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49화 (49/221)

49화.  < 지옥 속의 구심점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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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욱 병장, 장담할 수 있나?

마나 메신저에서 흘러나오는 김강석의 목소리,

그 안에는 감추지 못할 정도의 놀라움이 배어 있었다.

- 자네가 제거한 오브젝트가 ‘침식 요인’인 게, 확실해?

이현욱을 전적으로 믿었기에 강철 중대를 편성하여 작전 투입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웨이브가 감당하기 어려운 대재앙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고, 이현욱의 강철비가 유용하다고 한들, 만능은 아니었으니, 희망을 품되 너무 큰 기대까지는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런데, 단 하루 만에 첫 번째 침식 요인을 제거했다는 보고를 듣게 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혹시나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이렇게 수차례 되묻는 중이었다.

이에 이현욱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예, 정확히 확인했습니다. 월드 스톤 형태의 침식 요인이 지면으로 파고 들어가는 걸 식별하여 파괴했고, 그 직후 월드 스톤을 파괴 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되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보았다면 거짓말하는 게 아닌 이상 확실한 셈이었다.

김강석은 그제야 허허, 웃었다.

감탄을 넘어 서서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 이현욱 병장, 나는 언제나 자네를 믿고 있었는데…… 그 믿음이 좀 부족했던 모양이야.

"아닙니다. 아직 3개나 더 남았으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임무 수행하겠습니다.”

- 좋아, 그리고 곧 여단본부 쪽에서도 ‘공략중대’가 움직일 거다.

최정철 장군이 지휘하는 여단본부는 이제야 영내에 발생한 게이트를 정리한 듯했다.

사실, 무려 4개 게이트를 하루 만에 처리했다는 뜻이었으니, 굉장히 성공적인 대처였다.

그저 이현욱이 있는 1대대가 압도적으로 빨랐을 뿐…….

‘여단장 직속 공략중대가 동원된다면, 마지막 전투 때 큰 힘이 될 거다.’

공략중대는 공략소대 3~4개 규모의 부대로, 제3항마여단의 최고 전력이었다.

3개 이상의 침식 요인을 제거했을 때 발생하는 ‘추가 이벤트’ 때 도움이 될 터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계속 단독 작전 진행하겠습니다.”

- 물론이지, 지금은 자네가 최고니까 자네 뜻을 해. 아, 혹시 더 필요한 게 있나?

"당장 필요한 건 없습니다만, 물자가 부족해지면 즉시 보급 요청하겠습니다.”

- 그래, 여단장님께서도 강철 중대를 전폭 지원해주신다고 하셨어. 수송기 동원해서 즉시 보내줄 테니까, 뭐든 아끼지 말고 있는 대로 쏟아부어도 돼.

"알겠습니다.”

그렇게 보고가 끝난 뛰, 이현욱은 시계를 확인했다.

- 01:06

지난 새벽부터 거의 쉼 없이 전투를 치러온 만큼, 이제는 정말로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당장 급한 일이 하나 있었다.

"야수화 물약 복용자를 찾아야 하니까, 프리스트 플레이어를 전부 모아주세요.”

이현욱은 이정준 일행, 역 경비대와 협력하여, 최대한 많은 프리스트를 모은 뒤, 야수화 저주에 걸린 이를 선별해냈다. 다행히도 그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성소 관리인과 접촉한 이들을 추려냈더니, 몇 명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작업이 끝난 뒤, 전원 취침 명령을 내렸다.

그게 새벽 1시 40분,

강철 중대원들은 그제야, 역사 안 복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서 잠을 청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도 사랑은 피어나고 애는 태어난다고 했던가,

남녀구분 없이 뭉쳐 있으니, 어디선가 속닥거리고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야! 안 자면 강제로 재워 줄 수 있으니까, 부디 주둥이 좀 다물어라……."

김세희가 쌍욕을 하면서 몇 마디 하자, 금방 조용해졌다.

***

새벽 2시 50분, 이현욱은 불침번을 자처하여 역 경비실에 앉아 있었다.

내일 작전 경로를 확실하게 정리해야 해둬야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틈틈이 자신의 능력 전반을 점검해둘 필요도 있었다.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하게 인지하지 않으면, 전투 중에 판단이 꼬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현욱은 쉴 때마다 자신의 능력치를 한 번 쭉 읽어보는 버릇이 있었다.

- 현재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 : 78,658g

* 초월 감각(+30%)이 적용 중입니다.

* 강골(+10%)이 적용 중입니다.

‘역시, 추가 효과가 하나 더 붙었다.’

강골 1단계, 그건 ‘모글레이’의 힘이었다.

모글레이의 첫 번째 스킬 ‘강골’은 신체 능력뿐만 아니라, 파워 전반을 늘려주는 개념의 ‘패시브 스킬’이었으며, 이현욱의 경우는 ‘금속 통제력’ 역시 그 파워의 범주에 들어갔다.

‘이로써 무려 40%의 추가 통제력을 얻을 수 있게 됐군.’

그렇게 능력 확인을 마친 뒤, 군용 PDA를 꺼내어 서울 지도를 확인했다.

‘현재 서울 웨이브 존에 생성된 침식 요인은 총 4개, 그중 1개를 방금 파괴했고, 원래 역사대로라면 연신내 쪽 침식 요인은 안양 듀오가 공략하니까, 그쪽은 신경 쓸 필요 없다.’

침식 요인 4개 중 1개는 ‘안양 듀오’라고 불리는 이들이 공략할 예정이었다.

‘그렇다면…… 다음은 강남 쪽으로 간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신살(神殺)의 병기 ‘미스틸테인(Mistilteinn)’이 잠들어 있었다.

빌런들이 가장 먼저 얻어내려고 할 터, 빠르게 가서 선수 쳐야만 했다.

그때, 복도 끝에서 김세희가 나타났다.

그녀는 하품을 쩍 하며 터덜터덜 걸어왔다.

"김 병장, 혼자 또 어디 가요?”

"화장실 가요. 왜요, 전우조로 같이 가주실래요?”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렇게 쏘았다.

"아니…… 정령이랑 한 판 붙으러 가는 건가 싶어서 물어봤어요.”

"……새벽에 피곤하다고 남이 주는 거 아무거나 얻어먹지나 마세요."

그래도 이현욱이 중대장인 셈인데, 단 한 마디를 안 지려고 한다.

‘역시, 성격 보면 정령이랑 욕하고 싸울 만해.’

이현욱은 고개를 내것고는 다시 지도를 살폈다.

그런데, 화장실을 갔다 온 김세희가 이현욱의 옆으로 다가왔다.

세수했는지 얼굴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졌다.

“......왜요?”

"제가 다음 순번이잖아요. 몰랐어요?”

"음, 아직 시간 남았는데요?”

김세희는 대답 없이 벽에 기대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도 안 죽었어요.”

“네?”

"이번 작전 동안, 아무도 안 죽었다고요. 지휘 잘 하셨다는 말이에요.”

이현욱은 무슨 말인가 싶어서 그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고, 김세희가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어제는…… 우리 중대원이 19명이나 죽었어요. 그 개새끼들한테요.”

다섯 도살자가 5분대기조를 학살했다.

그리고 스켈레톤이 급습하여 적지 않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것까지는, 이현욱 역시 막아낼 수 없었다.

"시발……."

다시 보니, 그녀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작고 예쁜 외양과 달리, 굉장히 드세나 못해 거친 성격이었다만,

그래도 전우를 잃은 게 상당히 큰 충격인 듯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아무도 안 죽게 해줘요.”

"뭐, 당연히 그래야죠.”

"그렇게만 해주면…… 끝까지 믿고 따를게요.”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땅을 바라보며 말했다.

딱 봐도 원래 이런 말을 잘 못 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고된 싸움 속에서, 알게 모르게 흔들리고 있는 걸까…….

‘하긴, 대단한 여자긴 하지만, 아직은 20대 초반이니까…….'

이현욱은 PDF를 끄고는 김세희를 올려다보았다.

"물론, 아무도 죽지 않도록 노력하겠지만…… 때로는 누군가, 죽을 수밖에 없을 때가 올 겁니다."

그의 대답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이현욱 역시 언젠가 김세희와 같은 염원을 품었지만,

숱한 경험 끝에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

동이 텄고, 이동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AMT가 떠날 준비를 하자, 국회의원 박길상과 그 패거리는 퍽 좋아하는 눈치였다.

한동안 기가 죽어있더니, 지금은 저들끼리 모여서 쑥덕거리며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저것들을 그냥 두고 가면, 분명 헛짓거리를 할 거다. 위험요소야.’

웨이브 폐쇄 기간이 단 5일이지만, 구조까지는 휠씬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거리의 장악한 몬스터를 제거하여 안전을 확보한 뒤, 외곽 지역에서부터 차례대로 구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고로, 이 쉘터에서 몇 달을 버텨야 할 수도 있는데…….

‘이 쉘터를 작은 왕국 삼아서 웨이브가 끝날 때까지 호의호식하며 버틸 생각인 거야.’

하여튼, 흔히 말하는 ‘갑질’을 포기하지 못한 듯했다.

그러나 이현욱은 저것들이 마음 놓고 활개 치도록 둘 생각이 없었다.

그는 경비대장을 따로 불러냈다.

"경비대장님, 들으셨겠지만 저희는 날이 밝는 대로 떠날 겁니다.”

"예,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일…… 죄송합니다.”

경비대장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잠시나마 AMT의 실력을 의심하고 회의적으로 굴었던 것 때문이었다.

"정말…… 이렇게 대단하신 분들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닙니다.”

이현욱은 멋쩍게 웃어 보이고,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저희가 떠난 뒤에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그게 걱정됩니다. 혹시 성소 관리인과 평소 친밀하게 지내며 계속 접촉하던 사람, 보셨습니까?”

"어? 서, 설마, 공범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경비대장은 성소 관리인 공현준, 그의 끔찍한 계획을 떠올리며 마른 침을 삼켰다.

AMT가 아니었다면 이 쉘터의 모두가 헬 레트의 밥이 되었을 터였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만약을 생각하자는 거죠.”

"흠, 잘 모르겠습니다. 웨이브 발생 전에는 대화도 거의 나눈 적이 없어서……."

그때, 이현욱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사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성소 관리인한테 들은 게 하나 있습니다."

“……예?”

"제가 놈을 제압했을 때, 자신을 살려준다면 높으신 분의 호의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 쉘터에서 높으신 분이라면, 음......."

"헉! 바, 박길상 의원 아닙니까? 맙소사……."

물론 이는 완벽한 거짓말로서, 일종의 모함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간사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도덕성에 얽매여 행동한다면 빌런은커녕, 박길상 같은 인간 하나 감당하지 못한다.

이 세상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걸, 이현욱은 잘 알고 있었다.

어느새 경비대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해 있었다.

"젠장! 그 인간, 처음부터 속이 시커먼 놈이란 걸 알았는데—!”

사실관계를 고민하기도 전에 확신하는 걸 보면, 이미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는 듯했다.

하긴, 자신을 비롯한 부하들이 바로 그 커피를 마신 피해자였으니 감정적일 수밖에…….

"물론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성소 관리인이 살고 싶어서 그냥 막 내뱉은 걸 수도요.”

"후…… 그렇긴 하지만, 여러모로 속이 구린 인간인 건 확실합니다. 제가 지켜봤거든요."

"예, 그건 저도 알 것 같습니다.”

"시발, 쉘터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을 얼마나 내쳤는지……."

경비대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원치 않지만, 압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따랐던 모양이었다.

"지금 이 쉘터의 모든 권한은 경비대장님께 있습니다. 그걸 잊지 마세요.”

"……맞습니다.”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경비대장은 무언가 다짐한 듯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그 즉시, 박길상 패거리를 무장해제 시킨 뒤 격리해버렸다.

아무래도 참고 있던 어떤 분노가 터진 듯했다.

“……당신들, 큰 실수하는 거야!”

박상길이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경비대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니지, 당신이야말로 큰 실수 했어! 웨이브가 끝난 뒤라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당신이 벌인 악행, 우리가 증언할 거니까, 당신 정치 인생도 이제 끝이야!”

박상길의 얼굴에 당혹이 피어났다.

"뭐, 뭐? 내가 도대체 뭘 했다고 이러는 거야?”

"씨발, 한두 가지야? 무엇보다 당신이 안 들여보낸 쉘터 피난민이 몇 명인 줄 알아? 내가 병신같이, 당신 같은 사람 말에 반박도 못 했지만, 이제는 아니야!”

"너…… 그거 증거 가지고 하는 말이야?”

그러자 사방팔방에서 원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신이 우리 받지 말라고 했다면서요!”

"맞아요! 저희도 안에서 당신들이 수작하는 거 다 지켜봤어요!”

"에라이— 어떻게 너 같은 게 국회의원이냐!”

나름대로 은근슬쩍 행했던 악행들이었겠지만, 이 좁디좁은 쉘터 안에서는 금방 소문이 나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그들에게 반감이 있는 이정준 일행이 돌아왔으니 당연했다.

역시, 아무리 가식을 부려봤자 그 속내가 더러우면 결말이 좋을 수가 없는 걸까…….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에 박길상은 목까지 시뻘겋게 달아올랐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참치캔이 그의 머리통에 적중했다.

"악!"

그는 무어라고 소리쳤지만, 시민들의 매서운 원성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그는 결국 격리 장소인 사무실 문을 쾅— 닫고 들어갔고,

경비대원들이 그 입구를 마법 방어막으로 봉쇄해버렸다.

이현욱은 그 장면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뭐, 잘된 일이다.’

박길상이 계속 일그러진 권리를 행사했다면, 쉘터가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었다.

한편, 그런 소란이 있는 동안, 강철 중대는 이동 준비를 마쳤다.

"이현욱 병장님, 준비 끝났습니다.”

이현욱은 밖으로 나가서, 그 대열을 쭉 훑으며 점검했다.

‘좋아, 단 하루 만에 비약적으로 강해졌다.’

이제는 이정준 일행까지 더해져서 차량 3대가 더 늘어나 총 13대의 차량 행렬이 되었다.

그리하여 18명의 플레이어 저력이 추가된 건 물론이거니와, 중대원 개개인의 레벨이 대폭 상승했다. 또한, 수차례 전투를 치르며 그 경험과 판단력도 진일보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성한 가호의 효과가 엄청나다.’

헬 레트 떼를 몰이 사냥한 직후 얻었던 이벤트 버프, 이현욱은 그 상세 내용을 확인했다.

- 해당 파티에 이벤트 버프 ‘신성한 가호’가 적용 중입니다.

1) 모든 무기에 ‘신성력’이 부여됩니다.

2) 자연 치유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50%)

3) 일정 수준 이하의 어둠 계열 저주에 ‘내성’을 가집니다.

‘이건…… 4차 웨이브 한정, 2배 이상의 전력 상승이야.’

4차 웨이브의 주요 몬스터가 ‘어둠 속성’인 만큼, 최적의 무기를 얻은 셈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라면, 아무래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도 될 것 같았다.

한편, 엄청난 크기의 대검 ‘모글레이’를 지휘 차량의 천장에 매달아두었는데,

앞을 가로막는 놈한테, 마치 포를 쏘듯, 이 55kg짜리 대검을 날려줄 수 있을 것이었다.

‘이제는 좀비 트롤 같은 게 나와도, 굳이 멈춰서 대응할 필요가 없을 거야.’

이현욱은 마지막으로 그 매듭을 다시 한번 확인한 뒤, 지휘 차량에 탑승했다.

그리고 워키토키를 들어 올렸다.

"전 병력, 출발한다.”

그의 짧은 한마디에, 엔진을 달구고 있던 차량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우우ㅡ

그 길고 단단한 행렬은 서쪽으로, 고요한 서울 도심 안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그 순간…….

- (!)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뭐야, 이거?”

그 행렬에 속한 모든 이의 눈앞에, 그런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이벤트 퀘스트]

- 재앙 원정대, 돛을 펼치고, 어둠 속으로…….

1) 최대한 많은 ‘침식 요인’을 제거하십시외 (진행 중)

2) 최대한 많은 '어둠 속성’ 몬스터를 제거하십시오! (진행 중)

3) 최대한 많은 '일반인’을 구출하십시오! (진행 중)

* 보상 : 성과에 따라서 차등 지급됩니다.

"이게…… 뭡니까?”

박준모의 물음에, 이현욱은 미소를 지었다.

“……위기 속 기회다.”

언제나 그렇듯, 고된 시련은 달콤한 보상을 숨기고 있기 마련이었다.

"보이는 몬스터를 전부 쓸어버리면서 전진한다.”

***

"......예, 부탁드립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나서야죠, 대체 언제 나서겠어요?”

강서윤은 사무실 안에서, 불안한 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렇죠.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긴 한데, 솔직히…… 사후 대비를 하긴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고든한테 비공정 4대 지원을 약속받았어요. 예, 만약 침식이 진행되면, 마법 폭격을 하면서 진입해서…… 그 좆 같은 ‘침식 오브젝트’를 요격할 생각이에요. 그게 최선이죠.”

그녀는 자신이 몸담은 비밀 조직 <가디언>에게 사후 수복 작전을 요청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가디언 측의 반응도 영 떨떠름하기만 했다.

“……아— 그건 알고 있다니까요!”

그들은 이 게임에서 만들어내는 재앙에 저항하는 이들이었지만, 정의감에 가득 차서 앞뒤 안 가리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그런 비현실적인 유형의 영웅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업가처럼 철저하게 손해와 이익을 고려하여 비밀 작전을 수립했다. 그런 면에서, 웨이브에 대응하는 것보다 그 힘을 아껴서 이후를 대비하자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웨이브에 대응했을 때 엄청난 희생을 치렀고,

그 희생으로 인해 가디언의 힘이 확연하게 축소되었기 때문이었다.

강서윤은 지금, 전화기 너머로 그런 내용을 다시 한번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호흡도 빠르게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쌍—! 그게 할 소리예요? 무슨 국적을 옮기긴 옮겨요? 저는요, 서울을 위해서 전설 아이템까지 걸었어요! 항공모함 가격이나 다름없는 그 물건을 넘겨줄 거라고요—!”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강서윤은 인상을 찌푸리며 전화기를 내렸다.

비밀스러운 대화가 오고 가는 중이었기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헉— 헉— 강 대표님......."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비상통신담당관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의 표정에는 다급함에 한껏 묻어나 있었다.

“……담당관님, 왜요?”

"그게……."

"통화 중이니까, 빨리 말하세요!”

“……침식 요인을, 공략했다는 소식입니다.”

"예?”

강서윤은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대, 대, 대, 대체 누가요—!”

비상통신담당관은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놀라운 소식을 전할 차례였다.

“AMT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남산 소재의 1대대, 그쪽 병력이 해냈다고 합니다!”

"예? AMT가요? 어, 어떻게……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후—!”

그녀는 심호홉하고, 비상통신담당관과 함께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담당관님, 이 소식 정확하게 파악된 거죠? 아니, 파악이고 자시고 시간 없으니까 일단 당장 웨이브 존의 연락 닿는 플레이어 중심으로 알리세요! 이제 겨우 3일 남았어요!”

“예!”

"지금 이건, ㅜ유일한 희망이에요! 구심점 삼을 희망이 탄생한 거예요! 그것도 침식 요인을 박살 내면서 등장하다니…… 좋아, 이제부터 판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어요.”

그래, 등급 높고 레벨 높은 잘난 놈이 하나 등장해서 총대를 메겠다고 해도, 웨이브 존 안의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제 몸 사릴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누군가 침식 요인을 제거했다는 소식은 차원이 달랐다.

실질적인 가능성 즉, 용기를 주는 것일 테니…….

전 세계에,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 이것도 같이 전해주세요. <즈믄나래>길드가 내건 전설 등급의 보상이 ‘게 볼그’라는 걸 웨이브 존 내외로 다 공표하세요.”

“마, 맙소사……."

"예, 침 좀 흘릴 거예요. ‘광명 오우거 전투’ 때 ‘트윈 헤드 오우거 챔피언’을 단 한 방에 죽였던 그 무기를 쥐고 싶을 테니까……."

게 볼그(Gde Bolg),

항공모함 한 대의 가치보다 더 비싸다는 그 한 자루의 창이, 희망에 불씨를 지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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