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 서울, 악마, 성녀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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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을 벗어나는 공격은 언제나 유효하다.
허를 찌르는 타이밍, 적이 모르는 전술, 새로운 개념의 병기 등,
생소한 방법을 통하여 공세를 펼칠 때 적은 대응 능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를 상대하는 것, 즉 PVP는 상당히 까다로운 영역이다.’
한 번 공략한 몬스터는 ‘레이드’ 공략 전략이 수립되어 재차 대응이 쉽다만, 플레이어는 창의적인 스킬—아이템 조합을 준비하기에 예상 밖의 상황이 자주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 남작의 기상천외한 포탈 스킬이 언제나 먹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이현욱의 양손에서 ‘공중투하장치’가 솟아나 하늘로 떠올랐을 때, 성녀를 향해 달려들던 수십의 괴한들은 저도 모르게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뭐야?”
그들로서는 난생처음 보는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
쉬—쉬—쉬—쉬—쉬——!
가 10개의 쇠 구슬이 터져 나와 자신들을 향해 날아들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어?”
"젠장, 피해!”
마치 십여 개의 산탄총이 12게이지 탄환을 일제히 뿜어낸 것처럼, 경악스러운 장면이었다.
"억!"
"컥!"
그 공격에 괴한 중 절반가량이 피를 보고야 말았다.
‘그러나 쇠 구슬만으로는 저 정도 수준의 플레이어들을 리타이어시킬 수는 없다.’
화약 폭발을 이용한 추진을 얻는 총알 만큼의 파괴력을 바라는 건 무리였다.
물론, 통상 병기의 탄환과 다르게, 이 마법 금속으로 만들어진 쇠 구슬은 몬스터와 플레이어에게 적용된 ‘배리어’라는 가장 기본적인 방어막을 무력할 수 있다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뿐일 뿐, 솔직히 ‘살상력’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다.
그건 그 누구보다 이현욱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첫 번째 공격에서 가장 중요한 건 놈들의 시선을 흔드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놈 중 다수가 쇠 구슬을 경계하며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가렸다.
진짜 공격은 지금부터였다.
이현욱은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울리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기울였다.
그러자 쇠 구슬이 허공에서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절반은 아래로 절반은 위로 움직였다.
다시 말해, 놈들의 발아래와 머리 위에 그것들이 위치하게끔 했고, 이어서…….
"파쇄!”
퍼—버—버—버—버—버——!
지름 4.5cm의 쇠 구슬들이 일제히 폭발했다.
바닥에서 지뢰 수십 개가, 허공에서 수류탄 수십 개가 동시에 터진 것만 같은 장면, 놈들은 쇳조각으로 샤워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 내, 내 눈—!”
"윽, 다리가, 다리가……."
오직 오키타 카이토만이 그 공격을 감지해내고 뒤로 도약하며 검을 휘둘렀다.
훙——!
검풍이 일며, 그를 향해 날아들던 쇳조각들이 죄다 날아갔다.
그러나 그 정도로 예리한 대응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괴한은 없었다.
놈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이현욱의 허리춤에 페일노트가 쏘아졌다.
쉬이이——!
마법 화살이 혼란 속을 헤집으며 놈들의 목덜미를 차례차례 꿰뚫었다.
푹— 푹— 푹— 푹—
페일노트는 쇠 구슬과 달리 확실한 살상력을 보유한 아이템, 개중에는 마법 보호막으로 쇳조각을 막아낸 놈도 있었으나 ‘마법 저항력’을 무시하는 페일노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게 단 3번의 연계 공격만으로 어느새 절반이 고꾸라졌다.
"아니,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벌써 절반이나 자버리면 어떡해?”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감지 대상은 2개의 공중투하장치, 그 안에 각각 30개씩, 총 60개의 무기가 들어 있다.
- '공중투하장치(프로토타입)—소형 아공간 생성 장치’와 ‘동기화’되었습니다.
* 사용 가능한 작업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아이템 보관
2) 아이템 출고
이현욱은 ‘마나 연결’된 상태였기에 직접 접촉하지 않더라도 ‘아공간’을 이용할 수 있었다.
- 1번 소형 아공간 장치 (보관 중인 아이템 : 60)
* 모글레이(영웅)
* 아킬레우스의 창(영웅)
* KG19(고급)
[……외 57개 품목]
- 2번 소형 아공간 장치 (보관 중인 아이템 : 60)
* KK11 (일반)
* 평범한 장검 (일반)
* 단단한 창 (일반)
[……외 57개 품목]
상세 내용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는 그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끄집어냈다.
위이이이——
공중투하장치의 바닥 면에 아공간 포탈이 열리며, 온갖 무기가 와르르 낙하하기 시작했다.
훙— 훙— 훙— 훙—
그것들은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방향을 틀며 허공에 도열했고,
마치 출발 선상에 선 포뮬러카처럼,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기세로 부르르 떨어댔다.
이현욱은 그중에서 딱 1개, 아킬레우스 창만을 회수하여 왼손에 ‘각인’으로 넣었다.
그리고는, 양손을 앞을 뻗어 출발 신호를 내리는 순간,
쉭—쉭—쉭—쉭—쉭——!
총 59개의 무기가 수평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 중심에는 거검 ‘모글레이’가 있었다.
퍼—버—버—버—벅——!
그 거대한 쇳덩이는, 단 한 번의 직선 움직임만으로 6명을 반 토막 내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58개의 무기도 제각기 목표물을 찾아서, 뾰족한 머리로 들이받았다.
푹—푹—푹—푹—푹—푹——!
마치 기관총 소사에 당하는 보병처럼, 수십 명이 우르르 고꾸라졌다.
그 모습에 피터 클라크를 비롯한 하이가드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 말도 안 돼……."
"저 많은 무기를 대체 어떻게 저렇게 자유자재로……."
분명 단신으로 ‘틈’을 지키고 있건만, 그 화력은 마치 수십 명을 합한 것과 같았다.
그렇게 적 수십 명을 유린하면서도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정말로, 혼자서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피터는 이현욱의 등을 바라보며 손에 땀이 맺히는 걸 느꼈다.
‘그래, 부디…… 내가 자네를 과소평가했다는 걸 증명해주기를…….'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이현욱의 맹렬한 공세가 끝이 났다.
그의 화망 속에 살아 움직이는 건 없었으며 어느새 피바다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제는 이현욱과 오키타 카이토, 두 남자만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부터가 진짜다.’
피터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현욱이 수십 명을 단숨에 쓸어버렸다고 한들, 오키타 카이토를 막지 못하면 소용없었다.
아니, 애초에 나머지는 놈이 성녀에게 접근하기까지 시간을 벌어줄 미끼에 불과했다.
챙——!
그 순간 울린 단 한 번의 충돌음, 이현욱이 선공에 나선 것이었다.
그는 페일노트를 움직여 오키타 카이토의 등 뒤를 노렸으나, 놈은 아주 쉽게 쳐냈다.
‘역시, 이런 얕은수에 당할 놈이 아니지…….'
이현욱은 구태여 거검 모글레이를 움직이지 않았다.
오키타 카이토 정도 되는 실력자라면 그렇게 둔탁한 공격에 맞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다수의 금속을 조종하여 놈에게 날리는, 그의 주특기도 선보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 쪽에 신경 쓰다가는…… 순식간에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
저런 최고의 검객을 상대할 때는 다수의 금속을 부리는 게 오히려 독이 된다.
공격에 집중하기보다는 한 수, 한 수, 방어에 몰두해야지만, 목덜미를 지킬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현욱은 ‘후긴’의 통한 감각 폭증을, 오직 오키타 카이토에게만 집중했다.
“이봐! 여유 부릴 시간이 없는데, 아까 5분이 남았다는 내 말 못 들은 건 아니겠지?”
저 뒤에서, 그림자 남작이 그렇게 소리쳤다.
단신으로 정부 측의 지원 병력을 막고 있는 게 서서히 버거워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서 있는 배신자, 카를로스 벨포트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오키타 카이토는 여전히 여유가 넘치는 표정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저놈에 대한 분석은 끝났으니 단 한 번만 휘두르면 끝날 거다.”
대놓고 일격에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만큼, 아공간발도술을 믿고 있다는 뜻이다.’
그건 전대 검성 국표성을 비롯하여 수많은 강자의 목을 벤, 사기적인 ‘기만술’이다.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대응할 수 없는 메커니즘…….
'하지만 나는 그 원리를 잘 알고 있다. 그게 실패하는 순간, 놈은 당황할 거다.’
이현욱은 이미 오른손에 운사암수를 쥐고 있었으나, 한 자루의 검을 더 뽑아 들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오키타 카이토가 돌연 눈살을 찌푸렸다.
“하, 이도류라니…… 웃기고 있군, 너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나?”
자신을 상대로 2개의 검을 뽑아 든 게 영 기분이 나쁜 듯했다.
"칼이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놈은 그 말을 끝으로 바닥을 박찼다.
탁—
단숨에 수 미터가 좁혀진다.
이현욱은 양손, 두 개의 검을 들어 올리며 한쪽 발을 뒤로 뺐다.
바로 그 순간— 놈이 칼날이 이현욱의 오른쪽 목덜미를 향해 날아들었고,
이현욱은 오른손의 검, 운사암수를 들어 올려 막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무기 간의 충돌은 없었다.
웅—
놈의 검이 일순간 아공간으로 사라지더니 운수암수를 통과하여 다시 현현했다.
그렇게 이현욱의 목덜미에 놈의 칼이 닿기 직전—
채—앵——!
의외의 충돌음이 울렸다.
"—뭐?”
운사암수를 통과한 오키타 카이토의 비수를 막아낸 건 이현욱의 두 번째 검, KG19였다.
"네놈, 대체 어떻게……."
"왜? 이도류 처음 봐?”
으레 무기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면 막았다고 생각하고 다음 수를 준비한다.
그게 인지상정이었다.
그렇기에 검을 '통과’하여 베어버리는 오키타 카이토 이 일격에 모든 검객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현욱은 마치 알고 있다는 듯, 양손의 검을 동시에 움직여 같은 곳을 방어했다. 그리하여 1개를 통과했지만, 나머지 1개에 걸리고 말았다.
‘그 찰나의 순간에 아공간을 2번 연속으로 활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오키타 카이토는 한 걸음을 물러서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너…… 정체가 뭐냐?”
놈은 최대한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얼굴 근육이 꿈틀거리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그건 열이 받았다는 뜻이었으며 달리 말하자면…… 당황했다는 뜻이었다.
이현욱은 여유 넘치게, 피식 웃어 보였다.
"이거야 원, 검성이 아니라 무슨 야바위꾼이었군?”
그가 그러게 빈정거리자, 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라고, 지금? 야, 야바위……."
"이런 조잡한 사기를 치면서, 검성은 무슨…… 양심은 있냐?”
“……지금 당장, 찢어 죽여주마!”
놈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 달려들어, 이현욱의 머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챙——!
이번에는 두 칼날이 아주 정직하게 부딪쳤다.
‘이건 일부로 부딪힌 거다.’
이현욱은 직감했다.
‘그래, 다음 일격은 반대쪽 손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쪽을 향해 눈을 돌리지 않았다.
'눈치챘다는 걸 놈이 알면, 다른 수를 꺼낼 테니—’
사실,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후긴’의 감각 확장 덕분에 느낄 수 있었다.
놈의 오른손이 허공을 움켜쥐었고, 아공간에서 한 자루의 카타나를 뽑아 들었다는 것, 그리고 이현욱의 왼쪽 목덜미를 향해 벼락같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까지—세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현욱은 그 공격을 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검 대 검의 대결이 이어지면, 이현욱에게 좋을 게 없었다.
즉, 승부수를 띄워야만 했다.
‘받고, 친다.’
그는 왼팔에 쥐고 있던 KG19를 허공 놓아버린 뒤, 왼팔에 모든 강체화를 집중하고 손바닥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잡았다. 한쪽 팔로 머리 전체를 감싸는 격투기의 ‘블로킹’ 자세였다.
펀치를 막는 기술인 만큼 무기를 막을 때 이런 자세를 취하는 건 미친 짓이겠다만…….
‘몸이 강철같이 단단하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까— 강——!
놈의 칼날이 이현욱의 ‘하박’에 내리박히며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큭—"
생각보다 강한 데미지, 강체화가 으스러지며 칼날이 이현욱의 근육을 찢어발겼다.
다행히도 거기까지였다.
강체화가 워낙 두꺼운 탓에 팔이 통째로 잘려나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내 차례다!’
직후, 바닥을 향해 자유 낙하하던 KG19, 그게 놈의 하체를 향해 쏘아졌다.
이번에는 이현욱의 기만술 ‘히든 소드’였다.
그러나 놈은 엄청난 반응속도로 발을 뒤로 빼며,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아니, 아직 한 발 더 있다!’
시이이——
조금 전, 오른쪽 손목에 각인해둔 아킬레우스의 창,
그것이 튀어나오며 놈의 복부를 노렸다.
놈은 역시나 그 일격을 포착하는 데 성공, 다급히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거듭된 ‘의외의 수’에 이미 집중력과 자세가 흐트러진바—
촥—!
아킬레우스의 창이 놈의 옆구리를 긋고 지나가는 데 성공했다.
“윽!”
놈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그러나 등 뒤에 무언가 떨어지며 놈의 퇴로를 막았다.
쿵——!
그건, 공중투하장치였다.
"젠장!”
또 한 번의 의외의 수, 놈의 눈빛이 뒤흔들렸다.
놈은 왼쪽으로 스텝을 밟았으며 빠져 나가려고 했다.
그때, 놈의 머리를 향해 운사암수가 날아들었다.
챙——!
당연하게도 놈은 손쉽게 그걸 쳐냈는데…….
"어?”
그걸 휘두른 건 이현욱이 아니었다.
금속 통제력으로 휘두르는 척을 했을 뿐.
‘내가 이걸 놓치다니—!’
놈은 다시 한번 당황했다. 평소였다면 당연히 눈치챘을 만한 일이었다.
이현욱은 그렇게 일종의 ‘페이크 모션’을 준 뒤에 바짝 달려 붙어, 놈의 양쪽 겨드랑이 아래로 양팔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놈의 상체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일명 ‘언더훅(underhook)’ 자세였다.
이렇게 되면 놈이 양팔이 완전히 봉쇄되고 만다. 특히나 칼날이 밖으로만 나 있는 도(刀)의 특성상 더욱이 공격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큭, 이게 뭐 하는 짓거리야!”
놈은 양팔을 봉쇄 당한 채 아등바등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건 ‘폼멜’로 이현욱의 등을 찍는 것뿐이었다.
"……내가 언제 너랑 칼로 싸워준다고 한 적 있나?”
이현욱은 놈의 몸 번쩍 들어서 땅바닥에 내리찍었다.
뻐—억——!
엄청난 충격에, 놈은 칼을 놓치고 말았다.
여기에서부터는 검객 간의 대결이 아니라 사실상 격투기의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이현욱은 놈의 몸 위에 올라타서 물 흐르듯 움직이며 순식간에 암바(Armbar)를 걸었다.
“으으으——!”
팔을 꺾는 기술, 오키타 카이토는 그걸 방어할 격투기 지식이 전혀 없는 듯했다.
으적——!
결국, 놈의 팔이 꺾이며 뼈가 피부 밖으로 튀어나왔다.
"으아아아——!”
이현욱은 다시금 놈의 상체에 올라타서 파운딩을 날리기 시작했다.
뻑! 뻑! 뻑 뻑!
놈의 몸에는 ‘강기’가 둘려 있었으나, 강체화가 걸린 주먹질을 버틸 수는 없었다.
“커— 억— 컥—"
한 방, 한 방, 이현욱의 파운딩이 놈의 안면에 적중할 때마다 놈의 얼굴에서 피가 터졌다.
"마, 말도 안돼……."
그 장면을 지켜보는 카를로스는 입을 찍 벌린 채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안 돼, 이 순간을 무려 4년을 기다렸는데……."
성녀가 죽기는커녕…… 검성이 죽어가고 있었다.
뻑! 뻑! 뻑 뻑!
그렇게 검성이라는 거물이 주먹질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역사적인 순간—
촤— 좌— 좌— 좌——!
어디선가 그림자가 기어오며 검은색 송곳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이현욱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다음 순간, 그 그림자가 오키타 카이토를 감싸 안더니, 어디론가 끌고 갔다.
“하— 젠장, 검성……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야……."
그건 그림자 남작이었다. 그가 오키타 카이토를 구출한 것이었다.
"씨발— 일이 망해도 아주 멋지게 망해버렸잖아, 응?”
"아, 아니야…… 아직 뚫어낼……."
놈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퉁퉁 불은 눈으로 이현욱을 노려보았다.
이현욱은 그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방금 널 이겼지만…… 검으로 이긴 게 아니니까, 검성은 네가 계속해도 돼.”
"대신, 나는 이제부터…… 검성 구타자다.”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건, 기념품으로 내가 가진다.”
그건, 이빨이었다.
오키타 카이토는 얼이 나간 표정으로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입안을 더듬었다.
이빨 몇 개가 사라진 상태였다.
“으으…… 주, 죽여 버리겠……."
하지만 그림자 남작이 검성을 구출했다는 건, 후방을 지키는 걸 중단했다는 뜻이었다.
"—어서 움직여!”
이내 정부 측 요원들이 ‘세인트 파크’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젠장, 아주 꼬여도 단단히 꼬여버렸잖아……."
그림자 남작은 오키타 카이트를 부축한 채, 정체불명의 탈출 기술을 사용하여 사라졌다.
“어— 자, 잠깐—!”
그렇게 외치는 건 카를로스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머리가 터졌다.
빌런 측에서 필요 없어진 놈을 제거한 것이었다.
***
- 해당 지역에 홀리 필드가 전개됩니다. (100%)
그런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백색 빛이 서울 전역을 뒤덮었다.
그리고, 북쪽 하늘, 도봉산 인근에 피어나 있던 붉은색 구름이 녹듯이 사라졌다.
예상대로 홀리 필드가 전개되자 악마 소환이 저지된 것이었다.
"콜록! 콜록! 으……."
에밀리아 뮐러가 모든 힘을 다 소진한 듯,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피터가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피, 피터…… 빠, 빨리, 술 좀……."
정신을 차리자마자 술부터 찾는 모습에, 피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밀리아, 정신 차려요. 방금 정말로 위험했습니다.”
“……네?”
"이현욱, 저 사람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끝장났을 겁니다.”
그 말에 에밀리아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아......."
그녀의 눈앞에 끔찍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방이…… 온통 피바다였다.
그제야 피비린내가 코를 찔러옴에, 그녀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아, 결국, 정말로……."
그녀는 그렇게 시선을 돌리다가 이현욱과 눈이 마주쳤다.
“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현욱이 자신의 부탁을 완벽하게 들어주었다는 걸.......
“……어, 다쳤어요?”
이현욱의 왼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도 조금이 아니라, 그야말로 줄줄 새는 정도였다.
그녀는 서둘러 달려가 이현욱의 왼팔을 붙잡았다.
"아, 괜찮……."
"아니요. 이건 내가 더 잘 알아요. 안 괜찮은 상처예요.”
웅——
힐, 그것도 무려 성녀의 힐이었다.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안 됩니다, 에밀리아! 지금 그 상태로 신성력을 더 쓰다가는 위험합니다!”
피터가 말렸으나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피터, 난 괜찮아요.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다 죽었을 거라면서요.”
"......."
오랜만에 진지한 에밀리아의 모습에 피터는 뒤로 물러났다.
"맞습니다. 사실상 이 사람이 또 한 번 서울을…… 그리고 우리까지 구했습니다."
피터는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부끄럽게도, 당신을 의심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씁쓸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젠장…… 전부 제 불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렇게 모두가……."
"피터, 아직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죽은 단원들, 우선 세인트 돔으로 옮겨요.”
"아, 설마……."
"세계수의 힘을 빌리면…… 몇 명은 살려낼 수 있을 거예요.”
망나니 에밀리아 뮐러가 아주 멀쩡한 눈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게 가능…… 하겠습니까?”
"힘들겠지만, 가능할 거예요.”
성녀와 세계수의 조합이라면, 시체가 심하게 손상되지 않는 한 부활시킬 수 있었다.
다만, 망나니 에밀리아 뮐러가 아니라, 정신이 제대로 제대로 박힌 성녀라면…….
피터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는 지금, 아주 또렷했다. 괜스레 이질감이 들 정도로.
“……예, 알겠습니다.”
피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현욱을 한 번 쳐다본 뒤 물러났다.
그렇게 단 둘이 남게 되자 에밀리아가 이현욱을 올려다보았다.
“……내 도박, 성공했네요. 당신 말처럼요.”
"예, 여러모로 운이 좋았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이렇게……."
그녀의 눈에 두려움이 얼핏 서렸다. 정말 다행히도 암살 시도를 막아냈지만, 자신이 정신이 없는 사이에 이런 참사가 벌어졌다는점에서 마음이 안정될 리가 없었다.
"고마워요…… 사실 나, 반쯤 포기하고 있었어요.”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에밀리아, 솔직히 당신은 나한테 큰 빚을 졌어요.”
"아, 그럼요…… 아주 큰 빚이죠. 값을 수 없을 정도로요.”
"그래서 당신한테, 이제부터 몇 가지를 부탁할 겁니다. 당연히 들어주겠죠?”
그녀는 고개를 거듭 끄덕였다.
"물론이죠. 뭐든 말만 하세요.”
이현욱은 주변을 한차례 둘러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비밀 조직 하나를 만들죠.”
"네? 비밀 조직이라면, 무슨……."
에밀리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현욱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아주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을 생기지 않도록, 그 근본을 제거하기 위한 팀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