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56화 (56/221)

56화.  < 마지막 침식 요인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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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2호 무기고, 특급 기밀 지역인 그곳에 강철 중대가 들어와 있었다.

대대 무기고보다 5배는 넓은 3700²의 공간에, 천장 높이만 10m가 넘을 듯했다.

‘……뭐랄까, 북미의 초대형 창고형 매장 같다.’

그런데 그 공간에는 단 하나의 구멍도 없었다. 문, 창문, 심지어 환기구조차 없었다.

모든 벽은 두꺼운 콘크리트 벽에다가 마법 방어막이 처져 있었으며,

내부 공기 순환은 마법으로 이루어지는, 그야말로 완벽한 격실인 셈이었다.

"진짜, 제가…… 이런 걸 써도 돼요?”

김세희는 두 자루의 단검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그건 언뜻 봐도 그전에 쓰던 무기보다 월등히 고급스러운 자태였다.

약 30cm의 시퍼런 칼날이 곡선으로 뻗어 나가며 번뜩였는데,

살짝만 닿아도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그 두 자루 전부 무려 ‘숙련’ 등급의 ‘플레이어 제조 아이템’이었다.

일반 아이템이 일반—희귀—영웅—전설—신화, 5단계,

제조 아이템은 일반—고급—숙련—장인—명인, 5단계,

이렇게 단적으로 비교하자면 ‘영웅’ 등급의 아이템과 등치 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영웅 등급과 같을 수는 없다.’

오히려 가격은 ‘희귀’ 등급과 비슷하거나 더 낮을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플레이어 제조 아이템에는 ‘스킬’이 붙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제조 아이템에도 스킬을 불어 넣는 방법이 있긴 있지만, 상급 대장장이와 고위 마법사가 설계 단계부터 무려 반년 넘게 함께 매진해야 하는 등, 여러모로 비경제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가치는 개당 몇억 원을 호가하니, AMT 병사가 쥘만한 게 아니긴 했다.

"음, 뭔가, 남의 명품 가방 빌려서 등산 가는 기분인데, 이거……."

김세희는 여전히 그 비싼 무기를 쓰는 게 부담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김 병장, 안 어울리게 뭘 그렇게 주저해요?”

이현욱의 말에 김세희가 얼굴을 팍 구겼다.

"뭐가 안 어울려요? 그러면 탐욕스럽게 웃으면 좀 어울릴 것 같아요?”

"음, 뒤돌아서 몰래 웃으면 최고죠.”

"그런데 그거 어차피 반납해야 하니까 너무 김칫국 마시지 마요.”

“아, 예—”

이현욱은 고개를 돌려서 무기고 안을 쭉 살폈다.

강철 중대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아이템을 챙기고 있었다.

"—여기 고급 등급의 방패 잔뜩 있으니까, 탱커들, 하나씩 챙긴다!”

"우와 이것 좀 봐……."

"크, 내가 아다만트 도금 화살촉을 써보는 날이 오다니……."

강철 중대 전원이 생전 구경도 못 했던 강력한 아이템으로 무장하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전투를 앞두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쇼핑하는 기분을 내는 듯했다.

물론 이 사태가 끝나면 그 아이템들은 전부 반납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아이템 이상의 포상을 받게 될 거다.’

웨이브가 끝나면, 강철 중대 전원의 몸값이 하늘로 치솟을 터였다.

이현욱은 조금 더 안쪽, 반지나 팔찌 등이 보관된 곳을 서성였다.

그리고 오리할콘으로 만들어진 반지 아이템을 몇 개를 챙겼다.

꿀꺽—

뭐 당연하게도…… 주머니로 챙긴 건 아니었다.

‘솔직히 이건, 서울을 구하는 값 중 일부야.’

그는 내심 그렇게 합리화를 하며, 다음으로 삼킬 물건을 물색했다.

‘어, 이건…….'

그가 관심을 보인 건 웬 반지였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작은 섬광(희귀)

- 효과 : 마나를 주입할 시 전류를 방출합니다. (재사용 대기 : 5분)

아다만트로 만들어진 링에 파란 보석 같은 게 박혀 있었다.

‘천철(天鐵)이다.’

그것은 전류 생산 능력을 품고 있는 마법 금속이었다.

이 역시도 오리할콘만큼 값비싼 특수 재료로, 범용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휠씬 희귀했다.

‘그래, 이것도 꽤 쓸만한 능력을 줬었다.’

꿀꺽—

- 주의! 이미 흡수 중인 ‘금속’이 다수 있습니다. 흡수 지연이 대폭 증가합니다.

‘드워프제 그레이트마운틴 엔진’의 흡수시간이 ‘알 수 없음’이 뜬 데다가, 앞서서 이 근처에서 좀비 트를을 잡고 얻은 오리할콘까지 삼켰다. 위장이 그야말로 포화상태였다.

'그래도 용광로를 적절하게 사용하면, 하나씩 금방 소화할 수 있다.’

금속 소화는 삼킨 순서대로 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진행된다.

그리하여 시간이 적게 걸리는 것들이 먼저 홉수되었다.

그때 누군가 이현욱에게 다가왔다.

"저기, 강철 중대 지휘관님?”

이곳 2호 무기고에 상주 중인 관리인들, 즉 정부 소속 요원들이었다.

‘설마, 본 건 아니겠지?’

이현욱은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실례가 안 된다면, 한 가지 조언해드리고 싶습니다.”

"아, 말씀하십시오.”

별다른 의심의 눈길을 보내지 않는 걸 보아하니 이현욱의 기행을 본 것 같진 않았다.

"그…… 병사들이 지금 새로운 아이템을 장비하고 있는데, 웬만하면 스킬이 달린 아이템은 지양하셨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스킬을 함부로 쓰다가는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특히나 대규모 병력이 밀집했을 때는 더욱 위험하죠.”

“예,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수의 병력이 한 몸으로 움직일 때는 개인적인 스킬 오히려 방해요소가 될 수도 있었다.

이현욱도 그걸 인지하고, 스킬이 달린 무기를 함부로 고르지 말라고 당부해둔 상태였다.

"아, 그리고 드릴 게 있습니다. 박 주문관, 그거 좀 가져와.”

관리인의 말에 부하 직원 한 명이 아주 긴 철제 케이스를 들고 왔다.

철컥—

그 안에는 긴 유리관이, 유리관 안에는 웬 나뭇가지가 들어있었다.

"한 번 만져보시죠. 마법 코팅된 특수 유리라서 깨질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이현욱은 금속 통제력으로 철제 게이스를 통째로 들어 올려서 그 위에 손을 얹었다.

- ‘세계수의 이파리(특수)’을 획득했습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세계수의 이파리(특수)

- 효과

1. 어둠 계열의 몬스터가 접근할 시 신성한 빛을 발합니다. (지속)

2. 500m 주변에 ‘성소’ 효과를 부여합니다. (지속)

‘이건…….'

솔직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차드산 세계수 아이템이군요?”

“예, 맞습니다. 국내에도 딱 15개밖에 없는 아주 특별한 물건입니다."

"차드 공화국이 1개당 4,000억에 판다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특산물......."

"하하, 그렇죠. 이걸로만 한 해에 20조 원씩 벌어들인다죠.”

이 게임은 세상을 지옥처럼 만들었다.

그러나 어떤 땅은 오히려 축복을 받기도 했다.

차드 공화국이 그 혜택을 받은 대표적인 땅이었다.

3년 전, 아프리카 대륙의 정중앙 차드호(湖)에 신의 나무 ‘세계수(世界樹)’가 탄생했다.

‘그로써 아프리카의 최빈국이었던 차드 공화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되었다.’

세계수가 뿜어내는 무한한 생명력과 바탕으로 사막이 기름진 숲과 초원으로 변했으며, 안정된 마나가 일대를 뒤덮어, 마법사들의 연구 기관인 ‘마탑(魔塔)’이 우후죽순으로 세워졌다.

그 모든 이점을 바탕으로 최첨단 산업인 ‘마법공학’의 중심지로 부상 중이기까지 했다.

"지휘관님 혹시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실까요?”

"예,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뭐든 말씀하시죠. 서울을 구하실 분들인데요.”

"그럼, 전격 마법을 쓸 수 있는 무기가 있을까요?”

"음…… 엄청난 게 하나 있습니다.”

역시 정부의 무기고, 부르는 대로 줄줄이 나왔다.

이내 직원 둘이 끌차에 무언가 싣고는 끌고 왔다.

이번에도 철제 케이스, 엄청나게 큰 철제 케이스가 나타났다.

"자, 이건 ‘뇌신의 철퇴’라는 지원 화기입니다.”

그건 대전차화기처럼 생긴 물건이었는데, 포구처럼 보이는 곳에 창이 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 창이 단단하게 고정된 걸 보아하니 적어도 ‘발사체’는 아닌 듯했다.

이현욱은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뇌신의 철퇴(장인)

- 효과 : 마나를 주입할 시 강력한 전격을 1분간 분사한다. (재사용 대기 : 10분)

"인드라의 축복이라는 영웅 등급을 창을 개조해서 만든 장인 등급의 제조 아이템입니다. 어떻습니까? 좀 무겁지만, 차량에 탑재해서 일종의 마법 전차처럼 쓸 수 있을 겁니다.”

그가 자랑스레 말했고 이현욱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딱 바라던 무기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렇듯, 모든 면에서 강철 중대의 전력이 대폭 상승했다.

‘마지막 전투 직전에 엄청난 행운이 따랐다.’

***

그렇게 모든 작업을 마친 뒤, 이현욱은 포탈을 통과하여 무기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평범한 가정집의 안방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런 단독 주택에 정부 무기고로 통하는 포탈이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 못 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의 정원에 여단본부 2공략소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아, 이 중대장 이제 출발해요?”

그들의 지휘관, 고진한 대위가 물어왔다.

병사라고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중대장이라는 직함으로 부르고 있었다.

아마도 첫 대면에서 이현욱이 의도치 않게 능력을 보여준 덕이 컸다.

‘잘 됐다. 간부들 상대하느라고 피곤하지는 않겠어.’

그렇게만 나와준다면 이현욱도 꼬박꼬박 간부 대우를 해줄 생각이었다.

"예,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준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오케이—”

"아 그리고 혹시 이 작전, 제가 지휘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자 고진한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원래 우리가 강철 중대 지원하려고 온 거고, 나도 이 중대장이 엄청난 거 눈으로 봤으니까 배알이 끌리진 않은데…… 저기 저 친구는 좀 그런 거에 민감해서요.”

근육질의 거구, 김동훈 중사가 이쪽을 힐끔 쳐다봤다.

“……예? 저 말입니까?”

"너, 이 중대장한테 뭐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냐? 으하하—”

"아, 예? 아니, 와 진짜……."

이현욱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김동훈을 쳐다보았는데,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바닥으로 눈알을 홱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뭐야.......'

"......음, 어쨌든 출발 준비하겠습니다."

이현욱이 단독 주택의 대문을 나설 때, 고진한이 은근슬쩍 옆으로 다가왔다.

"이런 거 물어봐서 미안한데, F등급이라면서 어떻게 그렇게 세요?”

“아…… 업적을 몇 개 달성했습니다.”

“오, 업적? 하긴 침식 요인을 깨고 월도 보스 몬스터까지 잡았는데……."

역시나 통하는 업적 거짓말, 그러나 이제는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업적 목록]

1) 정화자(Purifier)

- 조건 : 죽음의 권역을 선포하는 오브젝트를 파괴한다.

- 효과 : 어둠 저항력 형성(1단계), 마나 총량 상승(+200), 신성력 상승(+20%)

2) 월드 보스 몬스터 슬레이어

- 조건 : 월드 보스 몬스터를 사냥한다.

- 효과 : 모든 능력 상승(+5%)

이처럼 키메라를 잡은 이후 업적이 2개가 되었다.

그것도 아주 유용한 업적이었는데, 모든 능력 상승이라면 ‘금속 통제력’도 포함이 된다.

- 현재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 : 91,958g

* 초월 감각(+30%)이 적용 중입니다.

* 강골(+10%)이 적용 중입니다.

* 월드 보스 몬스터 슬레이어(+5%) 적용 중입니다.

‘좋아…… 곧 100kg에 도달한다.’

그런데 고진한은 여전히 궁금한 게 많은 듯했다.

"그리고 대체 침식 요인, 그건 어떻게 찾는 거예요? 지금까지 웨이브 때, 침식 요인 못 찾아서 못 막았던 거 아닌가? 그런데 무슨 하루에 하나씩 막 찾아내고, 어떻게 그러지?”

"간단합니다. 몬스터가 많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면 됩니다.”

고진한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음…… 그건 게이트 수색의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그것만 알아서 됐으면, 지금까지 1~3차 웨이브 대응이 그토록 처참하게 실패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웨이브 존은 언제나 드넓은 도심지에 열리고 수없이 많은 게이트를 동반한다.

즉, 게이트를 쫓다가 헛발질할 가능성이 너무 컸다. 비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이에 이현욱이 몇 가지 내용을 덧붙였다.

"몬스터 꽁무니만 쫓는 게 아니라, 이벤트 요소를 추적해야 합니다. 다종족 흑마법회였는데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전부 납치했죠. 뭔가 특별한 일을 꾸미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아……."

그건 꽤 그럴듯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만, 고진한은 여전히 속 시원한 표정은 아니었다.

솔직히 이쯤 되자 둘러대는 것도 한계가 왔다.

"그리고 사실…… 여러모로 운이 좋았습니다.”

이럴 땐 운이라고 치는 수밖에…….

"음? 그럼 계속 운이 좋기를 바라며 서울 전체를 들쑤셔야겠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하하, 이거야 원……."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안양 듀오가 곧 3번째 침식 요인을 공략한다.’

그리하여 ‘추가 이벤트’가 발생, 청룡산에서 ‘철갑독충’이 뿜어져 나온다.

누가 봐도 그곳이 침식 요인이라는 걸 알게 될 터, 더는 수색할 필요가 없었다.

‘슬슬 하늘이 바뀔 때가 왔는데……."

이현욱은 시계를 확인하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이렇다 할 징조는 없었다.

그란데 그로부터 5분이 지났을 무렵, 통신병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현욱은 그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고,

이내 통신분대장이 이현욱에게 헐레벌떡 뛰어왔다.

“이현욱 병장님—!”

"......응?"

“연신내에서 3번째 침식 요인이 발견되었고, 방금 공략되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이현욱은 제외한 모두가 화들짝 놀라며 환호성을 내뱉었다.

"와! 우리 말고도 제대로 싸우는 사람들이 있구나!”

"앞으로 2개 더 찾을 생각에 까마득했는데, 대박이다.”

"하…… 진짜로 서울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건 마냥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시작된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구—우—우—우—웅——!

하늘이 우그러지는 것 같은 굉음이 세상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어! 뭐야?”

이 굉음은 일종의 ‘벨’이었다.

사람들을 주목시키려는 것…….

즉,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

다시 말해, 전체 공지의 전조였다.

모두가 보라색 톤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글자가 떠올랐다.

- 주의! 플레이어 여러분의 놀라운 성과로 인해 <추가 이벤트>가 부여됩니다!

역시나 그 메시지였다.

"젠장!”

고진한 역시 그 의미를 눈치채고 악다구니를 내뱉었다.

“아무래도 좆 같은 일이 생기려나 본데……."

이내, 그 일의 구체적인 내용이 떠올랐다.

- 주의! 마지막 남은 침식 요인이 ‘최종’ 단계로 ‘급변’합니다!

"최종 단계, 저게 무슨 소리야? 이 중대장, 뭔가 느낌이 오는 거 있어요?”

"저 역시 좆 같은 일이 일어날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 내가 틀린 게 아니었군?”

이현욱은 그 즉시 통신병에게 김강석에게 마나 교신을 연결하도록 했다.

“……대대장님, 이제부터 몬스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지점을 찾으면 될 것 같습니다.”

-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차야.

"그리고…… 서울에 있는 모든 아군 병력을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AMT 병력뿐만이 아니라, 모든 길드…… 모든 플레이어 병력이 모여서, 뿌리를 제대로 뽑아야 합니다.”

최종 대국이 열렸다.

***

게이트 발생 시 가까운 쉘터로 대피하세요!

그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숙지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한 문장이었다.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르는 오늘날 ‘쉘터’만큼 안전한 곳은 없었다.

우수한 ‘마법 보호막’을 통하여 몬스터의 공격을 장시간 견뎌낼 수 있으며,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면 플레이어 구조대가 도착하여 모든 위협을 제거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인구 대비, 동일 면적 대비 쉘터가 가장 많은 국가였다.

즉, 이 땅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 그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믿음이었다.

그런데…….

이 땅의 어느 쉘터가 지금,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전체 공지가 떠오른 직후, 청룡산 안에서부터 ‘검은 안개’가 범람하듯 내려왔다.

그리고 산 아래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 쉘터를 단숨에 집어삼킨 것이었다.

그것이 가까이에 접근하는 순간, 쉘터의 사람들을 알 수 있었다.

그건 검은 안개가 아니었다.

그건.......

왜—애—애—애—앵——!

……사람 머리통만 한 벌레, 수도 없이 많은 벌레였다.

왜—애—애—애—앵——!

역겨운 날갯짓 소리가 온 세상을 가득 메웠다.

그 소리 안에서는, 서로의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왜—애—애—애—앵——!

그것이 창문에 달라붙기 시작하며, 그 끔찍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직각으로, 이리저리 꺾이는 사람 주먹만 한 머리통…….

낫 같은 다리와 톱 같은 이빨을 가진, 괴물 파리 떼…….

"마, 맙소사……."

그것들이 달라붙고 단 몇 초 만에 마법 보호막이 뚫렸다.

그리고 다음으로 학교 건물이 통째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콘크리트가 가루가 되어 부서지고 철근이 오그라지듯 사라진다.

“……여, 여기서 나가야 해!”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다.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기 다른 입구로 뛰어나갔다.

하지만 그 끔찍한 벌레 떼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으아아— 사, 살려— 컥—”

벌레 떼가 달려들어 사람들을 공중으로 끌고 올라갔다.

"으가가가가——!”

마치 거친 물살에 휩쓸린 것처럼 허공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조각조각 찢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치 녹아 사라지듯, 단 한 줌의 살점도 남지 않았다.

한 명의 사람이, 수백 마리의 벌레의 뱃속으로 나누어지는 순간이었다.

운이 좋았던 44명, 그들은 버스에 올라타서 벌레 떼를 뚫고 출발했다.

"—꽉 잡아요!”

그리고 지금, 관악로, 그 쭉 뻗은 대로를 따라서 북상 중이었다.

“젠장, 우리 뒤에 붙었어요!”

하지만 벌레 떼를 따돌리지는 못했다.

왜—애—애—애—앵——!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 시커먼 먹구름이 도심을 집어삼키며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왜—애—애—애—앵——!

폭발로 일어난 검은 연기가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처럼 매서운 속도였다.

“젠장—! 더 빨리 밟아요!"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버스는 이미 최고 속도였다.

"끝났어…… 다 끝났어……."

버스에 타 있는 사람들은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에 떨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흑— 흑—"

하나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17살, 민혜연 역시 제 동생을 끌어안고, 그저 울었다.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야, 너 우냐?”

장난기가 담긴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옆집 오빠, 이윤택이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깐족거리는 표정이었다.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뭐?”

"왜 울고 있어? 괜찮아, 인마!”

날 때부터 이웃사촌인 만큼, 평소에도 이렇게 낙천적인 성격인 건 알고 있었다만.......

"뭐, 뭐 하는 거야! 오빤, 지금 장난치고 싶은 생각이 들어?”

"괜찮다고, 너…… 살 수 있어.”

이윤택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남동생 머리를 쓰다듬더니, 홱 돌아섰다.

그의 뒤에서 플레이어들이 몸을 일으켜지고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 결심한 듯 굳은 표정이었다.

"팀장님…… 이제 가야 합니다.”

이윤택의 말에 턱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버스 앞으로 나아가서, 기사에게 말했다.

"목사님, 우리를 내려주세요.”

그러자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안 돼요!”

“제발 그러지 말아요!”

사람들이 기겁하며 막아섰지만, 턱수염의 남자는 완강했다.

"이대로 잡히면, 전부…… 죽습니다. 빨리 멈춰주세요!”

"그래서 당신들만 죽겠다고요? 절대 안 돼요!”

"잠깐 시간을 벌면 다음 쉘터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이들 모두가 알았다.

"방법이 없어요. 우리를, 믿어주세요.”

"못 믿는 게 아니잖아요, 이게 지금…… ”

그 순간—

끼이이이——!

버스가 급정거했다.

동시에, 버스의 앞문이 열렸다.

"—목사님, 지금 무슨, 안 돼요!”

사람들이 말리려고 했지만, 플레이어들은 재빨리 뛰어내렸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목사라고 불린 이는 운전대에 고개를 파묻은 채, 그렇게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출발해요! 당장!”

그렇게 7명을 내려놓은 채 버스는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화염 마법과 빙결 마법을 쏘아 보내어, 그 검은 일렁임을 잠시 밀어내는 듯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잠시뿐이었다.

"아, 안 돼……."

"제발—!”

사람들의 신음에 민혜선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고,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아……."

그 7명이 하늘로 딸려 올라가, 검은 일렁임 안으로 사라져버리는 장면이었다.

"보지 마, 보면 안 돼……."

그녀는 동생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흐느꼈다.

하지만 그들의 장렬한 희생은 안타깝지만, 헛된 듯했다.

왜—애—애—애—앵——!

벌레 떼는, 순식간에 버스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7명의 희생,

그 잠깐의 시간 벌이만으로는, 단 몇 분의 수명을 벌었을 뿐이었다.

"바, 바보…… 멋진 척은 다 하더니……."

민혜선은 그렇게,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거짓말이었잖아…… 결국, 우, 우리도 다 죽잖아.”

괜스레, 원망이 들기까지 했다.

그때였다.

“……어? 저게 뭐야!”

그렇게 소리친 건 운전자, 목사였다.

빠— 앙——!

클랙션 소리와 함께 웬 차량 행렬이 버스의 정면으로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그 행렬의 정체를 눈치챘다.

그 소문을, 익히 들었기 때문이다.

트럭 행렬로 이동하며,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침식 요인을 파괴한 AMT 부대.......

"강철 중대……."

그들이, 마지막 침식 요인 앞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앞선 7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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