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 인천, 마계, 암시장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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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왈로우를 퇴치할 수 있는 재료 아이템인 붉은 달빛 약초,
그게 약 15t 정도가 준비되었다.
이는 이현욱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이 구해오다니, 역시 암시장의 큰 손이야.’
붉은 달빛 약초는 평소에 활용도가 거의 없기에 유통량도 적은 편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암시장, 어느 브로커의 창고에 잔뜩 쌓여 있었고 레드홀은 그것들을 죄다 매입해버렸다.
'좋아, 앞으로 뭘 구하고 싶은 게 있을 때, 더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다.’
암시장의 거물인 고준철과 동맹을 맺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자, 이제 이걸로 뭘 어떻게 해야 하죠?”
고진화가 물었다.
아마존를 뒤덮었던 스왈로우를 퇴치한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스왈로우에게만 작용하는 ‘디버프’를 발생시키는 일종의 ‘성물 오브젝트’를 제작하여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해당 지역 전체가 스왈로우가 자생할 수 없는 환경으로 변모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아이템을 개발할 시간이 없다.’
그 대신, 다소 물리적인 요법으로, 약초를 억지로 ‘처먹이는’ 방식이 하나 있었다.
"자, 이 붉은 달빛 약초를 개고 고아서 끈적한 형태로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단순한 배합인 만큼, 연금술사 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몇 가지 재료만 동원하면 생성될 겁니다.”
"아…… 그래서 그걸 제초제처럼, 저 검은 넝쿨 위에다가 살포하면 되는 거예요?”
고진화의 물음에 이현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물로 만들어서 뿌리는 건 미봉책일 뿐이죠. 잠깐 물러났다가 증발하고 나면 다시 전진해올 겁니다. 저걸 싹 고사시키려면 군체의 핵심부에 직접 ‘주사’해야 합니다.”
그 대목에서 고진화는 의아함을 느꼈다.
"네? 주사라니…… 저 괴물한테 어떻게 직접 주사해요? 저는 상상이 안 되는데요.”
고진화 그렇게 말하며 저 멀리, 꿈틀거리며 다가오는 스왈로우를 바라보았다.
쿠—구—구—구——
지면을 헤집으며 조금씩 다가오는 검은 넝쿨의 파도…….
저것이 접근했을 때, 마을 사람 몇 명이 끌려 들어갔던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흑색의 넝쿨들이 마치 촉수처럼 사람을 움켜쥐고는…… 눈코입과 항문 등, 모든 구멍으로 잔뿌리를 욱여넣는다. 그렇게 되면…… 단 몇 초 만에 온몸의 체액이 빨리고 만다.
'시발.......'
그녀는 눈을 질끔 감았다.
역시, 저기에 직접 다가가서 무언가를 시도하는 건…….
'……괴물의 이빨로 다가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현욱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너무 쉽게 대답했다.
"아, 그건 제가 맡겠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아서 하겠다는 소리였다.
그는 이어서 스왈로우 군체의 핵심부인 ‘코어 라인’이라는 게 어디쯤 위치하는지, 그리고 저 거대한 군체가 어떤 패턴으로 움직이는지 온갖 정보를 막힘 없이 설명했다.
고진화는 그 모든 설명을 귀에 담으면서도, 매 순간 놀라움을 느꼈다.
'……이 남자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상세한 정보를 꿰뚫고 있는 거지?’
그 모습이 마치 몬스터를 오랫동안 연구한 학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상하게도 믿고 의지하게 된다.
‘아빠가 사람을 그렇게 고평가하는 건 처음 봤는데……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야.’
그녀의 아버지 고준철이 당부하기를, 이현욱을 잘 지켜보라고 했다.
“……진화야, 그 인간, 언젠가 이 나라를 움켜쥘만한 인물이다.”
고준철은 사람 보는 눈 하나만큼은 자타공인, 정확한 편이었다.
그건, 이 위험천만한 암흑가의 거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덕목이었다.
그런 그가 단 몇 마디를 나눈 것만으로도 이현욱이라는 남자를 인정했다.
‘아빠는 어쩌면…… 이 남자를 통해서 지상 세계로의 탈출을 꿈꾸고 있을지도 몰라.’
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쫓겨난 뒤 던전 안에 새로운 터전을 꾸렸으나,
이번 일을 계기로 이곳이 불안정한 세계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런고로 이런 곳에서 자손들을 살아가게 할 수는 없다는 게, 고준철의 생각이었다.
즉, 이들, 레드홀 마을 모두가 언젠가 땅 위를 활보할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래, 언제까지나 이곳에서 살 생각은, 솔직히 나도 없으니까…….'
이현욱이 그들의 동아줄이 될지도 몰랐다.
물론, 그 동아줄을 움켜쥐는 건 공짜가 아니겠지만…….
***
어느덧 5시간이 지났다.
"자, 요청하신 대로 ‘진액’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쇠말뚝 500개도 구해왔고요.”
어느새 이현욱이 요청한 ‘붉은 달빛 약초 진액’이 만들어졌으며,
그와 함께 주문했던 ‘던전 강(Dungeon Steel)’으로 만들어진 쇠말뚝 500개도 도착했다.
이현욱은 두 가지 물건을 확인했다.
"네, 딱 좋네요.”
이현욱은 ‘금속 변형’을 통하여 쇠말뚝 안에 긴 구멍을 판 뒤, 진액이 담긴 통 안에 담갔다. 그러자 보글보글—거품이 올라왔다. 진액이 쇠말뚝의 구멍 안으로 스며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대로 굳힌다.’
이현욱은 이걸 저 스왈로우의 핵심부에 박아넣은 뒤 ‘파쇄’할 생각이었다.
그게 바로 그 ‘강제 주사’ 방법이었다.
"자, 이것들은 전부 저기, 비공정에 실어주세요.”
고진화는 이현욱의 손가락을 따라서 한쪽에 서 있는 거대한 물체를 바라보았다.
방패이자 비공정인 <프리드웬>,
그것의 등장을 본지도 벌써 몇 시간이 지났지만, 새삼스레 감탄이 나왔다.
‘그나저나 이 남자는 뭘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 거야? 그것도 죄다 최고 수준의 아이템이잖아?’
후긴, 라퓨타, 프리드웬…… 앞으로 또 어떤 물건으로 충격을 줄지 기대가 될 정도였다.
한편, 박준모와 여상민은 프리드웬 안에 있었다.
이현욱이 박준모에게 여상민과 함께 비공정 안에 타 있으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여상민은 오타쿠 기질이 있어서 비공정 같은 장비에 관심이 많을 거다.’
그는 언젠가 비공정은 물론이거니와 라퓨타 전체를 관리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런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어떤 ‘흥미’를 느끼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여상민이 내부를 구경하게끔 만든 것이었다.
프리드웬 안, 여상민은 박준모와 대화하며 어딘가 신난 듯 이것저것 살피고 있었는데,
이현욱이 들어오자 괜스레 그의 눈치를 보며 쭈뼛거렸다.
마치 친구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가 들킨 여섯 살짜리 아이의 표정이었다.
“……박준모, 곧 출발할 거다.”
"아, 예!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프리드웬이 날아올랐고 작전에 동원된 8명의 레드홀 출신의 플레이어들은 감탄을 마지 못했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곳에서 자란바, 비행이란 걸 경험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비공정의 승차감은 비행기와 비교할 바가 안 될 정도로 좋다.’
그 어떤 ‘출력’ 없이 마법적인 힘으로 아주 안정적으로 두둥실— 떠오른다.
그렇기에 비행기보다는 차라리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프리드웬, 1천 피트까지 고도 상승한다.”
우우우우——!
그리고 이현욱이 직접 조종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작동은 이렇게, 음성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물론, 섬세한 기동을 위해서는 수동 조종이 필요한 만큼 틈틈이 연습할 생각이었다.
이내 저 아래, 희뿌연 모래 먼지 속, 검은 핏줄처럼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지옥 같은 광경을 내려다보며, 레드홀의 플레이어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으, 우리의 땅이 죽어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되네요. 쌍……."
"젠장, 분명 두 달 전에 뒷산에 올라갔을 때는 여기까지는 전부 녹색이었는데……."
그리고 그 뒷산에 고준철을 비롯한 수백 명의 레드홀 주민들이 올라서 있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 전부가 큰 기대를 품고 있어요. 잘 부탁해요.”
고진화의 말에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확실한 대가가 따를 거다.’
그때, 프리드웬 내부가 웬 시퍼런 불빛으로 물었다.
왱—! 왱—! 왱—! 왱—!
이어서 경보음과 함께 프리드웬의 후미가 열리기 시작했다.
마치, 군용 수송기의 화물칸 문 ‘램프 도어’를 개방하는 것과 같은 장면이었다.
후우우우——!
그렇게 열린 문으로 바람을 밀고 들어와 내부를 휘저었다.
이는 드디어 무언가 시작한다는 뜻이었기에 모두가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자, 1번 작전을 시작합니다.”
이현욱은 ‘램프 도어’로 걸어가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 스왈로우:1단계 촉수 (LV. 61)
- 스왈로우:1단계 촉수 (LV. 60)
- 스왈로우:2단계 촉수 (LV. 63)
- 스왈로우:1단계 촉수 (LV.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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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렌즈를 통하여, 수백 개에 달하는 정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렇듯, 스왈로우 군체는 하나의 개체인 동시에 다수의 몬스터다.’
그런데, 저것들을 건드리는 건 시간 낭비였다.
아무리 잘라내도 계속해서 재생할 테니 말이다.
즉, 공략법을 모르면 개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자, 지금부터 저놈을 제대로 공략하기 위해서 ‘비’를 뿌릴 겁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비는 강철비는 아니었다.
"마법사들, 저기, 저 지점에다가 워터 마법 집중해주세요!”
이현욱의 말에 프리드웬에 타고 있던 6명의 마법사들가 램프 도어로 다가와 일렬로 섰다.
이내, 워터 볼, 워터 캐논 등 온갖 물과 관련된 마법들이 쏘아졌고, 그것들이 허공에서 흩어지며 스왈로우 군체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펑— 펑— 펑— 펑— 펑— 펑—
또한, 미리 준비해둔 물탱크, 그것에 연결된 호수를 바닥을 향해 드리웠다.
쏴—아—아—아—아——
상당량의 물이 비처럼 쏟아졌다.
그러자 스왈로우의 촉수들이 그 수분을 받아먹으려는 듯 하늘을 향해 쭈뼛 섰다.
수백 가닥이 하늘을 향해 꿈틀거리는 게, 마치 검은색의 말미잘 군락 같은 모양새였다.
"으, 역겨워 죽겠네……."
바로 그때였다.
쿠—드—드—드——!
"어! 저기 보십시오!”
지상을 감시하고 있던 박준모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건 엄청나게 두꺼운 넝쿨 다발로서, 원형으로 뒤엉켜서 거대한 검은 호박처럼 보였다.
"—어! 아까 말씀하신 대로 비를 뿌린 부분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어요!”
이는 이현욱이 예견한 반응이었다.
‘역시…… 비가 내리면 코어 라인이 직접 나온다.’
이현욱은 인사이트 렌즈를 통하여 그것을 자세히 살펐다.
- 스왈로우:코어 라인 (LV. 99)
스왈로우 군체는 촉수로 수분을 감지하고 이동해서 흡수한다. 그렇게 흡수한 물은 중심부인 ‘코어 라인’으로 흘러 들어가며, 그곳에서 새로운 넝쿨을 생성하는 ‘생장’이 발생한다.
즉, 코어 라인은 아주 중요한 기관인 만큼, 언제나 땅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
그런데, 코어 라인이 직접 물을 흡수하는 경우가, 딱 한 가지 존재했으니…….
‘바로, 비가 올 때다.’
그 이유는, 촉수에서 물을 빨아들여 코어 라인까지 아주 긴 통로를 따라 옮겨야 하는, 그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현욱은 ‘비’를 뿌려서 코어 라인이 지면으로 올라오게 유도한 것이었다.
몬스터의 생태를 잘 이하는 것, 이것 역시 ‘레이드’의 일환이었다.
"그러니까, 저걸 타격해서 제초제를 ‘주사’하면 군체가 괴사한다는 거죠?”
고진화의 다소 흥분한 듯한 물음에,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디론가 손을 뻗었다.
"자! 마법사들, 전부 비켜요! 1번, 2번 상자 낙하합니다!”
이현욱의 외침에 램프 도어 근처에 서 있던 마법사 플레이어들이 양옆으로 비켜섰고, 그 사이로 2개의 금속 상자가 맹렬하게 미끄러지며 비공정 밖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정도 고도까지 추락한 순간—
‘파쇄—’
쩡——!
그것 상자가 으스러지며 그 안에서 총 500개의 쇠말뚝이 이리저리 비산(飛散)했다.
그것들은 향해, 이현욱이 왼손을 뻗었다.
웅——
그러자 수십 개의 쇠말뚝이 그 뾰족한 머리를 바닥을 향해 내리 세우고 정렬했다.
직후, 가속이 시작되었고,
이내, 빗물을 받아먹는 코어 라인 위로—
퍼—버—버—버—버—버——!
일제히, 내리박혔다.
여상민은 그 장면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미친! 어떻게 저렇게 죄다 정확하게 맞출 수가 있지?’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쩌—저—저—저—저—정——!
그 500개의 쇠말뚝이 일제히 폭발하며 쇳조각 폭풍이 일어났다.
쿠구구구구…….
그토록 단단한 코어 라인의 상단부가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화려한 장면이었다.
‘헉…… 이런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여상민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아마도 언젠가 DVD로 보았던 옛날 전쟁 영화의 한 장면인 것 같았다.
그래 저건…… 항공기를 이용한 폭격, 그것도 정밀 폭격과 닮아 있었다.
단 일격에 드넓은 지역을 초토화하는 현대 병기의 위력…….
그러나 그 무지막지한 화력은 몬스터에는 먹히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걸 잘 알았다.
제아무리 강력해 보이는 폭격일지라도, 트롤 한 마리의 배리어도 못 뚫을 테니…….
‘그런데 저건 전부 플레이어의 힘이라서, 몬스터한테도 먹힌다!’
즉, 현대 병기와 엇비슷한 무지막지한 화력을 몬스터에게 입힐 수 있다는 뜻이었다!
‘미친, 이런 장면이…… 혼자서 가능한 것이었나?’
그리고 이현욱은 공격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의 감각을 따라서, 셀 수 없이 많은 쇳조각이 마치 벌레처럼 움직이며, 코어 라인의 생채기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고 있었다.
‘좋아, 진액이 충분히 스며들었을 거다.’
이현욱은 이번 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직감했다.
"와…… 저 넝쿨 덩어리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 같아요.”
꾸—륵— 꾸—륵—
박준모의 말처럼, 마치 살충제를 끼얹은 벌레 떼처럼 이리저리 뒤엉킨 채 꿈틀거렸다.
"와…… 진짜로 제대로 먹혔네요. 이동을 멈추고 땅속 깊숙이 파고 들어가고 있어요.”
"네, 지금 당장 후퇴시키는 효과도 있고 장기적으로는 서서히 말라 죽을 겁니다.”
그것이 땅 안으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건 흡사, 도망가는 것처럼 보였고…….
와아아아——!
저 멀리, 야산 위의 레드홀 주민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들이 보기에도, 이현욱의 일격이 제대로 먹힌 것처럼 보일 터였다.
"허— 그런데 정말…… 이걸로 끝이에요? 저, 솔직히 아직 못 믿겠었어요.”
고진화가 믿기 어렵다는 듯 말했다.
"만약 또 다른 군집이 있다면 똑같이 처리하면 됩니다. 스왈로우는 대응 방법을 모르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대재앙이지만, 대응 방법을 알면 통제 가능한 현상입니다.”
그 말을 듣는 고진화는, 뭐라고 할까…… 의사에게 어떤 처방을 받는 기분이었다.
'……개 멋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여상민이었다.
자신이 부정하고 있던 남자, 이현욱…… 그를 직접 대면하니, 생각이 확 달라졌다.
‘그래, 그 잘난 서울의 구원자인 건 확실하다. 그런데 이게 F등급이라니, 그건…….'
그러다가 이현욱과 눈이 마주쳤다.
"......."
그런데 그는, 마치 여상민의 생각을 꿰뚫은 듯한 말을 했다.
"이걸 보니까 내가 F등급이라는 게 더 안 믿어지지, 안 그래?”
"아……."
솔직히 사실이었다. 방금 그 장면은 S등급이라고 해도 믿을 만했다.
그가 의심했던 것—이현욱이 정부가 숨진 S등급이라는 게 훨씬 신빙성 있었다.
"여상민, 이런 던전에 처박혀서 냉소만 품지 말고 날 따라와라.”
"대체 왜 저를…… 그리고 그, 그럼 뭐가...... 달라지나요?”
"적어도 네 안일한 패배주의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있겠지.”
쓰디쓴 말이었지만 여상민은 화가 나지 않았다.
“……가능성은, 시도해야지 확인할 수 있는 거다.”
그 말에, 여상민은 알 수 없는 울분을 느꼈다.
하지만, 어떤 감상에 빠질 틈은 없었다.
쿠구구구구——!
어디선가 굉음이 울렸기 때문이다.
쿠구구구구——!
마치 지진 같은, 땅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프리드웬, 드높은 상공에서 내려다보자, 그 진원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방금까지 스왈로우의 촉수로 뒤덮여 있던 어느 돌산,
그 한 부분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다.
이내 그곳에 거대한 동굴 입구가 하나 나타났다.
그리고…….
- (!) 퀘스트의 징조를 발견했습니다.
퀘스트 ‘도착’이 아닌 ‘징조’ 발견,
이는 퀘스트를 얻을 수 있는 힌트를 발견했다는 뜻이었다.
‘퀘스트라…… 스왈로우를 격퇴하는 게 발동 트리거였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이 스왈로우 등장 역시 특별한 이벤트였다.
즉, 그것을 퇴치했으니 어떤 ‘보상’이 등장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아다만트 광산, 그것과 연관이 있겠지…….'
본래 세계에서는 태산 길드가 스왈로우를 처치한 이후, 히든 스테이지인 아다만트 광산이 발견되었다. 그렇다는 건 두 사건이 아주 밀접한 연관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었다.
‘좋아, 이득이 저절로 굴러간다.’
이현욱은 프리드웬의 기수를 그곳으로 돌렸다.
"저기, 저기로 내려앉는다.”
그의 지시에 따라 프리드웬이 그 동굴 입구에 착륙했다.
- 히든 스테이지 ‘아다만트 광산’에 입장하셨습니다.
“……어?”
"히든 스테이지, 이게 뭐죠?”
그리고 히든 스테이지 입구, 그곳에서 이상한 걸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거, 게이트 아닙니까?”
보라색의 일렁거림, 그래 분명 게이트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게이트 안의 게이트라니…….
그런 현상이 존재한다는 건, 이들 중 그 누구도 들은 적이 없었기에, 모두가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데 이현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조금 달라. 저건…… 균열이다.”
균열은 게이트와 일시적인 차원의 문, 일종의 포탈이었다.
다만, 텔레포트가 같은 차원 속 지역 간의 문이라면,
균열 전혀 다른 차원 간의 통로였다.
그건 이현욱 역시 몇 번 보지 못한, 아주 드문 증상이었다.
“……모두 조심하세요. 뭐가 나올지—”
훙——!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말로 무언가 튀어나왔다.
그건, 갈색의 거대한 고철 덩어리였다.
쿵—광—쿵—쿵—쿵——!
그것은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와 돌산의 이곳저곳에 부딪히더니, 곧 어느 돌무더기에 처박혔다.
쿠구구구……
그건, 웬 비공정이었다.
잠시 후, 그것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철컥—컥—컥—
그러나 직전의 충돌로 문짝이 우그러진 탓인지, 열리다가 말았다.
그리고 그 문틈으로, 웬 머리통이 하나가 튀어나왔다.
"......끅! 뭘 보고만 있어! 날 죽일 놈들이 아니라면, 좀 도와줘!"
그것은 큼직한 주먹코에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난쟁이였다.
그리고 이현욱의 눈에는 그것이 정체가, 한 줄의 메시지로 표시되었다.
- 드워프 방랑자 (LV. 49)
“……젠장, 인간들은 원래 이렇게 인정머리가 없나? 끙!”
그리고…….
- (!)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시작이군.’
아무래도 슬슬, 라퓨타를 굴릴 부품들이 쏟아져 나올 시간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