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 마지막 침식 요인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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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은 지휘 차량에 탄 채 정면에서 다가오는 지옥을 마주 보았다.
청룡산에서 흘러나온 ‘검은 안개’가 도심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저, 저거 진짜로 전부…… 벌레예요?”
뒷좌석에서 김세희가 물었다.
"예, 그렇게 보이네요.”
"아, 미친……."
농작물을 휩쓰는 메뚜기 떼 ‘로커스트’처럼 떼로 몰려다니며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곤충 떼거리…… 그러나 저놈들이 집어삼키는 건 농작물 따위가 아니라 '도시’ 그 자체라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훗날 <도시 포식자>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오늘이 바로 그것들의 화려한 첫 등장이다.
왜—애—애—애—앵—!
앞으로 나아갈수록 역겨운 날갯짓 소리가 점점 커지며 머리를 울려댔고,
그것들이 스쳐 지나간 건물의 상층부가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턱으로 갉아 먹는 것이었지만, 너무나 빨랐기에 흡사 녹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미, 미친……"
운전병이 그렇게 읊조리며 신음을 흘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쪽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왜—애—애—애—앵—!
거리가 좁혀지며 점점 더 커지는 그 역겨운 소리에, 차 안의 모두가 옅은 신음을 흘렸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것들이 어떻게든 쓰러뜨릴 수 있는 괴물이었다면,
저건 대응할 수 없는, 일종의 재난 같은 느낌이었으니 용기가 옅어질 수밖에…….
그러나 이현욱은 언제나 그렇듯 담담하기만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장 극악무도해 보이지만 오히려 파훼법이 아주 명확하다.’
이현욱이 4개의 침식 요인 중 마지막으로 둔 이유가 그것이었다.
철갑독충(鐵甲毒蟲)은 금속 피부를 가진 곤충 떼로, 상호 간 아주 밀접한 거리를 유지하며 이리저리 뒤엉켜 날아다닌다. 그리하여 하나의 거대한 강철 폭풍을 형성하는 것, 그게 저것들의 무기였다.
‘그런데 만약 저 촘촘한 대형의 한 가운데에 번개같은 게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저것들의 단단한 껍데기—금속은 당연하게도 가장 강력한 전도체 중 하나이며,
그 안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체일 뿐이다.
쉽게 말해서, 감전되기 딱 좋은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아주 재밌는 장면이 벌어질 거다.’
이현욱은 마나 메신저를 들어 올렸다.
"박준모, 준비됐나?”
- 칙— 준비 완료!
지금, 그 ‘번개’가 준비됐다.
이현욱의 시선이 선두의 기갑수색차량에 닿았다.
천장의 루프, 원래는 기관총 따위가 장착되어 있어야 할 곳,
지금은 그곳에 아주 특별한 물건이 얹혀 있었다.
‘뇌신의 철퇴, 기대되는군.’
영웅 등급의 아이템으로 만든 장인 등급의 지원 화기 뇌신의 철퇴,
그것의 ‘창끝’이 전방의 하늘을 향해 겨누어진 상태였다.
"—발사!”
이현욱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뇌신의 철퇴가 시퍼런 불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치—이—이—잉—!
인드라의 축복이라는 이름의 창,
그 끄트머리에서 엄청난 양의 전류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들은 당장이라도 사방팔방 튕겨 나갈 것처럼 요동쳤지만,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끌어 당겨지더니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었다.
그리하여 파란 실타래 같은 거대한 전기 구체가 탄생했다.
바로 그때, 박준모가 방아쇠를 당겼다.
쩌—엉————!
일순간, 세상이 시퍼렇게 변했다.
그 전기 구체가 포탄처럼 쏘아져 나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검은 일렁임의 중심부에 적중했다.
파—자—자—자—자——!
전기 구체가 전류 다발로 변하여 거미줄처럼 뻗쳐나갔고, 철갑독충의 금속 몸뚱이 그 전도체 덩어리를 타고 넘으며 수백 미터 밖까지 도달— 순식간에 그 떼거리 전체를 휘감아버렸다.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박준모, 어디 실력 종 발휘해 봐 ”
이현욱의 명령에 박준모가 그곳을 향해 양손을 뻗고, 넓게 벌리기 시작했다.
파—자—자—자—자——!
그러자, 벌레 떼와 뒤엉킨 전류가 그의 손짓을 따라 움직이며 더 많은 면적으로 번져나갔다.
마치 화산재 안에서 번개가 치는 ‘화산성 번개’처럼, 신비롭고 위압적인 장면이었다.
“와……"
그 일격에 감전되어 신경계가 마비된 철갑독충들이 지상을 향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빨리 움직여!”
그러는 사이, 강철 중대 행렬이 멈춰 서고 전 병력이 도로에 집결했다.
이현욱 역시 차 밖으로 나와서 상황을 살피며 다시금 마나 메신저를 들어 올렸다.
"지금이다! 모든 전격 마법을 쏟아붓는다!”
그의 명령에 모든 마법사가 미리 준비해둔 '전격 마법’을 쏘았다.
쩌—저—저—저—정——!
뇌신의 철퇴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십여 발의 전격 마법이 동시에 쏘아지며 요란하게 울렸다.
이어서 정부 무기고에서 얻은 각종 전격 효과의 아이템들이 죄다 동원되었다.
수들이 전기 속성이 인첸트 된 화살을 쏘아댔고,
마법사들이 ‘감전 폭탄’ 같은 소모형 아이템을 바람 마법으로 날려 보냈으며,
고진한 대위는 마탄의 사수로서 ‘전격탄’을 마구잡이로 난사했다.
그리고 이현욱 역시 ‘운사암수’를 쏘아 보냈다.
쉭——
그것이 철갑독충 무리의 한가운데 위치하는 순간—
'전격 방출—!’
잠재력이 해방된 운사암수의 스킬, 전격이 터져 나오며 단숨에 수십 마리를 감전시켰다.
파—자—자—자—자——!
그리하여 절반 이상의 철갑독충이 전류 폭풍에 휩쓸리며 날갯짓을 멈추고, 허망하게 추락했다.
터—더—더—더—더—더—
그 쇳덩이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이는 정말이지, 일개 중대 규모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엄청난 수준의 광역 전격 공격이었다.
"이거…… 장난이 아니긴 한데……."
이현욱도 새삼 놀라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솔직히 어제까지만 해도 이 ‘마지막 이벤트’때 이렇게 정면 대결할 생각이 없었다.
본디 저것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건 미친 짓이었다. 휩쓸리는 순간 그대로 전멸일 테니까…….'
그렇기에 그저 서울 전역에서 몰려온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보다시피 이렇게 화력으로 놈들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정부 무기고와 박준모의 각성, 이 두 가지가 켰다.’
그 두 가지 호재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철갑독충 무리는 결국 무리를 해체하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어! 놈들이 물러갑니다!”
"크, 됐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엄청난 수의 패잔병들이 부르르 떨며 끽끽— 역겨운 소리를 내고 있었고, 사수들이 탱커를 앞세운 채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그것들을 하나씩 쏘아 터뜨렸다.
한편, 그러는 사이에 민간인들이 탄 것으로 추정되는 버스가 강철 중대 대열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괜찮아요! 저희가 보호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종료되었다.
'그러나 아직 방심하긴 이르다.’
철갑독충은 약점이 확실한 만큼 그 강점도 확실했다.
'숫자가, 헬 레트 때 이상으로 많다. 그리고 빠르게 보충된다.’
그는 계속해서 청룡산 쪽을 주시했다.
저곳의 게이트에서, 지금도 수도 없이 많은 벌레가 쏟아져 나오고 있을 터였다.
"안민태, 이만하면 됐다. 민간인들 챙겨서 후퇴 준비해. 놈들이 다시 올 거다.”
"예, 알겠습니다.”
이현욱의 말처럼 흩어졌던 벌레 떼는 저 먼 곳에서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여전히 어마어마한 숫자로, 조금만 더 멀리서 봤다면 먹구름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현욱은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더 위험하다고 여겼다.
‘곧 다시 온다. 그리고…… 소모전으로 가면 우리가 불리하다. 10분 안에 자리를 떠야 해.’
그는 박준모를 바라보았다.
"으......."
그는 ‘마나 회복 물약’을 들이켜며 전류 통제력을 발휘했는데, 무리했는지 코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박준모뿐만 아니라 방금 활용된 거의 모든 전격 무기들이 ‘쿨타임’에 접어든 상태였다.
즉, 지금 다시 맞붙게 된다면 이길 수 없을 것이었다.
"저 벌레 떼는 무한 리필이야! 잡아 먹히기 싫으면 최대한 빨리 이동 준비를 해!”
안민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빠른 움직임을 종용했다.
그런데 그때…….
“—어? 이현욱 병장님, 저기 보십시오!”
최태용이 그렇게 소리치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 벌레 떼가 버, 벌써…… 되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뭐?”
그 말에 이현욱 역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려 청룡산 방향을 바라보았다.
"젠장……."
정말로, 그 부근에서부터 한 줄의 검은 일렁임이 뻗어 나와 이쪽을 향해 흐드러졌다.
직전의 전투로 잡은 것보다 적어도 두어 배는 많은 숫자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미 화력을 한 번 방출한 현재로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숫자였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대체 어째서…….'
철갑독충 역시 집단생활을 하기에 동족이 공격받으면 집단행동에 나서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이건 어딘가 잘못되었다.
몬스터가 아무리 자연법칙을 무시하는 것들일지라도 어느 정도 ‘과정’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었다.
예를 들면, 살아남은 개체가 둥지로 돌아가서 공격 받았다는 시그널을 보낸다든지 …….
‘몬스터의 행동에도 분명 그런 매커니즘이 있다.’
그런데 전투가 벌어진 지 단 몇 분 만에 ‘둥지’가 반응한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이 근처에 추교용이 있다.’
즉, 일전에 ‘악마의 경종’처럼 몬스터를 조종하는 특수한 경우가 개입했다는 걸, 이현욱은 눈치챘다.
그는 몸을 돌려, 중대 전체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 당장 이 근처에 지하주차장이 있는 건물을 찾는다!”
"예!”
"아니! 주차장은 없어도 돼! 차량을 전부 버리더라도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을 찾아!”
이현욱은 명령을 정정했다.
과감하게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안일하게 굴다가는 몰살이었다.
‘방심했다…….'
민간인들이 탄 버스를 구하기 위하여 빠르게 치고 빠질 생각이었다.
‘그런데 놈들이 이렇게 빠르고 극단적으로 행동에 나설 줄이야…….'
민간인의 희생을 눈을 감았어야 했던 걸까…….
이현욱은 순간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야, 나와 박준모가 모든 힘을 쥐어 짜내면 어떻게든 따돌릴 수 있다.’
이런 위기, 전생에도 숱하게 넘겨왔다.
이번 생은 술술 풀어나가고 있었지만, 위기를 겪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의 머릿속에서 여러 개의 경우의 수가 교차했고,
이내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그때, 그의 얼굴에 웬 시퍼런 불빛이 내리쬈다.
웅—
그는 그 불빛의 진원지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응?"
그 순간, 하늘에서 웬 두꺼운 빛줄기가 떨어졌다.
쩌—어—어—엉——!
그건, 텔레포트였다.
바삐 움직이던 모두가 놀란 듯 멈춰 서서,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이내 그 빛줄기 그 안에서부터 여러 개의 인영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이내, 선두의 얼굴이 드러났다.
‘최정철 장군?’
아크메이지(Archmage) 최정철, 그가 커다란 금속 지팡이를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김강석, 서은하, 최영준 등 AMT의 정예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 그러고 보니......."
그들과는 침식 요인을 먼저 찾는 쪽으로 합류하기로 하고, 실시간으로 좌표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즉시 텔레포트를 사용한 듯했다.
'마나가 엄청나게 소모될 텐데 이렇게 과감하게 사용할 줄이야…… 어쨌든 완벽한 타이밍이다.’
최정철 장군이 이현욱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강철 중대가 우리를 마지막 순간으로 이끌어줬군그래.”
이현욱은 그에게 거수경례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지팡이를 들어 올려 정면으로 기울였다.
철갑독충 떼가 뿜어져 오르고 있는 ‘청룡산’ 부근을 가리킨 것이었다.
"이현욱 병장, 혹시 저기 저 건물에 가려져 있는 작은 야산에 침식 요인이 있는 건가?”
“예, 현재로서는 모든 정황상 확실해 보입니다.”
"음…… 추가 이벤트로 미쳐 날뛰는 것 같은데, 약간 좀 진정시켜줘야겠어.”
최정철은 고개를 돌려 김강석을 바라보았다.
“1대대장, 좀 뜨거울 수 있으니까, 애들한테 좀 비켜 있으라고 해.”
그의 말에 김강석이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전 병력 엄폐한다! 열 폭풍에 주의하라—!”
큰 덩치만큼이나 목소리도 우렁찼다.
그 명령에 따라 모든 병력이 골목과 트럭 등에 엄폐했다.
그리고 최정철이 홀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무려 여단장이 몬스터 떼를 향해 홀로 걸어가거늘, 아무도 뒤따르지 않았다.
몬스터가 두렵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스킬에 휘말릴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중에서 그의 마법을 직접 본 건 김강석과 전생의 이현욱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험이 없더라도 저절로 몸이 반응할 만큼, 최정철의 한 방은 유명했다.
왜—애—애—애—앵——!
어느새 철갑독충의 날갯짓 소리가 가까워졌다.
하지만 왠지, 이전보다는 작게만 느껴졌다.
작인 거인 최정철, 그가 그것들을 노려보며,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지팡이 끄트머리에서부터 시뻘건 광선이 치솟았다.
지—잉——
그 광선이 드높은 상공에서 멈춰 섰고,
그 지점에 에너지가 집중되며, 작은 불덩이 하나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작은 불덩이가 순식간에, 엄청난 크기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그 공간의 온도가 급변하며 대류가 발생했고 일대 돌풍이 몰아쳤다.
‘저건 설마.......'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50m가 넘는 크기까지 자라났다.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는 거대한 화염 구체…… 작은 태양이라고 해도 믿을 법했다.
"윽—"
수백 미터 아래에 있음에도, 얼굴이 후끈거릴 지경이었다.
'역시 세미 아마켓돈(Semi Armageddon), 마나를 전부 태워서 제대로 한 방 먹이려는 거다!"
최정철은 그 파괴적인 구체를, 청룡산을 향해 기울였다.
콰—과—과—과—과—과——!
그 육중한 불덩이가 지구의 위성이라도 된 것처럼,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의 이동 선상에 겹친 모든 철갑독충이 한 줌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콰—과—과—과—과—과——!
지워버린다. 그 표현이 과하지 않을 만큼 파괴적인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직접 닿지 않더라도, 엄청난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위협적으로만 보였던 그 괴물 떼거리가 하루살이 떼처럼 허무하게 무력화되었다.
“와……."
종전의 강철 중대의 활약을 무색하게 만드는 최정철 장군의 광범위한 화염 마법…… 그 앞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이현욱마저도 새삼스레 놀랐다.
'이때도 아크메이지의 화력은 상상을 초월했군…….'
물론, 앞으로 몇 년 뒤, 더욱 성장한 최정철의 일격은 여전히 눈에 선했다.
‘언제나 무표정이었던 네크로맨서의 얼굴을 처음으로 일그러뜨렸던 게 바로 저 남자다.’
이렇듯 최정철은 오로지 ‘범위’와 ‘파괴력’에 올인한 단 한 방의 파워—전술병기급의 전력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모든 상황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다수를 쓸어버릴 때만큼은 최고였다.
‘그리고 원래는 상성 상 좋지 않아야 마땅한데…….'
보통 불은 금속에 유효한 데미지를 주기가 어렵다.
그건 이현욱이 가장 잘 알았다.
숱한 화염 계열 플레이어가 그의 강철을 뚫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렇기에 철갑독충을 사냥할 때는 화염 마법은 지양해야만 했다.
그러나 결국 금속을 제련하는 건 모든 걸 다 녹여낼 만큼 강력한 불—
그게 바로 최정철이 다루는 화염 마법이었다.
어느새, 지는 태양처럼, 세미 아마켓돈이 드높은 건물 뒤로 모습을 감추며 세상이 한톤 어두워졌다.
바로 그 부근에 청룡산이 있었고…….
콰——아——앙——아——!
폭음과 함께 그 산이, 통째로 날아갔다.
쿠—구—구—구—구——!
모래가 섞인 열풍이 이곳까지 날아들었다.
"윽!"
이현욱은 모굴레이 땅에 박아 넣어, 그 열풍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 순간, 이현욱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정도로 때렸는데도 침식 요인이 날아가지는 않았다.’
웨이브 종료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즉,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아마 철갑독충 떼가 마치 벌떼처럼, 침식 요인을 몸으로 겹겹이 둘러싸서 보호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최정철의 이 일격은 엄청난 ‘쿨타임’ 이 있기에 한동안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결국,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어느새, 최정철이 이현욱을 돌아보고 있었다.
"자 어때, 자네가 무언가를 꾸며 볼 시간이 마련되었지, 안 그래?”
***
서울 침식 대응 본부, 그곳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3번째 침식 요인 공략 소식이 들렸고 그 이후 ‘추가 이벤트’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부장님! 마지막 침식 요인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방금, 제3항마여단장 최정철 장군으로부터 마지막 침식 요인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그 말에 강서윤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숨을 천천히 골랐다.
"드디어 올 게 왔군…… 네! 위치는 어디죠?”
"관악구 청룡산이라고 합니다!”
"좋아요! 이제 진짜 마지막 순간이 왔어요!”
그녀는 테라스로 걸어가서 본부의 모든 직원을 내려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연락 닿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그곳에 모여서 힘을 합쳐 달라고, 서울을 구해달라고 전하세요!”
이들은 웨이브 존 안의 모든 플레이어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침식 요인의 위치는 공개되었다.
이제 충분한 힘을 집중할 수만 있다면.......
‘정말로 서울을 지켜낸다…….'
그리하여 웨이브 공략이라는 유례없는 업적을 달성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강서윤은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 걸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후......."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국가게이 트대응전략실장 우성문이 앉아 있었다.
‘지난 이틀간 수수방관 하더니 이제는 아주, 죽치고 있네?’
그런 일관되지 않는 모습, 그녀의 눈에는 아니꼽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진짜 이유를 캐봐야겠다.’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서, 팔짱을 끼고는 우성문을 내려다보았다.
"우 실장님, 이제 슬슬 말씀해주시죠.”
“……예? 뭘, 말씀입니까?”
난데없는 물음에 우성문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 실장님만 정보통 있는 줄 아세요? 저도 사방팔방에 귀가 있고 눈이 있습니다.”
“……예?”
“A등급 분석가 플레이어들 데리고 웨이브 존 분석한 뒤에 바로 여기로 달려오신 거잖아요.”
분석가 플레이어는 게임의 각종 정보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즉, 최고 수준의 분석가 플레이어 팀에게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저 웨이브에 관한 크고 작은 정보를 얻어내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마, 꽤 큰 것을 알아낸 듯했다.
"그때, 웨이브 존을 분석해서 어떤 정보를 본 거잖아요. 그래서 과감하게 2호 무기고까지 개방해서 다 퍼준 거고요. 그러니까…… 침식 이후 대비를 하겠다는 생각 따위는 싹 잊을 만큼, 아주 달콤한 정보를 물은 거, 아니에요?”
"......."
"설마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목숨 바쳐서 웨이브 공략하면, 그 보상을 날름 빼내서 몰래 숨겨 놓고 먹으려는 건 아니죠?”
강서윤이 도끼 눈을 뜨고 몰아붙이자 우성문은 피식 웃고는 손사래를 쳤다.
"하하—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건 절대로 숨기지 못할 물건이니까요.”
"못 숨기다니, 왜요?”
"그거야…… 엄청나게, 엄청나게 클 테니까요.”
우성문은 결국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강 대표님, 웨이브라는 이벤트는 일종의 대규모 지역 퀘스트 아니겠습니까?”
"예, 뭐…… 그렇게 볼 수 있죠? 지금까지 깬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걸 깬다면……."
그 말에, 강서윤은 알았다는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아주 큰 보상이 따르겠네요. 아! 설마, 보상이 뭔지 알아낸 거예요?”
우성문이 고개를 끄덕였고 강서윤의 눈이 빛났다.
웨이브 정도 되는 걸 공략한다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보상이 나올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좁은 지역에서 진행되는 지역 퀘스트 <언 럭키 이벤트>만 하더라도 ‘영웅’ 등급 아이템이 나오기도 하니 말이다.
그녀는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고, 침을 꼴깍 삼켰다.
"서, 설마! 신화 등급…… 맞아요?”
지금까지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신화 등급>의 아이템 , 그게 나올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러나 우성문은 고개를 저었다.
“음, 그건 아닙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보다 가치 있는 걸 수도요.”
“……예? 아니, 신화 등급보다 가치 있는 게 대체 뭐죠?”
"강 대표께서는, 지금까지 등장한 아이템과 오브젝트 중 가장 가치 있는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질문에 강서윤은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우성문을 바라보았다.
"세계수……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프리카의 중심, 차드 공화국에 열린 성스러운 나무…….
그것은 지금까지 등장한 그 어떤 아이템, 그 어떤 오브젝트, 그 어떤 능력보다 큰 파급력을 가져다주었다.
세계수가 없었더라면, 게이트에 대응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워졌을 것이었다.
"예, 세계수도 ‘블루 게이트’라는 가장 어려운 유형의 게이트를 공략했을 때, 그 자리에 싹이 돋았죠. 그런데 훨씬 더 어려운 웨이브를 공략한다면…… 서울 상공에 어떤 오브젝트가 생성될 것 같습니다.”
"그게 대체…… 뭐죠?”
우성문은 깍지를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 허공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법 공학의 도시, 라퓨타(Laputa)…… 분석 결과, 그렇게만 나왔습니다.”
전설 속에 나오는 하늘을 떠다니는 섬, 그게 서울의 상공에 나타날 예정이었다.
강서윤은 그게 무엇일지, 어떤 파급력을 가져올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때, 우성문이 검지를 들어 보였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죠.”
“……예?”
"세계수의 가장 깊은 곳, 코어까지 들어갈 수 있는 증표, 그게 어디서 나왔죠?”
세계수는 현재 차드 공화국의 영토에 있으나, 차드 공화국이 독점하는 건 세계수에서 얻어지는 여러 부산물일 뿐이었다.
그 외에 모든 것은 ‘세계수의 관리자’라고 불리는 오직 단 한 명의 플레이어에게만 허용된 권리였다.
"그거야…… 당연히 블루 게이트 안, 던전에서 얻었죠. 세계수 자체가 블루 게이트 공략 보상이었고 관리자 권한인 ‘증표’였나, 아무튼 그건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어떤 아이템이었죠, 아마?”
"예, 그렇다면 라퓨타에 관한 어떤 특별한 권리는, 저 웨이브 존 안의 누군가가 가져가지 않겠습니까?”
그 말은 합리적이었다.
강서윤은 실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저 안의 누군가가, 역사상 유례없는 복권에 당첨된다는 소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