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34화 (34/221)

34. 파도 위로 내리는 비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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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하는 자정이 다되도록 퇴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공략 보고서’ 작성 때문이었는데, 근래에 워낙 많은 사건이 터져서 그런지, 처리해야 할 일이 쌓이고 쌓인 상태였다.

“으, 허리야······.”

이렇듯, 공략소대장 보직은 몸과 정신, 양면이 모두 고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만큼 진급은 탄탄대로, 급격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게 된다.

탁- 탁- 탁- 탁-

그녀는 키보드와 모니터를 번갈아 보면서 흔히 말하는 독수리 타법을 구사했다.

잦은 야근의 원흉은 사실 이 느린 타자 때문이라는 게, 강익준 하사의 주장이었다.

그녀는 강하게 부정했지만, 솔직히······ 어느 정도는 일리 있는 말인 것 같긴 했다.

“······을 통한, 공략, 사후 대응 및, 어, 음- 확보, 그, 결과 보고 음, 끝!”

그 길고 긴 행진 끝에 마지막으로 엔터를 친 뒤,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드디어 끝났다! 으-”

시계를 확인하니 어느덧 23시 43분이었다.

“음, 그래도 1시간 정도는 운동할 수 있겠다.”

그녀는 하품하며 사무실 불을 끄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렇게 건물에서 막 나왔을 때였다.

윙-

머릿속을 울리는 어떤 기분 나쁜 느낌······.

그녀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뭐야?”

의식 너머에서, 본능적인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위험하다.’

······대체 뭐가?

그건 그녀도 몰랐다.

그저 이유를 알 수 없이, 막연히 그렇게 느껴졌다.

후우우우-

그녀는 이유를 찾기 위해 우뚝 멈춰 서서 어둠이 내린 영내를 천천히 훑기 시작했다.

그녀가 방금 나온 건물, 본청 입구에 서면 3개의 건물이 내려다보였다.

왼쪽으로 2중대의 2병영, 중심에 PX, 오른쪽으로 1중대와 본부중대의 1병영이었다.

그리고 그 두 병영 안에서······ 정체 모를, 이질적인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이건······.’

신성력을 다룰 수 있는 플레이어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악함······.

‘어둠의 힘, 언데드의 음기다.’

1대대 소속의 플레이어 중에선 이런 힘을 다루는 병사나 간부가 없었다.

즉, 외부의 존재가 1병영에서 어떤 힘을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확실히, 위험한 상황이다.

그녀는 전투복의 지퍼를 끝까지 올린 뒤, 내리막길을 박차고 달려갔다.

턱-

1병영 건물의 벽에 바짝 붙어서 자세를 낮췄다.

발소리를 줄이고, 천천히,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

건물 안은 평소보다 어두웠다.

아무래도 비상등과 취침등이 전부 꺼진 것 같았다.

그리고······.

‘······피 냄새?’

그녀가 느낀 무언가가 단순한 불길함이 아니라, 불행으로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피 냄새가 흘러나오는 곳은 건물의 좌측 출입구 첫 번째 문, 5분대기조 생활관이었다.

그녀는 그곳으로 천천히 접근했다.

이어서 손가락 끝에 마나를 불어 넣어, 아주 작게 ‘홀리 라이트’를 켰다.

윙-

그렇게 일어난 한 줌의 백색 불빛이 어둠을 층층이 밀어내어, 생활관 안을 비췄고······.

“······.”

서은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츕- 츕-

내부는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건, 5분대기조의 살점과 피였다.

그들은······.

‘전멸했다.’

그것도 일말의 저항도 못 한 채, 동시다발적으로 즉사한 듯했다.

츕- 츕-

그리고 그 검붉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츕- 츕-

그가 5분대기조의 시체 속에 쭈그려 앉아 누군가의 목덜미를 빨고 있었다.

츄······.

이내 그 소리가 멈췄고, 놈의 붉은 눈동자가, 서은하를 향해 움직였다.

***

5번 초소 근처로 다가가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어떻게 우리 분대 에이스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답니까?”

“헉! 우리 중대 최고의 영웅께서 어떻게 이렇게 누추한 곳에······.”

안민태와 최태용, 그 둘이 이현욱과 박준모의 전번 초 근무자였다.

“······오버 좀 하지 마라.”

그래, 한 분대의 4명이 한 초소에 있다니 자못 신기한 장면이긴 했다.

그러나 사실, 이는 이현욱의 의도한 것이었다.

‘내 명령을 잘 따르는 애들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근무표를 짜는 행정병에게 부탁하여, 이들이 딱 이 자리에 만날 수 있게 했다.

오후에 정상식 사령관과 식사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둘러댔기에 손쉽게 바꿀 수 있었다.

“이현욱 병장님, 아까 컨디션 안 좋아 보이던데 근무 서다가 쓰러지시는 거 아닙니까?”

“넌 컨디션이 너무 좋아 보이는데, 오두방정 떨면서 내려가다가 넘어지지나 마라.”

“하하하, 이게 누구 덕분이겠습니까? 전부 오 마이 캡틴, 이 병장님 덕 아니겠습니까?”

“······어디 가서 그런 소리는 제발 하지 마라, 부탁이다.”

안민태는 근래 신이 나는 걸 주체 못 하고 아주 싱글벙글하였다.

“그럼, 충신 D등급 안민태는 내려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잠깐.”

이현욱은 초소를 내려가려는 두 사람을 잡았다.

“음, 무슨 일이십니까?”

두 사람이 돌아서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

그런데 이현욱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초소의 그림자 속에 가만히, 우뚝 서서······.

“이현욱 병장님?”

그저 손목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23시 59분-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방금, 어디선가 고함이 들렸다.”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초소의 계단을 내려갔다.

“······.”

그러자 장난기 넘치던 안민태와 최태용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박준모도 침을 꼴깍 삼키며 이현욱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또 무슨 일이······ 어느 쪽이었습니까?”

이들은 이제는 이현욱의 작은 태도 변화에도, 그 의미를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현욱의 단 한 마디만으로도 태도가 180도 변한 것이었다.

후우우우-

그 순간, 차가운 바람이 능선을 타고 넘어오며 사방의 나무들이 스산한 소리를 내었다.

“최태용, 나이트 비전 있지?”

“예, 있습니다.”

사수 그의 화살에는 나이트 비전, 즉 야간 투시경 기능이 장착되어 있었다.

“위병소 부근, 확인해봐. 소리는 그쪽에서 들렸다.”

“예.”

이 산등성이에서는 부대의 입구, 위병소 쪽이 내려다보였다.

“어, 음······.”

천천히 움직이던 최태용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서 멈춰섰고, 순간 헉, 하는 소리를 냈다.

“······.”

이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현욱 쳐다보았다.

그는 침을 한 번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게이트입니다.”

“뭐, 뭐 게이트? 게이트라고?”

안민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분명히, 위병소 뒤쪽, 그곳에 보랏빛의 일렁임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내 수상한 기색을 느낀 위병들이 그쪽으로 다가가는 듯했고······.

타-다-다-다-다-당!

날카로운 총격이 울려 퍼지며, 밤의 적막함을 헤집어놓았다.

이는 지옥의 경주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총이었다.

“제, 젠장! 이게 또 무슨 일이야!”

안민태는 그렇게 말하며 자세를 낮추고 방패를 들어 올리며 분대원들을 보호했다.

위병소와의 거리는 멀지만, 눈먼 총알이 여기까지 날아들지도 몰랐다.

- 칙! 치-익! 여기는 위병소······.

이내 위병소 쪽의 비상 무전이 울렸지만, 그 내용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이현욱은 그걸 무시하고 다시금 최태용에게 명령을 내렸다.

“최태용,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가 뭔지 정확히 확인해.”

“예! 그게······ 어, 언데드, 좀비 계열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위병소 병력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젠장, 그럼 어떡합니까?”

“······너희가 가라.”

그의 말에 세 사람의 얼굴에 황당함이 번졌다.

“예? 5분대기조가 곧장 대응하지 않겠습니까?”

이현욱은 고개를 저었다.

“5분대기조에는 언데드에 대응할 힘, 그러니까 ‘신성력’이 없을 거야.”

언데드는 상대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생명력이 끈질긴 건 당연했고 심지어 많은 경우가 다시 살아나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그것들 상당함에 있어서 확실한 방법은 단 하나였다.

“그런데 너희는 마침 신성 무기로 무장하고 있잖아.”

“아······.”

원래 역사대로라면, 이 셋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커녕, 초반에 전멸하고 만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레벨도, 실력도, 무기도, 마음가짐도 모두 달라졌다.

오히려 이들 말고는 현 시점상 이 상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 그런데, 왜 저희 셋입니까? 이현욱 병장님은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안민태의 물음에 이현욱은 고개를 돌렸다.

반대쪽 능선 아래로 건물이 줄지어 있었다.

병영······ 대대의 전 병력이 머무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게이트는 한 개가 아니야.”

“······예?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말도 안 됩니다! 영내에 하필이면 이중 게이트라는 말씀입니까?”

아니, 이중 게이트가 아니다.

‘웨이브(Wave)다.’

이 게임의 가장 지옥 같은 이벤트 중 하나인 웨이브······.

이현욱은 그 말을 삼켰다.

이내 병영과 가까운 연병장 부근에서 일렁거리는 보라색 불빛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두 번째 게이트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백색의 인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저건, 스켈레톤이다.’

1차 분출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숫자였다.

당장 눈대중으로 살피기에도 족히 80마리는 될 법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웨이브 때 열리는 게이트는 분출이라는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쏟아져 나온다,’

당분간 스켈레톤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올 것이었으며, 초반에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수백, 수천 마리가 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군단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이 행진하는 방향은······ 역시나 병영이었다.

“아······ 맞습니다! 저쪽에도 진짜로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이내 최태용이 나이트 비전을 통하여 확실하게 확인했다.

“이제 알겠지? 5분대기조는 위병소 쪽으로 못 가. 그런데 만약 이대로 1차 분출을 차단 못 하면······ 저것들이 산 아래 도심으로 내려가고 만다. 그것만은 반드시 막아야 해.”

“미치겠네······.”

“그러니까 너희가 가야 해. 내가 병영 쪽으로 가서 그쪽 게이트를 막은 다음에 지원 병력을 끌고 위병소로 갈 테니까, 그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세 사람과 차례차례 눈을 마주쳤다.

이제,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 대신 다른 게 들어차 있었다.

그건 일종의 의기(意氣)였다.

몇 차례의 성공으로 쌓인, 투지와 자신감이었다.

“알겠습니다. 저희는 걱정하지 마시고 빨리 가보십시오. 저러다가 진짜 싹 다 죽겠습니다.”

안민태가 방패를 등에 메고 몸을 돌렸고, 최태용과 박준모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위병소를 향해, 산길을 뛰어 내려갔다.

‘그래, 맞아. 싹 다 죽었었지······.’

이어서 이현욱 역시 움직였다.

***

“-윽!”

서은하는 아스팔트 위로 나동그라졌다.

등부터 떨어지며, 그 충격이 척추를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하지만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촤-악!

무언가 날아들며, 바닥을 긋고 지나갔다.

검은 채찍이었다.

그것을 뱀처럼 움직이며 1병영의 어둠 속으로 말려 들어갔다.

“으흐흐······.”

이내 그 어둠 속에서부터 붉은 안광이 다가왔고, 그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정장 차림의 키가 큰 남자······.

그는 이미 피범벅이었다.

5분대기조의 피였다.

“신성기사단장의 둘째 딸을 이렇게 빨리 마주할 줄이야? 그것도 아주 무방비 상태인 데다가 존나게 예쁘기까지 하잖아? 으흐흐······.”

“······.”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오늘 밤 종일 널 가지고 놀아 줄 테니까, 너무 부끄러워하지는 말고, 부디 같이 즐겼으면 좋겠어.”

창백한 얼굴, 피범벅이 된 입, 그곳에서 시뻘건 혀가 빠져나와서 날름거렸다.

서은하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서은하는 괴한의 습격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의 시야 속, 좌측, 연병장 한쪽에서 보라색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게이트······.’

그리고 그곳에서, 스켈레톤 무리······ 아니, 군단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1차 분출 때 저렇게 많은 숫자의 몬스터가 나올 수 있지?’

지금까지만 해도 약 120마리였다.

그녀가 아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위협하고 있는 저 괴한은 몬스터가 아니었다.

‘······플레이어다.’

플레이어는 인간의 무기이고, 그렇기에 인간을 헤치기도 한다.

그 강인한 힘을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이는 심심찮게 있었다.

더 나아가서 테러리스트 집단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런데 게이트와 함께 등장하여 AMT를 공격하는 이 남자는 대체······.

“······넌 누구지?”

“으흐흐, 너무 조급해하지 마. 오늘 밤, 천천히 즐기면서 알게 될 거야.”

서은하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했다.

‘우선, 어떻게든 무기를 꺼내야 한다.’

하지만 등을 보이고 도망치다가는 목이 날아가고 말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의 생존만이 걸린 게 아니었다.

저 막사의 수많은 병력······.

‘5분대기조는 전멸해서 초동 대처는 불가능하다.’

물론, 어디선가 의문의 총격이 울리며 막사에 불이 켜졌다.

전 병력이 기상하여 무장하기 시작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절그럭- 절그럭-

연병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스켈레톤들이 이미 병영 근처까지 도달했다.

저것들이 안으로 들어가면, 무장할 시간도 없이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질 것이었다.

“젠장······.”

“그래그래, 아주아주 당황스러워서 흐흐, 막 심장이 빨리 뛰고 몸이 뜨거워지지?”

그 순간, 놈이 달려들며 채찍을 휘둘렀다.

짜-악!

서은하는 자세를 낮추며 채찍을 피하고 놈의 몸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놈의 양팔을 움켜쥐었다.

“-윽!”

하지만 생각보다 힘이 엄청났다.

넘기려고 했지만, 넘어가지 않았다.

“오! 꽤 적극적인데? 이런 스타일 너무 좋아, 굴복시키는 맛이 있잖아! 으하하!”

놈은 힘의 차이를 느끼며 서은하를 내려다보며 시시덕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안다리를 걸어서 놈의 균형을 무너뜨렸고, 기어코 엎어치기에 성공했다.

뻐-억!

놈의 몸뚱이가 아스팔트 위에 내리꽂히며 육중한 소리를 냈지만, 그와 동시에 놈의 오른쪽 손톱이 서은하를 발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녀는 팔을 놓고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조금만 늦었다면, 발목이 끊어질 뻔했다.

치이이이······.

그런데 놈의 팔, 서은하가 붙잡았던 부분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홀리 라이트를 켜고 붙잡는 것만으로도 유효한 데미지가 들어간 것이었다.

이는 놈의 힘의 기반이 ‘어둠의 힘’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역시 차기 신성기사단장 감이라는 건가? 하, 이러면 오늘 밤에 부둥켜안을 수는 없겠는데? 아, 그래그래, 묶어 놓으면 되잖아?”

놈이 몸을 일으키며 킬킬 웃었고, 뾰족한 이빨이 드러났다.

‘저 송곳니······.’

놈은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몬스터 같았다.  특히나 피를 빠는 장면을 목격한바 언데드 계열, 그중에서도 ‘흡혈귀’처럼 느껴졌다.

‘정말 그렇다면······ 무기만 있었으면, 내 상대가 아닐 텐데, 젠장.’

그러나 아쉬워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지금은 이기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했다.

하지만······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은 다음 공격을 피하는 데 집중한다. 그게 최선이야.’

그때였다.

타-다-다-당!

어디선가 총격이 울렸고,

“악! 썅!”

흡혈귀가 고통을 호소하며 뒷걸음질 쳤다.

‘누구지?’

서은하의 등 뒤, 능선에서부터 누군가 조준 사격을 하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윽! 씨발! 갑자기 저건 또 뭐야!”

그리 유효한 데미지는 아니겠지만, 살이 헤집어지는 고통은 똑같았기에, 놈은 양손으로 머리를 가린 채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타-당! 타-당!

그러자 이번에는 무릎을 향해 조준 사격이 이어졌다.

총탄이 무릎과 정강이에 적중하며, 놈의 몸이 휘청거렸다.

이내 그 사수가 서은하의 바로 뒤까지 다가왔다.

“공략소대장님, 괜찮으십니까?”

그는 이현욱이었다.

“이현욱, 어떻게······.”

“다행입니다.”

“뭐가 다행이야? 지금 상황, 안 보여?”

서은하가 연병장 쪽 게이트를 가리켰다.

이현욱이 싱긋 웃었다.

“예, 그렇긴 합니다만, 저는 한발 늦지 않고 제때 구하러 왔지 않습니까?”

그건 다분히, 매번 뒤늦게 등장한 서은하를 놀리는 말이었다.

“······구하러 와? 네가 나를?”

이현욱이 고개를 내저으며 K2C1 소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동시에 그의 등 뒤에서 2개의 칼이 저절로 뽑혀 나왔다.

그것들은, 수직으로 우뚝 선 채 달빛을 받으며 예리하게 번뜩였다.

이현욱은 서은하를 지나쳤다.

그리고 흡혈귀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모두를 구하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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