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27화 (27/221)

27. 청담동, 예상 밖의 사건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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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알고 있는 만큼 모든 걸 대비하고 모든 이득을 취한다.

아이템, 사람, 기회, 모든 것······.

그게 이현욱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미래는 조금씩 바뀌고 필연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그런 예상치 못한 일이 전부 ‘의외의 이득’이 되었다.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경우다.’

이현욱은 지금, 대대장실에서 김강석, 천명호와 마주 앉아 있었다.

또 한 번,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김강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현욱, 레드 게이트라고 알고 있겠지?”

“예, 물론입니다.”

게이트는 보통 보랏빛을 띤다.

하지만 전부 그런 거 아니었다.

레드 게이트, 블루 게이트 등,

게이트에 속성에 따라서 다른 빛을 방출하기도 한다.

그중에서 레드 게이트라면······.

“······각종 제한이 걸려 있는 게이트 아닙니까?”

며칠 전의 ‘언럭키 이벤트’처럼, 게이트 내부 ‘던전’에 여러 가지 제약이 적용된다.

입장 제한이라든지, 안 좋은 룰과 환경이라든지 여러모로 까다로운 경우였다.

“맞아. 베테랑 공략 팀도 잡아먹는 악독한 무대······ 그게 레드 게이트다.”

김강석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사령부에서 그 레드 게이트를 공략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여기서 사령부라면 ‘AMT서울작전사령부’를 뜻했다.

“흠, 대대장님, 이건 제가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이어서 천명호 준위가 이현욱을 호출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개요는 이러했다.

청담동의 한 빌딩 공사 현장에 ‘레드 게이트’가 발생했다.

입장 제한 레벨 18 이하, 제한 인원 30 이하, 입장 시 공략 전까지 퇴장 불가,

그게 룰이었다.

“······게이트 발생 이후 1차 분출을 막은 뒤, 청화 길드가 단독 공략을 선포했다.”

청화 길드와 제3항마여단 1대대는 같은 지역을 관리하며 게이트에 합동 대응하지만, 이처럼 던전으로 들어가는 ‘공략 작전’의 경우 어느 한쪽만이 ‘공략권’과 ‘소유권’을 가진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분출은 현실 공간의 전투이기에 민간인 피해 우려가 있으니 ‘공공의 안전’을 우선으로 해야 하지만, 그럴 우려가 없는 던전 공략은 철저히 ‘사업적인 측면’을 바탕으로 이해관계를 둔다.

‘즉, 독식하는 게 훨씬 큰돈이 되기 때문에, 서로 공략권을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거다.’

던전 공략도 민영화된 하나의 시장이며 그걸로 먹고 사는 기업이 바로 길드였다.

그런데······.

“······3일 전, 청화 길드의 3번째 공략 시도가 실패했다.”

그쪽 상황이 영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조약상 4번째 공략부터는 합동 대응해야 하지 않습니까?”

“오, 역시 잘 알고 있군? 그래서 청화 쪽이 상당히 성이 나 있는 모양이야.”

공략권을 가진 쪽이 게이트 공략을 3차례 실패할 경우, 해당 조직에 공략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2개 조직 이상이 ‘합동 대응’해야 한다는 ‘상호 조약’이 존재했다.

그래도 다시 실패한다면, 해당 게이트는 예의 주시해야 할 대상인 ‘트러블3’등급으로 지정되고 5개 조직 이상이 참가하는 ‘연합체’가 결성되어 대대적인 공략 작전에 돌입한다.

만약에 그래도 공략이 실패한다면, 마지막 방법, 최종 병기 ‘S등급’ 투입이 논의된다.

이런 규정에 따라 청담동 레드 게이트는 현재 두 번째, ‘합동 대응’ 단계였다.

“해당 레드 게이트의 레벨 제한은 18이라서 함부로 병력을 파견할 수 없었는데······ 사령관님께서 서울역 ‘언럭키 이벤트’에 투입된 구조대의 활약상을 보고 받으신 뒤에, 어떤 가능성을 보셨는지, 해당 구조대 병력을······ 이번 작전에 투입하라고 지시하신 거다.”

서울역 언럭키 이벤트 구조대의 활약······.

그래, 솔직히 그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으며 고평가를 하고도 남을만한 업적이었다.

“그러니까······.”

천명호가 이현욱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정말 미안하지만, 자네가 이 작전의 적임자야.”

천명호의 설명은 거기에서 끝났다.

김강석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솔직히 말해서 너무 위험하다. 청화 측에서도 고등급 플레이어들만으로 18레벨을 딱 맞춰서 3차례나 투입했는데, 단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

서울역 언럭키 이벤트 당시, 청화 길드가 15레벨 미만의 플레이어를 지원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레드 게이트에서 상당수의 유망주가 산화해나가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당장 오늘 밤에 4차 공략이 시작된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원······.”

김강석으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실패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전장에, 말 그대로 사지에 자신의 병사들을 몰아넣어야 한다니, 그것도 하필이면 가장 아끼는 병사를······.

하지만 그 아낌 받는 병사, 이현욱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속으로, 웃고 있었다.

‘이런 엄청난 기회가 이렇게 제 발로 찾아오다니······.’

미래가 조금씩 바뀌며 벌어지는 예상 못 한 사건, 다행히도, 이번에도 기회였다.

이현욱은 그리고 이 청담동 ‘레드 게이트’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훗날 식인 게이트라고 불리는 게이트 중 하나다.’

총 5번의 공략 실패, 112명의 플레이어가 잡아 먹힌, 최악의 게이트였다.

심지어 그들 전원이 국내 굴지의 길드인 청화의 유망주들로, 몇 년 뒤 대한민국의 안위와 국격을 책임질 이들이거늘, 허무하게 산화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게임에서 어렵다는 건 보상이 엄청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이 레드 게이트는 엄청난 값어치의 아이템을 토해낸다.

그의 기억상 마법 금속인 ‘미스릴’이나 값비싼 ‘아다만트’까지 나오며, 더 나아가 그 안에서 산화된 공략 팀의 유품인 온갖 아이템까지 획득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상당히 괜찮은 창이 묻혀 있다.’

영웅 등급 아이템인 ‘아킬레우스의 창’

한 번 찌른 상처는 웬만해서는 낫지 않는다는, 특이한 효과가 붙은 아이템······.

그 물건이 청담동 레드 게이트 안, 던전 깊숙이 잠들어 있다.

‘이렇게 되면······ 4차 웨이브 직전에 한 차례 더 성장할 수 있겠어.’

이현욱은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웃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김강석이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하······ 사령관님께서 이 일을 이렇게까지 밀어붙이시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천명호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현욱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정상식이 눈 뒤집을만한 일이라면, 청화 길드 때문일 거다.’

이때쯤, AMT서울작전사령관 정상식 장군은 청화 길드에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

그가 청화 길드의 마스터 유재혁과 개인적인 지독한 악연이 있었기에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상식은 모든 면에서 유재혁을 이길 수 없었다.

그렇기에 제가 지휘하는 AMT부대들이 청화보다 나은 성과를 내기를 종용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이겨 보기 위해······.

‘정상식은 부하 목숨을 소모품처럼 써서 성과를 내는 인간이었지······.’

흔히 볼 수 있는 병사들을 갈아 넣는 지휘관,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렇기에 당장 오늘 밤에 시작될 공략 작전 투입을 명한 것이었다.

‘그 인간의 막무가내 같은 성격이 나한테 도움이 될 줄이야?’

그때였다.

“아······ 대대장님?”

천명호가 난처한 얼굴로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웅-

전화가 오고 있었다.

“설마······ 사령관님입니까?”

천명호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충성, 사령관님! 예, 맞습니다.”

사령관이 직접 전화를 걸다니, 극성이 아닐 수 없었다.

“예? 아······ 아! 그렇게 하겠습니다.”

천명호는 김강석과 이현욱을 번갈아 보더니 핸드폰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사령관님, 지금 스피커폰으로 전환했습니다.”

- 그래, 그 친구 지금 듣고 있는 거지?

“충성! 상병, 이현욱입니다.”

이현욱이 눈치껏 나섰다.

- 어어, 그래, 어제랑 오늘 종일 자네의 활약상만 듣고 있는데, 이야, 아주 대단해! F등급인데 업적을 달성하고 위기에 처한 민간인들을 완벽하게 지켜냈다니, 정말 자랑스러워!

중장 계급의 장군치고는 어딘가 호들갑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예! 감사합니다!”

- 음, 그래서······ 그, 내용은······ 천 준위한테 다 들은 거고?

“예, 레드 게이트, 맞습니다.”

- ······어때? 한 번 해보겠어?

목숨을 걸어보겠냐는 말을 이렇게 담백하게 할 수 있다니 새삼 놀라웠다.

“······명령하신다면 하겠습니다.”

- 아니지, 명령이 아니야. 나는 지금 자네의 앞날에도 큰 도움이 될만한 일, 그러니까 AMT 복무 중 최고의 공적을 세울 수 있는 일에 자원할 거냐고 묻고 있는 거야.

“······.”

그 궤변에 김강석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쓰리 스타가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건 사실상 강요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현욱은 태연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저, 사령관님, 한 가지만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 그래그래, 열 가지, 백 가지 막 해도 돼.

“제 생각에는······ 이번 작전은 단순히 한 개의 게이트를 공략하는 걸 넘어서 AMT의 자존심이 걸린 것 같습니다.”

- 자존심? 음, 왜지?

“서울 지역을 같이 담당하는 청화 길드와 경쟁하게 된다는 면에서 AMT 소속으로서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화 길드 쪽은 우리 AMT를 자신들보다 아래라고 보는 시선이 강하기도 하고······ 합동 공략이라면 사실상 청화 길드와 AMT의 자존심을 건 전면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제가 감히······ AMT의 자존심을 맡아도 되는 일인지 걱정입니다.”

- 흠, 자네······ 눈치가 좀 있군?

일부러 그 ‘자존심’이 걸렸다는 걸 강조했다.

티 내고 싶지는 않지만, 그게 정상식의 목적일 테니, 그걸 자극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사령관님께서는, 청화와의 경쟁에서 제 가능성을 믿어주시는 겁니까?”

잠깐의 침묵-

- 음······ 내가 말이야······ 이 자리에 오래 있었더니, 몇 가지 이야기만으로도 병사의 됨됨이가 보이는데, 자네의 서울역 활약상을 들었을 때, 딱 이 사건을 맡기면 제격이겠다 싶었어. 그래서 맡겨 보려고 한 거고. 이것도 일종의 믿음이라고 볼 수 있겠지?

사령관의 귀에 들어간 건 서울역 활약상뿐만이 아닐 터였다.

그 전에 있었던 고블린, 코볼트, 오크 등과 맞선 것까지, 그리고 천명호 준위가 목격한 결투 훈련 내용도 보고되었을 수도 있었다.

즉 무턱대고 임무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나름의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이현욱을 이번 게임의 ‘말’로 선정했을 것이었다.

솔직히 환영이었다.

“······그렇다면, 해보겠습니다.”

- 오? 정말이야? 자네······ 진짜로 할 수 있겠어?

“사령관님, 다만, 제 성공을 믿으신다면······.”

이현욱은 빈손으로 갈 생각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무언가를 얻어낸다.

“······한 가지 무기를 지원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가 사령관님께서 만족하실만한 성과를 낸다면, 포상으로 그 무기를 제 소유로 내어주셨으면 합니다.”

- 음, 어떤 무기를 두고 하는 말인가?

“······ 사령부 무기고의 ‘페일노트’ 그걸 주셨으면 합니다.”

- ······뭐?

“금속을 조종하는 제 능력이 가장 걸맞은 무기라고 생각됩니다.”

- ······.

“······”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김강석과 천명호도 다소 놀란 표정이었다.

페일노트(Fail-Not, Failnaught)라니······.

그건 아서왕 전설의 등장인물인 ‘트리스탄’ 경이 사용하는 절대 빗나가지 않는 화살이었다.

활이 아니라 정말로 ‘화살’ 딱 한 개였다.

‘그래서 애물단지였고 내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 먼지만 쌓였다.’

화살이니까 궁수가 사용해야 하지만, 한 발을 쏘면 다시 회수해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었으며, 사수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해서 암살용으로도 부적합했다.

여러모로 활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압도적인 파괴력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정확도가 엄청나고 ‘마법 무효화’ 효과가 부여되어 있다는 정도······.

그렇기에 금속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현욱이 쓰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찾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무려 ‘영웅’ 등급의 아이템이었기에 이들 모두가 놀란 것이었다.

“사령관님, 절 믿고 지원해주신다면 반드시 성과를 내오겠습니다.”

그는 자신감을 내비치며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그러자······.

- ······그래, 좋다!

고민해본 결과,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 듯했다.

활용도가 없는 아이템을 하나 투자하여, 유재혁의 콧대를 꺾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만큼, 정상식의 경쟁심은 어마어마했다.

앞으로 그 경쟁심이 불이 될 사건이 여럿 있을 정도로······.

- 1시간 내로 보내줄 테니까 반드시 청화 놈들을 제쳐,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

직후, 김강석은 서울역 구조 임무에 투입되었던 저 레벨 병사들을 호출했다.

이현욱이 오케이 했다고 해서 무슨 순장도 아니고, 저 레벨 병사들을 다 같이 사지로 몰아넣을 수는 없기에, 그들에게도 이 임무의 위험성을 말해주고 지원을 받는 게 옳았다.

“······자, 선택은 너희들의 몫이다.”

설명을 끝낸 김강석이 그렇게 말하자, 천명호는 노심초사했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이현욱 상병님께서 가신다면 저도 가겠습니다.”

“저도 이번에도 함께하겠습니다. 성장할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어, 그럼 저, 저도 이 작전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서울역에 투입되었던 저 레벨 구조대 중 안민태와 박준모를 비롯한 8명이 지원을 했다.

“너희들······.”

김강석, 저 참군인은 역시나 어딘가 감격한 표정이었다.

“솔직히 두렵습니다. 하지만 눈을 질끔 감고 나서보고 싶습니다.”

안민태는 그렇게 말하며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이현욱 상병님과 함께하면······ 더욱 빨리 성장할 수 있다.’

어차피 저 레벨인 자신들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있겠거니와, 이현욱과 함께하는 게 어떤 경험을 넘어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렇듯, 이현욱이 보여준 활약의 연속, 그것은 이미 단단한 신뢰가 되었다.

“이현욱 상병, 자네······ 못 본 사이에 훨씬 거대해진 느낌이야.”

천명호가 말했다.

겨우 며칠 못 봤다고, 이현욱은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군.”

순간, 김강석과 천명호 사이에서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어쨌든 그렇게, 이현욱을 포함하여 9명의 ‘특별공략소대’가 구성되었다.

“30분 뒤에 집합한다! 모두 무장 완료하고 스킬을 점검한다!”

그들은 각자의 생활관으로 돌아가서 전투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던전 안에서는 무슨 일어날지 모르니까, 군장 쌀 때 뭐 빠뜨린 거 없나 여러 번 확인해!”

AMT 내에서는 군장 종류가 여러 개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건 ‘던전공략형’ 군장이었다.

최악의 경우 던전 안에서 몇 날 며칠을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으, 무거워······.”

“박준모, 그 무거움이 널 살릴 거다.”

이현욱은 재빨리 준비를 마치고, 잊고 있던 새로운 얻은 스킬의 정보를 확인했다.

- 축하합니다! 특별한 조건을 만족하여 ‘강체화’ 스킬이 대폭 강화됩니다!

훈련장에서 이 메시지까지만 확인하고 대대장실로 달려갔었다.

‘갑옷 계통을 흡수하니까 저절로 강체화와 융합된 모양이군.’

이런 식으로, 어떤 아이템을 삼키면 그에 부합되는 스킬이 향상된다.

물론, 무조건 그렇다고 해서 금속이랍시고 갑옷이고 방패고 다 뜯어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른 성분이 섞여 있지 않은, 그리고 한입에 삼킬 수 있는 것만 해당했다.

그리고 그런 건 생각보다 드문 편이었다.

이현욱은 그 상세 내용을 확인했다.

[스킬 정보]

- 이름 : 불굴의 강체화(剛體化)

- 등급 : C

- 효과 : 마나(20)를 소모하여 신체 일부분을 일시적으로 ‘강화’합니다.

1 [마나 실드]

2 [비밀 각인]

3 [알 수 없음]

* ‘고경도 마법 금속’을 일정량 이상 삼키면 스킬 등급이 향상됩니다.

* 사냥을 통해 경험치를 얻을 시 ‘레벨 업’이 가능합니다.

기존의 ‘강체화’가 ‘불굴의 강체화’로 강화되었다.

이에 여러 가지 내용이 추가되었다.

우선, D등급에서 C 등급으로 한 단계 상승했다.

이현욱은 왼팔에 ‘강체화’를 시도했다.

쩌-저-저-

‘두께는 늘지 않았지만, 훨씬 단단하고 힘도 강해졌다.’

경험상 이 정도 느낌이라면, 악력이 약 5배는 강해졌을 터였다.

D등급이 약 3배였으니, 상당한 성장이었다.

‘거기에다가······ 추가 스킬이 생겼다.’

총 3가지 항목이 있었고 1번과 2번만 오픈되어 있었다.

그는 우선, 강체화가 걸린 왼손에 1번 스킬인 ‘마나 실드’를 걸었다.

- ‘마나 실드’가 개방됩니다.

우우우우-

강체화된 신체 부위 주변으로 흐릿한 기운 같은 게 흐르기 시작했다.

금속처럼 단단해진 피부 조직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마나를 방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마나의 흐름이 몸을 타고 회전하는 식으로 ‘마나 실드’가 기능한다.

이는 ‘드래곤’의 비늘이 마법을 상쇄시키는 원리와 똑같았다.

‘초급 마법 정도는 쉽게 상쇄할 수준이다.’

강철대제(鋼鐵大帝)라고 불리던 시절, 이현욱의 최대 단점이 바로 ‘마법 저항력’이었다.

강체화를 최대한 강화해도, 물리 방어력만 늘어날 뿐 마법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렇기에 서은하라는 전담 탱커가 붙어서 전방위적으로 엄호해야만 했던 것이었다.

‘어떻게든 마법 저항력을 늘리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지······.’

마법 저항력을 올릴 만한 금속은 거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먹을 만큼 작은 금속이 없었다.

‘이번에는 근본부터 달라진 셈이다.’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어느 정도 상쇄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스킬 비밀 각인······ 이건 뭐지?’

- 체내에 각인할 ‘아이템’을 들어주십시오.

그 메시지에 따라서 쇠 구슬을 하나 꺼내어 쥐었다.

그러자······.

- 각인되었습니다.

쇠 구슬이 연기가 되어 손안으로 흡수되더니, 왼쪽 손목 피부 위에 무언가 새겨졌다.

“······문신?”

뭐랄까, 아주 작은 금속 입자가 피부에 새겨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동그라미 모양은 아마도 쇠 구슬을 형상화한 듯했다.

그곳에 다시 마나를 불어넣자······.

시이이이-

그 ‘문신’이 흘러나오며, 왼손에 쇠 구슬이 저절로 쥐어졌다.

“꽤 괜찮은데?”

본디 아이템에 붙어 있었던 ‘아공간’ 기능이 이렇게 바뀐 듯했다.

문신으로 체내에 아이템을 저장할 수 있다니, 솔직히 엄청난 휴대성이 아닐 수 없었다.

한태산이 비밀 갑주에서 묠니르를 꺼내 쓰던 장면이 떠올랐다.

맨 손이던 녀석이 갑자기 어디선가 망치를 꺼내 휘두르니, 적들은 당활 할 수밖에 없었다.

‘재밌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겠어.’

그리고 그때였다.

“이현욱 상병님! 지금 즉시 무기고로 가셔야 합니다!”

2분대 일병 한 명이 그렇게 전해주었다.

‘페일노트, 그게 도착했군.’

1시간도 안 걸린 걸 보아하니 무기고 간에 연동되는 ‘소형 포탈’을 통하여 도착한 듯했다.

이현욱은 즉시 무기고로 내려가서 그 물건을 수령했다.

세로 50cm, 가로 150cm 정도의 철제 상자였다.

그걸 들고 다시 생활관에 올라왔을 땐 아무도 없었다.

분대원들이 전투태세를 마치고 중앙 복도에 집합해있는 듯했다.

상자를 열자, 고고한 빛을 내뿜는 은색의 화살이 하나 들어있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트리스탄 경의 페일노트

- 효과 : 한 번 겨눈 대상을 추적하여 피격하며 ‘마법 저항력’을 무시합니다.

‘오랜만이다.’

이건 이현욱이 주 병기로 쓰던 아이템 중 하나였다.

숱한 아이템을 써봤지만, 이것만큼 통제하기 편한 아이템은 드물었다.

일반적인 화살과 달리 깃부터 촉까지 모두 금속이기 때문이었다.

즉, 이현욱이 금속 통제력을 발휘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인 대상이었다.

‘각인.’

새로 얻은 스킬을 적용하자, 페일노트가 연기처럼 사라지더니······.

- 각인되었습니다.

왼팔 손목 위로 작은 화살 문신이 새겨졌다.

“어디 한 번······.”

그는 문신으로 마나를 불어넣음과 동시에 금속 통제력을 발휘, 그것을 강하게 밀어냈다.

그러자-

쉬-익!

아무것도 없던 손아귀-허공에서 ‘페일노트’가 튀어나옴과 동시에 수직으로 쏘아져, 눈 깜짝할 사이에 생활관을 주파, 창문 근처에서 아슬아슬하게 정지해 있었다.

마치, 순간 이동한 것만 같은 착시가 들었다.

“허······.”

직접 컨트롤한 이현욱조차 그 움직임을 ‘눈’으로는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비밀 각인이 해제되며 그 연기가 실체화됨과 동시에 쏘아졌기 때문이었다.

“이거······ 허를 찌르기에 딱 좋은 조합인데?”

전생에 숱하게 사용한 ‘페일노트’였다만,

‘비밀 각인’과의 조합으로 새로운 무기가 탄생했다.

평소에 자주 사용했던 ‘히든 소드’ 이상으로 요긴할 것 같았다.

이현욱은 만족감을 느끼며 페일노트를 거두어 다시 ‘각인’하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절대 빗나가지 않는 화살’을 ‘절대 들키지 않는 곳’에 숨겨둔 채 집결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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