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 종식, 선언, 영웅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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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콘도르가 구름 위를 유영하고 있었다.
이현욱은 그것의 등에 올라탄 채, 눈을 감았다.
‘이 근처에서 움직이는 금속은 없다.’
이렇게 구름 위를 통과하여 이동하면 철갑독충 떼의 습격을 받을 우려가 없었다.
다만, 높은 고도에 위치하자 찬기가 몸 곳곳으로 스며들며 슬슬 살이 아려왔는데, 온몸에 ‘강체화’를 걸고 ‘마나 실드’까지 입히자 어느 정도의 냉기가 차단되었다.
마지막으로, 허리춤에서 ‘마나 회복 포션’을 꺼내어 삼켰다.
- 10분간 마나 회복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200%)
이로써 준비가 끝났다.
“—내려 가자! ”
그의 외침과 함께 그레이트 콘도르가 수직으로 활강하기 시작했다.
훙——
한 겹의 구름을 통과하자 지상이—청룡산이 눈에 들어 왔다.
그곳에서 회색 일렁임과 흑색 일렁임이 피어나고 있었다. 회색 일렁임은 잔불에서 피어나는 진짜 연기였으나, 저 흑색 일렁임은...... 역겨운 벌레 떼의 집단 군무였다.
‘저걸 뚫고 내려가야 한다.’
이현욱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레이트 콘도르의 몸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청룡산을 향해 몸을 일자로 만들고 수직으로 자유 낙하하며 눈을 감았다.
후—우—우—우——
그의 등장을 눈치챘는지, 한 줄기의 검은 일렁임이 그를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왜—애—애—애—앵——!
그 숫자가 정확히 374마리—이현욱은 그것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감지’했다.
그리고,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파쇄!’
퍼—버—버—버—벙——!
수십 마리가 일제히 터졌다.
그 뒤를 이어 또 수십 마리가,
다시 수십 마리가 산산이 조각났다.
그의 왼손이 천천히 호를 그리며 움직이자, 그 궤도에 걸리는 모든 철갑독충이 폭발했다.
퍼—버—버—버—벙——!
그렇게 374마리의 철갑독충은 수천 개의 금속 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그러나…….
‘역시, 무작정 파쇄를 사용하면 마나 소모가 감당이 안 된다.’
금속 파쇄 스킬은 분명, 저것들을 상대할 때만큼은 일격필살의 공격이었다.
하지만 철갑독충의 숫자는 가공할 정도로 많았고,
마나를 몽땅 쏟아붓더라도 유의미한 숫자를 줄이진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없애야 하는 건 단 하나, 침식 요인뿐이다.’
저것들을 전부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당장 앞길을 뚫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쉬—쉬—쉬—쉬—쉬——!
그렇게 만들어진 ‘쇳조각’들이 이현욱을 따라오며, 그의 몸 주변에서 회전했다.
그때, 또 한 무리의 철갑독충이 날아올랐다.
이번에는 총 1,188마리였다.
감당할 수 없는 숫자였다.
‘관통하듯, 그대로 뚫고 나간다!’
이현욱은 양팔을 교차하여 머리를 가리고 팔뚝에 ‘강체하’를 집중했다.
쩌저저저——!
그리고 몸 주변에 떠 있던 ‘금속 조각’을 팔 앞으로 끌어당긴 뒤, ‘금속 변형’을 사용하여 양 팔뚝에 이리저리 뒤엉키게 했다. 그러자 묵직한 쇳덩이 방패—일종의 범퍼가 완성됐다.
"—지금이야! 나한테 가속을 걸어 줘!”
그 말에 그의 어깨에 올라타 있던 ‘바람의 정령’ 하늬가 움직였다.
녀석이 이현욱의 몸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자 회오리바람이 이현욱을 휘감았다.
후우우우——!
‘빠르다!'
이현욱의 추락에 가속도가 붙었다.
마치 포탄처럼, 강철을 뒤집어쓴 채 엄청난 속도로 활강—
이내 1,188마리의 철갑독충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텅—텅—텅—텅—텅—텅——!
일점돌파(—京突破)
날아드는 철갑독충 군집을 그대로 들이받으며 단숨에 꿰뚫어버렸다.
그것들이 우회하여 이현욱의 뒤를 쫓았지만, 그의 활강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이현욱은 다시금 눈을 감고 청룡산의 모든 금속을 훑기 시작했다.
'……찾아야 한다.’
침식 요인, 그게 어디쯤 있는지는, 맨눈으로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다.
김강석도, 최정철도, 김세희도 걱정했던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방어가 헐거워진 상태의 청룡산에 도달한다고 한들,
여전히 수천 마리가 청룡산 표면을 덮고 있기에 침식 요인을 쉽사리 발견할 수가 없다.
즉, 기습을 통한 침식 요인 제거는 불가능하다.
이에 이현욱은 대답했다.
‘……저는 가능합니다.’
그래, 그건 오로지 이현욱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들의 껍질이 금속인 만큼, 제가 움직임을 감지하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을 통해서 침식 요인의 위치를 유추할 수 있을 겁니다.’
철갑독충 무리는 마치 둥지를 지키는 벌처럼 몸으로 침식 요인을 둘러싸고 있다.
그리하여 최정철의 ‘세미 아마겟돈’이 적중했을 때도 침식 요인을 지켜낼 수 있었다.
즉, 철갑독충이 유난히 많이 모여 있는 지점이 바로, 침식 요인이었다.
하지만…….
'젠장, 더럽게도 많네…….'
청룡산의 표면에서 어찌나 많은 금속의 움직임이 감지되는지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수천 개의 움직임을 동시에 감지해내자 신경이 과부하 되는 걸 느꼈다.
후우우우——!
그러는 사이에도 고도가 빠르게 낮아졌다.
‘지상에 도달하기 전에 반드시 찾아야 한다. 단숨에 처리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
그런데 때마침, 이질감이 드는 부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난히 많은 철갑독충이 모여서 두터운 충을 만들고 있는 지점,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것들의 움직임이 다소 느리고 조심스러운 곳,
마치 여왕개미를 감싸 안아 보호하고 있는 일개미 떼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래, 저 부근 어딘가에 있다.’
이현욱 그 지점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리고 지면에 충돌하기 직전, 자신의 몸에 금속 통제력을 부여했다.
그의 몸이 중력 역 방향으로 붕 떠오르며, 시커멓게 타오른 땅 위에 안착했다.
턱—
착지 직후, 그와 함께 낙하하던 수천 개의 쇳조각이 강철비처럼 쏟아졌다.
퍼—버—버—버—버—!
착륙 지점 주변에 앉아 있던 철갑독충들이 그 쇳조각에 휩쓸렸고, 이현욱의 몸을 감싸고 있던 하늬의 회오리바람이 주변으로 터져나가며 일대의 철갑독충을 멀찍이 밀어냈다.
하지만 그 정도는 모래사장에서 모래 한 움큼을 퍼내는 수준에 불과했다.
왜—애—애—애—앵——!
수천 마리의 철갑독충이, 이현욱을 향해 일제히 날아들었다.
마치, 검은 파도가 덮쳐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현욱은, 그 파도를 통제할 수 있었다.
그는 양손을 들어 올리며 손바닥을 펼쳤다.
‘회전한다.’
이현욱은 수많은 쇳조각을 끌어당겨, 자신의 몸 주변에서 고속 회전하게 했다. 그리고 하늬가 그와 같은 궤도에 회오리바람을 일으켜서 쇳조각의 회전 속도를 대폭 상승시켰다.
쿠—구—구—구—구——!
그렇게, 강철의 회오리가 일어나며 이현욱의 몸 주변을 에워쌌다.
금속 통제력과 바람의 정령,
어느 한쪽이라도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강력한 관성의 방어막이었다.
텅—! 텅—! 텅—! 텅—!
놈들이 그 강철 회오리를 뚫고 들어오려고 했지만, 부딪치고 휩쓸려서 튕겨 나가버렸다.
그러나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아마도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한다.’
이내 저것들이 한데 모여서 억지로 강철 회오리를 뚫고 들어올 테니…….
이현욱은 괴물의 이빨 사이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조금만 더 늦었다가는, 잘게 잘게 잘려나가 삼켜지고 말 것이었다.
‘침식 요인, 이 근처다. 하지만 확실한 위치를 찾아내야 한다.’
그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이현욱이라는 침입자가 등장하는 순간, 철갑독충은 두 가지의 움직임을 보였다.
대다수가 이현욱에게 달려들었으나, 적지 않은 숫자가 전혀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건, 침식 요인을 지키기 위한 행렬이다.’
이현욱은 그것들의 움직임을 읽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그래, 거기군?”
단 하나의 점, 정확한 좌표를 짚어냈다.
이현욱은 강철 회오리를 이끌고 그 지점으로 걸어 나갔다.
그때, 거대한 무언가 바닥에서 치솟았다.
- 보스 몬스터 ‘철갑거충’이 등장했습니다.
께—에—에—에—에——!
그 크기가 족히 7~8m는 될 법한, 딱정벌레 형태의 몬스터,
앞다리가 가위처럼 생겼으며 머리에 창대 같은 뿔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주둥이에는 산성 용액을 분출하는 관이 달려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관문에 도달했다.’
보스 몬스터가 등장했다는 건, 아주 잘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철갑거충, 이놈은 침식 요인을 몸으로 보호하고 있는 일종의 덮개다.’
헬 레트 뮤턴트와 마찬가지로, 게이트를 지키는 ‘파수꾼’ 유형의 보스 몬스터였다.
저 단단한 몸뚱이로 침식 요인을 덮어서 외부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을 터,
그런데 이현욱이 가까이 접근하니, 어쩔 수 없이 직접 몸을 일으킨 것이었다.
놈이, 이현욱을 향해 다가왔다.
‘그래, 조금 더 나와라…… 침식 요인이 완벽하게 드러나게…….'
놈이 바닥을 박차며 이현욱을 향해 뿔을 드리우고 마치 코뿔소처럼 달려들었다.
쿵—쿵—쿵—쿵——!
저것에 치이면, 장갑차일지라도 구멍이 뚫릴 것이었다.
놈은 강철 회오리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고 돌파했고, 이내 이현욱을 들이받았다.
쩌—엉——!
그런데, 그 창대 같은 뿔이 무언가에 막혔다.
웅——
황금색의 방어막이, 이현욱을 감싸고 있었다.
“서은하…… 역시, 내 첫 번째 방패야.”
그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웬 팔찌가 빛을 발하는 중이었다.
그건 강철 중대가 출발하기 직전, 서은하가 이현욱에게 건네줬던 팔찌였다.
이현욱은 그사이에 옆으로 돌아나가며, 놈의 껍질 틈 사이에 운사암수를 꽂아 넣었다.
'—전격 방출!’
파지지지지——!
칼끝에서 뿜어져 나온 전격이 놈의 몸속 구석구석까지 헤집고 지나갔다.
놈의 거대한 몸뚱이가 부들부들 떨렸고, 일순간 마비되었다.
즉, 완벽한 틈이었다.
"지금이야!”
그의 외침과 함께, 하늬가 강철 회오리를 앞으로 쏘아 보내며 일대의 모든 걸 날려버렸다.
그러자 마침내…….
‘저기 있다!’
땅속에 박혀 있던 붉은 보석, 월드 스톤(침식 요인)의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냈다.
목표 식별, 영점 조준은 이미 끝났다.
쉬——이——이——!
그것의 위로 무언가, 육중한 물체가 낙하하고 있었다.
그건, 당연하게도 ‘모글레이’였다.
놈들은 그 일격을 방어해낼 물리적 방어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콰——아——앙——!
폭음— 그 아래 깔린 것은 절대로 온전할 수 없을 정도의, 괴력이었다.
그리고…….
- ‘월드 스톤(웨이브)’를 파괴하셨습니다!
모든 게 끝났음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오직 이현욱만이 할 수 있는 강습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하……."
이현욱은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게이트는 닫히겠지만, 여전히 수천 마리의 철갑독충이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떤 목적을 상실한 듯,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휘 붕괴…… 다 끝났다.”
지휘 붕괴, 자의가 아니라 어떤 주술에 의해서 움직이던 몬스터가 ‘주술 주체’가 사라질 때, 목표를 상실하고 방황하는 현상이었다.
즉, 놈들은 당분은 공격성을 잃을 것이었다.
물론, 존재 자체가 위협인 만큼 한동안 퇴치 작전이 시행되어야 할 테지만, 그건 나중 일이었다.
그리고, 약 20m쯤 떨어진 곳에서 게이트가 붕괴하고 있었다.
이현욱은 그곳으로 다가갔다.
역시나 이번에도, 게이트가 붕괴하는 지점에서 한 가지 아이템이 나타났다.
- 귀게스의 반지(영웅)을 획득하였습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귀게스의 반지(영웅)
- 효과 : 마나를 불어 넣을 시 30초간 투명 상태가 됩니다. (재사용 대기 : 30분)
'이 아이템 때문에 허무하게 사라진 영웅들이 꽤 됐지…….'
이로써 그들의 목숨까지 지켜낸 셈이었다.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니었다.
- 축하합니다! 이벤트 퀘스트 <재앙 원정대>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 최고의 성과를 이룩하여 ‘1등’ 보상이 주어집니다.
"아, 퀘스트……."
그러고 보니 첫 번째 침식 요인을 공략한 이후에 강철 중대 전체에 퀘스트가 주어졌었다.
지금까지 신경 쓰지 못했는데, 당연하게도 가장 활약한 이현욱이 성과 1위를 차지한 것이었다.
이현욱의 눈앞에 2개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손을 뻗어 그것들을 잡아챘다.
- 특성 개화(특수)를 획득했습니다.
* 획득과 동시에 귀속되는 아이템입니다.
‘이걸 또 얻다니…….'
그리고 나머지 한 가지는........
‘이건 뭐지?’
- 고대 유산의 ‘마스터키’를 획득하셨습니다.
* 획득과 동시에 귀속되는 아이템입니다.
이현욱으로서도 전혀 모르는 물건이었다.
***
"—놈들이 흩어집니다!”
학교 1층 로비, 한 플레이어가 그렇게 외쳤다.
그의 말처럼 하늘을 뒤덮고 있던 검은 일렁임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학교 안까지 비집고 들어왔던 철갑독충 역시 창문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 종료가 아닐 수 없었다.
"이게…… 어, 어떻게 된 일이지?”
생사를 오가는 순간 속에서 죽음을 예감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들은 조심스레 학교 밖으로 걸어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로 벌레 떼가 완전히 사라졌으며, 하늘을 물들였던 보랏빛도 옅어지고 있었다.
“……끝났다.”
그 모든 현상은, 웨이브가 마무리되었음을 뜻했다.
즉, 누군가 침식 요인을 공략한 것이었다.
"대체 누가 침식 요인을 깬 거지?”
"아! 안양 듀오 아니야?”
"응? 그 사람들 아직 도착 못 했던데……”
그때, 누군가가 또 다른 이름을 꺼냈다.
"아까 듣기로는, 강철 중대 지휘관이 혼자 뒤를 쳤다고 하더라고요.”
"예? 혼자서라니…… 가능해요, 그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정말이지 역사에 남을 만한 대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면 사실상 강철 중대가 웨이브 전체를 씹어먹은 거잖아?”
"와, 그러게요…… 진짜, 정체가 뭔지 궁금하간 하네요.”
강철 중대라는 이름이 이번 웨이브 전반을 수놓았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한편, 최정철과 김강석 역시 건물 옥상으로 올라와 주변을 살폈다.
“……여단장님, 이현욱 병장이 진짜로 해냈습니다.”
김강석은 못 믿겠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그래, 말도 안 되는 일을 이룩했군그래.”
“하하…… 그렇습니다.”
"혹시, 자네도 그가 해내기 어렵다고 생각했나?”
이현욱이 들고나온 계획은 솔직히,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자신이 금속 감지 능력이 있으니, 고공 침투하는 동시에 그것들의 움직임으로 침식 요인을 유추하고, 거검 모글레이를 고공에서 떨어뜨려서 타격하여 파괴했겠다는 건.......
‘그래, 솔직히 자살시도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닌, 이현욱이 자신 있게 주장했으며 그때로써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그 계획을 승인했으나…… 마지막 순간까지도 말리지 못한 걸 후회했었다.
“예, 맞습니다. 이현욱의 실력은 믿었지만…… 기적을 믿지는 않는 편이라서 말입니다.”
그 말에 최정철은 피식 웃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버렸군그래.”
"예, 정말이지…… 구원받은 기분입니다.”
"하하, 그럼 이제 슬슬 외부에서 올 테니 우리는……."
그러나 최정철의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구—우—우—우—웅——!
어디선가 익숙한 굉음이 울렸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뒤흔드는 육중한 울림, 이는 전체 공지를 알리는 벨이었다.
그런데 다소 기괴했던 이전의 벨과 달리 그 소리가 다소 명쾌했다.
그리고 하늘에 떠오르는 글자 역시 붉은색이 아니라 녹색이었다.
- 축하합니다! 역사상 최초로 ‘웨이브’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 서울에 아주 특별한 보상이 주어질 예정입니다.
그와 동시에, 모두가 환호했다.
"와——!"
"진짜다! 서울이 무사하다!”
"우리가 이겼다!”
이미 눈치채고 있던 사실이지만, 저렇게 확정 짓는 공지가 떠오르니 드디어 실감이 났다.
영영 잃을 것만 같던 서울을, 아무런 피해도 없이 구해낸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환호는 금방 멎을 수밖에 없었다.
“어—?”
그 ‘아주 특별한 보상’이라는 게 하늘 위에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헉! 저, 저게 뭐야!”
서쪽, 서울역 부근 상공, 거대한 게이트가 하나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무언가 내려오고 있었다.
어찌나 거대한지 그것의 그림자가 서울의 상단 부분을 잠식할 정도였다.
"......."
사람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그저 입을 쩍 벌리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해, 행성……."
그래, 행성—그러니까 달 같은 위성이 지구에 떨어진다고 생각할 만한 장면이었다.
"아니, 아니에요…… 하늘에 그대로 떠 있어요. 그리고, 윗부분이 좀 이상해요.”
반구형의 하단부 위에, 빌딩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우후죽순 세워져 있었다.
누구나 명징하게 알 수 있었다.
그건, 공중 도시였다.
- 서울 지역에 ‘라퓨타’가 등장합니다!
* 모든 ‘제작 스킬’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모든 아이템 ‘제작 성공 확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 모든 ‘마법 공학 연구 진척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일대에 ‘마나 생태계’가 구축됩니다.
.
.
.
이 장소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의 눈앞에 엄청나게 긴 메시지가 떠올랐다.
서울이 지옥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세계 최고의 도시로 도약하는 순간이었다.
***
한편, 추교용을 비롯한 태산 길드원들은 한 교실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 이유는 현재 불명이라고 공표되었지만, 이현욱은 그 이유를 눈치챘다.
‘빌런 퀘스트 실패 때문에 게임 오버된 거다.’
빌런 퀘스트는 그 결과가 무자비한 편이었다.
아마도 또 다른 계략을 꾸미던 도중, 이현욱이 침식 요인을 파괴한 듯했다.
그리고 서울 전역에 8,000명의 AMT 병력이 투입되었으며,
각 길드에서도 안전 확보 및 복구 작업을 위한 플레이어를 6,900명이 투입했고,
AMT 신성기사단장 서백진 장군의 지휘 아래, 서울 소탕/복구 작전이 진행되었다.
아직 적지 않은 언데드 몬스터가 서울 곳곳을 배회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탕 작전이 필요했다.
'……원래 역사에서는 탈환 작전이 되어야 했던 게, 소탕 작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강철 중대에 내려진 명령은, 휴식이었다.
‘그래, 이제는 진짜 잠 좀 자야겠어…….'
이현욱은 생활관에 도착하여 샤워를 마친 직후 잠에 빠졌다.
***
얼마나 지났을까, 눈이 저절로 떠졌다.
- 금속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작은 섬광(희귀)
- 축하합니다! 특별한 조건을 만족하여 새로운 '스킬’이 주어집니다.
- 금속 홉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마나 하트)
- 금속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마나 하트)
- 금속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마나 하트)
어느새 눈앞에 수많은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먹었던 ‘천철’ 반지와 추교용의 ‘블랙 오크’에게서 얻은 ‘마나 발생기’였다.
"음......."
하지만 여전히 ‘드웨프제 그레이트마운틴 엔진’은 완전히 흡수되지 않았다.
그 시간도 ‘알 수 없음’이니 몇 날 며칠이 더 걸릴지 몰랐다.
그때, 생활관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어— 충성!”
일어나 있던 박준모가 뻣뻣하게 굳으며 경례했다.
대대장, 김강석이 생활관으로 온 것이었다.
"아니야, 모두 신경 쓰지 말고 쉬고 있어.”
그는 이현욱에게 다가왔다.
이현욱은 침대에서 일어나서 경례했다.
"그래 이현욱, 잘 쉬었나?”
"예, 그렇습니다.”
"그래, 더 쉬어야 할 텐데 너를 찾는 분들이…… 여럿 있어서 말이야."
누가 찾길래 대대장이 이렇게 직접 온 건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이현욱은 대충 준비를 마친 뒤 그를 따라서 대대장실로 갔다.
그곳에 최정철 장군 외에 두 사람이 더 앉아 있었는데…….
‘정말로 대단한 인물들이 행차했군.’
둘 다 아는 얼굴이었다.
즈믄나래 길드의 마스터 강서윤과 국가게이트대응전략실장 우성문이었다.
그 직급을 빼더라도 각각 대한민국 랭킹 3위와 9위의 거물들이었다.
"여러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번 작전의 최대 공로자, 이현욱 병장입니다."
이현욱은 고개를 숙이고 그들 앞에 앉았다.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강자들이었지만, 이현욱은 그리 긴장되지 않았다.
전생에 이미 숱하게 만나온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 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강서윤이 먼저 명함을 내밀었다.
"이현욱 병장, 3개 침식 요인, 당신 손으로 끝냈죠?”
"예, 맞습니다.”
"거기에 걸린 보상이 뭔지 들으셨고요?”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오늘, 그거 주러 온 거예요.”
침식 요인 1개당 5,000만 달러와 영웅 등급의 아이템이, 그리고 최고의 활약을 펼친 플레이어에게는 그 가치를 감히 책정할 수 없는 전설 등급의 무기 ‘게—볼그’가 주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이유는…… 저는 뭐 나름 있는데, 여기 우 실장님은 왜 오신 건지 모르겠네요. 원래 오실 생각 없다가 갑자기 제가 간다니까 따라오는 건 뭐예요?”
강서윤은 그렇게 말하며 우성문을 노려보았다.
"하하, 강 대표님쯤 되는 사람이 국가 인력을 빼가려는데 제가 아니면 누가 막겠습니까?”
이현욱은 둘 사이에서 멍한 표정이 절로 나왔다.
아무래도 자다 일어나자마자 거물들의 구애를 받게 될 듯싶었다.
"아, 그래요? 이현욱 씨, 제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웅 등급 장비로 맞춰 줄게요.”
“……예?”
"그러니까, 전역하면 우리 <즈믄나래>로 오세요.”
그 말에 김강석이 얼굴이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소수정예 공략 길드 <즈믄나래>는 대한민국의 얼굴과 같은 길드였다.
규모 면에서는 <청화>가 압도적으로 크기에 1위 길드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대한민국 최상위 랭커를 다수 보유한 즈믄나래가 실질적인 최강 길드였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랭킹 1위 ‘중력 마법사’ 이성윤이 즈믄나래 소속이었다.
이어서 우성문의 명함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현욱 병장, 나는 국가게이트대응전략실장 우성문입니다. 전에 한 번 마나 메신저로 대화 나눴었죠? 정부 2호 무기고의 사용 권한을 줬던 사람입니다.”
그때는 반말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왠지 모르게 깍듯하다.
“아, 예, 그때는 큰 도움이 됐습니다.”
"큰 도움은, 이 병장이 우리 모두에게 해준 거죠. 그리고…… 이 병장이 국가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한다면, 국가는 절대로 부족하지 않은 지원을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강철 중대…… 이 병장을 위한 특수부대를 창설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장교 임관이 아니라, 아예 하나의 부대를 만들어서 지휘관 권한을 부여하겠는 뜻이었다.
하긴, 우성문 정도는 인물이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예외의 경우를 만들 수 있었다.
"음......."
이현욱은 그 이야기를 듣다가, 눈을 비비적거렸다.
잠에서 깬 뒤 갑자기 물밀 듯 들어오는 제안에, 다소 정신이 없었다.
그는 두 명함을 내려다보았다.
“음 일단은......."
모두가 그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는 뜸을 들이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두 사람과 차례차례 눈을 마주친 뒤, 입을 열었다.
“……제 몸값이, 생각보다 더 비쌀 것 같습니다.”
모두가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런 거만한 말이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아, 당신이 대단한 일 한 거 잘 알고 있어요. 그만한 대우를 해주겠다는 뜻이에요.”
"이현욱 병장,”
강서윤과 우성문이 차례차례 한 마디씩을 더 얹었다.
그러나 이현욱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능력을 숨겨왔다.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성장하는 게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가 왔다.’
능력을 숨긴 가장 큰 이유는 수많은 시선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이 활동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워낙 큰 공을 세워서 그럴 수 없게 되었으니, 전략을 달리할 생각이었다.
"제가…… 이번 업적을 달성해서 S등급으로 각성했습니다.”
그의 선언에, 침묵이 감돌았다.
"......."
아무도, 아무런 반응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두 분이 그 무엇을 주신다고 해도 적절한 값이 되지는 못할 겁니다.”
S등급 플레이어는 현재까지 33명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국내에는 단 3명뿐이었다.
이제부터는 확실한 아우라를 달고, 노골적으로 이익을 굴려 나갈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