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파격적인 제안, 그리고 휴가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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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이후 첫 휴가 날이 밝았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건, 시스템 메시지였다.
- 축하합니다! 특별한 조건을 만족하여 새로운 ‘스킬’이 주어집니다.
[스킬 정보]
- 이름 : 브레스 룸(화염)
- 등급 : D
- 효과
1) 체내 용광로 : 금속 흡수가 빨라집니다. (+50% ~ 250%), 용광로 효율을 높일수록 몸에 가해지는 고통이 상승합니다.
2) 파이어 브레스 : 금속 일부를 브레스 룸에 저장하여 ‘브레스’로 발사할 수 있습니다. (3kg당 1회)
* 숨겨진 조건을 만족할 시 스킬 등급이 향상됩니다.
악마의 메달(인페르노)을 완전히 흡수하여 ‘체내 용광로’와 ‘브레스 룸’이라는 새로운 내장 기관이 형성된 것이었다.
“후······.”
이로써 이틀 내내 그를 괴롭혔던 통증은 씻은 듯 사라졌다.
더불어서 괜찮은 스킬까지 얻었으니, 상쾌하게 휴가를 떠날 수 있을 듯했다.
‘타이밍이 아주 좋았다. 이번 휴가 동안 잔뜩 삼킬 수 있겠군.’
군인들의 휴가 계획에 빠지지 않는 건 당연하게도 맛있는 음식이었다.
흔히 말하는 사제 음식, 군대에서는 먹을 수 없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먹는 게 성공한 휴가의 법칙 중 하나였다.
조금은 결이 다르겠지만, 이현욱도 먹을 계획을 잔뜩 세웠다.
‘이번 휴가 동안 거의 모든 시간을 금속 흡수에 쓴다.’
그는 3박 4일의 휴가 동안, 과연 얼마를 성장할 수 있을지 이현욱 자신도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었다.
“안민태, 분대 관리 잘 해. 얘들 데리고 운동 꾸준히 하고.”
“예,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다 오십시오.”
“아, 그리고 그냥 운동만 하지 말고, 전투 훈련이랑 화생방 훈련도 해.”
“음, 방독면······ 말입니까?”
“그래, 지난 전투 때 방독면 제대로 못 썼으면 어떻게 됐겠어?”
“아······ 알겠습니다. 귀찮지만, 틈틈이 하겠습니다.”
방독면, 그걸 언급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머지않아서 방독면을 달고 살게 될 때가 온다.
“박준모, 너는 특히 능력 훈련 잘 하고. 쓸만하잖아, 네 능력.”
“예! 알겠습니다! 이현욱 상병님 덕분에 깨달았습니다!”
“입에 발린 말한 하지 말고.”
“진짜입니다!”
박준모 역시 레벨 외 성장 특성인 만큼 이현욱처럼 엄청난 잠재력을 지녔다.
다만, 그 언제쯤 그 성장 방법을 발견하게 될지가 문제였다.
이현욱은 행정반에 신고한 이후 지휘통제실로 내려가, 출타자 비상 연락용 ‘마나 메신저’를 받았다.
이 삐삐처럼 생긴 아이템은 전파가 아니라 마나를 통하여 통신할 수 있는 물건으로써, 마나 산란으로 이한 전파 교란 상황에서도 통신할 수 있었다.
- 3급 마나 메신저 (송수신 : 3회)
물론 그 횟수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어! 안녕!”
그때 누군가 이현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최선아 하사였다.
“충성. 부소대장님, 출타 차량 선탑이십니까?”
“아니, 나도 휴가야! 전입 이후 첫 휴가! 헤헤.”
최선아는 굉장히 신나 보였다. 마치 생에 처음으로 산책가는 강아지 같았다. 방탄모와 전술 조끼까지 벗으니 체구도 훨씬 작아 보이는 게, 역시나 군인답지 않은 외양이었다.
두 사람은 출타 차량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그저께 있었던 작전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사실······ 이현욱 상병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사람일 줄은 몰랐어. 그런데 지금까지 왜 나서지 않고 있던 거야?”
난감한 질문이었다.
“음, 그게,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걸······.”
“아? 정말이야?”
“예. 지금까지는 하라는 대로만 해서 그런지 싸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와! 숨어 있던 천재였구나!”
천재······ 이현욱은 피식 웃었다.
“아닙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야말로 진짜 진짜 잘 부탁해! 그래도 이현욱 상병이 사실상 오빠······ 아, 아니, 나보다 나이가 많고 실전 경험도 더 있고 나도 더 세니까 내가 더 배울 많은 것 같아.”
“부소대장님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헤헤, 고마워.”
이내 15인승 버스 한 대가 도착했다.
“출타자들, 빨리 탑승해!”
누군가 소리치자, 휴가자들이 버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총 6명이었다.
“운전병아, 오늘 휴가자 이것밖에 없어?”
“예, 6명 맞습니다.”
마법사 플레이어로 보이는 선탑자, 소위 한 명이 조수석에 타 있었고 뒷좌석에는 방패를 들고 있는 상병 한 명이 타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차량 호위병이었다.
이내 버스가 출발했다.
“이현욱 상병은 집이 어디야?”
“저는 수원 삽니다.”
“어? 나랑 가깝다! 나는 화성 살아.”
“그렇습니까?”
“아! 그럼 혹시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어?”
고등학교라니······ 20살이 던질만한 질문이었다.
그러는 한편, 뒷자리 두 병사의 이야기도 들려왔다.
“앞에 있는 이 아저씨, 그 사람 맞지? 1중대 F급 용사?”
“······맞는 것 같은데? 그 이현욱 상병이었던가.”
“그 소문 다 진짜냐고 한 번 물어볼까?”
“으흐흐, 다 구라지 인마. F등급이면 우리보다 약할 거다.”
본부중대 병사들 같았는데, 이현욱에 관한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현욱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조용하기를 바라는 게 이상하지.’
그런데 최선아 역시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난감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했다. 아마 자신이 2소대의 부소대장으로서, 나서서 한마디 해야 하나 싶은데 그럴 용기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정지!”
선탑자가 그렇게 소리쳤고,
콰-앙!
뭔가가 날아들어 버스의 정면에 부딪힌 뒤,
끼-이-이-익!
버스가 급정거했다.
“꺅!”
최선아의 몸이 붕 떠서 앞으로 날아가려는 걸, 이현욱이 잡아채서 다시 앉혔다.
“헉! 무슨 일이지?”
“······.”
버스의 엔진부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어? 시동이 안 걸립니다!”
이현욱이 창밖을 바라보니, 아직 남산 중턱 산길이었다.
“······시발, 뭐야! 야! 방패 들어!”
선탑자가 그렇게 소리치자 졸다 깬 호위병이 허겁지겁 방패를 들어 올리다가 퍽, 천장을 찍었다.
그와 동시에,
쾅!
창문이 으스러지며 차 안으로 묵직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그 찰나의 순간, 이현욱은 알 수 있었다.
그건 금속이었다.
약 3.5kg의 금속 덩어리,
그게 운전자의 머리통을 으깨기 직전······.
-훙!
이현욱이 ‘통제력’을 써서 멈춰 세웠다.
“힉! ······도, 도끼?”
운전자는 기겁하며 핸들에 머리를 파묻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전생에는 이때 휴가를 나가지 않았을 테니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불현듯, 어떤 기억 속 어떤 내용이 스쳐 지나갔다.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느꼈던 내용들······.
‘그래, 두 명이 죽은 사건이다.’
일명 2대대 출타 버스 습격 사건······.
쿵!
무언가 버스의 자동문에 부딪혔다.
쿵!
재차 충격에 자동문이 너덜너덜해졌다.
“제, 젠장! 어떡하지?”
“우리 지금, 무, 무기도 없잖아!”
휴가 시 모든 무기는 대대 무기고에 보관해야만 했기에, 이들은 모두 빈손이었다.
제아무리 AMT일지라도, 무기 없이는 싸울 수 없었다.
다음 순간······.
콰-직!
자동문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
그리고 그 뒤에 거대한 무언가가 우뚝 서 있었다.
2m가 넘는 근육질의 몸뚱이, 사람보다 2배는 큰 것 같은 골격······.
크으으-
이 괴물은, 오크(Orc)였다.
“어, 어어!”
“안 돼!”
뜯겨 나간 문틈 사이로 거구가 몸을 비집고 들어왔다.
오크는 맨손으로 곰을 목 졸라 죽일 만한 악력을 지닌 중형 몬스터로서, 사람 정도는 너무나 쉽게 반으로 접어버릴 것이었다.
“으으······.”
호위병이 사각 방패를 들어 올리며 놈과 마주했으나, 그 위압감에 짓눌려 뒷걸음질 쳤다.
“오동진! 뭐해! 저 오크 새끼 안으로 못 들어오게 막아!”
선탑자 소위가 소리쳤다.
그는 바닥에 웅크린 채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아니, 저걸 혼자서 어떻게 마, 막습니까······.”
호위병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쿵-
평균 몸무게 190kg,
오크의 왼쪽 발이 버스에 얹히며, 버스가 크게 흔들렸다.
쾅!
“으악!”
그렇게 버스 출입문에서 대치가 벌어지는 사이, 무언가 버스의 뒤쪽 창문을 깨고 들어왔다.
역시나 오크의 ‘투척용 도끼’였다.
“으, 으악! 뒤에도 있다!”
“헉! 숲속에도 한 마리가 더 있어! 무기로 쓸만한 것 좀 찾아봐!”
사방에서 조여 들어온다.
아무래도 도망치는 건 불가능해 보였으며, 군인이랍시고 대응하는 건 정신 나간 짓이었다.
이현욱은 창가에 앉아 있던 최선아를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창가 쪽은 위험합니다.”
“아, 그, 그런데 어떡하지? 내가 부, 부대에 연락해볼······.”
“예,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부대와 10분 거리, 이번에도 부대의 5분대기조는 제때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었다.
‘예정대로라면 두 명이 죽는다.’
다행히도 그중 한 명은 이현욱이 이미 구해냈다.
앞창문을 뚫고 들어온 도끼를 멈춤으로써, 운전병의 두개골이 깨지는 걸 막은 것이다.
이현욱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총 세 마리. 오크 척후병들이다.’
오크는 코볼트 이상으로 똑똑한 종족이다.
물론 야만적인 규율을 맹신하기에 영악하기보다는 무식하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투를 멍청하게 한다는 건 아니었다.
모든 개체가 매우 노련한 전사인 만큼, 단순한 전면전에서는 최고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 능력을 떠나서 어설픈 실력으로는 오크와의 전면전은 무리다.’
저 호위병과 선탑자, 두 사람 모두 오크를 상대할 실력이 안 되어 보였다.
콰-앙!
출입문 쪽, 오크의 ‘전투 도끼’가 호위병의 방패를 내리치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으, 흑!”
호위병의 무릎이 휘청거렸다.
그가 반격 삼아 오른손에 쥐고 있던 검을 오크의 몸을 향해 찔러넣었지만······.
텅!
허무하게 막히고 말았다.
“제, 젠장!”
아무래도 다음 희생자는 저 호위병이 아닐까 싶었다.
‘무기가 필요해.’
이현욱은 눈을 감았다.
- 현재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 : 5,499g
‘······도끼다.’
앞창문과 뒷창문을 뚫고 들어온 두 자루의 ‘투척용 도끼’가 느껴졌다.
웅-
이현욱은 통제력을 발휘하여 그것들을 들어 올렸다.
“거기 방패, 뒤로 비키세요.”
“······예?”
이현욱은 설명하지 않고, 그대로 호위병의 어깨를 움켜쥐고 강하게 잡아당기며 뒤로 넘어뜨렸다.
직후, 그렇게 벌어진 틈 사이로 오크의 투척용 도끼가 날아들었다.
퍼-억!
그것이, 오크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정확하게 머리를 노리고 날렸으나 그 찰나의 순간, 놈이 몸을 튼 것이다.
크-아-아-아!
그래도 상당한 데미지였다. 오크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거, 방패 좀 빌립시다.”
“아, 예······.”
“검도 주시죠.”
“여, 여기 있습니다.”
이현욱은 왼손에 방패, 오른손에 검을 쥐고 버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어제, 대대장이 나한테 말하길, 오크 정도만 되어도 상대할 수 없을 거라고 했는데······.’
간부식당에서 식사할 때, 이현욱의 전투력을 C등급으로 고평가하면서도 그건 소형 몬스터를 상대할 때만 국한된다고, 오크만 등장해도 무리일 거라고 명확히 한계를 지었다.
그건 어쩌면 정확한 판단이었다.
이현욱이 지금까지 ‘보여준’ 실력으로만 볼 땐 말이다.
‘······어쩔 수 없지만, 그의 기대감을 조금 더 높여줘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