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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을 먹는 플레이어-63화 (63/221)

63화.  < 웨이브 종식, 충격적인 선언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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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의 다음 목적지는 영등포구 문래동의 대장간 골목이었다.

신길역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인 거리지만, 지하철은 현재 운영 중단 상태였다.

지하 터널만큼이나 몬스터 토벌이 벅찬 곳이 없는 만큼, 앞으로 몇 주간 폐쇄될 듯했다

그들은 결국 도보로 이동했고, 거의 도착했을 무렵…….

"어, 저기 보십시오, 아직 몬스터가 있나 봅니다.”

박준모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한 상가 앞에 완전무장한 AMT 병력이 늘어서 있었다.

아마도 서울 토벌을 위해서 타지에서 파견 온 부대인 모양인데, 방금까지 전투를 치른 흔적이 역력했다.

골목 곳곳에 혈흔이 튀어 있었고 좀비로 추정되는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젠장, 지하 통로가 너무 좁아서 진입하기 어렵습니다!”

“이, 일단 화염 마법 몇 발 집어넣어!”

“이미 몇 번 시도해봤는데 아, 안 먹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소탕 작전을 진행 중인 건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이처럼 서울은 여전히 위험한 상태였다.

“3일 내내 수천 명이 투입되어서 몬스터를 잡았는데도, 아직도 안 끝났나 봅니다.”

"워낙 게이트가 많이 열려서 그런 가봐요. 백 개 넘게 열렸다더라고요.”

"음…… 상황이 아직도 이런데, 통행을 허용해도 되는 건가 싶습니다.”

박준모와 김세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현욱은 그 대화에 낄 수 없었다.

'미치겠군.......'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온몸을 짓눌러댔기 때문이다.

- 심장에 '에테르 엔진’이 형성되는 중입니다. (42%)

* 극심한 통증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심장이 멈출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생성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는 것이었다.

‘이제 절반쯤 완성되었으니 앞으로 한 30분만 더 버티면 된다.’

그가 고통을 인내하는 사이에 어느새 대장간 골목으로 접어들었고,

이내 가장 허름한 건물, 강정두 장인의 공방 앞에 도착했다.

"어르신, 저 왔습니다.”

"—아이고, 영웅 나으리 오셨습니까!”

강정두가 돋보기안경을 벗으며 허겁지겁 달려 나왔다.

"이사준비도 하셔야 하는데, 제 부탁 때문에 정신없으시겠습니다.”

"하하— 어차피 살림살이가 볼품없어서, 챙길 것도 딱히 없습니다.”

"이제 좋은 곳에 가셔서 좋은 살림살이 들여놓으시면 되죠.”

이현욱은 강정두와 강희설을 희망 길드의 ‘전속 대장장이’로 고용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새로운 거처와 공방을 마련해주기로 약속했다.

강정두는 부담스러워하긴 했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제 손녀를 좁고 낡은 공방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아무렴요, 다 이 장군님 덕분이지요.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이현욱은 고통을 억누르며 미소를 띠었다.

"제가 부탁한 아이템은 어떻게, 잘 진행되고 있을까요?”

"예, 물론입니다! 제가 마법공학, 그쪽은 그다지 전문은 아니지만, 물건은 잘 나왔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강정두는 꽤 오래전부터 마법공학 스킬을 익히고 있었을 터였다.

“허허— 이번에 이 장군님 활약으로 서울 하늘에 웬 섬이 떠오르지 않았습니까? 라뿌따인가 라삐다인가, 그 섬이 온갖 버프를 걸어줘서 작업이 아주 시원시원하게 잘 흘러갑니다.”

"아, 그렇죠. 그거참 다행이네요.”

"예, 그럼 조금만 기다리시면 그 물건 가지고 나오겠습니다.”

라퓨타가 등장하며 이 일대에 생산 능력 관련 ‘버프’가 잔뜩 붙은 상태였다.

이로써 이곳 대장장이 골목은 그 어느 때보다 폭발적인 생산력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나면, 이곳이 세계 아이템 제작 산업의 중심지가 될 수도 있었다.

잠시 후, 강정두가 창고에서 끌차를 끌고 나왔다.

"자, 이 녀석입니다.”

그 위에는 거대한 정사각형의 물체—스틸 재질의 검은색 상자가 실려 있었다.

그 표면 위로 어떤 회로 같은 게 잔뜩 새겨져 있어서, 공학적인 느낌이 풀풀 풍겼다.

강정두가 작동 스위치를 올리자—

우우우우——!

그것의 표면 위, 회로가 파란빛을 발하며, 그 육중한 몸체가 단숨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프로펠러나 공기 사출구 같은 그 어떤 물리적인 추진 장치도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 내부에 ‘비행석’이 있어서 마나가 공급되면, 이렇게 떠오릅니다.”

그렇다. 오로지 마법적인 힘만으로 비행하는 것이었다.

마법공학 항공기인 ‘비공정(飛空繼)’이 바로 비행석의 힘으로 부유하는 것이었다.

"와, 근데 이게 뭡니까?”

"오, 이걸 어디다 쓰는데요?”

박준모와 김세희가 동시에 물었다.

이에 이현욱이 대답했다.

"음, 쉽게 말하자면 ‘자동화 공중투하장치’입니다.”

"공중…… 에서 뭘 떨어뜨리는데요?”

"그거야, 제가 쓸 무기를 공급해주죠.”

"……아!”

김세희와 박준모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동시에 손뼉을 쳤다.

이현욱의 전투력은 다룰 수 있는 금속 무기가 많을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그건 그의 필살기인 ‘강철비’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전부 들고 다닐 수도 없었으며 매 순간 ‘포탈’을 열 수도 없었다.

‘하늘에 포탈을 여는 건 사실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그 한 방에 동원되는 마법사가 서른 명이 넘는다는 걸 생각하면, 상당한 손해였다.

그런 면에서 이런 공중투하장치는, 제대로 개발만 된다면 상당히 유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걸 수십 대를 만들어서 격납고에 넣어 놨다가 유사시에 호출하는 방식— 그건 이현욱이 전생에 썼던 방법이었는데, 슬슬 구현할 때가 온 것이었다.

물론, 이제 막 프로토타입이 나온 만큼 실전 배치가 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가로세로 2m도 안 되어 보이는데, 무기가 별로 안 들어가지 않아요?”

김세희가 묻자, 강정두가 허허 웃었다.

"이 녀석이 언뜻 보기에는 크기는 좀 작지만, 소형 아공간(亞空間)이 탑재되어서 아이템이 한 30개까지는 수납됩니다."

"아하—”

"하하, 보기보다 알찬 녀석이랍니다.”

이현욱은 그것의 표면을 이리저리 살폈다. 역시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그런데 어르신, 이거 최대 작동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그 물음에, 강정두가 처음으로 쭈뼛거리는 기색을 내비쳤다.

"사실은 그걸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 놈을 오래 버티게 할 마나 배터리가 영......."

역시나, 모든 최첨단 기술이 그러하듯, 역시나 그놈의 배터리가 문제였다.

그때, 이현욱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럼 이걸 장착하면 얼마나 늘어날 것 같습니까?”

웬 붉은색의 작은 기계장치였다.

강정두는 그걸 쥐고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살피더니 입을 쩍 벌렸다.

"아, 아니 이건……."

"좀 괜찮은 물건입니까?”

"허, 괜찮은 정도가 아니죠, 이건…… 국내에서는 이 정도 기술자는 없습니다.”

그건 추교용의 블랙 오크, 그것들의 심장 부근에 박혀 있던 ‘마나 하트’였다.

현재로서는 그 가격을 추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선진 기술력의 결집체로서,

아마도 차드 공화국 마법공학 연구소에서 주문 제작한 물건일 듯했다.

"음…… 이걸 한 2개 정도 장착하면 완충 상태로 50분 정도는 날아다닐 겁니다. 물론 자체적으로 마나 생산 능력이 있는 만큼, 내려앉아서 회복하면 다시 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현욱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50분이라…… 아직은 내가 썼었던 그 장비들에 한참 못 미친다.’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썼던 공중투하장치는 미래의 기술이었으니…….

이현욱의 얼굴에 실망이 내비쳐지자, 강정두는 다른 아이템들을 꺼내 보이기 시작했다.

"아아, 내 정신 좀 봐라, 여기 이 작은 녀석들도 보시죠.”

강정두가 웬 박스에서 구슬 같은 걸 꺼냈는데, 그것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며 빛을 발했다.

윙— 윙— 윙— 윙—

“마나 드론이랑 비슷한 재주를 가졌는데, 대신 크기가 아주 작습니다.”

역시나 ‘비행석’의 힘으로 날아다니는 초소형의 정찰용 드론인 듯했다.

"이건 비행석이 조금 남아서 주섬주섬 만들어봤습니다. 작고 조용해서 은밀하게 무언가를 살피기에 좋을 겁니다. 그리고 심지어 원격으로 ‘자폭’까지 시킬 수 있습니다.”

"자폭이라, 그거 꽤 괜찮네요.”

"예, 강철 중대의 특수 작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하하……."

하지만 이어지는 강정두의 설명은, 이현욱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 심장에 ‘에테르 엔진’이 형성되는 중입니다. (62%)

* 극심한 통증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큭.”

심장의 통증이 한층 더 격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현욱은 결국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 이현욱 병장님—!”

박준모가 그를 부축했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젠장, 이거 진짜로 심장이 멎는 거 아니야?’

그는 심장이 뒤틀리는 기분을 절절하게 느꼈다.

그리고 그 안에서부터 무언가 강렬한 에너지가 솟구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마나…….'

그래, 그의 심장에서 엄청난 양의 마나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위 —이—이—이—이——!

공방 안, 멈춰서 있던 마법 공학 아이템들이 난데없이, 일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어떻게…… 저건 아직 배터리를 장착하지 않았는데……."

한껏 놀란 듯한 강정두의 음성을 끝으로, 이현욱은 정신을 잃었다.

***

- 오늘 오전, 서울 토벌 작전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서울침식대응본부>의 브리핑이 있었으나, 여전히 서울 곳곳에서 많은 숫자의 몬스터가 발견되고 있는 가운데…….

어디선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에 따라서, 성녀의 ‘축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플레이어계 전반에서 속속히 나오고 있습니다. 성녀는 <세인트 돔>의 수장으로서 광범위한 축복 마법을 시전할 수 있지만, 2년 전 암살 위협을 겪은 뒤 신상 노출을 극히 꺼리고 있습니다. 과연 성녀가 서울을 위해 움직일지…….

TV 뉴스 소리인 듯했다.

이현욱은 눈을 떴다.

온몸이 식은땀이었다.

‘여기는, 아, 강정두의 방이구나…….'

그리고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잔뜩 떠올라 있었다.

- 축하합니다! 특별한 조건을 만족하여 새로운 ‘스킬’이 주어집니다.

[스킬 정보]

- 이름 : 에테르 엔진

- 등급 : D

- 효과

1) 마나 하트 : 마나 총량이 상승합니다. (+50,000) 마나 회복력이 상승합니다. (+500%)

2) 마나 전이 : 플레이어 혹은 ‘통제 가능한 대상’에게 '마나’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3) 마나 연결 : 마나 전이 대상의 마법 회로에 '동기화’할 수 있습니다.

* 숨겨진 조건을 만족할 시 스킬 등급이 향상됩니다.

이현욱은 그 내용을 천천히 살폈다.

핵발전소 수준의 무한 동력을 흡수하며 심장이 <마나 하트>로 개조된 것이었다.

그리고 전설 등급을 흡수한 만큼, 그 면면이 정말 엄청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블랙 오크에게서 얻은 마나 하트를 삼켜서 마나 총량이 대폭 늘었는데, 이건 뭐…… 이제는 진짜로 마나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 마나 : 59,441/59,441

단적으로 본다면, 무한 금속 파쇄, 무한 금속 변형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이 상태로 철갑독충을 만났으면 족족 터뜨리며 쓸어버렸을 텐데…….'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런 마나 총량 같은 게 아니었다.

2번 스킬 <마나 전이>와 3번 스킬 <마나 연결>이 사실상 핵심이었다.

'심장에서 마나를 생산해서, 통제 가능 대상물에 마나를 공급한다는 건데…….'

이현욱은 자신이 기절하기 직전에 벌어졌던 특이한 장면을 기억해냈다.

난데없이 작동했던 마법공학 아이템들…….

이현욱은 그 순간, 그것들과 어떤 ‘연결’을 느꼈던 것 같았다.

‘그러니까, 마법공학 장비의 마나 배터리를 내가 충전할 수 있다는 뜻이잖아? 더군다나 앞으로 마법공학이 발전하며 다양한 아이템이 개발될 텐데,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쓴다면…….'

이건, 미쳤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 물주님, 일어났어요?”

물주님이라니…… 그 말도 안 되는 호칭을 입에 담는 건 역시나 강희설이었다.

그녀는 미닫이문 밖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누워 있던 거야?”

"음, 한 15분? 16분? 그쯤 됐어요.”

그렇게 오래 기절한 것 같지는 않았다.

“물 한 잔 드려요? 요플레도 있어요.”

“……요플레?”

"네, 요플레 드려요?”

“아니, 그건 뭔가 좀 이상해서……."

기절했다 일어난 사람한테 요플레를 권하다니, 강희설은 역시 정상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강정두는 물론이거니와 김세희와 박준모가 보이지 않았다.

"희설아, 다들 어디 간 거야?”

“물주님이 기절한 다음에 힐러 데리러 갔어요. 근데, 필요 없어 보이는데요?”

"아……."

방문을 열면 바로 공방이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공중투하장치가 떡 하니 놓여 있었다.

이현욱은 그것을 향해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우우우우——! 정말로 작동된다.

그리고 공중으로 천천히 떠올랐다.

- ‘공중투하장치(프로토타입)’에 ‘마나 전이’이 시작됩니다.

* 초당 마나 감소 : 50

저걸 띄우고 있는 것만으로도 1초당 무려 50의 마나가 감소한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양의 마나가 실시간으로 회복된다.

‘즉, 무한 동력이다.’

원래 저걸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달간 마나 배터리 개발에 힘써야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럴 필요가 없어진 듯했다.

그때, 누군가 공방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뭐야…… 괜찮은 거예요?”

김세희였다. 그녀의 양손에 체력 회복 물약을 들고 있었다.

"하…… 아까 거기 AMT 부대로 힐러를 부르러 갔는데, 거기도 정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체력 회복 물약이라도 빌려왔어요. 자— 이거 마셔요.”

“고마운데, 괜찮아요.”

"괜찮기는 무슨, 갑자기 왜 픽픽 쓰러지고 그래요! 내가 지금 누구 믿고 미래를 걸었는데, 갑자기 객사하기라도 하면 난 어쩌라고요!”

“하하……."

"뭐 큰 지병 있는 거 아니죠? 저번에도 쓰러졌다면서요.”

그러고 보니 ‘악마의 메달(레기온)’을 흡수했을 때도 기절했었다.

이거, 아무거나 주워 먹다가는 중요한 순간에 큰일 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괜찮아요. 저, 안 죽어요.”

“하......."

그때—

타—다—다— 당——!

"뭐야 이거, 총소리 아니에요?”

이현욱의 물음에 김세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밖에 문제가 좀 생겼어요.”

"혹시, 아까 그 AMT에요?”

이곳으로 오면서 봤던 AMT 병력, 그들의 소탕 작전이 위기에 봉착한 듯했다.

"네 맞아요. 거기 골목에 있던 AMT들, 아직도 그 지하주차장으로 진입 못 하고 있더라고요. 심지어 탱커 4명이 지하주차장 끌려들어갔다는데…… 하, 아직도 난리네요.”

김세희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몬스터를 상대하길래, 그렇게 다 잡혀 들어가는 거예요?”

“음 저도 잠깐 봤는데, 붉은색의 긴 넝쿨 같은 게 막……."

그 대목에서 이현욱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을 끌고 들어갈 정도의 붉은 넝쿨이라면 악마의 손아귀 밖에 없는데…… 그게 4차 웨이브 때 등장했었나? 아닌 것 같은데

이현욱은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꼈다.

“……우리가 한 번 가보죠.”

"네? 우리가요? 무기도 없는데요.”

"무기는 여기 널린 게 무기잖아요.”

하긴, 여기가 바로 대장간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지, 그것보다 몸은 괜찮은 거예요?”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요.”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작업대 위의 상자에서 구슬 모양의 기계를 집어 들었다.

- ‘플라잉 아이(프로토타입)’ 획득하였습니다.

‘강정두 장인 말로는, 이게 일종의 마나 드론 겸, 자폭 장치라고 했지, 아마?’

기절하기 직전, 강정두가 설명했던 내용이 얼핏 떠올랐다.

- 해당 아이템에 ‘마나 연결’을 통하여 동기화할 수 있습니다.

‘동기화라……'

이현욱은 동기화를 시작했다.

그러자 ‘플라잉 아이’가 떠오르며, 그의 눈앞에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윙— 윙—

놀랍게도 그건 ‘플라잉 아이’의 카메라 시점이었다.

‘이건, 마법 드론에 마법사의 시야가 연동되는 것과 같다.’

너무나 빠르게 움직여서 다소 어지러웠지만, 그대도 어느 정도 컨트롤이 가능했다

아무래도,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

한 8층짜리 상가 건물의 지하주차장 앞에 약 서른 명이 AMT 병력이 늘어서 있었다.

"후......."

그들은 지하주차장에서부터 뻗어 나오는 정체불명의 나무 넝쿨과 사투 중이었다.

지금은 잠깐 소강상태였지만, 그 넝쿨이 주기적으로 튀어나오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아무리 잘라내고 아무리 태워도 끝도 없이 뻗어 나왔다.

“젠장, 이제 너무 늦었어……."

약 40분 전, 저 안으로 꼬마 둘이 저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이들은 그 그 녀석들을 구하려고 수차례 시도했다.

하지만 오히려 탱커 5명이 더 끌려 들어갔을 뿐…….

결국, 자력 구출을 포기하고 ‘공략소대’에 지원을 요청한 상태였다.

"소대장님, 저기 누가 옵니다! 아! AMT 전투복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원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적은 숫자, 3명이었다.

그리고 무장도 하지 않은 듯했는데 …….

"응? 지원 병력이 아니라, 아까 그 여자 병장이잖아?”

“씁, 정신없는 데 옆에 와서 물약 달라고 징징거리더니, 또 뭐야?”

그들은 이현욱, 김세희, 박준모였다.

이현욱은 가장 먼저 지하주차장 입구에 널브러져 있는 넝쿨을 살폈고, 자신이 느낀 이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역시나 악마의 손아귀다.’

이건, 4차 웨이브 때 발생하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심지어 이렇게 게이트 밖으로, 몬스터로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던전 안에서 일종의 함정처럼 등장한다. 즉, 누군가 일부러 꺼내놓았다는 뜻인데…….'

이현욱의 저 아래에서 어떤 음모가 시작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거기!”

그때,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다.

중위 계급의 여 장교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이름은 이태경, 아마도 이 소대의 지휘관, 소대장인 듯했다.

"너희 뭐야! 지금 구경났냐?”

하긴, 생사가 오고 가는 전투를 치르고 있는데, 괜히 옆에 와서 구경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 기분이 나몰 만도 했다.

"충성— 죄송합니다만, 혹시 저 몬스터 관한 정보를 알고 계십니까?”

“……뭐?”

악마의 손아귀는 던전에 들어가는 ‘공략팀’이 아닌 이상 직접 볼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 대응법을 명확하게 숙지하지 못하고 헛발질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저건 악마의 손아귀라는 식물형 몬스터입니다. 재생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서 겉으로 튀어나오는 촉수 부분을 잘라봤자 소용없습니다. 안쪽의 굵은 줄기, 코어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현욱의 조언이 먹힐만한 상황이 아닌 듯했다.

"얘 지금 뭐라는 거냐……. 야, 이 꼴 안 보여? 저 안으로 들어가긴 어떻게 들어가겠냐? 우리가 안 해봤을 것 같아?”

이미 몇 차례 진입 시도를 했지만, 실패한 듯했다.

“후— 혹시 지금 염장 놓으러 온 거라면 빨리 돌아가라, 제발…… 여기에서 몇 명이 죽은 줄 알고 함부로……."

이현욱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 사람들, 아직 안 죽었습니다.”

"뭐—?”

"악마의 손아귀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 체액을 빨아 먹지만, 차가운 피만 먹습니다. 그래서 마비 독을 주입한 뒤 체온이 저하되기를 기다리는데 아마 오늘 밤쯤에야 잡아먹힐 겁니다.”

이현욱이 줄줄이 읊어내자, 이태경의 얼굴에 당혹감이 퍼졌다.

"그거, 무슨 근거로……."

이현욱은 대답하지 않고 이태경을 스쳐 지나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저희가 진입을 시도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이태경의 얼굴이 다시 한번 일그러졌다.

“근거 없이 허세 부리지 말고 소속부터 대, 이 새끼야—”

그 말에 이현욱은 고개를 돌리며 거수경례를 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는 제3항마여단 1대대 소속이고, 저는 해당 부대 1중대 5분대장, 이현욱 병장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3항마여단 1대대…… 근래에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렇다면 웨이브에서 살아남은 그 부대…… 어? 설마……."

이에 이현욱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비록 병사지만, 얼마 전까지는…… 강철 중대라는 부대의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를 향해 쏟아지던 시선이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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