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서울역, 언럭키 이벤트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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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앞 한강대로.
지금 이 순간 그 왕복 10차선엔 단 한 대의 차도 없었다.
서울역 내부에 게이트가 발생한 직후 AMT에 의해서 전면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두-두-두-두-두-
다만, 하늘은 평소보다 소란스러웠다.
방송국 헬리콥터와 드론이 잔뜩 떠 있었고, 그것들의 로터 소리가 사방팔방으로 시끄럽게 울려대며 서울역 인근의 공기를 떨리게 했다.
그때, 그 텅 빈 도로를 따라서 군용 트럭들이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1대대 병력이 들어옵니다!”
남산에 주둔하는 AMT 부대, 제3항마여단 1대대의 병력이었다.
“빨리 움직여! 뛰어! 뛰어!”
트럭이 도로를 따라 멈춰 서고 그곳에서 내린 병력이 역 광장에 정렬했다.
총 186명, 1대대의 모든 전력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젠장! 저 헬리콥터 좀 치우라고 해! 시끄러워 죽겠네!”
얼굴이 거무죽죽한 남자가 그렇게 소리치며 서울역을 향해 걸어갔다
1대대의 ‘광역마법통제관’ 문태호 소령이었다.
그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필이면 서울역에 언럭키 이벤트라니, 미치겠군······.”
검은 돔, 그게 마치 거대한 뚜껑처럼 서울역 일부를 덮어씌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표면에 떠올라 있는 웬 숫자······.
- 05:41:11
시계, 아니, 카운트다운이었다.
“충성! 통제관님, 공성 마법 준비할 수 있게 마법사들을 소집합니까?”
1중대장, 곽용준 대위가 뛰어오면서 물었다.
공성 마법은 쉽게 말해서 다수의 마법사가 동시에 캐스팅해야만 하는 대규모 마법을 뜻했는데, AMT에서는 ‘광역마법통제관’이라는 전문가가 그 모든 과정을 통제했다.
“아니, 저건 못 깬다. 마법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들어낸 규칙이라서 시스템을 뒤엎지 않는 이상······ 시간이 다 지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오늘날, 세상은 ‘게임’의 규칙이 지배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위에 있는 게임을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게임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인류가 시스템의 영역에 어찌 도전할 수 있을까······ 문태호 소령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새삼스레 무력함이 샘솟았다.
“······그럼, 레벨에 맞는 인원으로 진입하는 수밖에 없습니까?”
곽용준 대위가 걱정스레 물었다.
내부에 고립되었다고 민간인만 무려 800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었다.
그러나 저 돔을 깨지 못하는 이상 내부로 들어갈 방법은 한정적이었다.
아니, 단 한 가지였다.
규칙에 맞게, 입장 레벨 제한에 따르는 것.
‘진입 가능 규칙은 15레벨 이하······.’
쉽게 말해서 애송이로만 구성된 구조대를 꾸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런 구조대라면 자살 특공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걸, 문태호 소령은 잘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두-두-두-두-두-
헬기 한 대가 역 광장에 착륙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선글라스를 쓴 군인, 대대장 김강석 중령이 내렸다.
“충성!”
대대 참모들이 그의 앞에 늘어섰다.
김강석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중대장, 2중대장, 저 돔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병력, 그러니까 15레벨 이하의 병력이 얼마나 됩니까? 최대한으로 말씀해주세요.”
김강석 역시 유일한 방법을 고려 중이었다.
“예! 1중대는 총 10명입니다!”
“2중대는······ 8명입니다!”
“······.”
두 중대장이 보고하자, 대대장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두 전투 중대에서 싹 긁어모아 봐야 총 18명뿐이었으며, 본부중대는 비전투 계열 플레이어가 대부분인 만큼, 사실상 전투 병력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청화 길드 측은 몇 명이나 있습니까?”
김강석의 말에, 근처에 서 있던 사복의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이 지역의 담당 민간 길드인 <청화> 소속의 이준열 차장이었다.
“저희는 막내 1명인데, 사실상 없는 겁니다. 유망주가 아닌 이상 15레벨 이하의 플레이어를 길드에서 다수 보유할 필요가 없다 보니······ 아무래 그래도 솔직히 우리 막내한테 혼자서 저 안으로 들어가라는 건 여러모로 위험부담이 너무 크지 않겠습니까?”
이렇듯 ‘대 몬스터 전’을 수행할 수 있게 훈련된 플레이어 중 15레벨 이하 비중은 그리 높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게임이다. 그러므로 실전을 경험하면 저절로 레벨이 오르며 15레벨 정도는 AMT 경력 1년 차에서 다 쌓을 정도였다.
“급히 이곳저곳으로 15레벨 이하 병력으로 지원을 했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대위 계급의 지원과장이 보고했고,
김강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전과장을 돌아보았다.
“작전과장, 일단 대대별로 15레벨 이하 플레이어를 모두 준비시키세요.”
“······구조 작전, 강행합니까?””
“그래야죠. 안에 있는 목숨이 몇 개인데, 우리 목숨부터 챙기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
김강석은 그렇게 말하며 청화 길드의 이준열 차장을 쳐다보았다.
“······.”
이준열을 끙 소리를 내며 시선을 돌렸다.
AMT보다 강력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을 청화 길드였으나, 이런 이상한 변수 상황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예! 그럼 해당 병력, 즉시 소집하겠습니다!”
잠시 후, 15레벨 이하 병력이 집합했다.
당연하겠지만, 1중대, 2중대 양 중대 모두 대부분 전투 경험이 부족한 ‘지원분대’ 소속자들이었다.
특히나 1중대 5분대는 최고 선임자인 안민태마저도 딱 15레벨로, 사실상 전원이 집합한 상태였다.
그런데 간부가 딱 한 명 섞여 있었다.
그는 바로 1중대 2소대장인 이희민 중위,
그도 마침 딱 15레벨이었다.
“2소대장, 이희민 중위를 이민 작전의 현장 지휘관으로 임명한다.”
그는 레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C등급 플레이어였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지닌 플레이어 특성인 ‘추적자’가 꽤 고평가를 받는 능력이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플레이어 등급’은 시스템이 정해준 게 아니었다.
“2소대장, 이희민 중위.”
김강석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며 그의 관등성명을 호명했다.
“예! 2소대장! 며, 명령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소 과하게 긴장한 이희민의 모습에, 김강석의 왼쪽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침착하세요. 2소대장의 총 끝에 팔백여 명의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
“아, 그리고 소대장 휘하의 병사 두 명이 서울역 안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2소대 소속, 부소대장 최선아와 5분대장 이현욱이었다.
“그들과 성공적으로 합류를 하면, 작지 않은 도움이 될 겁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김강석은 이현욱에 대한 고평가를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이희민은 솔직히 떨떠름한 심정이었는데, 그 감정이 얼핏 얼굴 비칠 정도였다.
김강석이 손짓하자 병사 2명이 더플 백 하나를 들고 왔다.
그 안에는 이현욱과 최선아의 병기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명령하죠.”
“예!”
“이현욱 상병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세요.”
***
서울역 KTX/일반 열차 3층 맞이방은 2층 맞이방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형태였다.
안쪽으로 백화점과 연결되는 통로가 있었으나 역시나 ‘돔’에 걸려 막혀 었다.
생존자들은 최대한 안쪽으로, 그러니까 서울역 푸드코트 쪽에 모여있었다.
“게이트는 2층에 열렸으니 몬스터들이 여기 3층으로 못 올라게 막아야 해.”
역 경비팀장이 말했다.
단순하지만 어려운 명령이었다.
그러나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의 말에 이현욱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계단, 에스컬레이터 쪽을 봉쇄해야 합니다. 그리고 곧 2차 분출이 시작될 겁니다.”
“씁- 2차 분출이면 1차 분출보다 몇 배는 많이 나올 텐데······.”
역 경비대원들은 맹독갑옷거미 2마리만으로도 고전했었다.
그런데 2차 분출, 3차 분출은 적어도 그의 서너 배에 달하는 물량이 터져 나올 것이었다.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실상 초상집 분위기나 다름없었다.
한편, 한 가지 다행인 점이라면 이곳에 고립된 시민 중에서 ‘플레이어’가 몇 명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사 계열 C등급 4티어입니다만, 무기가 없어서 싸울 수 없습니다.”
“저도 사수 계열인데, 무기가 없으면 사실상 일반입니다.”
“저는 감정사 특성이라서, 전투는 좀······.”
무기가 없는 전사와 사수, 그리고 비전투 계열인 감정사라니······
그다지 큰 전력은 아니었다.
“저 혹시 이거라도 쓰시겠습니까?”
경비대원 한 명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서, 전사 계열 플레이어에게 내밀었다.
“이게 그래도 그냥 인첸트가 아니라, 마법 금속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쯧, 평소에 대검을 사용하는데 단검이라니······ 어쨌든 없는 것보단 낫겠죠.”
그러나 그걸로 ‘맹독갑옷거미’ 같은 거대한 괴물을 상대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짓이었다.
“아까 싸울 때 보니까 물리 공격은 거의 안 먹히는 것 같았습니다. 마법은 먹히던데······.”
그들이 본 게 정확했다.
맹독갑옷거미는 ‘물리 데미지 방어력’이 엄청 높은 개체였다.
“맞아, 그러니까 마법 공격으로 놈의 껍데기 한 부분에 집중시킨 뒤, 껍질을 파괴해서 그 지점에다가 물리 공격을 집중하는 식으로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음······.”
“그렇다면, 저기 그것들의 시체를 볼 때, 가장 껍질이 얇은 부분이 꽁무니 쪽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에 공격을 집중해보는 게 가장 성공확률이 높지 않을까 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나름대로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대 몬스터 전술이 ‘레이드’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점이었다. 강력한 몬스터와 무작정 맞선다면 웬만해서는 패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하는 몬스터의 특성을 이해하고 약점을 찾아내는 것, 그렇게 ‘공략법’을 마련하고 반복 수련하는 게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었다.
“사실, 저기 이 상병님께서 전부 신경 써주실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무리일 테니까요.”
그러나 결국, 이들 모두 이현욱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금속 갑옷을 깰 수 있는 상성 같은 권능을 가진 자, 그가 있다는 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이현욱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3층 테라스에 서서 2층에 열린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아는 바로는, 이곳에 열린 게이트는 한 개가 아니었다.’
이 공간 안에 두 개의 게이트가 열려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고 그렇기에 피해가 더 컸다는 게, 이미 이 사건을 한 차례 경험한 이현욱이 알고 있는 ‘전개’였다.
‘지금 이걸 알고 있는 건 나, 그리고······.’
이현욱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일대의 금속을 훑었다.
한 개의 금속, 정확히는 누군가 몸에 지니고 있을 금속 부품이 3층 테라스를 빠져나와 2층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다분히 수상한 움직임이었다.
‘······빌런.’
빌런 한 놈이 여기에 섞여 있다는 걸, 이현욱은 진작에 눈치채고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조금 전, 서울역 경비대가 게이트에 대응하는 사이에 그는 시민들 사이에 섞여서 그 빌런 놈을 특정해냈다.
모두가 당황하여 출입구 쪽으로 향하고 있거늘, 유일하게 고개를 돌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남자를 ‘빌런’으로 추정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딱 그 남자가 지금, 2층 어딘가로 가고 있다.
“이현욱 상병, 그 아래쪽에 뭐라도 있어? 계속 보고 있길래······.”
최선아가 다가오며 물었다.
“예, 있습니다.”
“······어? 혹시 따로 떨어져 있는 사람이야?”
이현욱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경비대장을 바라보았다.
“경비대장님, 잠시 이쪽으로······.”
“아, 예.”
두 사람은 시민들에게서 십여 미터 떨어졌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주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경비대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여기 돔 안에, 게이트가 한 개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예? 이중 게이트가 열렸단 말씀입니까?”
이중 게이트란, 말 그대로 한 장소 안에 2개의 게이트가 동시에 열리는 걸 뜻했다.
“예, 제가 전혀 다른 몬스터를 봤습니다. 저쪽으로 사라졌는데, 아무래도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중 게이트는 사실이었으나, 직접 봤다는 건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단지 이 자리를 잠시 벗어나기 위해 둘러댄 것뿐이었다.
“아······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확인만 할 겁니다. 그리고 혹시 이곳에 문제가 생기면 즉시 달려와서 함께 싸울 테니까, 그때까지 여기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명색에 역 경비대인데, 본분을 다해야죠.”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
양주섭은 텅 빈 서울역 2층 맞이방, 상가 안을 헤매고 있었다.
“시발! 도대체 어, 어디야!”
이곳에 이중 게이트가 열린다는 사실은 시스템 메시지를 통하여 미리 알고 있었다만, 그 정확한 위치까지는 몰랐다.
그리고 아무리 빌런이라지만, 그래도 인간이다.
이런 으스스한 분위기 속을 혼자 걷는 것이 마냥 달가울 리가 없었다.
- ‘언럭키 이벤트’ 지역 내 몬스터는 당신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 메시지 한 줄이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후, 그래도 이 퀘스트만 하면 정규 빌런으로 승급하니까 참자, 참아.”
퀘스트란 MMORPG 게임의 목표를 제시해주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다만, 이 게임의 경우 ‘퀘스트’를 받는 건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한했다.
그리고 ‘빌런’이 그 경우 중 하나였다.
[히든 퀘스트]
- 시야 밖에서 움트는 작은 어둠으로 피어나리······.
1) 1번 게이트의 ‘맹독갑옷거미’가 서울역 안에 ‘둥지’를 틀 때까지 시간을 버시오. (실패!)
2)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500명 이상의 ‘민간인’을 학살하시오. (진행 중)
3) 2번 게이트의 엘리트 몬스터 ‘악의 구도자 11’로 받은 아이템을 ‘빌런 연합’에 전달하시오. (진행 중)
* 보상 : 승급 (정식 빌런)
살벌하기 그지없는 퀘스트 메시지가, 양주섭의 눈앞에 떠올라 있었다.
비록 1번은 이미 ‘실패’ 판정이 되었지만, 그가 중요시하는 건 3번이었다.
‘3번을 달성하면, 드디어 다른 빌런들과 조우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고독한 늑대로서, 홀로 퀘스트를 수행했지만, 앞서나간 선배 빌런들과 만나게 되는 날이 머지않았다.
이 세계의 어둠 속에서부터 점점 세를 불려 나가고 있는 진정한 지배자들······.
양주섭은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히죽 웃었다.
“오, 이쪽이다!”
한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 안쪽, 보라색의 일렁임이 얼핏 보였다.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특유의 불빛이 분명했다.
그는 숨을 고르고 그곳으로 진입했다.
그런데······.
“······응?”
매장 안, 테이블 아래, 스켈레톤 한 마리가 으스러져 있었다.
그가 찾고 있는 2번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가 분명했다.
“응? 뭐야? 죽어 있을 이유가 없는데······.”
그는 허리춤에서 전용 무기, 완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벅- 저벅-
널찍한 주방, 그곳에 보라색 게이트가 열려있었다.
우우우우-
맞이방 2층에 열린 게이트와 비교하면 확연히 작은 크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던전의 등급이 낮기도 했거니와 인간 세계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닌 ‘빌런 퀘스트’를 위해서 열린 게이트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주변에도 웬 뼛조각들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어? 시발, 뭐야······.”
양주섭은 그게 단순한 뼛조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저 게이트에서 나온 엘리트 몬스터 ‘악의 구도자 11’
빌런 퀘스트상, 양주섭과 접선하기로 된 스켈레톤 계열의 엘리트 몬스터가 분명했다.
그런데 그 존재가 누군가에 의해 말 그대로 ‘사냥’당했다.
“······헉!”
양주섭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한쪽 벽에 누군가 기대어 서 있었다.
“······.”
AMT 전투복을 입은 남자, 이현욱이었다.
“너, 너, 너······.”
양주섭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 새끼가 어떻게 여기에 있지?’
반면 이현욱은 놀라는 기색 하나 없는 차가운 표정으로 양주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오른손을 가슴 높이까지 들어 올리고 있었는데, 그 위로 약 10개의 쇠 구슬들이 떠올라 비규칙적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쏘아질 것처럼······.
우-웅- 우-웅-
양주섭은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찌그러진 스테인리스 선반, 움푹 파인 벽과 바닥, 그리고 으스러진 스켈레톤들······.
저 쇠 구슬의 위력이 어떨지는, 안 봐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더욱 눈이 가는 곳이 있었다.
이현욱의 왼손이었다.
그의 왼손에 검은색 열쇠가 쥐어져 있었다.
“그, 그, 그건 설마······ 아카식 병기창의 2번 열쇠?”
이현욱은 왼손에 쥐고 있던 그 열쇠 같은 걸 들어 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 아이템 이름을 어떻게 알지? 방금 저걸 잡고 얻은 건데?”
“뭐? 어······.”
이현욱이 벽에서 등을 땠다.
“수상한데, 마치 몬스터와 약속을 잡은 것처럼 이상한 행동을 하는군.”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양주섭 당황하여 뭐라고 변명할지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가 둘러댈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차피 어떻게 해서든 저 아이템을 회수하여 빌런 연합과 만나야 한다.
그게 아니면 어차피······.
- 주의! ‘3번’ 목표 실패 시 ‘게임 오버’됩니다.
게임 오버(Game Over)······
플레이어에게 게임 오버란 죽음을 뜻한다.
“······후! 야! 너!”
“······.”
“내, 내가 좆밥 병신처럼 보이냐?”
양주섭 그렇게 꽥 소리치며 완드를 치켜세웠다.
그는 나름 C등급 1티어의 플레이어였다.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만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AMT 병사 따위라면, 물론 단순한 병사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자신이 훨씬 강할 터였다.
“그리고 네 능력, 뭐 깡통이랑 쇳조각 몇 개 조종하는 것 같은데 그것도 꽤 쓸모 있어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나한테는 재미 못 볼 능력이다, 이 새끼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주섭이 완드를 휘둘러 스킬을 사용했다.
쩌-저-저-저-저-
그 순간, 그의 몸 곳곳에서 녹색의 나무줄기 같은 게 자라나더니, 촉수처럼 움직이며 양주섭의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일종의 방어 스킬인 듯했는데, 마치 수십 마리의 보아뱀이 발아래에서부터 기어 올라오며 몸을 칭칭 동여매는 것만 같았다.
이현욱은 그 즉시 손을 앞으로 뻗어, 10개의 쇠 구슬을 쏘아 보냈다.
목표는 양주섭의 얼굴이었다.
퍼-버-버-버-버-벅!
그러나 등 뒤쪽에서 나무줄기가 뻗어 나오며 쇠 구슬을 막아냈다.
쇠 구슬 정도로는 밀도가 높고 수분 함유가 많은 나무줄기를 뚫을 수 없었다.
기껏해야 움푹 파이는 정도였고, 이현욱은 쇠 구슬을 거두어들였다.
“으하하! 거봐- 이 병신아! 나한테는 안 먹힌다고 말했잖아, 이 새끼야!”
양주섭은 의기양양해져서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의 몸은 어느새 나무줄기에 의해서 완전히 가리어져서, 웬만한 물리 공격으로는 본체를 공격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럼 어디 한 번 일방적으로 처맞는 기분을 느껴봐라! 으하하!”
쩌-저-저-저-저-
양주섭은 그렇게, 자신의 몸을 줄기로 뒤덮어서 완벽하게 방어한 채, 공격용으로 몇 개의 줄기를 따로 뻗었다.
그리고 줄기 사이, 아주 작은 틈 사이로 이현욱을 쳐다보았다.
‘어디, 얼마나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나 보자!’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싱긋 웃고 있었다.
그리고······.
미소를 머금은 그의 입가에서, 목 안쪽으로부터······.
시-이-이-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