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폭발적인 성장, 그리고 기회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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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은 검과 방패를 들고 오크와 마주 섰다.
“······이현욱 상병! 오, 오크는 너무 위험해!”
등 뒤에서 최선아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이현욱의 엄청난 활약상을 옆에서 지켜봤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크를 상대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 판단이었다.
“아, 안 돼! 버스 안에서 버텨야······.”
그러나 이현욱은 대답 없이, 거구의 괴물을 향해 나아갔다.
이미 마주한 이상 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한눈팔았다간 목이 날아간다.’
모든 오크는 잘 훈련된 전사였기에 아무리 이현욱일지라도 절대로 방심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놈은 아직 내 능력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 어깨에 박힌 투척용 도끼를 뽑아서 등 뒤로 던지는, 그런 바보짓을 하지 않을 테니.
이현욱은 도끼의 위치를 확인한 뒤 오크를 마주 보았다.
오크가 먼저 움직였다.
그아아아!
놈은 전투 도끼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달려들었다.
‘힘을 실어 내리치는 공격이다!’
그는 오크가 치켜세운 전투 도끼의 끝자락에 ‘통제력’을 사용하여 뒤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놈의 몸이 아주 약간 이나마 움찔하게는 보였다.
그-으!
오크 같은 거구일지라도 무기 끝에 5kg의 무게추가 갑자기 매달린다면 순간적으로 균형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이현욱은 오른쪽으로 스텝을 밟으며 놈의 시야 밖으로 빠져나간 뒤, 오른손에 쥐고 있던 검을 자연스럽게 놓았다.
말 그대로 손아귀에 힘을 빼고 허공에 놓아버렸다.
스-륵-
폼멜(Pommel)이 이현욱의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놈의 눈은 여전히 이현욱이 머리를 쫓을 뿐, 지면 가까이에 붙어 움직이는 ‘검’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음 순간,
푹!
그 ‘검’이 놈의 오른쪽 허벅지에 박혔다.
······그으?
놈은 휘청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지금이다.’
이현욱은 쇄도하여 방패 모서리로 오크의 턱을 가격했다.
퍽!
이어서, 뒷걸음질 치는 놈을 향해 ‘강체화’를 건 주먹을 휘둘렀다.
뻐-억!
놈의 후두부에 이현욱의 라이트 훅이 정확하게 얹혔다.
그어어어······
제아무리 오크일지라도 골을 울리는 데미지가 세 번이나 연달아 터지자 두 발로 버티고 서 있을 수 없었다.
놈은 비틀거리다 풀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그로기 상태에 빠졌음에도, 놈은 전투 도끼를 들어 올리며 후속 공격을 방어하려는 노련한 전사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나······.
쩌-억!
수박 깨지는 소리,
놈의 뒤통수에 투척용 도끼 한 자루가 박혔다.
제아무리 노련한 전사라도 등 뒤에서 날아드는 공격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게, 위험한 물건을 아무 데나 두면 쓰나.”
그는 들어 올렸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어······.”
“와, 대박이다······.”
“저 사람 그 소문, 다 진짜였어!”
버스 안에서부터 감탄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방금까지만 해도 이현욱을 F급이라고 무시하던 본부중대 병사들이었다.
퓩-
이현욱은 오크의 허벅지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안 돼! 조심해요!”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몸을 돌리니 오크 한 마리가 황소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쿵-쿵-쿵-쿵-
놈과 부딪치기 직전, 이현욱은 양팔에 강체화를 걸었다.
‘이건 한 손으로는 막을 수 없다!’
말 그대로 황소의 돌격과 다름없다.
그는 검을 떨어뜨리며 두 손으로 방패를 움켜쥐었다.
오른발을 뒤로 빼고 모든 체중과 금속 통제력을 방패에 실었다.
직후, 방패 위로 전투 도끼가 떨어졌다.
콰-앙!
금속과 금속의 충돌,
엄청난 충격이 손목을 타고 흘러들어와 어깨와 무릎을 뒤흔들었다.
“······큭!”
내장이 출렁이며 순간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이현욱의 감각은 방패 아래로 자유낙하 하는 ‘검’을 놓치지 않았다.
‘-가라!’
그것은 이현욱의 의지에 따라서 머리를 들어 올렸다.
촤-악!
수직으로 쏘아진 검이 오크의 고간(股間)을 긋고 지나갔다.
허벅지의 힘줄이 잘렸는지, 오크는 풀썩 주저앉았다.
직전에 죽인 놈과 마찬가지로, 얼굴 한가득 황당함이 묻어난다.
저 검이 갑자기 어디에서 날아온 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네 심정 이해한다.”
검을 적의 시야 밖에 둔 뒤, 통제력으로 움직여 급습하는 것, 이현욱은 이것을 ‘히든 소드(Hidden Sword)’라고 명명했다.
‘그 누구도 적의 손을 떠난 검이 위협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기에 인식 밖으로 밀어내고 눈앞의 적에게만 몰두한다.’
히든 소드는 바로 그런 편견을 파고드는 수였다.
지금도 그 히든 소드 한 방으로 승부가 결정 났다.
이현욱은 방패를 들어 올려 오크의 안면을 내리쳤다.
뻑!
한 방에 코가 으스러지고,
뻑!
두 방에 이빨이 터져 나왔다.
뻐-걱!
세 방으로 끝이었다.
“후, 이렇게 두 마리······.”
이현욱은 검을 집어 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크 척후병은 3마리가 한 조로 움직인다. 어딘가에 한 마리가 더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꺅!”
어디선가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이현욱은 버스 뒤편으로 뛰어갔다.
“이현욱 상병! 저쪽이야!”
창문 밖으로 몸을 내민 최선아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오크 한 마리가 가드레일을 넘어, 숲 안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놈의 어깨에는 여군 한 명이 매달려 있었다.
축 늘어진 게 아마도 기절한 듯했다.
이현욱은 능력을 발휘하여 놈의 등에 매인 금속-전투 도끼를 잡아당겼으나, 그걸로 놈을 멈춰 세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젠장!”
이것도 예상 밖의 일이었다.
이현욱이 나서서 사람 두 명을 살린 건 잘한 일이었다만, 그렇기에 오크 한 놈이 노선을 틀어 여군을 납치한 것이었다.
‘눈 뜨고 당할 수는 없다.’
돌발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냉철한 판단력,
그리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결단력이다.
텅!
이현욱은 방패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검을 역수로 쥐었다.
“후······.”
그리고 숨을 들이쉰 뒤, 검을 등 뒤로 잡아당기고,
훙-
온 힘을 다해서 집어 던졌다.
사실 여기서, 달리는 오크의 등을 향해 흉기를 집어 던지는 건 진짜 미친 짓이다.
어깨에 매달린 인질이 맞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다르다.’
이현욱의 손을 떠난 검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비행을 했다.
포물선을 그리고 떨어지는 게 아니라 마치 유도 미사일처럼, 오크의 등을 쫓았다.
너무나 정확했다.
푸-욱-
검이, 오크의 목을 관통했다.
그 거구가 풀숲 위로 풀썩, 쓰러졌다.
***
그렇게 오크 3마리를 처리한 이후 주변을 경계했는데,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예상대로 ‘척후병’들인 만큼 본대와 떨어져서 움직이고 있던 모양이었다.
‘납치 시도도 척후병이기 때문에 한 것이겠지.’
오크는 웬만해서는 전투를 피하는 종족이 아니었으며 등을 보이는 종족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만, 척후병이기 때문에 전투보다는 수색과 정찰, 더 나아가서 본대에 보고하는 것을 보다 중요하게 여긴 듯했다.
이현욱은 오크 사체들을 수색했다.
마나 스톤 3개와 더불어 괜찮은 아이템이 하나 나왔다.
- ‘대지의 오브 (3등급)’를 획득하였습니다.
어제, PX 군용 아이템 상점에서 구매한 ‘오브’보다 더 높은 등급이었다.
“대지의 오브 3등급이면······ 400만 원 정도 하려나?”
일반적으로 아이템 소유권은 던전 공략 권한을 가진 조직에 있다.
길드나 AMT 등.
다만, 지금처럼 아직 공략 권한이 정해지지 않았거나 ‘레드 그라운드’ 밖에서 몬스터의 습격을 당하여, 그에 반격한 뒤 얻은 아이템이라면 최초 획득자에게 소유 권한이 주어진다.
즉, 이 물건은 이현욱의 소유였다. 잠깐의 헤프닝으로 적지 않은 돈을 번 셈이었다.
그때였다.
우우우웅-
산 아래에서부터 검은색 SUV 2대가 올라오더니, 버스 바로 옆에 정차했다.
“뭐야, 이거?”
선탑자 소위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 옆으로 다가갔다.
“거기 누굽니까! 이 도로는 일반 도로가 아니라 군용 도로입니다. 함부로 올라오면 안 돼요!”
첫 번째 SUV의 뒷문이 열리고, 누군가 내렸다.
여자였다.
그런데 그 외양이 얼핏 봐도 범상치 않았다.
“뭐, 뭐야······.”
레게 머리, 보라색 렌즈의 선글라스, 회색 스트라이프 정장 세트······.
거기까지만 본다면 그저 특이한 스타일이라고 여겨질 테지만, 그녀의 어깨와 목덜미에 손바닥만 한 거미가 붙어서 기어 다니는 걸 본다면······
끼-릿! 끼-릿!
그 감상이 극단적으로 바뀌게 될 것 같았다.
그녀는 앞길을 막아서는 소위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어?”
소위가 당황한 듯 머뭇거리고 있을 때, 뒤이어 조수석에서 내린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청화 길드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이처럼 2대대의 5분대기조보다 먼저 도착한 건 때마침 인근을 지나고 있던 청화 길드 소속의 ‘레이드 팀’이었다.
아마 이현욱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2명이 죽은 뒤에야 저들이 도착하여 상황을 마무리 지었을 것이었다.
여자는 이현욱 앞에 멈춰 섰다.
“거기, 당신.”
그녀가 이현욱을 부르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예?”
그런데, 이현욱은 그녀의 이목구비를 확인하는 순간, 인상이 찌푸려지는 걸 막지 못했다.
‘······뭐야, 이 여자가 왜 여기에 있어.’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얼굴이기도 했다.
언뜻 봐도 자기애가 넘칠 것 같은 이 여자는, 대한민국 최강의 민간 길드 <청화(靑火)>의 차녀이자 A급 플레이어, 캐서린 유였다.
‘유해나······.’
현재는 그렇게 불리고 있겠지만, 미래에는 아니다.
‘청화 길드 내 승계 싸움에서 밀려난 뒤, 블루 트리에 들어간다.’
<블루 트리>는 빌런의 리더 고든 프라이스가 총수로 있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다. 그리고 빌런 조직의 핵심이기도 했다.
즉, 이 여자는, 미래에 ‘빌런’이 되는 플레이어다.
그녀는 이현욱의 가슴팍을 향해 검지를 들어 올렸다.
전투복의 이름 주기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름이 이현욱. 계급은······ 상병? 맞나? 제가 군대 계급은 잘 몰라서요.”
“······.”
이현욱은 대답하지 않았다.
불쾌했다.
거만한 태도 때문이 아니라, 이 여자의 존재 자체가 불쾌했다.
‘서은하를 죽인 여자라서 그런가······.’
이현욱을 지키기 위해서 몸을 던졌던 서은하······.
그녀는 이 여자, 유해나가 조종하는 ‘식인마충(食人魔蟲)’ 떼에 휩쓸렸다.
이현욱은 그 장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이현욱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당황스럽죠? 알아요.”
아무래도 표정을 잘못 읽은 것 같은데······.
“내가 다 봤거든요, 당신이 오크 3마리를 저렇게 만들어 버리는 거. 솜씨가 쓸만하시던데.”
아무튼, 유해나의 능력은 벌레 조종이었다. 평범한 벌레가 아니라 마법으로 배양한 ‘마충(魔蟲)’을, 수백만 마리를 조종한다.
아마도 ‘공용 긴급 구조 신호’를 들은 뒤 비행 벌레를 띄워서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확인했을 것이었다.
“소개가 늦었는데, 나는 청화 길드 서울공략부장 캐서린 유라고 해요. 잠깐 본 거지만, 당신이 싸우는 방식. 흥미로웠어요.”
청화 길드의 차녀가 좋게 봤다니······ 평범한 AMT 병사였다면 침을 질질 흘릴만한 상황이었지만, 이현욱에게는 짜증 나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지갑에서 검지와 중지로 명함을 하나 꺼내더니, 손목을 비틀며 우아하게 내밀었다.
“혹시 등급이?”
그러나 이현욱은 이 여자의 간악한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정말로 이현욱의 실력에 감탄하여 영입하고 싶다기보다, 그녀가 보기에 하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함을 뿌리며, 자신의 권위와 위치를 상기하는 걸 즐기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 여자의 또 다른 면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아주 유치한 뒷모습을.’
거대 길드의 차녀로서 일평생 공주 대접을 받고 자랐으며 플레이어가 된 이후에도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된 여자.
지금까지 가지고 싶은 물건은 모조리 손에 쥐었고 그녀의 한 마디만으로도 웬만한 사람들은 절로 고개를 숙였을 터.
‘그런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는 존재는 그녀의 도전 대상이 된다.’
언제나 그녀보다 우위에 있던 형제들이나,
도달할 수 없는 힘을 가진 S등급의 플레이어들이나,
그리고 사소하게나마, 그녀의 악취미인 명함 뿌리기를 거절하는 하등 플레이어까지도.
‘눈에 거슬리는 건 어떻게든 정복하려고 한다.’
그래, 도전이라기보다는 ‘정복’이라고 할 법한 그녀의 이상한 욕망이었다.
‘즉, 아직 빌런이 되지 않은 이 여자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서라면······.’
이현욱은 철저한 계산 하에 그 명함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
그러자 유해나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갈길 잃은 그녀의 우아한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죄송합니다만, 제 신상 정보를 왜 알려드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흠, 어차피 전화 한 통이 알아낼 텐데. 말해주지 좀.”
“그럼 그 전화를 쓰시죠.”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돌아섰다.
그 순간, 유해나의 왼쪽 눈썹이 두 번 꿈틀거렸다.
자존심이 퍽 상했을 터였다.
“보기보다 더······ 재밌는 사람이네?”
그녀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나 그 이상한 정복 욕구가 셈 솟고 있을 거다.
어떻게든 손에 쥐어서 발아래 두겠다는 이상 욕구.
‘전생에서도 그랬으니까.’
이현욱이 이 여자의 심리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전생에도 겪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막 능력 성장 방법을 깨달았을 무렵, 이현욱은 어느 소형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때 우연한 계기로 유해나와 마주하게 됐는데, 그녀는 이현욱의 길드와 길드 마스터를 대놓고 무시하더니, 지금과 같이 ‘청화’라는 글자가 적힌 명함을 우아하게 내밀었다.
이현욱은 그 명함을 받지 않았다.
더 나아가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쳐버렸다.
‘그 뒤로 무던히도 시달렸지. 이 여자는 어떻게든 나를 영입하려고 온갖 난리를 쳤다. 심지어 내 손으로 직접 죽일 때까지······.’
이현욱은 그때가 생각나니 치가 떨렸다.
“저기요. 명함이라도 받아두시죠? 이 정도 가치의 명함, 받기 힘들 텐데.”
“괜찮습니다.”
“······.”
그때, 부대 쪽 방향에서 트럭이 한 대 내려왔다.
이름답지 않은 등장, 5분대기조였다.
그리고 그 뒤에 흰색 승용차도 한 대 따라왔는데······.
‘뭐야, 저 여자는 왜 또······.’
하필이면, 운전자가 서은하였다.
‘왜 매번 내가 몬스터를 다 처리한 뒤에 나타나는 거야? 그것도 하필이면 유해나가 있는 자리에······.’
이제는 그로서도 의문이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