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59화 (59/221)

59화.  < 서울의 구원자들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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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석과 추교용, 두 거구가 마주 서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둘 다 190cm가 넘는 장신이었기에 그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피면, 다부진 체구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김강석에 비교하여,

펑퍼짐한 체구에 떡두꺼비 인상인 추교용은 영 볼품없어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추교용의 전투력이 한 수 위로 평가된다.’

물론, 플레이어 개인의 전투력만으로는 드루이드인 김강석이 낫겠지만,

추교용의 부리는 저 좀비 몬스터들을 이겨낼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김강석은 절대 굽히지 않았다.

“……추교용 팀장님, 중요한 싸움을 앞두고 있으니 힘을 아끼시죠.”

그의 말에 추교용이 코웃음 쳤다.

"힘? 하하! 내가 언제 힘이 모자랄 때가 있었나? 너, 나를 좀 잊었나 본데?”

"야, 내가 언제 한 번 조언했잖아. 짐승 새끼들 제 자식으로 착각하고 어화둥둥 하면 만날 거기서 거기 머무른다니까…… 그래도 최초의 플레이어 중 한 명인데, 아직도 B등급이야?”

노골적인 무시였다.

그로 인해 둘 사이에 튀는 스파크가 한층 더 짙어졌고,

양측의 권속들이 내뿜는 맹수의 초저주파도 짙어졌다.

당장이라도 뒤엉켜서 살육전을 벌일 듯했다.

그때, 둘 사이에 누군가 끼어들었다.

"이봐 추 팀장, 체면 좀 지켜야지, 맨날 그렇게 화만 내면 어떡해?”

최정철이었다.

“……최 장군, 쯧— 오랜만입니다.”

"그래, 이제 나이도 있잖아. 애도 있— 아, 애는 없었지?”

추교용이 재미없는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듯 또 한 번 코웃음을 쳤다.

"저번에는 미안했고, 이번에는 자네 권속들이 내 불꽃에 휩쓸리는 일은 없을 거야.”

"예, 당연히 그래 주셔야죠. 기본 아닙니까?”

언제 한번 최정철의 화염 마법이 추교용의 몬스터를 잡아먹은 적이 있던 모양이었다.

"그럼 그럼, 그런데 그만 들어가는 게 어떻겠나? 보는 눈이 많아.”

“……예, 그러죠.”

아무리 추교용이라도 최정철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야 김강석, 조심해라, 너……."

그는 김강석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스쳐 지나갔다.

***

초등학교 안, 교사 회의실에 십여 명의 플레이어들이 모여있었다.

AMT의 지휘관들 및 각 그룹의 리더들이었다.

그들은 곧 벌어질 '최후의 전투’의 작전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추교용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잘 생각해보라고 이 사람들아—! 방금 최 장군이 거하게 한 방 먹여서 잠잠해진 거라면, 그 벌레 새끼들, 지금이 제일 없을 때 아니야? 아니 안양 패거리 걔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긴 뭘 기다려? 한 시가 급한데—!”

다소 공격적인 언사였지만, 모두가 그의 목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의외로 처음부터 끝까지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아서 길을 뚫을 테니까, 나머지는 하늘에다가 모든 화력을 딱, 조준해서 날아오는 벌레들 죄다 쳐내고 그렇게 내 짐승들이 빠르게 치고 들어가서 침식 요인 깨부숴야 한다니까, 더 늦기 전에—! 아 답답하네, 이 사람들 안일하게, 참……."

그는 안양 듀오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공습하자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현욱은 그 말뜻을 간파했다.

‘안양 듀오가 도착하기 전에 전 병력을 함정으로 유도해서 몰살하려는 거다.’

안양 듀오는 둘 다 A등급의 플레이어인 만큼,

그들이 도착하면 추교용 입장에서도 신경 쓸 거리가 배로 늘어난다.

그 전에 하나의 싹을 완전히 뽑겠다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전혀 모르는 이들이 듣기에는 충분히 합리적인 작전이었다.

추교용의 강력한 권속들이 선두에 서서 길을 뚫어내고 수백 명의 플레이어가 그 뒤에 따라붙으며 하늘에 화력을 집중하면, 침식 요인 까지 도달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단, 추교용이 정말로 아군이었다면 말이다.

“아니, 우리가 빨리 치고 들어가다가 걔들이 오면 합류하라고 하면 되잖아! 일분일초가 아쉬운데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어? 하여간 군인들, 탁상공론이 기본이야, 아주?”

그의 말을 들은 민간 길드 플레이어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마음속에도 조급함이 담겨 있었기에, 추교용의 말이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흠…… 저는 찬성합니다.”

"저희 <서울 방패>길드도 이 계획에 동의합니다.”

"예, 동의합니다.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민간 길드 소속의 플레이어들은 하나둘 그 계획에 동의했다. 그리고 최정철과 김강석도 아직 찬성만 안 했을 뿐이지, 그들도 추교용의 주장이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합니다.”

그렇게 말한 건 다름 아닌 이현욱이었다.

"—뭐? 왜!”

추교용이 어이없다는 듯 그렇게 소리치더니 최정철을 바라보았다.

"최 장군님, 근데 얘는 뭡니까?”

"음, 그 친구가 바로 ‘강철 중대’의 지휘관이야.”

그러자 이곳에 자리한 민간 플레이어 리더들이 눈에 이채가 담기며 이현욱을 훑었다.

그 유명한 강철 중대의 지휘관이 저렇게 젊은 사람이었을 줄은 몰랐을 터였다.

“……아, 얘야?”

추교용이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지금까지 그놈의 강철 중대를 마주할 때마다 빌런들이 실종되었다.

그런 원흉이 고작 이런 애송이였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얘, 병사잖아? 어이, 플레이어 등급이 어떻게 되나?”

"......."

"침식 요인을 이런 얘가 제거했다고? 하하…… 운이 좋았거나, 다른 누군가의 공을 잡아챈 거 아니야? 그리고 딱 봐도 경험이 거의 없어 보이는데……."

"그쪽, 침식 요인에 가까이 가보셨습니까?”

이현욱이 추교용의 말을 끊고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추교용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뭐? 그쪽? 방금 그쪽이라고 했어?”

"시간 없다고 하신 게 누군데요, 빠르게 용건만 말하죠.”

"이런 쌍—”

이현욱은 그를 무시하고 최정철 장군을 바라보았다.

"여단장님, 상황이 상황인 만큼 결례 좀 무릅쓰겠습니다.”

최정철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침식 요인을 제거, 아니, 근처에라도 가보신 분 있습니까?”

당연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지금 웨이브 존에서 침식 요인을 제거— 아니, 근처에 가본 건 우리 강철 중대, 그리고 안양 듀오뿐입니다. 그런데 대체 뭘 안다고 이렇게 섣불리 돌격을 결정하는 겁니까?”

이현욱은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며, 테이블에 마주 앉은 이들을 쭉 둘러보았다.

강철 중대의 지휘관, 침식 요인의 유일한 제거자,

그 두 가지 수식어가 붙자 이현욱을 바라보는 눈빛들이 완전히 달라진 상태였다.

"여러분! 지금 이 상황조차 변수로 만들어졌습니다. 3개의 침식 요인을 공략한 뒤에 추가 이벤트가 열린 상황 아닙니까?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그 미지수의 공간을 낡은 경험으로 해석해서 돌파하겠다는 건…… 노련함에서 나오는 용기입니까? 아뇨……."

이현욱은 고개를 내젓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늙은이의 방심일 겁니다.”

그 지점에서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확실히 안일한 점이 있었다.

"저희가 두 차례 침식 요인에 도달해서 목격한 건 다양한 함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상 밖의 엘리트 몬스터들이 수도 없이 튀어나왔죠. 심지어 우리는 지금 ‘보스 몬스터’가 뭔지 파악도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돌격했다가는…… 하나의 팀도 아니고 이곳저곳에서 모인, 좀 거칠게 말해서 콩가루 같은 결집력을 가진 우리는 전멸할 겁니다.”

그 말에, 추교용이 벌떡 일어섰다.

“지랄— 엘리트 몬스터는 무슨, 그딴 거 없어!”

"예? 그걸…… 그쪽이 어떻게 아십니까?”

"......."

하긴, 빌런으로서, 당연히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걸 내세울 수 없었기에 저렇게 태클을 거는 건 지금으로써는 아무 근거도 없이 떼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아, 아니, 그……."

"예, 솔직히 전혀 모르시겠죠. 그쪽이 대단한 플레이어고 많은 경험을 하셨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웨이브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시겠죠. 그런데 지금 함부로 예측하고 우리 모두의 목숨을 걸라고, 아니, 서울의 운명을 단 한 번의 돌격에 걸자고 주장하고 계시는 겁니다.”

"......."

추교용이 대답하지 못했고 이현욱은 허탈한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여기 계신 모두가 걱정하는 건 시간입니다.”

그래, 시간이었다.

당장 침식까지 단 하루 남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철갑독충’의 숫자가 늘어난다.

"하지만, 시간은 오히려 우리 편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어느 중형 길드의 마스터라는 여자가 물었다.

"지금 이 순간, 늘어나는 건 벌레만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플레이어들이 모이고 있죠. 가장 큰 전력인 안양 듀오도 오고 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현욱은 최정철을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가 쓰고 이 시간은 여기 계신 최정철 장군의 강력한 한 방으로 마련된 겁니다. 그리고 지금…… 그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 말에 최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건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11시간 뒤에 제 스킬이 돌아옵니다.”

이에 이현욱이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맞습니다. 우리의 최고의 순간은 오히려, 11시간 뒤가 될 수 있습니다.”

“아—!”

그러자 모두가 이현욱의 말을 이해했다.

11시간 뒤라면, 침식 완료까지 아직 7시간 정도가 남은 시점이었다.

바로 그때 최정철의 ‘세미 아마겟돈’이 돌아오고,

다시 한번 청룡산에 그걸 날려서 철갑독충의 숫자를 대폭 줄일 수 있게 된다.

바로 그때, 최대한 많이 모인 플레이어들이 돌격한다면…….

그래, 최고의 조건에서 전투를 치를 수 있게 된다.

그 말까지 듣자 모두가 이현욱의 의견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의견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예 맞습니다. 어차피 우리에게 남은 기회는 한 번 아닙니까? 다급하게 불확실한 방법으로 도전하느니, 조금 시간을 두더라도 이쪽이 더 확실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추교용은 부들부들 떨며 이현욱을 노려보았다.

그의 첫 번째 계획이 원천차단되었다.

***

"야, 강철 뭐시기—!”

회의가 끝나고 복도 나왔을 때, 추교용이 이현욱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와서 귓가에 속삭였다.

"씨발, 야부리 좀 잘 털더라 이 시퍼렇게 어린놈 주제에……."

그는 이현욱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콱—!

손아귀에 힘을 주어 아프게 할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이현욱은 아픈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 자식— 몸이……."

강철같이 단단했다.

그는 자신의 손아귀만 아려오자 결국 손을 떼고 어깨를 툭툭— 털어주었다.

"어쨌든…… 너 몸 좀 조심하는 게 좋겠다."

이제는 아주 대놓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내가 키우는 짐승 새끼들이 좀 통제가 안 될 때가 있어서, 실수가 일어나곤 한다?”

언제 갑자기 쳐 죽일지 모른다는 경고였다.

이에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도 아직 능력 다루는 게 어설퍼서 실수가 잦은 편이니까 눈먼 쇳조각 조심하십시오.”

“……뭐? 쇳조각? 내가 쇳조각 따위에, 어떻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바로 그때였다.

"모두 저, 저기를 보세요!”

"어, 저게…… 뭐야?”

창밖, 운동장이 유난히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내 누군가의 맹렬한 외침이 들렸다.

젠장! 벌레 떼가 내려옵니다!”

……뭐?

이현욱은 서둘러 창가로 다가갔다.

'뭐야…….'

정말로 저 멀리 청룡산 부근, 그곳에서 검은 일렁임이 치솟았다.

이번에도 화재에 의한 연기 따위가 아니었다.

‘진짜로…… 나왔다.’

또 한 번의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 빌런들이 다시금 그 ‘유도 아이템’을 쓴 듯했다.

‘……이판사판으로 가자는 건가?’

추교용이 옆으로 다가오며 피식 웃었다.

“……하, 참, 네 병신 같은 시간 끌기가 망한 것 같은데 어떡하냐?”

"......."

"그러길래 내가 선수 치자고 했잖아. 어이구, 내 말 좀 듣지…… 으흐흐—”

아무래도 본디 계획이 틀어진 추교용이 조금 더 극단적인 수를 꺼낸 것이었다.

아직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의 철갑독충을 불러들이다니 …….

혼란을 줘서 플레이어들의 군집을 흩트려 놓을 생각이었다.

"전투 준비—!”

어디에선가 김강석의 고함이 들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제대로 반응하는 건 AMT 병사들과 일부 노련한 플레이어들뿐,

이런 상황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대다수가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추교용은 그 장면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니, 쟤들 너무 얼 타는 거 아니야?”

"너도 침 좀 닦고 인마, 흐흐, 나 먼저 간다?”

추교용은 창문을 열어젖히고, 몸을 내던졌다.

"이 병신들아—! 얼 타지 말고 제대로 좀 싸워라, 좀!”

추교용은 그렇게 외치며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그 끝에, 그의 권속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그으으——

그가 손짓하자, 그것들이 무기를 뽑아 들고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운동장에 세워져 있던 차들을 죄다 밀어버리며 어디론가 맹렬하게 돌진했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어딘가 이상했다.

하늘에서 다가오는 벌레 떼는 안중에도 없는 듯 학교 담을 타 넘더니…… 그대로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추교용의 생각은 간단했다.

‘어차피 철갑독충은 끊임없이 튀어나온다. 여기서 조금 소모해도 괜찮아.’

이곳에 집결지가 선포되었고 서울 전역에서 플레이어들이 몰려오고 있다.

그런데 그 집결지가 공격받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오던 걸음들이 멈춰 설 터,

플레이어들이 강력한 화력을 준비하는 걸 망칠 수 있을 것이었다.

말 그대로 사전에 ‘와해’ 시키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지금 소모하게 하지 않으면, 결국 뚫리고 말 테니까…….'

그리고…….

‘가서, 강화 마법을 뿌린다.’

담을 넘어서 사라진 추교용의 권속들은 저 멀리 어딘가에서 ‘철갑독충’들을 향해 ‘강화의 주술’을 걸고 있었다. 그것은 추교용이 가진 아주 희귀한 스킬이었다.

- 당신의 권속 ‘미노타우로스’가 체력을 희생하여 일대에 ‘야생의 고양’을 방사합니다.

그런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저 멀리서 회색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우호적인 몬스터가 그 연기를 뒤집어쓰는 순간 최대 3배까지 강력해진다.

"젠장, 벌레 떼가 곧 들이닥칠 텐데 미노타우로스, 전부 어디로 간 겁니까?”

누군가 그에게 다가와 따지듯 물었다.

고진한 대위였다.

"뭐? 원래 미쳐 날뛰는 애들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이나 해!”

"아니, 그렇게나 통제가 안 되는 겁니까? 여길 지켜야죠!”

"아, 쌍— 신경 쓰지 말라고…… 뒤지고 싶어?”

고진한은 작게 욕설을 내뱉고 물러났다.

‘그래, 강화된 벌레떼가 쌓이면, 이깟 한 줌 병력 따위 아무것도 아니야.’

추교용은 플레이어들을 쭉 훑으며 냉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세력이 약해지면, 그냥 대놓고 쓸어버려도 돼. 혹시 누군가 나를 보더라도.......'

빌런의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자신이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히는 것도 감수한다.

쿵— 쿵— 쿵— 쿵—

그렇게 생각하는 그의 옆으로 거대한 울림이 다가왔다.

시뻘건 껍질을 가진 5m 길이의 거북이를 닮은 몬스터 ‘골렘 터틀’이었다.

"팀장님, 골렘 터틀 꺼냈습니다.”

"그래, 그 자식 잘 간수 해.”

"예!”

그리고 그의 주변으로 3마리의 블랙 오크가 다가왔다. 호위병들이었다.

"그런데, 저…… 앞서 말씀드렸듯, 강철 중대를 예의주시하겠습니다.”

"괜찮아, 인마— 그것들이 뭘 눈치챘겠냐? 운이 좋았을 거야.”

추교용은 강철 중대가 빌런에 관하여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고 믿었다.

다섯 도살자는 김강석과 서은하에게 당해서 붙잡혔다가 기백준이 자살 주문을 시동했고,

공현준은 원래 좀 괴짜인 데다가 침착하지 못한 구석이 있어서 당했을 테고,

최민성 일행은 아마 붙잡혔다가 다 같이 자살 주문 시동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데, 어떻게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날 공격하겠냐?”

강철 중대, 그들은 군인이었다.

웬만해서는 정도(正度)에 어긋나는 짓을 할 리가 없었다.

"즉, 우리는 지금 그 무엇보다 안전한 상태란 말이야.”

적진의 한 가운데에서 적의 보호를 받고 있다.

뱁새 둥지의 뻐꾸기 새끼 같은 상황이었다.

“하하— 이거 뭐…… 생각보다 별거 없잖아?”

그는 이제 아주 대놓고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쩡—!

머리 위에서 웬 굉음이 울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니, 웬 ‘거검’이 ‘마나 드론’ 한 대와 충돌했다.

"뭐야?”

그리하여 마법 드론은 그대로 추락했고, 그 거검도 튕겨 나갔다.

쉭—쉭—쉭—쉭—!

본디 비행 궤도를 상실하게 빙글빙글 돌던 그 거검은…….

쩌——억——!

골렘 터틀의 등에 처박혔다.

"어—?”

추교용은 고개를 갸웃했다.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 어떻게……."

골렘 터틀의 껍질은 아주 단단했다.

A등급의 전사 계열 플레이어가 수십 번을 내리쳐야 깨질 정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저딴 눈먼 검이…….

'아, 하필이면 틈에—!’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껍질이 단단해지는 한편 껍질 틈이 더욱 크게 벌어진다.

그리고 그게 바로 골렘 터틀의 공략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곳이 약점이라는 건, 절대로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었다.

추교용마저도 자신의 권속들을 계속해서 연구하며 알게 된 것이었데…….

하필이면 바로 그곳에, 아주 큰 대검이 떡하니 처박혀 있었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어어——

물론 골렘 터틀은 그 정도 데미지 만으로 죽지 않았다.

아니, 절대 죽지 않는다. 심장만 안전하다면 말이다.

"후......."

추교용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심장들이, 그러니까 ‘하트 박스’가 저놈의 몸 깊숙한 곳에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야! 뭘 쳐다보고 있냐! 저거 안 빼냐?”

"아! 알겠습니다!”

추교용이 제 부하에게 그렇게 소리 치는 순간—

쩌—어—어—엉——!

난데없이 엄청난 파동이 일어났고,

후두두두——

골렘 터틀이 산산이 조각이 나며 터져버렸다.

추교용도 그 충격에 오륙 미터를 날아버렸다.

그때, 그의 머리 맡으로 누군가 다가오더니, 그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으세요?”

강철 중대의 지휘관, 이현욱이었다.

그리고 그가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아, 실수를……."

추교용은 여전히 어안이 병병했다.

그는 이현욱을 밀어내고 골렘 터틀…… 이었던 것 앞에 섰다.

"어, 내……."

하트 박스…….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그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 당신의 권속이 죽음으로 돌아갑니다.

- 당신의 권속이 죽음으로 돌아갑니다.

- 당신의 권속이 죽음으로 돌아갑니다.

- 당신의 권속이 죽음으로 돌아갑니다.

- 당신의 권속이 죽음으로 돌아갑니다.

.

.

.

그리고 그의 주변에 있던 호위병, 블랙 오크 3마리가 풀썩 쓰러졌다.

그는 다음 순간,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진한 분노를 느끼고,

몸을 홱 돌리며 이현욱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현욱은 너무나 쉽게 그 주먹을 피해냈다.

"시, 실수? 씨, 씨, 씨발, 지금 이게 실수라고 미쳤냐, 너?"

이현욱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아, 아까 말했는데, 내가 능력 다루는 게 아직 어설퍼서 쇳조각…… 조심하시라고요.”

쇳조각…… 쇳조각…… 저 거대한 검이 쇳조각이라니.......

추교용의 얼굴이, 이번에는 벌겋게 변한 게 아니라 시퍼렇게 변했다.

이현욱은 얼굴 한가득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담았다.

"괜찮아요, 저런 괴물 얼마쯤 합니까? 제가 갚아드릴게요.”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능력 통제 미숙으로 인한 실수로 보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마나 드론’과 충돌한 불의가 원흉이었으니…….

"아……."

A등급 플레이어 추교용,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권속들의 ‘심장’이 전부 저 안에 있었고, 죄다 터졌다.

그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현욱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콱—!

마치 유압 프레스로 움켜쥔 것처럼,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윽!"

추교용은 고통을 참으며 입술을 깨물었고 이현욱이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길래 내 계획대로 했어야지……."

실수를 빙자하여 대놓고 그걸 박살 낼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이었다.

그렇게, 한 가지 위협이 완전히 거세되었다.

마지막 침식 요인 공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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