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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을 먹는 플레이어-81화 (81/221)

81화.  < 인천, 마계, 암시장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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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임박했거나 전투 중일 때, 인간의 신경은 오로지 적이 들고 있는 무기에 쏠리기 마련이다. 가장 위협이 될만한 것을 첨예하게 경계하는 것— 그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내 초, 총이 왜 저절로……."

철컥—철컥—

즉, 이처럼 자신의 무기가 자신을 노리는 순간은 완벽한 ‘예외의 경우’였다.

그렇기에 일시적으로 정신이 멍해지고 판단이 흐려졌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꽈드드드——!

허공에 떠 있는 권총들이 마치 찰흙처럼 뭉개지고 늘어나는 기현상이 시작되었다.

"—컥!”

그렇게 만들어진 ‘금속 밧줄’이 날아들어서 강도들의 목덜미에 들러붙더니 마치 ‘구속구’처럼 채워졌고 놈들은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올려 그것을 뜯어내려고 했는데…….

"아니, 움직이지 마.”

이현욱이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떠 있는 총기 부품 하나를 가리켰다.

쩌—엉——!

그 순간, 그것이 허공에서 산산이 조각나며 천장과 벽을 긁고 지나갔다.

꿀꺽—

그 장면을 목격하자 강도들은 석고상이 된 듯,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너희들 목덜미에 채운 그 개목걸이에 마나를 부여하면 어떻게 될지, 느낌이 오지?”

"그러니까 너희는, 지금부터 착실한 안내견이 되는 거다.”

이현욱이 한 걸음 다가가자 놈들은 두 걸음 물러섰다. 이미 완전히 압도당한 것이었다.

"우, 우리한테 원하는 게 도대체 뭐야!”

9명의 강도 중 리더로 보이는 자가 그렇게 물었다. 자신들이 먼저 습격해놓고 원하는 게 뭐냐고 따진다니…… 이현욱은 그 상황이 퍽 어이없었지만, 원하는 게 있는 건 사실이었다.

"사람을 찾는 걸, 너희가 도와줬으면 한다.”

"뭐? 그게 누, 누군데?”

이현욱의 목적은 라퓨타 거대한 시설의 최고의 부품이 되어 줄 플레이어였다. 그러나 그는 현재는 F등급이라는 오명 아래에 저 아래 깊은 곳에서 좋지 못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사는 곳은.......

"나는 <레드홀>의 주인을 만나러 왔다. 지금부터 게이트 안 마을로 간다."

"뭐? 게, 게이트 안의 마을이라니, 그게 무슨……."

그 말에, 놈들은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강도의 리더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 상태였다.

그저 어리바리한 행인을 상대로 강도질을 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녀석들에게 순식간에 제압당한 것도 어이가 없는데…….

‘이 자식, 우리에 관해서 이미 알고 있잖아?’

그렇다고 해서 이 두 남자가 의도적으로 접근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분명히 자신들이 먼저 이들을 노리고 접근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정말 단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뭐? 어디? 우, 우리는 그, 그런 곳은 전혀 모른다.”

어설프게 시치미를 떼는 모습에 이현욱은 코웃음을 쳤다.

"모르는 척할 상황이 아니라는 걸, 이미 눈치챌 때가 되지 않았나?”

"......."

“나는 여기 지하에 ‘방치형 게이트’가 있고 그 안에 마을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게이트란, 몬스터들이 사는 ‘던전’이라는 세계와 이어지는 문이다.

그리고 공략을 끝낸 뒤 ‘월드 스톤’을 파괴하면 게이트가 폐쇄된다.

그런데 만약…… 그걸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게이트가 닫히지 않고 일대에 침식 현상이 일어난다.’

하지만 월드 스톤이 직접 지구의 땅에 작용하는 ‘웨이브’만큼 빠르거나 광범위하지는 않으며 그저 게이트 주변부 몇백 미터를 게이트 내부 환경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에 그친다.

'그다음은…… 별다른 게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게이트를 폐쇄하지 않고 그 내부의 땅을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떻게 보면 주인 없는 토지를 대량으로 얻는 셈인 만큼,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국제 플레이어 연맹>에서 불법 행위로 합의하고 규제하고 있다.’

아무래도 게이트를 장기간 방치한다는 게 큰 위험요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수의 국가가 비밀리에 방치형 게이트를 가지고 있었으며,

큰 규모의 테러 집단은 자신들의 은거지나 비밀 차고로 사용하기도 했다.

"솔직히 그게 그렇게 막중한 비밀은 아닐 텐데, 이미 세간에 소문이 퍼져있잖아?”

"그건…… 네가 말한 것처럼 그냥 소문일 뿐이야!”

이현욱은 끝까지 버티는 놈들의 목덜미의 구속구 조여버렸다.

"아니, 이미 알고 왔으니까 잔머리 굴리지 말고, 빨리 길 안내나 해.”

“컥! 큭, 젠장…… 아, 알았어!”

놈들은 결국 앞장서서 철제 계단을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층, 한 층, 깊어질 때마다 인파가 점점 줄어들더니,

지하 5층에 이르러서는 인적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울리는, 적막한 통로를 따라서 한참을 걸어야 했다.

그러는 동안 강도들은 은밀하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인사이트 렌즈>를 얻은 이현욱의 눈에는 그 작은 움직임이 전부 포착되었다.

"……자, 여기다.”

강도들의 리더가 그러게 말하며 웬 파이프에 연결된 레버로 손을 뻗었고,

그걸 돌리자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리며 뒤쪽 벽이 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철저하게 숨겨져 있는 벽 너머의 비밀 공간, 그곳에 보라색의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2명의 경비원이 서 있었는데 자동 소총을 쥐고 있었다.

“아니, 형님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그들은 CCTV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모양인지 고함을 치며 총구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끽— 소리와 함께 총구가 직각으로 휘어버렸다.

"어, 어? 뭐, 뭐야!”

그러자 그들은 서둘러 다른 무기를 꺼내 들었는데…….

"아, 안 돼! 괜한 짓 하지 마! 지금 우리 목에 포, 폭탄 같은 게 있다!”

강도의 리더가 그렇게 외쳤고 경비들은 결국 무기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무려 11년째 방치된 게이트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 자…… 여기 이 게이트가 당신이 찾는 우리의…… 마을이다.”

우리의 마을,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말에는 어딘가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권총을 들이밀며 덮칠 때는 한껏 양아치 같더니 갑자기 한 명의 가장이 된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뭐, 어쩌면 가장이 맞긴 맞을 거다.’

레드홀 조직, 이들은 분명 불법적인 방법을 통하여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다.

세상이 게임으로 변한 뒤로 수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중에는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를 탄압한 일도 비일비재했다.

특히나 초창기 플레이어계는 지금처럼 안정되지 않은, 다분히 거친 세계였다.

난데없이 생겨 난 플레이어라는 ‘미지의 힘’을 쥐기 위한 패권 다툼이 번번이 일어났다.

'나도 그때는 너무 어려서 기억이 안 나지만, 사실상 조폭들이나 다름없었다.’

그 격변의 시기에서 밀려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음지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즉, 어떻게 보면 레드홀 조직은 세력 싸움에서 밀려난 비운의 인물들인 셈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무법적인 집단이 된 건 사실이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현욱은 게이트에 들어가기에 앞서, 박준모에게 다가가서 속삭였다.

"박준모, 네가 먼저 들어간다. 그리고 게이트에 들어갈 때 주의사항 기억하지?”

“……아, 예!”

박준모는 자신이 첫 공략 작전인 청담 레드 게이트를 입장할 때, 항상 머리 위를 경계하라는 말을 기억했다. 그렇기에 그는 숨을 들이쉬며 모든 감각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자, 게이트로, 너희 마을로 입장할 거다. 만약 허튼수작 부리면……”

딱— 이현욱이 손가락을 튕기자 11명이 일제히 움찔했다.

"어떻게 될지, 알고 있겠지?”

하지만 이놈들은 반드시 그 허튼수작이란 걸 부릴 것이란 것을 이현욱은 잘 알았다.

이내 하나둘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고 이현욱은 가장 마지막에 입장했다.

후우우우——

낯선 세계에 접어들자 가장 먼저 반겨오는 건 거친 모래바람이었다.

이곳은 미국의 애리조나 사막을 보는 것 같은 울퉁불퉁한 황야지대였다.

“음…… 그다지 좋은 동네는 아니군?”

이현욱의 짧은 감상에 강도들의 리더가 코웃음을 쳤다.

"아니, 우리 같은 아웃사이더들한테는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 담긴 말이었다.

‘하긴, 이런 곳에서 자랐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가 없을 거다.’

이 남자의 나이는 삼십 대 초반 정도로, 아마도 십 대 때 이곳으로 들어왔을 것이었다.

자신들을 이런 구석진 곳으로 밀어낸 현재의 거대 길드들과,

그런 상황 속에서 그 어떤 보호도 해주지 못한 정부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왔을 터였다.

"그래 그럼, 그 좋은 마을로 안내 좀 해주겠어?”

그렇게 황량한 협곡을 따라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래, 슬슬 어떤 수작을 시작하는군?’

이현욱은 느낄 수 있었다. 강도들이 급격하게 눈빛 교환이 많아졌다는 것을…….

그렇기에 그는 일찌감치 온몸에 강체화를 걸고 마나 실드를 둘렀다.

그리고 바로 그때, 강도 중 한 명이 웬 돌멩이를 강하게 짓밟았다.

철컥—!

그러자 기계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양쪽 바위가 열리며 웬 관 같은 것들이 튀어나왔다.

그 돌멩이는 무언가를 작동시키는 ‘발판’이었던 것이었다.

“—됐다!”

어느 강도의 쾌재, 그와 동시에 그 관에서부터 시퍼런 빛줄기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파지지지——!

그건, 전격 마법이 담겨 있는 함정이었다.

자신들의 머리 위로 그것을 가동—이현욱과 함께 전류에 휩쓸릴 작정이었다.

그리하여 죄다 기절하면 그들의 동료가 와서 이 구속구를 풀어줄 테니…….

그러나.......

"으야아——!”

파—자—자—자—자——

박준모가 눈동자를 돌리자 전류 다발이 한 대로 공처럼 뭉쳤고,

"끄으으——!"

그가 양팔을 들어 올리자 그 전기 구체가 저 멀리, 하늘로 쏘아져서 사라져버렸다.

"후......."

"박준모, 잘했다.”

"예!"

이곳에 이런 함정이 있었다는 것을 이현욱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게 꽤 많았다. 아무리 마나 실드가 있더라도 거듭되다 보면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박준모라는 확실한 대응책이 있었기에 자신 있게 들어갈 수 있었다.

한편, 그 전기 함정이 모든 걸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놈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들은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로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한 말을 잊은 것 같은데……."

이현욱은 목소리를 내리깔며 강도들을 되돌아보았다.

“칵—!”

그들의 목덜미에 채워진 구속구가 우그러지며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큭, 컥—"

그때였다.

구—구—구—구——!

정면, 언덕 너머에서부터 웬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건 흡사.......

"이거, 말발굽 소리…… 아닙니까?”

박준모의 말이 멎기도 전에 언덕 너머로 십여 마리의 말들, 그러니까 기마대가 등장했다.

던전 준마, 흔히 그렇게 뭉뚱그려서 부르는, 던전 안에서 자생하는 거대한 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한 명의 여자가 대검을 뽑아 들며 고함쳤다.

“거기, 멈춰—!”

그 여자, 이현욱이 아는 얼굴이었다.

이곳, 레드홀의 보스인 고준철의 첫째 딸, 고진화였다.

‘저 여자는 말이 통할만 한 상대다.’

이현욱은 양손을 들어 올려 싸울 의사가 없음을 표현했다.

그러자 고진화가 고삐를 잡아당기며 말의 속도를 늦췄다.

"젠장! 너희는 누군데 여기에 들어온 거냐?”

"미안하지만, 침입한 건 아니고 볼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뭐? 그게 뭔 개소리야!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그렇게 막 들어와!”

이현욱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진정하고 말 좀 들어요. 총부리를 먼저 들이민 건 당신들이니까요.”

“……뭐? 총부리?”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이현욱에게 잡혀 있는—아마도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설마 또 강도질을…… 하— 그래, 어디, 말해 봐.”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돌려서 던전의 풍경을 쭉 살펴보았다.

"지금 이 던전에 퍼지고 있는 게 있죠?”

그 말에 고진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나무를 잡아 먹는 검은 넝쿨 말입니다.”

"그, 그걸 어떻게……."

"그거, 내가 제거할 수 있어요.”

그 말에 고진화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 무렵, 이 지역을 좀 먹고 있는 어떤 ‘이벤트’가 있었다.

‘플레이어가 던전을 지배할 경우 나타나는 일종의 자정 작용이다.’

그리하여 이 던전에 사는 천여 명의 사람들은 수년간 살아온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걸 해결해준 건 하필이면…… 태산 길드였다.’

그리하여 이 지하 조직은 태산 길드의 수족으로 부려지게 된다.

하지만 오늘, 그 모든 것들이 바뀔 예정이었다.

‘지하 경제의 큰 축인 이들을, 내 손에 넣는다.’

이현욱은 이 땅을 빌런에 대응하는 최후의 보루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를 위해서는 모든 면면을 장악할 필요성이 있었고 이곳도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던전 안에는 ‘히든 스테이지’가 하나 있었다.

‘그건, 아직 이 안에 사는 사람들도 모를 거다.’

그건, 전설의 금속이 쏟아져 나오는 아다만트 광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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