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22화 (22/221)

22. 서울역, F등급과 S등급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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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 양주섭이 그 수상함을 눈치챘을 땐 이미 늦었다.

푸-화-아-아-아-

시뻘건 불길이, 양주섭을 덮쳤다.

“으, 으아아! 시, 시발! 개새끼야! 이, 이게 말이 돼?”

그렇게 소리치는 양주섭의 목소리에는 고통보다는 황당이 담겨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한 방, 단 한 방에 그는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그래도 나름 플레이어로서 수많은 전투를 치러왔음에도······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이번에는 상대의 무기가 무엇인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으레, 플레이어의 전투 방식은 자신이 얻은 ‘특성’ 안에서 결정된다.

쉽게 말해서, 성기사는 검과 방패를 사용하고 마법사는 완드나 지팡이를 매개체로 마법을 쓰기 마련이다.

다만, 예외도 존재했다.

가령 ‘프리스트’라고 해서 무조건 ‘힐’만 하는 게 아니었다. 신성한 힘을 두른 검과 방패를 들고 최전방에 서기도 한다.

그리고 마법사 계열 중에서도 지팡이를 휘두르는 게 아니라 총알에 ‘인첸트’를 걸어서 ‘마탄’을 사용하는 저격수도 있다.

이런 경우를 흔히 ‘변주 무장’이라고 한다.

다만, 이 변주도 ‘정도’라는 게 있기에 대부분 예상 가능한 범주 안이었다.

‘그런데 시발, 웬 쇠 구슬을 조종하는 새끼가 갑자기 불을 뿜다니······.’

양주섭의 희미한 의식은, 악에 받쳐 그렇게 생각했다.

이현욱이 쏘아 보낸 쇠 구슬 공격을 아주 손쉽게 막아내고 의기양양하게 공격하려는 찰나- 이현욱이 입을 벌리자, 붉은 화염이 회오리처럼 뿜어져 나와 그의 모든 것을 덮쳤다.

그 장면을 끝으로, 양주섭의 의지는 희미해졌다.

‘내가 놈의 상성일 줄 알았는데, 역 상성이었다니······.’

그는 ‘나무의 정령사’라는 특성을 가졌기에 그깟 쇳조각 따위 수백 수천 개를 아무리 날려대도 수십 가닥의 ‘줄기’를 뽑아내어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불’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나무의 극상성인 불을 사용하는 적만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피해왔거늘, 이렇게 허무하게 불길에 휩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시발······ 그래도 빌런이면 꽤 괜찮은 최후가 기다릴 줄 알았는데······.’

빌런, 그 용례는 분명 긍정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영웅이 되어 세상을 구하라는 메시지보다 악인이 되어 세상을 파괴하라는 메시지가 더욱 설득력 있을 수도 있었다.

특히나, 세상에 대한 증오가 가득한 사람에게는 분명 그러했다.

그렇기에 양주섭이 자신을 따돌리던 팀원들을 ‘던전’ 안에서 하나씩 살해한 날, 그의 눈앞에 빌런이 되라는 퀘스트가 떠올랐을 때, 그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수락’을 눌렀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세상이 전부가······ 나한테 먼저 잘못했잖아······.’

인간 관점에서야 빌런이 악인이지, 조금 더 거시적인 시선에서 보면 빌런이야 말로 진정한 정의가 아닐까, 이 지구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인간을 걷어내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대의가 아닐까, 이 게임의 목적이 그것이 아닐까······.

양주섭은 그렇게 거듭 생각하며 ‘빌런 퀘스트’를 진행해왔었다.

그런데, 이렇게 허망한 최후를 맞을 줄이야······.

그때, 빛이 보였다.

눈이 떠진 것이었다.

“컥! 커-흐······.”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 죽음이 당도해 있었다.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한 남자, 이현욱이었다.

“······양주섭, 네 자기합리화는 여기까지다.”

“무, 뭐? 커, 커-헉!”

양주섭 순간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합리화라니······.

‘······대체 어떻게 내 속마음을 안 거야?’

그러나 그 고민은 해소될 수 없었다.

쇠 구슬이 날아와 그의 심장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이현욱은 왼손을 들어 올려, 쇠 구슬을 거두었다.

“검은 촉수 양주섭을 일찌감치 잡았군.”

훗날 A등급 플레이어까지 올라서, 검은 촉수라고 불리 게 될 빌런 양주섭,

그가 더욱 그르게 성장하기 전에 싹을 끊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현욱은 양주섭의 마음을 들여다본 게 아니었다.

그저, 모든 빌런의 마인드가 그런 식이라는 것을 익히 봐왔기 때문에 으레 짐작한 것이었다.

‘자신들이 저지르는 범 인류적 범죄를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포장하는 족속들······.’

이현욱은 앞으로 그런 것들을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처분해버릴 예정이었다.

그리고······.

- ‘아카식 무기고의 2번 열쇠’를 얻었습니다.

양주섭은 이 아이템을 몬스터 ‘악의 구도자’로부터 인계받을 예정이었다.

‘당장은 사용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빌런 퀘스트의 핵심 아이템 중 하나인 만큼, 언젠가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할 녀석이었다.

이현욱은 그걸 품속 깊은 곳에 넣었다.

보상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 (!)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퀘스트······.”

퀘스트란, 시스템이 내려주는 아주 특별한 방향성이었다.

[히든 퀘스트]

- 빛을 품은 자, 세상의 여명이 되리라!

당신은 인류의 배반자 ‘빌런’의 음모를 저지했습니다.

이로써 인류의 수호자 ‘가디언’이 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퀘스트는 당신이 세상의 빛이 되도록 인도할 것입니다.

*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가디언······.”

인류를 위협하는 빌런의 반대급부, 인류를 수호하는 가디언(Guardian)

그 조직의 일원이 될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지금 가디언과 얽히면 피곤해질 거야.’

그 이유는 AMT에 남고 싶지 않은 것과 같았다.

조직과 엮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얻을 수 있는 숱한 이득이 방해되고 만다.

“거절한다.”

- 정말로 거절하시겠습니까? (Y/N)

* 신중하게 선택하세요! 다음 기회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가디언, 그들은 분명 도움이 될만한 자들이었다.

인류를 위해- 빌런과 맞서기 위해 힘을 합친 이들, 미래에 이현욱과 동료가 될 운명이었던 수많은 영웅이 현재 가디언에 속해 있거나 곧 속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가디언이 아군은 아니다. 오히려······ 최악의 적일 수도 있다.’

최악의 적,

이 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빌런에 대해서 잘 알 필요가 있었다.

빌런이라는 족속은 크게 두 종류였다.

방금 죽인 양주섭처럼 시스템이 정의하여 퀘스트를 받고 빌런이 되는 이들이 일반적이었으나, 그것과 관계없이 스스로 악의 축이 되기로 마음먹은 플레이어도 있었다.

가령······.

‘고든 프라이스······.’

빌런 연합의 수장, 고든 프라이스가 바로 후자에 해당했다.

시스템에 의해 결정된 게 아닌 순수 악에 가까운 자······.

놈은 빌런 퀘스트 같은 걸 받은 적이 없음에도 빌런들의 리더가 되었다.

그리고 놈는 심지어······

“······인류 최악의 배신자.”

인류의 수호자 ‘가디언’에 속해 있었다.

이처럼 시스템과 게임은 어떤 판을 제시하지만, 그 판을 가지고 노는 건 플레이어였다.

지난 삶에는 놈이 이 판을 좌우했다.

그러나 이번 판은 다를 것이라고, 이현욱은 생각했다.

***

제3항마여단 1대대에서 차출된 ‘구조대’가 서울역 1번 출구 앞에 섰다.

이희민 중위를 필두로 한 15레벨 이하 18인이었다.

“젠장,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시발 아무리 봐도 자살 행위 같은데······.”

이희민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머리를 흔들더니 제 방탄모를 툭툭 쳤다.

“후,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그의 말에 뒤에 서 있던 병사들의 낯빛도 어두워졌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 돔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입장 가능한 레벨입니다.

여기까지는 긍정적으로 보였다만,

- 주의! 해당 지역은 <위험 지역>입니다. 한 번 입장하면 특정 조건을 만족하지 않는 한 퇴장할 수 없습니다.

이내 살벌한 문구가 눈앞에 떠올랐다.

꿀꺽-

이희민은 고개를 돌려 구조대 병력을 쭉 살폈다.

죄다 애송이 같은 낯빛이었다.

시발-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입을 열었다.

“······자, 전원! 진입한다! 내, 내부는 위험천만하다! 심지어 어떤 게이트가 열린 건지도 알 수 없으니까, 모두 정신 바짝 차려!”

그렇게 진입이 시작되었다.

- 주의! <위험 지역 : 언럭키 이벤트> 안에 입장하셨습니다.

그 메시지를 뚫고 들어간 구조대의 눈앞에 서울역 2층 맞이방, 그 드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

하지만 그들이 평소에 알던 느낌과 전혀 달랐다.

언제나 시끌벅적하며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던 공간이었거늘, 지금은 한없이 고요하여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그런 착각이 들었다.

“······시체가 한 구도 안 보입니다.”

어딘가 이상했다.

이미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예상하고 들어왔는데, 이상하게도 학살의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오히려 첫발부터 예상이 빗나가자 긴장감이 배가 되었다.

저벅- 저벅-

“······자, 박준모, 최태용 우측으로 전진해.”

안민태가 그렇게 지시했다.

그는 그래도 임시 분대장으로서 구조대의 부 지휘관 역할을 수행 중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게 눈에 들어왔다.

“소대장님, 저기 보십시오.”

보라색으로 일렁이는 거대한 균열, 그것이 맞이방 중앙에 열려있었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 게이트였다.

“그런데, 게이트 그 주변에 뭔가 있습니다.”

게이트 주변에 거대한 무언가가 산산이 조각 난 채 나뒹굴고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그 윤곽이 드러났다.

그건, 다리가 여러 개 달린 괴생물체로 보였는데······

“헉! 거, 거미! 엄청 큰 거미입니다!”

2중대 여군 한 명이 그렇게 소리치며 뒷걸음질 쳤다.

그 때문에 다른 이들도 덩달아 놀라며 자세를 낮췄다.

“어라, 근데 저거······.”

안민태만이 고개를 갸웃하며, 방패를 치켜세우고 앞으로 두어 걸음 더 다가갔다.

움직임은 없었고, 갈라진 틈에서 녹색 연기가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거, 이미 다 죽은 것 같습니다.”

그때였다.

“거기 누굽니까?”

3층 계단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아! 우리는 AMT 구조대입니다!”

이희민이 대답했고, 3층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올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구조대는 주변을 경계하며 2열로 계단을 올라갔다.

선두로 올라간 이희민이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남자, 서울역 경비팀장과 마주했다.

“구조대라고 하셨습니까?”

“예, 맞습니다. AMT 구조대입니다.”

“아, 저희는 서울역 경비2팀입니다.

두 사람은 악수했다.

“흠······ 그런데 이런 말씀 좀 그렇지만, 나갈 수도 없는데, 어떻게 구조하러 오셨다는 겁니까?”

“나갈 수는 없지만, 앞으로 남은 5시간 20분 동안 민간인 생존자를 최대한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그런 임무를 띠고 이 사지로 들어온 겁니다.”

역시 그게 최선인가······.

경비팀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희민은 고개를 돌려, 푸트코트 쪽에 모여있는 생존자들을 확인했다.

“그런데 민간인 희생자가······ 다행히도 아무도 없어 보입니다. 어떻게 된 일이죠?”

“아, 여러분과 같은 AMT 대원 덕분입니다. 지금도 그분 지시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예?”

경비팀장의 말에, 이희민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이곳에 있는 AMT 대원이라면 딱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그 사람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음, 상병 계급이었는데, 이름이 그······.”

경비팀장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아! 혹시 이현욱 상병, 맞습니까?”

그렇게 물어본 건 다름 아닌 박준모였다.

그 순간, 이희민은 목에 핏줄을 새우며 고개를 획 돌렸다.

“야 이 새끼야, 가만히 있어! 네가 뭔데 끼어들어?”

“아! 죄송합니다!”

“일병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진짜······.”

이희민의 과민 반응에, 경비팀장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어쨌든 그 이름이 맞습니다.”

“그 색, 아니, 그 병사가 대체 뭘 했다는 겁니까? 그런 놈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니 말도 안 되는······ 참나, F등급입니다, 그거.”

거침없이 쏟아지는 막말에 경비팀장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

이희민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영 맥락 없는 급발진이라는 걸 느꼈다.

그는 머쓱해져서 고개를 저었다.

“······그, 어쨌든, 이제부터는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이현욱 걔는 우리 부대 병사, 말단에 불과합니다. F등급이라서 여기 있는 사람들을 살려서 나갈 능력이 없습니다.”

이희민은 임무를 하달받을 때 대대장에게 들었던 명령- 이현욱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라는 것 따위는 이미 새카맣게 잊은 상태였다.

‘감히 F등급 주제에 장교는 무슨······.’

그의 마음속에는 며칠 전부터 누적된 이현욱에 대한 혐오가 부글부글 끓었다.

“흠, F등급이라니······ 정말입니까? 전혀 그렇게 안 보이던데요.”

“예? 그럼 구조대장인 제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F등급 맞습니다, 그거.”

“그럼 소대장님, 소대장님은 등급이 어떻게 되십니까? 여기 입장 제한이 15레벨이던데.”

경비팀장이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아, 레벨은 어쩌다 보니 딱 15레벨이라서 그렇지, 저는 C등급 3티어입니다.”

E등급과 D등급은 등급이 단일 구분이지만 C등급부터 ‘티어’라는 등급 제도가 추가된다.

5티어부터 1티어까지, 총 5단계이다.

이는, C등급부터는 아주 세세하게 쓸모를 나눌 만큼 유용한 등급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흠, 그렇다면 저는 C등급 1티어인데, 제가 왜 소대장님 지시를 따라야 합니까?”

“······예? 아니, 그러면 대체 F등급 그 자식의 지시를 왜 따르신 겁니까?”

“아니, 그러니까요, 이 분 참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하하······.”

경비팀장이 냉소를 머금으며 이희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그의 얼굴에 짜증이 피어났다.

“하- 미치겠네, 팔백 명의 목숨이 걸렸는데 이게 구조대라니······.”

경비팀장의 노골적인 감정표현에 이희민 역시 얼굴을 붉혔다.

다분히 다혈질적인 그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버럭 화낼 정도로 사리 분별을 못 하지는 않았다. 지금 경비팀장이랑 대거리했다간, 감당해야 할 게 많아질 테니 말이다.

그의 분노는 감당할 필요가 없을 때 터져 나오는 편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푸드코트 쪽 일반인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이 하나 등장했다.

부소대장, 최선아 하사였다.

“어? 소대장님?”

“야! 최선아! 이게 어디서 뭐 하다가······.”

이희민은 역시나 씩씩거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이현욱 그 자식은 지금 어딨어? 빨리 나오라고 해!”

“아, 그게······.”

“그분은 지금 아래층으로 잠깐 정찰을 가셨습니다.”

최선아 대신, 경비팀장이 말했다.

“뭐? 혼자서 정찰이라니······ 그게 말이 됩니까?”

“하······.”

경비대장이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대체 뭘 그렇게 따져 묻고 싶으신 겁니까? 여기 갇힌 우리가 무슨 감시 대상입니까?”

“따져 묻는 게 아니라, 구조대장으로서 확인하는 거 아닙니까?”

결국, 둘 사이에 스파크가 튀며 목소리가 높아졌고, 푸트코트 근처에 모여있던 시민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층 더 불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모두 조용히 하세요.”

두 사람을 타이르는 목소리,

이현욱이었다.

이희민이 홱 고개를 돌렸다.

이현욱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뭐? 야, 이 새끼야! 왜 네 멋대로 혼자 돌아다니······.”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뭐? 이 미친 새끼가 감히 어디다 대고 조용히 하라······.”

그 순간, 이현욱의 손아귀에서부터 무언가 비상하더니, 아주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훙-

“······헉!”

그것은 이희민의 입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웅-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쇠 구슬이었다.

조금만 늦게 멈췄더라면, 이가 죄다 으스러질 뻔한 상황이었다.

“······.”

이희민은 적잖이 놀란 표정으로 뒤로 엉거주춤 물러섰다.

그리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그건 분노라기보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느낌의 다소 억울한 표정이었다.

“쉿-”

“······.”

“모두, 입 다물고 저기를 보시죠.”

이현욱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려, 테라스 아래 어딘가를 가리켰다.

게이트였다.

고-오-오-오-오-

그런데 게이트가, 요동치고 있었다.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2차 분출 징조입니다.”

모두가 마른 침을 삼켰다.

슬슬 두 번째 전투가 시작되려는 것이었다.

이현욱은 이희민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소대장님께선 방금 여기에 있는 생존자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할 뻔했습니다.”

“······.”

“소대장님, 여기, 언럭키 이벤트 지역 안입니다. 지난번 작전 때 저와 분대원들에 당부하신 것처럼 목소리, 너무 크지 않게 조절하셨으면 합니다.”

이희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건 언젠가 자신이 했던 말이었다.

그 점에서 자신이 지휘관답지 않게 경거망동했다는 점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방금, 이현욱의 기에 완전히 눌려버린 것이었다.

“본의 아니게 위협적으로 신호를 드렸는데,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

그 말을 끝으로 이현욱은 경비대장과 안민태에게 손짓했다.

두 사람이 이현욱 앞으로 다가왔다.

“2차 분출이 곧 시작될 겁니다. 전투를 준비해야 합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현욱이 이곳의 모두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의견을 따랐다.

이희민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팀장님, 참고로 아래층에서 게이트를 하나 더 발견했습니다. 이중 게이트가 맞습니다.”

“······젠장.”

“이 점, 너무 염려하지 마시고 또 사람들에게 알리지 마세요. 혼란이 가중될 겁니다.”

“그래야죠, 알겠습니다.”

그때, 안민태가 어딘가로 손짓하자 박준모가 더플 백 하나를 들고 왔다.

“이현욱 상병님 무기, 저희가 챙겨왔습니다.”

그 안에는 전술 조끼, M9(인첸트) 대검, 구름의 검 등 이현욱의 무장과 더불어 최선아 하사의 무장까지 들어 있었다.

이현욱은 장구류를 착용하고는 구름의 검을 등 뒤에 착검했다.

“자, 시작하죠.”

경비팀장이 손짓하자, 6명의 경비대원과 3명의 시민 플레이어가 움직였다.

안민태가 눈치를 주자, 구조대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잡았다.

“여러분, 수백 명의 목숨이 우리 손에 걸려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현욱의 손짓하자, 모두가 무기를 들어 올렸다.

“······.”

그런데 그때,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 지점으로 쏠렸다.

이현욱, 그가 양손을 허리 높이까지 들어 올리고 있었는데······.

우-우-우-웅-

그의 양 손바닥 위에서,

20개의 쇠 구슬이 비상하여 마치 회오리바람처럼-나선형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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