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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을 먹는 플레이어-83화 (83/221)

83화.  < 인천, 마계, 암시장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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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Superhero), 오늘날, 그런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이 심심찮게 존재한다.

그건, 플레이어 중에서도 특출한 실력을 갖춘 최상위 ‘랭커’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들은 마치 신화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영웅처럼, 혈혈단신으로 비범한 일을 해낸다.

하지만 그런 부류에 대해, 고준철은 그리 고평가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역적인 위기를 막을지언정 세상의 질서를 주도할 수는 없다.’

가령 대한민국의 우성문, 미국의 고든 프라이스, 일본의 아이시마 아키이 등,

겉으로 드러나는 활약을 하지 않더라도 한 국가를 쥐락펴락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이 세상의 중심축을 이루는 ‘거물’이었다.

그들, 거물들이 판을 깔고 규칙을 만들며 경기를 연다.

영웅들은 그저…… 그 위에서 ‘말’로 활약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이 자는…….'

고준철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구원자로 알려진 F등급의 ‘통제’ 계열 플레이어,

그는 분명 ‘영웅’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업적을 세웠다.

그렇기에 고준철은 그가 우성문이 새로 장만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와 몇 마디를 나눈 뒤로 그 인식이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정부 비밀 기관의 요원, 후긴의 운용자, 라퓨타의 관리자, S등급 플레이어까지.......

그 무지막지한 이름들이 줄줄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벌써 대한민국 정부 안에서 상당한 입지를 쌓아놓은 상태다.’

이 젊은 남자가 ‘거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고준철은 직감할 수 있었다.

‘어쩌면 우성문을 잇는, 이 나라의 핵심축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과한 게 아니었다. 우성문이 언제까지 정부의 핵심축으로 군림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플레이어계는 그의 후임이 누가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이런 인재가 등장한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고준철의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우리 마을을 미래를 위해서, 이 남자를 놓치면 안 된다.’

고준철은 고개를 들어 올려, 이현욱의 눈을 마주 보았다.

"이현욱 자네의 그 수많은 별명 속에, 레드홀의 구원자— 한 줄을 넣어줄 수 있겠나?”

고준철은 그렇게 말하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예, 물론입니다.”

이현욱은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는 표정을 숨겼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래, 됐다. 역시 성공적인 대화였다.’

이 남자, 고준철은 지하 세계에서 엄청난 입지를 쌓은 인물이었다.

'그러면서도 정도를 아는, 지하 세계의 조율자이기도 하다.’

즉, 여러모로 엄청난 이점을 가져다줄 동맹이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이 던전에 있는 <히든 스테이지> 아다만트 광산, 그걸 독점할 기회도 생길 거다.’

전설의 금속 중 하나인 ‘아다만트’는 아주 귀하다.

엘리트 몬스터를 수십 마리 잡아도 고작해야 한두 개 떨어질 정도였다.

그렇기에 10g 당 130-150만 원을 호가한다.

그런데 그게 잠들어 있는 ‘광산’이라면, 그 가치가 얼마일지 추산이 안 될 정도였다.

‘그렇게 되면, 아다만트의 비를 내릴 수 있을 테고…….'

같은 무게일지라도 그 성질에 따라서 ‘강철비’의 위력을 달라진다.

아무튼, 그건 이 일을 처리한 뒤에 신경 쓸 문제였다.

"그런데…… 필요한 게 좀 있습니다. 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 뭐든 말하게 여기에서 구하기 힘든 건 없다네!”

고준철, 그는 인천 암시장의 거물인 만큼 거의 모든 걸 구할 수 있었다.

"아, 그런데 그 전에, 사람이 한 명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현욱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첫 번째 목적을 달성할 생각이었다.

‘좋아, 이득이 넝쿨째 굴러들어온다.’

***

레드홀 마을, 이곳의 인구는 정확히 1,345명이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여러 가지 이유로 현실 세계를 떠나올 수밖에 없는 이들이었다.

흑마법사 탄압, 억울한 누명, 거대 길드의 사주를 받은 청부 플레이어 암살자에게 쫓기는 등, 이곳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쩔 수 없이 밀려난 이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터전이었다.

그렇기에 외부인이 이곳에 들어왔다는 소식은 이들에게는 아주 예민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고, 마을의 분위기는 차갑게 식은 채 이방인의 존재를 예의주시하는 중이었다.

특히나, 젊은 남자들은 전투를 준비하듯 마을 광장의 한쪽 구석에 모여 있었다.

"젠장, 그 개자식! 무슨 속셈인지 몰라도 어딘가 구리단 말이야!”

그중에서는 이현욱에게 사로잡혔던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의 목은 이현욱이 채웠던 금속 구속구 때문인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니, 검은 넝쿨을 제거할 방법을 안다니, 그게 말이 돼?”

그들은 그 이방인이 고진화의 기마대와 마주하는 순간 했던 말을 기억했다.

"그 사람이 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그래서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데?”

"그건 몰라, 아마도 지금 촌장님이랑 그 얘기를 하는 중인 것 같은데……."

이들은 지난 8개월간, 그 검은 넝쿨과 전쟁을 벌였지만, 그 어떤 성과도 없었다.

그런데 웬 놈이 굴러들어와서 그 난제를 풀겠다고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수밖에…….

그런데, 그 이방인의 정체가 전해지는 순간, 모두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 뭐? 그 사람이…… 이현욱, 서울의 구원자라니—! 그게 진짜야?”

"헉— 헉— 진짜야! 내가 방금, 촌장님 댁 갔다가 봤다니까! 확실해!”

"와, 미친……."

이들은 때때로 게이트 밖, 암시장을 드나들기에 외부의 소식을 간헐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최근에 가장 굵직한 소식은 역시나 ‘4차 웨이브’였다.

즉, 이현욱이라는 이름을 모를 수가 없었다.

“와......."

그리고 그들은 알게 모르게, 그 영웅담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진 적이 있었다.

저 지상 세계에서 일어난 지옥 같은 일을 막아낸 언더독 영웅의 활약상…….

그렇기에 차가웠던 분위기가 일순간 묘하게 풀어지기 시작했다.

"아! 야! 그러고 보니, 그 사람 우리한테 쓴 그 능력, 금속 조종 능력 아니냐?”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그게 그 능력이었구나?”

심지어 이현욱에게 당했던 이들도 새삼스레 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아, 권총 9개를 눈 깜짝할 사이에 분해했다가 조립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와…… 지금 생각해보니까, 와 씨, 개 멋있는 장면이었잖아?”

이렇듯 검붉게 변한 목덜미의 고통을 잊고 감탄을 뱉어낼 정도로,

세간에 퍼져 있는 '서울의 구원자’의 이미지는 강렬했다.

그들의 생각은 어느새 이현욱, 그 남자가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때, 구석진 곳에 서 있던 두 명의 젊은 남자가 동시에 콧방귀를 뀌었다.

"하, 지랄…… 영웅은 무슨, 그 새끼 그거 사기꾼일 거다.”

"그래, 그딴 거에 낚이는 건 호구라니까?”

그렇게 악담을 주고받는 이들은 이상하게도 너무나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것도 쌍둥이가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같은 모습이었다.

“……야, 여상민, 너 왜 갑자기 흥분하고 그러냐?”

여상민, 그렇게 불린 이는 21살의 ‘남자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야, 그건 너희보다 내가 잘 알아. 내가 바로 F등급이잖아.”

"맞아 이 새끼들아, 너희가 F등급에 대해서 나보다 잘 알아?”

두 명의 여상민이 차례차례 역설하자, 주변인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새끼, 또 시작이네…… F등급 이야기만 나오면 눈 까뒤집는 거……."

"쯧쯧, 그것도 병이다, 인마! 그렇게 이 악물고 부정해서 뭐 할 거냐?”

그들의 반응을 볼 때 여상민의 이런 태도가 처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F등급 영웅 이현욱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런 식으로 반응했던 것이었다.

"두고 봐라, 이현욱인지 뭔지, 그 자식이 구라라는 거 곧 들통날 거다!”

여상민‘들’은 씩씩거리며 몸을 돌렸다.

"저 새끼는, 머리도 좋은 놈이 하여튼, 감정적이어서......."

"자기가 F등급이라는 게 얼마나 서러우면 저러겠냐?"

***

여상민은 비 성장 특성…… F등급의 플레이어였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분신’을 1개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특이한 능력으로 해낼 수 있는 건…….

‘농사지을 때 삽질을 2배로 잘할 수 있다는 거 빼곤 없지, 쌍…….'

그런데 언젠가부터 F등급 영웅에 관한 이야기가 온 세상을 채웠다.

4차 웨이브에서 서울을 지켜낸 영웅, 이현욱…….

여상민은 자신과 같은 F등급이 해냈다는 이야기가 딱히 달갑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자신과 같은 처지인 줄 알았던 친구가 갑자기 잘나간다고 할 때,

그 사실이 기쁘기보다 부정하고 싶은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뭐? F등급이 서울을 구하고, 이제는 우리까지 구하겠다고 와우 지랄하고 있네……..'

그가 씩씩거리며 집에 도착했을 때, 14살짜리 남동생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형! 그거 들었어? 오늘 마을 찾아온 남자 정체가—”

"—알아!”

"어, 뭐야, 왜 짜증 내?”

여상민의 날카로운 대답에 동생, 여상준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야!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현혹되지 마! F등급이 서울을 구하긴 어떻게 구해?”

"아니, 그, 업적을 달성했다고 하던—”

"—아무리 그래도 웨이브를 막아내? 그거 다, 나라에서 치는 사기라고 말했지, 내가!”

설사 그가 정말로 대활약을 하더라도 F등급이 아니라 S등급일 것이었다. 국가나 길드가 S등급의 존재를, 한동안 숨기는 건 왕왕 있는 일이니 화려한 데뷔식을 치러준 걸 거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아니, 형! 아빠가 그랬잖아, 플레이어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아빠 친구 중에서 대장장이인데, 대검 들고 오크들 해치웠던 분도 계셨다니까, 뭔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

그 말에 여상민의 인상이 한층 더 심하게 찌푸려졌다.

‘아빠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입 버릇처럼 해댔다.’

그의 아버지는 지상에서 쫓겨나서 이런 곳으로 들어왔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고,

언제나 플레이어의 힘에 대해서 예찬하며 그들을 영웅이라고 치켜세우곤 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지상에 있을 때 진짜 영웅들, S등급 플레이어를 모셨기 때문이었다.

‘참나,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건 일종의 광신이나 다름없었어!’

어린 시절, 그런 아버지가 말해 주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라며,

여상민 역시 플레이어라는 이들을 막연하게, 멋진 영웅처럼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여상민이 플레이어로 각성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아주 기뻐했다.

그런데, 그가 처음으로 사냥에 성공했을 때,

그러나 ‘경험치’를 얻지 않았을 때…….

‘그때, 아빠의 딱딱한 표정.......'

그는 그 순간의 그 장면을 잊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아들이 F등급이라는 사실이 싫었을 것이었다.

"야, 여상준, 그거 알아? 아빠는 내가 F등급이라는 게 밝혀진 이후, 한 번도 그 이야기 안 하셨던 거? F등급은, 자기 아들은 가능성이라는 게 없다는 걸 깨달으신 거지......."

"......."

"그리고 아빠도 영 가능성이 없는 플레이어서 돌아오지 못하신 거 아니겠냐?"

"아니, 형! 아무리 짜증이 나도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잖아—!”

……어릴 적 숱하게 들었던 플레이어의 전설은, 전부 다 거짓이었다.

그렇게 가능성이라는 건,

결단코 모두에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이후,

그는 세상을 모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쿵—쿵—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야! 여상민! 집에 있나?”

그를 찾아온 건 마을의 중역 중 한 명으로, 촌장의 최측근인 오달성이었다.

"여상민, 촌장님께서 지금 바로 널 찾으신다.”

“……예? 왜요? 저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

촌장, 고준철이 직접 호출하는 건 훈계할 때 빼고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손님분이 찾는다.”

"네? 손님이라면……."

"아직 소식 못 들었냐? 이현욱, 서울의 구원자, 그 사람이 우리 마을에 와 있다.”

"......."

"그런데 흠, 그런 대단한 사람이 대체 왜 널 필요로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

쩌저저저——

기괴한 소리와 함께 저 멀리에서 검은 꿈틀거림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넝쿨 군락은 땅속을 헤집고 뻗어 나가며 땅 안의 수분을 모조리 빨아들인다.

그리고 기어코 땅 위로 솟아올라 넘실거리며 그 위에 자라난 모든 것들을 짓이긴다.

그렇게, 언젠가 이 땅 전체를 뒤덮고 말 것이었다.

"......젠장, 저것들이 단 일주일 만에 서쪽 숲을 잡아먹었어요.”

고진화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스왈로우가 일으킨 모래 먼지가 자욱하게 껴 있을 뿐이었다.

"……꽤 큰 숲이었죠.”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곳은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녹음이 우거졌던 지형이었다.

"그리고 이제…… 여기 중앙 저수지를 향해 오고 있는 거예요.”

중앙 저수지, 이 거대한 물웅덩이는 레드홀 마을에 마지막으로 남은 수원(水源)이었다.

"하…… 여기마저 먹히면, 우리는 진짜로 이 땅을 떠나야 할 거예요. 물이야 밖에서 사다 먹을 수는 있지만, 땅은 완전히 죽을 테니, 결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겠죠.”

생태계의 극단적인 변화…… 그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마지막 저수지는 무사할 겁니다. 그리고 곧 이 땅도 복구될 겁니다.”

“……네, 믿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부탁했던 물건들은 오고 있습니까?”

"음…… 아! 저기 마침 오네요.”

간이도로를 따라서 짐 마차 5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런데 ‘붉은 달빛 약초’는 도대체 어디에 쓰는 거죠?”

이현욱이 요청한 붉은 달빛 약초, 그건 초원 지형의 던전에서 피어나는 흔한, 어쩌면 쓸모없는 약초였다. 약초치고는 체력 회복 효과는 없고 지열 효과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스왈로우’라는 대재앙을 막아줄 열쇠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몰랐다.

"이게 바로 저것들을 퇴치할 일종의 제초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제초제? 저, 정말이에요? 이렇게 흔해 빠진 풀이요?”

붉은 달빛 약초를 한 움큼 움켜쥐며, 고진화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강한 불이라도 흔해 빠진 물을 끼얹어 끄는 법, 절대적인 상성이 있는 거죠.”

으레, 자연의 모든 존재에는 ‘성질(性質)’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리하여 서로 조화로운 것이 있는가 하면, 끔찍한 상극인 것들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러한 법칙은 이계의 생태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붉은 달빛 약초가 가진 지혈 효과의 비결은 수분의 흐름을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성분을 흡수한 스왈로우는 수 분 내에 고사한다는 게 밝혀진다.

그 정보를 토대로 아마존을 뒤덮은 스왈로우를 제거하기 위한 ‘제초제’ 개발에 착수,

그렇게, 단 3달 만에 스왈로우 사태를 종식하는 데 성공하는 것을 이현욱은 지켜봤다.

‘물론 지금 당장은 그러한 성분을 방출하는 담긴 오브젝트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임시방편을 이용한다면, 어떻게든 저것들을 뿌리 뽑을 수 있었다.

그때, 한 대의 마차에서 익숙한 얼굴이 내렸다.

‘그리고 여상민, 드디어 찾았다.’

그가 바로 초대형 비공정 ‘게이트센티넬’의 핵심 승무원, 일등항해사였던 인물이었다.

‘그는 훗날 수십 개의 분신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모든 분신이 감각을 공유한다.’

즉, 여상민이라는 한 명의 승무원을 확보하여 제대로 교육하는 것만으로도 수십 명의 승무원을 얻는 것과 같으며, 함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을 일시에 파악•대응할 수 있었다.

'그가 전성기에 보여준 능률은 일종의 슈퍼컴퓨터나 다름없었다.’

그 거대한 함선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복잡한 의사소통 없이, 즉시 처리해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어딘가 뚱한 표정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꽤 영특한 인물이었는데…… 하긴, 이때는 그때와 다르겠지…….'

그는 이현욱을 곁눈질하며 고진화에게 다가와다.

“……누나, 절 찾으셨다고 들었는데요.”

"어, 왔어? 내가 아니라 이분이 찾으셨다.”

이현욱이 여상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다. 나는 이현욱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상민은 이현욱이 내민 손을 맞잡지 않았다.

"......저는 여상민인데요. 그런데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그쪽, F등급, 아니죠?”

난데없는 질문, 왠지 모르게 다분히 공격적인 언행이었다.

"야! 너 이 자식, 왜 그래?”

“……아, 괜찮습니다.”

이현욱은 여상민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여상민, 너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불렀다.”

"예? 아니, 대체 저를 어떻게 알고요?”

이현욱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야…… 그리고 제가 이런 일에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글쎄,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네 가능성을 높이 사서 부른 거야."

아니, 가능성이라니…… 여상민은 그 대목에서 인상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그게 제일 싫어하는 말을, 껄끄러운 사람이 내뱉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F등급이 무슨 가능성이 있냐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군?"

"......."

그걸 어떻게 안 것인지 정곡을 찔렸지만. 여상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해해, 나도 꽤 오랫동안, 너보다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뭐가 됐든, 저기로 걸어가자고 하면 저는 못 갑니다.”

그는 저 멀리, 꿈틀거리는 검은 넝쿨의 파도를 바라보며 그렇게 선언했다.

저것들의 근처로 다가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바보 같은 자살행위였다.

그때, 이현욱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걱정하지 마. 걸어서 가진 않을 거야.”

"그럼, 뭐, 날아가기라도 할 겁니까?”

"그래 , 정확히 꿰뚫어 봤다.”

“……예?”

여상민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그딴 농담을 저렇게 진지한 얼굴로 하는 거야?’

그런데 그때, 이현욱의 오른손에서 웬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시이이이——

그리고, 그의 손에 백색의 방패 하나가 들려있었다.

“……방패?”

그런데 이현욱은 그 방패를 저 멀리 내던졌다.

"여상민…… 나도 그랬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고 들리는 것만으로 판단하는군?”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F등급이라는, 남들이 멋대로 정한 규칙에 갇혀 있는 거다.”

이게 또 무슨 꼰대 같은 조언인가 싶은 그 순간…….

우우우우——!

그 작은 백색의 방패가, 거대한 백색의 금속 덩어리—비공정으로 변했다.

그 장면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 여상민의 어깨를, 이현욱이 움켜쥐었다.

"나랑 같이 가면, 네 가능성이 뭔지 알려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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