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 비밀경찰국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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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은 우성문에게 오키타 카이토의 도주 위치가 태산 길드 사옥의 지하라는 알아냈다는 걸 알렸다. 그리하여 정부 측에서 태산 길드를 감시하게 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태산을 무너뜨리는 건 어렵다.’
국내 3위의 거대 길드를 증거 하나로 고꾸라뜨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태산 측에서 자신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면 그만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정부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놈들에게 향할 것인 만큼, 제멋대로 움직이진 못할 터, ‘그렇게 놈들은 묶어 놓고, 내 할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될 테니…….'
이현욱이 미래에 벌어질 일은 정리한 수첩, 그 리스트의 다음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우성문 측에서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특수비밀경찰국, 언뜻 들어도 거창한 이름이었다. 우성문은 지금 그 조직의 지휘를 이현욱에게 맡아 달라고 했다. 그것도 전설 등급의 아이템 ‘후긴’을 넘기면서까지 말이다.
난데없는 제안에 이현욱은 다소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어떤 조직인지 그리고 왜 제가 맡아야 하는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이에 우성문은 그런 조직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4차 웨이브 당시, 1대대를 공격했던 정체불명의 세력, 그들이 몬스터와 한패가 된 것처럼 움직였다는 사실은 세간에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우성문을 비롯한 정부 기관만큼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부 측에서도 해당 사건에 관하여 은밀하게 수사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며칠 뒤 ‘악마 소환’ 사건과 ‘성녀 암살 미수’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써 뚜렷해졌습니다. 정체불명의 거대한 세력이 이 나라를 노리고 있습니다.”
사실은 이 나라가 아니라 세계 전체를 노리고 있었다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놈들이 누군지 모릅니다. 그래서 해당 세력을 쫓는 비밀 수사 기관을 만들 생각입니다. 현재는 특수비밀경찰국이라고 가칭했는데…… 당신이 맡아줬으면 합니다.”
우성문은 아직 정확하게 인지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 빌런을 쫓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조직의 핸들을 외부인인 이현욱에게 맡기겠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하긴, 근래 들어서 정부의 감시망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이현욱이 나서지 않았다면, 정말로 크나큰 실패를 맞았을 수도 있을 정도로…….
심지어 도주한 오키타 카이토를 추적한 것조차도 이현욱이었다.
‘……아무리 국가정보기관일지라도 이미 놈들의 실체를 알고 나보다 빠를 순 없다.’
그리하여 우성문은 자존심 같은 건 접어두고 이현욱에게 기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현욱 병장, 당신께 무소불위의 수사권을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방첩 기관의 역할을 외주를 맡기겠다고 하는 셈, 그 파격적인 제안에, 이현욱은 솔직히 다소 당황스러웠다.
‘성녀에 이어서 우성문의 전폭 지원이라…….'
순식간에 이현욱의 양쪽 어깨에 거대한 날개가 붙은 것이었다.
‘하지만 우성문은…… 목적의식이 너무나 명확하다.’
오직 대한민국의 안위, 그에 들어맞으면 최고의 조력이 되겠지만, 조금만 어긋나면 돌아서거나 오히려 방해물이 될 수도 있을 터, 입맛대로 움직이는 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성녀가 고분고분한 날개라면, 우성문은 원하는 쪽으로만 날아가는 날개였다.
그리고 이 일의 책임자가 되면 이현욱이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게 영 껄끄러워진다.
거대 조직의 일원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이 더 높은 윗선의 간섭을 받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앞으로 할 일이 많다. 그건 포기할 수 없는 기회다.’
‘그러니까 이 제안은 적당한 선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이현욱은 고민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게 그런 중요한 임무를 맡길 정도로 저를 높게 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제가 국장이라는 총괄 자리에 앉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정도의 능력은 제게 없습니다.”
"흠…… 이미 4차 웨이브 때 강철 중대를 완벽하게 지휘하시지 않았습니까?”
이현욱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시적인 사건은 운이 좋게 잘 처리했지만, 장기적으로 조직을 끌고 가는 건 또 다른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전장에서 활약한 것이지 책상에서 활약한 게 아니니까요.”
"우 실장님, 그 비밀 조직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적당한 역할의 자리를 맡겨주십시오. 그렇다면 저는 프리랜서답게 평소에는 제 할 일을 하다가, 필요한 순간에 나서겠습니다.”
우성문은 그 말에 잠깐 고민했다.
‘역시…… 정말로 완벽하게 프리랜서를 하겠다는 확실한 의지다.’
우성문은 방금 제안을 할 때 ‘프리랜서’나 ‘계약직’이라고 말했지만, 이현욱을 한 조직의 수장으로 임명한다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정부 측에 모든 정신을 쏟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현욱은 우성문의 그런 교묘한 수마저 피해 버렸다.
‘하지만…… 이현욱의 협조를 끌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성문은 이 남자가, 이 나라에 닥친 위협을 등한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한편, 이현욱 역시 <특수비밀경찰국>에 속한다는 건 상당한 이점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서, 엄청난 정보 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빌런들이 이 땅을 장악하는 걸 견제하기에 그 무엇보다 훌륭한 무기가 될 터였다.
‘그래, 4차 웨이브 이전, 우성문이 살아 있을 땐 빌런들이 손쉽게 침투하지 못했었다.’
4차 웨이브 이후,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우성문이 약해지면서, 빌런의 이 땅을 장악한다.
그런데 4차 웨이브라는 최악의 도미노는 이현욱에 의해 멈췄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그 도미노를…… 반대로 쓰러뜨린다.’
이 정도 힘이라면 이 땅에서 빌런 세력을 완전히 제거할 수도 있었다.
"이 병장, 좋습니다. 그렇다면 해당 조직의 하위 부서장 역할을 부탁하겠습니다.”
우성문이 손을 내밀었고 이현욱이 맞잡았다.
"예, 그 어떤 세력도 조국을 흔들지 못하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아니었지만, 우성문의 마음에 들만한 말인 건 확실했다.
한편, 그 대화를 듣고 있던 김강석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이현욱…… 이제 완전히 내 손을 떠났군…….'
이제 이현욱은, 한때 자신이 장교로 키울 만한 인재라고 생각했던 게 부끄러울 정도로 엄청난 거물이 되어 있었다. 김강석은 뿌듯한 한편,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
그리고 바로 다음 날, 태산 길드 사옥에 대한 압수 수색이 시작되었다.
‘우성문이 제대로 칼을 뽑았군.’
명목은 ‘분식 회계’였다. 오키타 카이토의 마지막 위치가 이곳에서 감지되었다는 이유를 들이댈 수는 없었다. 그건 초장부터 모든 카드를 다 꺼내 보이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지속해서 심리 싸움을 하면서, 조금씩 깎아 나갈 것이다.’
우성문이 태산 길드를 괴롭히기로 마음먹었다면, 아주 끈질기게 털어버릴 수 있을 터,
'좋아, 이러는 사이에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이현욱 비교적 마음 편히 자신의 성장과 믿을 수 있는 세력을 키우는 일에 매진할 생각이었다. 물론 정부 측에서 지원 요청이 오면 달려가야 하겠지만, 당장은 아닐 것이었다.
이현욱은 오랜만에 수첩을 펼쳤다.
- 10월 11일, 구로구, 오크 게이트, 잠재 아이템 등장 예정
‘어떻게 잘 하면…… 이걸 얻을 수 있겠는데?’
이현욱은 앞으로 챙겨나갈 수 있는 모든 이득을 떠올려서 적어놨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게 대다수였다.
이 구로구 오크 게이트의 아이템도 본디 그러했는데, 그걸 해결할 방법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오늘도 외출 좀 해야겠군.’
이현욱은 이제 영외 출타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다. 무려 대통령 직속 기관장과 협력하는 사이인 만큼, 일개 병사처럼 규율에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된 것이었다.
그날 오후, 이현욱은 신길의 <희망 길드> 사무실에 방문했다.
"형, 그동안 별일 없었어?”
희망 길드는 그동안 모(母) 길드가 된 즈믄나래 측과 미팅하고 한 차례 그들의 보조 역할로서 던전 공략에 투입되었다고 했는데…… 그 외에 이렇다 할 일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게, 길드 몸집은 갑자기 불어났는데, 이걸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가 걱정이다……."
며칠 사이에 박철수는 어깨가 한층 무거워진 걸 절절하게 느낀 모양이었다.
"형, 다른 건 몰라도 돈 걱정은 안 해도 돼.”
“하하…… 그거 진짜 든든한 말이네, 고맙다.”
곧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어온다.
4차 웨이브 때 걸렸던 보상 중 대다수가 이현욱의 몫이었다. 물론, 당시 함께 싸웠던 이들에게도 어느 정도 보상금이 돌아가겠다만, 어쨌든, 3개의 침식 요인에서 최고의 활약을 한 만큼 그의 앞으로 9,000만 달러—약 1,000억 원과 3개의 영웅 등급 무기, 그리고…….
'……게 볼그, 그 전설의 아이템도 주어진다.’
다만, 그런 거금을 분배하는 게 며칠 내로 뚝딱 될 일이 아닌 만큼, 다소 지연되고 있었다.
‘그리고 성녀 측의 지원까지 있으니, 돈이 없어서 망할 일은 없을 거다.’
이현욱이 그렇게 말했지만, 박철수의 표정은 영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현욱아, 너랑 상의하고 싶은 게 좀 있는데……."
"응?"
"우리, 덩치는 커졌는데, 내 영업력이 아무래도…… 일감을 찾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길드의 일감은 쉽게 말해서 ‘던전 공략권’을 뜻했다.
그리고 애초에 박철수의 탓이 아니라. 중소형 길드가 ‘던전 공략권’을 따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거대 길드들이 거의 모든 파이를 독식하고 있으며 중소형 길드는 그 밑에서 하청을 맡을 뿐이었다. 사실상 잡부로서 ‘짐꾼’이나 ‘총꾼’ 혹은 ‘던전해체반’ 등이 그 예였다.
즉, 희망 길드 역시 웬만해서는 그런 역할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런데…….
"아, 마침 이 말을 하려고 했는데, 아마도 삼사일 내에 던전 공략권 하나를 얻을 거야.”
이현욱의 말에 박철수의 눈동자가 커졌다.
“……응? 어디 소유 없는 게이트 입찰할 게 생긴 거야?”
"아니, 입찰은 아니야.”
"그럼 어디서 던전 공략권을 얻어낼 건데? 떠오르는 구석이 없는데 ......."
이현욱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 靑火 : Catherine YO
그건 유해나의 명함이었다.
"뭐야, 청화 길드의…… 캐서린 유, 서울공략부장이잖아?”
이현욱은 그녀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음이 가고……,
- 네—
역시나 우아한 목소리, 유해나가 전화를 받았다.
"캐서린, 저 이현욱입니다. 기억하시겠죠?”
그러자 잠깐의 정적, 아마도 의외의 연락에 다소 당황한 듯했다.
- 아, 이게 누구야, 서울의 구원자 아니세요? 어떻게 저한테 연락을 다 주셨을까요? 아— 혹시 이제 엄청난 이름값 좀 생기셨겠다, 우리 청화 길드에 들어올 생각이…….
“하하…… 그건 아니고요.”
역시나 이현욱을 스카우트하려는 의지를 접지 않은 듯했다.
- ……그럼 , 대체 무슨 일일까요?
"우리, 내기했던 거, 기억하시겠지요?”
- .......
청담동에 열렸던 레드 게이트, 그때 이현욱과 유해나는 내기를 했었다.
청화의 공략팀과 AMT의 특별공략소대 중 어느 측이 먼저 보스 몬스터를 잡는가—
내기의 승자는 이현욱이었고, 유해나는 분개하며 원하는 걸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현욱은 아직, 요구사항을 말하지 않았다.
"그 내기의 보상으로 요구하고 싶은 게 생겨서 말입니다.”
***
청화 길드가 대한민국 1위 길드라고 불리는 이유 간단명료했다.
가장 많은 플레이어를 보유했으며 매해 가장 많은 게이트를 폐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해나는 청화의 서울공략부장으로서 서울 담당 지역의 공략팀을 총괄했다.
이현욱은 지금, 그녀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던전 공략권을 하나 넘겨달라는 거예요?”
"네, 맞아요. 딱 1개면 됩니다.”
이현욱은 그녀에게 내기 보상으로 1개의 던전 공략권을 요구했다.
"하, 대체 왜…… 설마 길드를 세우기라도 한 거예요?”
이현욱은 어깨를 으쓱하며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캐서린, 저번에 뭐든 말하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셨던 거로 기억해서요. 공략권도 괜찮죠?”
“……던전 하나에서 벌리는 돈이 얼마인 줄 알고 그렇게 쉽게 말해요?”
그 말에 이현욱은 소파에 기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청화 서울공략부장의 내기는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나 봐요? 제가 좀 오해했네요.”
그녀의 허영심 살살 자극한 것이었다.
"뭐, 뭐라고요? 서울의 구원자라고 칭송받더니, 좀 기고만장해지신 것 같네요.”
그녀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는 건 허영심을 제대로 자극했다는 뜻이고, 달리 말하자면 특유의 정복 욕구가 풀풀 치솟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즉, 이현욱이 제대로 찔렀다.
"......."
유해나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찻잔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으며 팔짱을 꼈다.
“하— 아무리 그래도 던전 공략권 1개를 통째로 넘겨주는 건 좀 그렇고요. 우리랑 합동 공략으로 2개, 이거 어때요? 신생 길드 입장에선 경험을 더 많이 하는 게 좋잖아요?”
이현욱은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유해나, 이 여자가 신경 쓰는 건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이 아니었다.
연간 던전 공략 횟수, 즉, 길드 내 성과에 집착하는 것으로 아주 유명했다.
‘달리 말하자면 제 형제들과 경쟁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청화 길드의 후계 경쟁은 치열하기로 유명했다.
그런 면에서, 유해나는 자신의 성과가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게 아주 싫은 듯했다.
또 한편으로는, 합동 공략 시 실력자를 집어넣어서, 이현욱을 골려주려는 걸 수도…….
‘이유가 뭐가 됐든, 이건 차라리 잘 됐다.’
유해나의 꾀 덕분에 1개의 던전을 먹을 것을 2개의 던전을 먹게 될 듯했다.
“……좋습니다. 내기였으니 살살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첫 번째 공략이라서요.”
"아, 그럼요. 신생 길드 여러분이 보고 배울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그렇게 합의를 본 뒤, 이현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돌아간 직후, 유해나는 누군가를 호출했다.
웬 덩치 큰 남자가 그녀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유부장님, 부르셨습니까?”
"……박무한 팀장, 지금 랭킹 몇 위죠?”
“저, B등급 1티어, 151위입니다.”
즉, 이 남자가 대한민국에서 151번째로 강력한 플레이어라는 뜻이었다.
그는 유해나가 휘하에 데리고 있는 플레이어 중 가장 랭킹이 높았는데,
격투가 계열 플레이어로 오우거와 1대1 로도 싸울 수 있는,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였다.
"음, 며칠 뒤에 C등급 정도의 게이트에 들어가 주셔야겠어요.”
그 말에 박무한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예? 제가 거길 왜……."
갑자기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은 게이트를 공략하라고 하고 있으니, 혹시나 자신이 눈 밖에 나서 좌천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유해나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박무한의 표정에 이채가 번져나갔다.
“아! 강철 중대의 지휘관…… 와, 그 사람이 우리와 합동 공략을 하는 겁니까?”
“네, F등급인데, 대체 어떻게 그렇게 잘난 일들을 벌일 수 있는지, 유심히 살펴봐요.”
이현욱은 현재 F등급 플레이어지만, 업적을 쌓아서 어느 정도의 능력 상승이 있다고만 알려져 있을 뿐, 그가 레벨 외 성장 특성이라는 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하— 업적 몇 개 쌓았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박무한은 어느새 기고만장해진 상태였다.
“부장님, 저는 F등급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걸 안 믿습니다. 강철비라니…… 하하……."
강철 중대의 지휘관이 강철비를 내린다, 그 소문은 이미 파다하게 퍼졌다만, 4차 웨이브 지역은 모든 전자 장비가 먹통이 되었기에 그 어떤 자료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랭커’들은 F등급의 말도 안 되는 활약을 여전히 의심하고 있었다.
“……박 팀장, 방심하지 마요. 내가 특별 임무라고 했죠?”
"아, 물론입니다! 언제나 긴장하겠습니다! 그래도 설마 F등급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유해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박무한처럼 이현욱을 깎아내리지는 않았다.
이미 수차례 그 남자를 무시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자기만 민망해졌을 뿐이었다.
‘그 사람, 뭔가 달라…… 설마 F등급이라고, 속인 거 아니야?’
***
그로부터 3일 뒤, 구로구 오류 1동에 오크 게이트가 발생했다.
그러나 오크 게이트라고 해서 모두 같은 수준은 아니었다. 1차 분출 때 ‘오크 챔피언’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 보스 몬스터가 ‘대족장’으로 추정되는, 1천 마리 이상의 던전이었다.
안전한 공략을 위해서, 평균 C등급 1티어 이상의 플레이어 80명이 필요한 수준이었다.
이현욱은 그 게이트를 지목하여, 유해나와의 계약대로 첫 번째 합동 공략권을 얻어냈다.
'이 게이트는 의외의 보물을 품고 있다. 헤파이스토스의 망치…….'
그 잠재 아이템을 언젠가는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파밍’이 아니라, 다른 경로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청화 길드가 담당하는 지역인 만큼, 이현욱이 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기회가 올 줄이야…….'
그리고 오후 3시, 희망 길드의 공략팀이 오크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이현욱을 포함하여 이정준과 그의 동료들, 총 18명의 플레이어였다.
반면, 먼저 와 있던 청화 길드의 공략 팀은 총 51명이었다.
“……아니, 고작 18명이 말이 돼?”
그들은 경계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희망 길드 쪽을 바라보았다.
"젠장, 어디 이름도 없는 길드가 낀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두 그룹이 ‘합동 공략’을 하게 된 계기부터가 서로를 좋게 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꽤 잘나가는 자신들이 이름도 없는 신생 길드와 함께 싸운다는 것 자체가 영 기분 나빴다.
"그래서 쟤들 중 그 강철 중대의 잘난 영웅 나으리가 누구야? 얼굴 기억나냐?”
"음, 저기, 저 남자 같은데요? 아닌가……."
물론 이현욱이라는 이름은 그들을 흥미롭게 만들었다만, 아무리 그래도 18명이라니…….
그들이 그렇게 불만을 굴려 나가고 있을 때, 더욱이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저건 또 뭐야?”
삐이— 삐이—
웬, 컨테이너를 실은 트레일러 한 대가 좁은 골목으로 비집고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대체 뭔데 저렇게 큰 트럭을 끌고 온 거야?”
정말이지, 하나 같이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와…… 미치겠다, 진짜…… 누가 던전 공략에 트레일러를 동원하냐?”
"첫 공략이라서 쫄아서 이것저것 다 챙겨온 거 아닐까요? 초보들 특징이잖아요.”
게이트 안 ‘던전’으로 입장할 때, 물건을 많이 들어가는 건 바보짓이었다.
내부가 어떤 환경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물자는 말 그대로 짐일 뿐, 그렇기에 공략팀은 최소한의 장비와 가장 부피가 적은 식량을 챙겨간다.
그때, 트레일러에 실린 컨테이너가 살짝 열렸다.
"어, 보인다!”
청화의 공략팀은 그 안을 볼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각형의 금속 상자가, 12개나 들어 있었다.
"방금 저거 봤냐? 뭐였냐?”
"몰라, 처음 보는데…… 그냥 이삿짐용 상자 같은 거 아니야?”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어서 또 한 대의 트레일러가 도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헉, 저거 전부 다 리빙 아머잖아?”
"그러게, 족히 스무 기가 넘는 것 같은데…… 저게 왜 필요한 거야?”
작동이 정지된 듯한 리빙 아머, 무려 22기가 탑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것들을 이용하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상당한 등급을 가진 마법사가 ‘통제 마법’을 건다고 할지라도 동시에 3기 이상을 부릴 수는 없었다.
"뭐야, 뭔가 이상한데……."
이들은 곧, 전혀 경험한 적 없는 방식의 공략법을 마주하게 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