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44화 (44/221)

44화.  < 서울, 4차 웨이브의 도시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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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계룡대 <국가게이트대응위원회 통합지휘센터>

그곳에 대한민국을 좌우하는 인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대 길드의 대표자들과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었다.

다만, 대다수가 마나 크리스털이 영사하는 홀로그램으로, 사실상 원격 회의였으며, 안건은 당연하게도 서울역 반경 10km 지역의 폐쇄 및 침식 진행-

즉, 4차 웨이브였다.

"흠, 이것 참…… 탁상공론일뿐이군요.”

대한민국 최고라는 이들이 모였건만, 현 사태에 대한 대응책은 묘연하기만 했다.

"맞습니다. 이렇게 모여서 시간 낭비해봤자 달라질 게 뭐 있겠습니까?"

"에, 솔직히 이제 인정해야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너무나 무책임하고 무능해 보이는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정말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웨이브 존은 서울역 언럭키 이벤트 때처럼, 입장 ‘조건’이 있는 게 아니었다.

전면 출입 불가- 즉, 아무도 들어가고 나올 수 없다.

"심지어 내부 상황조차 제대로 전해 들을 수 없으니 원……."

상급 마법사 간의 ‘정신 연결’로 통신을 주고받을 수 있긴 하다만, 역시 상당히 제한적이었고, 고작해야 30분에 한 번꼴로 교신이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자자, 그러니까, 우리는 발 빠르게 웨이브 이후의 세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심지어 이렇게, 아예 적극적인 대응을 포기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웨이브 존 밖에서는 힘을 쓸 도리가 없으니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신경을 쓰지 않고, 5일 뒤 출입 제한이 풀릴 때를 기다리며 ‘사후 대책’에 힘을 쏟자는 것이었다.

"잠시만요……."

물론, 모두가 그렇게 무심하게 넘어가는 건 아니었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여자가 반론을 제기하며 나섰다.

"지금 그럼, 웨이브 존에 있는 백만 명이 넘는 시민들을 그냥 방치하겠다는 건가요?”

그녀는 대한민국 플레이어 랭킹 4위, 강서윤이었다.

"그리고 침식 이후를 대비한다니, 하- 침식된 도시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는 분들이 지금 그런 말을 합니까? 웨이브 존뿐만 아니라 서울 전역, 아니, 수도권 전체를 잃을 수도 있는 초유의 사태입니다, 지금! 침식이 안 일어나게 막을 생각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지만, 좌중의 반응은 떨떠름하기만 했다.

“이봐요, 강 대표, 누가 서울을 구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방법이 있어야죠.”

"맞습니다. 병력 투입은커녕, 안에 있는 병력과 교신도 어려운 판국에 무슨……."

"그렇고말고요.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건 5일 뒤고, 그때를 준비하는 게 훨씬 합리적인 전략이죠. 서울을 구하는 게 아니라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요.”

각개의 항변에, 강서윤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시발, 그렇게 합리화하는 건 쉽지…… 그래도 그냥 손 놓는 게 말이 되냐고……."

"-거, 지금 뭐라고요!”

강서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는 홀로그램이 아니라 실제로 이 회의장 안에 있었다.

"저,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

"여러분, 웨이브 존 안에 연락이 닿는 길드원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 플레이들, 한 대 뭉쳐서 하나의 힘으로 대응하면 그래도 작지 않은 힘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

“혹시 웨이브 존에 있는 길드원 숫자 파악하고, 대응 지시하신 길드 마스터님 계십니까?”

"......."

"......예, 없겠죠. 그래도 한 명도 없는 건 좀 그렇네요.”

"......."

"길드라는 것들이 그간 제 밥그릇만 챙기면서 서로 견제하기나 했으니, 이럴 때조차 합이 안 맞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길드원들한테 힘을 합쳐서 대응하라고 지시해야 합니다!”

그녀가 역설했지만, 여전히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하- 강 대표, 웨이브가 보통 일도 아니고, 우리가 지시한다고 넙죽 예, 하고 죽으러 나갈 것 같아요? 강 대표도 길드 운영하면서 왜 그걸 모르는지, 나는 이해가 안 가네?”

"맞아요. 누군가는 정의감으로 나설지라도, 대다수가 조용히 숨어 있을 거예요.”

이 시대의 플레이어란 최고의 갑이었으며, 그렇기에 사실상 프리랜서였다.

길드에 속해 있긴 하다만, 아쉬울 게 없다면 길드의 명령을 고분고분하게 따를 필요가 없었다. 등급만 높다면 언제든지 다른 길드로 옮겨서 잘 먹고 잘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상 나가서 장렬하게 산화하라는 명령을, 과연 얼마나 따르겠는가?

강서윤이 책상을 쾅, 내리쳤다.

"인간 된 도리로 나서지 않는다면, 시발, 꼴리게 해서라도 나서게 만들어야겠네요!”

"-뭐, 뭐요?”

"좋아요, 우리 즈믄나래 길드에서, 아이템을 보상으로 걸겠습니다.”

모두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이었다.

"웨이브 존 안에 있는 플레이어가 침식 요인을 하나 제거할 때마다 ‘영웅 등급’ 아이템 하나를, 그리고 가장 활약하는 플레이어에게는 ‘전설 등급’ 아이템 하나를 지급하겠습니다.”

보상을 걸어서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전설이라니…….

그 단어가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오자 많은 좌중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예, 당신들도 꼴리죠? 예, 부디 당신 길드원들한테 이 소식이나 널리 알려주십시오."

"큼......."

그런데 그게 그나마 합리적인 대응 방법이라고 생각한 건지,

그녀의 계획에 동참하는 길드 마스터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 오상 그룹은 침식 요인을 제거하는 그룹에게 3,000만 달러, 걸겠습니다.”

"좋습니다, 우리 해태 길드도 2,000만 달러 보태겠습니다!”

그렇게 총 5,000만 달러, 한화로 약 550억의 보상이 더해졌다. 물론 4차 웨이브가 시작된 이후 원화는 바닥을 치기 시작했기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엄청난 거금이 아닐 수 없었다.

강서윤은 그 상황을 지켜보며 혀를 찼다.

"진짜 병신 같네, 국가적인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돈으로 사야 한다니......."

확실히, 어딘가 잘못된 시대였다.

***

쿵- 쿵-

언데드 엘리트 몬스터, 좀비 트롤(Zombi Troll)은 아주 독특한 몬스터였다.

최고의 회복력을 가진 트롤이 혹마법 계통의 저주를 받아, 죽음의 권속이 된 케이스,

그렇기에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아무리 데미지를 주더라도 순식간에 회복한다.

심지어 언데드의 약점인 ‘신성력’으로 데미지를 입혀도, 그것마저 회복해낸다.

상대하는 처지로서는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까다로움이었다.

철-퍽-

그런 끔찍한 몬스터가, 지금 산산조각이 나서 도로 위에 엎어졌다.

"마, 말도 안 돼……."

AMT의 앞을 막아섰던 남자, 이정준은 눈앞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었다.

좀비 수백 마리를 경험치처럼 먹는 것도 놀라웠지만, 이건 진짜…….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거지?’

보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정준은, 저 좀비 트롤이 쓰러지기 전까지 벌어졌던 장면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맨 처음, 트럭 2대의 화물칸이 열렸다.’

그 안에는 엄청난 숫자의 무기가 들어 있었다.

이현욱이라는 계급 모를 AMT 지휘관이 손을 들어 올리자, 그 무기들이 떠오르더니-

쉬-쉬-쉬-쉬-쉬-!

마치 미사일처럼, 수백 발의 창대가 저절로 날아가 좀비 트롤의 몸에 박히기 시작했다.

퍼-버-버-버-벅-!

하지만 그깟 물리 데미지 만으로, 저 덩치 큰 트롤을 저지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아니, 저지는커녕, 일말의 충격조차 주지 못한듯했다.

놈은 온몸에 창대를 주렁주렁 달고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격해왔으니…….

쿵- 쿵- 쿵- 쿵-

심지어 그 걸음걸이가 점점 빨라졌다.

이제 놈에게 짓밟히기까지 남은 거리는 불과 이백여 미터,

이정준은 그때까지만 해도…….

"으! 소, 소용없다는 걸 모르시겠습니까? 당신 부하들 살리려면 지금이라도 후퇴해요!”

......얼이 나간 채,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쳤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두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런 성격이었다면 애초에 장충동 주민센터의 피난민들을 구하겠다고 마음먹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이 용맹한 군인들이, 허무하게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현욱은 아주 잠깐 눈살을 찌푸렸을 뿐,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일을 했다.

그런 그의 눈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다. 마치 당연히 이긴다는 것처럼…….

심지어 그의 지휘를 받는 병사들도 식은땀을 흘리되, 각자의 할 일에 충실할 뿐이었다.

"-안민태, 빙결 마법은 준비 끝났나?”

"예! 총 21발 준비되었습니다.”

그가 손짓하자, 마법사들이 앞으로 달려 나와 빙결 마법을 난사했다.

쩌저저저저저---

그 모든 것들의 트롤의 상체에 적중하며, 단단한 ‘얼음 구속’을 형성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소용없었다.

수십 발의 창대를 몸에 달고, 몸 절반이 얼어붙었음에도, 놈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쿵- 쿵- 쿵- 쿵-

어느덧, 놈이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불과 오십여 미터-

놈의 몸에서 풍기는 썩은 내가, 코끝을 찌르기 시작했다.

'이젠 어쩔 수 없다. 이들을 두고 우리끼리라도 도망가야 한다.’

이정준이 그런 생각으로 몸을 돌리며, 동료들에게 어서 가자고 손짓했을 때, 이현욱의 단 한 마디가 그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파쇄-.”

퍼-어-억-!

"……어?”

폭음과 함께, 좀비 트롤의 상반신의 상당 부분이 통째로 날아갔다.

특히나 왼팔은 완전히 잘려나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사방으로 피를 뿌리다가,

쾅-!

한 상가 건물의 쇼원도를 깨고 들어가 버렸다.

"뭐, 뭐야?”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장면이었다.

쇠 구슬을 터뜨려서 좀비의 발목을 날리는 걸 봤지만, 그 파괴력은 트롤에게 통할 정도는 아니었다. 좀비 트롤의 피부와 살점은, 좀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기고 단단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아! 빙결 마법 때문이다!’

그래, 그렇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창을 먼저 박아 넣은 뒤, 그 위에 빙결 마법을 쏘아 급속 냉각시킨다.

그렇게 되면 놈의 혈액은 응고되며, 창의 촉과 단단하게 엉켜 버린다.

마치 차가운 아이스크림에 혀가 달라붙듯-

그 상태로, 금속이 폭발한다면- 바로 저렇게, 끔찍하고 파괴적인 현상이 벌어진다.

단순하지만, 기발한 한 방으로 엄청난 데미지를 준 것이었다.

‘어, 엄청나게 비상한 공격이다. 모든 걸 활용하여 레이드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이정준은 안심할 수 없었다.

그으으으......

그 엄청난 공격에도 좀비 트롤은 쓰러지지 않았다.

놈은 잠깐 주춤했을 뿐, 다시금 한 걸음 다가왔다.

쿵-

‘역시 아무리 그래도 언데드다! 팔 하나 잘린다고 해서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저 많은 무기와 스킬을 소모해서 팔 하나 잘라냈다고 한들, 리타이어시킬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싸움이 반복되다 보면, 놈은 상처를 회복하고 아군은 무기가 떨어질 터…….

대단한 전략과 능력을 발휘했지만, 안타깝게도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런데…….

카-가-가-가-가-!

불현듯, 놈의 몸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큰 덩치가 발작하며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처와 절단면을 포함한 몸의 모든 구멍에서, 마치 파이프가 무언가를 쏟아내듯, 선지피가 왈칵왈칵 쏟아졌다.

푸더더더-----

그건, 놈의 내장이었다.

정확히는 분쇄된 내장이었다.

"어……."

이정준은 한참 고민한 끝에야,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있었다.

‘미친…… 좀비 트롤을, 안쪽에서부터…… 갈아버렸다!’

몸에 박힌 창대를 터뜨리는 순간, 몸 안으로 수도 없이 많은 금속 조각이 들어갔을 터, 그것들을 다시 터뜨리고, 조종하며, 안에서부터 장기를 말 그대로 갈아버린 것이었다.

카-가-가-가-가-가-!

아무리 좀비 트롤일지라도, 그런 미친 공격을 견딜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 거대한 몸이 철-퍽-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 위로 무너졌다.

......거기까지였다.

이정준은 자신이 본 것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마침내 깨달았다.

'이 사람 뭐지? 그리고…… 내가, 참견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잖아?’

그 순간, 이정준은 이현욱과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 저……."

이현욱의 눈썹이 아주 살짝 찌푸려졌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심장이 내려앉았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게 세상의 전부가 아니에요.”

그 짧은 일갈에 이정준의 정신이 돌아왔다.

“……AMT라고 해서, 당연히 못 해낼 줄 알았습니까?”

이정준은 반박할 수 없었고 그대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현욱은 몸을 돌려, 자신이 만들어놓은 끔찍한 풍경을 천천히 살폈다.

전투가 끝났으니, 보상을 거뒤들이고 정비를 해야 했다.

‘꽤 많은 무기를 소모했지만, 그래도 아직 여유가 있다.’

대대 무기의 절반을 꺼내오기도 했거니와, 대대 공병들과 대장장이들에게 부탁하여 오로지 ‘파쇄’ 용도로 쓸 무기를 급조해두기도 했다.

그리고 쇠 구슬의 경우, 웨이브가 시작되기 한점 전에 강정두에게 미리 대량 주문해두었기에 아직 3상자, 1,650개 더 남아 있었다.

"박준모, 자루 4개만 꺼내 와.”

"예, 알겠습니다!”

이내 박준모가 자루를 가져와 넓게 벌렸고, 이현욱이 핏빛 전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언데드 시체 더미 사이사이에서, 무언가 치솟았다.

몬스터를 잡으면 드롭되는 에너지원 ‘마나 스톤’이었는데…… 실로 엄청난 숫자였다.

촤라라라——

그것들이 이현욱의 통제를 따라 비행하여, 자루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와…… 안민태 상병님, 이게 대체 얼마치입니까?”

"개당 6~8만 원으로 쳐도, 한 사오천 만원은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중대원들이 엄청난 수의 마나 스톤에 감탄하는 사이,

이현욱의 손에는 그런 잡템이 아닌 진짜배기 득템이 3개나 들어와 있었다.

‘역시, 소득이 크다.’

우선 첫 번째,

- ‘비밀의 열쇠(이벤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웨이브 이벤트 아이템이다. 서울 어딘가에 행운 상자가 생성됐겠군.’

열쇠를 통하여 열 수 있는 상자, 그 안에서 고가치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런 상자는 랜덤 생성되기 때문에 발견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걸 찾기만 한다면 다른 경로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혜택을 받게 될 터였다.

이어서 두 번째,

- ‘정령의 돌(3등급)’을 획득하였습니다.

‘이건 진짜 돌이라서 삼킬 수 없고, 정령술사인 김세희를 줘야겠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 ‘오리할콘’을 획득하였습니다.

3개 중 가장 흡족한 건 역시나 이것, 전설의 금속 ‘오리할콘(Orichalcum)’이었다.

‘오리할콘, 아다만트 이상의 가치를 지닌 금속이다.’

아다만트가 10g당 130만 원을 호가하지만, 오리할콘은 그 값의 100배는 넘었다.

가장 높은 마법 친화율을 발휘하여 마법 금속 중에서 사실상 최고로 친다.

그리고 이현욱에 전생에서 경험한바, 마법 저항력을 올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금속이었다.

하지만 가격을 떠나서 워낙 희귀한 금속이기에, 마음껏 흡수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먹어야 하는 능이다.’

꿀꺽-

이현욱은 그 귀한 오리할콘을 한입에 삼켰다.

그러나 체내 용광로를 가동하여 빠르게 흡수할 수 없었다.

직전의 전투에 마나를 전부 할애했기 때문이었다.

- 마나(12/1681)

심지어 전투하는 내내 대형 마나 물약을 3개나 들이킨 게 이 정도였다.

- 주의! 마나를 과잉 사용하셨습니다. 마나 회복을 강제 촉진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이 이상으로는 마나 물약을 복용할 수 없었다. 설명대로,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날 터였다.

"최태용, 주변 경계 철저하게 해. 좀비 트롤이 한 마리가 더 있을 수도 있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이 정도 소음에도 아직 등장하지 않을 걸 보면, 다행히도 이 근처에는 없는 듯했다.

이현욱은 시계를 확인했다.

- 18:01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었다. 밤이 온다면, 일부 언데드가 더욱 난폭하게 변할 것이었다.

‘서둘러야겠군.’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저......."

이정준과 그의 동료들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사뭇 표정이 달라진 상태였다.

방금까지 얼굴을 붉히며 다소 하대하고 가르치려고 들었다면, 이제는 얼굴이 노랗게 변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중이었다.

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가 주제넘은 참견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빠르게 자아 성찰을 했는지 허리를 구십 도로 굽히며 사죄를 표했는데, 이마가 무릎에 닿을 지경이었다. 여러모로 거슬리는 말을 해댔지만, 나쁜 사람인 것 같진 않았다.

"정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시민들부터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선을 넘었습니다!”

"예, 좋은 취지로 조언하려고 하셨던 거 압니다. 하지만 그쪽이 했던 말 안에는 특정 집단에 속해 있는 이들은 무조건 수준 이하일 거라는, 편협한 프레임이 담겨 있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정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앞을 막아섰습니다…… 정말, 정말 면목 없고 부끄럽습니다.”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성하고 호의적으로 나오고 있는 이상, 내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이용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었다.

"그럼, 저희가 호위해드릴 테니, 시민들을 데리고 북쪽으로 가시겠습니까?”

"아, 혹시 어디로……."

“DDP역은 쉘터가 작으니, 대형 쉘터가 있는 동대문역까지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이정준의 표정에 이유 모를 난색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저, 그게 말입니다……."

"예?”

"사실…… 저희는 몇 시간 전까지 그곳에 있었습니다.”

"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큰일은 아닙니다만, 이게 참……."

이정준은 근 몇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와 동료들은 웨이브가 일어나기 전, 동대문역 근처에 있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모 길드 행사의 경비 임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웨이브가 터졌고 행사의 참석자들과 함게 동대문역 쉘터로 피신했다.

"……그렇게 쉘터에 있는데, 오전 8시쯤, 구조 신호가 들어왔습니다.”

"장충동 주민센터, 마법 방어막이 고장 났다는 소식이었군요?”

"예, 저희는 그 사람들을 구해서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하…… 저희 고용주가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천 명이 넘는 시민을 위험하게 내버려 둘 수 있겠습니까? 저희는 저희끼리만이라도 나가겠다고 했고, 그러니까 그 양반이……."

이정준은 다시 한번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를 해고하고 나가면 다시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라며 엄포를 놓았습니다. 와도 절대 안 열어준다면서요. 뭐, 마침 DDP 쪽에 좀비가 잔뜩 몰려 있기도 했고, 그래서 남쪽으로 내려가려고 했던 겁니다.”

이현욱은 고개를 갸웃했다.

"잘 이해가 안 되네요. 그 사람이 누구길래 무슨 권리로 쉘터 입장을 막겠다는 겁니까?”

“그게......."

이정준은 마른 침을 삼킨 뒤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이름만 들어도 알 재선 국회의원이자 C등급 플레이어입니다. 어제 새벽까지 좆 같은 행사를 열고 있던 <종각 길드〉의 실질적인 대주주이기도 하고요.”

이정준은 꽤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이현욱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이었다.

"아 그니까, 그 사람 성격상 정말로 안 열어줄 수도 있습니다. 진짜 꽉 막힌 황소고집 중의 황소고집이라서요……."

이정준이 재차 강조했지만, 이현욱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공공 쉘터 독점 행위는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중범죄입니다. 열어주지 않으면 강제로 뜯고 들어가서, 체포하여 구금할 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고 후 사살할 수도 있고요.”

"아……."

"제 목숨만 아까운 줄 아는 놈을 고분고분하게 대해주면, 반드시 더 많은 목숨을 잃게 됩니다. 괜찮습니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 맞는 말씀이긴 한데……."

"그럼 가죠. 시민들을 데려가야 하니 시간이 없습니다.”

이현욱은 그 말을 끝으로 차에 올라탔다.

이정준은 직감했다.

곧, 작지 않은 소란이 벌어질 것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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