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62화 (62/221)

62화.  < 웨이브 종식, 충격적인 선언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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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과 박준모, 두 사람이 제1 병영 옥상에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박준모는 긴장 어린 표정으로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후—준비됐습니다!”

박준모가 그렇게 말하자 이현욱이 왼팔을 들어 올렸다.

쩌저저저——

그의 손아귀에 강체화가 걸리더니 웬 시퍼런 기운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파지지지——

그건, 전류였다.

"와…… 이제 그런 것도 가능하신 겁니까?"

"그러게, 사실은 나도 처음 써보는 거야.”

이는 ‘작은 섬광’이라는 이름의 ‘천철’ 소재 반지를 삼키고 새로 얻은 스킬이었다.

강체화된 부분에서 전류를 생산하여 방출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리 강력하진 않지만, 일종의 전기 충격기처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지금, 그, 그걸 저한테 처음으로……."

박준모가 다소 불안한 기색으로 그렇게 묻는 순간, 이현욱이 그의 팔뚝을 잡았다.

파직—!

“으갸갸——!”

박준모가 비명과 함께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야, 엄살 부리지 말고, 어때?”

박준모는 ‘감전 면역’일 테니 데미지가 들어갈 리가 없었다.

녀석이 머쓱한 표정으로 바지를 털고 일어났다.

"으, 일단 아프진 않은데, 전기가 통과하는 느낌은 여전히 좀 별로입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시스템 메시지는, 뭐 안 떴어?”

“……아! 지금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박준모는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하는 듯 멍한 표정이 되었다.

"어, 그게, 확실히 충전은 됩니다. 그런데, 그…… 총량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렸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의 수준의 전류만으로는 ‘충전’에 그친다.

‘역시 답은 낙뢰인가…….'

박준모가 말하길, 낙뢰를 맞았을 때 ‘능력 수치’가 단숨에 4배가 늘어났다고 했다.

그런 걸 볼 때, 이현욱처럼 조금씩 꾸준히 성장하는 메커니즘이 아니라,

한 방에 대폭 오르지만, 성장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운 특성인 듯했다.

"그런데 정말로 지금 제가, S등급으로 변한 게 맞습니까?”

박준모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근데 당분간 이 사실은 비밀이니까, 아무한테도 말해선 안 된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3일 전, 강서윤과 우성문을 만났을 때, 이현욱은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사상 최초의 웨이브 공략이라는 엄청난 활약을 한 결과 어떤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으며 그리하여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박준모 역시 S등급으로 각성했다고 밝힌 것이었다.

‘왠지, 나날이 거짓말만 늘어가는 것 같은데…….'

직후,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새로운 S등급의 출현을 당분간 비밀로 하기로 합의했다.

‘뭐, 그건 당연한 선택이었다.’

대한민국에 새로운 S등급이 생겼다는 걸 떡하니 공개하는 건 일종의 전력 누설이나 다름없었다.

이 나라의 성장을 견제하는 세력이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새로운 S등급 플레어이들이 상위 랭커가 되기 전에 제거하려고 들 수도 있었다.

즉, 한동안은 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비밀이 유지될 것이었고,

그때까지 박준모의 성장을 최대한 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음, 낙뢰 마법을 쓸 정도로 강력한 전격 마법사를 찾아봐야겠는데…….'

그때, 불현듯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 뇌신의 철퇴……."

그래, 뇌신의 철퇴, 그게 있었다.

"예? 잘 못 들었습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이현욱이 싱긋 웃었고 박준모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저…… 그런데 어두워지는데, 슬슬 내려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준모의 말에 이현욱은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서쪽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물체에 시선을 빼앗겼다.

‘라퓨타…….'

그것이 등장한 지도 벌써 3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색하고 장대한 장면이었다.

여의도 절반 정도 크기의 반구형 하단부, 그 위에 세워진 수십 개의 마천루…….

그것이 서울 상공 1.5km 부근에 떠 있는 장면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신비함이었다.

그때,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며 그것의 그림자에 가려졌는데…….

“와……."

일순간, 일식이 일어난 것처럼 어둠이 찾아왔고,

동시에, 라퓨타의 표면에서 가지각색의 불빛이 발하며 일대를 밝혔다.

저게 바로 마법 공학 도시를 품은 서울의 새로운 야경이었다.

"크…… 저것도 세계수처럼 서울에 엄청난 축복을 내려주지 않겠습니까?”

박준모가 새삼스레 혀를 내두르며, 그렇게 말했다.

황무지에 불과했던 ‘차드 공화국’은 ‘세계수’의 등장으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런데 서울은 원래부터 최고의 도시 중 하나였던 만큼, 그 이상의 성장이 예상되었고, 불과 3일이 지났건만, 서울을 향해 엄청난 투자 열풍이 불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엄청난 돈이 서울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래, 내가 기억하는 라퓨타와는 사뭇 다르지만…… 이롭긴 할 거다.’

이현욱이 기억하는 라퓨타의 모습은,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악마의 요새’로,

빌런 매드 사이언티스 집단 <블랙 도어>의 연구 시설로 활용되었다.

이현욱은 그 당시 라퓨타에 침투한 적이 있었기에 그 내부 모습을 어느 정도 기억했다.

상부는 정말로 발전된 도시의 모습, 그러니까 일종의 ‘거주 지역’인 셈이었다.

진짜 중요한 시설은 저 반구형의 하단부 안, 즉 지하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출입 권한이 없어서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국가게이트대응전략실>에서 라퓨타 조사 결과를 어제 공식 발표하기를,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라퓨타 내부로 진입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못 들어가는 이유,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그는 품속에서 열쇠 하나를 움켜쥐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고대 유산의 마스터키

- 효과 : 알 수 없음

이 열쇠가 바로 저곳과 관련이 있다는 건, 맥락상 확실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아마도 빌런들이 서울 침식 퀘스트의 성공 보상으로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서울이, 아니 이현욱이 얻었다.

***

이현욱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하여 끊임없이 고민했다.

‘4차 웨이브를 성공적으로 막았으니,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역시나 ‘빌런’의 행보였다.

서울역, 언럭키를 방해했을 때만 해도 놈들의 움직임이 사뭇 달라졌었다.

그런데 무려 4차 웨이브를 막아버렸으니…… 엄청난 변수가 밀려올 것이었다.

'원래대로 침식이 진행됐다면, 놈들의 다음 목표는 성녀 암살이었다.’

성녀, S등급의 프리스트인 에밀리아 뮐러를 이르는 별칭이었다.

그녀는 차드 공화국에 있는 세계 최대의 성소 ‘세인트 돔’에서 벗어나지 않는 편이었으나,

서울 침식 ‘정화’를 위하여 친위대를 이끌고 한국에 입국했다가 암살당하고 만다.

그건 암흑 계열의 힘이 주력인 빌런들에게는 최고의 성과 중 하나로서,

서울 침식은 사실상 그녀를 죽이기 위해서 이루어진 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성녀가 세인트 돔을 벗어날 일이 없어졌으니 암살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놈들은…… 한동안은 몸을 사릴 거다.’

빌런, 그놈들의 최대 무기는 ‘비밀스러움’이었다.

자신들의 진짜 정체를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서 오는 은밀한 파괴력……

놈들은 그걸 잃고 싶지 않을 테고, 그런 점에서 이번 실패로 인해 자신들 정체가 들통날까 봐 노심초사하며 한동안은 세상의 눈치를 보며 뒷수습에 전념할 테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놈들이 제대로 움직이기 전에, 최대한 빨리 성장해야 한다.’

다음 대결을 위하여 세력을 만들고 아이템을 모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걸 준비하기 위해서 내일, 외박을 나갈 예정이었다.

‘부대 안에 있으면, 역시나 뭘 할 수가 없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외박이나 휴가가 제한되는 게 당연하겠다만,

이현욱은 서울의 구원자이며, 이제 무려 S등급의 플레이어인 만큼, 어렵지 않게 허락이 떨어졌다.

그날 오후, 이현욱은 포상 포인트를 현금화를 할 생각으로 PX에 들렸다.

여느 때와 같이 ‘오브’를 몇 개 구매해서 계산하려고 할 때, 누군가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뭘 그렇게 많이 사요?”

김세희였다.

"아, 김 병장, 3일 만이네요?”

"그러게요. 피 범벅 땀 범벅이 아니라 말끔한 모습으로는 처음이죠?”

"말끔해봤자, 전투복이잖아요.”

"나는 그래도 로션만 잘 발라도 전투복도 잘 어울린다는 말 들어요.”

자기 예쁘다는 말을 할 줄도 아는 여자였나, 이현욱은 피식 웃었다.

"아, 그걸 알고 있어요? 알면 좀 별로인데……."

"농담이죠. 흠, 그런데 할 말이 하나 있는데, 잠깐 앉을래요?”

그렇게 두 사람이 마주 앉자,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얼마 전이었다면, 2중대 여신으로 불리는 김세희가 관심의 중심이었겠지만,

이제는 강철 중대의 지휘관, 이현욱의 아우라가 훨씬 더 컸다.

간부, 병사할 것 없이 이현욱을 곁눈질하며 수군거렸다.

이 좁은 부대에서도 이 정도인데, 얼굴이 알려진 채로 사회로 나가면 영 피곤할 듯했다.

“어, 음……."

그런데 무슨 일인지, 김세희는 볼을 긁적거리며 뜸을 들였다.

"그, 저, 곧 전역이거든요.”

그러고 보니 김세희는 말년 병장이었다.

"그쪽은 전역까지 아직 한두 달 더 남았잖아요? 그래서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뭘 묻고 싶은 건지, 은근히 뜸을 들이는 김세희였다.

"그게…… 그쪽, AMT에 남을 거예요? 아니면 어디 길드로 가요?”

이현욱에게 수많은 러브 콜이 들어왔으나, 아직 분명한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였다.

"음, 그런 민감한 걸 왜 물어보시는 거죠? 혹시…… 누가 캐오라고 한 거 아니죠?”

"아니에요! 그냥, 이것저것…… 참고 좀 하려고요.”

이현욱은 그 말뜻을 이해했다.

‘김세희, 몸담을 곳을 고민하고 있군?’

원래대로라면 4차 웨이브가 끝난 뒤에, 흑호 부대의 선택을 받고 부사관이 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현욱이라는 큰 변수가 작용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이현욱과 같을 길을 가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래서 이렇게 다소 노골적으로 캐묻는 걸 테고…….

'이건 좀 의외다.’

김세희의 성격상 딱히 '기회’를 붙잡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현욱이 보여준 활약이 워낙 상식 밖이라서, 사람들이 따르는 게 당연하긴 했다.

강철 중대의 병사들도 강철 중대가 지속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치곤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잘된 일이다. 이런 인재를 굳이 군에 남겨둘 필요는 없으니…….'

이현욱은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그러면 김 병장, 혹시 나랑 계속 일해 블래요?”

그렇게 묻자, 김세희의 입꼬리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원하는 대답이었을 것이었다.

그녀의 자존심상 이현욱 옆에 있고 싶다는 말을 직접 내뱉지는 못하고 있었을 테니…….

"아? 예! 뭐! 좋죠! 강철 중대 때 그래도, 합이 잘 맞았잖아요, 우리?”

"사실은 하늬랑 더 합이 잘 맞았던 것 같긴 한데……."

김세희의 표정이 팍 구겨졌다.

"하하— 침착해요. 저도 김 병장 같은 사람이랑 같이 일하면 좋죠.”

"아하하…… 그것참 영광이네요.”

“좋아요, 마침 잘됐네요. 소개해 줄 길드가 있어요.”

김세희는 짐짓 놀란 표정이었다.

"예? 길드요? 저는 솔직히 AMT에 남으실 줄 알았는데……."

이현욱이 AMT에 남으면, 그녀도 남을 생각으로 이렇게 급히 물은 듯했다.

"일단, 자세한 건 여기서 이야기하긴 좀 그렇고……."

이현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부터 서울 시내에 제한적인 이동이 풀렸으니까, 내일 같이 외박 나가시죠."

“……네?”

"제가 말씀드리면, 대대장님도 허락해주실 거예요. 저는 이미 허락 맡았고요.”

무언가 일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으니, 김세희는 어질어질한 표정이었다.

"아, 아니 근데, 우리 둘이 같이 외박 나간다고 하면 그, 그림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 물음에 이현욱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 아뇨, 우리 둘만 나갈 건 아니에요.”

"아……."

***

다음 날, 이현욱, 김세희, 박준모까지 세 사람은 특별 외박을 명 받았다.

그리하여 출타 버스를 전세 내고, 서울역이 아니라 신길역에 내렸다.

어제부터 제한적 통행이 허용되었으나 거리는 한산하다 못 해 텅 비어 있었다.

도시 내 거의 모든 몬스터를 소탕했다는 게 정부 발표였는데, 여전히 위험한 건 사실이었다.

"음, 여기는…… 어디예요?”

희망 길드 앞, 김세희와 박준모는 다소 멍한 표정이었다.

"오늘 들릴 곳이 몇 곳 있는데, 여기가 우리 첫 번째 목적지예요.”

박철수, 그의 거처는 다행히도 서울이 아니라서 웨이브라는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희망 길드의 사무실 역시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예, 여기에 서명하시면 되고, 여기에도……."

"계약서 다 쓰신 분들은, 저한테 가져다주시면 돼요!”

"자— 다음 분, 이쪽으로 와주시겠어요?”

무슨 일인지, 전에 왔을 때보다 휠씬 번잡한 상황이었다.

박철수와 직원들이 무려 십여 명의 플레이어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 현욱 씨!”

이 목소리는 4차 웨이브에서 쌓은 인연, 이정준이었다.

그가 이현욱을 부르자, 사무실 안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헉! 안녕하세요!”

"와! 강철 중대, 서울의 영웅들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되네요!”

저마다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네왔는데,

나흘 내내 함께 싸웠던 만큼, 서로 반가운 얼굴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정준이 헐레벌떡 다가와 손을 내밀었고 이현욱이 맞잡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현욱 씨 덕분에 무직 신세는 면했습니다.”

웨이브 첫날, 이정준과 그의 동료들은 길드 마스터의 명령을 무시하고 장충동 주민센터의 시민들을 구하러 갔다가 길드에서 잘렸었다.

이현욱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이곳, 희망 길드를 소개했는데, 그들은 오직 이현욱이라는 이름을 하나를 믿고 이렇게 다 함께 가입을 결심한 것이었다.

"아닙니다. 작은 길드인데 흔쾌히 가입해주셔서 제가 감사할 따름이죠.”

“하하— 누가 뒤를 봐주는데, 외관만 보고 판단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로써 희망 길드는 역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야, 현욱아……."

그리하여 박철수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꿈꾸는 거 아니지, 나?”

오늘 아침, TV에서 4차 웨이브 영웅, 강철 중대의 주인공이 이현욱이라는 황당한 사실을 전해 듣자마자 무려 18명의 플레이어가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나타나서 가입을 부탁해왔다.

그것도 기존의 희망 길드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적으로 우수한 이들이었다.

"현욱이 네가 진짜로 나를 나락에서 천당까지 끄집어 올려주는구나……."

박철수는 어찌나 감격했는지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중이었다.

"거봐, 내가 나만 믿으라고 했잖아.”

“정말 고맙다. 아, 그리고 네 말대로 그 주식들도 엄청 오르고 있더라, 하하……."

성수 제조업, 신성 무기 공방, 마법 공학 등

이현욱이 짚어준 종목은 나날이 최고가를 경신했다.

전부 4차 웨이브의 수혜를 입은 종목이었다.

그러나 김세희와 박준모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여기는 대체……."

김세희는 길드를 소개해주겠다는 말에 이현욱을 따라나섰다.

그런데 희망 길드라니 …….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이었고 상당히 작고 볼품없어 보였다.

다소 황당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김 병장, 나랑 일하고 싶은 거 맞죠?”

사뭇 진지한 이현욱의 물음에, 김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뭐, 맞아요.”

“여기, 제가 키우고 있는 길드입니다.”

“……예?”

그렇게 활약하면서 대체 언제부터 길드까지 키우고 있었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아직 작지만, 곧 큰돈이 투자될 거고 괜찮은 일거리도 많이 생길 거예요.”

그 큰돈 어디서 들어올 건지는 듣지 않아도 알았다.

이현욱은 웨이브 최대 공신으로 엄청난 보상을 받게 될 터였다.

"그래서…… 김 병장이 이 길드의 시작을 좀 이끌어주시겠어요?”

"이끌다니, 제, 제가 뭘 어떻게……."

“뭘 하긴요, 부대에서 하던 데로 소리 좀 잘 지르시면 되죠.”

역시나 구겨지는 김세희의 얼굴,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하여튼, 농담 잘 못 받으시네요. 날 믿고 여기 오셨잖아요, 그러니까 나도 김 병장 믿고 앞으로 이 길드의 공략 작전 같은 걸 맡겨 보겠다는 거예요.”

김세희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애초에 이현욱을 믿고 이렇게 따라 나온 것이었다.

‘이 사람은 다르다.’

지난 며칠간 그를 봐오며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이다.’

그녀는 누군가한테 이렇게 엉겨 붙을 성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강철 중대 임무가 끝난 이후부터, 이현욱이라는 사람의 근처에서 멀어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알겠어요. 대신…… 저번에 약속한 대로, 아무도 죽지 않게 해줘요.”

김세희는 동료의 죽음에 관해 좋지 않은 기억이 있었다.

그렇기에 기어코 그 말을 강조했다.

"저도 노력하겠지만, 이제는 김 병장도 노력해줘야 해요.”

"네, 그래야죠……."

김세희는 결국 전역 후에 희망 길드에 가입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그런데, 분명 어마어마한 제안들 받으셨을 거 아니에요? 그걸 다 내친 거예요?”

그녀는 상세한 내용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AMT 차원에서 장교 임관이 권유되고 있다는 건 이미 유명했다.

심지어 그리고 3일 전, 그 <즈믄나래>의 강서윤이 부대에 방문했다.

그렇다는 건, 그쪽에서도 이현욱에게 무언가를 요구했다는 뜻이었다.

그 모든 것들은 내치고, 길드를 세운다니…… 그것도 참 대단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현욱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그쪽들 조건도 다 수용하는 방향으로 갈 겁니다.”

"네? 그게…… 가능해요?”

"아직은 비밀인데, 우선 한 가지만 몰래 말씀드리자면……."

김세희가 귀를 쫑긋했다.

"여기 희망 길드가, 즈믄나래 길드의 서브가 될 겁니다.”

서브(Sub), 달리 말하자면, 즈믄나래의 자회사가 된다는 소리였다.

"네? 그, 그게 저, 정말이에요?”

"예, 3일 전부터 강서윤 대표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아, 아니…… 즈믄나래의 철칙이 소수 정예 아니었나요?”

"뭐, 강철 중대 정도도 꽤 소수 정예 느낌이 났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도 안 돼……."

김세희는 왠지, 너무나 두꺼운 동아줄에 매달린 기분이었다.

즈믄나래 길드는 사실상 대한민국 최고, 아니 세계 최고 수준의 길드였다.

그러나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었고 무조건 A등급 이상의 플레이어만 구성된 최정예였다.

그러나 사실, 이현욱으로서는 그리 어렵지 않은 거래였다.

S등급 플레이어 둘을 얻기 위해서라면, 제아무리 즈믄나래라도 뭐든지 내놓을 것이었다.

"자, 슬슬 움직여야 해요. 아직 더 들릴 곳이 있어요. 오늘 바빠요.”

"이번에는 또 어딜 가는 거예요? 당황 좀 안 하게 미리 귀띔 좀 해주시죠?”

며칠 전까지는 냉철한 지휘관이었는데 오늘은 웬 젊은 사업자 같은 느낌이었다.

"전역 이후에 일할 길드를 마련했으니까, 전역 기념 아이템 좀 뽑으러 가야죠.”

그런데 그 순간,

"큭—"

무슨 일인지 이현욱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그의 눈앞에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금속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 드워프제 그레이트 마운틴 엔진(전설)

*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가 상승했습니다.:2,544g

마침내 ‘드워프제 그레이트 마운틴 엔진(전설)’이 흡수된 것이었다.

분명 반가워할 만한 일이었지만…….

- 심장에 ‘인피니티 엔진’이 형성되는 중입니다. (1%)

* 극심한 통증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심장?’

이번에는 위장과 중추신경계에 이어서 무려 심장에 새로운 기관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어?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표정이 아닌 게 아닌데요?”

그건, 앞선 두 가지 보다 훨씬 진한 고통이 찾아왔다.

언제나 그렇듯, 지독한 고통은 가파른 성장통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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