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67화 (67/221)

67화.  < 서울, 악마, 성녀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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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이 첫 번째 포탈에 진입한 지 1시간이 지났다.

- 칙— 서울 전역에 생성된 ‘이벤트 맵’ 20개 지점 식별 및 포위 완료, 명령 대기 중—

그 무전을 들은 직후, 우성문이 마나 메신저를 들어 올렸다.

“……지금부터, 섬멸 작전에 들어간다.”

빌런이라는 비밀 집단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은밀함’이었다.

자신들이 세상을 갉아먹고 그 자리에 알을 까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하여 자신들이 세력이 세상을 뒤덮을 때를 기다리는 것, 그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무언가를 쟁취해야만 하는 순간도 있는 법이었다.

그럴 때를 위하여 전면에 내세울 수 있는 ‘잘라낼 꼬리’를 마련해 두고 있었으니…….

흔히 반사회적인 테러리스트 조직의 알려진 ‘아웃라이어(Outlier)’도 그중 하나였다.

“……씨발, 지부장님은 왜 우리한테 이딴 임무를 시키신 겁니까?”

"홀랜드, 입 닥치고 그냥 해, 어차피 다 끝나가잖아.”

"아니 그래도 우리가 광부도 아니고 벌써 사흘째, 볕도 안 드는 곳에서 이게 뭔지……."

그리고 이번 ‘악마 소환’의 채굴 작업에 동원된 플레이어들 역시 아웃라이어 조직원이었다.

그들은 본디 남미를 주 무대로 활동하며 마약 밀매나 인신매매를 일삼는 부류였다.

그런데 3일 전, 윗선의 지시를 받은 뒤 난데없이 ‘그림자 링크’를 통해 이곳에 보내져서 이렇게 3일 내내 채굴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실로, 노예가 된 기분이 아닐 수 없었다.

"하, 염병…… 그런데 대체 여기는 어디랍니까? 어디 태평양 밑바닥은 아니겠죠?”

"홀랜드, 너 진짜…… 빌리가 괜히 말 안 해주는 것 같아? 다 이유가 있을 거다.”

이처럼 이들은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있을 뿐, 빌런이라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 현장의 리더, 아웃라이어의 간부인 빌리 스미스만은 달랐다.

그가 바로 빌런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작업이 궁극적으로 뭘 의미하는지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성녀, 그 쌍년을 벌거벗겨서 길거리에 매달아 놔야 하는데…….'

그는 모종의 사건을 겪은 이후 성녀를 증오했다.

4년 전, 차드 공화국으로 마약을 밀반입하다가 적발된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순발력을 발후해 증거물이 될법한 물건은 모두 화염 마법으로 태워버렸으나.......

문제는, 그의 동료 몇 명이 ‘흑마법사’였다는 점에 있었다.

‘시발, 흑마법 계열이 악이라는 건 대체 누구 마음대로 규정해서…….'

마법사 계열의 경우 어떤 ‘트리거’를 통하여 흑마법 계열 스킬을 획득할 수도 있었지만,

많은 국가에서 흑마법을 악으로 규정하고 사용 혹은 보유를 법적으로 제한했다.

특히나 차드 공화국은 세계수의 땅인 만큼 반(反)흑마법 정서가 상당한 편이었다.

심지어 성녀, 그녀가 집적 나서서 흑마법을 익힌 플레이어를 고문하고 징벌한다는, 그런 이상한 정책까지 존재했고…… 빌리의 동료들 역시 그녀에게 ‘처단’ 당하고 말았다.

다행히도 당시의 빌리는 흑마법을 익히지 않은 상태였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개 같은 년, 올리닉의 눈알을 파낸 뒤 악마 같이 웃던 얼굴…… 잊히지 않는다.’

그때를 떠올리면 치가 떨렸다.

“후— 빌리! 작업 끝났습니다!”

어느새 마지막 재앙의 파편이 채굴된 것이었다.

"좋아, 연락하고 ‘그림자 남작’께서 오실 때까지 휴식한다.”

그런데 그때였다.

댕——

어디선가 울리는 종소리, 이벤트 맵 구석에 설치된 황동색 종이었다.

그러자 휴식에 돌입하려고 했던 조직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우뚝 멈춰 섰다.

"......."

감시자의 경종, 이 이벤트 맵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진입했음을 알리는 경계 아이템이었다.

즉, 절대로 울리면 안 되는 물건이었다.

빌리는 허리춤에서 완드를 뽑아 들며 고갯짓을 했다.

“야, 뭣들 하고 있어? 지금 당장 입구 틀어막고 무슨 일인지 확인해!”

감시자의 경종 외에도 입구 쪽에 카메라도 설치해 두었다.

그런데 그때, 입구를 막고 있던 탱커들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어? 이게, 뭐지?”

윙——

웬 작은 금속 구체가 긴 통로를 따라서, 이곳으로 천천히 날아오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 미지의 물체에 맺혔다. 그건.......아주 정교하게 다듬어진 금속 구슬처럼 보였다.

이내 탱커들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고 그들은 주춤거리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근데 이거, 별로 위험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냥…… 작은 구슬 같습니다.”

탱커 한 명이 그렇게 말하며, 그것을 방패로 툭툭 건드렸다.

삑—삑—삑—삑—

“……그리고 건드리니까 무슨 병아리처럼 좀 귀여운 소리를 냅니다.”

"아니야! 이건 병아리 소리가 아니라 어떤 카운트다운 소리잖—”

그 순간, 시퍼런 불빛이 터져 나오며, 탱커 다섯이 그 폭발에 휩쓸렸다.

쩌—엉——!

그 누구도 그 작은 물체에서 그런 파괴적인 힘이 방출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으아아—!”

그중 셋이 즉사했고 나머지 둘도 중상을 입은 듯 비틀거렸다.

"큭, 젠장— 습격이다!”

"정신 차리고 무기 집어!”

폭발 직후 피어오르는 뿌연 연기 속에서, 빌리는 고개 돌려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젠장, 홀튼! 빨리 상부에 연락해서 이 사실을 전파 해!”

"예!”

“그리고 다른 지점에도 습격 사실을 알려서, 혹시 모를 습격을 대비하라고 해!”

홀튼이라고 불린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나 메신저를 들어 올렸으나……

"억!”

단말마와 함께 홀튼의 동공이 풀리고 몸이 허물어져 내렸다.

그의 목덜미에는 검은 가시 같은 게 박혀 있었다.

이어서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연락해봤자 소용없을 거다.”

그리고 천장에서, 흐릿한 무언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이내 은신 마법이 풀리며 천천히 그 실체가 드러났는데…….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 이현욱이었다.

그가 빌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빌리의 두툼한 금목걸이가 마치 개목걸이가 된 듯 그를 앞으로 잡아끌었고, 이현욱이 성큼성큼 다가와서 빌리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컥—!”

“왜냐하면, 너희가 마지막이거든……."

“큭, 마, 마지막이라니, 그게 무슨……."

빌리는 경동맥이 압박당하는 순간에도 왼손의 완드를 휘두르려고 했다.

퍽——!

손목시계가 폭발하여 손목이 통째로 날아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으아아아——!”

이어서 빌리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던 이현욱의 손이 비틀어졌고, 빌리의 경추가 꺾였다.

빌리는 그렇게, 성녀의 최후라는 숙원을 이루지 못하고 허무하게 눈을 감았다.

그러는 사이에 천장에서부터 8개의 그림자가 쏟아져 내려왔다.

그것들은 우왕좌왕 흩어지는 조직원들의 머리 위로 마치 악령처럼 들러붙었다.

다음 순간, 조직원 11명의 목덜미에서 일제히 피 분수가 치솟았다.

촤아아——

그 그림자들이 정체는 암살자 계열 플레이어, 총 8명이었다.

“—클리어!”

그렇게 단 몇 초 만에 공동에 있던 괴한들이 모조리 제압되었다.

이현욱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그 장면을 쭉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비형랑팀이다. 깔끔하군.’

AMT비밀정보부서 <비형랑>의 특공대는 상당한 강자들이었다. B등급 이상의 플레이어들로 구성된 이 잠입 부대는 암살의 대가 천명호 준위의 직계 제자들일 것이었다.

'그리고 이 비형랑이라는 조직의 존재는 빌런들도 아직 모르고 있을 거다.’

그만큼 아주 은밀하게 심지어 대통령도 모르게 우성문의 주도로 조성된 비밀 조직이었다.

우성문은 앞으로는 정부나 기업이 아니라 플레이어 개인이 세상을 좌우하리라고 예측하고 절대적인 플레이어들을 견제할 목적으로 비밀리에 플레이어 이 암살 전문 조직을 육성했다.

그리고 조직의 보안을 위해서, 믿을 수 있는 요원을 선별하는 과정에 아주 공을 들이는데,

이현욱이 어디선가 흘려듣기로는 '주술’을 이용한 약간의 세뇌도 있었다고 했다.

‘우성문은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그런 비윤리적인 일은 감수하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때, 특공대원 중 한 명이 이현욱에게 다가와서 마나 메신저를 내밀었다.

"우성문 실장님의 마나 통신입니다.”

- 우성문 실장입니다. 현 시간 부, 모든 목표물 제압 성공했습니다.

이곳 외에도 다른 18개의 장소에서 이루어진 모든 급습 작전이 성공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 퀘스트가 진행 중입니다. 아마도 재앙의 파편을 파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월드 스톤을 파괴하여 게이트를 닿듯, 이 퀘스트 성공의 목표는 ‘재앙의 파편’이었다.

그리고 이현욱의 말처럼 그것들을 이벤트 맵 밖으로 꺼내와서 분쇄하자,

쿠구구구——

진동과 함께 이벤트 맵이 폐쇄되었다.

그런 작업은 20개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고, 이내…….

- 축하합니다! 이벤트 퀘스트 <악마 추격대>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진짜 끝났다.’

이현욱이 첫 번째 포탈로 진입한 지 단 1시간 40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총 19개의 이벤트 맵 동시다발적인 습격, 완벽한 성공이었다.

속전속결, 완벽한 대테러 작전으로 서울을 다시 한번 지켜낸 것이었다.

이어서 그의 눈앞에 보상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특성 개화(특수)를 획득했습니다.

* 획득과 동시에 귀속되는 아이템입니다.

'지난번, 웨이브 때 얻은 걸 쓰지 않고 가지고 있길 잘 했다.’

특성 개화 아이템은 2개를 융합하여 ‘2단계’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고,

그걸 사용하면 한 가지 스킬의 등급을 2단계 상승시킬 수 있었다.

- 지하 왕국의 고대 주화를 얻었습니다.

- 지하 왕국의 고대 주화를 얻었습니다.

- 지하 왕국의 고대 주화를 얻었습니다.

‘이게 왜 3개나…… 아, 슬슬 뿌려댈 때가 왔군?’

이는 곧 드워프 종족이 등장할 것이라는 일종의 암시였다.

이 당시에 이걸 얻은 플레이어들은 그저 잡템인 줄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 축하합니다! 특별한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새로운 업적이 추가되었다.

이현욱은 그 상세 내용을 확인하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업적 목록]

3) 서울의 구원자

- 조건 : 서울의 멸망 위기 2회 차단

- 효과 : 서울 지역 내에서 ‘모든 능력’ 대폭 상승 (+100%)

……모든 능력이 무려 2배나 상승한다.

서울에 한정된다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 수치였다.

‘서울의 구원자, 내가 이 칭호를 먼저 가지게 될 줄은 몰랐는데…….'

흔히 인페르노를 ‘부산의 구원자’라고 부른다.

그건 인페르노가 실제로 부산을 구해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부산의 구원자’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산에서는 인페르노의 능력이 2배가 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부산을 노리지 못했다.’

그렇기에 네크로맨서의 침공이 있기 전까지는, 부산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서울을 노리는 공격이 자주 발생할 거다. 아주 유리하게 됐군.’

- 현재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 : 302kg

* 초월 감각(+30%)이 적용 중입니다.

* 강골(+10%)이 적용 중입니다.

* 월드 보스 몬스터 슬레이어(+5%)가 적용 중입니다.

* 서울의 구원자 (+100%)가 적용 중입니다. : 상위 추가 효과와 중첩됩니다.

이는 심지어 ‘중첩’이 가능해서 앞선 모든 상승효과를 2배로 올려주었다.

‘좋아, 이로써 일이 조금 더 쉬워졌다.’

이현욱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네놈들 수는 이게 끝이 아닐 테지…….'

악마 소환, 이 싸움에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예측했다.

***

기백준은 올해 들어서 딱 한 번 제대로 화를 내었다. 4차 웨이브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였는데, 그 분노의 흔적은 사무실 벽 한쪽에 거대한 구멍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콰—앙——!

바로 그 옆의 벽이 무너져내렸다.

그러자 벽 너머의 비서실 직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 씨발, 방금 뭐—?”

기백준이 고함치며 시계를 풀었다.

그의 양손에서 검은 일렁임이 감돌기 시작했다.

방금 그에게 무언가를 보고했던 직원 한 명이 벌벌 떨며 뒷걸음질 쳤다.

“지금, 뭐가 어떻게 됐다고? 다시 말해 봐……."

“예, 예, 서울 전역…… 19개의 지점에서, 연락이 도, 동시다발적으로 끊어졌습니다."

즉, 악마 소환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뭔데! 근처에서 이벤트 맵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을 거 아니야!”

"그, 그게 갑자기 나타나서 연막탄이 뿌리면서 잠입해서 제대로 식별이 안 됐다고 합니다. 다만, 그들의 복장이 일관된 걸 볼 때 정부 소속의 트, 특공대 같다는 게 현장 측 의견입니다.”

빌런들은 대한민국 정보 안에도 정보원을 심어두었다. 그런데 그 정보망에도 걸리지 않은 걸 보면, 습격의 주체가 누군지는 몰라도 아주 은밀하게 움직였다는 뜻이었다.

"씨발! 단 한 번도 발생한 적 없던 문제들이, 왜 자꾸 일어나는 거야—!”

콰—앙!

그가 그렇게 또 다른 벽을 부수며 소리를 지르자, 어디선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으하하— 기 사장이 그렇게 열을 내는 건 또 처음 보네!”

가죽 소파에, 올백 머리를 한 히스패닉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쿠바산 시가를 입에 물고 있었는데, 연기 너머로 보이는 피부가 시체처럼 창백했다.

"......리카르도, 너는 지금 이 상황에 웃음이 나와?"

리카르도 올리베이라, 블러드 로드라는 이명으로 더욱 유명한 남자,

그는 ‘다섯 도살자’의 주인이기도 한 ‘뱀파이어 로드’였다.

"진정하라고, 기 사장, 자네는 4차 웨이브 실패를 대비해서 악마 소환을 준비했고 또 그게 실패할 때를 대비해서 ‘공양단’까지 준비해놨잖아. 다 대비했으면서 뭘 그렇게 열을 내?”

그래, 예상치 못한 실패에 화가 치솟았지만,

이때를 위해 다음 계획을 준비한 것도 사실이었다.

“후— 그래, 이제 마지막 수가 쓸 수밖에 없겠군……."

기백준은 애써 화를 억누르며, 유리잔에 위스키를 콸콸 따랐다.

"아, 이번이 마지막 수야? 제4의 플랜은 없고?”

"리카르도…… 너는 애초에 4차 웨이브가 실패할 걸 예상했나?”

리카르도는 시가를 쭉, 빨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캐롤 그 년이 거기서 뒈질 줄도 꿈에도 몰랐긴 해. 내가 어여삐 여기던 년인데, 씁, 아까워…… 침대에서 진짜 죽여줬거든…… 아, 혹시 너도 좀 데리고 놀았냐?”

기백준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최 팀장, 나다. 지금부터 플랜B, 공양 작전 시작한다.”

그 말에 리카르도가 킥킥 웃었다.

“큭— 집단 자살하라는 말은 저렇게 담백하게 할 수 있다니……."

그 말에 기백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서더니, 전화기 너머를 향해 고함쳤다.

"최 팀장, 씨발, 뭐가 그렇게 말이 많아! 알아서 몸 안 던지면 내가 살려줄 것 같아?”

지금 서울 어딘가에 40명의 흑마법사가 모여 있었다.

그들의 주 임무는 ‘무저갱’과 이어지는 게이트를 열어서 ‘재앙의 파편’을 그 안으로 쏟아 넣는 것이었다. 그게 ‘퀘스트’에 명시된 정석적인 ‘아바돈’ 소환 방법이었다.

다만, 악마를 소환하는 방법은 그 외에도 여럿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악마에게서 힘을 얻은 흑마법사들의 목숨을 꽤 여럿 바치는 것이었다.

그게 기백준의 ‘플랜B’였고, 이때를 대비해서 흑마법사들에게 ‘암시 주문’을 걸어뒀다.

“……5분 안에 행하지 않으면, 암시 주문을 발동해서 뇌를 다 태워버린다고 해.”

어떻게 해서라도 이 땅에 악마를 강림시켜 성녀를 불러내겠다는 의지였다.

그는 다시금 흥분을 억누르며 위스키를 쭉 들이켠 뒤, 마지막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 그리고…… 오키타 카이토 팀한테 준비하라고 일러둬, 곧 시작이다.”

"오오— 검성 오키타 카이토—!”

그 이름이 나오자 리카로드도 흥분한 듯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 녀석의 아공간발도술(亞空間拔刀術)을 직접 보고 싶은데, 나도 구경하러 가야겠군!"

***

이현욱은 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뒤, 한 군용 트럭 앞에 서 있었다.

그 트럭은 제3항마여단 1대대 소속이었고 조수석의 문을 열고 내린 건 안민태였다.

"이현욱 병장님, 말씀하신 물건들 챙겨왔습니다!”

트럭 짐칸을 열자, 그 안에는 ‘공중투하장치(프로토 타입)’ 2대가 실려 있었다.

"아니 근데, 갑자기 또 무슨 일이십니까? 매번 왜 이렇게 심각한 일이 일어납니까?”

"그러게 말이다.”

"아마도 이현욱 병장님이 악운을 몰고 다니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원래는 그랬는데, 이번만큼의 예외였다.

이는 이현욱도 예상하지 못한 문제였으니 말이다.

"야, 말 함부로 하지 마. 말이 씨가 돼서 또 무슨 일 일어난다.”

"에이, 저는 그런 재주가……."

그런데 그때—

쩌—어—어—어—어—어——

어디선가 굉음 울렸고 안민태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저 멀리 북쪽 어딘가에서부터 시뻘건 에너지 기둥이 치솟았다.

그것이 하늘에 닿자, 구름의 색깔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어 ! 뭐야?”

“저게 대체......."

근처에 있던 모두가 입을 쩍 벌리고는 그 미지의 현상을 바라보았다.

언뜻 봐도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며칠 전까지 웨이브라는 지옥을 겪은 이들로선 PTSD가 올 법한 장면이었다.

다만, 이현욱은 그리 놀라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는 안민태의 어깨를 툭, 쳤다.

"안민태, 네 책임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지? 아무래도 또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예? 무슨, 이게 대체……."

이현욱은 트럭의 짐칸을 닫으며,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게 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역시나 대규모의 공양을 바쳐서 악마의 화신을 소환했군.’

이현욱은 이번 작전을 진행하는 내내 고민했다.

자신이 놈들의 계획을 차단하면 놈들이 어떻게 나올지…….

그가 내린 결론은 ‘포기하지 않는다’였다.

‘어떻게서든 여기에서 성녀를 제거하겠다는 생각이다.’

이현욱은 트럭을 타고 용산의 집결지—우성문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가 도착하자, 보좌관들에게 보고를 받고 있던 우성문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좌관들과 함께, 이현욱을 향해 우르르 몰려왔다.

"이현욱 병장, 잠시 이야기 좀 합시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지만, 얼굴은 다소 굳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만, 지금부터 또 다른 일거리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악마가 또 다른 방법으로 소환되는 겁니다. 이현욱 병장도 그렇게 보시겠지요?”

"예, 딱 봐도 그런 것 같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이 또 다른 방법을 준비해둔 것 같군요.”

우성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어갔다.

"일전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 악마의 소환을 가장 쉽게 막을 방법은 단연 성녀뿐입니다. 물론 방금 이현욱 병장이 활약한 것처럼,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이제는 확실한 방법을 택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성녀가 와서 서울 전체를 ‘홀리 필드’로 만들 겁니다.”

성녀의 스킬 중 하나인 ‘홀리 필드’ 그게 악마의 힘이 강림하는 걸 차단할 것이었다.

물론 그 한 방에 들어가는 비용은 천문학적이겠지만, 겸허히 감당해야만 할 일이었다.

“그리고 방금, 성녀가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제트기를 이용해도 이렇게 빨리 올 수가 없었다.

아마도 세계수의 힘을 빌려서 ‘초광역 텔레포트’를 이용한 듯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성녀는 암살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예, 그렇죠.”

총 3차례의 암살 위협이 있었다. 물론 실제로 위험했던 적은 아직 한 차례도 없었다.

그녀를 지키는 12명의 성기사, 그들이 워낙 굳건한 장벽이 되어왔으니 말이다.

다만, 2번째 위협은 여러모로 그녀로서는 상당히 트라우마였던 사건이었고,

그 뒤로 그녀는 세인트 돔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쪽 경호 인력이 워낙 대단하지만, 우리 측에서도 성녀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습니다. 이현욱 병장, 이번 작전에도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후긴을 이용한다면, 경호 작전에 큰 도움이 되겠군요.”

후긴의 감각 확장과 고공 시야, 그건 최고의 경계 능력이었다.

"예, 맞습니다. 후긴을 다룰 수 있는 건, 이현욱 병장이 유일하니까요.”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생에 침식된 서울을 정화하기 위해 나섰던 성녀,

그녀는 서울 도착 3일 만에 빌런들의 손에 살해 당한다.

‘그녀가 왜 그렇게 허무하게 암살당했는지, 나는 그 원흉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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