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 동대문역, 침식 요인, 거대한 검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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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부탁드려요. 예, 다시 연락드릴게요.”
대한민국 플레이어 랭킹 4위, 강서윤은 누군가와의 통화를 마쳤다.
때마침 벽걸이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정부와 길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고의 플레이어 강국으로 부상했던 대한민국의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부상하긴 무슨, 위에 있던 나라들이 가라앉아서 상대적으로 뜬 건데......."
대한민국이 현시대의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 강국으로 손꼽히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이 나라의 플레이어들이 하나 같이 대단해서라기보다, 처음에 잘 나가던 강대국들—미국, 독일, 중국 등이 차례차례 웨이브에 휩쓸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입지가 상승했으나…….
'……이번에는 우리 차례가 왔다.’
어쩌면 이 나라도 가라앉고 말 운명이었다.
- 아이고—! 우리 아들이, 저 안에 있다니까요! 제발 좀 구해주세요!
뉴스 화면은 어딘가에 모여서 시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웨이브 존에 갇힌 가족을 구해달라고 울고불고하는 한 중년 여자의 모습, 의협심으로 불타올라 당장이라도 웨이브 존을 뚫고 들어가겠다고, 난동을 부리는 젊은 플레이어들…….
"하, 뚫고 들어가겠다는 건 진짜 바보 같은 소리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나서긴 해야 하는데, 쟤들 말고 좀 잘난 놈들이……."
그녀는 씁쓸함을 느끼며 TV를 꺼버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시끌벅적한 소란이 그녀를 덮쳐왔다.
“—3번, 통신 연결됐습니다. 예! 백호 길드라고 합니다!”
"새로운 정보입니다! 동작구에 시체 골렘이 돌아다니고 있답니다!”
"뭐? 그렇다면 주변에 죽음 마법사도 있다는 소리 아니야?”
온갖 육성이 뒤엉키는 거대한 공간을, 수십 명의 직원이 바쁘게 오고 가는 중이었다.
이곳은<국가게이트대응위원회 통합지휘센터> 지하에 마련 상황실이었다 .
현재 대응하고 있는 건, 당연하게도 4차 웨이브.
그것도 그놈의 ‘사후 대책’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있었다.
즉 ‘서울 침식’을 막기 위해 마련된 ‘컨트롤 타워’였다.
그리고 이 조직의 최고 책임자 ‘헤드 플레이어’가 바로 강서윤이었다.
이런 일이라면 보통 정부 측 고위 관료가 담당하게 되거늘……
이번에는 다양한 이유로 그녀가 완장을 차게 됐다.
“13번 마법사, 소재 불명의 플레이어와 연결되었습니다. 대화 내용 녹음합니다.”
“44번 마법사, 대림2동에 위치한, B등급 플레이어, 이철희와 교신 중입니다.”
“51번 마법사와 연결되었던 통신이 끊어졌습니다…… 습격을 당한 듯합니다.”
그리고 이 ‘컨트롤 타워’의 주요 임무는 웨이브 존 내부 플레이어와의 ‘교신’이었다.
내부의 플레이어들을 설득하고 규합하여, 침식 요인을 찾도록 핸들링한다.
그게 외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에, 컨트롤 타워의 결정권자들이 합의했다.
그리하여 현재 35명의 상급 마법사를 동원하여 웨이브 존 내부 플레이어와 교신 중이었다.
"비상통신담당관님, 어떻게, 연락 닿은 곳은 좀 있어요?”
강서윤의 말에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아, 지금까지 몇 군데 있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영……."
"하…… 왜, 전설 등급 아이템을 준다고 해도 나서지 않겠데요?”
"예, 뭐, 죽기 싫다는 거죠. 이게 확실히 어떤 강력한 구심점이 있으면 사람들이 그걸 믿고 모일 텐데…… 하— 아무것도 없으니까, 일단은 지켜보겠다고 합니다, 다들.”
"음, 총대까지 메고 싶진 않다, 이건가……."
하긴, 웨이브는 보통 게이트와 차원이 달랐다.
그건,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극복한 적 없는 불가해의 허리케인이다.
누가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겠는가?
그러므로 '구심점’이라는 게 필요했다.
믿고 따를만한 누군가…….
'……그렇다면 아이템과 현금, 그 보상을 탐내는 이들이 은근슬쩍 뭉치기 시작할 거다.’
아직 그런 구심점이 되어줄 만한 인재를 찾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다.
도대체 어째서 그 넓은 서울 땅에 그런 인간 하나 없는 건지…….
“아! 그런데…… 딱 한 곳이 긍정적인 답을 내놓긴 했습니다. 심지어 저희가 소식을 전하기 전부터 이미 체계적으로 대응 작전을 펼치고 있었답니다.”
강서윤의 눈이 빛났다.
꿈도 희망도 없는 웨이브 존에서 일찌감치 대응에 나선 세력이라니, 그게 대체 누구란 말인가!
"오! 그게 어디죠? 길드인가요? 리더의 등급은요? 몇 명이나 모여있대요?”
그녀가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비상통신담당관의 표정에는 씁쓸함만이 감돌았다.
"그런데 그게…… AMT입니다. 남산 소재의 제3항마여단 1대대, 거기가 오늘 오전부터 특별 작전팀을 꾸려서 침식 요인 탐색 작전에 나섰답니다.”
"아......."
기대했지만, 그리 마음에 드는 소식은 아니었다.
‘하필이면 AMT…….'
특히나 제3항마여단 1대대라면 특수부대가 아니라, 병사를 중심으로 하는 부대였다.
즉 그리 유용한 전력이 아닐 것이라는 게, 그녀의 판단이었다.
그때, 누군가 그녀의 뒤로 다가왔다.
백색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였다.
"어? 기 대표, 여기는 무슨 일이에요?”
대한민국 3위 길드 ‘태산’의 수장이자, 대한민국 플레이어 랭킹 10위, 기백준이었다.
"긍정적인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이렇게 직접 왔습니다.”
“예?”
"때마침 저희 길드의 주요 공략 팀 하나가 흑석동에 열린 게이트를 공략 중이었습니다.
"아?”
“1시간 전, 공략을 마치고 나왔다는 연락이 도착했는데, 잠깐의 정비 이후 침식 요인 수색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A등급이 1명, B등급이 3명이 속해 있는 꽤 실력 있는 팀입니다.”
강서윤이 기대 어린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기백준이 싱긋 웃었다.
"그 친구들을 중심으로…… 플레이어들을 뭉치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터널 안으로 진입하기 직전, 이현욱이 장담하듯 말했다.
하지만 그와 동행하게 된 안민태는 솔직히 짧지 않은 싸움을 예상했다. 저 어두운 터널 안으로 들어가면, 높은 확률로 ‘보스 몬스터’와 마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뭐가 나올진 몰라도 분명, 엄청난 놈일 거다.’
일반 게이트도 아닌 무려 ‘웨이브’의 보스 몬스터를 금방 잡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물론 이현욱이라면 어떻게든 해낼 거라고 믿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게 당연해.’
안민태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미친……."
지금 그는, 놀라움에 겨워 혀를 내둘렀다.
그 대상은 새삼스럽지만, 이현욱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보스 몬스터인데—!’
그 이유는, 그의 손짓 몇 번에 보스 몬스터가 시뻘건 곤죽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한 10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이게 말이 되나?’
그래, 10분 전이었다.
이들이 터널을 나아가던 중, 길을 틀어막고 있는 1호선 전동차를 마주했을 때였다. 그때, 이현욱이 말하길, 보스 몬스터가 그 안에 둥지를 틀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 안에, 그것이 웅크리고 있었다.
끄에에에――!
보스 몬스터의 이름은 '헬 레트 뮤턴트’로 안민태의 기억상, 머리가 두 개나 달리고 등에는 뱀처럼 꿈틀거리는 촉수를 6개나 달고 있는, 불곰만 한 크기의 시궁쥐였다.
그 기괴한 모습에 모두가 순간 기가 질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현욱은 언제나 그렇듯,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쯧— 둥지를, 잘못 선택해도 너무 잘못 선택했군.”
그리고 역시나 언제나 그렇듯,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래, 그게 시작이었다.
이현욱은 전동차 안으로 수백 개의 쇠 구슬을 집어넣은 뒤, 연달아 ‘파쇄’를 일으켰다.
퍼—버—버—버—벅—!
그러자 쇳조각이 좁은 전동차 안에서 이리저리 튕기며 보스 몬스터를 사정없이 찔러댔다.
당연하게도 보스 몬스터는 그 안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전동차 안에 있던 쇠기둥들이 뱀처럼 움직이더니 보스 몬스터를 속박하기 시작했다!’
안민태는 똑똑히 보았다. 전동차 내부에 잔뜩 달린 스테인리스 손잡이—그 프레임들이 일제히 우그러지며 마치 쇠사슬처럼, 보스 몬스터의 몸 곳곳을 칭칭 옭아매는 것을…….
안민태는 몰랐지만, 그건 이현욱이 최근에 특성 개화한 ‘금속 변형’이었다.
단단한 스테인리스를 변형시켜서, 순간적으로 놈의 몸을 묶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깟 걸로 그 덩치의 움직임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단 한 번의 몸부림만으로도, 그것들이 뚝뚝 끊어져 버렸다.
하지만 그걸 모르고 있을 이현욱이 아니었다.
쿵—!
그는 즉시 리빙 아머 4기를 움직여, 놈이 나오지 못하게 뒷문을 틀어막았다.
이어서 마법사들에게 명령하여, 전동차와 터널 사이의 공간으로 ‘빙결 마법’을 쏘게 했다.
쩌저저저저――!
그 좁은 틈 사이가 얼음으로 가득 메워지며, 창문으로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즉, 보스 몬스터를 전동차 안에 완전히 가둔 듯 보였다.
그 직후, 이현욱은 전동차 내부의 금속에 힘을 집중했다.
미리 넣어둔 수백 개의 쇠 구슬이 ‘파쇄’되는 동시에 뾰족하게 ‘변형’되었다.
그것들이 보스 몬스터와 뒤엉킨 채, 요란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좁은 전동차 안이었기에, 단 한 조각도 피해낼 수 없었다.
콰―가―가―가―가―가―!
아무리 보스 몬스터일지라도 그런 미친 공격을 견뎌낼 수는 없었고,
창문에 피가 튀고 또 튀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살점이 날아와 턱— 하고 붙었다.
안민태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이게 무슨…… 믹서기도 아니고…….'
안민태의 감상은 정확했다.
전동차가 통째로 거대한 믹서기가 된 것처럼, 보스 몬스터를 가둔 채 갈기갈기 찢었다.
심지어 이현욱은 박준모에게 지시하여, 전동차 안으로 ‘전류’를 모조리 퍼붓게 했는데…… 그건, 발버둥 치는 놈을 기절시켜서 조금 더 쉽게 갈아버리려는 것이었다.
‘악마다! 역시 최고의 악마는 인간이야!’
그렇게, 보스 몬스터는 끝내 전동차 밖으로 탈출하지 못한 채,
둥지를 잘못 선택한 죄로 인해 약 5분여간, 갈리고 또 갈렸다.
콰―가―가―가―가―가―!
놈의 움직임이 멎은 것 같았음에도, 이현욱은 멈추지 않고 그 ‘믹서’를 돌려댔다.
거기까지가 딱 10분이었다.
그 짧은 시간 만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한때 보스 몬스터였던 것’이 탄생한 것이었다.
“욱—!”
"젠장…… 무슨 분쇄육 같습니다.”
그 끔찍한 꼴을 바라보고 있자니, 방독면을 쓰고 있어도 구역질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니 대체, 어떻게 이렇게…… 그래도 웨이브의 보스 몬스터인데……."
안민태는 넋이 나간 채 그렇게 물었으나 이현욱은 별거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레이드란, 상성을 제대로만 이용한다면 때로는 이상할 정도로 쉬워지는 법이야.”
사실은, 애초에 ‘헬 레트 뮤턴트’는 그리 강력한 보스 몬스터가 아니었다.
‘놈은 저 뒤에 있는 게이트의 파수꾼에 불과하다.’
헬 레트라는 몬스터의 위험성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압도적인 ‘숫자’에 집중된 만큼, 보스 몬스터는 게이트를 지키는 수준 정도로만 설계된 것으로, 일종의 밸런스였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보기에는 엄청나게 압도적인 전투처럼 보일 터였다.
"자, 내부로 들어간다.”
"윽......."
이현욱을 선두로 하여 방금까지 믹서기로 활용되던 전동차로 진입했다.
끈적끈적한 핏물이 이곳저곳에서 튀어 젤리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젠장……."
그리고 모든 곳에 쇳조각이 처박혀 있어서, 잘못했다간 옷과 피부가 찢어질 판이었다.
그런데 어느 살덩이 위에, 한 자루의 검이 처박혀 있었다. 구름의 검이었다.
- 구름의 검에 알 수 없는 기운이 차오릅니다. (100%)
‘다행히도, 심장에 잘 박혔군.’
저놈의 피를 흡수함으로써 마침내 그 수치가 100%에 도달했다.
이현욱이 그걸 회수하는 순간, 눈앞에 또 다른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축하합니다! 구름의 검의 잠재력이 해방되어 ‘운수암수’로 격상됩니다!
‘잠재력 해방, 드디어 됐다.’
이현욱은 구름의 검, 아니 ‘운수암수’의 정보를 확인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운사암수(雲師暗手)
- 효과 : 물을 흡수하여 ‘물안개’ 또는 ‘전격’를 방출한다.
기존의 ‘물안개 방출’ 스킬은 여전히 존재했으며 ‘전격 방출’이 새로이 추가되었다.
우우우우――
그리고 물결무늬 모양의 검신 위로 웬 고대 한자 같은 게 새겨졌다.
그것들이 순간 백색의 빛을 발하더니—
파지지지――
구름의 검의 칼날 전체에 전류가 맴돌았다.
‘이제는 전격 공격이 필요할 때, 박준모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겠어.’
이 검을 처음 쥘 때 생각했던 것처럼, 강철과 전기의 조합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제대로 사용하려면 몇 번 연습을 해봐야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잘 들어라, 보스 몬스터를 잡았는데 ‘월드 스톤’이 나오지 않았다.”
“……예?”
"그런 경우도 있습니까?”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월드 스톤’이 나온다.
그리고 그걸 파괴하면 게이트가 닫힌다.
이게 던전 공략의 기본 공식이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침식 요인’이다. 계속 전진한다.”
그들은 전동차를 통과하여 반대편으로 나와서 다시금 어둠 속으로 전진했다.
목표물이 멀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았으니, 지체할 틈이 없었다.
그때, 이현욱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음…… 잠깐만, 여기 벽면 좀 비춰 봐.”
박준모가 손전등을 들어 올려, 이현욱이 가리킨 곳을 비췄다.
콘크리트 터널의 벽면, 갈라진 틈 사이, 검은색의 무언가가 박혀 있었다.
"어? 웬 결정체 같습니다."
이현욱은 단검을 꺼내어 그것을 긁어냈다.
“……그게 뭡니까?”
"던전 철광석이다.”
- 던전 철광석(3등급)을 획득하셨습니다.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재료 아이템이었다.
이걸 대장장이 플레이어가 재련하면 던전 강(Dungeon Steel)으로 만들 수 있었다.
"예? 그게 대체 여기에서 자라는 겁니까?”
"여기가 ‘던전화’ 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 그렇다는 건……."
"쉽게 말해서, 침식이 진행 중이라는 뜻이야.”
침식은 5일 내내 아주 빠르게 진행되며, 마지막 날에 폭발적인 ‘대격변(大激變)’이 일어난다. 정말로 땅이 뒤집히고 기후가 급변하여, 주변 지역에 지진과 폭풍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 현상의 전조가 이렇게, 작은 부분에서부터 움트고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당장 우리한테는 좋은 징조다. 침식 요인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뜻이야.”
일행은 전진 속도를 조금 더 높였다.
그리고 약 5분 정도 더 나아갔을 때…….
"저기 보십시오! 게이트입니다!”
마침내, 보라색 일렁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주변에 수십 마리의 헬 레트가 모여있었지만,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었고, 일행은 그 주변을 수색했다. 그리고 게이트 너머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여기, 바닥에 무언가 있습니다!”
붉은색 돌이 철로 틈 사이, 콘크리트 바닥 위에 박혀 있었는데, 시뻘건 핏줄이 뻗어 나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씨앗이 마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그리고 이렇게 주기적인 진동이 울렸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마치 심장 같았다.
"월드 스톤입니다!”
안민태가 그렇게 말했고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침식 요인이다.”
"헉! 그렇습니까?”
“안민태, 훈련 말고 공부도 좀 해.”
이렇듯 ‘침식 요인’의 정체는 바로 ‘월드 스톤’이었다.
월드 스톤이 지구의 지표면에 뿌리를 내려 대대적인 지형 변화를 일으키는 것, 그게 바로 ‘침식’이었으며,
웨이브가 아니더라도 오래 방치된 월드 스톤이 침식 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어쨌든—
‘좋아, 이걸로 하나 막았다.’
이현욱은 페일 노트를 쏘아 보내, 월드 스톤을 강타했다.
째—앵—!
굉음과 함께, 그 표면에 균열이 일어나더니 퍽— 하고 터져버렸다.
그다지 대단한 임펙트는 없었기에, 모두가 별다른 반응 없이 멍하니 서 있었다.
"....... "
이게 성공을 한긴 한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눈앞에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월드 스톤(웨이브)’를 파괴하셨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됐다! 됐어! 우리가 해냈어!”
"와아아—!”
15명의 수색팀이 일제히 환호했다.
역사상 단 1번 성공한 업적을, 이들이 해낸 것이었다.
그건 형언할수 없는 성취감일 터였다.
이현욱 역시 미소를 지었는데, 그의 미소에는 다른 쾌감이 담겨 있었다.
‘대단한 업적뿐만 아니라, 550억과 영웅 등급 아이템까지 손에 넣은 셈이다.’
이현욱 역시 이번 4차 웨이브에 ‘상금’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쯤, 강서윤이 난리를 치고 있을 거다. 가디언 애들을 들들 볶고 있겠지…….'
그리하여 전생에도 똑같은 금액이 걸렸지만, 겨우 1개 제거되는 데 그쳤다.
보상 걸린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전부 다 먹어주마.’
물론 강철 중대 인원 40명이 함께 해낸 일이기에 어느 정도는 분배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현욱의 활약상이 압도적인 만큼, 그에게 돌아오는 몫이 클 터였다.
‘절반은 자산으로 굴리고, 나머지 절반은 철수 형 길드에 투자한다.’
이현욱은 박철수의 <희망 길드>를 키워내어, 자신의 조직으로 키워낼 생각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후우우우――
게이트가 폐쇄되기 시작하여 이 터널에 기압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게이트, 그 보라색의 일렁임이 종이처럼 구겨지며, 이내 한 점으로 뭉쳐졌다.
‘……드디어 나온다.’
이현욱은 그곳을 바라보았다.
웨이브가 닫힘과 동시에, 거대한 무언가가 형태를 드러냈다.
그것은 그대로 중력 방향으로 떨어졌고,
쩌—억—!
콘크리트에 처박히며, 굉음을 내었다.
그 난데없는 등장에, 신이 나 있던 이들이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박준모가 랜턴을 들어 올려 그 물건을 비췄다.
“저게 대체......."
모두가 그 물건을 유심히 살폈다.
"검 같은데, 아닙니까?”
"어…… 검 같긴 한데, 저게 검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그러나 이들의 반응처럼 정상적인 모양새는 아니었다.
"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큽니다.”
그 말대로, 그 검은 기형적이었다.
사람이 쥐고 휘두르는 무기라고 하기에는, 사람보다 더 컸다.
언뜻 보더라도 검신의 세로 길이는 2m가 넘는 듯했고,
가로 넓이 역시 성인 남자의 몸통보다 더 컸다.
자루부터 칼끝까지 짙은 흑색외, 거대한 검…….
모두가 괴상한 물건을 경계할 때, 이현욱이 그 검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뻗어, 자루를 움켜쥐었다.
- 모글레이를 획득하셨습니다.
‘오랜만이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모글레이 (영웅)
- 효과
1) 질량 해방(1~5):봉인된 ‘질량’를 해방하며 사용자에게 ‘강골(强骨)’을 부여합니다.
2) 쇼크웨이브 : 강력한 충격파를 발생시킵니다. 이 파괴력 1번 질량 해방과 비례합니다.
"저…… 이현욱 병장님, 그거 쥐고 휘두를 수는 있는 겁니까?”
안민태가 물었다.
그래, 언뜻 봐도 수십 킬로그램은 넘을 듯했다. 절대 쥐고 휘두르는 무기에 적합하지 않은 형태였는데, 설마 고등급의 바바리안 플레이어일지라도 사용하기 벅찰 정도였다.
'그래서 레드 버서커가 괴물이었다.’
이런 미친 무기를 자유자재로 휘둘렀던 전사 계열의 빌런, 레드 버서커……
놈은 별다른 스킬 없이, 이것만을 휘둘러서 8층짜리 대형 상가를 무너뜨린 적이 있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파괴력이었으나…….
솔직히, 놈을 쓰러뜨리고 두 번째 주인이 된 이현욱이 사용했을 때가 훨씬 강력했다.
왜냐하면…….
"꼭, 쥐고 휘두르지 않아도 돼.”
이현욱은 모글레이의 자루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한 걸음 물러서서, 왼손의 손가락만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러자.......
쩌저저--
그것이, 콘크리트를 비집고, 허공으로 천천히 솟아났다.
그 거대한 몸체가, 허공에 우뚝 섰다.
‘55kg.......'
질량이 봉인되어 질량이 최대한 감소한 상태임에도, 무려 55kg이나 되었다.
이렇듯, 이현욱이 그 누구보다 이걸 잘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 엄청난 질량을 근력으로 감당하지 않더라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손으로 휘두르는 것보다, 자유롭고, 효과적이고, 강력하다.
‘지금은 1단계 무게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앞으로 질량 해방을 하면, 훨씬 강력해진다.’
모글레이의 스킬 중 하나인 ‘질량 해방’
그건 총 5단계로 구분되며, 전생의 이현욱은 3단계까지 해방했었다.
그 당시 모글레이의 중량은 무려 2t에 달했다.
이현욱은 그 2t짜리 대검을, 수천 피트 상공에서 떨어뜨려서,
그 끝에 모든 금속 통제력을 부여한 채,
수원 상공을 날고 있던 블랙 드래곤의 머리통에 박아넣었던—
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억했다.
"......일이, 쉬워지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