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50화 (50/221)

50화.  < 지옥 속의 구심점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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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궁—!

굉음과 함께 건물이 뒤흔들리자 곳곳에서 불안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어, 엄마…… 무서워……."

일고여덟 살쯤 된 어린아이가 울먹이며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나, 나쁜 몬스터들은 학교 안으로 못 들어온다고,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이곳은 옥수역 인근의 한 초등학교로, 비상시에는 이처럼 건물 전체가 쉘터가 되었다.

근처에 아파트가 많은 만큼, 현재 엄청나게 많은 피난민을 수용 중이었고,

특히나 2층 대강당에만 족히 천 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 있었다.

"엄마, 흑…… 우리 다 죽는 거야?”

"아니야, 괜찮아. 플레이어님들이 우릴 지켜주실 거야.”

어머니는 아이를 끌어안으며 벽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아무런 힘도 없는 민간인이 할 수 있는 건, 겨우 그런 것뿐이었으니…….

쿵—! 쿵—!

굉음이 연달아 울리며 점차 가까워졌다.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엄마. 플레이어님들이……."

"응, 플레이어님들이 열심히 몬스터를 혼내주고 있는 소리야.”

"그게 아니라…… 플레이어님들이, 겁을 먹은 것 같아.”

"응?"

아이의 말에 어머니가 고개를 돌렸다.

어쩌다가 잠시 열린 문 너머로 복도가 보였다.

그곳을 바삐 오고 가는 무장한 플레이어들ㅡ쉘터 경비대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가득 찬 채 구겨져 있었다.

그건 다른 이름으로 '좌절’이었다.

그 이유는…….

“……우측 복도의 마법 방어막이 뚫렸습니다!”

"뭐?”

최악의 상황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일단 그쪽으로 이동한다! 절대로 벽이 무너져서는 안 돼!”

쉘터 경비대장은 10명의 경비대원을 이끌고 우측 복도를 향해 달려갔다.

복도의 모든 창문은 ‘철제 셔터’로 막힌 상태였다.

하지만 마법 방어막이 깨진 이상, 그런 물리적인 봉쇄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쿠—웅—!

이번에는 훨씬 큰 굉음이 건물 전체를 뒤흔들었다.

마법 방어막이 아니라 건물 자체에 가해진 충격이었다.

"미치겠네! 이러다가 벽이 무너……”

콰—앙—!

말이 씨가 됐다.

정면의 복도 한쪽이 무너지며, 철근과 콘크리트가 복도 안으로 쏟아졌다.

그리고…… 벽 밖에 서 있는 거대한 무언가의 그림자가, 건물 안으로 드리웠다.

"제, 젠장……."

경비대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욱—! 이게 무슨 냄새야!”

형언할 수 없는 악취가 복도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시체 썩는 냄새—그것도 수백 구가 동시에 썩고 있는 것만 같은, 엄청난 고약함…….

그 악취에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웬 거대한 손이 구멍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헉!”

반쯤 썩어서 뼈가 드러난 기둥만큼 굵직한 손이었다.

그것이 벽을 움켜쥐고 잡아당기자, 마치 스티로폼 상자처럼 너무나 손쉽게 뜯겨나갔다.

콰드드드…….

"마, 맙소사……."

벽의 구멍이 하늘이 보일 정도로 넓어지자, 마침내 그 몬스터의 얼굴이 드러났다.

3층 높이에 이르는 녹색의 거인—

그건, 좀비 트롤이었다.

우어어어—

또한, 보이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수의 좀비가 건물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는 걸, 벽 밖의 괴성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이, 일단 쏴!”

경비대장은 그렇게 말하며, 화살을 재고 창밖을 향해 쏘았다.

그 뒤를 이어 경비대 전원이 온갖 마법을 퍼부었다.

모두 명중— 하지만 놈은 꿈쩍도 안 했다.

놈의 얼굴에 발생한 상처는 마치 영상을 되감기를 하듯 순식간에 아물어버렸다.

놈이 화가 난 듯, 건물 외벽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뻐—억—!

건물의 파편이 산탄총처럼 튀어 들어오며, 교실 하나를 휩쓸어버렸다.

"저, 저놈은 우리의 무기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경비대원 한 명이 거의 울먹이다시피 소리쳤다.

사실이었다. 아무리 공격해도 계속 회복하는 괴물…….

저딴 걸 죽일 수 있는 무기나 스킬은, 일개 쉘터 경비대에게는 없었다.

즉, 마법 방어막이 뜯긴 이상, 저것들의 침투를 막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끝났다…….'

경비대장은 형언할 수 없는 무기력감을 느끼며, 들어 올렸던 활을 내렸다.

그때였다.

- 칙— ……입니다, 생존자가 있으면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어디선가 작은 목소리가 울렸다.

"—어? 대장님! 마나 메신저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경비대장은 황급히 허리춤의 마나 메신저를 들어 올렸다.

"여, 여기는 A초등학교 쉘터입니다! 거기 누구 있습니까?”

다음 몇 초간은 대답 없이 잡음만이 흘러나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들에게는 그게 몇 분처럼 느껴졌다.

- 칙— 현재 ‘좀비 트롤’에게 공격받는 지점,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저희입니다!”

절망만 가득하던 순간, 한 줄기의 희망이 생긴 걸까?

경비대장은 누군지도 모를 그 음성을 향해,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누구신진 모르겠지만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 괴물을 제발 멀리 유인해주세요! 이 쉘터에는 현재 삼천 명이 넘는 민간인이 피난해 있습니다! 이대로면, 저희 전부 죽습니다!”

- 칙— 벽 근처에 서 있지 마시고, 뒤로 물러나세요.

"예?”

- 좀비 트롤을 제거할 겁니다. 피해 없도록 뒤로 물러나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경비대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좀비 트롤, 저런 괴물을 제거한다니…….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좀처럼 불가능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정말 강력한 플레이어라면 충분히 가능할 터,

그들은 군말 없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대장님, 저기를 보십시오!”

경비대원 한 명이 창문 밖을 가리켰다.

학교의 너른 운동장으로, 누군가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 단 한 명이었다.

“……AMT잖아?”

그런데 그가 지닌 무기라고는 등 뒤의 검 두 자루가 전부인 듯했다.

다만, 어딘가 특이한 점이라면 양쪽 손바닥을 하늘 향해 들어 올리고 있다는 것—

"전사 계열이면, 아무리 등급이 높아도 좀비 트롤을 잡기 어려울 텐데……."

남자는 자신만만하게 접근하고 있었다만,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를 가장 먼저 맞이한 건 ‘지옥의 주민’ 무리였다.

끄에에ㅡ

건물 외벽을 두들겨대던 놈들이 어그로가 끌린 듯, 운동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 숫자가 약 서른 마리,

웬만한 플레이어 혼자서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

그 좀비들이 남자의 근처에 다다르기도 전에 하나둘, 풀썩풀썩 쓰러지는 것이었다.

그것들의 머리에서 피가 쏟아졌다.

"뭐야…… 뭐에 죽은 거야?”

정작 그 남자는 그 어떤 공격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좀비 트롤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을 뿐이었다.

“……아! 화살입니다!”

“뭐?”

"저기! 자세히 보면 화살이 허공에 떠서 저절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경비대장 역시 그것을 발견했다.

쉬—이—이—익—!

웬 화살 한 자루가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좀비의 머리통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염동력을 쓰는 걸까요? 엄청 세 보입니다!”

그 화살은 추진력 같은 걸 얻어서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정말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불규칙한 궤도로 움직이며 좀비를 한 마리, 한 마리 요격했고, 불과 30초 사이에 운동 위로 수십 마리의 좀비 시체가 널브러졌다.

"하지만 저 정도 파괴력만으로는 좀비 트롤을 감당하지 못할 텐데……."

그 장면이 퍽 경이롭긴 했다만, 좀비 트롤한테는 먹히지 않을 터,

저 단단한 거구를 단 한 방에 날려버릴 정도로 강력한 화력이 필요해 보였다.

경비대장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마나 메신저를 들어 올렸다.

“—아아! 좀비 트롤은 웬만한 공격은 통하지도 않고, 상처도 금방 회복합니다!”

- 칙ㅡ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뒤로 물러나세요. 피가 많이 튈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하늘을 향하고 있던 남자의 손바닥이 천천히 뒤집혔다.

그 순간,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검은 기둥?’

찰나의 순간, 경비대장은 그렇게 느꼈다.

흑색의 기둥 같은 물체가 트롤을 스치듯 낙하하여, 지면에 내리꽂혔다.

쩌—억——!

지축을 울리는 파공성이 울리는 순간,

좀비 트롤의 거대한 머리가 퍽—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나갔다.

"어?”

머리 잃은 몸뚱이는 사방으로 피 분수가 쏟아내며, 오른쪽으로 천천히 기울어졌다.

쿠—웅—!

죽었다. 그것도 단 한 방에.......

"차, 참수——!”

그래, 절대로 죽지 않을 것 같았던 그 거인을 일격에 참수(新首)한 것이었다.

경비대장은 입을 쩍 벌리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바닥을 향하고 있던 그의 손바닥이 또 한 번 뒤집혀서 다시금 하늘을 향했고, 그 손짓을 따라서, 검은 기둥인 줄만 알았던 어떤 물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웅ㅡ

그건 2m 10cm짜리 대검이었다.

"......."

모두 그 경이로운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대검, 아니 거검(巨劍)은 수평으로 누운 채 활공하여 남아 있던 좀비를 죄다 일도양단하고는 남자의 등 뒤, 허공에 우뚝 섰다.

그 고고한 자태는 마치 거대한 십자가 같았다.

그 직후, 군용 트럭들이 운동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총 13대였다.

- 칙— 안전을 확보했으니, 이제 안심하십시오.

***

“……혹시, 강철 중대, 맞습니까?”

AMT병력이 학교 안으로 들어왔을 때, 쉘터 경비대장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물어왔다.

이현욱은 고개를 갸웃했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음, 아직 모르셨습니까? 정부 쪽에서 마나 메신저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현욱은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아서, 김강석에게 외부의 연락을 최대한 막아달라고 부탁해뒀기 때문일까, 이현욱의 마나 메신저로는 별다른 교신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경비대장 뒤에 서 있던 경비대원들이 입을 쩍 벌리며 다가왔다.

"와! 정말로 강철 중대였습니까?”

"그렇다면, 침식 요인을 제거했다는 게 사실이에요?”

마치 연예인이라도 만났다는 반응이었다.

"하하…… 예, 맞습니다.”

“와— 대체 어떻게……."

"진짜 영웅들이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서울을 꼭 구해주세요!”

이현욱은 멋쩍게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강서윤, 귀찮게 하는군…….'

그녀가 강철 중대의 활약상을 사방팔방으로 실어나르는 중이라는 걸, 이현욱은 직감했다.

그 희소식을 바탕으로 웨이브 존 안의 플레이어들을 하나로 규합할 생각인 듯했다.

의도는 당연히 선하기 그지없지만, 여러모로 귀찮아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여기는 언제부터 공격을 받고 있던 겁니까?”

이현욱은 초등학교 건물을 쭉 훑으며 물었다.

버틴 게 용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성한곳이 한 곳도 없었다.

저 5m짜리 괴수가 어찌나 두들겨댔을지 눈에 선했다.

"한 3시간 정도, 예, 그 정도 공격받았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하…… 그런데 그런 놈을 단 한 방에 처치하고, 저희를 구해주셨죠.”

경비대장은 그 장면을 떠올리는 듯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내가 봐도 무시무시한 일격이긴 했다.’

이현욱도 오랜만에 느낀 그 괴력에 새삼스레 감탄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수백 개의 무기를 퍼부어야만 했던 좀비 트롤을 단 한 방에 보냈다.

모글레이는 정말이지…… 말이 필요 없이 최고였다.

“……군인 아저씨!”

그때, 피난민들이 모여 있는 대강당 안에서부터 웬 꼬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녀석 대강당 입구에 서 있던 강철 중대원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저 좀, 저 좀 도와주세요!”

난데없는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녀석에게 향했다.

"꼬마야, 무슨 일이야?”

박준모가 무릎을 굽히며 꼬마와 눈높이를 맞췄다.

“흑…… 제발요, 제발, 제 친구들 좀…… 구, 구해주세요.”

울먹이며 사정하는 통에, 박준모는 당황한 표정으로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친구들? 친구들이 어디에 있는데?”

그때,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뒤따라 나오더니. 아이의 팔을 붙잡았다.

"아!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희망아, 군인 아저씨들 귀찮게 하면 안 돼!”

"하하— 괜찮습니다. 희망이 친구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박준모의 물음에 희망이의 어머니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 저……."

이에 경비대장이 대신 설명했다.

"이곳으로 오는 피난 행렬 하나가 도중에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쯧— 거의 백여 명이 결국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아 희망이의 친구들이 그때……”

박준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네, 맞아요.”

“……희생이 컸겠군요.”

그런데 경비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이게 좀 이상합니다. 예, 뭔가 달랐습니다.”

"예?”

"지성이 있는 몬스터로 보이긴 했는데…… 백 명이 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고 납치해갔습니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이현욱의 머릿속에 한 가지 정보가 떠올랐다.

'다종족 흑마법회, 역시 놈들이 이 근처에 있군.’

흑마법회는 인간을 악신의 제물로 바침으로써, 흑마법을 강화하는 몬스터 조직이었다.

그리고 이현욱이 기억하는 대로라면, 침식 요인을 지키고 있을 놈들이기도 했다.

즉, 잘 찾아왔다는 뜻이었다.

"음, 그런데 백 명이 넘는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잡아간 겁니까? 분명 저항을 했을 텐데요. 그 정도로, 몬스터 숫자가 많았던 겁니까?”

"그게…… 많기도 많았는데, 놈들이 이상한 검은 연기 같은 걸 뿌리니까, 사람 막 전부 쓰러져버리더군요. 플레이어까지도요. 그래서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끌려간 겁니다.’’

그러자 박준모가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이거 혹시…… 그거 아니겠습니까?”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 중대도 여기로 오는 도중에 경험한 현상이었다.

서행해야 하는 지점에서 맨홀 뚜껑이 열리더니, 난데없이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함정이었다. 그걸 밟고 기절해 있으면 나중에 와서 수거해가는 식일 거다.’

물론 이현욱은 그 즉시 방독면 착용을 명령했다.

그러나 미처 반응하지 못한 이들이 그 검은 연기를 마시고 말았는데…….

뭐, 다행인 건지 이상한 건지, 별 탈 없이 아주 멀쩡했다.

‘그건 <신성한 가호> 덕분이다.’

역시 그걸 몸에 두르고 있는 한, 웬만한 저주 정도는 무시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되었다.

"음…… 그 사람들,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현욱의 말에 경비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살아 있을 거라고 믿고, 어떤 플레이어분들한테 구출을 부탁했습니다. 몇 시간 전에 그분들이 출발했는데…… 재수 없게도 바로 그때 좀비 트롤이 들이닥친 겁니다.”

"그분들, 지금 연락됩니까?”

"저희가 공격 받을 때 구조 신호를 보내긴 했는데, 답이 안 와서……."

어둠 계열 마법에 대응할 요령이 없다면, 붙잡혀서 제물이 될 뿐이었다.

"저희가 가겠습니다.”

“예?”

"저희가, 붙잡힌 사람들을 구해오겠습니다.”

솔직히 은근히 바라고 있을 테지만, 경비대장은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정말 그래 주실 수 있습니까?”

"그게 저희의 의무니까요.”

"하…… 정말 감사합니다!”

이현욱이 구출 작전을 결정하자, 박준모가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희망아, 우리가 친구들 구해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있어? 알았지?”

“……네!”

녀석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현욱과 박준모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저씨들은, 영웅이에요!”

아직 성공한 것도 아니건만 녀석의 표정이 밝아졌다.

박준모는 괜스레 코가 시큰해졌다.

자신이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약자를 선뜻 도울 수 있다는 게 새삼스레 감격이었다.

이현욱은 워키토키를 누르고, 중대 전체에 무전을 보냈다.

"주변에 침식 요인을 동반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게이트가 있다. 수색 준비한다.”

이렇듯, 이현욱은 진짜 목적은 그곳에 있을 두 번째 침식 요인이었다.

"큼, 그런데 대단하신 분들인 만큼 알아서 하시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 악마들이 부리는 이상한 주술 말입니다. 앞서 나간 분들도 연락이 안 되고……."

경비대장이 걱정스레 말했으나, 이현욱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아, 그건 괜찮습니다. 우리한테는 안 통할 겁니다.”

자신들의 무기가 통하지 않아서 당황하는 놈들을, 단숨에 쳐부숴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 칙— 아아, 들리십니까?

경비대장의 마나 메신저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마나 메신저를 들어 올렸다.

“……어, 태산 길드 분들, 맞습니까? 무사하신 건가요?”

- 칙— 예, 맞습니다!

태산 길드…….

이현욱은 바로 그 대목을 듣는 순간 계획 수정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태산 길드의 모두가 빌런은 아니겠다만,

적어도 기백준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수족일 가능성이 컸다.

특히나 자신들의 활동 지역이 아닌 서울에 있는 태산 길드원이라면 더더욱.......

‘그리고 태산 길드원들이 여기를 떠나자마자 좀비 트롤이 들이닥쳤다고 했다.’

물론, 그건 우연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다시 연락이 왔다면…….'

이 부분에서는 다소 구린내가 진동했다.

‘아마도 침식 요인을 주변 쉘터에 정보망을 깔아 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거다.’

다섯 도살자를 모두 죽이고, 침식 요인까지 파괴했으니 기백준이 이를 갈고 있을 터…….

- 칙— 저희가 전투 중이라서 종전에 주셨던 메시지에 칙— 답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무슨 일 있었습니까? 그쪽은 괜찮은 거죠?

"있긴 있었는데…… 잘 해결됐습니다. 아! 여기에 강철 중대가 왔습니다!”

- 칙— 강철 중대요? 설마, 침식 요인을 파괴한 그 AMT 부대 말씀이세요?

"에, 맞습니다!”

- 칙— 잘됐네요! 저희가 좀 난처한 상황에 처해서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그 말에, 경비대장이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직접 대답해달라는 것이었다.

‘이건…… 함정이다.’

여러 요건, 그리고 이현욱의 직감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이현욱은 경비대장으로부터 마나 메신저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예, 저희가 지원을 가겠습니다.”

하지만 함정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그건 더는 함정이 아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반대가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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