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청담동, 레드 게이트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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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의 ‘레드 게이트’가 ‘살인 게이트’가 된 이유는 단순했다.
‘지능 높고 무리 생활을 하는 몬스터와의 전투는 거듭될수록 위험도가 상승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학습’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점점 더 다양하고 까다로운 ‘예측 밖의 패턴’을 구사하게 된다.
즉, 첫 번째 공략이 실패했을 때, 조금 더 고민한 뒤 두 번째 공략을 시도했어야만 했다.
게이트 안의 놀들 역시 회차가 거듭될수록 영악해지고 있었을 테니······.
‘특히나 일부 보스 몬스터의 경우, 훨씬 지능적으로 행동한다.’
인간 그룹도 리더가 누구인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성과를 내는 것처럼, 같은 놀일지라도 ‘올드 알파 메일’이 이끄는 그룹은 상당히 위험한 편이었다.
놈은 관찰하고 고민할 줄 알았다.
자신들이 나가야만 하는 어떤 ‘통로-게이트’로 인간들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았을 테고, 그게 한 번에 그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도달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고민한다. 가장 효과적인 살상 방법을······.’
놈이 떠올린 건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집중 공격’을 퍼붓는 것이었다.
어쩌면 단순한 생각이었다만, 아주 효과적이었다.
자신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이점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이 너른 황무지의 특성상 게이트를 막 통과한 플레이어들이 몸을 숨길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총 5차 공략 때까지, 그 방법이 먹힌다.
그런데 역사가 바뀌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들이 제아무리 영악하다고 한들······.
‘단숨에, 몰아친다.’
파-바-바-바-바-
자신들이 쏘아 보낸 수백 발의 화살, 볼트, 쇠뇌 따위가 허공에서 멈춰 서서 분열되더니, 자신들의 머리 위로 우박처럼 쏟아질 것이라고는,
절대로, 절대로 상상하지 못했을 터였다.
“와······ 저게 무슨······.”
누군가의 감탄과 함께, 이현욱의 손끝을 따라, 강철 폭풍이 휘몰아쳤다.
파-바-바-바-바-
언덕 위로 폭풍이 떨어지자, 모래 먼지가 자욱하게 올라왔다.
놀의 병력이 순식간에서 휩쓸리며 단숨에 수십 마리가 고꾸라졌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것들은 수직으로 낙하한 후, 다시 상승하여, 이번에는 수평으로 쏘아졌다.
마치 ‘메뚜기떼(Locust)’처럼 무리 지어 날아들며 모든 것을 긁어버린다.
그리고······.
‘······회전.’
흑색의 회오리가 되어 언덕을 짓이기기 시작했다.
쇳조각 폭풍과 모래 폭풍이 뒤엉키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쉬-쉬-쉬-쉬-쉬-
비록 작은 쇳조각이지만, 털에 달라붙어서 회전하며, 기어코 가죽 위에 상처를 냈으며 눈이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면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깽! 깨-갱! 깽! 깽!
개 떼가 울부짖는 소리가 황야를 쩌렁쩌렁 울렸다.
“어? 놈들이 도망칩니다!”
당최 대응할 수 없었기에, 놀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놈들은 계속 약해질 거다.’
왜냐하면, 저 쇳조각-놀의 화살촉 끝에는 ‘독’이 발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즉, 쇳조각 폭풍에 의해 작은 상처라도 입었다면 중독되었을 것이었다.
“어떻게, 추격······ 합니까?”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지만, 안민태가 그렇게 물었다.
이현욱은 고개를 저었다.
던전 안에서 함부로 움직이는 건 자살행위였다.
‘아마도 저 병력이 절반 정도이고, 나머지 절반은 후방에 대기 중일 거다.’
훨씬 많은 병력과 함정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바, 방금 그거 뭐야? 당신이 한 일이야?”
청화 길드 공략 팀장 박기택이 그렇게 물었다.
청화 길드 전원이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한편, 박기택의 왼쪽 어깨와 허벅지에 화살이 박혀 있었는데, 상처 부위가 시퍼렇게 물들었다. 역시나 화살촉 끝에 발라져 있을 ‘독’ 때문이었다.
‘독······ 강한 독은 아니지만 체력과 마나를 서서히 갉아먹는 사막 마나 번 개구리의 피다.’
올드 알파 메일은 인간이 다루는 가장 무서운 무기가 ‘스킬’이라는 것도 눈치챈 듯했고 그렇기에 마나를 태워버리는 독을 품은 개구리를 잔뜩 양식하는 중이었다.
“그, 금속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다고는 듣긴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박기택은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박기택을 비롯한 청화 길드 측도 AMT 특별공략소대에 대한 정보를 들었기에, 이들이 서울역 언럭키 이벤트에서 활약한 이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내심, 아니 대놓고 무시하는 중이었다.
15레벨 이하의 언럭키 이벤트 정도야 어차피 이 레드 게이트 던전보다 저급일 테고, 최하등급이나 다름없는 AMT 병사가 제아무리 잘나도 바닥일 뿐이라고······.
그런데, 그게 아닌 듯했다.
이현욱이 청화의 팀장, 박기택에게 손을 뻗었다.
박기택은 일으켜 세워주려는 줄 알고 그 손을 맞잡으려고 했는데, 이현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거, 방패 좀 빌립시다.”
방패라니······.
머쓱해진 박기택은 손을 떨어뜨리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예? 내 방패를 왜 그쪽한테 줍니까?”
“음······ 여기서 나가기 싫다면, 뭐, 언젠가 그 방패랑 같이 묻어드리죠.”
“······.”
박기택은 반문하지 못했다.
힐러가 있지만, 14명 중 무려 11명이 화살을 맞았고 그중에는 힐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2명은 위독한 상태로 집중 케어가 필요했다.
즉, 청화의 공략 팀은 더는 활약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비록 피해를 보았다만, 시간을 가지고 회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박기택은 팀장답게 끊임없이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글쎄······.
밤이 오면 저 악독한 놀 무리가 앞으로 어떤 공세를 펼칠지, 그리고 이 다친 병력을 이끌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벌써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밤이 오기 전에 무엇이든 해야 한다.’
이 황무지에서 밤을 맞이한다면, 한층 더 깊은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AMT 특별공략소대를 믿을 수밖에······.
‘젠장, 이렇게 되면 살아서 나가더라도 좋은 꼴을 못 볼 꼴 같은데······.’
이미 길드 망신을 시켜도 단단히 시킨 셈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자, 가져가세요.”
이현욱은 박기택이 내미는 황동색의 원형 방패를 받아들었다.
“미스릴 합금인가요? 상당히 가볍군요.”
“······.”
역시나, 청화 길드가 돈 좀 쓴 듯했다.
“여기로 놀 몇 마리가 습격해올 수는 있겠지만, 그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겠죠?”
“······물론이죠.”
“그럼, 어쩔 수 없이 우리끼리라도 공략해보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도움 없이, 우리가 다 해내야만 하는 상황이니까, 공략 끝나고 딴소리하지 말고 똑바로 증언하세요.”
“······예.”
박기택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공략에서 얻어지는 보상의 분배는 쌍방의 합의로 결정되며, 게이트 진입 직전 양측 책임자들이 나눈 작전 회의에서 그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로써 현재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우위라고 평가되는 청화 길드가 무려 7할을 가지기로 되어 계약되어 있었으며 아이템 우선 선택권, 일명 ‘시드권’도 쥐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우리가 2할, 아니 1할 정도 밖에 못 가질 수도 있는데······.’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사전 협의다.
공략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어떻게든 이 던전을 공략한다고 쳐도, 사실상 AMT 단독으로 공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사전 합의 내용이 번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사실상 AMT가 모든 걸 독식하게 된다······.’
그런 박기택의 고민에, 이현욱의 목소리가 쐐기를 박았다.
“잘 들어라, 청화 길드 공략 팀은 사실상 아웃이다. 우리끼리만 진행한다.”
사실상 아웃······.
맞는 말이었다.
그것도 시작과 동시에······.
하지만 AMT 쪽이라고 분위기가 좋은 건 아니었다.
“흠······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거 우리만으로 공략할 수 있는 겁니까?”
아무리 이현욱이 대단하다고 한들, 아군 절반이 무력화되고 말았다.
그리고 놀들은 영악한 만큼 한 번 당한 것에 두 번 당하지 않을 것이었다.
“어? 이현욱 상병님, 저기 보십시오!”
아니나 다를까, 모래 언덕 위로 큼직한 ‘목각 방패’를 든 놀 몇 마리가 나타났다.
놈들은 방패로 몸을 보호하더니, 언덕에 쓰러져 있던 동료들을 질질 끌고 내려갔다.
“저러면······ 이현욱 상병님의 공격이 잘 안 먹히지 않겠습니까?”
저런 식으로 방패를 잔뜩 들고 나타난다면 쇳조각 공격이 효율이 급감할 수밖에 없었다.
쇳조각이라는 게 폭풍처럼 몰아치며 피부를 수도 없이 긁어버리는 방법으로 데미지를 준다.
그런데 어딘가에 막히는 순간, 속도가 줄고, 그 파괴력이 급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아-우우우!
어디선가 하울링이 들려왔다.
“젠장, 이건 또 무슨······.”
이는 놀들이 장거리에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즉, 놈들이 자신들의 영역이 들어온 침입자들을 잡아먹기 위해서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중이라는 뜻이었다.
그제야 다시금 실감이 났다.
저 짐승들의 영역에 서 있다는 걸······.
모두가 걱정에 찬 눈으로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그래, 솔직히 우리가 압도적으로 열세다.”
“······.”
“하지만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서울역의 보스 몬스터, 여왕 거미, 기억나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못 이길 것 같은 압도적인 위용의 여왕 거미······.
비록 한태산이 등장해서 곤죽으로 만들어버렸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물-금속-전기-얼음 연계를 이용하여 기절시키고 속박시킨 뒤 껍질을 떼어내기에 이르렀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한태산 없이도 잡아낼 수 있었을 것이었다.
“레이드는 가진 모든 것 더 나아가서 주변의 모든 것, 즉 지형을 이용해야 한다.”
“지형, 말씀입니까?”
“그래, 이번에는 지형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형이라니······ 어떤 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박준모가 물었다.
“박준모, 네 눈에는 지금 뭐가 보이지?”
“어······.”
박준모는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이들이 서 있는 이곳은 황량한 황야 같았고 저기 모래 언덕부터는 사막이었다.
“그게 그냥 모래랑 죽은 나무 밖에······.”
이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걸 이용한다.”
······모래를 이용한다니?
그때까지는, 이현욱의 말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
이현욱은 ‘구슬’ 형태의 무기를 애용했다.
‘무게 중심이 완벽해서 통제가 쉽다.’
긴 창 같은 무기는 금속 통제력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움직임이 나타난다.
그러나 구슬을 통제하는 건 너무나 명료했다.
그저 ‘중심’에 힘을 담으면 된다.
‘더군다나 어딘가에 걸릴 우려도 없다.’
앞으로 수백, 수천 개의 무기를 동시에 조종하게 된다면 섬세한 움직임을 펼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정어리 떼나 말벌 떼처럼, 그저 어떤 흐름으로 통제하는 게 최선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딘가에 걸리며서 ‘이탈’하는 것들이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구슬은 달랐다.
작고, 원형에다가, 매끄럽기까지 하니 어딘가에 걸리더라도 금새 빠져나오고야 만다.
지금도 그랬다.
스스스스······
이현욱은 20개의 쇠 구슬을 시야 밖에 움직이고 있었으나, 그 어디에도 걸리지 않았다.
스스스스······
사막의 모래 속, 그것들은 마치 사막의 딱정벌레처럼 모래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후-우-우-웅-
모래바람이 한바탕 불어 닥쳤다.
“······윽!”
이현욱을 제외한 이들은 지금, 난생처음으로 사막을 걷는 중이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이상 사막을 경험할 일이 없었으니, 여러모로 적응하기 어려웠다.
덥고, 건조하고, 눈이 부셨다.
‘그래도 이 정도의 환경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상위 던전으로 갈수록, 정말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지옥도가 펼쳐지니까······.
“······정지.”
선두의 안민태가 손을 들어 올리더니, 어딘가를 가리켰다.
수북하게 쌓인 모래무더기였다.
놀은 저런 곳에 잠복하기도 한다고, 이현욱이 미리 일러주었다.
이에 궁수, 최태용 일병이 앞으로 나섰다.
픽-
그가 쏜 화살이 그곳에 박히고, 모래가 흐트러지며 무언가 드러났다.
놀 시체였다.
이현욱에 의해서 상처를 입고, 후퇴하던 중 죽은 듯싶었다.
“후, 깜작이야, 진짜 놀이 나타난 줄 알았······.”
안민태의 푸념이 채 끝나기도 전,
아-우우우!
멀지 않은 거리에서 진짜 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좋지 않은 징조였다.
“말이······ 씨가 되어버리네······.”
모두가 자세를 낮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현욱 상병님! 저쪽, 돌 뒤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박준모의 외침,
그의 말대로 놀 한 무리가 돌무더기 뒤에서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크르르르······.
약 20마리가량, 그런데 칼이나 창이 아니라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심지어 화살조차 촉을 빼고 살대를 날카롭게 깎아두었다.
‘역시 올드 알파 메일······ 내 능력을 확실하게 눈치챘군.’
금속을 조종하는 걸 넘어 깨뜨린다는 걸, 대번에 눈치채고 대비한 듯했다.
또한, 종전에 된통 당한 만큼 목각 방패를 앞세웠으며 두꺼운 후드를 입고 있었다.
저렇게 대비를 하면 쇳조각에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독화살을 조심하고 방패 뒤로 숨는다.”
안민태를 비롯한 탱커 셋이 방패를 들어 올리며 앞으로 나섰다.
이현욱 역시 박기택에게서 뜯어낸 미스릴 합금 방패를 들어 올렸다.
나머지는 탱커의 방패에 보호받을 수 있는 ‘각도’로 움직이며 자세를 낮췄다.
“어! 3시 방향, 나무 뒤에서 나옵니다!”
“노, 놈들이 뒤에서 옵니다!”
나무 뒤에 10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뒤에서 12마리까지······.
총 44마리였다.
“젠장, 포위당했습니다!”
함정이었다.
플레이어들이 이 깊은 곳까지 들어오길 기다리며, 곳곳에 매복해 있던 것이었다.
“박준모, 전격 공격 준비됐지?”
“예, 이제는 7번에 발사할 수 있습니다!”
코볼트를 상대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4번이 최대라고 했었다.
물론, 그의 능력이 향상된 건 아니었다.
그저 숱한 연습으로 미세한 컨트롤 능력이 늘어났을 뿐이었다.
확실히, 이들 모두가 며칠 전부터 훨씬 강해졌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강해질 예정이었다.
“그래, 모래는 절연체니까 놀을 직접 타격해.”
“예!”
박준모가 숨을 들이켜더니, 완드를 과감하게 휘둘렀다.
쩌-엉!
순간 빛이 번쩍하더니, 화살을 재고 있던 2마리가 튕겨 올라, 돌무더기에 처박혔다.
깨-앵!
이게 말이 쉽지, 상당한 명중률이었다.
“······크, 좋았다.”
“놈들이 머뭇거립니다.”
그 강력한 한 방에, 포위망을 좁혀 오던 놀들이 잠시 멈춰섰다.
하지만 잠깐일 뿐이었다.
아-우우우!
재차 하울링이 울리자 놈들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올드 알파 메일의 지시가 떨어진 듯했다.
놈이 어딘가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쉭- 쉭- 쉭- 쉭-
그렇게 거리가 좁혀지자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촉이 없는 화살은 그리 빠르지도 정확하지도 않았다.
“집중해서 화살을 피하고, 계속 포위하게, 다가오게 둬.”
“······.”
“침착하게 기다려, 놈들은 거리가 충분히 좁혀질 때까지 달려들지 않을 거다.”
그의 말마따나 100m까지 좁혀질 때까지 놀들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그러더니, 따닥따닥 서로의 어깨를 붙이기 시작했다.
“어? 저건 또 무슨······.”
마치 로마의 테스투드(Testudo) 방진처럼 일종의 방패벽(Shield Wall)을 형성한 것이었다.
‘내 스킬을 막아 낼 방법을 제대로 고안했군.’
정면, 측면, 머리 위까지 방패를 쌓아서 쇳조각 공격을 거의 완벽하게 차단할 생각이었다.
방패 틈 사이로 어떻게든 쇳조각을 욱여넣을 수는 있겠지만······.
‘······속도와 양이 없으면, 적을 귀찮게 하는 수준에 그친다.’
앞서 말했듯, 쇳조각은 폭풍처럼 몰아쳐야만 효과가 있었다.
단 한 점의 바람은 사실상 아무런 힘이 없지만, 그 바람이 뭉치고 엉켜서 태풍이 되어 몰아친다면, 나무를 뿌리째 뽑아내고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이현욱 상병님, 약 50m 거리까지 좁혀졌습니다.”
놈들은 그렇게, 늑대 무리의 사냥처럼, 천천히 위협을 해오기 시작했다.
크르르······.
압박감이 엄청났다.
이제는 예전처럼 두려움을 내비치지 않았다만, 모두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후······.”
이대로라면 당장이라도 놈들에게 집어 삼켜질 것만 같았다.
어느새, 놀에게 풍기는 야생 동물 특유의 역한 누린내가 느껴질 정도의 거리······.
“좋아, 계속 기다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이현욱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감고, 금속을 감지하고 있었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쇠 구슬······.
그곳에······
“······파쇄.”
마나를 불어넣었다.
퍼-억-! 퍼-억! 퍼-억!
굉음과 함께, 포위를 좁혀 오던 놀 무리의 방패벽, 그들의 발아래에서 모래가 치솟았다.
퍼-억! 퍼-억! 퍼-억!
정확히는, 그 아래에 파묻혀 있던 ‘쇠 구슬’이 마치 지뢰가 터지듯 폭발했다.
방패로 방진을 쌓아 모든 면을 방어하고 있었다만 단 한 곳, 발아래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 역시도 처음에 당했던 그 공격처럼, 절대로, 생각지도 못한 한 방이었다.
깨-갱! 깽!
수십 개의 파편으로 놀의 발가락을 절단시키고, 종아리와 허벅지를 찢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약 20마리가 고꾸라졌다.
쇳조각, 모래, 털, 피- 그것들이 한데 뒤엉켜 허공으로 치솟았다.
후-두-두-둑-
올드 알파 메일이 고안해낸 야심 찬 방패벽이, 너무나 손쉽게 무너졌다.
“머리 위만 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쇳조각 폭풍에 이어, 발아래에서 솟아난 쇳조각 폭발이었다.
이게 바로 이현욱이 말한, 지형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저것들이 제아무리 영악해봤자, 짐승이다.”
이현욱이 그렇게 말하며 왼손을 들어 올렸다.
“······사냥을 시작한다.”
앞서서 다짐했듯, 이현욱은 이번 레드 게이트를 ‘양분’으로 삼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