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42화 (42/221)

42화.  < 강철 중대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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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서울의 밤하늘은 보랏빛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걸 눈치채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평소와 같은 밤이었다.

서울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게이트가 발생했지만, 군부대를 중심으로 일어난 일이었기에 오히려 민간은 평화로웠다. 그러한 문제를 가지고 ‘웨이브’를 예측하는 관료는 없었다.

아니, 누군가는 분명히 의문을 꺼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마치 핵전쟁을 예견하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일이었기에, 결정권자의 반응은 회의적이었고, 무엇보다……

새벽이었다.

"야! 새벽 2시에 전화해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거 확실해?”

그렇기에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내 서울을 오고 가는 이들이 반투명한 벽을 마주했다는 이야기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새벽 4시…….

서울의 모든 전파가 끊어지며 4차 웨이브가 시작되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때부터 서울은 바빠졌다.

- 국민 여러분, 여기는 국가게이트대응본부입니다. 현재 시간부로 서울 전 지역에 게이트 발생 경보를 발령합니다. 이 방송은 실제 상황입니다. 다시 한번 알려......

영등포구 문래동, 대장장이 골목에 노이즈 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평범한 확성기가 아니라 ‘마나 경보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그게 가동된다는 건, 근처에 게이트가 열렸음을 뜻했다.

"……아이고! 이게 도대체 뭔 일이야!”

대장장이 골목은 상주인구가 꽤 많은 편이었다.

길드의 수주를 맞추려면 밤낮을 쉬지 않고 무두질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공장처럼 불이 꺼지지 않는 3교대, 그게 이곳 문화였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적지 않은 대장장이들이 경보방송을 듣고 있었다.

"사장님, 근데 이거, 그냥 게이트가 아니라 그, 뭐야, 웨이브라는데요?”

"그게 말이 되냐, 이놈아! 웨이브가 무슨 미국 록 가수 순회공연 같은 건 줄 알아?"

"저도 아니었으면 좋은데…… 아무튼, 빨리 쉘터로 가시죠.”

그리고, 강정두 역시 그 거리에 나와 있었다.

"이걸 어째......."

새벽잠이 없는 편이었는데, 밖의 소란을 듣고 나와본 것이었다.

그는 상황을 파악한 뒤, 헐레벌떡 공방의 단칸방으로 돌아갔다.

"희설아! 이것아! 얼른 일어나!”

"으…… 몇 시인데 난리야……."

"그래, 난리야! 난리가 났어!”

“-악!"

강정두는 이불을 뒤집어쓰는 손녀를 발로 걷어차고는, 장롱에서 여행용 가방을 꺼냈다.

“윽, 무슨 난리라서 하나 남은 손녀를…… 헉! 게, 게이트야?”

희설은 밖에서 울려 퍼지는 경보음을 듣고 상황을 파악했다.

"그래! 그거, 거기 선반에 있는 좀 챙겨!”

"음…… 나 꿈꾸는 거 아니겠지? 그럼 대장장이 말고 마법사로 각성할래."

"입 다물고, 빨리 일어나 이것아!”

그렇게 두 사람은 허겁지겁 피난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 ……국민 여러분은 지금 즉시 가까운 쉘터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쉘터란, 게이트 상황에 대비하여 마법 방어막이 설치된 대피소였다.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국가 운영 쉘터는 영등포역이었다.

그러나 조합 차원에서 운영하는 사설 쉘터가 조합 사무실 지하에 있었다.

당연하게도, 강정두와 강희설은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쉘터 입구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말았다.

"워, 더는 못 들어가요. 쉘터 수용 인원은 다 찼어요.”

“……예? 그게 무슨 말이랍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니, 쉘터에 자리가 없다는 게 당최 이해가 안 되는 데, 좀 들어갑시다.”

최대 수용 인원이 500명이 넘는 대형 쉘터이며, 불의의 사고가 벌어진다면 모든 조합원이 피신하여 적어도 몇 주를 머물 수 있다고, 조합 측에서 생색을 내곤 했다.

“아, 노인네 말귀 못 알아듣네……. 꽉 차서 더 안 받는다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저와 이 녀석은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아, 어디서 뒤지든지 말든지, 씨발, 내가 알 게 뭐야?”

강정두는 이것들이 이러는 이유를 눈치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재난 상황, 평범한 게이트 발생 상황이 아니었다.

그걸 눈치챈 조합 상부는 최대한 오래 버티기 위하여 수용 인원을 줄이기로 결정,

조합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강정두 등 몇몇 대장장이들을 가장 먼저 가지치기 한 것이었다.

"강 형, 좀 위험하겠지만, 영등포 쉘터로 갑시다. 에이 더러워서 캭! 퉤!”

다른 대장장이 강정두를 말리자, 경비가 피식 웃었다.

"그래, 빨리 좀 꺼지세요. 가다가 고블린한테 칼침 맞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그 말에 강정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힘없는 노인네지만, 성질머리까지 없지는 않았다.

"이런 호로-.”

"개-시발! 이 호로 잡것들아!”

그런데 그보다 먼저, 어디선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손녀, 강희설이었다.

그녀는 빽 소리를 지르며 경비에게 달려들었다.

"비켜! 우리도 들어갈 권리가 있잖아!”

"어어, 미쳤나 이게!”

"차별하지 마! 우리도 꼬박꼬박 회비 내는 조합원이잖아!”

"난 모르겠고, 당신들은 영등포역 쉘터라고 가라고, 에이- 이 년아!”

"-악!"

경비가 팔을 휘두르자, 강희설은 뒤로 엎어지고 말았다.

대장장이 플레이어인 그녀는, 경비를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었다.

강정두는 제 손녀를 일으켜 세우며 경비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흑…… 왜! 왜! 힘 좀 있는 것들 다 저렇게 이기적인 거야?”

강회설은 울상을 짓고 소리치자, 경비가 비웃음을 날렸다.

"어휴, 힘없는 게 병신이지, 어디에다가 징징거리고 있어?”

이에 강희설이 다시금 꽥, 하고 욕설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녀의 악다구니는 웬 굉음에 묻히고 말았다.

두두두두----

돌풍이 일며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내리쬐었다.

그건, 헬리콥터였다.

“..으?”

“오! AMT다!’’

경비병들은 고개를 치켜들고 환호했다.

"크, 역시 꼬박꼬박 세금 낸 보람이 있어! 일찌감치 구하러 왔구나!”

그 말에 강희설이 이빨을 드러냈다.

"지랄하네! 우리도 회비 꼬박꼬박 냈는데, 너희는 왜 그따위인데?”

"뭐, 뭐? 저 꼬맹이가 진짜......."

경비는 참지 못하고 팔을 걷어붙였다.

"진짜 저런 것들은 맞아야 세상 무서운 줄 알......."

그 순간, 헬리콥터로부터 로프 3개가 떨어지며 검은 전투복을 입은 AMT 병사들이 착륙했다. 동시에 손을 뻗어, 강희설을 위협하는 경비의 어깨를 밀쳤다.

"......뭐, 뭡니까?”

"물러서세요. 경고입니다.”

그 사이, 헬리콥터는 조합사무실 옥상의 헬기 포트에 착륙했다.

그러자 쉘터 안에서 조합 관계자가 달려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아! 어서 오십시오! 이렇게 빨리 저희를 도와주시러 오시다니, 감격입니다.”

"음, 죄송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아직 민간 구조 작전이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헬기 팀의 리더로 보이는 중사 계급의 여군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예? 그럼......."

"일단은 쉘터 머물면 안전하실 겁니다. 저희는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누구를 찾으십니까?”

"이미 찾았습니다.”

중사는 사진 한 장을 쥐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문전박대당한 대장장이들 쪽이었다.

그 상황을 훑어보며, 중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설마 저 사람들, 쉘터 입장 못 하게 겁니까?”

"예? 에이, 아닙니다!”

"뭐가 아닙니까? 위에서 다 봤습니다.”

"아니, 그게....... 씁-”

"규정 위반이고 처벌받을 수 있는 불법인 거, 아시고 있겠죠?”

"아, 예, 뭐......."

오늘날, 쉘터란 국민의 생존권과 직결되었다.

그렇기에 쉘터는 부동산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요소였고, 민간 쉘터를 운영하려면 정부가 지정한 조건을 만족하고, 관련 부처의 지속적인 관리 감독을 받아야만 했다.

그 운영 조건 중 하나는 인근 피난민의 ‘조건 없는 수용’이었다.

"만일 차후 규정 위반이 드러나면 쉘터 운영권이 박탈될 겁니다."

"......."

중사는 그 말을 끝으로 강정두에게 다가갔다.

"강정두 씨, 맞습니까? 찾으시는 분이 있어서 모시러 왔습니다.”

"예, 제가 강정둡니다만, 저를…… 누가 찾으십니까?”

"이현욱 씨가 보냈다고 하면 아실 거라고 하던데, 저희와 동행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강정두의 눈이 커졌고,

강희설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예? 이 사장님께서…… 군 장군이셨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강정두는 그렇게 말했다.

군용 헬리콥터를 대동하여 데리러 왔다면…….

장군은 아니더라도 AMT에 입김 좀 묻힐 수 있는 위치가 확실할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저기 저 조합 관계자들이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

그렇게, 강정두와 강희설, 그리고 몇 대장장이들이 1대대에 도착했다.

이현욱이 그들을 맞이했다.

"강 장인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정두는 이현욱을 보면서 허리를 꾸벅 숙였고, 동시에 이현욱 전투복의 계급장을 살폈다.

"아이고,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요, 이 장군님......."

이 영악한 노인네, 본인이 해군 중사 출신이기도 하고 분명 방금 계급장을 확인했지만, 모르는 척 장군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분히 의도된 아첨이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아부하며 제 잇속을 챙기는 건 혼자 손녀딸을 키우는 노인으로서 이해할만한 여우 짓이었고, 그러면서도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강단 있는 남자였다.

“아닙니다, 저는 장군도 아니고 병사입니다. 일찍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뭐, 그게 중요합니까? 대단하신 분이라는 것쯤은, 이 노인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긴, 병사가 헬리콥터를 대동하여 일개 대장장이를 모셔온다는 게 말이 안 됐다.

이현욱을 지지하고 있는 배경이 엄청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이현욱은 대장장이들을 데리고 연병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21대의 ‘리빙 아머’가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리빙 아머입니다. 대부분 파손되었는데, 수리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강정두는 뒷짐을 지고 그것들을 살피더니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음, 마법 회로를 복원하는 일은 솔직히…… 고위 마법사와 함께해야 합니다. 물론 흉내는 낼 수 있습니다만, 완벽하게 제 기능을 하게 만들 수 있다고는 장담 드릴 수 없습니다.”

"가동만 된다면, 완벽하게 복원되지 않아도 됩니다.”

리빙 아머의 작동 원리인 ‘마법 회로는 문신처럼, 갑옷 표면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렇기에 ‘외갑’이 깨지며 회로가 끊기면 제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중요한 회로는 대부분 ‘투구’ 부분에 있었기에 그곳만 멀쩡하다면 문제없이 작동할 수 있었으며 ‘몸통’ 부분에 새겨진 회로는 대부분 방어와 관련된 추가 기능 주문이었다.

"이곳까지 와주신 노고 감사합니다. 사태가 끝난 뒤에 제대로 값을 치를 겁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제 손녀딸 목숨값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제 돈이 아니라 나라에서 지급할 겁니다. 나라를 구하는 대가라고 생각하십시오.”

그 말에 강정두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제가…… 나라를 구한단 말입니까?”

"예, 큰일에 일조하시는 겁니다.”

한때, 해군 중사로 복무했던 강정두,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퇴역했다는 게, 이현욱이 알고 있는 스토리였다.

그렇기에 아직도 군인으로 위국헌신하고자 하는 어떤 열망이 남아 있을 터였다.

특히나 이런 끔찍한 시대에는 더더욱이…….

이현욱은 그 부분을 자극하여 강정두가 이 작업에 더욱 몰입하게 했다.

‘그러나 사실은 강정두보다 강희설이 더 유용할 거다.’

이현욱은 강희설을 쳐다보았다.

새끼강아지처럼 정신없이 움직이며, 리빙 아머를 신기하다는 듯 살피고 있었다.

심지어 굳이 걷어차 보기까지 하더니, 제 발을 붙들고 껑충껑충 뛰었다.

"아이고, 이것아……."

강정두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렇듯 지금은 철부지에 불과하지만…….

‘물론, 저 성격은 끝까지 달라지지 않지만……

백설(Snow White),

드워프 장인 7명의 선택을 받은 최초의 ‘엘더 스미스’

그리고 드워프에게 인정받은 최고의 술꾼…….

‘강희설은 그렇게 성장할 거다.’

그리하여 최초의 ‘명인’ 단계 아이템을 제작한다.

하지만 강희설의 진짜 재능은 대장장이보다 ‘마법 공학’ 쪽이었다.

뒤늦게 접한 분야였거늘, 빠르게 소화하여 최고가 되었다.

‘그녀가 만든 마기계(魔器植) 병단은 최고였다.’

비전투 계열인 대장장이이건만, 자신이 만든 마기계 병력을 지휘하여 전장에서 활약했다.

‘강희설이 일찌감치 마법 공학 쪽에 몸담게 한다면, 훨씬 크게 될 거다.’

그리하여.......

신성력을 무기로 하는 강철 군단, 그것들의 설계와 제작을 담당하게 할 생각이었다.

***

오후 3시, 위병소 게이트를 끝으로 영내에 발생한 3개의 게이트 공략이 종료되었다.

소요된 시간은 8시간, 사상자는 단 4명, 엄청난 쾌거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진짜 일은 지금부터였다.

"대대장님 전파 사항입니다! 10분 휴식 후, 다시 작전 들어갑니다!”

"아……."

제대로 쉴 시간조차 없었다.

이제 4일이다.

그 이후에, 서울의 절반이 사라지고 만다.

지쳐 쓰러져서 그대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멈출 수 없었다.

"자! 시간 지났다! 다시 움직인다!”

지금은 사실상 전시였기에 대대 물자 창고에서 ‘치장물자’를 모조리 꺼냈다.

그 안에 회복 물약, 스테미나 물약, 마나 물약 등이 있었는데, 심신이 지친 병사들에게 배급되었다. 물론 포션을 과다 복용할 경우 능력 성장에 좋지 않지만…….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어딨어? 빨리 마시고 움직여!”

이내, 수송부에 트럭들이 도열했다. 흔히 두돈반이라고 불리는 K-511, 총 7대였다.

그리고 그 뒤로, 마법 금속으로 도금된 K-153 기갑수색차량 3대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지금부터 트럭에 무기들을 적재한다! 시간은 10분, 빨리 움직여!”

대대 무기고의 절반을 달라는 이현욱의 요청대로, 무기고가 통째로 옮겨지는 중이었다.

한편, 이현욱은 김세희 병장, 안민태 상병, 최태용 일병을 따로 불렀다.

이번 작전에서 그들에게 따로 맡길 임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세희 병장, 1소대장을 맡아주시겠습니까?"

"......."

“미안하지만, 사실상 명령입니다.”

김세희는 명령이라는 부분에서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이었다. 이현욱의 말은 지금 대대장의 명령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귀찮음이 가득한 표정과 말투였다.

하지만 저런 시니컬한 태도에도 2중대 여군들이 언니, 언니 하며 잘 따르는 이유가 있는 인물이었다. 능력 있으며 사람을 가리지 않고 잘 챙겨준다.

‘즉, 모든 면에서 신뢰받는다.’

155cm의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묘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김세희를, 안민태와 최태용이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1중대 남정네들이 여신, 여신, 하며 입에 올리는 이유가 있는 외모였다만.......

참으로…… 꼴불견이 아닐 수 없었다.

"안민태, 정신 안 차려?”

"아, 음, 예!”

"안민태, 네가 2소대장을 맡는다.”

"아, 아니…… 제가 소대장, 아, 예!”

마지막 최태용을 바라보았다.

"너는 선두 척후를 맞는다. 눈 똑바로 뜨고 모든 걸 감시한다.”

"예! 알겠습니다!”

"이상한 데 한눈팔면, 나한테 죽는다.”

"옙......."

작전의 주요 직책을 전부 병사로 구성한다고 했을 때, 김강석은 의아함을 표했다.

물론, 간부 대다수가 복귀하지 못하여 쓸만한 인력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만…….

‘능력 있고, 날 잘 따를 수 있는, 그리고 앞으로 써먹을 수 있는 이들이다.’

김세희는 2중대에서 가장 잠재력 있는 플레이어였다. 인연을 이어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안민태와 최태용은 이현욱을 가장 잘 따르며, 이현욱의 의도를 잘 파악했다.

무엇보다 이제는 중대에서 손꼽는 수준까지 성장한 상태였다.

안민태의 레벨은 어느덧 24였다.

‘신성 무기를 쥐어놓은 보람이 있게, 좀비를 많이도 잡았나 보군.’

물론 그의 한손검은 부러졌지만, 이현욱이 KG19를 빌려줬다.

"그럼, 20분 뒤에 출발할 겁니다. 그때까지 준비를 마쳐 주세요.”

이현욱 역시 작전 투입 준비를 위해서 잠시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무기를 장비할 시간이었다.

유틸리티 조끼를 걸치고, 등 뒤에 구름의 검과 KG19를 장비했다.

허리춤에 페일노트, 미스릴 소재의 단검, 쇠 구슬 주머니를 장착했다.

그리고 미리 싸둔 육중한 군장에는 10개의 쇠말뚝이 들어 있었다.

철컥-

K2C1 소총까지 챙겼다. 물론, 이제 소총은 그다지 유용하지 않지만, 다수의 적을 견제하며 화력을 전개할 때는 총화기 만한 게 없었다. 사용 여부를 떠나서 챙겨둘 필요가 있었다.

슥-

마지막으로 전투복의 왼쪽 손목을 걷어서 확인했다.

창 모양의 문신, 비장의 한 방인 아킬레우스의 창이었다.

이렇게 온몸에 장비된 아이템만 수십 개에 달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준비 중인 7대의 트럭, 그곳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이 이현욱의 무기였다.

김강석이 인정한 대대 최고 전력, 그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실례할게-”

등 뒤의 목소리, 서은하였다.

그녀는 수차례의 전투 끝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지, 하체 갑옷만 착용하고 있었다.

"......정말, 내가 같이 안 가도 되겠어?”

중대 최고 실력자인 서은하와 최영준은 정작 후속 부대에 배치되었다.

이현욱이 이끄는 작전 중대가 위험 지역으로 진입하는 역할이다 보니, 문제가 생겼을 때 구조 역할을 해줄 지원군이 필요했으며, 영내 방어도 허술하게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그렇듯 재빨리 달려오실 것 아닙니까?”

"......또 늦었다고 뭐라고 할 작정인 거지?”

"그럴 수 있으면 차라리 다행일 겁니다. 너무 늦어서, 제가 이미 죽은 건 아닐 테니 말입니다.”

"뭐? 하…… 은근 개소리 되게 잘 한다, 너?”

이현욱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다 입바른 말일 겁니다.”

언젠가부터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이현욱이었지만, 서은하는 딱히 기분 나쁘진 않았다.

장교와 병사, 그 계급을 넘어서 이현욱을 인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영외에서는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방금 그것도 재수 없지만, 입바른 말이긴 하네.”

준비를 마친 이현욱이 생활관을 나가려고 할 때, 서은하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자-”

“또 초콜릿입니까?”

"......너, 솔직히 나 열 받게 할 생각이지?”

서은하는 손바닥을 펼쳤다.

팔찌가 하나 들어 있었다.

딱 봐도 신성력이 담긴 아이템이었다.

"이번 웨이브가 언데드와 관련되어 있다는 거 너도 알 거야. 여기에 마나를 불어 넣으면 주변 3m 반경에 신성 보호막이 형성돼. 빌려 줄게, 도움이 될 거야.”

"잃어버려도 책임 묻지 않으시겠다면, 받겠습니다.”

“......잃어버리지 마.”

잃어버린다는 건 달리 말하면, 먹어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현욱은 연병장으로 나갔다.

그곳에 7대의 트럭, 3대의 전술 차량, 12대의 리빙 아머가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39명의 병력이 집합해 있었다.

이현욱을 필두로 영외로 나아가, 서울 방어 작전을 진행할 정예 부대였다.

이현욱이 병영 밖으로 나오자, 그들이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이현욱은 사열대 위, 대대장과 나란히 서서 새로이 편성된 중대급 병력을 내려다보았다.

대대장은 그들에게 이런 이름을 붙여 주었다.

“......강철 중대, 너희에게 서울의 운명이 달렸다.”

강철대제에 이어서 강철 중대라…….

이현욱은 전생부터 자신에게 따라붙는 별명이 너무 유치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서울의 운명이 달렸다는 것도 사실…… 너무 상투적인 연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 모든 단어가 사뭇 다르게, 무게감 있게 들렸다.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서울을 지킨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모든 걸…….'

이현욱은 대대장에게 거수경례하고, K-153, 지휘 차량에 탑승했다.

"출발한다.”

강철 중대의 첫 번째 임무,

서울 방어 작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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