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 서울의 구원자들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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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주) 안양 듀오가 딱 30분 뒤에 도착한다고 한 내용이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도착 지연된다는 내용으로 수정되었습니다.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총집결지’에 모인 플레이어들,
가지각색의 구성원들이었지만, 그들의 목표는 같았다.
싸움을 준비해서, 침식 요인을 공략하여, 서울을 구한다.
그러나 그 첫 단계가 채 완료되기도 전에 아주 큰 문제가 발생했다.
"—젠장! 벌레 떼가 내려옵니다!”
그것들이, 예상보다 이르게 날아올랐다.
심지어 이곳, 총집결지를 향해서…….
"이게 말이 돼? 저것들은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알고 오는 거야?”
당연하게도, 총집결지는 놈들의 ‘감지 영역’ 밖에 마련되었다.
혹시나 ‘어그로’가 끌릴까 봐 소음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기도 했다.
그렇기에 난데없이 이쪽으로 날아오는 건…… 우연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었다.
"젠장, 고민하고 있을 시간에 빨리 준비나 해! 곧 들이닥칠 거야!”
그들은 서둘러 학교 안—쉘터로 들어가서 창문과 옥상에 자리를 잡았다.
저것들은 하늘이 뻥 뚫린 야외에서 맞이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렇게, 플레이어들이 허둥지둥 대비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쩌—어—어—엉——!
어디선가 폭음과 함께 진동이 울려 퍼졌고, 플레이어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 다소 이상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산산이 조각 난 어떤 몬스터의 사체, 그위에 박혀 있는 거대한 검, 그리고 추교용이 분개하며 이현욱을 향해 주먹질을 해대는……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뭐야, 저기는 또 무슨 일이야?”
그 두 사람이 어떤 대사를 주고받는지 알 수 없는 없었다만, 표정만은 보였다.
추교용은 어딘가 넋이 나간 듯했고 그에 반해 이현욱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젠장, 추교용 저 인간, 하필이면 이런 순간에 무슨 짓이야?"
이처럼 그 누구도 이현욱이 잘못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추교용의 이미지가 워낙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저 성질 더러운 인간이 또 괜한 시비를 걸고 있겠거니 생각하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이렇게 긴박한 상황 속에서 그깟 헤프닝을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없었다.
"젠장, 저딴 거 신경 쓰지 말고 빨리 움직여!”
그런데, 김강석의 눈에는 그 장면이 다르게 보였다.
'이현욱, 무슨 생각으로 저런 일은…….'
상황을 봤을 때, 이현욱이 다루는 이름 모를 ‘거검’이 마법 드론과 충돌한 뒤, 재수 없게도 추교용의 권속 위로 추락한 듯했다. 그래, 분명 우연히 벌어진 사고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강석은, 이현욱이 그런 미숙한 실수를 저지를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이현욱이 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현욱, 방금 그거…… 단순한 사고가 아닌 것 같은데?”
김강석은 의심을 숨기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고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인했다.
"예, 그렇습니다.”
철갑독충 떼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김강석은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이 상황 속에서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뭔가 있군?’
이내 이현욱이 바로 앞으로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추교용이, 우리 부대를 습격한 테러리스트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강석은 자못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 그런 건 함부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닐 텐데, 근거는 있나?”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설명해 드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너무나 중요한 사안이었지만, 지금은 세세히 듣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래, 당장은 저 철갑독충 떼를 막아야 하니……."
두 사람은 우선 학교 안으로 피신했다.
어느새 그것들의 날갯짓 소리가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왜—애—애—애—앵——!
"—놈들이 2분 뒤에 이곳에 도달합니다!”
단 2분 뒤에 그것들이 학교를 휩쓸 것이었다.
어느새 플레이어 전원이 학교 건물 안, 창가와 옥상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마법사들이 마법 방어막 생성 장치에 들러붙어 ‘마력 주입’을 대기했다.
마법 방어막에 마법사가 마나 주입을 하면 일종의 실시간 수리가 가능했다.
물론, 수리하는 속도보다 깨지는 속도가 빠르다면, 그리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었다.
"이게 뚫리면 끝장이야. 모든 마나를 쏟아 넣어서, 어떻게든 지켜낸다.”
죄다 공중 포격에 대비하여 벙커에 엄폐한 보병들처럼 긴장된 표정들이었다.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만큼, 쉽지 않은 힘겨루기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왜—애—애—애—앵——!
온 세상을 뒤흔드는 듯한 역겨운 날갯짓 소리가 완전히 가까워졌다.
언뜻 봤을 때, 종전에 강철 중대가 상대했던 숫자의 10배가량이 될 듯했다.
왜—애—애—애—앵——!
그것들의 그림자가 드리우며 어느새 세상이 어두워졌고,
플레이어들은 그 기세에 짓눌려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젠장, 미치겠네…… 괜히 나섰나……."
"시, 시발, 그딴 소리 좀 하지 마세요.”
저것들이 들이닥쳤을 때, 과연 버틸 수 있을지…… 확신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건 김강석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머릿속은 지금 복잡하게 꼬여 있었다.
‘전력이 부족하다. 솔직히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대 전력 중 하나인 안양 듀오가 도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현욱의 말이 사실이라면, 추교용이라는 전력도 배제해야만 했다.
즉 생각 이상으로 화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저런 식인 벌레 떼를 상대할 때 화력이 부족하다는 건…….
마치 범람하는 강물에 휩쓸리듯, 한순간에 전멸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현욱이 예상 밖의 한 마디를 건넸다.
"대대장님, 제 생각에는…… 이건 오히려 기회입니다.”
그 말에 김강석은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지휘관으로서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고민하는 중이었다.
……이 순간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말이다.
그런데 이현욱은, 오히려 기회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내 이현욱이 말을 이어갔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철갑독충이 다소 이르게 날아올랐습니다. 우리가 기습을 당한 셈이지만 달리 말하자면, 저것들도 준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출격한 겁니다.”
즉.......
"침식 요인을 지키는 숫자가 훨씬 헐거워졌을 겁니다. 지금이야말로 반격할 기회입니다.”
방어가 아니라 오히려 공격이라니.......
"음......."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김강석의 머릿속에서는 마땅한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 철갑독충 떼거리를 뚫고 나아가, 침식 요인까지 도달할 방법이 불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강인한 탱커라고 할지라도, 철갑독충 떼에 둘러싸인다면 몇 분 버틸 수 없다.’
저것을 뚫고 나갈 방법은 압도적이고 지속적인 화력을 바탕으로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는데…… 현재 전력으로는 뚫기는커녕, 버티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렇기에 김강석은, 회의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 우리가 가진 무기 중에 저 벌레 떼를 뚫고 나아가 침식 요인에 도달할 유일한 방법은 추교용의 몬스터뿐이야. 그러나 만약 자네 말대로 그자의 정체가……."
이현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추교용은 필요 없습니다.”
"응?"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한 마디를 꺼냈다.
“……제가, 뚫어낼 수 있습니다.”
***
왜—애—애—애—앵——!
철갑독충, 적어도 수천 마리, 그것들이 초등학교 쉘터를 뒤덮는 순간,
쿠구구구——!
학교 전체가 검은 파도에 휩쓸려 전복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것들이 학교 전체를 감싼 채 들러붙어서 발톱과 턱으로 마법 방어막을 찢어발겼고,
방어막 안쪽, 옥상과 창문에서부터 온갖 마법이 쏘아지며 그것들을 타격하여 밀어냈다.
콰—앙—! 콰—앙—! 콰—앙—!
마법이 한 번 작렬할 때마다 엄청난 숫자가 우수수 추락했지만, 그 자리를 또 다른 철갑독충이 메우며 조금의 빈틈도 없는, 거대한 검은 장막 같은 형태가 유지되었다.
아직까지는 그 어느 쪽에 흔들리지 않는 전투였다만, 곧 격차가 벌어질 것이었다.
왜—애—애—애—앵——!
그렇게 방어전이 한창일 때, 이현욱과 김세희,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상가 건물, 3층이었다.
최정철과 김강석이 이현욱의 '돌파’ 계획을 승인했고,
그 작전을 수행하기 위하여 이렇게 따로 나와 있는 것이었다.
"저거…… 당장은 버티긴 버티겠는데, 결국 우리가 밀릴 것 같아요.”
김세희의 판단이 맞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철갑독충은 게이트에서부터 한도 끝도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반면, 플레이어들의 마나는 빠르게 고갈되어 가고 있었으며, 마나 회복 포션을 계속 마시는 ‘오버 쿨럭’을 하더라도 그 한계가 뚜렷했다.
즉, 이 줄다리가 계속되면 결국 아군이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추교용이 적용한 어떤 버프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른 이들을 모르겠지만, 추교용의 스킬 때문에 다수의 철갑독충이 강화된 상태였다.
물론 이곳으로 오던 플레이어들이 다른 어디선가 응집하여 반격을 준비하겠다만…….
'……빌런들이 그에 대비하여 또 다른 계략을 품고 있을 거다.’
놈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이 뭉치는 걸 어떻게든 막으려고 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놈들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하지만 모두에게 밝힐만한 타당한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이 상황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힘을 잃은 추교용을 감시하는 것뿐이었다.
김강석에게 추교용이 ‘테러리스트’일 수도 있다고 귀띔한 게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자, 이제 우리도 슬슬 시작하죠. 우리의 진짜 계획은 버티는 게 아니잖아요.”
이현욱의 말에 김세희가 한숨을 쭉 내쉬었다.
"근데, 정말…… 가능한 거예요, 이거?”
김세희는 짙은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예, 가능할 겁니다.”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웬 태블릿 PC를 들여다봤다.
그 화면에 어떤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건, 마나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하여 실시간 중계되는 장면이었는데,
그곳은 아마도 ‘세미 아마갯돈’을 맞고 황무지가 된 청룡산이었다.
그런데……
왜—애—애—애—앵——!
청룡산 표면에 엄청난 숫자의 철갑독충이 바글바글 끓고 있었다.
마치 썩은 시체 위에 들끓는 파리 떼 같았다.
김세희는 그 화면을 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 화면을 아무리 봐도 ‘침식 요인’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즉, 저기에 어떻게 잘 도착한다고 쳐도 벌레가 들끓는 산속에서 헤매다가 죽을 수도 가능성이 농후했다.
“……제 생각에는 솔직히, 미친 짓 같아요.”
그녀의 솔직한 말에 이현욱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런데 미친 짓도 때에 따라서 기가 막힌 한 수가 됩니다. 자, 어서 주세요."
이현욱의 당당한 말에 김세희는 또 한 번의 한숨을 내쉬고는, 양손을 내밀었다.
웅——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소녀의 얼굴을 한 바람의 정령이 나타났다.
역시나 어딘가 뾰로통한,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후, 야, 하늬야…… 아까 말한 대로, 이 사람한테 좀 붙어서 서포트 좀 부탁한다.”
정령의 이름이 하늬, 의외로 꽤 귀엽게 지었다.
아마도 사이가 좋았을 때 지어준 이름일 것이었다.
그러나 하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하품을 찍 했다.
"야! 제발…… 중요한 순간이니까, 우리 서로 얼굴 붉히지 말자?”
김세희가 성깔을 어렴풋이 드러내자 하늬가 도망치듯 이현욱에게 날아와, 어깨에 앉았다.
그러더니, 이현욱을 향해 윙크를 해 보이며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아, 참나……."
김세희는 허탈하게 웃었다.
하늬 저 녀석, 평소 자신에게는 전혀 다른 손가락을 들어댔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착한애랑 대체 왜 그렇게 싸우는 거예요?”
이현욱이 그렇게 말을 하자 김세희와 하늬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그런 농담할 시간이 있어요? 아무튼! 하늬 걔가 정령의 주인인 저와 멀리 떨어져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아마 최대 15분 정도가 최대일 거예요. 정확하진 않아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15분 안에 이 재앙을 끝장내겠다는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방심 안 하는 스타일인 것 알겠는데, 제발 방심하지 말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설명할 시간은 없지만, 다 계획이 있어요.”
이현욱과 김세희는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그곳에, 거대한 야수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삐이이——!
그레이트 콘도르, 김강석의 권속 중 하나로서 익장(翼帳)이 무려 12m 이르는 괴물 새였다.
이현욱은 천으로 감싼 모글레이를 허공에 띄운 채, 그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
그 순간, 녀석이 날개를 펼치며 홰를 쳤다.
훙——!
단 한 번의 동작만으로 오륙 미터 위로 떠 올랐다.
“그럼, 15분 뒤에 봐요.”
이현욱의 말에 김세희는 조그맣게 ‘제발……’이라고 말했다.
그레이트 콘도르가 날개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창공으로 치솟더니, 구름 위로 사라져버렸다.
김세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저렇지, 사람이……."
다소 무모하리만큼 과감한 결정을 어떤 확신을 지니고 행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희생을 막고 승리를 얻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었다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제발……."
***
한편, 학교 안에는 기자들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마나 메신저를 통하여 이곳, 총집결지가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을 언론사로 전했고,
그 이야기는 순식간에 뉴스 속보로 보도되어, 전 세계로 전해졌다.
- 지금 막 들어온 소식입니다! 마지막 침식 요인 공략을 위해 한 장소에 모이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궤멸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입니다! 그곳에는 강철 중대를 비롯하여 총…….
희망으로 가득 찼던 세상이, 다시 한번 절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강서윤은 그 뉴스를 보며 혀를 찼다.
“……궤멸 위기? 염병, 대체 뭘 안다고 자기들 멋대로 추측해서 보도하고 지랄이야!”
물론 상황이 좋지 않은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강서윤이 전해 듣기에도 다소 절망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정철은 어떤 방법이 있으며, 그걸 시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최정철 장군께선 아직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해주신 않은 거죠?”
비상통신담당관의 물음에 강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떡하겠어요, 우리한테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을 시간도 없을 거예요.”
“예, 그렇죠. 우리가 듣는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기도 하죠.”
"씁......."
외부에서 사령탑 역할을 맡으며 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분명했다.
이제는 그저, 그곳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저, 믿어야죠…… 그들이 서울을 구원해주기를……."
그래, 이 일이 마무리된다면, 그들은 영웅이 아니라 구원자라고 불려도 무방할 터였다.
한편, 같은 공간의 한쪽 구석에는 우성문 실장과 천명호 준위가 앉아 있었다.
그들도 총집결지가 습격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상당히 심란해진 표정이었다.
"천 준위, 자네가 본 그 친구가 이번에도 무언가를 해낼 것 같나?”
우성문의 물음에 천명호는 이현욱을 떠올랐다.
그가 막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몇 차례 지켜봤다.
그리고 그때마다 천명호를, 새로운 감각으로 놀라게 했다.
“……제가 볼 때마다 제 예상을 뛰어넘는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네의 예상이…… 어느 정도인데?”
"하하, 평소보다 훨씬 큰 폭으로 뛰어넘어야 할 겁니다.”
아무리 고평가를 하더라도, 이번 사건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만, 결과가 어떻든 살아만 남는다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재목입니다.”
우성명은 깍지를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사건, 잘 해결만 된다면, 대한민국이 얻을 수 있는 게 정말 많겠군……."
마법 공학의 도시 라퓨타,
그리고 서울의 구원자…….
***
얼마 지나지 않았거늘, 학교 전체가 으스러지고 있었다.
마치 거인이 이 학교를 움켜쥐고 뒤흔드는 것만 같았다.
“……더는 버틸 수 없습니다!”
그런 목소리가 터져 나온 건 한 곳이 아니었다.
"젠장, 한도 끝도 없잖아!”
사방에서 그런 절규가 연달아서 나오고 있었다.
마법 방어막 생성 장치에 마나를 불어 넣으며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한계가 왔다.
쩌—엉——!
결국, 한곳의 마법 방어막이 뚫리고 말았다.
그리고…….
왜—애—애—애—앵——!
그 틈으로 엄청난 숫자의 철갑독충이 쏟아져 들어왔다.
"젠장, 놈들이 복도로 들어온다!”
“어서 반대쪽으로 뛰어—!”
그 부근을 지키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기겁하며 복도를 내달렸다. 하지만 복도를 가득 메운 채, 마치 터널을 통과 기차처럼 질주해오는 그 검은 벌레 떼를 피해낼 수 없었다.
"으아아아——!”
십여 명의 그대로 휩쓸리며, 눈 깜짝할 사이에 갈기갈기 찢겨버렸다.
왜—애—애—애—앵——!
그것들은 복도를 휩쓸며, 모든 것들을 갈아 마시며 진격했다.
그때, 복도가 꺾이는 지점에 광채의 갑옷을 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서은하였다.
얼음벽으로 막아!”
그녀가 그렇게 외치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쩌—어—어—어——!
그녀의 방패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밀고 들어오는 철갑독충들을 밀어냈고 다음 순간, 빙결 마법이 연달아 날아들며 복도를 통째로 막아버렸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법 방어막마저 녹이는 존재였다.
쩌적—! 쩌적—!
그깟 얼음벽 따위, 금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젠장, 한 번으로 안 돼!”
마법사들이 모든 마나를 끄집어내어 십여 발의 빙결 마법을 사용,
수 미터짜리 얼음벽을 만들어 내버렸다.
그제야 잠깐 버틸 수 있게 된 듯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게 뻔했다.
"하…… 저, 저 안에 18명이 있었어요……."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그들 중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 것이었다.
"젠장! 언제까지 이렇게 버텨야 하는 겁니까?”
한 플레이어가 서은하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젠 다 끝입니다. 저는 진짜로 마나가 오링 났습니다.”
"예! 이 이상 오버 쿨럭하면 마법사들이 졸도할 겁니다!”
서은하는 역시나 대답 없이, 방패와 검을 들어 올렸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저 싸울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나타났습니다!”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고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외친 이는 안민태였다.
“……안민태 상병, 뭐가 나타나?”
서은하가 물었고, 안민태는 검을 들어 올려 창밖을 가리켰다.
모두가 그 지점을 바라보았다.
수천 마리의 철갑독충이 장막처럼 하늘을 가로막고 있었기에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것들의 틈 사이로, 파란 하늘이 얼핏 내보였다.
그리고 그 하늘의 남쪽 끝자락, 외딴 그림자가 하나 보였다.
"어? 새잖아……."
한 민간 길드 플레이어가 그렇게 말했다.
그래, 그건…… 거대한 새처럼 보였다.
안민태가 그걸 가리키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아닙니다. 저건……."
그 순간, 그 거대한 새로부터 하나가 그림자가 분리되어, 청룡산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강철 중대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