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 지옥의 구심점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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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은 태산 길드와 접촉하러 가는 도중, 차량에서 김강석과 마나 교신을 했다.
“……대대장님,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대대 측에 다음 전투를 위하여 몇 가지 사항을 급히 요청한 것이었다.
- 그래,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자네가 연락 주면 날아갈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 돼.
"감사합니다.”
- 그리고…… 부디 조심하도록 해. 자네도 알겠지만, 지금까지 모든 웨이브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는 패턴이니까, 오늘은, 어제와 달리 훨씬 강해졌을 거야.
"예, 알겠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웨이브가 최악의 재앙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수히 많았다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레이드 난이도’가 상승한다는 점에 있었다.
쉽게 말해서, 웨이브 때 등장한 몬스터는 점차 상대하기 어려운 형태로 ‘진화’한다.
가령, 어제 상대한 ‘헬 레트’의 경우는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백 마리, 천 마리, 만 마리, 수십만 마리, 끝내 백만 마리까지…….
그리고 일정 개체 수가 초과하면 ‘진화'하여 일종의 패시브 스킬이 생성되는데,
체내에서 ‘가스’를 방출하여 ‘독 안개’를 몰고 다니는 ‘특수 옵션’이 붙는다.
‘녹색 안개와 함께 등장하여 모든 것을 갉아먹던 헬 레트 떼는 정말 최악이었다.’
어제는 강철 중대에게 싸잡아 먹힌 헬 레트였지만, 오늘 오후쯤만 되더라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숫자로 불어났을 터— 그렇기에 이현욱은 가장 먼저 그곳을 목표로 삼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웨이브 존의 쉘터 절반 이상이 헬 레트 떼에 무너졌을 것이었다.
‘그다음으로 위험한 건 역시 다종족 흑마법회다.’
헬 레트 떼가 서울 전역을 휩쓸며 가장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발생시켰다면,
다종족 흑마법회는 가장 많은 플레이어 전사자를 발생시켰다.
그놈들은 지금처럼, 인간을 납치하여 악신에게 재물로 공양한다.
그리하여 점차 강력한 흑마법 주문을 얻게 되는데,
웨이브 4일 차에는 ‘키메라(Chimera)’라는 흑마법 생명체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드래곤 헤츨링에 준하는 최상위 괴수였다.’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수많은 플레이어가 동원되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최종적으로, 그 작전에 동원된 플레이어 희생자만 1,855명에 이를 정도였다.
‘오늘, 그것이 자라나기 전에 없애버린다.’
그때, 차가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약속 장소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입니다."
운전병의 말에 이현욱이 창밖을 살폈다.
압구정동의 아파트 단지였다.
"좋아. 지금부터는 도보로 이동한다.”
그의 명령에 수송 트럭 1대에서 15명의 병력이 차에서 내렸다.
나머지는 O초등학교 쉘터에 대기 중이었다.
"주변 경계하며, 천천히 이동한다.”
태산 길드가 함정을 파놨을 수도 있으니 방심은 금물이었다.
“……거기! 강철 중대 맞습니까?”
접선 지역 근처에 도착하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깁니다, 위에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한 상가 건물의 3층 창문, 남자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3팀으로 나눠서 거리를 두고 올라간다.”
이현욱은 끝까지 경계했지만, 다행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넓은 상가 3층, 한 헬스클럽 안에 약 스무 명이 넘는 플레이어가 모여 있었다.
그들이 방금 전투를 마친 듯 기진맥진한 상태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 사이에서, 안경 쓴 남자가 이현욱에게 다가왔다.
"아! 오셨군요!”
누구지? 이현욱은 그의 얼굴을 스캔했다. 빌런이라면 아는 얼굴일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단숨에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그다지 비중 있는 인물은 아니었는데……
"안녕하십니까, 태산 길드의 최민성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떠올랐다.
‘최민성…… 그렇다면 추교용, 그 인간도 있다는 거다.’
최민성 자체는 그리 중요한 이름은 아니었다.
'추교용이 중요하다.’
몬스터 테이머 추교용, 그는 최민성이 속해 있는 공략 팀의 리더로서,
몬스터를 조종하는 특이한 능력을 지닌 플레이어였다.
이현욱은 최민성의 손을 맞잡으며,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당장 보이는 숫자만 총 24명, 생각보다 훨씬 많다.’
만약 이들이 전부 달려든다면…… 솔직히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잘 훈련된 정예 플레이어라면,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일이었으니…….
"여기 계신 분들이 전부…… 태산 길드원입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거기, 초등학교 쉘터에서 모여 있던 플레이어들인데, 시민들을 구하고자 힘을 합친 거죠. 청화 길드, 고려 길드 등 소속이 다 달라요.”
“……그렇군요.”
“뭐, 저희가 주축이긴 한데, 6명뿐입니다.”
6명이라…… 이현욱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았다.
쉘터에도 사람을 숨겨두어 강철 중대가 도착한 걸 확인했을 터,
이 안에도 신분을 숨기고 제삼자인 척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최민성이 있는데 정작 팀장인 추교용이 없다.’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건가 싶었지만, 글쎄, 굳이 그럴 이유는 없었다.
‘……그래, 팀을 나누었군.’
4차 웨이브를 위하여 기백준이 준비한 ‘플레이어 카드’는 총 3장이었다.
다섯 도살자 / 배교자 공현준 / 추교용 공략 팀
‘그런데 벌써 2장의 카드를 내가 불태워버렸다.’
하물며 1개의 침식 요인이 제거되기에 이르렀으니 다급해졌을 테고,
마지막 남은 카드인 ‘추교용 공략 팀’은 쪼개져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리더인 추교용은 아마도 다른 침식 요인 쪽에 가 있을 것이었다.
‘전력이 나뉘었다는 뜻이니 잘된 일이다.’
이현욱은 속내를 숨기며, 최민성을 바라보았다.
"혹시 사람들이 잡혀 있는 곳이 어딘지 파악하셨습니까?”
"예, 여기서도 보입니다. 바로 저기죠.”
최민성 창가로 다가가서 어딘가를 가리켰다.
수많은 아파트 단지 사이에 백화점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 외양이 굉장히 이상했다.
"벌써 ‘침식’이 상당히 진행됐군요.”
"예, 마치 악마의 성 같죠……."
그 거대한 백화점 건물은, 웬 수백 년 묵은 나무의 뿌리 같은 것들로 뒤덮여 있었다.
심지어 옥상의 정원에는 바오바브나무같이 생긴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났으며,
그 위로 검은색의 새들이 날아다녔는데, 적어도 까마귀는 아니었다.
그래, 마치 전설 속 마왕의 성처럼 변했고, 지금도 변해가는 중이었다.
오늘 오후쯤이면 이 일대 전체가 저런 풍경으로 뒤덮일 것이었다.
“……민간인 구출을 위해 공격을 시도했다고 들었는데, 실패한 겁니까?”
그 물음에 최민성은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맞습니다. 한 차례 공격을 시도했는데…… 하, 저 개새끼들이…… 우리가 접근하자 민간인들을 옥상에서 떨어뜨려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요.”
최민성의 말을 들고 있자 하니, 이현욱은 구역질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저 표정, 저 대사 전부 가식이 가득한 연기였다.
민간인을 죽이도록 유도하고 있는 게 바로 자신이면서, 슬퍼하는 척이라니…….
"결국, 그 무의미한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성과 없이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백화점 전체에 ‘결계’도 처져 있어서 아파트 옥상에서 저격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결계라…… 다시 그곳을 바라보니 보랏빛 일렁임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건 외부에서 날아드는 마법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였다.
“음, 저한테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현욱의 말에 최민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방법이요?”
"예, 설명해드릴 테니 사람들을 모아주세요.”
이내 최민성이 플레이어들을 불러 모았다.
"자! 여기, 강철 중대의 지휘관께서 작전이 있다고 합니다! 한 번 들어봅시다.”
이현욱은 플레이어들을 쭉 둘러본 뒤 입을 열었다.
"놈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패턴은 하나입니다. 정체불명의 검은 연기를 이용하여 사람을 기절시킨 뒤, 죽이지 않고 자신들의 본거지로 납치해 갑니다. 민간인, 플레이어 가리지 않죠.”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납치되는 겁니다.”
납치라니, 그 말에 거의 모든 얼굴들이 구겨졌다.
"......예?"
"그게 무슨, 지금 일부러 그 연기를 마시고 납치되겠는 뜻입니까?”
"맞습니다.”
“하― 저기요, 우선 저기 쟤들 좀 보실래요?”
누군가 콧방귀를 뀌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2명의 남자가 누워있었다.
"쟤네 둘이 그 검은 연기를 마셨어요. 보세요, 기절하는 게 다가 아니라, 무려 8시간 동안 모든 스킬이 ‘비활성화’ 돼요. 즉,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납치된다면 전투력이 0이 된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괜찮습니다. 내성이 있거든요.”
그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성, 그건 그리 쉽게 생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에 이현욱이 추가 설명을 했다.
“운이 좋게도 <이벤트 버프>를 받아서 병력 전체가 저주 면역 버프를 두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희는 기절한 척해서, 능력을 보존한 채로 저 안에 들어갈 겁니다.”
그 말에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오— 그런 것도 있나?”
"역시 괜히 침식 요인을 파괴한 게 아니구나……."
그런데 그때 최민성이 손을 들어 올렸다.
“흠…… 사실, 저와 이 친구 셋도 ‘저주 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뭐야, 갑자기?
이현욱이 이게 무슨 속셈인가 싶었다.
“오.......”
"크— 태산도 역시 이름값 하네요.”
"음, 별거 아닙니다. 한동안 언데드 관련 게이트를 공략하면서 쌓였죠.”
팔은 환호에 최민성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그래서 저희도 그런 작전을 고민해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살행위입니다. 예, 납치되는 순간 무기는 전부 빼앗을 테고, 손발을 구속할 테니까요.”
이에 이현욱은 곧장 반론했다.
"그건, 제 능력을 이용하면 됩니다.”
최민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편, 눈동자에 알 수 없는 이채가 감돌았다.
"……그 능력이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 이채의 정체는, 이현욱의 능력을 알아내고자 하는 구린 속내였다.
이현욱은 쇠 구슬 하나를 꺼내어 공중으로 띄웠다.
"—자, 이런 겁니다.”
"오, 염동 마법입니까?’’
"아뇨, 통제 계열입니다.”
이처럼 흔하지 않은 능력인 만큼, 한 장면만 보고는 능력을 꿰뚫어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희소성이 바로 ‘레벨 외 성장’ 특성의 중요한 무기 중 하나였다.
정보가 부족하여 분석이 어렵다는 것, 그렇기에 상대할 방법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이유에서 ‘레벨 외 성장’ 자신의 상세 능력이 공개되는 걸 극히 꺼렸다.
그런데.......
"음,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쪽 작전대로 한다면, 저희도 같이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그전에 서로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당당한 정보 요구에도, 이현욱은 무슨 일인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금속을 조종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형태를 바꿀 수 있죠.”
“그렇다면, 무기를 빼앗겨도 무기 삼을 수 있는 게 많겠군요.”
"예, 맞습니다. 그리고……."
이현욱은 쇠 구슬에 ‘금속 변형’을 사용하여 납작하게 눌러버렸다.
"이런 작은 금속을 입안에 숨겨서 형태를 바꾸면, 열쇠나 칼로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즉, 구속이나 잠금장치의 문을 열 수도 있습니다. 내부에서 아주 유용할 겁니다.”
"음…… 위험하긴 하지만, 확실히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예, 아시겠지만, 통제 계열이 특히나 몸이 약한 만큼, 저를 최우선으로 지켜주시면 이 작전, 성공할 겁니다.”
이현욱의 말에, 최민성이 싱긋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이렇게 하죠. 저희도 강철 중대와 같이 잠입하여 시민들을 구출한 뒤, 창밖으로 마법을 쏘아서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총공격을 시작해서 시선을 끌어주면, 저희가 다시 움직여서 저 결계를 발생시키는 오브젝트를 부수는 겁니다.”
"오.......”
"그렇게 결계가 사라지면 주변 아파트 옥상에서 백화점을 내려다보면서 저격을 할 수 있을 테고, 우리에게 유리한 전투가 될 겁니다.”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어때요, 모두 동의하십니까?”
모두가 동의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작전이 아닐 수 없었다.
최민성은 이현욱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 미소 안에는 무언가가 감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현욱 역시, 그와 똑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
최민성은 잠시 준비 시간을 갖자고 말한 뒤, 부하들을 불러모았다.
"강철 중대 지휘관, 머리가 아주 잘 돌아가는 사람인 것 같아. 내성을 바탕으로 안으로 잠입할 생각을 하다니, 그 신기한 능력도 활용도가 상당한 같고, 하지만......."
“……잘못 물렸죠!”
한 여자가 그렇게 소리치며 킬킬 웃었다.
"맞아. 우리가 제 목숨을 노리는 줄도 모르고 스스로 목덜미를 내어주다니, 영 싱거운데?”
자진 납치를 이용한 잠입, 그건 솔직히 기발했다. 하지만 빌런이 강철 중대를 노리고 있는 이 상황에서는 제 발로 덫에 걸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이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크, 진짜, 이 맛에 빌런 못 끊죠!”
여자가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의 눈동자는 퀭하게 풀려 있었다.
“풉! 남들은 죽어도 모를 비밀을 품고, 이리저리 가지고 노는 맛이란—!”
"박지현, 아직 성공 아니야. 까불지 말고, 입방정 떨지 마.”
“아, 예예…… 크크……."
최민성이 나무랐지만, 박지현은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쟤 또 약했냐? 하…… 아무튼, 감옥 안에 무기가 될만한 건 다 치워둘 테지만, 혹시 모르니까, 놈이 무기를 입수할 경우, 휘두르지 못 하게 만들 방법을 고민해 봐. 본인 입으로 말한 것처럼, 통제 계열이라서 통제할 대상물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게 돼.”
그 말에 가죽 재킷을 입은 대머리 남자가 손을 들어 올렸다.
"예, 그건 제 스킬이면 될 것 같습니다. 유사시 ‘링’을 만들어서 가두면 됩니다.”
"오…… 딱 좋은데? 평소에는 거의 안 쓰는데 스킬인데, 쓸 일이 생겼군?”
“으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 최민성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검지를 들어 올렸다.
“……아, 그리고 명심할 게 있어, 그놈들, 바로 죽여서는 안 돼.”
"잡아서 고문해서 대체 어떤 방법으로 침식을 파괴했는지 알아내야죠?”
"맞아, 그러니까 성급하게 나서지 말고, 내 지시를 기다린다.”
빌런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최민성이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밖에선 강철 중대가 무슨 희망이라고 떠들어대나 본데, 그 희망 여기에서 꺾는다."
***
1시간 뒤, 일명 ‘자진 납치 작전’이 시작되었다.
이현욱과 박준모, 그리고 최민성과 그 부하 셋, 총 6명이었다.
그들은 어느 골목으로 들어갔고 바로 그 순간—
푸쉬이이이——!
갑자기 맨홀 뚜껑이 열리며 그 안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컥!”
그들은 그 연기를 들이마시고 쓰러졌다.
아니, 쓰러지는 척을 했다.
약 10분 뒤, 한 무리의 몬스터가 골목 어귀에 나타났다.
크에에——
놈들은 특이하게도 검은 로브를 둘러쓰고 있어서 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그 육성을 들어보니 오크, 고블린, 코볼트, 놀 할 것 없이 잡다하게 뒤섞인 무리였다.
그들은 쓰러져 있는 일행의 몸을 뒤집고 무기를 죄다 빼앗더니, 밧줄로 팔을 묶었다.
그리고 오크로 보이는 몬스터가 양쪽 어깨에 한 명씩 들쳐 맸다.
‘지독하군…….'
그것들의 몸에서 풍기는 악취가 역해서, 기절한 척을 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다행히도 5분도 안 되어 백화점에 도착했다.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침식에 의해 기이한 형태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들은 지하 3층의 주차장, 그 어두침침한 공간으로 끌려갔다.
‘언제 이런 철창까지 마련한 거지?’
이곳은 지하 감옥이었다. 심지어 한쪽에 진짜 감옥처럼 철창이 처져 있었다.
침식 때 이런 것까지 생성되는 건지, 아니면 몬스터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건지,
여러모로 의아한 점이었다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들은 그 감옥 중 한 곳에 던져졌다.
퍽—
"으......."
박준모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며 신음했다.
아무리 그대로 이렇게 물건처럼 던져질 줄은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꽤 널찍한 공간에 십여 명의 민간인이 갇혀 있었다.
“……괜찮으세요?”
박준모의 바로 옆에 쭈그려 앉아 있던 꼬마 하나가 그렇게 물었다.
"아, 응, 괜찮아.”
“……그런데, 이제는 안 괜찮아질 거예요.”
녀석은 눈물범벅이었다.
"......응?"
"한 명씩, 한 명씩, 잡아가요…… 흑— 저 괴물들이요......."
"아……."
"자, 잡아먹는 거예요.”
박준모는 그 꼬마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아니야, 괜찮을 거야.”
"......."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하하— 이름이 뭐야?”
"아, 저는 신지호예요.”
"진짜? 와! 어떻게 딱 이렇게 만나지? 너, 희망이 친구 맞지?”
"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신지호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박준모는 희망이라는 꼬마에게, 친구들의 이름을 물어봐 둔 것이었다.
“그게, 희망이가 지호 구해달라고 부탁해서 이렇게 구하러 온 거야.”
"어? 구하러…… 왔다고요? 잡혀 온 게 아니라요?”
그으—
밖에서 오크 간수 2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박준모는 아주 작게 속삭였다.
"응, 진짜로 구하러 온 거야. 걱정하지 마.”
그런데 그때…….
“풉—!”
어디선가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태산 길드 소속의 여자, 박지현이었다.
그녀는 바닥에 웅크린 채 몸을 들썩였다.
왠지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 듯했는데…….
“푸하하하—! 부팀장님, 미안해요! 너무 웃겨서요!”
결국,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야! 풉! 구하러 오긴 뭘 구하러 와 이 병신아! 너 잡혀 온 거 맞아! 푸하하하—!”
그 모습에 최민성이 한숨을 푹 내쉬며 일어났다.
"하…… 너, 진짜……."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팔을 묶고 있던 밧줄은 어느새 벗겨져 있었다.
“아니, 애새끼한테 존나 멋진 척, 구하러 왔다고 말하는 거 너무 웃기잖아! 아— 눈물 나!”
최민성이 손짓하자, 부하 둘이 이현욱에게 다가갔고, 입을 억지로 벌려서 뒷바닥 아래 숨겨둔 탈출용 쇳조각을 꺼냈다. 그리고는 웬 가죽 주머니 같은 곳에 넣어버렸다.
"자, 이제 조종할 수 있는 강철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박준모는 그제야 상황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뭐, 뭐, 뭐야…… 이현욱 병장님, 지금 이거……."
심지어 오크 간수 두 마리가 철창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더니, 마치 한패거리인 것처럼 그들의 등 뒤에 우뚝 섰다.
'……테러리스트다!’
제대로 당했다.
박준모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쉽사리 좌절하지 않았다.
‘아니야, 아직 포기해선 안 돼.’
그는 곁눈질로 이현욱 쪽을 살피며, 반격할 준비를 했다.
팔이 묶여 있으니 제대로 조준하기는 어렵지만, 능력을 사용할 수는 있었다.
파지지——
뒤로 묶인 그의 손아귀에서 전류가 흘러나오는 순간—
“가만히 있어, 박준모—”
이현욱이 그를 말렸다.
"예, 역시 똑똑하시네요. 그렇게 계속 가만히 계시고 우리랑 대화 좀 깊게 합시다."
남자 둘이 이현욱과 박준모를 무릎 꿇렸고, 최민성이 그 앞으로 다가왔다.
"이현욱 씨, 궁금한 게 좀 많아요. 일단 침식 요인…… 어떻게 제거했어요?”
이현욱은 대답이 없었다.
“알아보니까 가디언은 아니라던데…… 흠, 우연인가, 그냥?”
"......."
“씁— 여기서 묵비권 행사하시면 별로 똑똑하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아, 예, 드디어 입 벌릴 생각이 드셨어요?”
이현욱이 고개를 들어, 최민성을 올려다보았다.
"최민성, 나도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네?”
“그래서 여기에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거야.”
그 이상한 말에 최민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마련…… 예? 누가요?”
그런데 그 순간, 이현욱이 미소를 지었다.
"남몰래 대화하기 딱 좋은 곳이긴 하잖아?”
"......."
“기다려, 이제 곧 방해할 몬스터도 싹 사라질 거야.”
“……씨발, 뭐라는 거야?”
"하늘에서 구경거리가 쏟아질 예정이라서, 다 그쪽으로 갈 거거든......."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최민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 순간…….
콰—앙——!
폭음과 함께 건물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부팀장님, 이거 뭐가 터지는 것 같은데요?”
콰—앙——!
재차 폭음, 그래, 확실히 머리 위에서 강력한 무언가가 터지고 있었다.
콰—앙——!
이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폭격이다. 결계를 뚫진 못하겠지만, 꽤 큰 소란을 일으켜서 모든 몬스터의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릴 거야."
“……뭐?”
“……쉽게 말해서, 이 지하에서, 우리끼리만 대화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야.”
앞서서 이현욱이 김강석에게 요청했던 것,
그건 공중 폭격이었다.
“……너, 뭐야?”
최민성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최민성, ‘결계 생성 오브젝트’ 위치 알고 있겠지? 그게 어디인지 설명 좀 해줘야겠다."
쩌저저저——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이현욱의 등 뒤였다.
“……그러면 내가 침식 요인을 어떻게 제거했는지, 직접 보여줄게—!”
촤—악!
그 순간, 이현욱의 팔을 묶고 있던 밧줄이 뜯어졌고,
이현욱의 왼손이 최민성을 향해 겨누어졌다.
그의 손목에서 한 자루의 창이 튀어나왔다.
“—큭!”
그 순간, 최민성의 몸이 허공에서 사라지더니, 감옥의 구석에서 다시 나타났다.
아킬레우스의 창은 허공을 긋고 지나갈— 것 같더니 그대로 방향을 틀어,
이현욱을 향해 달려드는 오크 간수 두 마리를 동시에 꿰뚫었다.
그러는 사이 이현욱은 두 발로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온몸에서, 다시금 이상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저저——
“어?”
그때, 박준모는 보았다.
이현욱의 온몸, 피부 위로 흑색의 결정체가 돋아나며,
동시에 웬 시퍼런 기운이 그의 몸 주변을 감싸기 시작한 것을.......
"박준모—”
박준모는 이현욱을 올려다보았다.
“……구하러 온 거 맞으니까, 집에 갈 준비하라고 해.”
그의 손가락에서, 표범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