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2화 (12/221)

12. 이태원2동, 게이트 봉쇄 작전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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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잠이 오네.”

강익준 하사는 옥상에서 중간 거점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공략소대장, 서은하 중위가 당부했기 때문이었지만, 틈틈이 한눈을 팔고 있기도 했다.

“우리가 무슨 후보 선수도 아니고, 참나, 현장 대기가 뭐야? 모양 빠지게······.”

물론, 그가 오늘 맡은 진짜 임무는 그저 ‘현장 대기’인 만큼 근무 태만은 아니었다.

대대장 직속 부대 ‘공략소대’의 주요 임무는 말 그대로 게이트 안으로 진입하여 게이트를 폐쇄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민간 길드 <청화>의 공략팀이 공략 작전을 맡기로 되어 있었고, 이들, 공략소대는 만약을 위해 2진으로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코볼트 던전인데 민간 길드, 이 장사꾼 놈들이 달라붙은 걸 보면 돈이 좀 되는 던전인가······ 에이, 빨리 끝나기나 해라!”

강익준은 하품을 쩍, 했다.

청화 길드가 공략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가 나서서 재미 볼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어, 저거 뭐야!”

저격수 한 명이 무언가 발견했는지 그렇게 소리쳤다.

강익준은 눈을 비비적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난간을 향해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미친······.”

이태원 2동의 주택가,

그 한 가운데에서 시커먼 연기가 용오름처럼 치솟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은······.

“······저기, 중간 거점. 맞지?”

서은하가 예의주시하라고 말했던 바로 그 지점이었다.

“예, 맞습니다. 강 하사님, 저 정도면 불 난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야.”

저격수의 말에 강익준이 고개를 저었다.

“예? 그러면 저건 도대체 뭡니까?”

“저건······ ‘흑마법’이다.”

강익준은 C등급 1티어의 마법사 플레이어인 만큼 저 검은 연기의 실체를 단숨에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코볼트 흑마법사가 출현한 것 같다.”

“예? 엘리트 몬스터 아닙니까? 하지만 아직 2차 분출 전인데 어떻게 그게 나옵니까?”

“그러게 말이다. 젠장, 이러면 사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을 텐데······.”

강익준이 Barrett M82A1의 총구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즉시 왼쪽 귀, 이어 마이크의 버튼을 눌렀다.

“소대장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 뭐? 무슨 일이야?

서은하가 곧장 대답했다.

“중간 거점 쪽입니다! 갑자기 맹독성 안개가 발생했습니다!”

- 그게 말이 돼? ······알았어! 일단 내가 갈게!

공략소대에게 내려진 명령은 ‘대기’였다. 그렇기에 작전지 내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 대기해야만 했다. 레드 그라운드 내 작전권은 현재 ‘1중대장’에게 있으니 말이다.

즉 대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작전 개입은 불가능하다.

“제가 지금 1층으로 방패 던질 테니까 알아서 받으시고 빨리 튀어가십시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눈 뜨고 지켜만 볼 수 없었다. 지원 분대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지원 분대는 당연지사, 대대의 1진인 1분대일지라도 쉽게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금 늦었다간······.

“······최대한 빨리 가셔야 합니다! 이대로면 쟤들 다 죽습니다!”

전멸이다.

강익준은 서은하가 놓고 간 방패를 집어 들고, 건물 아래, 도로를 향해 내던졌다.

-훙!

다음 순간, 어디선가 튀어나온 서은하가 그 방패를 잡아챘다.

그리고 대검을 뽑아 들고는 골목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엄청난 속도였다.

그러나 강익준은 직감했다.

“어쩌면······.”

안타깝게도, 몇 명은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

두 가지 색이 뒤엉키며 오묘한 기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후······.”

그 연기 속에서 5분대원들은 자세를 낮춘 채 전투 물자 뒤에서 엄폐 중이었다.

이렇게 ‘중간 거점’이 습격당할 때를 대비하여 마법 방어막 가동 장치 ‘크리스털 바리케이드’를 깔아두었다. 그러나 코볼트 무리가 그 안쪽에서부터 맨홀을 열고 나타난 이상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즉, 오래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

어딘가 이상했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거늘, 코볼트 무리는 전혀 접근해오지 않고 있었다.

‘왜지? 이현욱 상병이 만든 수증기 때문인가?’

부소대장, 최선아 하사는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을 뿐,

······켁!

‘대체 무슨 소리지?’

검은 연기 속에서 간간이 들려 오는 이 원인 모를 ‘단말마’에 대해서는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부소대장님, 자세 낮추시고 되도록 총구도 내리셔야 합니다.”

“아······ 으, 응.”

이현욱의 말에 최선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 자리의 최고 지휘권자는 부소대장인 자신이건만,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게 정답이었다.

‘이현욱 상병이 원래 이랬었나? 아닌데······.’

이현욱이 F급이며 후송 간 부대장의 대체자인 임시 분대장일 뿐이라는 걸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작전 투입 직전 전투복을 갈아입으며, 오늘은 진짜 분대장이 없는 만큼 더욱 바짝 정신을 차리자고, 자기 자신에게 당부했었다.

아무리 나이가 어릴지언정 간부는 간부다.

이번 작전, 그녀가 책임지고 이끌어야만 했다.

‘······그런데, 솔직히 내가 할 게 없었어.’

급습을 당하기 직전, 이현욱은 모든 걸 눈치챘다. 그리고 간결하고도 정확하게 지시했다.

검은 연기 속에서 울려 퍼졌던 그의 냉정한 음성······ 그 목소리를 듣자, 이현욱에 대한 편견은 사라지고 어느새 저절로 믿고 따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전원, 모두 입 다물고 내 말만 듣는다.”

이현욱의 목소리에 최선아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그녀뿐만 아니라 이 자리의 모두가 그랬다.

“우리가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적들 역시 우리를 못 본다. 잠깐에 불과하겠지만.”

“······.”

“안민태, 가장 앞으로 나가서 방패 세우고 코볼트의 접근을 막는다. 제대로 엄폐하면 놈들의 독침은 무용지물이다.”

“예.”

이현욱의 옆에 서 있던 안민태는 작게 대답하고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넓적한 방패가 적에게 가까워질수록 분대원들이 보호받는 면적이 넓어졌다.

“그런데 이현욱 상병님, 설마 지금······ 전진하시려는 겁니까?”

안민태는 이현욱이 어느새 상당히 앞으로 나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래, 가서 가스 밸브를 잠그고 올 테니까 넌 거기 서 있어.”

“······예? 지, 진짜입니까?”

안민태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러나 이현욱은 대답 없이, 정말로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이현욱 상병님?”

역시나 대답이 없었다.

어느새 연기 위로 어렴풋이 드리우던 그의 그림자조차 연기 깊숙이 스며 들어가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 미치겠네······.”

안민태는 마른 침을 삼키며, 방패를 턱 끝까지 들어 올렸다.

“어? 이현욱 상병님께서 서, 설마 앞으로 가신 겁니까?”

“그래, 우린 일단 침착하게 대기한다.”

“아······.”

그나마 의지하고 있던 이현욱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분대원들은 다시금 두려움에 빠졌다.

그리고 온갖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는데, 곧 저 검은 연기 속에서 이현욱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 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디선가 들려 오는 건······.

켁! 케-엑!

인간의 것이 아닌 괴성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어? 앞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박준모가 말했다.

그리고 정말로 검은 연기가 거치고 있었고, 그렇게 희미하게나마 확보된 시야 너머로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건······ 코볼트 같습니다.”

정확히는 코볼트의 사체, 총 7구였다.

그것들의 머리통에는 하나 같이 대검이 박혀 있었다.

“저기 보십시오! 이현욱 상병님이 계십니다!”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던 맨홀 근처, 바로 그곳에 이현욱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발아래에 무언가 깨진 채 흩어져 있었다.

도자기 조각처럼 보였는데, 그건 코볼트 흑마법사가 이 검은 연기를 만들 때 쓴 일종의 ‘매개체’였다. 밸브를 잠그겠다는 게 바로 저걸 말했던 것이었다.

그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박준모, 이쪽으로 와.”

“예!”

이현욱의 손짓에, 박준모는 재빨리 앞으로 달려나갔다.

“전격 마법 전부를, 지금 즉시 하수구 안으로 쏜다.”

“아, 예! 알겠습니다!”

박준모는 허리춤에 매달아 두었던 완드(Wand)를 꺼내 들어서, 천천히 숨을 고르고, 하수구 안으로 완드를 휘둘렀다.

파-직!

완드 끝에서부터 푸른색 전기가 쏘아졌다.

“남김없이 쏟아부어.”

“예!”

파-직! 파-직! 파-지-직!

이어서 3방이 더 터졌다.

“저, 마지막에 좀 힘을 줘서 4방밖에······”

“그래, 됐어.”

총 4발의 전격 마법이 하수구 안을 푸른빛으로 밝혔다.

하수구의 밑바닥엔 오수가 흐르고 있었고, 그 오수를 따라 저 깊은 안쪽까지 전류가 번져나갔다.

퍼-서-서-서-

그러자······.

께-에-에-에-에!

“와, 미친!”

하수구 깊은 곳에서, 고통에 찬 괴성이 터져 나왔다.

오수 안에 숨어 있던 코볼트 잔당이 전류에 휩쓸린 것이다.

다만, 박준모의 전격 스킬이 코볼트를 죽이기에는 데미지가 부족했는지······.

텅! 터-엉!

“어!”

놈들은 이곳저곳의 맨홀 뚜껑을 열고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께-엑! 께-에-에-에!

“어, 어! 저, 전원! 제압 사격, 발사!”

최선아 하사가 본능적으로 외쳤지만, 분대원들은 총구를 들어 올리는 대신 반사적으로 이현욱을 바라보았는데, 그는 최선아 하사의 명령과 동시에 총구를 들어 올렸다.

그제야 모든 총구가 일어섰다.

타-다-다-다-당!

산발적인 조준 사격이 이어지자 감전된 채 뛰쳐나왔던 코볼트 잔당은 그 총알 세례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며 픽, 픽, 쓰러졌다.

끄-에-에-에······

“이현욱 상병님! 역시 소총만으로는 배리어를 못 뚫습니다!”

“그래, 개인 전용 병기로 확실하게 마무리한다!”

이현욱은 소총을 내던지고, 등 뒤, 구름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코볼트 한 놈에게 달려들었다.

다른 놈들과 달리 검은색 로브를 걸치고 있는 놈이었다.

‘코볼트 흑마법사다.’

저놈이 바로 엘리트 몬스터였다.

켁, 케-륵!

놈은 이현욱의 조준 사격 15발을 맞고 쓰러진 상태였다.

총알이 놈의 피부를 뚫지는 못했지만, 가슴팍을 정통으로 맞췄으니 갈비뼈 몇 대가 부러졌을 터였다.

그렇게 놈이 배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며,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촤-악!

이현욱이 검을 휘둘러, 놈의 오른쪽 손목을 통째로 잘라 버렸다.

동시에 M9 대검을 쏘아 보내, 놈의 복부에 명중시켰다.

크-에!

놈은 뒷걸음질 치며 왼손으로 마법을 캐스팅했다.

놈의 손등 위에 녹색 ‘마법진’이 떠올랐다.

후-웅!

그 순간, 이현욱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라, 순식간에 2m 높이까지 치솟아버렸다.

“······큭!”

중력 제어 마법이었다.

‘이대로면 순식간에 십여 미터까지 치솟은 뒤 떨어져 죽고 만다!’

하지만 당하고 있을 이현욱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다리에 ‘강체화’를 걸었다.

쩌-저-적!

발이 단단하게 굳었다.

그 순간 ‘통제력’을 사용, 금속으로 변한 자신의 발을 바닥을 향해 끌어당겼다.

그렇게 수직 상승을 억제하는 동시에 허리를 꺾으며, 오른발을, 놈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쩌-억!

적중!

강체화가 심어진 군홧발의 위력은 상당했다.

끅!

놈은 그대로 고꾸라지며 화단에 머리를 박았다.

이미 경추가 꺾인 듯했다만, 이현욱은 착지와 동시에 대검을 양손으로 쥐고, 놈의 심장에 ‘구름의 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확실한 마무리였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 메시지 한 줄이 떠올랐다.

- ‘구름의 검’이 엘리트 몬스터의 피를 흡수합니다!

‘이게 바로 이 잠재 무기를 성장시키는 방법이다.’

구름의 검은 물을 흡수하여 ‘물안개’를 방출한다. 그런데 물 대신 엘리트 몬스터의 피를 ‘상당량’ 흡수시킬 경우······.

- 구름의 검에 알 수 없는 기운이 차오릅니다. (11%)

이렇게 게이지가 차오르며 끝내 ‘잠재력’이 해방된다.

이현욱은 구름의 검을 놈의 심장에 꽂아 넣고는, 놈의 몸 곳곳의 ‘금속’을 훑기 시작했다.

‘뭔가 있군. 그것도 몸속에.’

놈의 갈비뼈 안쪽, 작고 매끄러운 금속 질감이 느껴졌다.

그걸 강하게 끌어당겼다.

츅!

가슴의 상처를 통하여 그 물건이 튀어나왔다.

이현욱은 그걸 잡아챘다.

- ‘악마의 메달(인페르노)’을 획득했습니다.

“뭐야, 이게······ 여기서 나온다고?”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 튀어나왔다.

부산을 멸망시킨 악마의 군단장 네크로맨서······

그놈의 주요 아이템 중 하나가, 이현욱의 손아귀에 먼저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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