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 비밀경찰국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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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주 ) 전 회차에 오키타 카이토가 도망치기 직전, 주머니에 '플라이 아이'를 넣는 장면이 추가되었습니다.
앞으로 몇 년 뒤, 온 세상이 빌런 조직의 손아귀에 놓이게 된다. 놈들은 오랜 물밑 작업 끝에,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고 플레이어와 아이템을 독식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때가 되면 그 누구도 놈들을 저지할 수 없었고, 놈들은 네크로맨서라는 세계 정복 카드를 꺼내 든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지금 이 시점상에서는, 빌런 조직은 이 세상 전체와 맞불을 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은 영웅들이 건재하며, 세계의 각국은 질서 유지에 힘 쏟고 있었다.
그렇기에 놈들은 지금, 숨어서 세력을 불리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놈들의 성장을 막는 거다.’
당장 몇 푼짜리 명성 좀 생겼다고 해서 이렇다 할 근거도 없이 빌런의 존재를 공표하고 색출하겠다고 나서는 건, 도박을 넘어서 바보 같은 짓이었다. 지금으로써는 그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놈들을 견제하고, 베일을 벗겨낼 증거를 모아두는 것—그게 정답이었다.
‘그걸 위해서는 나 혼자서는 안 된다. 큰 세력이 필요하다.’
놈들이 여러 방면에서 세상을 야금야금 갉아 먹고 있는 만큼, 이현욱 혼자서 아무리 애써봤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즉, 경제·정치·전투·정보 등 모든 면의 조력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이현욱은 입지를 쌓아나가며 믿을 만한 인물들과 인연을 쌓아가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김강석과 최정철 등 과거에 빌런에 대응했던 AMT 소속이 영웅들이 있으며, 더 나아가서 즈믄나래의 마스터 강서윤과 정부 소속 플레이어 서열 1위인 우성문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내 계획에 끌어들이는 건, 아직 여러모로 무리다.’
한동안은 강력한 조력 없이, 혼자서 활동해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의외의, 굉장히 강력한 한 수가 등장했다.
성녀, 에밀리아 뮐러, 이현욱의 계획에는 없던 여자…….
이현욱은 그녀에게 ‘비밀 조직’ 창설을 제안했고, 상황 수습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이후, VIP실에서 그녀와 다시 한번 마주 앉게 되었다.
"조금 전에 당신이 만들자고 한 그 팀…… 빌런에 대응하자는 말로 이해하면 되죠?”
그녀의 물음에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총재님도 아시겠지만, 그 빌런이라는 조직의 음모,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겁니다.”
"아, 그렇겠죠…… 당연히……."
그녀의 표정이 다시금 어두워졌다.
지금 이 순간은 이현욱의 활약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에도 이와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면 과연…….
그녀의 목숨은 여전히 위태롭기만 한 상황이었다.
"하—썩은 가지는 운 좋게 도려냈지만, 상황이 좆 같은 건 달라지지 않았네요.”
"......."
"거기, 위스키 좀 건네줄래요?”
"지금은 조금만 참으시죠.”
"아—"
그녀는 탄식을 내뱉으며 맹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 그럼 당신이, 계속 제 옆에 있어 줄 수는…… 흠, 없겠죠?”
은근히 바라는 눈빛, 하지만 이현욱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놈들에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자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총재님, 빌런에 관해 당신이 알고 있는 걸 저한테 말씀해주십시오.”
그녀는 빌런에 관하여 모종의 정보를 알고 있다. 니콜라스 스틸, 그가 무언가를 그녀에게 알려주었고, 그 때문에 빌런들이 그녀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이었으니…….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내용이에요.”
에밀리아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 듯 조심스레,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꺼내었다.
그러나 그건, 이현욱도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빌런에 대응하는 조직인 가디언의 핵심 인물 고든 프라이스, 그가 사실은 빌런의 리더로서 가디언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 사실을 공유하면서 얻은 건 그녀와의 완벽한 신뢰라고 할 수 있었다.
“하— 가디언조차도…… 역시, 제가 가디언 퀘스트를 받지 않은 게 잘한 일이었군요.”
물론, 신뢰와 별개로 이렇게 처음 들은 척 연기를 해야하긴 했다.
"네, 맞아요. 사실 제가 당신을 이용해서 그쪽 정보를 캐보려고 접근했던 건데 이편이 훨씬 좋은 것 같네요. 당신이 어떤 팀을 만들겠다면…… 저는 무조건 동참해요.”
그녀는 굳은 의지가 보이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생각보다…… 훨씬 쉽게 응하시는군요?”
그 말에, 에밀리아 피식 웃더니 손을 뻗어, 이현욱의 옆에 있던 위스키를 기어코 가져갔다.
"오늘부터 이현욱 당신은, 나, 무려 성녀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거든요.”
"이거, 너무 갑자기 그런 거창한 칭호를 내려 주시는 거 아닙니까?”
"그거야, 내가 살아 있는 이유가 당신 때문이잖아요?”
에밀리아는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이현욱의 왼팔을 가리켰다.
“그래서, 힐 말고도 다른 방식으로도 어루만져 줄 수 있을 정도로 신뢰해요.”
"......."
"뭐야, 그 표정…… 농담이에요. 어쨌든, 팀을 만들어서 뭘 어떻게 할 건데요?”
이현욱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은 큰 비전은 없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거죠.”
그 대목에서 에밀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가장 부족했던 건 그 무엇도 아닌 신뢰할 수 있는 동료였으니, 그녀로서는 가장 합당하게 느껴질 법한 첫걸음이었다.
"하긴,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할 수는 없겠죠. 아,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해요. 내가 이래 봬도 돈이 상당히 많은 망나니 거든요.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마련해줄게요.”
그래, 그녀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했다.
<세인트 돔>은 차드 공화국의 지원을 받지만, 엄밀히 따지면 독립된 기관이었다.
그리고 세인트 돔은 웬만한 대기업 못지않게 많은 돈을 벌기로 유명했는데, 성물을 제작해서 팔거나 성기사나 프리스트 파견을 해서 버는 돈이 상당한 편이었다.
얼핏 듣기로는 방금 그 ‘홀리 필드’가 무려 9천억 원짜리 마법이었으니…….
즉, 인력도 많고 돈도 많은 그 거대한 조직의 수장이 바로 에밀리아 뮐러였다.
물론, 그녀는 상징적인 인물이었고 실무는 다른 이들이 도맡고 있겠다만, 조직 내, 그녀의 영향력은 확실한 건 틀림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제대로 된 돈줄이 하나 생겼군.’
앞으로 이현욱의 계획에 추진력이 붙을 듯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 한 가지 계획을 완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아, 그리고…… 특별히 부탁드릴만한 일이 있습니다. 조금 어려운 부탁이긴 한데......."
"네, 뭐든 말만 하시면 내가 알아서 처리해줄게요.”
이현욱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키우는 길드에…… 차드 공화국의 마법공학연구자들을 스카우트하고 싶습니다.”
차드 공화국은 마법공학산업의 선두 주자였다. 그렇기에 가장 우수한 인력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서울 상공에 ‘라퓨타’가 나타난 만큼, 마법공학업계의 지각 변동이 예상되었다.
이현욱은 지금, 난데없이 그 지각 변동에 올라타고자 하는 의지를 밝힌 것이었다.
에밀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 전문 인력을 빼돌리라는 거니까, 민감한 문제긴 할 텐데…… 이유가 뭐죠?”
이현욱은 대답 대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건 웬 열쇠였다.
이현욱의 눈앞에 그 아이템의 정보가 떠올랐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고대 유산의 마스터키
- 효과: 알 수 없음
* 획득과 동시에 귀속되는 아이템입니다.
그는 그 내용을 다시 한번 살핀 뒤, 에밀리아를 바라보았다.
“이건…… 서울 상공에 떠 있는 마법공학도시, 라퓨타의 마스터키입니다.”
그 말에 에밀리아는 제대로 못 들은 것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바, 방금…… 뭐라고 한 거예요?”
“라퓨타의, 마스터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다시 한번 듣는 순간, 입을 쩍 벌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아니 지금, 다, 당신이…… 라퓨타의 관리자라는 말이에요, 지금—?”
“맞아요. 4차 웨이브의 보상으로 얻었죠.”
그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아, 와…… 생각보다 당신, 더 대단한 사람이구나…… 그렇다면……."
"마법공학도시, 아직 그곳에 가보진 못했지만, 곧 그걸 이용할 생각입니다.”
"아…… 내가 생각한 것보다, 우리의 비밀 조직이 더 큰 것 같네요?”
라퓨타가 마법공학연구에 엄청난 진척을 보여줄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이현욱은 그 미래 기술의 선두에 설 생각이었고 그를 위해서는 ‘인력’이 필요했다,
에밀리아는 멍한 표정으로 위스키를 한 모금, 아니 두 모금 넘겼다.
“후— 그래요, 알았어요. 그 정도 문제라면…… 힘 좀 써야죠.”
그래, 세인트 돔의 총재 정도라면, 어렵지 않게 처리해줄 만한 문제였다.
"후…… 여러모로 오늘 심장 뛸 일이 많네요…… 또, 제가 뭘 하면 될까요?
"그 다음은 그냥…… 제가 연락을 드릴 때까지 세인트 돔에서 절대 나오지 마세요.”
"음…… 그거야, 제가 제일 잘하는 거죠.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 아니에요?”
"맞아요. 일단은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지 마시고…… 내부 점검을 하세요. 에밀리아 뮐러의 최우선 목표는 생존, 그걸 명심하시고, 맑은 정신을 위해서 술은 적당히 드시죠.”
에밀리아는 피식 웃더니 기어이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켰다.
“크— 그런 목표를 가질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노력할게요.”
이현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에 너무 오래 있었네요. 이제 슬슬 나가야겠습니다.”
"그래요. 제가 비밀 연락망 마련할 테니, 계속 연락 주고받죠.”
"예, 그것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때, 그녀가 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이현욱에게 내밀었다.
"자, 이거 받아요.”
- 세계수의 황금 이파리(특수)를 획득했습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세계수의 황금 이파리(특수)
- 효과 : 1 회에 한하여 10초간 ‘무적’ 상태가 됩니다.
이번에는 이현욱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건, 차드 공화국에서 유출을 절대적으로 막고 있는 아이템 아니에요?”
차드 공화국은 세계수와 관련된 여러 부산물—나뭇잎이나 가지 등을 독점하여 특산물로 수출한다. 그렇게 벌어들이는 수출액이 매년 수십 조에 이를 정도였다. 그렇기에 해당 상품들의 전부 정부 차원에서 특별 관리하며 불법 밀반출은 아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이 정도는 줘야지, 염문이 좀 돌고, 나중에 자연스럽게 접선하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에밀리아가 싱긋 웃어 보였다.
이현욱은 군말 없이 받아 들었다.
이건 값을 책정하기 힘들 정도로 상당히 희귀한 아이템이었다.
‘에밀리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조력자를 얻었다.’
당연하게도 빌런은 계속해서 그녀를 노릴 테지만, 어떻게든 그녀를 보호하여 함께한다면, 분명 상당한 무기가 될 것이었다.
***
악마 소환 저지와 성녀 암살 미수 사건, 그날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또 한 번의 끔찍한 위기를 넘긴 서울은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성녀 일행은 안전하게 세인트 돔으로 복귀했으며, 이현욱 역시 부대로 복귀했다.
뉴스에서는 여전히 그 문제를 소란스럽게 다루어 댔지만, 곧 사그라들 것이었다.
그러나 우성문을 필두로 하는 정부의 방첩기관은 그 어느 때보다 바빴다.
서울을 공격하는 테러 집단은 실체를 알아내지 못했으니 쉴 틈이 있을 리가 없었다.
우성문은 집무실에 앉아서 각부서장들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여전히 테러리스트들의 입국 경로가 추적되지 않고 있습니다. 역시나 그들 전원이 그림자 남작의 스킬을 이용한 거로 추정되며, 추적할 방법이…… 사실상 전무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생포했던 테러리스트들 역시 전부 잠재 주문 때문에 사망했습니다. 시체의 신원을 조회했는데, 죄다 중남미 플레이어 카르텔의 말단 조직원으로 나왔습니다.”
어떤 집단인지는 몰라도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하여 극악무도한 처방을 해둔 상태였다.
"중남미 각국에 협조 요청을 했습니다만, 아직 대답이 돌아온 국가는 2곳뿐입니다.”
우성문은 이렇게 회의적인 조사 결과를 보고 받을 때마다,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현욱.......'
그는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놀라운 기지로 정답을 찾아냈다.
그리하여 서울을 세 차례나 구해냈다.
그건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로, 우성문이 직접 목격한 바였다.
‘심지어 그 오키타 카이토를…… 1대1 대결에서 꺾었다.’
그 사실은 실로 경악스럽기 그지없었다. 한국 랭킹 4위의 국표성을 죽인 검객을, 아직 랭킹에도 없는 신예가 그것도 두들겨 패서 반쯤 죽여 놓다니, 아직도 믿을 수 없었다.
그 모든 면이 대단했지만, 우성문이 이현욱을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심지어 후긴이라는 절대적인 감시 아이템의 유일무이한 운용자이기도 하다.’
그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는 걸, 지난 며칠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여러 차례 정식적으로 정부를 위해 일해주기를 요구했으나…… 칼 같이 거절당했다.
‘정말로 프리랜서, 그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만 협조하겠다는 건가…….'
그가 ‘이벤트 맵’을 발견하고 우성문과 만났을 때, 프리랜서 블랙 요원이 되겠다고 했다.
정부의 힘을 끌어다 쓰면서 정부 소속은 되지 않겠다는…… 실로 웃기는 소리였다.
그때는 위급한 상황이었기에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었다만, 지속해서 그 조건을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외부인에게 정부의 특급 권한을 쥐여주는 건 말도 안 됐다.
'그런 걸 요구하는 건 어떤 야심이 있는 건가,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이 있는 건가…….'
하지만 우성문은 이현욱의 속내가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가 대한민국의 적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우성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나라의 안위,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나라의 안위가 수차례 흔들렸다.
그 위기는 여전에 불과할 것이란 걸, 그는 직감했다.
‘미래에 닥쳐올 위기를 위해 방도가 필요하다.’
그 방도 중 가장 강력한 건 역시나 이현욱이라는 걸, 그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현욱이 앞으로 더욱 중요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우성문은 예상하였다.
그 이유는…….
"이 팀장, 라퓨타 쪽은, 별다른 소식 없나?”
"아, 예! 여전히 접근 불가 상태라고 합니다.”
서울 상공에 떠오른 초대형 오브젝트, 마법공학도시 라퓨타…….
그것이 출현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건만, 여전히 진입조차 못 하는 중이었다.
‘접근 불가, 이건 세계수가 처음 등장했을 때와 같은 현상이다.’
세계수가 차드호에 처음 탄생했을 때, 결계 때문에 2km 방면으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때, 세계수의 관리자라고 불리게 될 S등급의 정령술사, 도널드 해리스가 나타났다.
그가 특별한 권한을 사용하여 접근 금지를 해제한 뒤에야 세계수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라퓨타’의 입장 권한은 4차 웨이브의 최대 공신이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이현욱이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이현욱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실장님! 방금, 이현욱 병장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그게, 영 이해가 안 가는데…… 오키타 카이토의 위치를…… 추적했다고 합니다.”
이교준 팀장의 보고에, 우성문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뭐? 대체 어떻게……."
"그게, 지난 전투 당시에 추적 장치를, 어떻게 심은 모양입니다.”
설마, 이번에도 이현욱이 실마리를 전해주는 것인가…….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오랜 시간 고민하고 있던 어떤 고민에 결단을 내렸다.
"……이 팀장, 길게 끌 것 없이 지금 당장 남산의 1대대로 간다.”
“아, 예, 알겠습니다. 김강석 중령한테 연락해두겠습니다!”
그는 코트를 걸치다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리고 후긴, 그걸 꺼내서 가져오라고 해.”
“……예?”
"그 대단한 걸 창고에 처박아두면 뭘 하겠나? 쓸 수 있는 사람에게 넘겨줘야지!”
***
제3항마여단 1대대의 화력훈련장, 이곳은 각종 마법을 테스트하는 장소였다.
그곳에 이현욱을 비롯한 5분대원들이 모여서 스킬 훈련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현욱이 사로(射路)에 서 있었다.
그가 천천히 양팔을 들어 올렸다.
우우우우——
그에 따라 무려 10대의 '공중투하장치(프로토타입)’이 동시에 하늘로 치솟았다.
그것들은 고고하게 떠 있는 장면은, 어딘가 모르게 신비하게 느껴졌다.
“와……."
"무슨, UFO 전단 같습니다.”
모두가 감탄하는 가운데, 이현욱도 내심 기대감이 들었다.
‘좋아, 단 2대를 사용했을 때만 해도 화력이 엄청났는데, 10대라면…….'
며칠 전, 2대 만으로 수십 명의 괴한을 휩쓸어버렸다.
"아이고 참, 내 정신이야!”
이 목소리는 강정두였다. 그는 이현욱의 요청으로 10대의 공중투하장치를 가지고 부대 안으로 들어왔다. 이걸 테스트할 공간은, 부대 뿐이였기 때문이다.
"그, 저번에 요청해주신 사출 장치도 탑재했습니다.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아, 감사합니다. 지금 한 번 바로 써보죠.”
쇠 구슬을 그냥 쏘는 게 아니라, 마법적인 힘으로 강력하게 쏘아 보낼 수 있는 장치, 이현욱은 그런 걸 공주투하장치에 달아달라고 부탁했고, 며칠 만에 완성이 된 것이었다.
- ‘공중투하장치(프로토타입-2)’와 ‘동기화’되었습니다.
* 사용 가능한 작업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아이템 보관
2) 아이템 출고
3) 마법 사출
이현욱은 3번째 기능 ‘마법 사출’을 10개의 공중투하장치에 동시다발적으로 부여했다.
그러자— 박스의 하단부가 열리더니, 굉음이 터져 나왔다.
투—두—두—두—두—두——!
마법적인 힘에 의해, 쇠 구슬이 총알처럼 쏘아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흡수 중기관총 세례 같은 모습이었고,
퍼—버—버—버—버—버——!
저 멀리, 흙산의 일면에서, 마치 수천 발의 기관포를 갈긴 것처럼, 모래 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저곳에 만약 몬스터가 있었다면, 전부 다 고깃덩이로 변했을 만한 파괴력이었다.
"와…… 이현욱 병장님, 이제는 거의, 일인 기갑부대 수준이십니다.”
안민태가 그렇게 말했다.
그래, 조금 과장해서 단신으로 기갑부대와 같은 화력을 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때, 2분대 일병 한 명이 화력훈련장 입구 쪽에 서서 소리쳤다.
"—이현욱 병장님, 대대장님 호출입니다!”
이현욱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양손을 천천히 내렸다.
우우우우——
10개의 공중투하장치가 한쪽에 정차되어 있던 트레일러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어르신, 제가 일이 있어서 그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언제든지 편하게 불러주십시오! 저는 이 장군님 사람 아니겠습니까?”
"하하— 동등한 사업 파트너 관계죠.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이현욱은 곧장 대대장실로 갔다.
그곳에는 예상한 대로 우성문 실장이 와 있었다.
“……이현욱 병장, 그게 정말입니까?”
소파에 앉아 있던 우성문 실장이 벌떡 일어나며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다.
“오키타 카이토한테 추적 장치를 심어두셨다는 게, 정말입니까?”
우성문은 정부의 방첩 작전의 책임자로서 테러리스트 조직을 추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현욱의 연락을 받은 것이었다.
"예, 맞습니다. 제가 오키타 카이토와 몸싸움을 벌일 때, 제 전속 대장장이가 개발한 마법공학 장비를 넣어뒀습니다. 이제야 그 위치가 파악되어서 늦게 연락 드린 점, 죄송합니다.”
그림자 남작이 오키타 카이토를 끌고 갈 때, 놈의 주머니에 ‘플라이 아이’를 넣었다.
이후, 강정두에게 부탁하여 그 플라이 아이가 방출하는 마나 패턴을 추적해달라고 했다.
그 결과, 놈들이 ‘그림자 링크’ 한 위치가 찍혔다.
‘그것도 내심 바라던 위치였다.’
이현욱은 김강석을 바라보았다.
“4차 웨이브 당시부터 저는 태산 길드를 쭉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아, 설마……."
"예, 놈의 마지막 위치는 태산 길드의 사옥, 지하입니다. 이틀 전 위치인 만큼, 놈이 그곳에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놈들과 태산 길드와의 연관성이 입증된 것 같습니다.”
우성문과 김강석, 두 사람 모두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산 길드는 빌런의 전초기지다.’
4차 웨이브 이전의 대한민국은 아직 빌런에게 잠식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4차 웨이브를 겪으며 여러모로 무너진 사이에, 빌런들이 파고 들어와 모든 걸 장악하게 됐다.
이제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즉, 태산을 도려낸다면, 우리나라에 대한 빌런의 입김이 확연히 줄어들 거다.’
한편, 우성문 이현욱을 말을 들은 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턱을 만지작거렸다.
"역시, 이현욱 병장 당신은…… 어딘가 달라도 다르군요.”
그러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이현욱 병장이 원하시는 대로 프리랜서 계약을 합시다.”
"예?”
"이 나라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 추적을 위한 특수비밀경찰국을 창설할 예정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건, 지난 작전 직후 반납했던 아이템 ‘후긴’이었다.
"그 비밀 기관의 계약직 국장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
"계약이 성립되고 계약이 유효한 한, 후긴은 당신 겁니다."
의외의 힘이, 저절로 굴러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