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37화 (37/221)

37. 파도 위로 내리는 비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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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죽었습니다.”

중절모를 쓴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나무에서 내려왔다.

“둘 다?”

건너편 나무에 기대어 담배를 태우고 있는 여자, 다섯 도살자의 리더 캐롤이 되물었다.

그런데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그 담배를 쥐고 있는 손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있었으며, 등 뒤에서 돋아난 제3의 손이 담배를 쥐고 있었다.

“2번 게이트 쪽 양희주는 죽지는 않았는데, 정신을 잃은 것 같습니다.”

다섯 도살자는 서로 연결되어서 존재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둘의 연결이 동시다발적으로 끊겼다.

“······.”

이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산군은 지금 여기에 없다고 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침투 전에 확인한 사실입니다.”

“그럼······ 서은하, 그 여자인가?”

“현재로선, 그것 외에는 추측할 만한 대상이 없지 않습니까?”

1대대 내에서 다섯 도살자에게 대적할만한 플레이어라면, 단 두 명이었다.

남산의 산군이라고 불린 B등급의 드루이드 김강석,

신성기사단장의 딸인 B등급의 성기사 서은하,

그 외에는 경계할 만큼 대단한 이름 따위는 없었다.

“됐어, 어차피 여기 끝장낸 다음에 생포한 애들 생명 몇 개 쏟아서 살리면 돼.”

“예. 아직 3번 게이트는 눈치 못 챈 듯하니, 계획이 틀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들이 남산의 타워가 올려다보이는 남산의 중턱이었다.

그곳에 1개의 게이트가 추가로 열려 있었다.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보라색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흠, 혹시 마스터께서는 이걸 예상하고 3개로 늘리신 걸까?”

“제가 느끼기엔, 그저 확실하게 전멸시키라는 뜻 같았습니다. 찾을 물건도 있으니······.”

본디 이곳에는 2개의 게이트 생성을 유도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마스터, 기백준이 갑자기 1개를 추가했다.

그때, 어디선가 두꺼운 목소리가 울렸다.

“······어이, 캐롤! 여기다가 설치하면 되나?”

약 20m 떨어진 어느 골짜기, 덩치 큰 남자가 무언가를 들쳐 메고 서 있었다.

캐롤이 고개를 끄덕이자, 덩치 큰 남자는 근처에 있는 나무를 맨손으로 꺾기 시작했다.

우득! 우득!

마치 잡초를 잡아 뜯는 것처럼 손쉬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수작업으로 지형을 평평하게 만들더니 짊어지고 있던 거대한 녹색 비석을 끌어 내렸다.

그리고 땅에다가 내리치듯 박아 넣었다.

푸-억-!

그러자······.

고오오오오---

- 주의! 해당 지역에 ‘악의 집결지’가 선포되었습니다!

* 어둠 계열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50%)

* 언데드 속성의 회복력이 상승합니다. (50%)

*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숫자가 상승합니다. (100%)

남자는 씩 웃으며 손을 털었다.

“설치했어! 잘 되네, 뭐!”

이 게임에는 정말 다양한 유형의 아이템이 존재하며, 어떤 것들은 괴상망측한 효과를 품고 있기도 했다. 그런 건 ‘인류’에게 전혀 유용하지 않을뿐더러 취급에 주의가 필요했다.

물론, 사용 목적에 따라서 그 결과는 달라지기 마련이었으나······.

“이제 좀비들이 득실득실 기어 나와서 서울 놈들을 죄다 잡아 처먹겠지?”

이곳에서 사용되는 목적은 그리 좋지 않은 듯했다.

꿀럭- 꿀럭-

어느새 그들의 등 뒤에 열려 있던 3번째 게이트가 반응했다. 분출이었다.

이내 그곳에서 육중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하나씩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지축을 울리는 무게감······.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존재했다.

그 갑옷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갑옷’만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언뜻 보면 마법이 걸린 갑옷인 ‘리빙 아머(Living Armor)’처럼 보였다.

마법사가 ‘통제 마법’을 걸면 알아서 움직이며 집을 지키는 그런 종류의······.

그러나 이건 ‘죽음 마법’의 산물인 귀신 들린 갑옷 ‘헌티드 아머(Haunted Armor)’였다.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 중, 상당한 고위 등급이었다.

쿵- 쿵- 쿵- 쿵-

“멋있네. 저것들은 B등급 성기사, 그 잘난 여자일지라도 감당 못 할 거야.”

캐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강철의 갑옷을 입은 언데드 ‘헌티드 아머’ 부대가 산 중턱에 도열했고 그 뒤로, 좀비 떼가 바글바글 기어 나왔다.

“아 그리고, 오강묵! 네가 해줄 일이 있어!”

“응?”

비석을 설치한 덩치 큰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좀 내려가서, 군인 놈들 지휘부 좀 없애고 와줄래?”

“아니, 내가 왜? 그거 애들 시키지 않았나?”

캐롤이 한숨을 푹 쉬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갑자기 둘 다 연결이 끊겨서 어쩔 수 없어.”

“아 둘 다 뒤졌어? 하, 병신 같은 애새끼들, 귀찮게 하네······.”

다소 값싼 언행이었지만, 2m에 250kg이 넘는 거구가 그렇게 말하자 굉장히 살벌했다.

“어쩔 수 없지,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럼 성기사 출신 권속 좀 만들어 볼까?”

“아니, 성기사가 아니라 지휘부를 괴멸시키라고 했잖아.”

“아, 알았어. 겸사겸사한다는 뜻이야.”

“방심하지 마. 허영태와 양희주 둘 다 당했다는 건 이상한 일이야.”

“아니 캐롤, 왜 이래? 나 몰라? 내가 걔들하고 같아?”

그래, 같은 흡혈귀일지라도 수준 차이는 존재했다.

앞서 당한 두 흡혈귀, 허영태와 양희주가 ‘하급’이라면 이 남자, 오강묵은 ‘중급’이었다.

한 단계 차이지만, 그 사이에는 수백 명을 ‘흡혈’해야 하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했다.

오강묵은 지금까지 301명을 흡혈했다.

오늘 그 숫자를 조금 늘려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

남산 어딘가에서 토템이 내리박히는 순간, 인근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의 눈앞에 붉은색의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 주의! 해당 지역에 ‘악의 집결지’가 선포되었습니다!

* 어둠 계열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50%)

* 언데드 속성의 회복력이 상승합니다. (50%)

*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숫자가 상승합니다. (100%)

“이건······.”

지하 지휘통제실에 있던 모든 이들이 허공을 바라보며 마름 침을 삼켰다.

“······토템입니다.”

“······토템이다.”

이현욱과 서은하가 동시에 말했다.

토템(Totem)은 일대에 마법적인 영향을 주는 설치형 아이템이었다.

이번에 설치된 토템이 어떤 건지는, 경고 메시지 안에 잘 설명이 되어있었다.

모두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현욱만은 속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토템이라면······ 악마의 메달이 박혀 있는 아이템이다.’

일전에 코볼트 흑마법사를 잡고 얻었던 ‘악마의 메달(인페르노)’ 그걸 흡수한 뒤 ‘파이어 브레스’와 ‘체내 용광로’라는 엄청난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걸 얻을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이번에는 어떤 종류일 것인가······ 아마도 생명력이나 통제력과 관련이 있을 듯싶었다.

이현욱은 사실, 상황이 이렇게 될 거란 걸 어느 정도 예상했다.

허영태, 원래 여기 있어선 안 되는 그놈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는 건, 예상 밖의 위협이 몇 개 더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가령 ‘제3의 게이트’라든지······.

‘그런데 토템까지 박을 줄이야? 알아서 먹을 걸 가져다주는군.’

이현욱이 느끼기엔, 오히려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이현욱은 서은하를 바라보았다.

“소대장님, 아까 그놈, 혼자가 아닙니다.”

이현욱의 말에 서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의심하고 있는 차였다.

“이건 역시 조직적인 테러 같은 거야. 그렇지?”

“예,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몬스터를 이용한다니, 그게 가능한 걸까?”

서은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시스템을 이용한 테러라니······.

이 현상이 알려진다면 세상이 뒤집힐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뭐가 됐든 일단은 그거, 토템부터 당장 제거해야 해. 아니면 감당 못 할 거야.”

“맞습니다. 수색대를 당장 꾸려야 합니다.”

토템이 기능하여 그 효과가 지속한다면, 곧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가 게이트 밖으로 나와서 ‘악의 집결지’ 근처로 모이게 될 것이었다.

그건 ‘군단’의 탄생을 뜻했다.

“당직사령님, 지금 즉시 토템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서은하의 말에 당직사령, 문태호 소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전에 몇 명이 있으면 될 것 같나?”

“일단은 저와 이현욱 병장 그리고······ 최영준 병장도 필요합니다.”

최영준의 복귀 소식은 이미 이곳까지 전해졌다.

“아, 그리고 마침 1중대원 중 몇 명이 신성 무기로 무장한 상태입니다.”

이번에는 이현욱이 말했다.

신성 무기를 마련한 전 특별공략소대원들, 이럴 때를 대비하여 키운 녀석들이었다.

“그래? 상황병, 지금 당장 곽용준 대위 쪽 연결해봐.”

“예!”

문태호 소령 그 즉시 위병소 쪽 곽용준 대위에게 연락하여, 해당 인원들을 차출했다.

“······됐다. 그쪽 애들, 5분 내로 도착한다고 한다.”

그렇게 속전속결로 총 23명의 ‘토템수색대’가 조직되었다.

“그럼 저희도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후······ 서 중위, 꼭 성공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목숨이 걸렸어.”

“예, 물론입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그때였다.

쿵-!

어디선가 진동이 울리며 형광등이 깜빡였다.

“······.”

정신없이 돌아가던 지휘통제실이 일순간 멈춰섰다.

바로 위층에서 무언가 큰 충격이 발생한 듯했다.

“방금, 뭐야?”

쿵-! 쿵-! 쿵-!

다시금 충격음- 그런데 이번에는 머리 위가 아니었다.

그들의 시선의 벽으로 향했다.

같은 층, 지하에서 울렸다.

“······.”

다음 순간······.

철퍽-

“······어?”

상황병의 당혹감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저, 저기······.”

철문 밖, 복도, 그곳에 전투화를 신은 하반신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문제는······ 말 그대로 ‘하반신’만 있다는 것이었다.

그건, 암호실 경계병의 시체인 듯했다.

이현욱과 서은하가 눈을 마주쳤다.

스릉-

서은하는 검을 뽑아 들었고, 이현욱의 등 뒤에서 검이 저절로 뽑혀 나왔다.

두 사람이 가장 먼저 달려나갔다.

“······.”

복도 끝의 어둠 속, 웬 거한이 서 있었다.

검은 정장 위에 우비 같은 걸 걸친 꼴이었다.

그는 사람 머리통만 한 쇠사슬 철추(鐵鎚), 플레일(Flail)를 쥐고 있었다.

그런데 그 쇠사슬의 길이가······ 정말이지 엄청나게 길었다.

“······.”

두 사람은 그 괴한에게 굳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저 남자가, 종전에 만났던 흡혈귀 허영태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이현욱은 당연히 알고 있었고, 서은하 역시 눈치를 챘다.

“······누, 누구야?”

하지만 뒤따라 나온 문태호로서는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놈은 그저 어딘가 신이 난 듯 킬킬 웃고 있었다.

서은하가 방패를 끌어 내리며 가장 앞으로 나갔다. 저 괴한이 쥐고 있는 플레일이 한 번 날아들면, 여기 세 사람이 동시에 으깨질 것이기 때문에 대비를 한 것이었다.

“소대장님, 이건 시간을 끌려는 놈들의 계획입니다.”

이현욱이 속삭였다.

“그리고 이 좁은 복도에서라면, 아무리 소대장님이셔도······ 빨리 끝내기 어려울 겁니다.”

“······.”

아니, 사실은 빨리 끝내고 말고가 아니었다.

저런 괴력을 가진 상대와 좁은 곳에서 맞서는 건 자살행위였다.

“아무래도, 소대장님께서 먼저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이번에도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하지만······.”

“토템을 늦게 발견하면, 아무것도 지킬 수 없을 겁니다.”

서은하는 아주 짧게 고민했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그의 말이 정답에 가까운 말이었다.

“금방 끝내고 합류하겠습니다.”

“······죽지나 마.”

서은하는 문태호를 돌아보았다.

“당직사령님, 저는 토템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여기······ 부탁드립니다.”

문태호는 당황했지만,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은하는 이현욱을 한 번 더 바라보고는 바로 옆의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

그렇게 방패가 사라지자, 두 사람은 맨몸으로 철퇴를 든 괴한과 마주 서게 되었다.

괴한은 다시 한번 킬킬 웃더니 고목처럼 두꺼운 다리를 움직여, 한 발 다가왔다.

쿵-

사람이 걷는데 ‘저벅’이 아니라 ‘쿵’이라니······.

“젠장, 비켜 봐. 거기! 더 다가오면 사살한다!”

문태호가 그렇게 말하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래도 그는 C등급 1티어의 마법사였다.

광역마법통제관이라는 직책은 대인 마법에 그리 능한 편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저 괴한을 상대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쿵-

하지만 괴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 번째 걸음을 내디뎠다.

웅-

문태호의 손아귀에서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괴한의 철추가 퉁겨지듯 날아들었다.

후-웅!

“뭐-.”

뻐-억!

문태호는 반응하지 못했다.

찰나의 순간, 이현욱이 그 플레일 끝에 금속 통제력을 발휘했고, 철추가 아주 살짝 휘며 문태호의 머리가 아니라 왼쪽 어깨에 적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문태호의 몸이 붕 떠올라 뒤쪽 벽에 처박혔다.

쿵-

······그대로 기절한 듯싶었다.

‘흡혈 불곰 오강묵, 역시 힘이 엄청나군.’

이현욱은 놈을 알아봤다.

저 철추 역시 금속이었다만, 통제하는 건 어려울 듯했다.

여왕 거미의 껍질이나, 놀 올드 알파 메일의 쿠크리처럼 통제력을 방해하는 어떤 마법적인 효과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엄청난 힘으로, 이현욱의 통제력을 씹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파쇄’로 그냥 터트리자니, 그 철추가 마법 공학으로 최대한 압축하여 엄청난 밀도를 가진 물건인 듯했다. 즉 질량이 매우 커서 ‘파쇄’하려면 상당한 마나가 필요했다.

‘저거 하나 터뜨리려고 마나를 바닥낼 순 없다.’

이현욱은 다른 전략을 떠올렸다.

“거기, 당직사령님 좀 챙겨주세요.”

“아? 아! 예!”

이현욱의 말에 상황병 한 명이 달려 나와 기절한 문태호 소령을 끌고 들어갔다.

“······이야, 너 방금 그걸 보고도 설마 나랑 싸우려는 거야?”

“······.”

“너 참 용감하구나?”

오강묵이 그렇게 말하며 다가왔다.

“그리고 네가 방금, 내 무기 끝을 건드린 거지? 맞지?”

이현욱이 발휘한 금속 통제력을 단숨에 눈치채다니, 남다른 감각이 분명했다.

“눈치가 빠르시네요.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의도 바르고 아주 기특하구나? 이 아저씨가 선물을 좀 줘야겠는데?”

오강묵은 그렇게 말하며 킬킬 웃었다.

선물이라니, 흡혈귀들은 왜 전부 저렇게 변태 같은 걸까······.

이현욱은 그런 생각을 하며 구름의 검을 뽑아 들어, 물안개 스킬을 사용했다.

푸-우-우-우-우-

검 끝에서 다량의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좁은 복도가 금세 뿌옇게 변했다.

“오, 연막을 쓰시겠다?”

놈이 철추를 들어 올리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완전히 가려졌다.

그러나 이현욱은 철추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그는 13개의 쇠 구슬과 페일노트를 쏘아 보냄과 동시에-

탁!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퍼-버-버-버-버-

무언가-아마도 쇠 구슬이 연달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수증기를 뚫고 나가니, 오강묵이 왼손을 들어 올려 머리를 가리고 있었다.

쇠 구슬과 페일노트, 전부 막아낸 것이었다.

직후, 놈의 오른손-철추가 움직였다.

후-웅-

그 육중한 쇳덩이가 이현욱의 머리를 향해 쏘아졌다.

이현욱은 몸을 뒤로 누이며 젖은 바닥 위로 슬라이딩했다.

그렇게 철추를 피하고, 오강묵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KG19를 발도했다.

촤-악!

“크-악!”

이현욱은 놈의 고간을 긋고 지나가, 몸을 일으켜, 그대로 놈과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금속 통제력을 발휘하여 복도 양쪽, 창고 문, 4개를 일제히 개방했다.

철컹- 철컹- 철컹- 철컹-

복도 쪽으로 열리는 문,

바로 그 순간, 놈이 철추를 날렸다.

콰-과-과-광-!

4개의 문짝이 골판지처럼 으스러졌다.

그래도 순간적인 기지로 철추 공격을 한차례 무마시킬 수 있었다.

“으으으······ 거기 서! 도망치는 거냐?”

이현욱은 그사이에 복도 끝에 도달했다.

그곳은······ 막다른 길이었다.

오강묵이 우그러진 창고 문을 뜯어버리며 쿵쿵, 다가왔다.

치이이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놈은 악다구니를 내뱉으며 웬 호리병을 꺼내 들었다.

그걸 마시자, 입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더니, 가랑이 사이의 연기가 멎었다.

놀랍게도 신성 무기에 의한 상처를 단숨에 회복한 것이었다.

‘죽음의 물약······.’

죽음 마법으로 제조된, 인간의 영혼을 재료로 하는 회복 물약이었다.

아무나 마실 수는 없었으며 ‘야수 계열’이나 ‘언데드 계열’이 마시면 회복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그게 설령 신성력으로 입은 상처일지라도 회복해내는 것이었다.

“후······ 꼬마야, 그래서 이제 빠져나갈 곳이 없어 보이는데, 이게 다냐?”

오강묵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그러나 이현욱은 싱긋 웃었다.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표정에, 오강묵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웃는 거냐?”

“미안하지만, 빠져나갈 곳은, 내가 아니라 네가 찾아야 할 거다.”

그렇게 말하는 이현욱은 지금, 웬 거대한 철문을 하나 등지고 서 있었다.

그건 대대에 있는 그 어떤 문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꺼운, 암녹색의 철문이었다.

- 제3항마여단 1대대 무기고 : 출입 제한 구역

철컥-

그 철문이 저절로, 좌우로 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그 안에서부터, 찬바람이 흘러나왔다.

자연의 바람과 달리, 꿉꿉한 기운이 잔뜩 담긴, 창고의 냄새······.

“응?”

불이 꺼져 있었지만, 오강묵의 눈은 암흑 속을 꿰뚫어 보았다.

무기고 중심에 아주 깊은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그것은 한 층 아래로 내려가는 아주 거대한 통로, 계단이었다.

그때였다.

구-구-구-구-구-

발아래에서부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뭐야······.”

오강묵은 불길함을 느끼고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 순간, 무기고 안에서부터 무언가 쏘아졌다.

쉭-

그건 한 자루의 창이었다.

오강묵은 어깨를 슬쩍 뒤로 빼며, 손쉽게 피해냈다.

“시발, 뭔 짓이야? 고작 이딴 장난······.”

그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곧,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내-

쉬-쉬-쉬-쉬-쉬-쉬-!

거친 바람 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우며, 저 한 층 아래의 어둠 속에서부터, 수십 개의, 온갖 금속 무기들이, 마치 한 무리의 짐승 떼처럼 쏟아져 나오고 시작했다.

“씨발! 뭐야!”

그것들은 이현욱을 자연스럽게 지나쳐서, 오강묵을 향해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푹! 푹! 푹! 푹! 푹! 푹!

온몸에 날카로운 금속이 처박히기 시작했다.

“윽! 윽! 젠장!”

오강묵은 반격할 틈도 없이, 머리를 가리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힘이 풀린 게 아니라, 온몸에 처박힌 금속 무기의 무게 때문이었다.

쉬-쉬-쉬-쉬-쉬-쉬-!

“이, 이게 무슨- 윽!”

마치 수백 명이 자신을 향해 일제히 화살과 투창을 쏘는 것만 같았다.

또는 거대한 물살에 휩쓸린 것처럼, 도저히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그의 몸이 고슴도치처럼 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현욱은 그런 놈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무기고 앞이라면, 내 능력은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현욱이 조종할 수 있는 무게는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다.

그에 따라 한 번에 움직일 수 무기의 수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쏘아 보내고, 또 쏘아 보내고, 또 쏘아 보낸다면······.

‘그건, 무한처럼 보일 수 있다.‘

한 번 속도를 붙인 금속은 굳이 ‘통제’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날아가 박힌다.

즉, 마나가 허용하는 한, 무기가 충분한 한, 한도 끝도 없는 공세가 가능하다.

무기고의 통제권을 얻은 건, 이처럼 많은 무기를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무기고 그 자체를 이용하는 건 차원이 달랐다.

‘놈이 직접 이곳까지 왔기에 가능한 전략······ 운이 좋았다.’

물론, 이렇게 해도 오강묵은 죽지 않는다.

“으어-억! 어억-윽!”

마무리는 다른 방식으로 지어야만 했다.

이현욱은 금속 무기의 흐름 사이에 섞여, 오강묵에게 걸어갔다.

놈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그 순간, 그의 손목에서 한 자루의 창이 튀어나와 직선으로 쏘아졌다.

푹-

“-컥!”

그것은 오강묵의 왼쪽 가슴에 적중했다.

다른 무기에 맞았을 때와는 달리, 그 거구의 몸뚱이가 순간 출렁거렸다.

그 창의 이름은 ‘아킬레우스의 창’

회복 불능의 효과를 가진 영웅 등급의 창이, 오강묵의 가슴팍-심장을 꿰뚫었다.

“······어디 한 번, 그것도 회복해보려면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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