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서울역, 언럭키 이벤트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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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 제조업, 신성 무기 공방, 마법 공학 건축업, 포탈 교통 산업······.”
박철수는 그렇게 읊조리며 메모하고 있었다.
이현욱은 방금, 박철수에게 4차 웨이브 이후 크게 성장할 회사, 그러니까 특정 ‘주식 종목’을 일러준 뒤, 자신의 전 재산이 든 통장을 넘기고 그 종목에 투자하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박철수에게는 4차 웨이브 같은 말을 직접 꺼내지는 않았으며, 그저 앞으로 그쪽 산업에 기업과 길드가 거금을 투자할 예정이라는 식으로 둘러댔다.
“그런데 현욱아······ 이 정보, 진짜야?”
박철수는 아직 의문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너무나 갑작스럽고도 믿기 힘든 이야기일 터였다.
“전부 진짜고, 곧 크게 성장할 회사들이야.”
그러나 박철수를 설득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현욱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3장의 명함,
이번에도 어쩌다가 얻게 된 그것들을 아끼지 않고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 그러니까 지금······ 이런 거물들에게, 진짜로 명함을 받은 거라고? 네가?”
박철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연히라도 만나기 힘든 인물들의 명함을 3장이나 들고 있다니······.
‘현욱이가 대체 어떻게······ 잠깐만, 캐서린 유, 이 사람은 심지어 청화 길드의 둘째 딸이잖아? 당연히 이쪽 사업에 확실한 정보가 있을 거고, 특히 서울공략부장이니까 AMT 상부와 유착 관계가 있다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
박철수는 그렇게 나름대로 해석하며, 이현욱의 말에 신빙성을 입혀나가는 중이었다.
“이, 이분들이, 너한테 그 비밀 정보를······.”
“그래, 그게 아니면 내가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었겠어? 그리고 형, 아직 자세한 건 묻지 말아줘. 형도 알겠지만, 이거 꽤 민감한 정보야. 새나가면 큰일 날 수도 있어.”
“······아, 그렇지, 알겠다.”
누구나 아무 말이나 내뱉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을 믿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증명’이 필요했다.
직전에 이원철을 상대하며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힘, 그리고 확신에 찬 자세와 과감한 투자, 하물며 이렇게 거물급의 명함까지 더해지자 이현욱의 말에는 ‘무게’가 깃들었다.
‘그래, 현욱이 이 녀석 확실히 달라졌어. 지난 2년간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하지만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올려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현욱아,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넌 분명 플레이어 훈련소에서 F등급을 받았잖아. 그런데 방금 보여줬던 그 힘은 아무리 봐도 F등급이 아닌 것 같은데······.”
그래, 이현욱이 F등급이라는 건, 그의 주변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었다.
‘대체 비 성장 특성인 F등급이 어떻게 강해질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겠지.’
이현욱은 그 질문을 수도 없이 받게 될 것을 예상했고, 아주 적절한 답변을 준비해두었다.
“형, 업적 시스템이라고 알고 있지?”
“응? 야, 그래도 내가 명색이 길드 마스터잖아.”
세상이 게임처럼 변했다.
그렇다는 건 게임적인 요소가 수도 없이 많다는 뜻이었다.
‘업적 시스템’도 그중 하나였다.
‘성장 외에 유일하게 개인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이다.’
게임과 관련하여 특별한 조건을 만족할 시 ‘업적’이 부여된다.
가령, 아주 강력한 몬스터인 드래곤을 사냥하면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업적을 얻는다.
그리고 업적의 가치에 따라서, 적지 않은 능력치 상승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아, 업적을 달성해서 능력치가 오른 거야?”
“맞아.”
“와······ 그것도 대단하다. F등급이 업적 달성이라니, 어떤 업적인데?”
“F등급이라서 가능한 업적이야. 조건이 F등급으로 엘리트 몬스터 처지, 업적 이름이 <둔재의 반란>이었나, 음, 맞을 거야.”
이현욱은 얻은 적도 없는 업적을 그럴싸하게 지어내어 팔았다.
이로써 아주 손쉽게 F등급이 성장할 수 있다는 비밀을 숨긴 것이었다.
‘내가 강해졌다는 걸 숨길 수는 없지만, F등급이 아니라는 건 숨겨야 한다.’
아직 까지는 오직 그만이 알고 있어야만 하는 내용이었다.
이현욱은 마지막으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자, 선물이야.”
“응?”
그건 작은 상자였다.
“이게 뭐야?”
“형, 딸 태어났다며? 신발이야. 내가 부대 안에 있어서 축하도 못 해줬네.”
“아, 고맙다······ 정말······.”
“형은 분명 좋은 아빠가 될 거야. 우리한테도 좋은 선배였는데, 가족한테는 오죽하겠어?”
박철수는 표정 관리를 잘 못 하는 편이었기에, 아기 신발을 보는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형, 나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아, 그래, 다음에 나오면 밥 한번 먹자.”
“이원철 패거리 꼭 자르고, 형도 그 정보에 꼭 투자해.”
“그래, 고맙다······.”
박철수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이렇게 유약하지만, 훗날 거대 길드의 마스터가 된다.’
그를 일찌감치 얻었다.
이현욱은 복귀를 준비했다.
아니,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
현 시점상 총 3번의 ‘웨이브’가 발생했다.
1차 웨이브는 캘리포니아,
2차 웨이브는 상하이,
3차 웨이브는 베를린,
웨이브를 겪은 도시는 예외 없이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괴되었다. 심지어 일부 지역은 몬스터의 영역이 되기에 이른다.
캘리포니아가 레드 드레이크 무리의 초원으로 변하고, 상하이에 오크 왕국이 세워질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4차 웨이브는 서울이다.’
그리고 그 전조라고 볼 수 있는 일은 바로 오늘, 하필이면 서울역에서 시작된다.
대한민국 교통의 심장부로, 일일 유동인구가 100만 명에 이르는 장소다.
이현욱은 곧 지옥이 될 그곳에 서서 시계를 확인했다.
- 15:34
이어서 문자 메시지 하나를 확인했다.
- 최선아 하사 : 이현욱 상병! 나는 먼저 서울역에 도착했어. 오면 연락 줘!
약 1시간 전, 최선아로부터 문자가 왔는데 아직 답장하지 않았다.
“흠······.”
이현욱으로선 최선아 하사와 같이 복귀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오늘 일이 터지는 걸 대비하고 있었으니 그녀와 동행하는 건 말이 안 됐다.
‘17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이틀 전, 이현욱은 최선아에게 연락해서 17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만일 그녀가 그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다면 이곳에서 벌어질 사건에 휩쓸리지 않게 되었을 터였다.
‘분명 내 기억상 최선아는 이 사건에 말리지 않는데······.’
즉 이현욱이 함께 휴가를 나온 변수에 의해 그녀가 서울역에 일찍 도착했다는 뜻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녀와 함께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도 최선아는 지원 계열이니까, 오히려 도움이 될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최선아에게 이쪽으로 와달라는 문자를 남겼다.
동시에 가방에 들어있는 금속을 훑었다.
강정두 장인에게 구매한 단검 1자루, 마법 금속으로 만든 쇠 구슬 20개, 2.23mm 두께의 강삭이 20m 길이로 총 3롤까지······.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적지 않은 무기를 준비해둔 상태였다.
그리고 눈을 돌려서 역사 안 이곳저곳을 훑었다.
수많은 인파가 역내를 오고 가는 중이었다.
언제 어디서 게이트가 열릴지 모르는 세상이었다만, 사람들은 큰 걱정 없이 일상을 영위했다. 만약 위해서 곳곳에 플레이어 경비대가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서울역 경비대는 꽤 괜찮은 실력자들이지만······.’
그런 그들조차 무력화되고 만다는 걸, 이현욱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이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 중 대다수가 죽고 만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들 모두를 구해낼 수는 없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게 정상이었다.
그렇기에 그걸 미리 경고하여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며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결국,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건 많다.’
수천 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나왔으며, 진압을 위해 투입되었던 수많은 플레이어 병력이 희생되었지만, 세상은 훗날 그들의 희생이 무가치했다고 여기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이곳의 던전을 공략함으로써 얻었던 하나의 ‘아이템’ 때문이었다.
‘훗날, 한국 랭킹 2위인 권왕 한태산이 착용하게 될 아이템이다.’
현재 전 세계에 약 3천 개밖에 없는 ‘영웅’ 등급의 아이템이며, 심지어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잠재 아이템’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치 있는 아이템은 그것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빌런들이 빼돌린 그것······.’
오늘, 지금 이 순간, 빌런 한 명이 그 아이템을 노리기 위해 이곳 서울역 대기하고 있을 것이었다. 빌런 놈들은 게임 룰에 따라 일부 몬스터 종족과 내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때, 저 멀리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누군가가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이현욱 상병!”
키가 작은 여군, 최선아였다.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다가왔는데 왠지, 휴가 출발 때보다 화장이 진해진 것 같았다.
“첫 휴가 잘 보냈습니까?”
“응! 이현욱 상병은 휴가 어땠어?”
“예, 저도 잘 보냈습니다.”
“맛있는 것 좀 많이 먹었어? 나는 진짜 많이 먹었는데!”
이렇게 그녀와 인사하는 도중에도 그의 감각은 주변부를 훑어 있었다.
‘우선 소방용품보관함 쪽으로 가야겠어.’
아마도 앞으로 방독 마스크가 필요할 수도 있었다.
그가 그토록 대비했던 것, 바로 ‘독’ 때문이었다.
‘내가 아니라, 최선아를 위해서······.’
이현욱은 독에 대한 내성이 어느 정도 있지만, 최선아는 아닐 테니 말이다.
‘예정대로라면 15시 24분에 시작된다.’
이현욱은 다시 시계를 확인했다.
- 15:14
이제 10분 정도 남았다.
그는 금속 통제력을 사용하여 가방의 지퍼를 반쯤 내렸다.
언제든지 단검, 강삭, 쇠 구슬이 튀어나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현욱 상병, 어디 아파?”
“예?”
“방금 표정이 되게······ 뭔가 무서웠다고 해야 하나?”
“별거 아닙니다. 부소대장님, 여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신없는데, 다른 곳으로 가죠.”
“아, 그래!”
이현욱은 은근슬쩍 자리를 옮겨서 방독면이 들어있는 소방용품보관함 쪽으로 다가갔다.
‘역마다 배치된 이 시설이 쓸모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완벽하지 않을 것이었다.
코볼트의 흑마법사가 만들어냈던 검은 연기와 달리, 오늘 이곳을 휩쓸게 될 독은 호흡기를 차단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피부에 스며들기까지 할 테니 말이다.
그때였다.
후-우-우-웅!
난데없는 돌풍이 서울역 내부를 휩쓸었다.
“윽! 뭐야!”
“-꺅!”
역내의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와, 방금 그 바람 뭐야?”
“그러게요······.”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바람이었다.
마치 어디 건물 한쪽이 무너지면서 그 틈으로 강풍이 터져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어?”
서울역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많은 인파의 시선이, 일제히 한쪽으로 모였다.
우-우-우-웅-
“게, 게이트?”
건물 벽이 아니라,
공간이 터졌다.
그곳에서부터 이계의 바람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
서울역 통합관제센터.
이곳은 서울역 내부의 모든 CCTV를 통제할 수 있는 곳으로 역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이곳에서 즉시 확인하여 대응할 수 있는, 일종의 관제탑 같은 장소였다.
그런데······.
“······응?”
치지지지-
거대한 스크린을 채우고 있던 수백 개에 달하는 CCTV 화면이, 일제히 마비되었다.
“뭐야? 갑자기 무슨 일이야?”
있어선 안 되는 일이 벌어지자 한가롭던 통합관제센터에 비상이 걸렸다.
“2층과 3층 맞이방의 CCTV가 동시다발적으로 마비되었습니다!”
“뭐? 동시다발적으로라면······”
“마, 마나 산란······ 인 것 같습니다!”
센터장은 침을 꼴깍 삼키며, 직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마나에 의한 CCTV 마비라면, 그 원인은 몇 가지 없었다.
“설마······.”
그러자 직원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센터장님, 이건······ 역 안에 게이트가 열린 겁니다.”
재앙이 시작되었다.
***
서울역사 한가운데, 허공에 생성된 보라색 일렁거림, 게이트가 확실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역 곳곳에 대기 중이던 경비대원들이었다.
총 7명,
그들은 바로 이럴 때를 대비하여 훈련된 플레이어였다.
“게이트다! 전원 무기 장비하고 게이트를 포위한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출입구를 향해 몰려갈 때, 그들은 거꾸로 전진했다.
“1차 분출 때 뭐가 나오든 절대 물러서면 안 된다! 우리가 주저하면 시민들이 죽어!”
팀장은 그렇게 외치며 자신의 주 병기인 ‘크로스 보우’를 들어 올렸다.
“후······.”
자세를 낮추고 숨을 죽인 뒤 게이트를 겨누었다.
지름 10m에 이르는 거대한 게이트가 부글거리며 끓고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나온다!”
그 순간, 게이트가 끈적하게 늘어나며 무언가를, 아주 거대한 무언가를 토해냈다.
퍽!
마치 괴물이 새끼를 출산하듯, 튀어나와 바닥에 엎어진 그건······.
끼-릿!
다리가 8개 달린 곤충······ 거미였다.
“시, 시발 거미가 무슨 저렇게 커!”
그 크기가 족히 5m는 될 법한, 그래, 코끼리만 한 거미였다.
그 외양 역시 범상치 않았다.
거미라면 보통 매끈하거나 털이 수북하게 난 모습일 텐데, 저 거대한 거미는 딱딱한 갑옷 같은 것으로 뒤덮여 있었다.
“바, 발사! 일단 죽여버려!”
텅- 퍽- 퍼-엉-
팀장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게이트를 포위하고 있던 경비대원들이 온갖 공격을 날렸고, 그것의 몸 위에서 연달아 작렬했는데······.
끼-릿! 끼-릿!
놈은 아무런 데미지도 입지 않은 듯했다.
그것은 잠깐 몸을 웅크렸다가 앞으로 튕겨 나오듯, 앞으로 달려들었다.
경비대원들은 기겁하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거미가 스쳐 지나간 자리의 벤치, 화분, 입간판 등이 넘어지고 박살 났다.
“제, 젠장 대체 저, 저건 뭐지?”
“팀장님, 저건 어디를 공격해야 하는 겁니까?”
“저건······ 모르겠다. 나도 처음 본다.”
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무조건 ‘공략’이었으며 플레이어의 자질 중 하나가 바로 그 공략법을 숙지하는 것이었다만, 저 거미는 그들로선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
“그렇다면 아마도 최근에 업데이트된 몬스터 같습니다.”
마치 게임 콘텐츠가 업데이트되는 것처럼 나날이 새로운 몬스터가 등장하곤 했다.
그건 꽤 자주 있는 일인 만큼, 이곳에서 열린 게이트에서 새로운 종이 나온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만······ 문제가 될 건 너무나 많았다.
“일단 계속 쏴! 시민들에게 접근하게 해서는 안 돼!”
텅! 텅! 텅! 텅!
“아무리 그래도 내 볼트가 안 먹히다니······.”
경비팀장은 그래도 C등급 1티어 사수 계열의 플레이어로서, 그의 화살 한 방이라면 제대로 맞출 시 오크조차 한 방에 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마법 공격에 반응합니다!”
화염 마법과 냉기 마법이 작렬할 때마다 움찔거렸다.
“좋아, 그럼 일단 마법 위주로 시간을 끈다! 시민들이 대피할 때까지······.”
그러나 팀장은,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눈앞에 여러 줄의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해당 지역에 ‘언럭키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 해당 지역으로 들어올 수는 있으나 나갈 수는 없습니다.
* 해당 지역에 입장 레벨 제한이 부여됩니다. (LV. 15)
* 탈출을 위해서는 6시간 동안 생존하거나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십시오!
“······아?”
그런데 그 메시지는 그의 눈에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플레이어는 물론이거니와 일반인의 눈에도 그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뭐? 나, 나갈 수 없다고?”
“······아, 안 돼!”
언럭키 이벤트(Unlucky Event),
말 그대로 불운한 이벤트다.
쉽게 말하자면, 특정 지역에 플레이어에게 해가 되는 ‘디버프(de-buff)’가 붙거나, 게임을 어렵게 만드는 ‘룰’이 생성되는 등 플레이어로서는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현상이었다.
특히나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으아아! 나, 나갈 수가 없어!”
“사, 살려주세요!”
열리지 않는 출입구 쪽에서 수백 명이 뒤엉킨 채 절규가 섞인 고함을 쏟아냈다.
“팀장님! 거미 한 마리가 더 나왔습니다! 그리고 출입구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끔찍한 보고에 팀장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투-더-더-더-더-
마치 정어리 떼를 향해 헤엄치는 백상아리처럼, 거대한 거미가 8개의 다리를 놀리며 수백 명의 인파를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안 돼!’
그의 머릿속에 불과 몇십 초 뒤에 펼쳐질 끔찍한 장면이 그려졌다.
거미에 의해 짓이겨진 민간인들의 시체 더미······.
“······미친! 저걸 마, 막아야 한다! 빨리 쏴!”
팀장은 크로스 보우를 당기며 놈에게 달려갔다.
텅! 텅! 텅! 텅!
그러나 그가 쏜 볼트는 역시나 그것의 갑옷과 같은 피부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젠장, 거미가 무슨 강철 갑옷을 입고 나오는 거야! 모, 모두 피해요!”
막을 수 없으니 그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도망가라고 소리치는 것뿐이었다.
그때였다.
정어리 떼 같이 출렁이는 시민들 사이에서 누군가 따로 떨어져 나오더니, 앞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응?”
검은색 옷, 정확히는 전투복을 입은 남자, 그가 거미 앞을 막아섰다.
“······AMT잖아?”
하지만 무장하지 않을 걸 보아하니 지원 병력은 아니었다.
아마도 휴가 중인 듯했는데, 심지어 계급이 상병······ 일개 병사에 불과했다.
“젠장, 물러서! 네가 낄 곳이 아니야!”
AMT, 그것도 병사라면 전투 계열 플레이어 중에서도 최하위였다.
감히 나설 순간이 아니라고, 팀장은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거미가 앞발을 들어 올려 그 병사를 짓이기 직전-
퍼-엉!
정말 다행히도 누군가 쏘아 올린 화염 마법이 거미의 머리에 적중했고, 일시적이겠지만, 놈을 뒷걸음질 치게 했다.
팀장은 그 틈에 저 미려한 AMT 병사를 구하기 위해 달려나갔다.
“야! 너! 죽기 싫으면 당장 비켜!”
그러나 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거미를 향해 걸어 나갔다.
“아니요, 당신들이나 물러나세요.”
“······뭐?”
지금 이 상황에 걸맞지 않은, 이상할 정도의 냉정한 목소리였다.
그가 왼손을 들어 올렸다.
“머리를 가려요. 파편이 조금 튈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팀장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되물을 수 없었다.
더욱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끽! 끽! 끽! 끽!
지금까지 그 어떤 공격에도 끄떡없었던, 그 집채만 한 거미가 고통을 호소하며 몸을 비틀기 시작한 것이다.
쿵!
놈은 마치 심장마비가 온 것처럼 온몸을 비틀더니 벽에 머리를 들이받기 시작했다.
쿵!
“뭐, 뭐야······.”
그리고 다음 순간,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뻐-어-엉!
굉음과 함께 거미의 갑옷 같았던 피부가, 차례대로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뻐-어-엉!
팀장은 고개를 돌려 그 의문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왼손이 거미를 향해, 움켜쥐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