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 히든 스테이지, 유적 탐사-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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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는 한때 중국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였다.
무려 2,400만여 명이 살아가던 인류 최대의 인구 밀집 지역이자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가 가득한 거대한 도시…… 그러나 그곳은 지금, 블랙 오크들의 왕국으로 변해 있었다.
3차 웨이브를 막아내지 못하고 끝내 침식—이계화(異界化)된 것이었다.
그 결과 온난 습윤한 기후에서 건조한 스텝 기후로 바뀌는, 지리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상 변화가 일어났다. 다만,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몽골 사막 같은 환경은 절대 아니었다.
코끼리만 한 크기의 쥐나 물소만 한 크기의 거미가 출현하는 야수의 땅이자, 온갖 독초가 갈대 밭처럼 자라며 시시때때로 벼락이 내리치는 불가해의 땅이었다.
침식 이후, 중국 정부가 수차례 수복을 시도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는 사실상 손을 놓고 그저 놈들이 상하이 밖으로 밀고 나오는 순간을 대비하고 있을 뿐…….
이제는 그 기이한 지역을 월드 보스 몬스터, 블랙 오크의 국왕 스토녹스가 지배한다.
지금, 그곳을 향해 2대의 차가 달려가고 있었다.
우—웅——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59과 요원들이 탄 차였다. 이들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 부서로써, 주요 임무는 상하이의 블랙 오크 왕국과의 교류, 즉 몬스터와의 외교였다.
"과장님, 전방으로 홍목장성(紅木長城)이 보입니다.”
운전자의 말에 조수석에 타고 있던 59과장, 왕평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구 상하이시를 둘러싸고 있는 높이 7m짜리의 붉은 목책이 들어왔다.
저게 바로 블랙 오크들이 세운 ‘왕국’의 국경이었다.
“씁— 모두 긴장해라, 저 너머에는 법이나 인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들이 탄 차가 접근하자 목책 한쪽에 나 있는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후…… 자, 이제부터 검은 악마들의 소굴로 진입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오크의 영역으로 들어갔고, 그 뒤로…….
"흠......."
웬 움막 안에서 무려 2시간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움막처럼 꾸며져 있지만, 이곳은 원래 스타벅스가 있던 60층 짜리 빌딩의 1층 로비였다. 새로운 지배자인 블랙 오크가 인간의 빌딩을 유목민의 움막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윽, 참으려고 했는데, 고린내가 장난 아닌데요, 여기……."
"젠장, 오크들은 일평생 씻지도 않는 겁니까?”
인간도 인종 별로 특유의 냄새가 있는 만큼, 타 종족의 냄새는 특히나 역하게 느껴졌다.
"이봐, 다들 입 다무는 게 좋을 거야. 머리통에 도끼 박히기 싫으면 말이야.”
그들의 리더 왕핑은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하지만 그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이 홍목장성 너머를 많이 방문한 만큼 오크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다짜고짜 머리 내리치기보다는 결투 신청을 할 테지만, 너희 수준이면 무조건 질 거다.”
그래도 이들 모두가 B등급 이상의 플레이어인바, 보스 몬스터도 아닌 일반 몬스터와 1대1 대결에서 질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여기, 홍목장성 남문을 지키는 오크는 B등급 전사 계열 플레이어와 맞먹는 수준이며 간혹가다가 A등급 이상도 섞여 있는 괴물들이라는 것을, 이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혹시나 시비가 붙더라도 난 모르는 척을 할 거고 피를 보더라도 소리소문없이 묻히고 말 거다. 애초에 우리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은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되는 거, 알지?”
한 국가 소속의 플레이어가 몬스터의 세계에 방문한다는 건 꽤 논란이 될만한 문제였다.
저벅— 저벅—
그때, 묵직한 발걸음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자,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닫았다.
이내 그들을 에둘러 싸고 있던 천막을 거치며 검은 괴인들이 나타났다.
2m 60cm의 거구,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두꺼운 근육질의 몸뚱이, 검은 피부에 거대한 엄니, 그리고 붉은 눈동자…….
전설 속에나 나올 법한 악귀의 모습이 그들의 눈앞에 재현된 듯했다.
꿀꺽—
온갖 끔찍한 몬스터와의 피 튀기는 전투를 수도 없이 치러온 플레이어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드는 걸 느꼈다.
텅——!
그 블랙 오크는 거대한 도끼를 내던지듯 바닥에 내려놓았다.
범상치 소재의 아이템, 그저 내려놓는 것만으로 대리석 바닥이 쩍, 하고 깨졌다.
그 블랙 오크—전사장(戰事將) 스막트의 붉은 눈동자가 왕핑에게 향했다.
"왕펑......."
거대한 울림통에서 흘러나오는 걸걸한 목소리,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두개골이 울리는 기분이었다.
"수막트 전사장, 오랜만입니다.”
"그래,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곧장 본론이다. 왕평은 이 족속들이 원체 잡담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예, 말씀하시지요.”
"너희 인간들은 무리와의 조우를 게임이라고 여기고 퀘스트를 받는다고 했던가?”
난데없는 물음이었다.
"예, 맞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비슷한 걸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예?”
“얼마 전, 우리의 주술사들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점지받았고 그를 왕께서 승인하셨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왕평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수막트라는 이름의 블랙 오크는 무언가를 책상 위로 내던졌다.
탕—
그건 웬 열쇠였다. 황동색의, 기하학 문양이 아주 정밀하게 조각된…….
왕펑은 그 열쇠를 집어 들었다.
- 고대 유산의 ‘보조 키’를 획득하셨습니다.
고대 유산, 이게 뭘 뜻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때, 수막트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라퓨타, 바다 너머 작은 땅에 하늘을 나는 섬이 나타났다는 걸, 알고 있겠지?"
“설마……."
"그건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다.”
그리고.......
- (!)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어, 퀘스트?’
[히든 퀘스트]
- 고대 문명 ‘추종자’의 길…….
당신은 특별한 기회로 고대 유산의 힌트와 접촉했습니다.
그 특별한 아이템이 당신을 오래된 영광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단, 당신은 고대 유산의 ‘계승자’에게 충성하여 ‘종사자’ 권한을 얻거나, 혹은 고대 유산의 ‘계승자’를 살해하여 ‘계승권’을 강탈하거나, 두 가지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것입니다.
*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맥락상 이건 서울 상공의 라퓨타, 그곳과 관련된 퀘스트가 분명했다.
‘이게 왜 여기서…… 아, 설마!’
수막트를 비롯한 블랙 오크는 지성을 가진 몬스터이므로 게임으로 따진다면 ‘NPC’라고 볼 수 있었다. 즉, 블랙 오크가 지금 자신에게 퀘스트를 주고 있다고, 왕펑은 해석했다.
"며칠 전, 드워프, 그렇게 불리는 난쟁이들이 우리 땅에 ‘문’을 열고 나타났다.”
드워프(Dwarf), 왕펑은 그 종족의 이름을 몇 차례 들은 적이 있었다.
‘정보부 쪽 보고에 따르면, 러시아와 호주에서 소규모 드워프 집단이 나타났다고 했다.’
이렇듯 하나둘씩 인간과 견줄 만한 지성을 지닌 몬스터들이 세계 곳곳에 출현하고 있었다.
“우리가 놈들을 죽였을 때 그 열쇠가 나왔고 그 순간 주술사들이 어떤 ‘점지’를 받았다. 오래전에 라퓨타의 건설자들이 강탈해간 우리 시조의 <전쟁 무구>를 되찾으리라는……."
즉, 라퓨타의 출현과 동시에 드워프 종족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블랙 오크들에게도 어떤 ‘목표’가 부여됨으로써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듯 동시다발적인, 특별한 현상들의 뒤엉킴이라면…….
‘……어떤, 대대적인 이벤트가 시작되고 있다는 뜻이다.’
왕펑은 이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 있다는 걸 직감했다.
"음, 그런데 수막트…… 이걸 저희한테 넘겨주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건 아주 간단하다. 라퓨타, 그곳을 함께 치는 거다.”
함께 친다니, 이게 갑자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왕펑은 놀란 마음을 애써 숨기며 수막트를 마주 보았다.
"......."
그의 붉은 눈동자는 그 어떤 미동도 없었다.
'적어도 농담일 리는 없다.’
이 잔혹한 종족은 농담 같은 건 할 줄 모르니……
"음…… 그게,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만……."
라퓨타는 한국 땅에 나타났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한국의 소유였다.
그곳을 친다는 건…… 달리 말할 것 없이 전쟁을 뜻했다.
"오, 그런가? 라퓨타, 그 섬을 가지고 싶지 않나?”
"......."
"싫을 리가 없지, 만약 그렇다고 말한다면 그건 새하얀 거짓말이야.”
수막트가 처음으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왕펑, 솔직해지자고 그 거대한 섬은 너희, 인간 모두가 가지고 싶어 하는 보물이잖나?”
"특히나, 세계 최고를 꿈꾸다가 몰락한 너희 왕국이라면, 더욱 침이 고일 텐데……."
왕펑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이 블랙 오크들은 아주 간악하다.’
세간에는 이들이 야만적이고 무식하다고 알려졌지만, 그건 거짓이었다.
아니, 처음에는 분명 그러했다. 그저 전투와 정복밖에 모르던 전투 종족…….
그러나 애당초 설계된 지능이 높은 만큼, 인류의 지식을 빠르게 흡수해나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놈들은, 우리와 수차례 싸우며 우리의 상황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
수막트의 말처럼 중국은 지금 몰락은 아니더라도 막다른 길에 올린 상태였다.
1차 웨이브가 캘리포니아를 휩쓴 직후 미국이 흔들리면서, 중국이 패권을 쥐었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서 2차 웨이브가 상하이에서 발생하여 중국이 통째로 흔들린다.
그런데 상하이를 잃은 건 시작에 불과했으니…….
‘우리는 상하이를 수복하기 위해서 무려 3년간 총력전을 펼쳤다. 하지만 대실패…….'
그 결과, 중국은 S등급 플레이어 4명, A등급 플레이어 25명, 그 외에도 2,355명의 플레이어 전력을 잃었으며 오히려 쑤저우 지역이 약탈당하며 국력이 급격하게 쇠락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 한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가 급속도로 부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서울에 웨이브가 열렸다.
‘그때…… 우리 정부는 알게 모르게 쾌재를 불렀다.’
한국이 웨이브에 저항한다면, 그 주변국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한국은 완벽하게 웨이브를 막아냈다.’
그리하여 그 땅에는 ‘라퓨타’라는 유례없는 보상이 주어지기에 이른다.
‘라퓨타, 즉 마법공학…… 그건 미래의 패권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산업이다.’
현재까지는 던전에서 ‘드롭’되는 아이템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었다. 하지만 점차 그와 견줄만한 ‘제조 아이템’이 등장하고 있었다.
즉, 앞으로 그 분야가 미래의 핵심 산업이 되며 경제, 국방, 외교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이 그 선두에 설 테고, 중국은 몰락의 길을 걸을 터.......
그렇게 생각하는 왕펑의 머릿속으로 수막트의 굵직한 음성이 치고 들어왔다.
"너희가 우리와 교류하고 있다는 비밀은 처절하게 지켜질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왕펑이 속해 있는 공안의 비밀 사조직 ‘암성(暗星)’은 정권을 쟁탈을 노리고 있었는데, 그 방법의 하나로, 최대 원수나 다름없는 블랙 오크들과 은밀한 관계를 맺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리고 스막트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왕펑에게 반강제적인 제안을 해왔다.
"왕펑, 너희 말대로 게임이다. 기회를 잡고 승자가 될 기회다.”
왕펑은 직감했다.
곧,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
히든 스테이지를 찾아내는 건, 던전 공략 도중 얻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기회였다.
‘전설 등급 이상의 아이템은 대부분 히든 스테이지에서 등장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히든 스테이지를 찾아내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는데, 그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게이트 너머의 세계, 던전의 크기가 생각 이상으로 방대하기 때문이었다.
'이곳, C등급 수준의 던전이면, 평균적으로 제주도 정도의 크기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히든 스테이지’를 찾는 건 모래사장의 바늘 찾기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마치 퍼즐처럼, 곳곳에 힌트가 있다.’
다만, 이현욱은 던전 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퍼즐’의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팀원들에게 오크 시체를 수색하게 했다. 저것들을 쓸어버리는 직후에 히든 퀘스트가 떴다는 건, 바로 그 순간에 퀘스트 발동 ‘트리거’가 작동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내.......
"이 팀장님, 여기 특이한 물건을 하나 찾았습니다!”
이정준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는 이현욱에게 다가와 그걸 내밀었다.
"음, 무슨 시계처럼 생기긴 했는데, 이게 대체 어디에 쓰이는 걸까요?”
- 알 수 없는 기계 장치(특수)를 획득했습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알 수 없음
- 효과 : 알 수 없음
손바닥만 한 원형의 금속 프레임 안에 어떤 기계 장치 같은 게 박혀 있었다.
그 순간, 이현욱은 어떤 기시감을 느꼈다.
‘이건…… 이거랑 완전히 똑같은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이현욱은 이와 같은 아이템을 몇 번 본 적이 있기에 단숨에 그 활용 방법을 꿰뚫었다.
그는 그것을 태양을 향해 들어 올렸다.
웅——
그러자 마치 프리즘처럼, 햇빛을 투과하여 넓게 분산시키더니 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 축하합니다! 히든 스테이지의 ‘힌트’를 발견하셨습니다.
그 그림자는 일종의 지도였는데, 히든 스테이지로 가는 길이 꽤 상세히 표현된 듯했다.
“오, 어떻게 그렇게 단숨에 알아차리신 겁니까?”
그렇게 감탄한 건 의외의 인물—청화 길드 공략팀의 팀장, 박무한이었다.
그는 이현욱의 실력을 목격한 이후, 생각 외로 고분고분하게 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합동 공략을 희망하고 나섰다. 쉽게 말해서, 함께 다니고 싶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이러는 건 다른 속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이현욱, 자신의 능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려는 속셈일 것이었다.
‘그건 유해나가 지시한 일 중 하나일 텐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오히려 잘 됐다.’
이현욱이 ‘히든 스테이지’를 수색하는 동안, 만에 하나 청화 길드 측에서 던전을 공략해버리면 곤란해진다. 그렇기에 이현욱은 박무한의 협동 공략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이제는 전력을 숨기는 건 불가능하니까, 몇 가지 수만 보여주지 않으면 돼.’
그리하여 두 길드는 함께 사막을 가로질렀다.
우우우우——
이현욱은 단 하나의 공중투하장치만 유지한 채, 나머지를 트레일러에 넣었다.
애초에 12개를 운용하는 건 아무리 ‘에테르 엔진’이 있다고 해도 무리였다.
공중투하장치 1개당 초당 50의 마나가 소모된다. 그렇기에 몇 분 띄울 수 없었는데, 방금 12개를 전부 쓴 건…… 솔직히 청화 길드 공략팀의 기를 꺾기 위함이었다.
‘뭐, 그 의도가 제대로 먹힌 것 같긴 해.’
그렇게 이동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저기 모래 언덕 위에 무언가 있습니다! 웬 삼각형의 조형물입니다!”
조금 전 보았던 지도상, 유적지 입구 근처에 삼각형 표시가 있었다.
‘즉, 이 근처에 유적지의 입구가 있다.’
이현욱은 그 즉시 ‘후긴’을 띄워서 주변을 샅샅이 탐색했다.
'……모래 밑바닥에 뭔가 있다.’
평평한 사막 한가운데, 웬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느껴졌다.
‘이 정도 크기의 금속 덩어리면, 히든 퀘스트를 받지 않아도 발견했을 수도 있겠는데.......'
이현욱은 리빙 아머를 윰직여서 그 근처의 모래를 파도록 했다.
그리고 이내, 지름 4m에 이르는 원형의 철문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 히든 스테이지 ‘노움 A3 유적지 북문’과 접촉하셨습니다.
* 해당 관문을 열기 위해서는 3개의 ‘표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입장에 제한이 걸려 있었다.
표식이라.......
"이 팀장님, 여기 3개의 홈이 있는데…… 아까 얻은 그 아이템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이정준의 말대로, 문 옆에는 원형 홈이 3개가 있었다.
이현욱이 그 홈 중 하나에 지도가 담긴 기계 장치를 넣었다.
철컥—
그러자 정확하게 맞물리며 원형의 철문이 반 시계 방향으로 조금 움직였다.
"그런데…… 문을 열려면 2개가 더 필요하다니, 이걸 어디서 구해야 할까요?”
그래, 히든 스테이지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표식’을 2개를 더 구해야 한다.
이에 모두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음, 방금 그것도 오크를 잡아서 나왔으니까…… 또 전투를 치러야 하는 거 아닐까요?"
"허허…… 힘든 여정이 되겠군요. 어쩌면 보스 몬스터를 잡아야 할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이현욱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잠깐만 이거…… 언젠가 한 번 봤던 곳이잖아? A3 유적지라니…….'
이현욱은 그제야 조금 전부터 느끼던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전생에 공략했던 히든 스테이지다. 이건…… 테마 공유 히든 맵이다.’
이 ‘히든 스테이지’라는 맵은 보통 단 1개의 던전과 연결된 게 아니었다.
비슷한 테마를 가진 다수의 던전이 하나의 히든 스테이지를 공유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내가 헤파이스토스의 모루를 얻었던 던전에서 찾은 히든 스테이지랑 같다.’
이 던전에서는 ‘헤파이스토스의 망치’가 나온다. 그리고 이현욱은 훗날 ‘헤파이스토스의 모루’가 나오는 던전을 공략하는데, 바로 그때 이 ‘히든 스테이지’를 발견했었다. 그러니까, 헤파이스토스의 아이템과 관련된 던전이 이 히든 스테이지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즉, 이현욱이 이미 한 차례 공략해본 던전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우연…… 아주 좋군.’
그는 문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거대한 원형의 철문, 8개의 경첩으로 단단하게 잠겨 있었다.
이그는 그중 1개의 경첩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파쇄!’
깡——!
경첩이 으스러지며 두꺼운 철문이 뒤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웬 붉은색 메시지 한 줄이 모두의 눈앞에 떠올랐다.
- 경고! 잘못된 방식으로 진입할 경우 ‘징벌’이 내려질 수도 있습니다!
"자, 잠시만요! 이래도 되는 겁니까? 시스템의 경고 메시지를 함부로 무시하면……."
박무한은 그 시스템 메시지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는 이현욱을 만류하고 나섰다.
깡——!
그러나 이현욱은 박무한의 말을 무시한 채, 경첩을 하나씩 박살 내기 시작했다.
깡——!
그런 막무가내의 행동에 박무한은 체면을 불고하고 천천히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이 팀장! 당신이 아무리 대단해도 이건 진짜 큰일 날 행동입니다……."
박무한은 수많은 공략을 통해 직감할 수 있었다. 이런 ‘퍼즐’이라는 골치 아픈 요소가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잘못된 방법을 시도 할 경우,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징벌이 내려진다.
하지만 이현욱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무작정 경첩을 뜯어내고 있었고…….
깡——!
이내, 마지막 경첩이 뜯어졌다.
이어서 그가 양손을 들어 올리자, 육중한 철문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쿠—구—구—구——!
그렇게 열린 유적지의 문—깊은 어둠 속에서부터 차가운 바람이 터져 나왔다.
후우우우——
- 주의! 잘못된 방식으로 유적지를 개방했습니다!
* 징벌(고대의 파수꾼 무리)이 부여됩니다!
"젠장, 도, 도망쳐!”
박무한은 제 팀원들에게 그렇게 소리쳤다.
"어어—”
그러자 청화 길드원 전원이 혼비백산하며 트레일러 뒤로 몸을 숨겼다. 다른 누구도 아닌, B등급 1티어의 플레이어가 당황했으니 감당 못 할만한 일이 터졌다는 뜻이 확실했다.
"뭐, 뭐야? 뭐가 시작되는 거야?”
그 반응에, 희망 길드원들조차 당황하여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이현욱은 여전히 유적지 입구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이 던전의 징벌은…… 마법공학의 창시자, 노움 던전답게 기계들이 등장한다.’
끼—리—리—리—리——!
이내 저 어둠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리는 기이한 괴성들,
끼—리—리—리—리——!
그건, 엄청나게 많은 무언가가, 바닥을 기어 오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내 그것들이 햇빛이 닿는 곳에 이르며, 그 정체가 드러났다.
끼—리—리—리—리——!
그건 강철로 만들어진 전갈— 족히 수천 마리는 될 법한 전갈 떼거리였다.
‘그리고 기계는…… 금속이다.’
그곳을 향해 이현욱이 왼손을 들어 올렸다.
"파쇄—!"
뻐—버—버—버—버—벙——!
징벌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들이, 지상으로 올라옴과 동시에 녹듯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붉은 모래 위로 백색의 조개껍데기처럼 수북하게 쌓였다.
뻐—버—버—버—버 —벙——!
트레일러 뒤로 몸을 숨겼던 박무한과 청화 길드원들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이제 안전합니다. 들어가죠.”
그렇게, 징벌이, 너무나 허무하게 끝이 났다.
“아……."
박무한은 멍한 표정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이현욱은 12기의 리빙 아머를 앞세운 채, 그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 노움의 유적지(A3)에 입장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전생의 기억—이 히든 스테이지를 공략했을 때를 떠올렸다.
‘유적의 중심부를 지키는 수호자를 쓰러뜨리면 그 뒤로 2개의 문이 있다.’
여기에서 ‘수호자’란 유적지의 보스 몬스터 같은 개념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단 1개의 문밖에 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는 ‘전설 등급’의 아이템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열 수 없었던 다른 문이, 너무나 궁금했다. 혹시나 신화 등급일까…….'
그렇기에 그 던전을 폐쇄하지 않고 열어둔 채, 몇 달간 온갖 방법을 통하여 그 문을 열려고 시도했지만, 그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끝내 그 문을 열 수 없었다.
이현욱은 안주머니 속의 ‘고대 유산의 마스터키’를 만졌다.
'이게 그곳으로 통할 수 있는 열쇠다.’
그게 아니라면, 히든 퀘스트가 발동되었을 리가 없었다.
이현욱은 전생에서조차 열지 못했던 어떤 비밀을 목격할 생각에, 아주 오랜만에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