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23화 (23/221)

23. 서울역, F등급과 S등급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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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참변, 이현욱은 그렇게 불리었던 사건을 기억했다.

서울역 일부가 ‘언럭키 이벤트’에 의해 강제 폐쇄되어 6시간 동안 수백 명이 고립되고 끝내 745명이 사망한, 당시 동 기간 대 벌어진 몬스터 재난 사례 중 가장 참혹한 사건이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게이트 대응 시스템’의 맹점이 드러난 사건으로 기록될 만했는데······.

‘그 직후, 4차 웨이브가 일어나며 수십만 명이 죽는 바람에 묻히고 말았다.’

그렇기에 훗날,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사라진 745명의 목숨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게 된다. 그저 더 큰 재앙이 일어나기에 앞서 경고 차원에서 희생된 몇몇일 뿐이니······.

그러나 그들은 지금, 한 명도 빠짐없이 살아 있었다.

“어, 엄마 무서워······.”

“쉿- 아들, 괜찮아, 저기 플레이어님들이 우릴 구해주실 거야.”

“아빠가 우리 데리러 오고 있어?”

“그럼, 우리 조금만 기다리자.”

원래대로라면 거미의 먹잇감이 되었을 그 사람들이 이렇게 한곳에 모여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로, 저분들이 5시간 동안 몬스터를 막아낼 수 있을까?”

약자가 품을 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의문······.

그들을 믿어야 하는 건 고작해야 40명의 ‘저 레벨’ 플레이어뿐이었으니 당연했다.

무력한 민간인들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른 침을 삼킬 뿐이었다.

꿀럭- 꿀럭-

시간이 지날수록 게이트의 표면이 격하게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40명의 플레이어, 그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전사와 기사 계열 등 ‘탱커’들이 계단과 에스컬레이트를 막고 서 있었으며, 사수와 마법사들은 테라스에 일렬로 늘어서, 무기를 들어 올렸다.

고요-

곳곳에서 옅지만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쉬-이-

그리고 어느새, 그들 모두가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맹독갑옷거미가 어떤 독성을 내뿜는다는 것을, 이현욱이 견지해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순간 게이트의 요동침이 멎더니······

번-쩍-

게이트가 사방으로 빛을 뿜어냄과 동시에 끔찍하리만큼 거대한 거미 2마리를 토해냈다.

번-쩍-

그렇게 2차례, 총 4마리가 등장했다.

1차 분열 때보다 2배 많은 숫자였다.

‘······나왔다.’

모두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는 거친 숨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끼-릿! 끼-릿!

역겨운 울음소리와 육중한 움직임······ 그것들이 몸을 일으키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서울역 2층 맞이방이 좁아 보일 지경이었다.

“대기······.”

침묵 속에서 이현욱의 목소리만이 나지막이 울렸다.

쿵- 쿵- 쿵- 쿵-

지축이 울리는 8개의 발소리가, 심장을 뒤흔들었다.

“대기······.”

이현욱은 오른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 왼손을 놈을 향해 뻗었다.

‘단 하나의 껍질만 터뜨린다. 등 쪽, 다른 플레이어의 공격에 닿기 좋은 곳으로······.’

이현욱이 본격적으로 능력을 사용한다면 맹독갑옷거미 몇 마리쯤이야 손쉽게 제압할 수 있겠지만, 그는 첫 번째 전투 때처럼 거미의 피부를 모조리 터뜨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마나를 최대한 아껴야 한다.’

- 마나 (159/159)

* 1분 당 5씩 회복됩니다.

1차 분출 때보다 몇 배는 많은 수의 몬스터가 나올 테니, 마나를 아껴 쓸 필요가 있었다.

‘다음에 나올 그놈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마나가 필요할 테니······.’

거기까지 생각한 이현욱은, 왼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 마나 (151/159)

8의 마나가 증발하고,

뻐-엉!

굉음과 함께 가장 가까이에 있던 맹독갑옷거미의 등 쪽 외피가 폭발했다.

놈이 기겁하며 몸을 흔들었고 그 순간, 이현욱의 오른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깨진 부위로, 마법 공격 발사!”

웅크리고 있던 마법사들이 몸을 일으키며 미리 준비해둔 마법을 사용했다.

퍼-엉!

화염 마법이 폭발하고,

쩌-엉!

전격 마법이 작렬했다.

쏘아진 마법은 이현욱이 미리 터뜨려 놓은 등 쪽 구멍 주변에 적중했다.

그러자 쩍- 소리와 함께 그 부근으로 균열이 일어나며 꽤 넓은 면적의 외피가 으스러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드러난 상당한 부위의 ‘맨살’ 위로······.

“지금이야! 쏴!”

타-다-다-다-다-당!

경비팀장의 명령과 동시에 총, 화살 등 물리 공격이 일제히 뿜어졌다.

깨진 외피 그 구멍 안을 향한 조준 사격이 장맛비처럼 쏟아졌고 녹색 피가 퍽, 퍽, 터져 나오더니 이내 끈적끈적한 살점이 뭉텅뭉텅 떨어져 나오기에 이르렀다.

“좋아! 먹힌다!”

한편, 그런 물리 공격 중에서도 이현욱의 ‘쇠 구슬’은 남달랐다.

일방적인 사격 공격은 대상물의 표면을 뚫고 들어가 한 차례 내상을 입히는 데 그친다.

그러나 이현욱이 조종하는 쇠 구슬의 경우 표면을 뚫고 들어가서도 ‘계속’ 움직인다.

‘내장을, 전부 갈아버려라.’

이현욱은 놈의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원형의 금속을 느꼈다.

물론 아직 통제력이 부족하여 이곳저곳에 툭, 툭, 걸릴 때마다 움직임이 느려졌다만, 그 힘과 별개로 몸 안에서 쇠 구슬이 이리저리 움직인다면, 그 고통은 상상 초월일 터였다.

끽! 끽! 끽! 끽!

맹독갑옷거미의 몸속에서 이현욱의 쇠 구슬이 마치 ‘핀볼’처럼 튕기며 근막을 찢고 내장을 두드리고 혈관을 끊었다.

어떻게든 침투하기만 한다면 지속적인 내상을 발생시킬 수 있다.

그리고,

‘파쇄!’

쩍-

놈은 몸 안에서 쇠 구슬이 터지며 수십 조각의 흩어지는 걸, 이현욱은 느꼈다.

놈은 내장이 갈리는 고통, 그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리고 이내······.

철-퍽-

그 육중한 몸뚱이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잡았다!”

짧은 환호성-

그러나 이제 거우 한 마리일 뿐, 이현욱은 곧장 다음 목표를 향해 손을 뻗었고 다른 이들도 이현욱의 행동을 따라 움직이며 그쪽을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뻐-엉!

다시금 한 마리의 등 쪽 외피를 터뜨리자, 이제는 별도의 명령 없이도 마법과 물리 공격이 순서대로 이어지며 효과적인 타격을 입히기 시작했다.

“젠장, 놈들이 이쪽을 봅니다!”

맹독갑옷거미들도 반격을 시작했다.

3층 테라스로 가까이 접근한 뒤 꽁무니를 이쪽으로 겨누더니, 무언가를 뿜어냈다.

푸-쉬-이-이!

“윽! 가스다!”

하지만 이미 방독면을 착용 중이었기에 그 정체불명의 가스를 흡입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윽······.”

“모, 몸이······ 굳는 것 같습니다······.”

“마, 마비 가스다!”

플레이어들이 마비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역시, 저 마비 가스는 호흡기뿐만 아니라 피부에 스며들어 작용한다.’

지난밤, 이현욱이 36시간에 걸쳐 ‘독 속성’의 금속을 삼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순식간에 몸을 마비시키는 독가스, 이게 맹독갑옷거미의 무기다.

그로써, 오직 그만이 아주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 그래도 아직 완전히 굳진 않았으니, 모두 지, 집중해!”

경비팀장이 뻣뻣해지는 목을 돌려대며 그렇게 소리쳤다.

“어! 우측 부근에서 스켈레톤이 포착되었습니다!”

어느새 한 무리의 스켈레톤 병사들이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에서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현욱이 ‘이중 게이트’ 현상을 미리 확인한 덕분이었다.

“5분대 전원, 저것들을 조준 사격한다!”

안민태가 명령하자 5분대원들의 총구가 움직였다.

타-당! 타-당!

“내가 계단을 지키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사격해!”

마비 가스에 의해 사수들의 손가락이 천천히 굳어가고 있었지만, 안민태를 비롯한 탱커들이 등 뒤를 지켜주고 있다는 점을 믿고, 최대한 침착하게 한 발 한 발 당겼다.

뻐-억- 뻐-억-

총알이 적중할 때마다 스켈레톤, 그 유약한 몸뚱이가 한 부위씩 으스러져 내렸다.

“저것들은 그냥 일반 스켈레톤 같습니다! 굉장히 약합니다!”

“좋아, 계속 쓸어 버린다! 모두 잘 하고 있어!”

그리고 애초에 빌런과의 접선을 위해 열린 게이트인 만큼,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한편 5분대원들은 이 순간 오묘한 벅차오름을 느꼈다.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 자신들이 영 쓸모없는 존재는 아니었다는 것을, 지난 코볼트 게이트 전투에 이어서 다시 한번 깨닫는 중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싸울 수 있다니······.’

성공 경험이 연달아 이어지자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등급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현욱 상병님의 말씀이 맞았어!’

그러자 긴장 속에 숨겨져 있던 어떤 자질이 제 기능을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의 역할에 몰입했다.

그렇게 약 15분 뒤······.

후-우-우-

드디어 총성이 멎었다.

자욱한 연기가 걷히자, 걸레짝이 된 2층 맞이방이 드러났다.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 조각, 움직임은 없었다.

“······끝났다.”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2개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2차 분출을 막아낸 것이었다.

하나둘, 쓰고 있던 방독면을 벗었다.

“진짜······ 이렇게 완벽하게 해낼 줄은 몰랐습니다.”

경비팀장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고, 시민 플레이어 한 명이 그의 말에 동조하며 나섰다.

“저도 공감합니다. 저도 그래도 C등급 전사로서 길드 공략 팀에서 일하면서 던전 폐쇄 일도 여러 번 해봤는데 하하······ 이렇게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전투는 처음입니다.”

그들의 시선이 이현욱에게 옮겨졌다.

“솔직히 이건 전부······ 이 상병님 덕분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의 금속 파쇄 능력뿐이 아니었다.

어쩌면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숨는 걸 선택하는 게 당연한, 그런 최악의 순간이었음에도 저 괴물들을 마주하며 전의를 상실하지 않았던 건 이현욱이 풍기는 냉철함 덕분이었다.

그런 모습을, 이희민 중위는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았다.

‘저 자식······.’

이제는 이현욱에 관한 주변의 관심에 어떤 트집을 잡을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튀어나오던, 그 불만 어린 표정도 사라졌다.

‘······진짜로 대단하잖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전투가 시작되기 전, 이현욱은 자신이 어떤 업적을 달성하여 능력 상승을 얻었다고 밝혔따.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희민은 순간, 자괴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내가······ 뭘 한 거지?’

하지만 그의 감정은 이내 다른 것, 당혹감으로 교체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붉은색 글자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주의! 플레이어 여러분의 놀라운 성과로 인해 <추가 이벤트>가 부여됩니다.

“이, 이게 뭐야!”

“······추가 이벤트? 그게 뭔데!”

그 메시지는 이희민뿐만 아니라, 이 돔 안에 있는 모두의 눈앞에 출력되었다.

언럭키 이벤트, 인류에게 내려진 이 재수 없는 시련은 결코 친절하거나 자애롭지 않다.

말 그대로 끝까지 최악의 경우의 수를 내리며 플레이어를 몰아붙인다.

‘물론 그 모든 걸 이겨낸 뒤에는 큰 행운을 주지만······.’

이현욱은 쇠 구슬을 걷어 들이며 다음 메시지를 기다렸다.

- 보스 몬스터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00:15:00)

‘역시나······.’

이현욱은 이걸 예상했다.

앞서서 이미 한 차례 예고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 해당 지역에 ‘언럭키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 해당 지역으로 들어올 수는 있으나 나갈 수는 없습니다.

* 해당 지역에 입장 레벨 제한이 부여됩니다. (LV. 15)

* 탈출을 위해서는 6시간 동안 생존하거나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십시오!

위 설명 중 3번째-탈출 방법 중 6시간 생존이라는 ‘첫 번째 조건’이 너무 쉽게 충족될 것처럼 전개되니, 시스템이 의도적으로 ‘두 번째 조건’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재미가 없어졌다, 그건가?’

그 누구도 시스템의 저의를 이해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였다.

의문을 접어두고, 살아남는 것뿐이다.

“아······.”

“보, 보스라니······ 엘리트 몬스터도 아니고 보스 몬스터가 직접 나온다고?”

모두가 경악에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누가 뭐랄 것도 없이, 하나둘씩 이현욱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데 그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그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여러분, 아무래도 쉴 시간 없이 다시 전투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현욱의 표정이 직전과 다름없이 평온했기 때문이었다.

***

구-우-우-우-우-

서울역 광장, 어디선가 굉음과 진동이 터져 나오며 일대를 뒤흔들었다.

“으, 가, 갑자기 이게 뭐야!”

사람들이 자세를 낮추며 고개를 돌렸다.

“어? 저길 봐!”

누군가 돔을 가리켰다.

돔이 울부짖고 있었다.

- 05:01:12

* 보스 몬스터가 출현했습니다!

그리고 돔의 표면, 숫자 아래에 그런 글자가 추가되었다.

보스 몬스터라니······.

돔 안의 상황이 어렴풋하게나마 중계되고 있는 것이었다.

“보스 몬스터가······ 나왔다고? 이런 경우가 있어?”

보스 몬스터는 웬만해서는 ‘게이트’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던전 공략’ 시에나 만날 수 있는 최강의 몬스터였다.

그런데, 저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잠시 후 이 일에 관해서, 김강석이 마이크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지휘관으로서 현 상황에 관해 짧게나마 브리핑했는데······.

“지휘관님, 질문 있습니다!”

“여기, 여기도 질문 있습니다!”

이내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돔 안에서 민간인들이 수도 없이 희생되고 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리고 보스 몬스터가 출현했다는 건, 어떤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까?”

“예? 말씀해주시죠!”

저 안에서 민간인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하지만 공개적으로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민감한 발언이었다.

“앞서 말씀드렸듯, 30분 전, 우리 구조 팀이 돔 내부로 진입했습니다. 현재 민간인 구조 작전을 수행 중입니다. 이외 작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김강석은 이렇게, 형식적인 대답만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듣기로는 돔 내부로 진입 가능 레벨이 15 이하라고 하던데, 어, 그렇다면 그, 구조 작전을 제대로 펼치기 어려운 전투력 아닙니까?”

“······전문 훈련을 받은 병사들입니다.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간인 희생자는 얼마 될 것 같습니까?”

“······현재로서는 추측할 수 없습니다.”

그는 끝끝내 민간인 희생자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로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뉴스에는 이미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보도되는 중이었다.

심지어 이미 800명 이상이 희생되었다는 식으로 근거 없는 속보를 내는 곳도 있었으며, 전문가가 등장하여 구조대 병력도 전멸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를 해대기도 했다.

물론, 그것들이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당장 확인이 안 되었을 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다.

“저 돔은 앞으로 5시간 뒤에나 사라진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까지 추가 조치 없이 이렇게, 계속 대기만 해야 한다는 게 맞습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추가 구조대를 파견할 예정입니다.”

추가 구조대라니,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예? 이번에도 15레벨로 구성된 구조대일 텐데, 역시나 무용하지······”

김강석은 손을 들어 올리며 기자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누군가와 눈빛 교환을 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건 아직 결정이 안 된 문제라서 브리핑 때 말씀 못 드린 내용입니다만, 방금 확정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와서 말씀드립니다.”

김강석은 잠시 말을 끊은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곧 레벨이 없는 구조대를 파견할 예정입니다.”

기자들의 아우성이 잠시나마 멎을 수밖에 없었다.

“어? 레, 레벨이 없다면······.”

그 순간, 어디선가 돌풍이 몰아쳤다.

두-두-두-두-두-

서울역 정면의 빌딩 너머에서 프로펠러가 2개가 달린 대형 수송기가 날아들었다.

백색으로 도색된 바탕 위로 청화 길드의 파란색 불꽃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마침, 도착했군요.”

김강석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자, 모든 카메라가 그쪽으로 움직였다.

수송기가 착륙하기도 전, 문이 열리고 누군가 10여 미터 아래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아주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어!”

긴 머리를 끈으로 묶은 거구의 남자였다.

그는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초록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안으로 흑색의 비늘 갑옷이 얼핏 보였으며, 어깨 한쪽에 스포츠 더플 백을 짊어지고 있었다.

“어! 저기 봐! 하, 한태산이다!”

기자들이 그쪽으로 몰려가 버리자, 김강석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태산, 그가 와줘서 다행이야.’

한태산, 세계가 ‘권왕(拳王)’이라고 부르는 남자다.

대한민국 랭킹 2위, 세계 랭킹 9위의 S등급 플레이어였으며 운동복 안에 저 검은색 비늘 갑옷이 증명하듯 ‘드레이크 슬레이어’이기도 했다.

“그래! S등급이면 레벨이 없으니까 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잖아!”

“크! 아무리 S등급이 귀한 몸이라도 이럴 땐 나서주는구나!”

그런데 그런 엄청난 명성과 달리 공식 성상에서는 그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웬만큼 규모가 있는 게이트가 열리는 게 아니라면 직접 나서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예, 팀장님! 속보입니다! 타호가 굴에서 나왔어요! 예 무려 6개월 만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타호(惰虎)’ 게으른 호랑이라고 불린다.

물론 그렇게 나태하다고 해서 그의 성장이 멈춰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레벨 외 성장 특성’인 S등급인 만큼 때문에 실전을 치르지 않아도 자신만이 알고 있는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한 단계씩 강해져 있었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강해져 있을까······

플레이어 전문 기자들은 설렐 수밖에 없었다.

“하, 한태산 씨! 지금 즉시 돔 안으로 진입하시는 겁니까?”

한 기자의 질문에 한태산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 지금 나밖에 없다잖아요. 귀찮지만 어쩔 수 없죠.”

귀찮다니, 이런 재앙 앞에서 그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타호(惰虎)는 달랐다.

이미 오래전부터 괴짜나 악동 이미지가 붙었기에, 그가 벌이는 기행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독특한 매력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아! 한태산 씨! 혹시 이번 기회로 청화 길드와 다시 일하시는 겁니까?”

“그, 그렇다면 혹시 이번 활동 보수는 얼······.”

그 질문에 한태산은 인상을 팍 구기고 악다구니를 내뱉었다.

“씨발, 좀 비켜요.”

그의 단 한 마디에 뒤따라가던 기자들의 발걸음이 일제히 멈춰 섰다.

“저 안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데 내가 지금, 마이크나 물고 있어야겠어요?”

거기까지 말하자, 기자들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무슨 파리 떼도 아니고 옆에서 왱왱거리면서 거슬리게 진짜······.”

한태산은 서울역을 올라가는 계단에 이르러서 가방에서 황동색의 건틀렛을 꺼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찾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보라색 렌즈의 선글라스를 쓴 여자, 유해나였다.

“야! 유해나! 이번 일 끝나면 저녁 한 번 먹기로 한 거다!”

“······.”

그는 그렇게 외치고 돔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유해나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

권왕, 한태산은 민간인이 죽든 말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어차피 몬스터한테 뒤지는 것보다 굶어 죽는 인간이 더 많은데, 무슨······.’

그렇다고 해서 도덕성이 결여된 악한이나 냉소주의자는 또 아니었다.

그저 당장 눈앞의 인류애보다 거시적으로, 인류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언젠가 S등급도 갈려 나갈만한 좆 같은 일들이 빵빵 터질 게 뻔한데, 지금 몇 명 죽는다고 해서 일희일비하면 그건 멍청한 감정낭비다. 미래를 대비해도 모자랄 판에······.’

그런 순간이 오면 한태산, 자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매일 같이 자기 자신을 매 순간 강화해나가는 중이었다.

“이럴 시간에 계속 능력이나 올려야 하는데, 아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게 한태산, 그밖에 없다는데······.

6개월 만의 폐관 수련을 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솔직히 한편으로는······.

‘여기 보상은 최소 희귀 등급이고 보스 몬스터까지 출현했다면, 영웅 등급도 나오겠지?’

이런 언럭키 이벤트는 보상이 꽤 짭짤하다는 점에 구미가 당기기도 했다.

제아무리 등급이 높을지라도 좋은 아이템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한태산은 목과 어깨를 풀며 돔 안으로 진입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서울역 2층 맞이방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 썅······. 이럴 거면 나 왜 불렀어?”

헛걸음했다는 생각이 들자, 짜증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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