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45화 (45/221)

45화.  < 서울, 4차 웨이브의 도시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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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15분, 강철 중대는 동대문역 1 호선 앞에 도착했다.

앞서 전투를 벌였던 지점에서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지만, 장충동 주민 센터에 고립된 시민, 무려 814명을 인솔하여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몬스터가 나타나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사이렌 좀비를 건드렸을 때, 일대의 좀비가 깡그리 몰려왔고, 그걸 다 해치운 덕이었다.

- 칙— 이 도로 중심에 민간인들 줄 세우고, 골목 입구를 차량으로 막는다. 이상—

혹시 모를 습격으로부터 민간인을 최우선으로 보호할 수 있게 모든 골목을 차단했다.

그 주변을 AMT 병력과 이정준 일행에 감싸듯 위치하여, 최대한 철저하게 보호했다.

한편 이현욱은 동대문역 쉘터 입구 부근을 바라보고 있었다. 쉘터라는 게 보통 지하철 안에 조성된 만큼,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지하철 출입구일 뿐이었다.

"이정준 씨, 저쪽 출구, 맞습니까?”

"예, 거기로 내려가면 바로 쉘터 입구와 이어집니다.”

이곳 동대문역 쉘터는 8천 명의 시민이 3일간 버틸 수 있는 규모였으며, 지하 역사의 출입구를 모두 봉쇄하여 역 전체를 이용한다면 2일간 1만 2천 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다.

이정준 일행이 나왔을 때 2천 명 정도가 모여 있다고 했으니, 아직은 자리가 넉넉했다.

“안민태, 애들 둘 데리고 저기 출구 확인해 봐.”

"예, 알겠습니다. …… 전부 들었지? 가자!”

동대문역의 모든 출입구는 마나 방어막으로 막혀 있었다.

만약, 문을 열어줄 의사가 있다면 그곳에 사람이 나와 있을 터였다.

이내 안민태 쪽에서 무전이 왔는데, 역시나 아무도 나와 있지 않다고 했다.

‘열어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그때, 이현욱에게 마법사 플레이어 2명—통신병이 다가왔다.

그들은 ‘마나 메신저’를 가동할 준비를 했다.

"그럼, 마나 교신 시작하겠습니다.”

마나를 통하여 근처에 있는 마나 메신저로 음성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동대문 쉘터에도 복수의 마나 메신저가 구비되어 있을 터였다.

칙—

"아아, 우리는 AMT입니다. 현재 다수의 민간인을 보호하고 있으며 쉘터 진입을 희망합니다. 근처에 위협 요소는 없습니다. 동대문역 쉘터는 지금 즉시 응답 바랍니다. 이상—”

통신병이 그렇게 메시지를 보냈지만......응답이 없었다.

"다시 해 봐.”

그러나 그렇게 몇 번을 해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화할 생각조차 없다는 건가…… 이정준 말대로 고집이 상당하군.’

그러자 이정준이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분명 안에 있을 겁니다. 아마 우리가 오는 걸 보고 일부러 무시하는 게 분명합니다.”

이정준은 그 사람들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그럴 만도 했다.

자신과 동료들은 목숨을 걸고 타인을 구하러 나왔건만, 저 안에 있는 것들은, 제 목숨 지키자고 다른 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무던히 혐오스러울 수밖에…….

"통신병, 마나 메신저 이리 줘봐.”

"예, 여기 있습니다!”

이현욱은 직접, 조금 다른 톤은 메시지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아아, AMT 작전 지휘관이다. 응답하지 않으면, 민간인의 안전 확보를 위하여 마법 방어막을 강제 돌파 후 진입할 예정이다. 5분, 5분 뒤에 강제 돌파 시작한다. 이상—”

통신병이 보낸 메시지와는 그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반말, 과시, 통보까지,

그래, 그의 안에는 분명 협박이 담겨 있었다.

이정준은 그런 모습을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이현욱, 이 남자…… 절대로 굽히지 않을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그쪽 역시, 웬만해서는 굽히지 않는다.

‘반드시, 충돌한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5분은 금방 지나갔다.

그때까지도 응답은 오지 않았다.

“……5분 지났다. 리빙 아머 꺼내고 에테르 드릴 준비해.

이현욱의 말에, 리빙 아머 4대가 몸을 작동했고,

이어서 일병 3명이 트럭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에테르 드릴, 그건 마법 방어막을 뚫는데 특화된 아주 비싼 마법 공학 아이템이었다.

대대에도 딱 1 대밖에 없지만, 강철 중대가 이번 작전을 위하여 들고 나왔다.

“……어, 진짜 뚫게요?”

1소대장, 김세희 병장이 그렇게 물었다.

“예, 뚫습니다. 후방에서 탱커들 지휘해서 진입 대기 해주세요.”

"그런데…… 굳이 그래야 해요? 여기서 이 길 따라서 조금만 더 가면 또 다른 쉘터인데, 저쪽이 고집스럽게 버티는 건 알겠는데, 여기에서 시간 할애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소대장으로서 의견을 냈고, 그 말은 분명히 일리가 있었다.

여기서 구태여 갈등을 만들며 할애하는 시간은 낭비였다.

이들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고작 4일이었으니, 이러고 있을 틈이 없었다.

"그 말도 맞지만, 근처에 좀비 트롤이 한 마리 더 있어요. 만약 그놈이 등장하면, 일이 커질 겁니다. 이제는 민간인들도 데리고 있으니까요.”

"음…… 그런가……."

이현욱의 설명도 그럴듯했지만, 그의 진짜 의도는 역시나 따로 있었다.

‘바로 저 아래…… 첫 번째 침식 요인이 있다.’

지구의 땅을 이계의 지형으로 바꾸는 현상인 침식, 그리고 침식이 시작되는 지점을 ‘침식 요인’이라고 하는데, 그 4개 중 하나가 바로 이 땅 아래에서 움트고 있었다.

‘앞으로 각일 뒤에, 이 땅이 완전히 바뀌고 말고 동대문역은 미궁 입구로 변한다.’

미궁(述宮), 침식 지역에서 종종 발견되는 ‘대규모 던전’이다.

즉, 게이트 안이 아니라 현실에 생성된 던전으로, 몬스터를 끊임없이 생성해낸다.

그것들이 서울의 복잡한 지하철 노선을 타고 퍼져나가며, 서울 곳곳을 유린한다.

그게, 곧 펼쳐질 서울의 미래였다.

‘훗날 육군 신성기사단이 공략할 때까지, 이곳에서 발생한 몬스터만 해도 백만 마리가 넘었고, 이로 인한 희생자만 수십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현욱은 오늘, 병력을 이끌고, 저 어두운 지하로 내려가, 지옥의 씨앗을 불태워 버림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그 재앙을 조기에 종식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찾을 건 침식 요인뿐만이 아니다.’

침식 요인을 제거하면, 당연하게도 특별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현욱은 4차 웨이브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 목록을 기억했다.

‘내가 애용했던 두 번째 무기가, 바로 이곳에 잠들어 있다.’

이때 당시는 빌런의 손에 들어가지만, 훗날 이현욱이 그 빌런을 쓰러뜨리고 손에 넣는다.

그리고 그건, 이현욱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능력을 가장 극대화했던 무기였다.

트리스탄 경의 ‘페일노트’가 보조 용도의 ‘휴대용 병기’라면, 저 아래 잠들어 있는 그 ‘검’은 크기부터가 어마어마하게 큰 사실상 ‘주 병기’……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반드시 확보해야만 했다.

‘그걸 먼저 얻는다면, 나머지 침식 요인에 대응하기가 한층 용이해질 거다.’

그때였다.

- 칙— 5번 출구, 누군가 나옵니다!

안민태 쪽의 무전이었다.

이현욱의 무전이 통한 건지, 반응이 온 것이었다.

“……그래, 내가 지금 간다.”

이현욱은 김세희, 이정준과 함께 출구 쪽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몇 명이 쉘터 밖으로 나와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웬 덩치 큰 남자가 안민태에게 무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아니!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묻는 거잖아, 지금!”

"아, 그게, 저랑 이렇게 이야기하실 게 아니라, 곧 지휘관 올……."

"그 지휘관이 누군데, 말해 봐! 아니! 내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니까?”

그 남자는 방패와 대검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플레이어였다.

다만, 유니폼을 입지 않고 사복 차림인 걸 보아하니 쉘터 경비 병력은 아닌 듯했다.

그들이 누군지는 이정준이 말해주었다.

"저 사람, 저희 길드의 바지 마스터이자, 그 국회의원의 경호실장인 공익태입니다. 아, 몇 시간 전에 해고당했으니까 이제 제 마스터는 아니겠네요…… 씁—”

그 남자, 공익태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이정준 일행을 발견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그 눈동자에 독기가 그득했다. 한 성질 하는 인간이라는 게 액면에서부터 드러났다.

"이정준 씨는 뒤에 계세요. 얼굴 마주해봤자 좋은 소리 안 나올 표정이네요.”

"예, 물불 안 가리고 지랄부터 할 놈입니다. 재수 없는 놈……."

이현욱이 가까이 다가가자, 공익태가 팔짱을 끼며 이쪽을 쳐다보았다.

“AMT 작전 지휘관입니다. 쉘터 경비 담당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공익태는 대답 대신 이현욱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더니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야, 넌 계급이 뭐냐?”

응? 이 건방진 태도는 대체…….

이현욱은 불쾌함을 숨기며,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공익태가 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너무 무게 잡지 마. 나도 한때 AMT 장교여서 묻는 거야. 한 3년 전에 대위 달고 전역했으니까, 내가 까마득한 선배 아니겠어? 통성명 좀 하고 볼일 보자는 건데, 왜? 기분 나빠?”

이렇게 병신 같은 소리를 해대는 순간, 이현욱은 오래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걸 느꼈다.

"지금 당장, 쉘터 담당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현욱은 이들이 올라온 지하철 지하 출입구, 계단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곳, 지하철역 입구를 덩치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야야, 이 친구야, 내가 방금 물었잖아. 너 계급이 뭐냐니까? 한 중위쯤 되려나? 그런데 중위치고는 너무 많은 병력을 끌고 다니는 것 같은데, 설마 상급 지휘관은 다 죽었냐?”

"지금 천 명이 넘는 민간인이 위험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 규정대로 일단 쉘터 입구를 열어서 민간인들을 피신할 수 있게 조치하시기 바랍니다.”

"하…… 규정, 그래 규정…… 미치겠네……."

남자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실실 웃었다.

"야 이 젊은 친구야, 웨이브라고 알아? 그 있잖아, 미국 캘리포니아를 하루아침에 날려버린 진짜 무시무시한 재앙 말이야. 응? 알아? 아— 너무 어릴 때라서 모르나?”

"지금 그런 게 벌어지고 있는데, 규정? 그딴 게 대체 뭐라고 시발, 들이밀고 있어? 욕설 섞인 겁박, 그러나 이현욱은 눈 하나 깜짝 안했다.

"공공 쉘터 독점 행위는 중범죄입니다. 일차 경고하겠습니다. 쉘터 문 여세요.”

경고, 그 말에 공익태의 가식적인 미소 위로 균열이 번지기 시작했다.

“……경고? 야, 너 지금 누구한테 그딴 말 뱉고 있는 건지 알고 씨불이는 거냐?”

그가 위협적으로 말했지만, 이현욱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걸음 다가갔다.

그렇게 틈이 좁혀지자, 두 그룹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안민태가 방패를 꽉 움켜쥐었고, 공익태의 부하들도 무기를 살짝 들어 올렸다.

당장이라도 부딪칠 기세였다.

"......."

잠깐의 정적 후, 이현욱이 입을 열었다.

"두 번째로 경고하겠습니다. 당장, 비키십시오.”

공익태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야…… 못 비키겠다면 어쩔 건데? 시발, 마나 메신저로 뭐? 뚫고 들어오겠다고? 대놓고 협박하길래 꼴 받아서 나와봤더니, 뭔 별것도 아닌 것들이 무게 잡고 서 있냐?”

"......."

“내가 그래도 AMT 중대장까지 했던 사람인데 너희 수준을 모르겠냐? 네 까짓것이 바글바글 몰려와서 백날 두들겨 댄다고 쉘터를 뚫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너보다 더 잘아!”

거침없이 쏟아지는 막말에, 이곳에 있는 이들의 심장이 더욱 빨리 뛰었다.

마주 보고 늘어선 양측의 플레이어들이 서로를 노려본다.

마치 각자 도맡을 상대를 정하는 것처럼…….

그런데 그때, 이현욱은 이 험악한 분위기와 걸맞지 않게, 싱긋 웃어 보였다.

"자, 경고 두 번, 다 끝났다.”

“……뭐?”

"규정상, 이제부터 사살할 수 있다는 거, 알고 있지?”

"뭐 이 씨—컥—!”

다음 순간, 이현욱의 오른팔이 공익태의 목을 움켜쥐었고,

그대로 들어 올리더니, 공중에서 뒤집어서 바닥에 메다꽃아 버렸다.

뻑—

—순식간이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현욱의 양쪽 팔엔 ‘강체화’가 걸려 있었다.

“……이런, 젠장!”

공익태의 뒤에 서 있던 5명의 플레이어가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 순간, 돌풍이 불더니, 누군가 그들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그리고 총 4개의 단검이 궁수 플레이어 둘의 목덜미에 얹혀 있었다.

김세희, 그리고 그녀가 부리는 바람의 정령들이 단검을 조종하는 것이었다.

"조심해, 오늘 아침에 열심히 갈아둬서 살짝만 눌러도 새우 내장 뽑아내듯, 식도랑 기도를 뽑아낼 수 있다. 혹시 못 믿겠다면 한 명으로 먼저 시범 보여줄 수도 있고—”

그렇게 팝은 순간에, 공익태 패거리는 제압되었고,

이현욱은 공익태의 허벅지를 발로 짓눌러서 못 움직이게 했다.

"끄으으—"

발에 강체화를 건 채로 금속 통제력을 실었기에 이현욱의 몸무게 이상의 압박이 가해졌다.

“게이트 발생 상황에서 ‘통제 권한자’의 정당한 지시를 위반할 때, 통제 권한자가 할 수 있는 즉결 처분은 두 가지다. 체포 혹은 사살—"

"그건 내가 결정하지만, 네가 다음 말은 어떻게 내뱉는지에 따라서 많이 달라질 거야.”

이현욱은 언제나 침착한 편이었지만, 이런 유형의 인간을 정말로 싫어했다.

이런 놈들이 활개를 칠 때마다 수많은 목숨이 사라지는 걸, 숱하게 보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면에서 불필요한 존재다.’

지난 삶에서 목격한 마지막 장면은 서울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이었다.

4차 웨이브로부터 겨우 복구해낸 그 도시가,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이제는 그런 일이 없어야만 했다.

“윽, 야! 너, 너…… 내가 모시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나중에 이거 감당할 수 있겠어?"

그 수준 낮은 겁박에, 이현욱은 피식 웃었다.

"네가 방금 말했듯, 지금은 웨이브야. 누가, 어디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끅......."

“그리고 방금 그거, 별로 좋지 않은 대답이었다는 거, 알고 있지?”

그 말에 공익태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의 말처럼, 웨이브 존은 사실상 인류의 감시 체계와 치안이 정지된 상황이었다.

살인이 벌어지더라도 이 난리 속에서 몬스터에게 죽은 것으로 처리될 것이었다.

아니, 아마 시체도 못 찾겠지…….

절그럭— 절그럭—

그리고 어느새 이현욱의 등 뒤로 거대한 갑옷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4대의 리빙 아머가 3m에 달하는 창을 든 채, 그의 등 뒤에 우뚝 섰다.

그것들이 마치 사형집행인이 된 것처럼 바닥에 엎어진 공익태를 바라보았다.

그 시퍼런 안광을 마주 보자 몸이 절로,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꿀꺽—

그때였다.

"……어어, 잠시만요!”

누군가 그렇게 소리치며, 지하 출입구의 계단을 허둥지둥 올라왔다.

깔끔하게 넘긴 머리, 잘 다려진 양복, 금색 배지까지, 딱 봐도 높으신 분이었다.

그가 양손을 내저으며 이현욱을 막아섰다.

"아이고, 이거 무슨 일인지 제가 잘 모르겠는데, 이러실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 국민끼리 힘을 합쳐도 모자라지 않겠습니까?”

"......."

"자자, 저는 국회의원, 박길상입니다.”

그래, 이정준에 의하면 이 남자가 이 그룹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다.

그러므로 이 모든 소동은 이 남자의 지시로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안에서 지켜보고 안 되겠다 싶으니까, 노선을 바꿨군.’

그가 이현욱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와서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지휘관님, 이 친구가 제 아랫사람인데, 어떻게 그만 일으켜줘도 되겠습니까?”

이현욱은 공익태를 짓누르고 있던 발을 치웠다.

그러자 박길상이 공익태를 일으켜 세우며, 다그치기 시작했다.

"내 참, 이 친구야! 내가 나가서 잘 이야기해보라니까, 이게 뭐야는 거야?”

"예? 의, 의원님……."

"쯧쯧, 바보 같은 구석이 있는 걸 알았지만, 이럴 줄은 몰랐어! 어이구……."

공익태는 벙쪄버렸다.

박길상은 이현욱을 바라보며 다시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자자, 곧 밤이 올 겁니다. 어서, 시민들을 쉘터 안으로 피신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치,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는 태도였다.

***

동대문역 쉘터의 내부는 평범한 지하철역과 같았다. 그러나 게이트 발생 시 대피 안내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면, 압도적인 크기의 철문을 마주하게 된다.

‘다양한 마법 합금으로 만들어진 15cm 두께의 방호문이다.’

그곳이 바로 ‘쉘터(Shelter)’였다.

8년 전 민관 합작의 대대적인 ‘쉘터 조성 사업’으로 만들어진, 마법의 공간,

웬만한 몬스터가 두드려대더라도, 마나 공급만 충분하다면 버틸 수 있는 방공호였다.

“자, 쉘터 안쪽에 아직 자리가 많습니다. 줄을 서서 천천히 입장하시면 됩니다”

박길상은 민간인들을 인도하며, 구태여 그런 쓸데없는 말을 했다.

아무리 봐도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어필하는 중이었다.

하편, 이현욱은 경찰처럼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있는 ‘역 경비대’와 대화를 나누었다.

평시에는 역을 지키고, 게이트 발생 시에는 쉘터를 관리하는 이들이었다.

"저, 몇 가지 확인하겠습니다. 환풍구를 포함한 모든 출입구는 잘 봉쇄되어 있습니까?”

"예, 병력은 따로 배치하지 못하고 있지만, 마법 방어막은 잘 작동 중입니다.”

"혹시 모르니, 저희가 다시 한번 점검해도 되겠습니까?”

"아, 예예, 물론입니다. 저희야 감사할 따름이죠. 음, 그리고……."

경비대장은 박길상의 눈치를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쉘터 문을 열지 않은 건, 절대로 저희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예, 무슨 말인지 압니다.”

안 봐도 뻔한 그림이었다. 황금 배지의 압박에 못 이겼을 것이었다.

이현욱은 김세희와 안민태에게 지시하여 역 곳곳을 살피도록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쉘터 안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훑었다.

왜냐하면.......

'이 안에, 빌런이 하나 있다.’

배교자(背敎者)

‘그놈이 바로 이곳에서 엄청나게 성장한다.’

예정대로라면, 이 쉘터로 피신한 민간인은 전멸하고 만다.

배교자, 그 빌런 놈이 이 지하에서 움트고 있는 침식 요인의 먹잇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빌런들은 웨이브 존 곳곳에 섞여서 서울 침식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현욱이 한 사람, 한 사람 훑고 있을 때…….

웅ㅡ

갑자기 웬 진동이 느껴졌다.

안 주머니였다.

‘뭐지?’

그의 안주머니 안에는 2개의 아이템이 들어 있었다.

서울역 언럭키 이벤트 때 빌런 퀘스트를 방해하고 얻은 ‘아카식 병기창의 2번 열쇠’ 그리고 방금 좀비 트롤을 잡고 ‘비밀의 열쇠(이벤트)’였다.

그중에서 진동하고 있는 건 조금 더 큰 크기의 ‘비밀의 열쇠(이벤트)’였다.

이 진동의 의미는……

‘그래, 힌트다.’

이 열쇠로 열 수 있는 ‘보물 상자’가 가까이에 있다는 뜻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이 안에서 그 ‘주력 병기’ 말고도 한 가지를 더 얻을 수 있을 듯했다.

이현욱은 조금씩 움직이며 진동이 강해지는 지점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진동의 패턴이 이상하게 바뀌는 지점을 찾아냈다.

‘여기다.’

그건, 물품 보관함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비밀의 열쇠에 손을 얹으니, 그중 하나가 금빛으로 보였다.

- 보물 상자(이벤트)를 발견하셨습니다!

‘지옥 속에서 행운을 발견했군.’

그것도, 절대 작지 않은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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