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파격적인 제안 그리고 휴가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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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은 코볼트의 몸속에서 튀어나온 아이템을 다시 확인했다.
- ‘악마의 메달(인페르노)’을 획득했습니다.
작은 보석 같은 모양새였다.
‘어이가 없군. 이게 여기서 나오는 거였다니······.’
악마의 메달 (Daemon Medal)
이름 그대로 악마 종족 ‘데몬’의 힘이 담긴 물건이었다.
‘상위 종족 메달 시리즈 중, 인페르노라면 가장 쓸만한 축에 속한다.’
인페르노(Inferno)라면 흔히 ‘지옥 불’을 뜻을 뜻했다.
‘처음에는 부산의 구원자, 인페르노가 이걸 가지고 있었는데······.’
인페르노는 현 시점상에도 엄청나게 강한 플레이어지만, 본인의 별명에 꼭 맞는 이 아이템을 손에 넣음으로써 보다 강력한 화염 권능을 발휘하게 된다.
마그마를 일으켜 대양의 파도처럼 모든 걸 휩쓸어 버리던 모습이란······ 이현욱은 그 시뻘건 재앙이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러나 그런 인페르노일지라도 ‘네크로맨서’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부산의 구원자는 부산 앞바다를 뒤덮은 언데드 군단을 홀로 막아내다가 결국······.
‘······한 마리의 언데드가 되고 말았지.’
그 이후 이 메달도 네크로맨서의 손에 들어간다.
‘그 뒤로 유황불의 시체 골렘, 그 끔찍한 생체병기를 이걸 이용해서 만들었다고 들었다.’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그 마천루를 때려 부수던 수십 미터짜리 시체 골렘······ 녹색 불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하던 콘크리트 숲······.
이현욱은 그 장면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네크로맨서는 정말이지, 최악의 적수였다.
“······이로써 내가 그놈보다 한 발, 아니 두 발은 앞서가는군.”
꿀꺽-
그는 누가 볼까, 그 아이템을 곧장 삼켰다.
코볼트의 피가 묻어 있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 주의! 이미 흡수 중인 ‘금속’이 있습니다. 흡수 지연이 발생합니다.
“후······ 이현욱 상병님, 이제 끝난 겁니까?”
안민태가 다가오며 물었다.
“아직 경계 늦추지 마.”
이현욱의 한 마디에 분대 전원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코볼트는 없었다.
이현욱의 감각 상에서도 분대원 외 움직이는 금속은 없었다.
“부소대장님. 다 끝난 것 같습니다.”
“아······.”
최선아는 얼이 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욱은 분대원들을 돌아보았다. 그들 역시 최선아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복잡한 감정을 정리해줘야겠어.’
이현욱은 미래를 위해서 칭찬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몇 번은 이들을 이끌고 싸워야만 할 테니, 자신을 위해서라도 자신감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모두 잘 했다.”
그 말에, 모든 시선이 이현욱에게 모였다.
“한 명도 실수하지 않고 잘 대처했어. 어제 내가 당부한 대로.”
그들은 그제야 이현욱이 했던 말······ 훈련을 게을리했다간 자기 자신의 목숨도 지키지 못할 거라고 했던 그의 조언이, 마치 예언처럼 실제로 일어났다는 걸 깨달았다.
이현욱은 이어서 박준모와 눈을 마주쳤다.
“특히 박준모. 네가 잔당 소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 가, 감사합니다!”
박준모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내에 게이트가 발생하여 고블린을 마주했을 때, 바보 같은 모습을 보인 뒤 한 소리 듣고 의기소침해졌던 그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청난 칭찬을 들었다. 심지어 결정적인 역할이라니······ 박준모는 칠칠찮게 눈시울이 붉어 오는 것 같아서 고개를 숙였다.
“안민태 넌 역시 상병답게 든든했고.”
“그거야 뭐, 당연한 말씀입니다. 하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녀석은 잇몸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부소대장님.”
“응?”
“제가 감히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도 웃기지만, 마지막에 제압 사격 지시, 아주 적절했습니다. 찰나의 순간에 머뭇거렸으면 몇 마리를 놓칠 수 있었을 텐데 정말 다행입니다.”
“······아!”
사실 그녀가 지시를 내렸을 때 분대원들은 머뭇거리며 이현욱을 바라보았고, 이현욱이 총구를 들어 올리자 그제야 명령을 따랐다.
아무튼,
최선아도 그제야 생기를 되찾고 히죽 웃었다.
“고마워! 아무도 안 다쳐서 다행이다, 정말······.”
그러더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역시······ 이런 모습을 보면 여전히 고등학생 티를 다 벗지 못한 듯했다.
그때였다.
쿠-궁-
어디선가 묵직한 진동이 울렸다. 모두가 자세를 낮추며 총구를 들어 올렸다.
등 뒤, 갈색 벽돌담 위에 무언가 내려앉은 것이었다.
“어라, 저분은······.”
그건 흑색의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기사였다.
‘서은하.’
터-억!
그녀는 바닥을 향해 가볍게 몸을 던져, 무겁게 착지했다.
‘쯧, 한참 요란하게 등장하던 시기겠거니 했지만, 심각한데.’
이현욱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아무리 몸이 무거운 기사 계열이라도 조심스럽게 좀 다니라고, 먼 훗날, 이현욱이 그녀에게 입이 닳도록 말했었다.
무슨 ‘슈퍼히어로 랜딩’도 아니고 그렇게 멋들어지게 착륙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이것도, 술에 취해서 서럽다고 징징거린 내용 중 하나였지, 아마.’
이현욱은 순간, 자신도 2소대장 이희민처럼 저도 모르게 꼬투리를 잡았던 게 아닌가 고민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했던 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아무렴, 당연하다.’
철-컥!
그때, 서은하의 안면 덮개, ‘바이저(Visor)’ 올라갔다.
그러자 그녀의 한껏 당황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
“수고하십니다. 돌발 상황이 발생했지만, 성공적으로 진압했습니다.”
이현욱은 그녀에게 경례를 해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눈매에는 알 수 없는 적의가 가득했다.
다음 순간, 그녀가 대검을 들어 올려서 그 끝으로 이현욱을 가리켰다.
“······야, 너.”
“예 말씀하십시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이와 비슷한 일이 얼마 전에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고, 그녀가 다급하게 출동했지만 이미 마무리된 상황, 그 한 가운데 멀쩡하게 서 있는 저 병사까지······.
서은하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화장기가 없음에도 새하얀 피부 위로 홍조가 번져나갔다. 강렬한 의문 때문이었다.
“예? 무슨 말씀입니까?”
“저번에도 그렇고,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여전히 무슨 말씀이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때였다.
“······전원!”
안쪽 골목에서부터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 전투 준비!”
2소대장, 이희민의 목소리였다.
그가 3분대와 4분대를 이끌고 다급하게 돌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서은하와 마찬가지로 한발 늦었다.
“······어, 어?”
그는 당혹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쓱 둘러보더니, 서은하를 쳐다보았다.
“서, 서은하! 뭐야? 네가 왜 여기에······ 설마 네가 다 처리한 거야?”
서은하는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다.
“뭐? 아니야? 그럼 뭐,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희민은 서은하 이상으로 한껏 당황한 얼굴이었는데, 식은땀에 절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중간 거점의 책임자는 그였는데,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으니 문책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그의 당황은 짜증으로 변했고 자연스럽게 부소대장인 최선아에게 향했다.
“이! 이! 최선아!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젠장, 내가 문제 일어나지 않게 관리 똑바로 하라고 했지!”
“아, 소대장님, 그······.”
그는 씩씩거리며 한 대 칠 기세로 최선아에게 다가왔고 최선아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평소에 얼마나 당한 건지, 본능적으로 어깨가 움츠러드는 게 보였다.
그때, 이현욱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소대장님, 제가 보고드리겠습니다.”
“뭐? 네가 뭔데? 내가, 시발, 너한테 주제 파악 좀 하라고 말했지?”
이희민은 화를 주체 못 하고 마치 열 받은 숫염소처럼, 이현욱의 방탄 헬멧에 제 방탄 헬멧을 툭, 툭, 부딪쳐댔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대장님께 직접 보고 드리죠.”
“뭐? F급 새끼가 어디서 감히 대대장님을 들먹이고 있어!”
그러나 이현욱은 이희민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이 새끼가, 어딜 보고······.”
이어서, 이희민의 가슴을 한층 더 격렬히 철렁이게 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우-우-웅-
뒤에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1호 차였다.
대대장이 탄 차가 골목을 지나 중간 거점 앞에 멈춰 선 것이다.
턱-
이내 조수석 문이 열리고, 남산의 드루이드, 대대장 김강석이 우뚝 섰다.
그 거구를 올려다보며 이희민은 숨을 흡, 하고 들이마셨다.
“추, 충성! 대대장님, 원인 불명의 상황이 발생하여 지금 사, 상황 정리가 끝나긴 했는데 아, 아직 정확하게 파악된 정보가 없습니다! 조금 더 조사 후 보고드리겠습니다!”
거수경례하는 그의 오른손이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렸다.
그의 어깨에 김강석의 두꺼운 손이 턱, 하고 얹혔다.
“2소대장.”
“······헉! 2소대장, 이희민!”
“2소대장님은 저리 빠져 계세요.”
“에, 예?”
“중간 거점 밖에서 방금 들어왔으면서 뭘 안다고 억지로 보고하시려고 합니까? 시간 낭비하게 하지 마세요. 제가 형식적인 거 싫어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김강석은 대답 없이 이희민을 지나쳤다.
이희민은 벌벌 떨며 눈동자만 굴려, 대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현욱 앞에 멈춰 섰다.
“5분대장.”
“상병, 이현욱!”
“자네가 보고해.”
벌벌 떨어대는 이희민과 달리, 이현욱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 장면을 바라보며, 이희민은 똥 씹은 것 같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예, 보고드리겠습니다. 중간 거점 설치 및 경계 작전 중 하수구에서 흑마법 계열의 광역 상태 이상 마법이 발생하여 MOPP 3단계로 대응했습니다. 이후, 코볼트 무리가 급습을 시도하여 전투 끝에 제압했습니다. 추정하기론, 1차 분출 당시에 감시를 피해 숨었던 잔당으로 추정됩니다.”
“······.”
“대대장님, 혹시 상세 보고 드립니까? F급인 제가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김강석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중에 듣기로 하고, 아직 작전 중이니 다음 명령을 내리겠다.”
대대장은 중간 거점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전투 흔적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십여 구의 시체, 그것들에 꽂혀 있는 M9 대검들······ 김강석의 눈썹이 한 번 꿈틀거리는 걸, 이현욱은 보았다.
“······자, 지금부터 이곳, 중간 거점 지휘는 서은하 중위가 한다.”
김강석은 그렇게 말하며 서은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소 당황한 듯싶었으나 곧장 거수경례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현욱은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현욱, 자네는 내가 앞서 말한 대로 1분대장 임무를 수행한다. 서은하 중위를 비롯한 공략소대원들이 인근에 대기하고 있으니 자네가 걱정했던 것처럼······ 아니, 걱정하는 척했던 것처럼 두 분대를 위험에 빠트릴 일은 없을 거다. 이번 명령을 거절할 타당할 이유가 있나?”
“······없습니다.”
“즉시 이동해. 그리고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남김없이 내게 증명해라.”
이현욱은 거수경례하고는, 안민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5분대를 부탁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게이트 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 1호 차 뒷좌석에 타 있던 천명호와 눈이 마주쳤다.
“······.”
이현욱은 그에게 경례하고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천명호는 무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
그는 저도 모르게 나지막이 한탄을 내뱉으며, 그가 만들어 놓고 간 풍경을 바라보았다.
“대체 뭐야 저건······.”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잘못 봐도 단단히 잘못 봤어.”
이제는 약간의 짜증이 담겨있기까지 했다.
“······표범이 아니라, 그냥 범이잖아?”
그의 눈에, 이현욱의 뒷모습이 한층 큼직하게 보였다.
***
그날, 오후 7시쯤 게이트가 폐쇄되며 모든 작전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1중대 병영의 상담실, 일병 셋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와! 미친! 그래서, 그다음에는 어떻게 된 건데?”
흥미진진한 얼굴로 이렇게 묻는 건 1분대 소속 일병, 구성민이었다.
그는 지난 이태원 작전 당시 휴가 중이었기에 그 전후로 일어나 수많은 사건을 알지 못했는데, 그 놀라운 일들에 대해서 동기 둘에게 전해 듣는 중이었다.
“뭘 어떻게 되긴, 이현욱 상병이 갑자기 우리 앞에 오더니······.”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이현욱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너희를 지휘한다. 그래, 불만 있겠지. 나도 알아. 지금처럼 티 내도 상관없는데, 명령을 안 따르면 즉결 처분한다. 이건 실전이고 내 말은 지휘자로서 명령이다.”
“뭐? 그게 말이 되냐? 거짓말 좀 하지 마라!”
“진짜라니까! 아무튼! 그렇게 말하니까 몇 명이 작게 예, 하고 대답했는데, 흠······ 분위기가 참 묘했지. 특히나 임시 분대장이었던 김근호 상병의 표정은 정말이지, 어휴······.”
이현욱은 대대장의 명령에 따라 1분대장 임무를 수행했다.
그것도 꽤 성공적으로.
“더 충격적인 건, 3차 분출 때였어.”
“······왜 뭔데?”
이어지는 이야기는 사실상 영웅담에 가까웠다.
3차 분출 때, 엘리트 몬스터인 ‘코볼트 폭파병’이 등장했다.
폭약을 몸에 지니고 그걸 던지거나 자폭하는, 꽤 까다로운 적수였다.
심지어 다수의 코볼트 잡병 사이에 섞여 있기에 정확하게 골라내어 처리하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 이현욱 상병은 그것들의 위치를 선별해내 뒤, 그것들의 주변에 광역 ‘빙결’ 마법 공격을 명령하여 발을 묶고 저격을 지시, 완벽하게 공략해냈다는 이야기였다.
“······반면에, 소대장님이 지휘한 2분대는 탱커 3명이 부상이야. 뭐, 그것도 상당히 성공적인 결과인 건 틀림없지만, 이현욱 상병이 완벽했던 거지.”
“와······ 그럼 1소대장님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고?”
“사실상 그런 셈이지.”
“아니, 잠깐만! 1소대장님 나름 엘리트잖아! 곧 3대대의 공략소대장으로 간다는 말도 있던데? 그런 사람보다 F급이 잘 했다고?”
구성민은 여전히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끽-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상담실 문이 열리며 이현욱이 들어왔다.
“······어?”
“아! 이현욱 상병님······.”
“수, 수고 많으십니다!”
세 사람은 놀란 표정을 감추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현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공용 냉장고를 열었다.
“저······ 이현욱 상병님.”
“응?”
“축하드립니다!”
“······뭐가?”
“그! 오늘, 대대장님 표창장 받지 않으십니까? 오후 저녁 식사 집합 간 대대장님이 직접 방문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거? 그래, 고맙다.”
이현욱이 그렇게 말하고, 음료수를 꺼냈다.
“저, 이현욱 상병님!”
그가 나가려고 할 때, 한 일병이 이현욱을 불러 세웠다.
녀석은 쭈뼛거리다가 머쓱하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지난 전투 때, 정말이지 완벽한 지휘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때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이현욱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때 잘 따라줘서 고맙다.”
“예! 편히 쉬십시오!”
그렇게 이현욱이 나가자······
“후······.”
일병들은 그제야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야, 이현욱 상병이랑 대화하는 게 이렇게 떨리는 일이었냐?”
“그러게 나도 모르게 긴장했네. 후······.”
그리고 구성민은 그제야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와! 지금까지 말한 게 전부 진짜라고?”
“그렇다고, 새끼야!”
“와······ 이현욱 상병님, 눈빛부터 사뭇 다르다. 완전히 딴 사람 같잖아?”
“아, 그렇다니까······.”
이제는 이현욱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이현욱을 바라보는 중대원들의 시선도 변했다.
이렇듯, 압도적인 공을 세우면 입지가 달라진다.
사람에 대한 평가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실력이기 때문이다.
***
“큭!”
이현욱은 공용 냉장고에서 꺼낸 음료수를 들이켠 뒤, 화장실로 달려갔다.
텅!
그는 변기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속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은 통증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 금속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 악마의 메달(인페르노)
*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가 상승했습니다. : 499g
이것에 의한······.
- 위장에 ‘브레스 룸’이 형성되는 중입니다. (2%)
* 극심한 통증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이것 때문이었다.
악마의 메달을 흡수하고 새로운 스킬을 얻는 과정이었다.
일명 브레스 룸(Breath Room), 쉽게 말하자면, 드래곤처럼 무언가를 내뿜는 ‘브레스’ 공격을 하는 몬스터의 체내에 있는 특수 기관을 뜻했다.
지금 이 순간, 이현욱의 몸에 무려 그런 기관이 생성되는 중이었다.
‘한 번 겪어봤지만, 이 몸은 아직 약해서 훨씬 고통스럽다.’
온몸이 펄펄 끓고 위장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브레스 룸은 일종의 ‘용광로’인 동시에 제트 엔진과 같은 ‘연소 기관’이기도 하다.
인간의 유약한 몸에 그런 게 생긴다는 게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만큼, 끔찍한 일이었다.
“크, 으으······.”
그가 바닥에 주저앉아 신음하던 중, 밖에서 박준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현욱 상병님! 여기 계십니까?”
이현욱은 소리를 억누르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후······ 어, 그래. 화장실이다.”
“아! 죄송합니다! 곧 표창장 수여식 시작한다고 합니다. 예행연습 때문에 대기하시라는, 중대장님 지시입니다.”
전생에 더한 고통도 느껴봤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그래, 곧 나간다.”
그는 벽을 짚고 일어났다.
*** *
“상병! 이현욱! 감사합니다!”
중대원이 전부 모인 가운데, 이현욱은 표창장을 수여 받았다.
그것도 평소와 달리 대대장이 직접 나와서 전달했다.
짝-짝-짝-짝-짝-
‘미치겠군.’
온몸이 불타는 것 같은 통증이 일어났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았다.
얼굴이 조금 붉어진 탓인지, 주변에서, 이현욱 상병이 꽤 감동한 것 같다는 평가가 들리긴 했다만, 그 정도에 그쳤다.
대대장이 입을 열었다.
“지난 영내 게이트 발생 때보다 훨씬 큰 공을 세웠으니, 자네에게 적지 않은 포상이 주어질 거다. 혹시 원하는 게 있으면 나한테 직접 말해도 좋다.”
며칠 사이에 두 번의 공적, 이로 인해 적지 않은 포상 포인트가 쌓였다.
‘휴가로 넉넉히 바꾸고도 쇼핑 좀 할 수 있겠어.’
군용 아이템 상점에서 괜찮은 물건 좀 구할 수 있을 듯했다.
일단은 당장 고통 감소 물약 같은 걸 사서 이 타는 듯한 고통부터 억눌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그리고. 오늘 저녁은 같이 먹도록 하지. 할 얘기도 있으니.”
“예, 알겠습니다.”
‘······젠장.’
안타깝게도 물약을 살 시간은 없었다.
이현욱은 대대장을 따라 간부 식당에 도착했다.
중식당에나 있을 법한 원형의 테이블에 참모들이 둘러앉아 있었고 유리 식기류가 세팅되어 있었다.
군과 어울리지 않게 꽤 고급스러운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음식은 병사 식당보다 질이 조금 좋을 뿐, 평범한 수준에서 준비되었다.
“어제, 내가 자네를 테스트하겠다고 했던 말, 기억하겠지.”
“예, 그렇습니다.”
김강석은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넘기며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AMT 장교로 임관해라, 이현욱.”
이번에도 파격적인 제안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