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 서울의 영웅들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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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라…… 이게 무슨……."
박준모의 몸이, 낙뢰의 전류를 흡수하고 있었다.
그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아마도 어떤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고, 옥상의 고위 흑마법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시퍼런 전류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파지지지——!
그 전류는 한곳으로 뒤엉키더니 길쭉하게, 마치 한 자루의 창처럼 변했다.
"와, 대박…… 인데?”
박준모는 그 ‘번개의 창’을, 보스 몬스터를 향해 힘껏 집어 던졌다.
번쩍임—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손아귀와 옥상 사이에 파란 직선이 그어졌다.
콰——앙——!
옥상의 난간이 통째로 으스러지며, 콘크리트 조각이 와르르 흘러내렸다.
그러나 고위 흑마법사는 뒤로 몸을 날리며 그 공격을 피해냈다.
그으—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박준모가 양손을 벌리자, 번개의 창이 마치 그물망처럼 펼쳤고,
그것이 놈을 움켜쥐듯 감싸버렸다.
파지지지지지——!
고위 흑마법사의 몸이 시퍼런 전류에 휩쓸리며 뒤로 튕겨 나갔다.
그래도 역시 보스 몬스터,
그렇게 감전이 된 상태에서도 눈을 부릅뜨고, 텔레포트 마법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이현욱이 놈을 향해 왼손을 뻗었고,
페일노트를 비롯한 수십 개의 창이 쏘아져 나갔다.
감전된 상태였기에 미처 반응할 수 없었다.
푹! 푹! 푹! 쭉! 푹!
순식간에, 무려 22개의 창이 몸 이곳저곳에 처박혔다.
그리고…….
‘파쇄!’
쩌—어—어—엉—!
……이보다 확실한 마무리는 없었다.
- 축하합니다! 보스 몬스터 ‘고위 흑마법사(레드 오크)’를 처치하였습니다!
"진짜 끝났군……."
이로써 침식 요인을 지키고 있는 방해요소는 모두 제거되었다.
이현욱은 리빙 아머를 움직여, 아직 살아있는 잔당을 제거하며, 마나 메신저를 켰다.
"상황 종료, 민간인들 대피시키고 현장을 정리한다. 그리고…… 박준모, 위로 올라와.”
그렇게 명령을 내린 뒤, 즉시 옥상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내 제단의 돌무더기 아래 숨겨져 있던 ‘침식 요인’을 발견했다.
그것으로부터 뻗어 나온 뿌리 다발이 백화점을 관통하고 저 아래 지하까지 이어져 있었다.
앞으로 3일 뒤에는 강남 전체가 이 악마의 나무의 뿌리로 뒤덮일 예정이었다.
'그런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재현될 일은 없다.’
이걸 제거하면 강남의 빌딩 숲이 ‘악마의 폐허’로 변하지 않게 된다.
즉, 서울의 큰 부분을 구해낼 수 있다.
이현욱은 뿌리에 뒤엉켜 있는 월드 스톤을 잡아 뜯어, 단숨에 으스러뜨렸다.
으적—!
- '월드 스톤(웨이브)’를 파괴하셨습니다!
고오오오——
그러자 옥상 한쪽에 열려 있던 게이트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글레이를 얻었을 때처럼 게이트가 사라지는 순간, 웬 아이템이 생성되었다.
웅—
이현욱은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아챘다. 아주 작은 크기의 동그란 물체였다.
- 미스틸테인의 씨앗(알 수 없음)을 얻었습니다.
'드디어…….'
[아이템 정보]
- 이름 : 미스틸테인의 씨앗 (알 수 없음)
- 효과 : 없음
북유럽 신화에서 오딘의 아들 빛의 신 ‘발두르’를 죽이는 신살(神殺)의 무기 미스틸테인(Mistilteinn), 그것은 ‘겨우살이’의 나뭇가지였다고 하며 이 아이템도 그 전승을 따랐다.
다만, 여러모로 사기적인 아이템인 만큼, 완성된 상태로 드롭되진 않았고,
이 씨앗을 땅에 심고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서 ‘우듬지’를 피워내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 겨우살이라는 게 ‘기생목(寄生木)’이라는 것이었다.
즉, 다른 나무에 기생하여 자라나는 식물로서, 양분될 나무를 구해야만 했다.
'……아무 나무에 붙일 수는 없고, 신목(神木) 정도는 되어야 한다.’
아프리카 중심부 있는 ‘세계수(世界樹)’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했다.
여러모로 씨앗을 손에 넣었다고 해서 당장 그 힘을 볼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었다.
‘하지만 빌런의 손에 들어가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이 무기에 죽은 영웅이 이현욱이 아는 것만 해도 수십 명이었다. 제아무리 강력한 방어력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미스틸테인은 그 모든 걸 ‘무시’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피워내서 강희설한테 내가 쓸 수 있는 무기로 개조해달라고 하면 된다.’
이현욱은 그 씨앗을 안주머니 깊은 곳에 찔러넣었다.
그것 외에도 이번 전투로 얻어진 게 많았다.
우선 보스 몬스터 고위 흑마법사의 품속에서 2가지 아이템을 획득했다.
- 다크 우드 완드(희귀)를 얻었습니다.
- 지하 왕국의 고대 주화를 얻었습니다.
‘이 완드는 박준모한테 주면 되겠군.’
사실 박준모의 ‘전류 통제’는 앞서 보았듯 맨손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여전히 완드는 능력 활용의 매개체로써 일종의 안테나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물론, 훗날 이현욱 정도의 ‘통제 감각’을 깨우친다면 굳이 완드를 쓸 필요가 없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템 ‘지하 왕국의 고대 주화’를 확인했다.
금속이긴 하지만, 이건 흡수해 봤자 별다른 능력을 못 얻을 것이었다.
‘이건 훗날 드워프 종족이 등장할 때 써먹을 수 있을 거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이 죄다 적대적인 건 아니었다.
상당한 지성을 가지고, 첫 등장부터 인류와 교류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드워프 종족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들은 훗날 세계 곳곳에 등장하여 마을을 세우고 인류와 우호적으로 교류하는데, 그들의 아이템 제작 기술과 마법공학 수준은 웬만한 인간 대장장이가 따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 ‘지하 왕국의 고대 주화’는 드워프 사이에서 가장 단위가 높은 화폐였다. 현재는 흔히 말하는 ‘잡템’에 불과할 테지만, 드워프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가치가 달라진다.
‘쯧, 오늘 얻은 건, 죄다 당장은 쓸 수 없군…….'
어쨌든, 그렇게 아이템 수색을 끝냈을 무렵, 박준모가 옥상으로 올라왔다.
"저…… 이현욱 병장님……."
녀석은 어딘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제, 제가 방금 너무 이상한…… 시스템 메시지를 봤습니다.”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굳이 설명 안해도 돼.”
구태여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능력 성장 메시지가 떴을 것이었다.
“아! 역시 이현욱 병장님께서도 이렇게—!”
이현욱의 말에 박준모는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같은 F등급인 이현욱, 그의 비약적인 성장 방법을 눈치챈 것이었다.
"잘 들어 박준모, 그거, 아무한테나 말하지 말고 티 내지도 마.”
"예?”
"너, 생체실험 당하기 싫지?”
"......."
그 말에 박준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생체실험이라니.......
하긴, 비성장 특성으로 알려진 F등급의 능력이 갑자기 향상됐다면, 이슈가 되는 걸 넘어서 일종의 연구 대상이 될 테고, 영화 속 클리세처럼 선글라스 쓴 요원들이 찾아올 수도…….
박준모는 그런 장면을 떠올리고는, 순진무구하게 고개를 거듭 끄덕였다.
"헉! 예!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당연하게도, 능력 성장 방법이 공론화되는 건 절대 좋지 않았다.
‘당장은 박준모 역시 나처럼 업적을 달성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이런 식의 거짓말은 언젠간 들통나겠지만, 최대한 지연시켜야만 했다.
‘그나저나 이 녀석의 능력 성장 방법은 감전인가…… 아니면 낙뢰인가…….'
레벨 외 성장 특성의 성장 방법은 독특하다 못해 황당한 경우가 많았다.
나중에 확인해야겠지만, 박준모 역시 단순하게 전류에 ‘노출’되는 게 아닐 가능성이 컸다.
불에 들어가 있으면 능력이 향상한다고 알려진 ‘인페르노’ 역시 사실은 무려 섭씨 1,000도 이상의 불에 노출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거처에 엄청 큰 용광로를 마련한 것이었다.
‘아마 일정량 이상의 전압, 전류 같은 조건이 있을 거다.’
그래도 박준모의 경우는 다소 정상적인 성장 방법이었다.
‘쇳덩이를 삼켜야 하는 나보다야, 뭔가 그럴듯하잖아?
물론, 이현욱보다도 기상천외한 성장 방법이 수두룩했다.
‘무엇보다 가장 웃긴 건 역시 한태산이었다.’
이현욱은 한태산을 떠올리며 피식, 두 번이나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플레이어 랭킹 2위, 권왕(奉王), 그는 언제나 ‘폐관 수련’을 하기로 유명했다.
그리하여 다시 나타날 때마다 훨씬 강해져서 돌아온다.
그렇기에 그의 폐관 수련은 진정한 무도인의 신비로운 고행 같은 멋들어진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 실체는…….
‘아무도 없는 지하실에 틀어박혀서 하루에 1만 개씩, 윗몸일으키기를 한다지, 아마?’
능력 상승을 위하여 아침, 점심, 저녁 내내 윗몸일으키기를 해야만 하는 권왕…….
그건 자존감이 흘러넘치는 남자, 한태산의 유일한 콤플렉스이자 역린이었다.
이현욱은 지금도 혼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을 그 모습을 떠올리며,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
약 1시간 뒤, 상황 정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자, 곧 쉘터로 갈 겁니다. 아! 혹시 다치신 분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미리 준비해둔 4대의 버스에 구조된 민간인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한편 이현욱은 함께 싸웠던 플레이어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모두,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비록 희생이 있었지만, 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이현욱의 말에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뭐…… 엄청난 장면을 구경한 거 말고는 딱히 한 게 없죠.”
"저는 진짜 놀랐습니다. 강철 중대, 역시 괜히 영웅으로 불리는 게 아니었네요.”
"인정합니다! 모든 면에서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고 체계적인지, 많이 배웠습니다!”
저마다 한 마디씩 감탄을 내뱉었다.
그들이 본 강철 중대의 활약은 정말이지, 여전히 믿기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웨이브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아마 평생 술자리 안주 삼을 것이었다.
"그나저나 침식 요인을 두 개나 제거했다니 와…… 진짜 서울의 구원자나 다름없네요.”
그 말에 이현욱은 고개를 저었다.
"낙관하기에는 이릅니다. 이 재앙,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 그렇죠……."
2개의 침식 요인을 제거했지만, 웨이브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리고 저희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께서도 이 재앙을 극복할 수 있게 계속 힘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딱 이틀 뒤 서울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안 싸우면 누가 싸우겠습니까?”
월드 보스 몬스터의 등장에 기겁했던 이들이었지만, 강철 중대의 활약을 본 이후 다시금 의기가 차올랐다.
“그리고 저희는 지금부터 O초등학교 쉘터로 돌아가서 밤을 보내려고 합니다. 만약 동행하시겠다면, 조금 불편하겠지만, 저기 트럭이나 버스에 자리가 있으니 타셔도 좋습니다.”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는 한편, 가장 뒤에 서 있는 세 명의 남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태산 길드, 최민성의 부하들이었다.
‘자신들의 계략이 실패했다는 걸 중간에 눈치챘을 텐데 도주하지 않았군?’
이현욱은 결계가 사라지는 순간, 그들이 도주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김세희에게 명령하여 그들을 예의주시하고, 유사시 제압하도록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저렇게 지금까지도 얼굴에 철판 깔고 가까이 붙어 있었다.
‘대놓고 죽을 일은 없다고 판단하고 상황 파악을 위해서 조금 더 붙어 있으려는 거다.’
이현욱은 그렇게 결론 내렸다.
그리고 그 상황 파악이 이제야 끝난 듯했다.
그 세 명의 남자가 슬금슬금 무리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거기, 어디 가십니까? 곧 밤인데, 저희 트럭 타고 가시죠.”
박준모가 그들에게 다가가 은근슬쩍 물었다.
"하하…… 저희는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근처에 길드 사무소가 있어서요.”
"아, 그러시군요. 그리고…… 동료분들 일은 미안하게 됐습니다.”
박준모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닙니다. 좋은 일을 하다가 죽었으니, 억울해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그 말을 끝으로 서둘러 자리를 떴다.
***
약 5분 뒤, 세 명의 남자는 백화점에서 한참 떨어진 곳의 골목에 서 있었다.
"후…… 씨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거봐! 내가 좆된 거라고 했잖아!”
백화점의 결계가 사라지는 순간부터, 이들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실패를 확신하고 도주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실패할 수 없는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최민성이 어떤 이유에서건 급히 계획을 수정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최민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계획이,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걸…….
"썅! 부팀장님을 안에서 계획을 바꾸긴 무슨, 내가 말했지? 그냥 실패하고 안에서 죽은 거야!”
“하…… 그런데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거지! 팀장님이 물어보시면 뭐라고 할래? 팀장님이 안 보여서 그냥 쨌다고 할 거야? 씨발…… 무슨 일인지는 확인을 해야 하잖아!”
"하, 미치겠네……."
의문점은 한둘이 아녔다.
"아니, 뭔가 이상하다니까? 적어도 우리한테 따진다거나, 의심의 눈초리 정도는 보내야 정상 아니야?"
계획대로라면 최민성 일행이 강철 중대의 목숨을 노렸을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몬스터와 연대하고 있다는 것도 들통났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오히려 전혀 신경도 안 쓰고, 미안하다면서 걱정하는 말까지 해왔다.
물론 그게 진심이라고 볼 수 없겠지만, 이들로서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다.
"씨발,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그리고 그 새끼들 정체가 뭔데—!”
정말이지 어림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단 하나도 없었다.
"자자, 일단 뭐가 됐든 추 팀장님 쪽으로 합류하는 수밖에 없다.”
그 말에 나머지 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분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저런 놈들 따위 그냥 처리하실 거야.”
A등급 플레이어 추교용, 그가 있다면 강철 중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야, 이제 보는 눈도 없으니까 마나 메신저 좀 꺼내 봐.”
"그래, 본대에 연락해서 이 사실을—컥—!”
무슨 일인지, 남자는 말을 마치지 못하고 앞으로 풀썩 엎어졌다.
나머지 두 명의 남자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목에…… 시뻘건 구멍이 뚫려 있었다.
두 사람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 순간…….
“컥!”
또 다른 한 명의 목을 뚫고, 무언가 튀어나왔다.
그건 은색 화살이었다.
“헉—!"
그 화살은, 홀로 살아남은 남자를 향해 날아들었고,
그는 뒷걸음질 치다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 순간, 화살이, 그의 목젖 바로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웅—
“사, 살려주세요!”
그 상태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고, 그는 바들바들 떨며 눈깔을 좌우로 굴렸다.
"제발, 살려주세요!”
그는 애달프게 외치며 다시금 좌우를 살폈다.
그러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머리 위에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는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궁금한 게 많은 것 같은데......."
강철 중대 지휘관, 이현욱이 하늘에서 떠 있었다.
"아……."
그의 몸은 중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지상을 향해 내려왔다 .
“……어떻게, 좀 해답이 되었나?”
남자의 목덜미에 닿은 페일노트가 빙글빙글 회전했다.
금방이라도 그 연약할 살을 꿰뚫고 들어갈 것 같았다.
"끅! 사, 살려주세요!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딱 한 가지만 물을 테니까, 혹시 안다면 그것만 대답해주면 돼.”
"......."
"몬스터 테이머의 ‘하트 박스’ 어디에 있어?”
"뭐? 그, 그걸 어떻게......."
남자의 눈이 커졌다. 전혀 예상 못 한 질문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현욱은 싱긋 웃었다.
"……알고 있군? 그럼 대답해줄 수 있겠네?”
"......."
“다시 한 번 묻는다. 몬스터 테이머의 하트 박스, 어디에 있지?”
몬스터 테이머는 몬스터를 포획하여 자신의 권속으로 만든다.
그리고 대다수는 그런 몬스터를 지배하기보다 교감하며 동료가 된다.
그런 면에서 강력하고 난폭한 몬스터를 길들이는 건 상당히 어려웠다.
그런데 추교용 그게 가능했고, 그렇기에 최고의 몬스터 테이머로 활약했다.
그리고 그 비법은 바로 몬스터의 심장을 적출하여 보관하는 ‘하트 박스’ 덕분이었다.
그걸 이용하면 플레이어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난폭한 몬스터를 복종하게 만들 수 있을뿐더러, 마치 좀비처럼 죽지 않는 존재로 만들 수 있었다.
즉, 그것만 파괴한다면 A등급 플레이어인 추교용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뚯이었다.
"저, 절대…… 말 못 해— 읍—!”
이현욱이 그의 입을 억지로 벌리고, 목구멍 안으로 무언가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럼 억지로 말하게 해야 하는데…… 내 방식은 상식과 조금 다를 거야.”
삼키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 정체불명의 무언가는 저절로 목구멍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컥— 꿀꺽—”
결국, 그것들을 죄다 삼키고 말았다.
직후, 이현욱이 검지를 들어 올려 그의 배를 가리켰다.
그리고 빙글빙글, 원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끄—악!”
무언가가 뱃속을 헤집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내장이 아주 조금씩 갉아 먹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끄아아——!”
그렇다. 이현욱이 남자에게 먹인 건 한 줌의 쇳조각이었다.
"끄읍—”
이현욱은 남자의 입을 틀어막고, 작게 말했다.
“잘 생각해. 너희 조직의 계획이 앞으로 어떻게 되든, 넌 여기에서 죽는다.”
"......."
"전부 다 잊어, 편하게, 고통스럽게…… 네가 결정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야."
"끅......."
이현욱은 이 단순명료한 방법의 힘을 믿었다.
전생에, 수도 없이 사용하여 도출해낸 결과였다.
‘빌런은 대다수가 이기적이고 사악하다. 그게 놈들의 근본이다.’
애초에 이기적이고 사악한 행동을 함으로써 ‘빌런 퀘스트’를 받게 된다.
그런 놈들이 모인 조직이 유대감이 특출날 리가 없었고,
그렇기에 조직원들에게 ‘잠재 마법’을 심어서 ‘목숨’을 움켜쥐고 규율을 따르게 한다.
그렇다면 그 목숨을 포기할 만큼 고통스럽게 만든다면…….
‘말단 조직원은 그깟 조직쯤, 너무나 쉽게 배신하고 편안한 죽음을 택한다.’
기백준의 준비한 마지막 카드의 패가, 천천히 뒤집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