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33화 (33/221)

33. 파도를 맞이할 준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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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의 은색 쇠 말뚝.

이는 정상식 사령관에게 요청하여 ‘AMT병기창’에서 특별 제작한 물건이었다.

‘죽지 않은 것들의 심장에 박아 넣기에, 이만한 게 없지.’

이현욱은 그것들을 하나둘 허공으로 띄웠다.

웅-

30개 중 10개의 쇠 말뚝이 이현욱의 눈앞에 일렬로 정렬했다.

“우와······.”

개당 60cm에 500g 정도, 미스릴 합금이라 그런지 상당히 가벼웠다.

“이현욱 상병님, 그럼 이게 전부 곧 몇 배로 비싸진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 맞아.”

신성력이 붙은 아이템이 비싸진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원인은 러시아 시베리아가 아니라 바로 이곳, 서울에서 발생한다.

‘그 전에 신성력을 최대한 키워야 한다.’

이현욱은, 강정두 장인에게 주문한 신성력이 담긴 쇠 구슬을 흡수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약 5kg쯤을 소화했을 때, 새로운 능력이 생성되었다.

- 신성력 방출 1단계가 생성 중입니다. (34%)

독이 인첸트 된 금속을 먹었을 때 내성이 생긴 것처럼, 신성력이 인첸트된 금속을 먹으니 신성력 그 자체가 체내에 축적되고, 더 나아가 생산하고 방출해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키우면, 그 능력이 발현될 거다.’

덜컹!

그때, 누군가 무기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3분대 소속의 일병이었다.

“저······ 이현욱 상병님? 이제 곧 진급식 시작한다고 합니다. 지금 하시는 작업 빨리 마치시고 그, 예행 연습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오후에 병장 진급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

대대장, 김강석이 이현욱의 가슴팍에 병장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병장! 이현욱!”

등 뒤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이현욱 병장, 축하한다.”

“예! 감사합니다!”

보통은 중대장이 진급식을 진행하지만, 이번에는 대대장이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이어서 중대원들 앞에서 이현욱의 공을 치켜세우기 시작했는데······.

“여러분 모두 알고 있겠지만, 이현욱 병장은 지난 며칠간 믿을 수 없는······.”

이게 참, 억지로 귀감으로 만들어버릴 생각인 건지, 꽤 민망할 정도였다.

어쨌든, 5분대에게 있어서 그날 밤은 축제 분위기였다.

“오늘은 그냥 넘길 수 없지 않습니까? 솔직히 이건 파티 열어야 합니다.”

“저도 안민태 상병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저랑 준모랑 당장 PX 갔다 오겠습니다!”

특별공략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하여 사령관으로부터 엄청난 포상을 받았고, 분대원 6명이 D등급으로 승급했으며, 이현욱은 병장으로 특별 진급하기까지 했다.

이런 겹경사 중의 겹경사를 그냥 넘길 수 없다고, 이현욱을 제외한 분대원 전원이 의견을 모았고 그렇게 냉동 음식, 과자, 탄산으로 이루어진 잔칫상이 차려졌다.

“저희가 겪고 있는 이게 바로 그 떡상이라는 거 아닙니까?”

“아니지 새끼야, 멱살 잡고 캐리라는 거다!”

“아! 크, 맞는 말씀입니다! 이게 다 이현욱 상병- 아니, 병장님 캐리 덕분이죠!”

분대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화목했다.

앞으로 좋은 일만 남은 것처럼, 두어 시간을 먹고 떠들었다.

그러나 이현욱의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마지막 파티가 되어선 안 된다.’

그는 힐끔 시계를 쳐다보았다.

‘드디어 내일, 23시 59분, 자정 직전······.’

곧 서울을 지옥으로 몰아넣을 희대의 사건, 4차 웨이브가 시작된다.

그는 마지막으로 ‘체내 용광로’를 달구기 시작했다.

***

그 시각······.

도시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빌딩의 사무실, 나지막한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백색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가 창가에 서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

언뜻 봐도 고고하기만 한 이 장소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는 남자의 발 옆에 앉아 있는 덩치 큰 셰퍼드였다.

으르르······

그 녀석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어딘가를 노려보며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 으으······.”

셰퍼드의 눈이 향한 곳, 누군가가 엎어져 있었다.

젊은 남자,

눈과 입이 막히고 손과 발이 묶인 상태였다.

“······아, 예, 접니다.”

그때, 통화가 연결되었고, 백색 정장의 중년 남자는 몸을 돌려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 Guild MASTER : KI BECK JUN

책상 위 명패가 그의 신분들 드러냈다.

이 남자는 대한민국 길드 서열 3위, 태산(泰山) 길드의 마스터, 기백준이었다.

“······예, 맞습니다. 이번에 ‘조달자’ 역할이었던 ‘후보’가 영 맹한 놈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 예, 사실상 실패한 거라고 보고 후속 조치를 준비 중입니다.”

벽 한쪽, 수많은 아이템이 걸려 있었는데, 그 중심에 오우거 한 마리가 통째로 박제되어 있었다. 그것도 보통 오우거가 아니라, 나무로 만들어진 왕관을 쓴 ‘오우거 족장’이었다.

“······예, 이번에 ‘악의 구도자’에게 받아야 했을 그 ‘열쇠’가 앞으로의 우리 계획에 아주 중요하다는 걸, 제국을 완성하기 위한 대들보 중 하나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럼요, 반드시 찾아내야죠. 어차피 누가 그걸 손에 쥐었든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 턱이 없을 겁니다. 예, 혹시 ‘블랙 마켓’에 나올까 봐 인력 총동원해서 감시 중입니다.”

그는 태블릿PC를 조작했고 화면에 사진이 한 장 떠올랐다.

사진 속 배경은 웬 음식점의 주방이었다.

그 바닥에 널브러진 온갖 뼛조각, 그리고 불에 그을린 나뭇조각들······.

“좀도둑 놈은 아마도 불을 무기로 쓰는 놈인 것 같은데, 특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사진 속 장소는 서울역 역사 안,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 안이었다.

즉, 얼마 전에 게이트가 열렸던 곳이었다.

“아, 안 그래도 역 경비대 쪽을 조사했습니다. 그쪽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AMT 구조대가 뒤늦게 합류했다는 걸 보니까, 좀도둑은 그쪽 출신이 아닐까 합니다.”

이어서 지도 한 장을 켰다.

“······그리고 여러모로 그 남산의 AMT 1대대인가, 요즘 거기가 영 거슬려서 말입니다. 이참에 내일 웨이브 시작 때 게이트 3개 정도 열리게 유도하고, 거기에다가 직원들 몇 명 보내서 초장에 쓸어버리려고 합니다. 어떻게, 괜찮겠습니까? 예, 그렇게 쓸어버리면 그 열쇠도 시체 더미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 중이기도 하고요.”

그 순간, 핸드폰 너머로 무슨 말을 들은 건지 기백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우득-

그가 쥐고 있던 태블릿PC의 액정이 우그러지며 화면이 거미줄처럼 깨져버렸다.

“하하하······ 아이템을 어떻게 숨기겠습니까? 무슨 밀지 같은 것처럼 삼켜서 없애버리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게 무슨 물건일지도 모를 텐데요. 하하하······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연스럽게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표정은 전혀 웃지 않았다.

“예, 체어맨, 한국 쪽 일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그럼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고는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리곤, 무표정한 표정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휙-

그 순간, 셰퍼드가 바닥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읍! 으-읍!”

목표는 당연히 바닥에 묶여 있는 남자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셰퍼드의 몸뚱이가 부풀어 오르더니, 기괴한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카-아-악!

이내 한낱 개가 아닌, 인간 따위는 한입에 삼킬만한 거대한 마수가 되었다.

“읍! 읍! 읍!”

그것의 늦은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우-득! 우-드-득!

그러나 기백준은, 자신의 방에서 벌어지는 그 끔찍한 장면에 눈길 한 번 던지지 않았다.

그는 의자에 기대어 앉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 책상 위 인터폰이 켜졌다.

- 마스터, 다섯 도살자가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문이 열리고 총 다섯 명의 남녀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들에서 풍겨오는 분위기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마치 시체 같다고 해야 할까, 피부가 창백하고 눈은 흐리멍덩했다.

그래,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스산함이 느껴졌다.

“다섯 도살자, 너희가 해줄 일이 있다.”

“예, 마스터, 명하십시오.”

기백준이 손짓을 하자, 중심에 서 있던 여자가 다가왔다.

그녀는 기백준의 시선에 따라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태블릿PC를 집어 들었다.

거미줄처럼 깨진 화면에는 남산 지도가 띄워져 있었다.

“거기에 잠입해서, 웨이브 시작과 함께 살아 숨 쉬는 게 없게 해.”

“방법은, 상관없습니까?”

“음······ ‘권속’으로 만들고 싶다는 건가?”

“예, 맞습니다.”

여자가 씩 웃었다.

“알아서 해. 그리고 그런 다음에······.”

기백준은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서울 전체로, 그 죽음을 퍼트린다.”

“예, 알겠습니다.”

“신년에 발간되는 대한민국 전도에는, 서울은 없어야 해.”

***

“응, 할머니, 저녁은 먹었어?”

5생활관, 박준모는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나야 당연히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할머니 건강부터 신경 써.”

그는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에게 매일, 이 시간마다 안부 전화를 했다.

그런데 평소에는 다소 위축된 상태로 안부만 물었다면, 지금은 아주 싱글벙글하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할머니, 내가 이번에 공을 세워서 큰돈을 벌 것 같아! 응, 나라에서 잘했다고 주는 거야.”

할머니를 위해 쓸 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응, 다음 휴가 때 같이 할머니 겨울 신발 사러 가자! 그리고 그 골칫덩이 보일러도 바꾸고······ 아니, 아니야, 정말로 그 정도는 전혀 부담 안 될 정도로 많이 벌었어. 곧 겨울인데 계속 물 새는 보일러로 어떻게 버티려고 그래? 하······ 무슨 집에서 양말을 세 겹씩 신어?”

박준모는 순간 목소리가 커졌다가, 고개를 돌려 눈치를 살폈다.

가장 안쪽 침대, 이현욱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다.

5분대 선임들은 막내가 생활관 안에서 통화한다고 해서 눈치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조용히 통화하면 괜한 눈치 보지 말라며, 뭐라고 하곤 했다.

그런데 저렇게 죽은 듯 자고 있으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그리고, 어디 아프신 것 같은데······.’

이현욱은 어젯밤부터 열이 나는 것처럼 얼굴이 붉어졌고 식은땀까지 흘렸다.

“아니야, 선임 분들이 되게 잘해주셔서, 이번에도 선임들 덕분에 다 잘된 거야.”

그때, 이현욱이 부스스 일어났다.

“······할머니, 잠깐, 잠깐만 기다려 봐.”

박준모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이현욱에게 다가왔다.

“저, 이현욱 상- 아니, 병장님, 혹시 어디 안 좋으십니까?”

이현욱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 새벽, 저랑 근무이신데, 어떻게 대체자를 알아봅니까?”

“아니, 괜찮아.”

“예, 알겠습니다.”

이현욱은 한동안 허공을 바라보았다.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 체내 용광로의 가동을 중지합니다.

지난밤, 또 한 번 체내 용광로를 최대한으로 가동하여 금속을 흡수했다.

그 결과······.

- 현재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 : 39,399g

- 마나 (371/371)

- 신성력 방출 2단계가 생성 중입니다. (11%)

이렇게 다양한 능력 상승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나 마지막 한 줄, 신성력 방출이 2단계에 이르면서 특별한 변화가 동반되었다.

- 축하합니다! 특별한 조건을 만족하여 새로운 ‘스킬’이 주어집니다.

새로운 스킬이 생긴 것이었다.

[스킬 정보]

- 이름 : 오러(세인트)

- 등급 : D

- 효과 : 마나(10)를 소모하여 특정 무기에 ‘오러(세인트)’를 부여합니다.

* ‘신성력을 내재한 금속’을 일정량 이상 삼키면 스킬 등급이 향상됩니다.

‘다행이야, 딱 맞췄다.’

오러란, 아우라(Aura)와 같은 단어였다만, 그 용례가 조금 달랐다.

무기에다가 ‘마나’를 주입하여 강화하는 기술을 뜻하며, 검기(劍氣)라고 불리기도 했다.

즉, 이건 무기에다가 신성력을 부여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처음부터 이걸 얻기 위하여 신성력을 품은 금속을 그렇게 삼켰던 것이었다.

“할머니, 아무튼 나 다다음 주에 휴가 나가니까, 그때 보일러 설치한다! 그렇게 알아 둬!”

이현욱은 통화 중인 박준모를 바라보았다.

다음 달에 휴가라······.

안타깝게도, 나갈 수 없게 된다.

그때, 생활관 문이 열렸다.

“······아니, 솔직히 불닭만두가 가성비는 최고입니다.”

“하여간 짬찌 새끼, 아직도 먹을 줄을 몰라! 크림우동에다가 빅팜이라니까?”

안민태와 최태용이 왁자지껄 떠들며 들어오더니 TV를 켰다.

“야, 뉴스 말고 딴 거 틀어 봐.”

“어, 잠깐 이것 좀 보십시오.”

- ······다음 소식입니다. 검성 시해자 오키타 카이토가 부산항에 밀입항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는 소식, 어제 오후에 전해드렸었죠. 오늘 오키타 카이토를 잡기 위해, 경찰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추적팀이 꾸려졌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김기태 기자?

“와······ 저 새끼 저거 우리나라에는 왜 또 들어온 거야?”

안민태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카이토 저 새끼가 자기가 전 검성을 단칼에 베였다면서, 검성 칭호는 대대로 약소국인 한국에는 안 어울린다고 일본 인터넷 방송에서 지랄했다던데?”

“아, 그거 진짜입니까? 전 루머라고 들었습니다.”

“······몰라, 그렇다던데? 몰라, 나쁜 새끼인 건 맞잖아.”

검성(劍聖), 검을 다루는 플레이어 중 최강을 뜻하는 칭호였다.

본디 1대 검성은 한국 사람인 국표성으로, 한국 랭킹 4위였다.

그런데 사업차 일본에 방문했다가 교토의 한 호텔에서 범법 행위로 국제 수배 중인 범죄자 플레이어, 일명 ‘레드 플레이어’인 오키타 카이토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그 이후로 사실상 검성의 칭호는 오키타 카이토가 가지게 된 것이었다만, 한국에서는 여러모로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해서 ‘검성 시해자’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중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최영준이 오키타 카이토를 베며 검성의 칭호를 되찾아 오게 된다.

‘오키타 카이토, 역시나 빌런이다. 즉, 놈이 움직였다는 건 4차 웨이브와 관련이 있다.’

이현욱은 그렇게 생각했다.

검성 시해자, 오키타 카이토를 구태여 한국 땅에 발 딛게 만든 것, 그것마저도 4차 웨이브를 성공적으로 일으키기 위한 초석이라는 걸, 이제는 알았다.

‘저 일 때문에 김강석이 부대를 잠시 떠나 있게 된다.’

남산의 산군으로 불리는 드루이드 플레이어 김강석, 그가 조종하는 각종 ‘야수’는 초월 감각을 지녔다. 그렇기에 오키타 카이토를 추적하기 위하여 며칠간 파견 나가게 된다.

즉, 1대대의 최고 전력이 현재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놈들의 계획은 막힘없이 이루어지거늘, 가디언은 언제나 한발 늦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디언의 핵심 부품 몇 개가 큰 결함을 가진 채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내일쯤이면, 그 계획이 조금 틀어질 거다.’

이현욱은 그렇게 생각하며, 신성력이 인첸트된 쇠 구슬을 삼켰다.

“이현욱, 무려 병장님! 오늘은 훈련 안 하십니까?”

안민태가 전투복으로 갈아입으며 물었다.

“어, 오늘을 좀 쉬려고.”

“흠, 웬일입니까? 좀 피곤해 보이시는 것 같기도 한데, 어디 안 좋으십니까? 아, 어제 파티 때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적당히······.”

“아니, 괜찮아. 입 다물어.”

“옙!”

- 체내 용광로가 작동하여 금속 흡수 효율이 급상승합니다. (+200%)

피곤하긴 했다만,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걸 끌어올려야만 했다.

***

경계 근무 2번 초는 최악의 순번으로 불린다.

10시에 취침 불을 끄고 막 잠이 들었을 때 다시 일어나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현욱은 구태여 그 시간대에 근무를 넣어달라고, 행정병에게 부탁했다.

왜냐하면, 이 시간대에 무장하고 있을 방법이 ‘경계 근무’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현욱과 박준모는 밤이 내린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현욱의 무장 상태는 평소보다 많아졌다.

K2C1소총을 들고, 등 뒤에 구름의 검과 KG19, 총 2자루의 검을 장비했다.

그리고 허리춤에는 ‘페일노트’와 쇠 구슬 3개를 걸어두었다.

좀 과다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해도 그의 수많은 무기 중에 일부에 불과했다.

“박준모, 다다음 주에 휴가야?”

“아, 예 지난달에 신청해뒀습니다.”

“이번에 집에 가서 공로 이야기해주면, 가족들이 엄청 자랑스러워하겠다?”

그러자 박준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그래서 벌써 설렙니다!”

“그래, 너무 그래 보이긴 해.”

“하하! 사실 제가 지금까지는, 가족······ 할머니께 언제나 풀이 죽어 있는 모습만 보여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는 언제나 제가 어떻게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불안해하셨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불효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걱정을 끼쳐 드린 겁니다.”

“왜 그랬는데?”

“그게······ 저 스스로가, 저 자신에게 불만족해서 그랬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현욱은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더 나아질 수 없다는 박탈감에 절어 있는 이는, 주변인들까지 불행하게 만든다.

“아! 그런데 이제는 이현욱 상병님 덕분에 그 생각이 달라져서 드디어 제가 할머니 앞에서 조금이라도 당당해질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하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떠들어대더니, 머쓱했는지 볼을 긁적였다.

이현욱은 녀석의 말을 들으며 입맛이 씁쓸해졌다.

‘박준모······.’

예정대로라면, 박준모는 내일 죽는다.

그렇기에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잠재력 있는 건지 끝내 확인하지 못한다.

그리고 할머니께, 끝내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효도를 하지도 못한다.

“박준모. 효도하고 싶으면, 너부터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는 거 알지?”

“아······ 물론입니다. 위험한 일을 하고 있으니, 예.”

“그러기 위해선 항상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남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밤, 새카만 하늘, 하지만 그 안에 보랏빛의 이질감이 돌고 있다는 걸, 이현욱은 발견했다.

웨이브의 징조 중 하나였다.

“······비가 올 것 같네.”

“예? 비 말입니까? 음, 일기예보에는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이현욱은 말없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23시 45분,

······14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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