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청담동, 레드 게이트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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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 공략 팀장 박기택은 힐러로부터 힐을 받으며,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는 나름대로 팀장인 만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야! 시발, 안 되겠다! 야! 태섭아!”
“예?”
“보스 몹······ 확 그냥 저격해버리자!”
그의 말에 청화의 공략 팀 모두가 고개를 쳐들었다.
꿀꺽-
특히나 김태섭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마른 침을 삼켰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었다는 건, 자신이 무언가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방금 저격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김태섭이 바로 그 ‘저격수’ 특성이었다.
“······예? 저, 저격이요?”
“여기서 살아 돌아간다고 쳐도, 우리가 길드에서 쫓겨나지 않을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받은 4차 공략 팀이었다.
기여도 0%로 공략을 마감한다면 길드 수뇌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
“지금······ 스, 스틸하라는 말씀이시죠?”
스틸(Steal), 말 그대로 도둑질을 의미한다.
다만, 게임에서 다른 플레이어의 소유나 다름없는 몬스터, 아이템 등을 빼앗은 걸 뜻했다.
“야, 너 저격수 아니냐? 저격수가 뒤에서 숨어서 한 방 쏴서 몰래 죽이는 게 당연한데, 스틸은 지랄, 그딴 법이 어딨겠냐? 그거 시스템이 정한 것도 아니야! 안 그러냐?”
“아, 음······.”
다분히 억지지만, 그나마 제일 나은 명분이었다.
“그렇게라도 기여도를 쌓아야지만 ‘시드권’을 발휘해서 그 뭐시기, ‘아킬레우스의 창’을 확보할 거 아니겠냐······ 혹시라도 AMT가 그 창의 소유권을 주장해서 일 복잡해지기라도 하면······ 뭐, 길드가 당연히 잘 거래해서 확보하긴 하겠다만, 우리는 그냥 나가리 되는 거야.”
아킬레우스의 창, 가격을 책정할 수 없는 그 영웅 등급의 아이템이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전 소유주인 대한민국 재계서열 2위 <구광 그룹> 둘째 손자의 시체와 함께······.
‘이게 다 그런 잘난 새끼가 잘난 아이템을 두르고도 안에서 뒤진 탓이야!’
이곳, 레드 게이트 1차 공략이 실패했을 시점이었다.
이제 막 청화 길드와 계약했던 한국 재계서열 2위 <구광 그룹>의 손자 구동훈이 자신이 한 번 공략해보겠다고, 제 패거리를 데리고 나섰었다.
공략 실패 사례가 있는 던전을 공략하고, 화려한 신예로 이름 좀 날리겠다는 생각이었을 텐데, 제 할아버지, 구광 그룹 회장의 지지까지 얻어낸 모양이었다.
그래서 구광 그룹이 청화 길드에 로비한 끝에 구동훈을 중심으로 팀이 조직된다.
그때 제 할아버지에게 지원받은 아이템이 무려 ‘아킬레우스의 창’이고······.
결과는 뭐······.
다만, 구광 그룹 측에서는 구동훈의 시체는 몰라도 그 창이라도 꺼내달라고 난리였다.
그건 영웅 등급 중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값을 매기기 어려운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길드 내 소문에 의하면, 회수 성공 시 80억 원을 보상해주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단순히 돌려주는데 80억 원이라니······.’
그 진짜 가치는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청화 길드가 굳이 그걸 넘겨주는 건, 구광 그룹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서였다.
이렇듯, 그 아이템에는 청화 길드의 비즈니스가 걸려 있기도 한 것이었다.
“후, 이미 상황이 안 좋긴 하다만, 우리 길드가 시드권 발휘해서라도 그거 확보하려면, 아무리 그래도 어느 정도 기여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
“하긴······.”
시드권이란, 최초로 던전 소유권을 얻은 측이 가장 먼저 ‘보상’을 선택할 권리였다.
이번의 경우, 당연히 ‘아킬레우스의 창’을 고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기여도 0%라면······ 도대체 무슨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박기택은 마지막 수단을 선택했다.
스틸······.
“야, 태섭아, 이건 너한테는 진짜 기회다. 나는 어차피 시발, 나락이겠지만······. 너는 인마, 결정적인 순간에 보스 몬스터 심장에 화살만 꽂으면 네가 길드의 영웅이 되는 거고, 나가서, 네가 그토록 원하던 페라리 뽑는 거야! 아킬레우스의 창을 지켜낸 게 바로 넌데 보너스 빵빵하게 안 주겠냐?”
“페, 페라리······.”
김태섭은 잠깐 고민하다가 화살을 쥐고 일어났다.
어차피 목숨 걸고 한탕 하겠다고, 자신감 있게 들어온 게 아니던가?
“후······ 알겠어요.”
“오! 마음먹은 거냐?”
“안 그래도 거기 상병인가 뭔가 하는 놈 재수 없었는데, 제가 뒤통수 한 대 크게 쳐보죠. 그래도 제가 급소 노리는 한 방은 진짜 세잖아요?”
그는 제 볼을 찰싹 때리며 어깨에 둘러멨던 ‘철태궁’을 끌어 내렸다.
그러자 앓아누워 있던 박기택이 벌떡 일어나서 김태섭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멋있다, 새끼야! 할 수 있다!”
팀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C등급 2티어 저격수 김태섭의 ‘스틸’ 작전이 시작되었다.
***
“아직 방심하지 말고 주변을 경계한다.”
이현욱의 말에 8명의 소대원이 모든 무기 끝을 사방으로 겨눈 채 모든 곳을 훑었다.
후우우우-
바람이 한바탕 일자 격한 전투로 인해 피어올랐던 모래 먼지가 죄다 날아가 버렸다.
움직임은, 없었다.
“현재······ 식별되는 적은 없습니다.”
전투는 끝났다.
기습을 해왔던 44마리 중 32마리를 사살했고 나머지는 도주했다.
완벽한 대승이었다.
모래 안의 쇠 구슬, 그것들이 놀 무리의 발아래에서 터지는 순간부터 이미 승기는 기울었다. 단 한 방에 거동불능이 된 놀만 이십여 마리였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발아래에서 갑자기 뭐가 터진 이상 그런 일이 또 벌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놈들의 머릿속에 움텄고, 놈들은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못했다.
즉, 단 한 방만으로 놈들의 전의를 말끔히 지워버린 셈이었다.
그 이후는 이현욱의 명령에 따른 체계적인 대응으로 말 그대로 깡그리 쓸어버렸다.
“그런데 저······ 방금 전투로 18레벨이 됐습니다.”
안민태가 말했다.
“오, 대박! 또 레벨 업 하신 겁니까?”
“그래, 하하, 이게 뭔가 싶다······.”
그의 얼굴에는 감격이 어려 있었다.
몇 달째 정체되어 있던 레벨이 단 며칠 만에 3이나 올랐기 때문이었다.
코볼트 게이트, 서울역 언 럭키 이벤트, 이번 레드 게이트까지······.
유례없는 경험치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와! 축하드립니다, 안민태 상병님!”
“방금 저도 17레벨 됐는데, 곧 따라가겠습니다!”
이렇듯 F등급인 박준모를 제외한 모두가 레벨 업을 경험했다.
이는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중대의 1진 전투 부대인 1중대의 평균 레벨이 23레벨 정도였다.
정말로, 머지않아서 5분대가 1분대를 따라잡을지도 몰랐다.
‘역시 잘 크는군.’
기존의 15레벨 이하에 머물었다면, 4차 웨이브를 감당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리고 실제로 가장 먼저 전멸한 건 최약체인 5분대였다.
심지어 그건······ 웨이브 발생 첫날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현욱은 순간 어떤 이질감을 느꼈다.
‘쥐새끼가 한 마리가 따라붙은 것 같은데······.’
저 멀리 언덕 뒤에서 움직이는 ‘금속 뭉치’가 느껴졌다.
이현욱은 눈을 감고 그 금속을 세세하게 훑었다.
‘이건······.’
그 금속 중에서 익숙한 게 하나 느껴졌다.
‘······시계다.’
한 번 건드려본 물건이기에 잘 알았다.
게이트 진입 전, 이현욱이 골탕 먹였던 그것은 안민태의 훈련소 동기, 김태섭의 시계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 곳에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작은 좀 같은 금속들······.
그건, 화살통이었다.
시계의 주인, 김태섭 역시 궁수 계열이었으므로 이로써 확실해졌다.
‘······더 나아가서, 저격수다.’
이현욱은 청화 길드 공략 팀의 무기를 싹 살펴서 그들의 전력을 파악해두기까지 했다.
합동 공략에 앞서 상대측 전력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보기로, 김태섭의 활-철태궁에는 광학 줌이 달린 도트 사이트가 달려있었으며, 그의 유틸리티 벨트에는 몸의 떨림을 극적으로 잡아주는 ‘명사수의 물약’이 준비되어 있었다.
저격수의 전형적인 아이템 세팅이었다.
‘지금 따라붙는 이유라면 역시나, 보스 몬스터를 저격하겠다는 생각이겠고······.’
흔히 ‘스틸’이라고 말하는 행위, 그것 말고는 저격수가 저렇게 알짱거릴 이유가 없다.
자신들의 입지가 전혀 없으니, 결정적인 한 방으로 ‘기여도’를 확보하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만큼 ‘보스 몬스터’가 주는 점수는 상당한 편이었다.
‘그런데 이건 좀 멍청한데, 내가 금속을 감지할 수 있다는 걸 눈치 못 채다니······.’
하나를 알면 열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오륙까지는 알아야 쓸만한 플레이어가 되거늘, 이현욱이 지금까지 보여준 능력을 보고도 금속을 탐지해내는 걸 예상 하지 못 하고, 저렇게 온몸에 금속을 주렁주렁 달고 미행하다니······.
한심할 따름이었다.
‘역시, 플레이어 등급 같은 건 쓸모없다니까······.’
이현욱 피식 웃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모르는 척해주기로 했다.
“자, 다시 전진한다. 곧 보스 몹을 마주하게 될 테니까, 다시 긴장해.”
왜냐하면······.
‘잘 됐어, 결정적인 순간에 써먹을 수 있겠군.’
레이드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걸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게 설사, 다른 플레이어일지라도······.
***
김태섭은 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그래, 팀장님 말대로 내가 이번에 공을 세우면 앞으로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어!’
그는 사실 청화 길드가 주목하고 있는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다.
일단, 궁수 계열 중에서도 저격수 특성이 꽤 희귀하고 활용도가 높은 편이기도 했거니와, 그가 가지고 있는 한 가지의 ‘스킬’이 저격 능력을 대폭 상승시켜주기 때문이었다.
[스킬 정보]
- 이름 : 스닉 샷(Sneak Shoot)
- 등급 : D
- 효과 : 은신 시 마나(100)를 소모하여 치명적인 한 방을 날립니다. (+440%)
레벨 성장 플레이어는 5레벨이 오를 때마다 ‘랜덤’으로 스킬 하나를 얻을 수 있었는데, 김태섭은 겨우 10레벨 때, 저격수 특성과 최고의 시너지를 자랑하는 이 스킬을 얻었다.
즉, 보스 몬스터를 저격하는 임무에서는, 최고의 유망주였다.
한편, 그는 이 뜨겁고 건조한 사막을 주파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 ‘험지 기동’ 스킬이 기능 중입니다.
이런 스킬까지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웬만한 악조건에서도 내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앞서나간 AMT 특별공략소대를 금방 따라잡았다.
그런데······.
“어? 어, 씨······.”
그들은 사막 한가운데에서 공격받고 있었다.
마흔 마리가 넘는 놀 무리가 방패 방진을 이룬 채 3방향에서 조여 들어가는 중이었다.
9명의 플레이어는 꽤 괜찮은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긴 했다만······.
“와, 씨발······ 저거 다 죽겠는데?”
아무리 봐도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아 보였다.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한 채, 놀 무리의 접근을 허용하고 있었다.
어느새 포위망이 100m 이내로 좁혀졌다.
“그, 근데 쟤들 죽으면 우리도 끝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자, 지원 사격을 해야 하나 싶었다.
여기서 저격을 시작하면, 적어도 5~6마리 정도는 금방 해치울 수 있을 터였다.
“아니야······.”
하지만 참았다.
괜히 나섰다가는, 따로 떨어져 있는 자신이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왜 아무것도 안 하냐는 거야······.다가오지 못하게 견제해야 할 거 아니냐고······.”
지켜보는 내내 속이 타들어 갔다.
당장이라도 저 9명이, 놀 무리에게 갈기갈기 찢길 것만 같았고, 그렇게 된다면 공략 작전은 물거품이 되고 말 터였다.
그런데 그때,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쩌-엉! 쩌-엉! 쩌-엉!
“헉! 뭐, 뭐야?”
천재지변처럼, 난데없이, 바닥이 폭발을 일으켰다.
김태섭으로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당최 알 수 없었다.
쩌-엉! 쩌-엉! 쩌-엉!
다만, 그 공격으로 놀 수십 마리가 나동그라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정적인 움직임을 보이던 9명의 플레이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아끼고 있던 스킬을 차례차례 쏟아부으며 전열이 무너진 놀들을 몰아붙였다.
순식간이었다.
놀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뭐랄까······ 이미 기가 죽은 듯했다.
아-오오오!
저 멀리서 공격을 종용하는 듯한 하울링이 들려왔지만, 소용없었다.
“미, 미친······ 저 새끼 대체 정체가 뭐야?”
그 모든 움직임의 중심에는 이현욱 상병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있었다.
그렇게 한 번의 전투를 아무런 손실 없이 격파한 AMT 병사들은 다시금 진격했다.
그리고 약 20분 뒤, 또 한 번의 매복을 마주했다.
이번에는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일제히 튀어나오는 기습이었다.
“헉! 거의 60마리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이제는 쇳조각 공격보다 바닥에서 치솟은 정체불명의 폭발을 경계하는 건지, 놀 무리는 방어적인 태도를 버리고 사방에서 돌격해오는 선택을 했다.
적들의 전략이지만, 너무나 탁월했다.
들러붙어서 ‘난전’이 유도하면 금속을 이용한 폭풍, 폭발 등 이현욱의 가장 큰 무기가 몽땅 봉쇄되는 것일 테니······.
하지만 그 작전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뭐, 뭐야? 뭐가 저렇게 체계적이야?’
AMT 병사들이 너무나 잘 대응했기 때문이었다.
이현욱을 포함하여 방패를 든 4명이, 오히려 먼저 앞으로 달려나가서 적들을 맞이했다.
그들은 아군의 사수와 마법사에게 떨어져, 정확한 위치에 우뚝 선 채 ‘어그로’를 끌었다.
‘······뭐지?’
언뜻 보면 아군의 ‘후방 라인’이 보호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만······ 저건 아군 간의 거리를 넓게 벌림으로써 적이 원하는 ‘진흙탕 싸움’을 최대한 차단해버리는, 최적의 포지션이었다.
직후, 마법사들이 미리 준비해두었단 화염 마법이 쏘아냈다.
퍼-엉! 퍼-엉!
그것들은 놀 무리의 ‘중단’에서 터졌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후방’의 놀들이 주춤하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반대로 ‘선두’의 놀들을 그 불길을 피하고자 더욱 빠른 속도로 앞으로 치고 나왔다.
쉽게 말해, 놀 대열의 선두와 후방 간의 거리가 크게 벌어졌다.
즉, 화염 마법 2방 만으로 공세의 허리를 끊은 것이었다.
“-지금이야!”
이현욱의 외침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선두의 놀들에게 화력을 집중하여, 말 그대로 녹여버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후방의 놀들이 뛰어 들왔지만······.
“······가, 각개격파다.”
진흙탕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선두와 후방을 쪼개어 각각 집어 삼켜버렸다.
‘대체 뭐야······ 되게 단순한데, 엄청 정확하잖아?’
언뜻 보기에는 특별히 복잡한 연계는 없었다.
‘간단명료한 전술······.’
그게 정답이었다.
간단명료하기에 모두가 실수 없이 제 임무를 제대로 해낼 수 있었다.
즉, 가장 효율적인 전술이었다.
김태섭은 그들의 뒤를 밟으며 매 순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쟤들 저게······ 첫 번째 공략이라고?’
김태섭 역시 이번이 첫 번째 공략이었다.
그러나 이날을 위하여 꽤 긴 시간 동안 훈련을 받았고, 청화 길드 소속의 잘 나가는 공략 팀의 특별 전술 강의까지 들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저거, 사실상 교과서잖아······.’
저들의 판단과 움직임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를······.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럽기까지 했다.
‘대체 경험치를 얼마나 먹었을까?’
몇 시간 사이에 단 9명이 백 마리가 넘는 놀을 쓸어버렸다.
더군다나 레드 게이트라면 보너스 경험치도 상당할 터······.
분명 레벨 업을 몇 번이나 했을 것이었다.
‘미친······ 적어도 2레벨, 아니 3레벨은 올릴 수 있을 거다.’
이는 저 레벨 플레이어에게는 쉽게 오지 않을, 엄청난 기회였다.
그렇게 막힘없이 전진한 결과, 어느새 웬 ‘오아시스’ 같은 곳에 도착했다.
작은 물웅덩이 주변으로 조잡한 움막 같은 게 늘어서 있었다.
아무래도 놀 종족의 마을인 듯했는데, 딱 봐도 ‘보스 몬스터’가 나올만한 곳이었다.
‘후······ 그래,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 목표물이 등장한다.’
김태섭은 목표를 상기하며 철태궁을 준비했다.
그때, 그의 눈에 ‘목표물’이 감지되었다.
‘저놈이다. 저놈이 보스다.’
수차례의 전투로 숫자가 많이 줄어든 놀 무리 속, 털이 희끗희끗한 놀이 한 마리 보였다.
놈은 일반 놀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서 2m가 넘을 성싶었다.
그렇게, 놈의 등장과 함께 최후의 전투 ‘보스전’이 시작되었다.
“어, 뭐야······.”
그런데 보스전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도 지난 전투보다 훨씬 압도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놀 무리는 이미 숱한 패배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반면 플레이어들은 오히려 더욱 강해져 있었다.
압도적인 승리를 통하여 ‘레벨 업’을 거듭했기 때문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진짜로 쟤들끼리만······.”
전투의 승패는 이미 결정된 듯싶었다.
‘아니야, 보스 몹을 못 잡으면 소용없다.’
김태섭은 정신을 차리고 보스 몬스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어느새 이현욱과 올드 알파 메일이 맞붙어 싸우고 있었다.
휭- 휭- 휭- 휭-
놈은 아주 거대한 쿠크리(Kukri) 두 자루를 뽑아 들어 이리저리 휘둘러댔고, 이현욱은 대여섯 개 쇠 구슬과 2개의 단검을 조종하여 놈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이현욱의 공격은 놈의 몸에 닿을 수 없었다.
채-앵!
올드 알파 메일은 엄청난 속도로 쿠크리를 휘두르며 그것들을 손쉽게 쳐냈기 때문이다.
챙! 챙! 챙! 챙! 챙!
동시에 대여섯 개를 날리더라도 놈은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죄다 쳐냈다.
엄청난 동체 시력과 날렵한 움직임,
마치 무협지 속 고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역시 보스 몬스터는 다른 건가?’
그때였다.
쩌-엉!
폭음과 함께 ‘쇠 구슬’ 하나가 올드 알파 메일의 얼굴 근처에서 터졌다.
하지만 일반 놀과 달리 가죽이 두꺼운 탓인지 큰 데미지가 없는 듯했다.
‘음, 저게 저 사람이 낼 수 있는 최대 화력 아닌가? 저게 막히면 못 이기는 거 아니야?’
그런데 올드 알파 메일의 방어력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쇠 구슬이 폭발하고 그 파편이 튀는 순간, 놈의 몸 주변에서 반투명한 무언가가 보였다.
그건······.
‘······미친! 마법 보호막까지 가지고 있는 거야? 끝났다!’
마법 보호막, 그걸 뚫지 못하는 이상 유효한 데미지를 입힐 수 없다는 뜻이었다.
즉, 저 사람은 보스 몬스터를 잡을 능력이 없었다.
다만······.
“후후······ 아무리 그래도 내 한 방만은 먹힌다.”
김태섭은 큭큭 웃었다.
자신이 나설 차례가 왔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는 괜히 저격수가 아니었다.
마법 방어막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단 한 방의 데미지가 있었다.
“그래, 이현욱인지 뭔지 네가 진짜 대단한 놈이라는 건 잘 알았다.”
그는 촉 끝에 ‘오리할콘’이 얇게 도금된 저격용 화살을 꺼내 들어, 시위에 걸었다.
기기기기-
그리고 올드 알파 메일의 가슴팍을 정확하게 조준했다.
“미안하지만······.”
근데,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인생은, 실전이다, 새끼야. 이번 기회에 조금 더 배우길 바란다.”
이 시위를 놓으면, 이 스틸 계획이 성공한다.
그의 화살촉이 올드 알파 메일의 심장을 정확하게 꿰뚫으며 ‘기여도’가 확보될 것이었다.
또한······.
저 AMT 녀석들의 뒤통수가 꽤 화끈해질 터였다.
그건 조금 흐뭇해지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악!”
그는 난데없는 통증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왼쪽 손목의 시계가, 또다시 자신의 팔을 물었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그리고 그것 때문에······.
투-웅-
팽팽하게 당겨놓은 시위를, 잘못 놓고야 말았다.
“어······.”
쉬-익-
분명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고 있지만, 다소 빗겨진-
즉, 치명적인 일격이 될 수 없는 각도였다.
“아, 안 돼······.”
그리고 김태섭의 비명을 들었는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올드 알파 메일,
놈은 몸을 돌리며 김태섭의 화살을 쳐낼 준비를 했다.
반면,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전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오히려 그 순간을 기회로 삼는 듯, 다시 움직이는 이현욱······.
그 순간, 김태섭은 깨달았다.
‘서, 설마······’
손목시계······ 이상한 고통······.
이현욱······ 금속을 조종하는 능력······.
“······처, 처음부터 내가 쫓아오는 걸 알고 있던 거야?”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다음으로 벌어진 장면은,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뭐야!”
눈 깜짝할 사이에, 올드 알파 메일이 갈기갈기 찢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