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35화 (35/221)

35. 파도 위로 내리는 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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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하는 이현욱이 등장하는 순간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얘가, 원래 이런 느낌이었나?’

이현욱이라는 사람이 서은하의 머릿속에 처음 각인되었을 때, 그녀가 느꼈던 감정은 ‘의심’이었다. 한낱 F등급의 병사가 주제에 넘는 기회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고 이제는······.

‘······안심, 안심이다.’

그래,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현욱에게서 그런 게 느껴졌다.

그가 나타나는 순간, 믿을 수 있는 지원군이 등장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현욱이 허공으로 띄운 칼자루 중 하나가 서은하에게 내밀어졌다.

“평소 소대장님이 쓰시는 것만은 못하겠지만, 신성력이 담긴 무기입니다.”

서은하는 그걸 받아 들었다.

“게이트에서 나온 스켈레톤들이 병영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 봤어.”

“소대장님께서 가셔서 무기 확보하시고, 병사들을 구하십시오.”

그때, 뒤로 물러섰던 흡혈귀가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툭- 툭-

놈의 몸에 박힌 십여 발의 총알들이 벌레처럼 기어 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야 이 새끼는······ 갑자기 등장해서 날 앞에 두고 감히 작전 회의를 하고 있- 억!”

하지만 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쇠 구슬이, 총알로 헤집어진 놈의 정강이를 으스러뜨렸기 때문이다.

“악! 썅! 진짜 죽여버리······ 겠어! 으아아아!”

하지만 그건 일반 쇠 구슬이었기에, 놈은 금방 회복하고 일어설 것이었다.

“여기는 걱정하지 마시고 어서 가십시오. 제 목숨보다 많은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알았어. 조심해.”

서은하는 이현욱을 한 번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욱의 말대로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는 걸,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비록 맨몸이지만 B등급 성기사인 자신도 벅찼던 상대를 F등급 병사에게 맡기고 간다니······. 평소였다만 사실상 죽음으로 시간을 벌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현욱이라면······.’

서은하는 이번에야말로 믿어 보기로 하고, 병영 쪽으로 달려갔다.

“야! 어디 가! 야! 야!”

흡혈귀가 서은하를 애타게 불렀지만, 그 앞을 이현욱이 막아섰다.

“야 이 개새끼야! 너 때문에 놓쳤잖아! 저 매끈한 목덜미를 내가 얼마나······ 후······.”

놈은 잔뜩 흥분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별안간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천천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래그래, 어쩔 수 없지만, 숨바꼭질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으니까······.”

그러면서 저 혼자 킬킬 웃었다.

아무리 봐도 제정신은 아닌 듯했다.

하긴, 제정신이라면 사람의 피를 빠는 그런 미친 짓을 저지를 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네 능력, 되게 독특하고 좆 같던데 뭐, 염동력 같은 걸 쓰는 거냐?”

“······.”

“그런데 어쩌냐, 그딴 걸로 아무리 때려도 소용없을 텐데? 방금 저 여자한테 준 거 그거 신성력이 담긴 무기, 맞지? 병신새끼, 하필이면 그걸 주고 있냐? 쯧쯧······.”

놈은 채찍을 돌돌 말더니 허리춤에 걸었다.

그리고 양손을 펼쳤다.

그러자 칼날 같은 손톱이 돋아났다.

“아까 그 검이 없으면, 넌 나한테 아무것도 못 해. 그냥 시발, 일방적으로 찢기는 거야. 알아? 지금이라도 빨리 다시 불러서 달라고 하는 어때?”

“······.”

“음, 그래? 그럼 지금부터······.”

놈이 히죽 웃으며 이현욱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 번 느껴 봐, 괜히 나댔다가 아무리 반항해도 도저히 쓰러뜨릴 수 없는 존재에게 서서히 한 점 한 점 찢겨 죽는, 그런 짜릿한 무력감을······.”

그때였다.

쨍그랑-!

어디선가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현욱의 뒤쪽, 1병영, 2층, 5생활관의 창문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무언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훙- 훙- 훙- 훙- 훙-

그건 다수의 쇠 구슬이었다.

그런데, 이현욱이 방금 사용했던 것과 사뭇 달렸다.

“······뭐, 뭐야, 설마?”

역시 그 힘을 느꼈는지, 놈은 당황한 표정으로 멈춰 섰다.

그렇다. 총 13개의 쇠 구슬, 그건 전부 신성력을 품고 있었다.

“내가 무기가 좀 많아서 말이야. 새로운 무기를 꺼내 오는 건 반칙이 아니겠지?”

지난 며칠간 이현욱의 무기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물론 쇠말뚝 30개와 나머지 한 자루의 KG19는 지금 꺼낼 수 없었다.

그것들은 전부 병영 지하의 ‘대대 무기고’에 보관 중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 쇠 구슬은 무기로 구분되지 않기에 개인적으로 보관할 수 있었다.

그것들이 날아들어서 이현욱의 몸 주변에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흡혈귀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놈의 눈에는 그 쇠 구슬들이 기분 나쁜 시퍼런 빛을 내뿜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도깨비불’이나 ‘여우불’ 같은 음산한 느낌이었다.

그건 일종의 본능적인 경고였다. 저것에 닿으면, 소멸할 수 있다는 뜻의······.

“대체, 그딴 것들은······ 전부 어디서 난 거야?”

신성력이란, 그리 흔한 힘이 아니었다.

아주 까다로운 방법을 통하여 부여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이었다. 그런 만큼 저렇게 떼거리로 나오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기에, 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네 더러운 사고방식······ 지금부터 내가 정화해줄게.”

그 말을 끝으로, 13개의 쇠 구슬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쉬- 쉬- 쉬- 쉬- 쉬- 쉬-

그리고 놈을 팔방으로 포위하더니, 이내 고속으로 쏘아졌다.

“큭!”

놈은 곡예를 하듯 뒤로 펄쩍 뛰었더니, 엄청난 몸놀림으로 쇠 구슬 공격을 피해냈다.

“흡, 젠장!”

그러나 실시간으로 궤도가 수정되는 13개의 물체를 계속해서 따돌리는 건 불가능했다.

뻐-억!

“-크악!”

결국, 쇠 구슬 하나가 놈에 입을 강타했다.

이빨 대여섯 개가 후두두 떨어져 내리고 선지피가 쏟아졌다.

“으으으······.”

그때부터 놈은 전략을 수정했다.

피하기를 포기하고 양발 바닥에 붙인 채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날아드는 쇠 구슬을······.

탁! 탁! 탁! 탁!

재빠른 손놀림으로 잡아채기 시작했다.

한 손에 5개씩,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발로 밟아 멈춰 세웠다.

묘기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야 이 개새끼야! 으하하! 이제 공놀이는 끝났다!”

양손으로 모든 쇠 구슬을, 조종하지 못하게 꽉 움켜쥐었다.

치이이이······.

놈의 손아귀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피부가 녹는 것이었다.

놈은 이를 악물고 그 고통을 참아냈다.

“그거, 함부로 잡으면 안 될 텐데?”

“허세 부리지 마, 이 씹새끼야! 고작 이딴 신성력으로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긴, 고위 등급의 프리스트가 직접 부여한 게 아니라 대장장이의 인첸트 기술로 다른 곳에 있던 신성력을 전이(轉移)시킨 일종의 공산품인 셈이었으니, 그리 강력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음,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뭐? 그럼 뭔데?”

“공놀이가 싫다면 그만두고, 지금부터 폭죽놀이는 어때?”

“그게 무슨 개소-”

“-파쇄.”

뻐-억!

놈의 손아귀 안에서, 쇠 구슬 중 일부가 폭발했다.

그 충격에 놈의 양쪽 손이, 팔뚝까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

놈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짓더니, 잘려나간 양쪽 팔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입을 벌렸다.

“······끄-아아아!”

쉭-

그 순간, 이현욱의 허리춤에서 무언가 은색의 빛줄기가 쏘아졌다.

페일노트,

그것의 종착점은 놈의 왼쪽 눈알이었다.

푹!

“어, 억······.”

이미 그로기 상태가 왔는지, 공격을 피할 생각조차 못 한 듯했다.

이현욱은 이어서 구름의 검을 뽑아 들었다.

- 해당 무기에 ‘오러(세인트)’가 부여됩니다.

새로 얻은 스킬을 사용하여 구름의 검에 신성력을 담았다.

그리고 빠르게 접근하며, 비틀거리고 있는 놈의 다리를 향해 휘둘렀다.

촤-악!

놈의 오른쪽 발목이 잘려나가며 앞으로 엎어졌다.

“자, 기분이 어때? 조금 성스러워졌나?”

“끄으으······”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허영태, 네가 왜 여기에 있지?”

“······큭, 흡- 네가 나, 날 알아?”

흡혈귀, 허영태는 만신창이가 된 채 울먹이고 있었다.

‘알다마다, 내가 네놈들 얼굴을 잊을까 봐?’

이현욱은 그렇게 생각하며 놈을 내려다보았다.

허영태는 ‘다섯 도살자’라고 불리는 빌런의 ‘암살조’ 중 한 명이었다.

‘던전 안에서, 공략을 나선 플레이어를 죄다 학살하는 악질들······.’

그래서 ‘도살자’라는 업적을 얻고, 빌런 퀘스트를 통하여 ‘특별한 힘’을 수여 받는다.

그게 바로 일반적인 플레이어는 가질 수 없는 ‘흡혈귀’ 같은 몬스터의 능력이었다.

‘그런데, 원래는 오늘 이곳에 있을 놈들이 아니다.’

예상 밖이었다.

원래는 다섯 도살자 중 딱 2명만 이곳에 온다.

전생의 이현욱이 몰랐을 수도 있으나, 허영태만큼은 아니었다. 이놈은 다른 곳에서 민간인을 학살해서 ‘언데드화’하는 짓을 했다는 걸, 이현욱은 기억하고 있었다.

‘서울역에서 검은 촉수 양주섭을 죽임으로써, 놈들이 다른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놈들이 그때 얻은 그 ‘열쇠’를 애타게 찾아 나선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넓은 범주에선 이현욱의 예상 안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놈들과 완전히 거리를 두고 성장할 수는 없다.’

빌런들이 감시망이 좁혀진다고 해서 놈들에게서 멀어질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아슬아슬하게 놈들의 근처, 등잔 밑에 붙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놈들의 행운을 내 것으로 가로챌 수 있으니까······.’

놈들을 악화시키는 동시에, 이현욱 자신은 성장한다.

그리고 그 공식은 지금도 해당했다.

쉭-

무언가 이현욱의 손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건 허영태의 날아간 손가락이었다.

정확히는 그곳에 끼워져 있던 반지였다.

- ‘마나 탱크(3등급)’를 획득했습니다.

“······바로 이렇게, 말이야.”

이건 꽤 값비싼 아이템이었다.

마나 탱크라는 이름답게 이 작은 반지에 엄청난 양의 마나를 저장하여 실시간으로 꺼내어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마나 총량이라는 게 높으면 높을수록 무조건 좋은 능력치였기에, 마법사는 물론이거니와 웬만한 플레이어들은 이 마나 탱크를 하나씩 장만하는 편이었다.

즉, 범용성이 상당하기에 거래량이 많고 판매 가격대도 높은 아이템이었다.

‘3등급이라면······ 적어도 10억을 호가한다.’

물론 이현욱에게는 한 입 거리에 불과했다.

꿀꺽-

이걸 소화하면 마나 스톤 몇 톤을 삼키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마나 총량이 증가한다.

이렇듯, 빌런, 그놈들의 계획을 차례차례 먹어 치우며 몸집을 불린다.

그게 이현욱의 계획이었다.

“커, 사, 살려······.”

이현욱은 고민 없이 허영태의 숨통을 끊었다.

***

남산의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인 총성이 울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소란스러운 곳은 단연 위병소 근처였다.

2개의 총구가 어둠 속을 향해 불을 뿜는 중이었다.

타-다-다-다-당!

그 공세에 십여 개의 인영이 흔들리고 쓰러졌다.

“자, 장전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다시금 몸을 일으켜서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수십 발의 총알을 뒤집어쓰고 온몸이 망가지더라도······.

“저것들, 죽지를 않습니다!”

그것들은 지옥의 주민, 그렇게 불리는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 쉽게 말해서 ‘좀비’였다.

“앗! 총알이 다 떨어졌습니다!”

2중대 여군, 위병 2명은 결국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그녀들을 보조하고 있던 위병조장 역시 활시위를 내려놓았다.

“얘들아, 이제 안으로, 안으로 들어와!”

그렇게 말하는 건 위병사관, 최선아 하사였다.

그녀는 지원 계열의 플레이어로서 후방에서 버프를 걸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저희가 숨어 버리면 저것들이 아래로, 도시로 내려가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일단은 우리부터 피해야 해! 곧······ 5분대기조가 곧 올 거야!”

최선아의 판단은 합리적이었다. 고작 4명, 그 숫자로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 5분대기조······ 이미 한참 전에 왔어야만 했다.

그녀는 위병소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금 ‘핫라인’을 통해 위병소와 교신했다.

“지통실! 지통실! 여기는 정문 위병소! 여기는 정문 위병소! 응답하라! 응답하라! 아······.”

하지만 지휘통제실은 응답이 없었다.

“대, 대체 왜 아무도 안 오는 겁니까?”

“······.”

그녀들은 알 턱이 없었지만, 지금 그쪽도 난리가 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우어어어-

어느새 삼십여 마리의 ‘지옥의 주민’이 위병소 근처까지 도달했다.

그것들은 느리지만, 쉽사리 막을 수 없는 재해였다.

“위병사관님! 좀비들이 영내로 진입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로서는 더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때였다.

쩌-엉!

어디선가 터져 나온 한 줄의 섬광이 지옥의 주민 3마리를 저 멀리 날려버렸다.

“······어, 5분대기조가 도착한 겁니까?”

하지만 5분대기조가 타고 올 법한 차량의 불빛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3줄기의 아주 옅은 빛, 그러니까 손전등들이 다가왔다.

퍽!

선두, 방패를 든 병사 한 명이 거리낌 없이 달려들어, 선두의 좀비를 들이받았다.

그리고 한손검을 좌우로 휘두르며, 좀비의 목덜미를 정확히 그었다.

“어······.”

그의 등 뒤, 어딘가에서 쏘아진 화살이 느리지만 확실하게, 좀비를 쓰러뜨렸다.

이어서 다시금 전격 마법이 쏘아지며, 좀비 두어 마리를 날려 보냈다.

“······세, 세 명?”

그래, 그렇게 등장한 지원군은 고작 3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소 느리고 멍청한 ‘이계의 주민’들을 착실하게 베어 넘기며-그것도 잘 죽지 않는 그놈들을 완전히 ‘리타이어’ 시키면서 위병소를 향해 다가왔다.

“부소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최선아는 그 목소리가 1중대 5분대, 안민태 상병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너, 너희가 어떻게? 지금, 어디서 온 거야?”

“일단은 저희가 앞을 막을 테니, 뒤에서 지원 사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알았어!”

안민태가 방패를 치켜세우고 다시금 앞으로 나아갔다.

최선아는 즉시 안민태에게 ‘헤이스트’와 ‘파워 업’ 마법을 걸었다.

“흡! 오······ 갑자기 힘이 넘치잖아!”

안민태를 중심으로 전진하는 5분대원 3명, 그들에게는 좀비를 완전히 쓰러뜨릴 힘이 있었고, 위병들의 지원 사격까지 받자 고작 몇 분 만에 스무 마리가량을 쓸어버릴 수 있었다.

“얘들아, 된다! 우리가, 우리끼리도 해냈어!”

“후······ 이현욱 병장님이 이걸 보셔야 했는데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이상하게도, 그들은 희열을 느끼는 중이었다.

두렵고 긴장됐지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 컸다.

무려 60마리가 넘는 놀 무리에게 포위당했을 때도 이겨냈던 그들이었다.

신성 무기가 있는 한 지성 없이 막무가내로 움직이는 좀비 따위,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한편 최선아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대, 대체······.”

1중대 5분대, 그들은 최선아의 담당 분대였다.

즉, 가장 잘 아는 병사들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이현욱이 압도적인 발전을 선보이더니 이제는 그 휘하의 분대원들까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 아니······ 사실상 진화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그 모든 게 여러모로 이상했지만······.

‘그래, 이대로면 막을 수 있어.’

너무, 정말 너무나 다행이었다.

그녀는 후들후들 떨리는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버텼다.

‘나는 이제 애가 아니야. 그리고 나는 군인이야.’

그녀는 숨을 고르고 마나와 스킬 쿨타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전투 상황은 파악하고, 가장 적절한 플레이어에게 ‘버프’를 걸었다.

그녀의 버프는 플레이어의 능력을 최대 20%까지 늘려줄 수 있었다.

쉭- 쉭- 쉭-

버프를 받은 최태용의 발사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최선아도 나름의 몫을 해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하- 이게 뭐야? 이건 전혀 예상 못 한 장면인데?”

어디선가 낯선 음성이 들렸다.

최선아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위병소 건물 위, 낯선 누군가가 걸터앉아 있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호리호리한 여자였다.

그런데, 그 여자의 눈빛이······.

‘······빨간색?’

왠지, 인간 같지가 않다고, 최선아는 느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녀와 눈이 마주치니까 몸이 굳는 기분이었다.

“누구······ 십니까?”

그 순간 그 여자가 그곳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촤-악!

손을 휘둘러, 위병 한 명의 목을 그었다.

그녀가 픽, 쓰러졌다.

바닥에 피 웅덩이가 생겨났다.

“······.”

너무나 빨랐기에 최선아는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

그리고 그 손톱의 다음 표적이 자신이라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늦었다.

그런데 찰나의 순간, 누군가 최선아 앞을 막아섰다.

쩌-엉!

“큭!”

안민태였다. 그가 방패로 그 여자의 손톱을 막아냈다.

그리고 오히려 힘을 주어 그녀를 밀어냈다.

“모두! 안쪽으로 물러나세요!”

안민태가 그렇게 소리치며 검을 휘두르자 정체불명의 여자가 피식 웃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런데, 방패를 긁었을 뿐인데, 그 여자의 손가락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치이이이······

“음······ 비싼 방패를 들고 있네? AMT 병사 따위가 주제에 안 맞게, 응?”

자신의 손톱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호호, 불어서 날려버렸다.

“야! 너는 뭐야? 갑자기 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안민태는 좀비들이 그녀를 공격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죽으면 잊을 텐데, 내가 입 아프게 뭐하러 말해?”

그녀는 땅을 박차더니 안민태를 향해 앞차기를 날렸고,

그에 대응하여, 안민태는 다리에 힘을 주고 체중을 앞으로 실었다.

뻐-억!

하지만 버틸 수 없었다.

안민태의 몸은 그대로 붕 떠올라, 5m 정도 날아가, 보도블록 위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 순간, 최태용과 박준모가 화살과 전격 공격을 쏘았지만, 여자는 아주 손쉽게 피해냈다.

“으······.”

안민태는 밤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걸 느끼며, 그 단 한 방에 알아차렸다.

여기에 있는 모두가 덤비더라도 저 여자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걸······.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곧장 몸을 일으켜서 맨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아, 안민태 상병님?”

“큭! 버텨야 해, 이현욱 병장님이 올 때까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여자가 싱긋 웃었다.

그리고 등 뒤에서 긴 칼 한 자루를 꺼냈다.

맨몸으로도 안민태를 날려버렸는데, 무기라니······.

이내 그녀가 왼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챙-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 안민태가 들고 있던 방패 끄트머리가 잘려나갔다.

심지어 오른손에 들고 있던 신성력을 품은 한손검마저 반 토막이 나버렸다.

“다음 공격은, 살려줄 생각이 없는데 어떡하지?”

“······.”

하지만 안민태는 비키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물러서면 다 죽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AMT 병사 생활을 하면서 사명감 따위 느껴본 적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명감이라는 것도 소속감과 성취감을 느껴야지 얻을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진 상태였다.

‘이현욱 병장님이, 나한테 여기를 맡겼다.’

그리고 안민태 자신도, 이제부터 훌륭한 탱커이자 선임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기에 물러설 수 없었다.

“하하- 병신, 제 명줄을 끊네?”

여자가 긴 칼을 높이 들어 올렸다.

빠-앙!

바로 그 순간에 울려 퍼지는 클랙슨,

어디선가 밝은 빛이 들이닥쳤다.

부대 밖, 도로였다.

퍼-버-버-버-버-벅!

SUV 한 대가, 쌍라이트를 켠 채 좀비들을 들이받으며 위병소를 향해 질주했다.

바리케이드 때문에 지그재그로 움직였지만, 묘기처럼, 막힘없이 치고 들어왔다.

“이건 또 뭐야, 씨발!”

그렇게 여자를 들이받기 직전, 여자가 점프하여 피해냈다.

끼이이-익!

차는 정확히 위병소 앞에서 멈춰 섰다.

“······어? 저, 저거 중대장님 차 아닙니까?”

최태용이 말했다.

그래, 그건 곽용준 대위의 SUV가 확실했다.

그런데 운전석보다 조수석 문이 먼저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군가 내렸다.

저벅- 저벅-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 속에서, 검은 옷······ AMT 전투복을 입은 이가 걸어 나왔다.

천천히 그 윤곽이 명확해졌다.

반쯤 풀어 헤쳐진 전투화, 완전히 열린 전투복 상의, 병장 계급장, 무테안경······.

모두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너무 의외의 등장이었기 때문일까?

그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잠깐의 정적 속에서, SUV의 엔진음만이 울렸다.

이내 안민태가 입을 열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최, 최영준 병장님?”

AMT 전체 병사 중 최강이라고 불리는 자,

그리고 훗날 검성이라고 불리게 될 자,

그런 남자의 의외의 휴가 복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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