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파도 위로 내리는 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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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이라는 무시무시한 남자가 대체 왜 AMT 병사가 되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은 한 둘이 아니었다. 솔직히 그 정도 잘난 놈이면 민간 길드에서 모셔가야 하는 게 정상 아니던가?
그 지점에 대해서, 한때 최영준의 선임이었던 공략소대의 강익준 하사가 증언했다.
“그 새끼? 존나 게을러! 이등병 때도 뺀질거리면서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다니까? 말이 되냐? 근데 솔직히 뭐, 뭐든 잘 하긴 해서 나중에는 나도 뭐라고 못 했지, 재수 없는 놈······.”
게으른 천재다.
그래, 그는 처음에는 그다지 의욕이 없었다.
“그리고 자기가 각성하고 싶어서 각성한 것도 아닌데 왜 끌려와서 의무 복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시도 때도 없이 중얼중얼······ 내가 분대장 때 속 터졌다니까 진짜······.”
반골 기질이다.
사회에 불만이 많고 체제에 순응하려고 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냥 만화나 그리면서 살려고 했는데, 갑자기 각성해서 짜증이 났다나 뭐라나, 미친놈! 진짜 내가 아직도 어이가 없어서 걔 얼굴 보면 헛웃음이 막 나온다니까?”
그리고 전혀 다른 꿈,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갑자기 생각을 고쳐먹고 나날이 성장하기 시작했냐면······.
“음······ 몬스터 죽여보니까, 재밌다던데? 내가 말했지, 걔 사이코패스라니까?”
다소 살벌한 이유였다.
모르고 있던 어떤 ‘재미’를 깨닫고는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최, 최영준 병장님!”
그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선 채 눈동자를 천천히 굴려서, 몬스터 쪽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벌써 어떤 흥미를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으나, 표정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때 SUV의 운전석 문이 열리고 중대장, 곽용준 대위가 얼굴을 드러냈다.
“야! 영준아! 술 마셨는데, 거, 괜찮냐? 형이 할까? 형은 한 모금밖에 안 마셨잖아!”
그렇다. 최영준은 복귀 전날 곽용준을 비롯한 몇몇 전역자들과 만나서 술을 마시던 중이었다. 그렇기에 곽용준이 ‘초기 대응반 소집 문자’를 받았을 때 함께 복귀할 수 있었다.
“아닙니다. 곧 둘째 태어나서 청화 라인 타야 한다는 분이 이럴 땐 몸 좀 사리셔야지, 괜히 어디 한군데 날아가면 환승 전에 나가리 되는 겁니다.”
“······야! 화, 환승이라니, 그런 말은 왜 하냐! 저 새끼 취했네, 취했어!”
최영준이 천천히 걸어와서 안민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민태야, 검 좀 줘.”
“아! 이게 상태가 좀······.”
하지만 안민태의 검은, 저 여자의 일격으로 반 토막이 난 상태였다.
“여, 여기 있어요!”
그때, 2중대 여군이 그렇게 소리쳤다.
그녀는 눈물범벅인 상태로 자기 사수의 시체,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었다.
“이은희 상병님, 미안해요······.”
그리고 훌쩍이며, 최영준에게 검을 내밀었다.
“여, 여기······ 부탁, 합니다!”
“고맙습니다.”
최영준은 검을 받아들고 얼굴 높기까지 들어 올렸다.
그 길이와 무게를 가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날 길이가 50cm에 불과한 아주 짧은 보조용 검이었다.
우어어어-
어느새, SUV로 밀어버렸던 좀비들이 죄다 일어나서 위병소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 숫자가 여전히 서른 마리가 넘었다.
“저, 최영준 병장님! 저것들은 일반 검으로는 죽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쓰시던 그 무기보다 길이가 너무 짧은 것 같은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안민태가 조바심을 내며 말했다.
물론 최영준을 못 믿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방금, 그가 지나쳐 갈 때 술 냄새가 지독했기 때문에 걱정이 안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혀 취하지 않은 것처럼, 최영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알아.”
그의 말에 좀비들 사이에서, 정체불명의 여자가 피식 웃었다.
“뭐? 아는데 그렇게 당당히 나서? 제 명줄 끊는 병신 하나 추가됐네?”
그러자 최영준이 왼손으로 눈을 비비적거렸다.
“음······ 좀비가 말을 하네? 내가······ 취하긴 했나?”
“뭐? 나는 조, 좀비가 아니야!”
“아 그래? 그럼 곧 좀비로 만들어 줄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봐.”
그의 목소리는 조곤조곤하고 얌전했지만, 그 내용은 다소 살벌했다.
“민태야, 잘 봐. 무기를 쓸 때 중요한 건 길이 같은 게 아니야.”
“예? 그러면······.”
그는 좀비 떼를 향해 나아가며, 대답 대신 오른손, 검은 휘둘렀다.
촤-악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안민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단칼에 좀비 셋의 머리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촤-악!
이어진 일격에 좀비 둘의 머리가 떨어졌다.
철퍽-
그렇게 머리가 잘려나가니, 제아무리 좀비라도 움직일 수 없었다.
사실 너무나 당연했다.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하위 언데드의 경우 머리가 잘려나가면 기능하지 못한다.
하지만 감히 누가 한손검으로 좀비 머리를 베어 넘길 생각을 한단 말인가······.
“방금 봤지? 거리, 정확도, 타이밍, 이 셋이 물리적인 전투의 핵심이야.”
최영준은 전투가 아니라 실습 강의를 해주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안민태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에 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 앞에!”
여자의 긴 칼날이 최영준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채-앵!
그러나 최영준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그 공격을 쳐냈다.
정말이지, 신기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안민태의 검과 방패를 종이처럼 잘라냈던 그 여자의 일격이, 너무나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그것도, 안민태의 검보다 훨씬 등급이 낮은 검으로 막아낸 것이었다.
심지어······.
-촥!
공격을 쳐냄과 동시에 휘둘러진 최영준의 검이 여자의 허벅지를 그었다.
여자가 놀란 표정으로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오, 뭐야?”
그런데 이번에는 신기함을 넘어서 믿기 힘든 장면이 펼쳐졌다.
길쭉하게 찢어졌던 여자의 허벅지가, 순식간에 아물어가고 있었다.
어찌나 빠른지 상처가 붙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저게, 말이 돼?”
이 자리의 모두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실로 엄청난 회복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최영준만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었다.
“뭐야, 좀비 맞잖아?”
여자는 마치 먼지라도 묻었던 것처럼, 자신의 허벅지를 툭툭 털었다.
“AMT치고는 칼 좀 쓰나 보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한테는 소용없을 것 같지 않아? 좀비 대가리 몇 개 자르고선 후임한테 잘난 척하는 모습······ 진짜 너무 별로인 거 알아?”
그 말에 최영준이 싱긋 웃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나갔다.
“그래?”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 안민태는 최영준의 표정 속에 담긴 어떤 묘한 감정을 느꼈다.
‘즐거워······ 하고 있어?’
한참 높은 선임들이 주장했던, 최영준의 사이코패스적인 면모, 그걸 발견한 것 같았다.
“음, 그럼······ 이건 어떨 것 같아?”
그의 목소리 어딘가에 장난기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쉭- 쉭-
최영준이 마치 잽을 내지르듯, 아주 빠르고 간결하게 오른손을 두 번 휘둘렀다.
다음 순간, 여자의 손가락이, 열 손가락이 죄다 잘려나가며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꺄아아-악!”
여자가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지만, 최영준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 걸음 다가서며 두 차례 더 휘둘렀다.
촤-악! 촤-악!
왼쪽 종아리와 오른쪽 팔뚝이 잘렸다.
그렇게 절단된 신체 부위가 채 분리되기도 전, 또다시 두 차례의 섬광이 번뜩였다.
촤-악! 촤-악!
이번에는 왼쪽 어깨와 오른쪽 발목이 잘려나갔다.
“칵, 크흐-아!”
마치 레고처럼, 사지 관절이 뚝뚝 떨어져 나가는 모습······.
그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서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끅, 끄으······.”
한순간에 사지를 잃은 여자가 바닥에 엎어진 채 신음을 흘렸다.
최영준의 검 끝이 여자의 턱에 툭, 닿았다.
“음, 이제 자를 만한 곳이 이제 딱 한 곳 남은 것 같은데······ 그 전에 말해줄래? 이것도 별로야? 어땠어?”
“제, 제발······.”
“······솔직히 꽤 괜찮았지?”
“······.”
그러나 최영준은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는 오른발을 들어 올려서, 여자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뻑!
여자는 결국 기절했다.
“민태야, 포박줄 좀 가져와서 이것 좀, 안 풀리게 잘 묶어줄래?”
“······어, 아, 예!”
“회복 속도가 빨라서 정신도 빨리 차릴지 모르니까, 서둘러줘.”
그래, 이 미친 습격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생포해야만 했다.
사지가 잘린 채 살아 있는 사람을 묶는 건 여러모로 고역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최영준은 몰려드는 좀비 무리를 손쉽게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
이현욱은 허영태를 쓰러뜨린 뒤, 즉시 2병영 쪽으로 이동했다.
‘서은하가 1병영으로 갔으니 그쪽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2병영 쪽은 아직 무방비 상태일 가능성이 컸다.
“······어떻게든 마, 막아!”
“제발 빨리 무기 좀 꺼내 와 봐!”
아니나 다를까, 2병영 건물 가까이 접근하니 여자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덜그럭! 덜그럭!
뼈 부딪치는 소리,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들이 2병영의 주차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것들은 창문을 깨고 방범창을 잡아 뜯은 뒤 그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고, 현관문 근처에서도 서로 부대끼며 어떻게서든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려고 아등바등하였다.
그 어떤 목적과 체계 없이, 오로지 인간을 갈기갈기 찢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었다.
퍼-엉-
2층 창문 안에서부터 화염 마법이 한 방 쏘아져 주차장 한복판에서 폭발했다.
폭발 반경에 있던 스켈레톤 서너 마리가 으스러져 내렸다.
“마법이 먹혀! 빨리, 다시 준비해!”
스켈레톤은 언데드 계열 중에서 그나마 일반 공격으로 ‘리타이어’시키기 좋은 편이었다.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뼈를 으스러뜨리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처럼 그 숫자가 너무나 많아서 문제였다.
“미치겠네! 이, 이대로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1층 창문으로 계속 들어온다! 어떻게든 막아!”
병영 바로 옆에 게이트가 열렸고, 그곳에서 계속해서 스켈레톤이 쏟아져 나오는 중이었다.
‘몇 시간 뒤에 겨우 길을 뚫어냈지만, 상당한 사상자가 나서 결국 체계가 무너졌다.’
이후, 상당수의 병사가 전열을 이탈하여 도주하기에 이른다. 남은 병사들과 급히 복귀한 간부들이 힘을 합쳐 겨우 게이트 봉쇄에 성공하지만······.
그때는 복구할 수 없는 피해를 본 상태였다.
그게 원래 벌어져야 할 역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의 모든 전력을 보존한 채, 웨이브를 맞이한다.’
이현욱은 모든 무기를 쏘아 보내서, 한 대 뒤엉켜 있는 스켈레톤들을 휩쓸어버렸다.
퍼-버-버-버-버-벅-!
그것들은 신성력이 담긴 무기 닿는 순간, 마치 모래로 만들어진 것처럼 폭삭 주저앉았다.
그렇게,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이 마치 볼링핀처럼 단숨에 무너져내리며 먼지가 치솟았다.
“어?”
그 모습에, 2중대의 여군들이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하나둘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이현욱은 뼈 무더기 사이를 천천히 걸어가, 현관으로 다가갔다.
“······.”
현관문을 틀어막고 있는 탱커들이 방패를 슬며시 내렸다.
그 뒤로 아직 전투 준비가 완벽하게 되지 않은 여군들이 보였다.
“어, 저 사람은······.”
“그치, 맞지?”
자다가 급히 무기만 들고 달려 나왔기 때문인지, 속옷 차림의 여군들도 더러 있었다.
다소 민망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이현욱은 금남의 구역인 2병영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누가 지휘합니까?”
그의 질문에 여군들이 하나둘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모인 곳에서, 키가 작은 여자가 인상을 찌푸린 채 서 있었다.
“······아무래도 당장은, 나인 것 같은데요.”
그녀는 전투복 상의를 입지 않은 국방색 민소매 차림이라서 계급을 알아볼 수 없었다.
“당직사관님이 병신같이 혼자서 차 타고 도망치려다가 저기서 고독하게 전사하셨거든요.”
그녀는 쥐고 있는 단검으로 주차장 한쪽을 가리켰다.
“근데 그쪽은, 1중대 이현욱 상······ 병장? 맞죠?”
전투복의 명찰을 확인하긴 했다만, 그녀는 이현욱을 아는 듯했다.
당연했다. 근 며칠간 대대 내 모든 이슈가 그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현욱 역시 그녀가 누군지 알아챘다.
‘김세희, 정령술사 특성이지만, 암살자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김세희는 1중대 안에서는 일명 2중대의 여신이라고 불리며, 실력보다는 외모가 더 유명했다. 그러나 그녀도 머지않아 ‘흑호’의 선택을 받고 훗날 중사까지 오르게 된다.
그리고 5년 뒤, 2차 웨이브 이후 상하이에 건국된 오크 왕국의 국왕을 암살하는 특수 작전에 투입되어 오크 국왕 ‘스토녹스’와 동귀어진하는 공을 세우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이 부대 병사 중에서 훗날 이름을 날리게 될 딱 세 명이 이현욱, 최영준, 김세희였다.
즉-
‘쓸모 있다.’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제가 막고 있는 동안 모두 무장을 마치세요. 지금 당장 게이트를 봉쇄해야 합니다.”
“혼자서······ 가능해요? 방금 보니까 될 것 같긴 한데······.”
“오래는 못합니다. 마나가 무한이 아니거든요. 서둘러주세요.”
“알겠어요.”
김세희가 돌아서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뭐 하고 있어! 빨리 들어가서 다 챙겨 입고 나와!”
이현욱의 개입만으로도 상황이 급격하게 호전되었다.
그는 단신으로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을 막아낼 수 있었다. 당장 11개의 쇠 구슬만 조종하더라도 신성 화살로 무장한 11명 사수 분대 이상의 화력이었다.
그 틈에 2중대 병사들은 안정적으로 무장을 마칠 수 있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와 수차례 훈련받은 ‘레이드 포지션’을 잡아나갔다.
“각자 자리에 맞게 제대로 정렬해!”
“앞에 방패 한 자리 비잖아!”
탱커가 앞에 서서 전진하고 그 뒤에 사수, 마법사, 힐러가 위치한다.
이 간단명료한 대열은 저런 지능이 떨어지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었다.
덜그럭- 덜그럭-
뼈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며, 어둠 속에서 하얀 악마들이 걸어 나왔다.
“스켈레톤들이 옵니다!”
“전투 준비! 2열 발사! 다 때려 부숴!”
잘 정돈된 1개 중대 병력은 1개 게이트에서 나오는 스켈레톤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좋아, 이 패턴을 유지하면서 전진한다!”
애초에 스켈레톤은 ‘지휘’ 능력을 지닌 보스 몬스터가 없는 이상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직전까지 고전하고 있던 건, 무방비 상태에서 전혀 예상 못 한 공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1병영 쪽에서도 무장한 병력이 나오기 시작했다.
서은하가 그쪽으로 진격했던 스켈레톤을 쓸어버리고, 1병영을 구해낸 것이었다.
“저기 봐 1중대도 나온다!”
“됐어! 이러면 막을 수 있을 거야!”
일부 병사들이 그렇게 소리치며 안도감을 내비쳤다.
2개 중대 병력이라면, 1개 게이트 봉쇄 작전이 어렵지 않을 터였다.
물론, 게이트가 더 있다는 걸, 그녀들 대부분이 모르고 있었다.
이현욱은 1병영 앞에 도열 중인 1중대 쪽으로 다가갔다.
“어! 저기, 이현욱 병장님이다!”
이현욱이 나타나자 1중대 병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은근한 안도를 내비쳤다.
이현욱이라면, 믿을 수 있는 지휘를 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금까지 사실상 중대 전체를 이끌고 있던 오상국과 곽진철 표정은 떨떠름했다.
이현욱은 그들 앞에 섰다.
“오상국 병장님, 위병소 쪽에 게이트가 하나 더 열렸습니다. 혹시 들으셨습니까?”
“······.”
“이쪽은 2중대 병력으로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우리 1중대는 그쪽으로 이동해서 각개 대응해야 합니다. 지금 즉시 이동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중대원들은 이현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오상국의 얼굴에는 떨떠름함이 가득 묻어났다.
“······너 지금 나한테 명령하는 거냐?”
오상국은 그렇게 짜증을 섞어서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그다지 자신감이 없었다.
“아니, 오 병장님 왜 저러시냐?”
“하······ 여기서 자존심 부릴 때야?”
오상국의 뒤에서 그런 수군거림이 들렸다.
이렇듯, 불과 며칠 사이에 두 사람의 평판이 완전히 엇갈렸다.
“오상국 병장님, 저는 명령이 아니라 의견을 말씀드린······.”
“그럼 내가 명령한다.”
그건 서은하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어느새 회색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고 등 뒤에 방패와 대검을 메고 있었다.
“오상국 병장, 이현욱 병장 말대로 한다. 3개 분대를 이끌고 지금 즉시 위병소로 가는데, 그쪽에 이미 1중대장님이 와 계시니까, 합류해서 게이트 봉쇄 작전 진행해.”
“······예, 알겠습니다.”
진짜 명령 앞에, 오상국은 굳은 표정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서은하는 이현욱에게 KG19를 둘려주면서 이현욱의 몸을 훑었다.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현욱, 어떻게 된 거야? 그 흡혈귀는······.”
“잘 마무리하고 왔습니다.”
서은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황당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잘 마무리했다는 표현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넌 일단 나랑 지휘통제실로 간다.”
“지휘통제실······ 말씀입니까?”
이현욱은 의아한 표정을 내비쳤다.
“네 생각에도 너는 저기 병사들 사이에 껴 있을 수준이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잖아.”
“······.”
“그리고 여유가 생겼을 때 대응 작전을 수립해야 하는데, 솔직히 네 도움이 필요해.”
서은하는 솔직하게 그렇게 말했다.
이현욱 만큼 현 상황에 잘 대처한 사람은 없었다.
그가 아니라면 이미 대대 전체가 큰 피해를 보았을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대장님이 널 찾으신다.”
그리고 그런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김강석은 이곳의 소식을 들은 직후, 역시나 이현욱부터 찾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영내에 없다.’
검성 시해자 오키타 카이토를 추적을 위해서 파견 가 있는 상태였다.
아마도 원격으로 명령을 내리고 있는 듯했다.
***
지휘통제실은 본청, 1병영, 2병영 등 영내 주요 건물을 연결하는 거대한 지하 벙커였다.
“······3대대 연결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쪽도 게이트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청화 길드 사옥 근처에서도 다수의 게이트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인접 부대 중에서는 지원 올 수 있는 부대가 없습니다! 오히려 지원 요청이 들어옵니다!”
지휘통제실에 도착하자 상황병, 그러니까 행정병과 통신병들이 정신없이 오고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회의실의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스크린에는 ‘NO SIGNAL’이 표시되어 있었다.
백여 대의 CCTV가 제 기능을 상실한 건 당연했으며 단파 무전기를 제외한 유·무선 전화, 인터넷이 모두 먹통이 되어 상급부대 및 인접 기관과 원활한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게이트가 열릴 때 터져 나오는 다량의 마나 산란, 그것이 통신을 교란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부와 소통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13번 마나 메신저, 연결 완료입니다. 현재, 5회 교신 가능합니다.”
이현욱이 출타 때도 받았었던 ‘마나 메신저’처럼 전파가 아니라 마나를 통한 교신은 가능했다. 물론 그 활용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었기에 여러모로 상당한 수고가 필요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대대장님, 지금 그 친구, 이현욱 병장이 도착했습니다.”
당직사령, 광역마법통제관 문태호 소령이 대대장과 교신 중인 듯했는데, 서은하와 이현욱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현욱 병장, 대대장님이시다.”
문태호가 넘겨준 사각형의 ‘중형 마나 메신저’에서 김강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그래, 이현욱, 들리나?
“예, 잘 들립니다.”
- 내가 지금 급히 돌아가고 있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내가 자네를 믿고 있다는 건 자네도 잘 알고 있을 테고······ 나는 이번에도 그 믿음을 확인하고 싶다.
“물론입니다, 대대장님.”
- 그래,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현재 2소대장은 부재중이다. 부소대장 최선아 하사가 있지만······ 나는 자네가 2소대를 지휘하는 게 더 적합하다고 판단해. 어떻게 생각하나?
2소대장 이희민은 서울역 언럭키 이벤트 이후 병가를 낸 상태였다.
그다음 지휘자는 당연히 최선아겠지만, 그녀가 적합하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알았다.
- 당연히, 소대장 임무 수행할 수 있겠지?
임시 소대장, 결국은 이현욱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 말해 봐.
“대대 무기고의 사용 권한, 제게 주시겠습니까?”
대대 무기고에는 적지 않은 무기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의 대부분이 아이템이었다.
이현욱은 지금 그 모든 것들을 제한 없이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었다.
- 그렇게 해.
***
쿠-구-구-구-구-
육중한 소리와 함께 빛이 들어왔다.
철컹!
바닥이 완전히 열리고 서늘한 공기가 새어 나왔다.
저벅- 저벅-
불 꺼진 무기고 안으로, 단 하나의 발소리만이 울렸다.
제3항마여단 1대대의 지하 무기고, 그 안에 잠들어 있는 병기들······.
그 강철들이, 수도 없이 많은 강철이 이현욱의 감각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