 초대형 비공정 ‘게이트센티넬’ 역시 그들의 조력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레이 마운틴 부족은 원체 악한 종족이 아니었기에 자신들이 만들어준 무기가 어떻게 사용되는 그 실체를 알고 난 뒤, 빌런 측과의 교류를 끊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물론, 빌런들은 그토록 유용한 자산이 자신들을 떠나가는 걸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그레이 드워프 정착촌에 유성 마법을 떨어뜨려서 학살해버렸다.’

그렇게 비참한 역사를 걷게 될 부족이었지만, 이제는 첫 단추부터 달라질 예정이었다.

“후— 어떻게 저 문짝을 열어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신비한 힘을 가진 친구로군!”

드워프 방랑자가 그렇게 호쾌하게 말하며 이현욱에게 다가왔다.

"나는 소일러 와이어비어드라고 하는데, 자네는 이름이 뭔가?”

"저는 이현욱이라고 합니다.”

이현욱은 존댓말을 쓰며 의도적으로 존중을 표했다.

이 드워프라는 종족은 은근히 자존심이 센 편인데, 그게 허영심에 가까울 정도였다.

즉, 환심을 살 때는 존중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게 좋았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듣자 눈앞에 떠오르는 '정보’가 업데이트되었다.

- 드워프 방랑자 소일러 와이어비어드 (LV:49)

* 해당 NPC는 당신에게 ‘중립적’입니다.

이처럼 몇 번 대화를 나누자 ‘몬스터’가 아니라 ‘NPC’로 인식되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 이현욱 병장님! 저기 좀 보십시오!”

박준모가 그렇게 소리치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우우우우——!

소일러의 비공정이 나온 차원의 균열, 그곳이 터질 듯 일렁이고 있었다.

그러자 소일러의 입이 찍 벌어졌다.

"아뿔싸! 내 정신 좀 봐! 차원의 문을 닫는 걸 깜빡하다니—!”

소일러는 그렇게 외치며 자신의 비공정을 향해 달려갔다.

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무슨 조처를 하려는 듯했지만…….

훙——

늦었다.

균열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까아아아——!

그건…… 거대한 까마귀였다.

그것은 홰를 치며 미끄러지더니 바닥에 발톱을 박아넣으며 멈춰섰다.

까아아아——!

이어서 괴성과 함께 날개를 펼쳤는데, 그 익장이 족히 이십 미터는 넘는 듯했다.

"저, 저게 뭐야!”

그리고 4개의 붉은 눈깔이 번뜩이며 일행을 굽어보았다.

- 회색 산맥의 네 눈 까마귀 (LV:61)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어서 2마리가 더 튀어나와서 총 3마리가 나란히 섰다.

이 괴물들, 아무래도 소일러의 비공정을 추격해 온 듯했다.

저 고물 같은 비공정에 나 있는 발톱 자국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콰드드드——!

그 3마리의 괴물이 위협적으로 다가오며 발톱으로 바닥을 긁자 바위가 으스러졌다.

"어, 어어……."

"다, 다들 뭐해! 전투 준비해!”

61레벨은 B등급 플레이어 정도는 되어야지 맞설 수 있는 상대였다. 즉, 이들로서는, 현재 마땅한 탱커가 없는 만큼 까딱 잘못했다가는 저 발톱에 스치는 순간 즉사할 수도 있었다.

"모두, 움직이지 마세요. 저것들 생각보다 빠를 겁니다.”

이현욱은 레드홀의 플레이어들에게 손을 뻗어 진정시킨 뒤, 박준모를 바라보았다.

"박준모……."

그의 손아귀에서 시퍼런 감돌고 있었다.

"—쏴!”

이현욱의 명령에, 그의 양손에서 전류가 뿜어져 나갔다.

파—지—지—지——!

그리고 그 거대한 괴물들의 온몸을 마치 파란색 실타래로 휘감듯, 감전시켜버렸다.

“으으으으—!”

"조금만 더 버텨!”

박준모의 전격 공격은 아직 57레벨 몬스터를 리타이어 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묶어두기에는 충분했고,

그 사이에 이현욱의 허리춤에서 페일노트가 쏘아졌다.

푹—푹—푹——!

이현욱은 가장 먼저 놈들의 날개를 꿰뚫어 기동력을 상실시켰다. 처음부터 무턱대고 머리를 노린다면 비행형 몬스터 특유의 기동력에 아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까아아아——

그것들은 전류 공격을 버텨내며 어떻게든 날아오르려고 했지만, 날개가 축 늘어졌다.

‘좋아, 이제 정확하게 노릴 수 있다.’

이내 페일노트가 선회하며 놈의 머리통에서도 눈을, 차례차례 꿰뚫었다.

쿵— 쿵— 쿵—

그게 끝이었다.

"뭐야…… 바, 방금 무슨 일이……."

고진화를 비롯한 레드홀의 플레이어들은 멍한 표정으로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보기에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몬스터였거늘, 너무나 손쉽게 쓰러뜨린 것이었다.

고진화는 새삼스럽게 또 한 번 감탄했다.

‘이 남자, 진짜로 못 하는 게 없잖아?’

이렇게 몬스터를 대면해서 상대하는 건 ‘화력’을 발휘하는 것과 또 다른 일이었다.

“……어이쿠— 내 정신 좀 봐!”

그때, 소일러가 비공정 안에서 웬 리모컨을 들고나오더니 버튼을 눌렀다.

후우우우…….

그러자 ‘균열’이 빠르게 사그라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후…… 저게 자동으로 닫히긴 하지만, 쫓기고 있었다는 걸 깜빡해버렸네……”

그는 손매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나저나 자네, 역시 보통 실력이 아니었군! 나는 저놈들한테 며칠을 밤낮으로 쫓겼는데 이렇게 쉽게 끝내다니! 으하하! 이 낯선 땅에서 처음 만나게 자네인 건 정말 행운이야!”

그때, 소일러와의 ‘관계도’에 변화가 생겼다.

- 드워프 방랑자 소일러 와이어비어드 (LV:49)

* 해당 NPC는 당신에게 ‘긍정적’입니다.

방금 전투 때문인지 ‘중립적’에서 ‘긍적적’으로 바뀐 것이었다.

‘그렇다면…… 방금 그 몬스터들의 등장도 이 이벤트의 일환이다.’

이 현상은 게임인 만큼, 이벤트마다 일종의 ‘스크립트’가 짜여 있을 것이었다.

아마도 그 몬스터들을 보고 도망가는 게 아니라 싸워서 이기는 것, 그래서 소일러의 ‘신뢰’를 받는 것이 이 퀘스트의 노선—목표와 보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었다.

즉,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상승했다고 볼 수 있었다.

"소일러, 당신은 이 세계에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습니다.”

이현욱은 한술 더 떠서 의도적으로, 아주 친절하게 물었다.

"어, 뭐? 아니, 나를 구해준 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선뜻 도와주겠다니, 그게 정말인가?”

"예, 물론입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소일러는 감동이라도 한 듯 양 볼을 파르르 떨었다.

‘전생에는 이들이 등장했을 때, 전 지구가 경계심을 잔뜩 품고 대처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실상 몬스터나 다름없는 존재가 우르르 몰려와서는 정착할 땅을 내어달라고 하는데, 그 누가 온정으로 대하겠는가? 그래서 처음에는 드워프를 배척하자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결국 드워프를 품은 국가가 엄청난 기술 발전을 이룩했다.’

즉, 이현욱은 그 엄청난 기회를 빠르게 잡은 것이었다.

"허, 이게 참, 내가 처한 상황을 말해주자면 이게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영 복잡한데……."

"괜찮습니다. 천천히 말씀하시죠.”

그 이후 소일러가 늘어놓는 사연은 진짜로 복잡했다.

그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자신들의 세계가 모종의 이유로 멸망 위기에 놓였고 그리하여 다른 차원으로의 대대적인 이주를 계획했으며 자신은 타 차원에서 이주지를 탐사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야기를 마친 뒤, 쭈뼛거리더니, 남몰래 품고 있던 한 마디를 고백했다.

"저…… 그래서 말인데, 그…… 우리 부족이 너희 세계에 정착할 수 있을까?”

그리고 거기까지 듣는 순간—

[히든 퀘스트]

- 차원 여행자와의 조우 - 2

드워프 방랑자 소일러는 자신의 종족이 살아갈 새 터전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종족의 운명이 달린 이 대대적인 사업의 핸들을 맡기려고 합니다.

소일러는 당신을 우호적으로 보고 있는 만큼 보상이 훨씬 커질 것이며,

정착지에 대한 ‘만족도’에 따라서 ‘추가 보상’이 지급될 것입니다.

* 보상: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됩니다.

이처럼 ‘의뢰 퀘스트’는 NPC와의 대화를 통하여 다음 단계로 연계되는 것이었다.

이현욱은, 쭈뼛거리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소일러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일러, 정착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주 좋은 곳이 있습니다.”

"허— 그게 정말인가?”

"예, 곧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아니! 어떻게 일이 이렇게 딱딱 풀릴 수가—!”

그 말에, 소일러가 이현욱의 손을 맞잡으며 뛸 듯이 좋아했다.

그래, 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드워프들이 실직할 염려도 없는, 일자리가 아주 풍부한 곳이기도 했다.

***

"오…… 이건 노움의 기술로 만들어진 비공정이 아닌가!”

소일러는 프리드웬에 오르며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예, 아마도 그럴 겁니다.”

"오오— 오오— 도대체 이걸 어디서 구한 거지? 구경 좀 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하지만 아무거나 만지시면 안 됩니다.”

드워프라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이것저것 건드려 볼 게 분명했다.

그러다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에 이현욱은 특별하게 주의를 당부했다.

“으흐흐— 이 녀석은 노움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나 멋들어지는 놈이군그래!”

노움은 흔히 드워프의 스승쯤 되는 종족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드워프들에게 물어보면 실제로 노움을 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들도 그저 노움의 유적지를 발견한 뒤, 첨단 기술을 배웠을 뿐이었다.

잠시 후, 프리드웬이 레드홀 마을 근처에 도달하자 어디선가 격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와——!

마을 광장, 천 명이 넘는 주민들이 몰려 나와서 손을 흔들어댔다.

그들은 이현욱의 이름을 연호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외쳐댔다.

이현욱 그 근처에 프리드웬을 착륙시켰고 이내 고준철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스왈로우가 물러가는 것까진 확인했는데, 자네 말대로 그것들은 죄다 고사하겠지?”

"예, 분명 그렇게 될 겁니다.”

그 말을 듣자, 그제야 고준철은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는 이현욱의 손을 움켜쥐었다.

"이현욱, 자네가 정말로…… 레드홀의 구원자가 되어주었어……."

그가 처음으로 감정을 내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현욱은 고준철의 집에 앉아 있었다. 약속대로 스왈로우를 처리했으니 그 보상을 논의할 차례였는데 그 외에도 논의 할 게 몇 개 더 생긴 상태였다.

"음, 드워프라……."

우선 드워프, 소일러는 잠깐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상황이 정돈된 뒤에 라퓨타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래, 최근에 그런 게 등장하는 소식을 듣긴 들었는데, 설마 여기에 등장할 줄이야?”

이렇게 찌라시가 돌 정도면 이미 다른 지역에서 또 다른 드워프 부족이 등장한 듯했다.

‘역시 내가 제일 먼저 조우한 건 아니다.’

이는 이 시기에 열리는 대대적인 이벤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초반에는 대다수가 그들을 배타적으로 굴 터,

그 누구보다 이현욱이, 이 이벤트의 혜택을 보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조금 전에 웬 돌산이 무너지는 걸 보셨을 겁니다.”

"그래, 거기에서 드워프를 발견한 게 아닌가?’’

"거기에서 발견한 건 드워프뿐만이 아닙니다. 아주 값진 걸 찾았습니다.”

이현욱의 말에 고준철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아다만트 광산을 발견했습니다.”

"아, 아다만트 광산이라니…… 그게 정말인가?”

그 소식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고준철마저도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었다.

그곳에 매장량이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 엄청난 돈을 캐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 아다만트 광산 발견 역시도 제 공이 있다는 걸 아실 겁니다.”

"아무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자네에게 마땅한 보상이 돌아갈 걸세.”

노골적인 보상 요구였지만, 고준철은 오히려 이런 태도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그래, 받을 건 빼지 않고 확실하게 받는 게 옳다.’

고준철은 애초에 대가 없는 행동을 하는 인간은, 오히려 뒤가 구리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그런 인간을 한둘 본 게 아니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고 가는 게 분명하며 그 과정이 거듭되면 쌓이는 신뢰, 그런 걸 선호했다.

그런 면에서 이현욱이라는 남자는, 여러모로 참 마음에 드는 구석이 많았는데…….

그런데…… 이어지는 이현욱의 말에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저에게, 아다만트 광산 개발 및 유통의 독점권을 주시죠.”

그 말을 들은 고준철은 십여 초가 지나도록 대답하지 못했다.

"......."

그건 너무나 과분한 요구가 아닐 수 없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다만트 값은 충분히 치를 겁니다.”

그러나 값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다만트라는 엄청난 자원을 가지고 그 활용도를 결정할 수 있다는 건 힘이었다. 일종의 자원 외교를 하듯 어떤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그걸 권리를 달라는 것이었으니…….

"흠…… 자네 덕분이긴 하지만, 그건 너무나 큰 부탁이라는 거, 알고 있겠지?”

그때, 이현욱이 하나의 카드를 더 꺼냈다.

"예, 대신 제가 이 마을 사람들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게 돕겠습니다.”

이에 고준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여기는 안전한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원해서 들어온 것도 아닐 테고, 제가 돕겠습니다. 레드홀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다시금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정당한 권리를 쥐고 살도록요.”

이현욱은 싱긋 웃어 보였다.

'……우리가 그걸 원한다는 걸, 이 짧은 시간에 포착해냈군?’

이현욱은 처음부터 레드홀이 원하고 있는 걸 정확히 꿰뚫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이현욱의 카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라퓨타에 레드홀 주민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음?"

"그저 막무가내로 데리고 올라간다고 해서, 안전이나 먹고 살 방법이 마련될 리는 없죠. 그러나…… 라퓨타라면 다를 겁니다.”

그 대목에서 고준철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고 말았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이 남자의 ‘딜’이 너무나 묵직했고, 단 몇 마디에 자신의 마음이 기울어가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자네는 정말이지, 가진 게 많고 그걸 너무나 무섭도록 휘두른단 말이야?”

즉, 거절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치고 들어온다.

‘그래, 이곳은 불안정한 세계다. 언제까지 여기서 살 수는 없다. 올라가야 해.’

거기에다가 다른 곳도 아닌, 서울 하늘에 떠 있는 마법공학 도시의 입주권이라니......

“하— 정말…… 견딜 수가 없군……."

"그럼, 제 제안을 받아들이시겠다는 뜻으로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고준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에게 중요한 건, 돈이나 권력보다 마을 아이들의 미래였다.

"좋아, 다만 이 광산을 통째로 집어삼켜서 뭘 할 생각인지 물어봐도 될까? 그저 돈을 벌려는 건 아닐 테고, 분명 더 큰 목적이 있는 듯 한데…… 자네의 배에 탄 사람에게 귀띔 좀 해줄 수 있겠나? 돈을 지급하고 탄 승객으로서 이 배가 어디로 가려는지 알아야 하잖나?”

"예, 그건 단순합니다.”

이현욱은 품속에서 쇠 구슬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금속 변형’을 통하여 그것을 뾰족한 ‘촉’으로 만들어버렸다.

“……무기를 만들 겁니다.”

"오, 무기라……."

"아시겠지만, 제 능력은 강철을 조종하는 겁니다.”

그리고 아다만트는 가장 강력한 강철—금속이었다.

고준철은 방금, 소문으로만 들었던 ‘강철비’의 단면을 보았다.

그런데 그건 죄다 던전 강으로 만든 무기였다.

‘하— 아다만트로 만들어진 강철비라…… 웬만한 탱커는 버틸 재간이 없을 거다.’

그는 눈앞에 앉아 있는 이 S등급 플레이어가 이제야 ‘초입부’에 들어섰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자네는 S등급이니, 어떤 방식으로든 점점 그 수준이 올라가겠군?”

"예, 맞습니다.”

즉, 앞으로 계속해서 끊임없이 강해질 터…….

그리고 이 세상은 거의 모든 것들은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을 마음대로 흔들고, 주무르고, 터뜨리는 능력자라면…….

‘이 남자가 찾아온 건 내 말로에 크나큰 행운일지도 모르겠군.’

***

이현욱은 고준철에게 태산 길드를 날릴 만한 ‘증거’를 약속받았다.

그 증거를 모으고 정리하기까지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테지만…….

'……달리 말하면, 시간 문제라는 뜻이다.’

그리고 암시장을 나가기 전에 한 가지 부탁을 더 했다.

아마도 곳곳에서 드롭되고 있을 용도불명의 아이템- ‘지하 왕국의 고대 주화’ 그걸 최대한 끌어모아달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잡템으로 여겨지지만, 드워프가 등장한 이후에는 그 가치가 대폭 상승할 거다.’

그게 드워프들의 세계에서는 최고의 가치를 가진 화폐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흔히 말해서, 주화 ‘코인’에 탑승한 것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레드홀 주민의 ‘라퓨타 정직원 채용’으로 여민상을 데리고 나왔다.

이현욱은 그를 데리고 희망 길드 쪽으로 가던 중, 전화가 한 통 왔다.

- 저기요, 물주님 ! 진짜 대박이에요!

그건, 강희설이었다.

"응?"

- 그, 그, 방금 우리가 뭘 하나 완성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와— 대박이에요!

아니, 도대체 뭘 만들어냈기에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지…… 내심 기대가 되었다.

- 전에 가져다주신, 그 로봇 있잖아요?

"아, 유적 수호자 말하는 거야?”

- 예, 뭐 그거요!

노움의 유적지 A3의 ‘청동 파수꾼(알파)’ 그것을 작동 정지한 뒤 강정두에게 가져다주었다.

아마도 그걸 토대로 이런저런 연구를 하는 듯했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그걸로 뭔가를 만든 듯했다.

- 그게, 그 로봇 어깨에 박혀 있는 크리스털로 할아버지가 샷건을 하나 만들었는데요!

‘음, 크리스털이라면.......'

이현욱은 기억했다. 그 4m짜리 거인의 어깨에서 화염이 뿜어져, 리빙 아머를 죄다 녹여버리는 장면을…… 그런데 그걸로 개인 병기인 ‘샷건’을 만들었다는 말이었다.

'잠깐만, 그걸로 샷건을 만들어? 그게 가능한가?’

- 그리고 거기에다가 그 ‘망치’를 썼더니…… 엄청난 스킬이 붙었어요!

망치, 여기서 망치는 ‘헤파이스토스 망치’를 뜻하는 듯했다.

즉, 그 잠재 아이템의 진면목을 목격한 모양이었다.

- 그 망치 대체 뭐예요! 저도 하나 주세요! 네—?

그래서, 벌써 걸작이 하나 탄생한 듯했다.

이현욱은 곧장 강정두의 공방으로 향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