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이태원2동, 게이트 봉쇄 작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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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그라운드로 진입한 지 약 5분이 지난 시점······.
“······정지.”
2소대장 이희민 중위가 손을 들어 올렸다.
정면으로 작은 놀이터가 하나 보였다.
게이트 생성 직전까지 아이들이 놀고 있었는지 온갖 장난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여기가 중간 거점이다.”
중간 거점.
게이트 근처에서 전투가 장기화할 때를 대비하여 즉각적인 물자 보급을 위한 ‘보급소’인 동시에, 만에 하나 게이트 근처에서 후퇴해야 할 때 일종의 ‘보루’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별다른 일이 없거든 ‘지원 분대’가 대기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현욱. 저기 놀이터 쪽 넓은 곳에 물자를 내려놓는다.”
“예, 알겠습니다.”
이희민의 명령에 따라 이현욱이 손짓하자, 5분대 전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탄약을 비롯한 전투 물자를 놀이터 중심에 내려놓았다.
이현욱은 곧장 추가 명령을 내렸다.
“자, 여기도 똑같이 근처 하수구 뚜껑 열고 센서를 설치한다.”
“예!”
물론 이현욱은 ‘움직임 감지 센서’가 없더라도 코볼트 놈들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하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지하에서 꿈틀거리는 금속들이 느껴지는 중이었다.
‘놈들이 우리의 위치를 눈치챘군.’
하수도 안, 놈들이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다.
이 놀이터를 기준으로 3방향으로 퍼지는 걸 보아하니 포위 전략이었다. 역시 지능이 인간의 70%까지 웃도는 놈들인 만큼 무턱대고 달려들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나오고 싶은 생각이 없을 거다.’
놈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들이 더 잘게 흩어질 때까지를······.
“······거기, 수풀 근처에도 하나 설치하는 게 좋겠다.”
“예!”
이현욱이 그렇게 분대를 지휘하고 있을 때,
무슨 일인지, 이희민이 도끼 눈을 뜨고 다가오고 있었다.
“어이, 이현욱.”
그가 언짢은 감정을 가득 담아 이현욱을 불렀다.
“너희 분대원들, 쓸데없이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생각 안 하나?”
“······예?”
“예? 너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 이 새끼야, 여기 레드 그라운드 안이다.”
“······주의하겠습니다.”
다분히 억지였다.
객관적으로 봐도 분대원들의 목소리는 문제가 될 정도로 크지 않았다.
‘역시, 작정했군.’
마음에 들지 않는 하급자라면 어떻게서든 쥐잡듯 잡아서 만족감을 느끼는 스타일, 그게 이희민이었고, 아무래도 최근에 주가가 오른 이현욱이 그의 표적에 오른 듯했다.
“······이현욱, 내가 조언하는데, 근래 몇 번 운이 따라줘서 대대장님께서 널 고평가하는 것 같다고 너무 우쭐대지 마라.”
“알겠습니다.”
“알긴 알아? 아, 그리고 네가 F급이라는 걸 명심해라, 자만은 곧 방심이다. 방심했다가 일이 커지면 솔직히······ 살아남을 수 있는 레벨이 아니잖아, 넌.”
그는 일장 모욕을 늘어놓은 뒤, 쯧, 하고 혀까지 찼다.
“어휴, 보면 볼수록 답답하다, 진짜······.”
이 악독한 언행, 어떻게든 상대방의 심기를 긁고 심리를 무너뜨리려는 것이었다.
‘아주 안간힘을 쓰는군.’
하지만 그딴 말 몇 마디에 타격을 입을 이현욱이 아니었다.
“됐다. 가서 일이나 해라.”
“예, 알겠습니다.”
“야, 최선아!”
“예, 소대장님!”
부소대장, 최선아 하사가 달려왔다.
“우리는 이제 가야 하니까 네가 여기 남아서 알아서 잘 관리해. 5분대 지금 들떠서 헛짓거리할 수도 있으니까 잘 지켜보고. 어차피 뭐······ 이 구석까지 몬스터가 올 일은 없겠지만 꿀 빤다고 너무 퍼질러져 있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자, 우리는 출발하자.”
이희민은 2소대의 전투 분대인 3분대와 4분대를 데리고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그들의 임무는 레드 그라운드 내부 순찰이었다.
이제 중간 거점에는 5분대만이 남았다.
“저······ 이현욱 상병.”
조심스러운 목소리, 최선아 하사였다.
“예, 부소대장님.”
“그, 너무 신경 쓰지 마! 방금 소대장님 말······.”
최선아 하사가 이현욱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신경 안 씁니다.”
“그래, 소대장님이 원래 좀······ 워낙 세세하게 신경 쓰시는 분이잖아? 헤헤······.”
최선아는 이희민을 그렇게 포장했지만, 그녀의 말 속에는 씁쓸함이 담겨있었다.
최선아, 그녀야말로 이희민이 휘두르는 혀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최선아는 겨우 20살이다. 이제 막 교복을 벗고 전투복을 입은 셈이었다.
괜찮은 특성을 각성하여 병사가 아닌 부사관으로 임관했지만, 여러모로 군인이라는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유약한 여자였다.
“부소대장님, 그럼 슬슬 CB 설치하겠습니다.”
“아, 그래!”
그녀가 싱긋 웃었다.
“안민태. 이제 CB 설치한다.”
“예!”
약칭 CB로 불리는 ‘크리스털 바리케이드’는 방어벽을 형성하는 아이템이었다.
축구공만 한 크기의 동그란 크리스털 아이템이었는데, 동서남북으로 총 4개를 배치한 뒤, 그것에 동기화된 마법사 플레이어가 마나를 불어 넣기만 하면 원형의 방어막이 형성된다.
만에 하나 게이트 봉쇄 뚫리고 이곳이 ‘보루’가 될 때를 위한 아이템이었다.
“후! 설치 완료입니다!”
CB 설치를 끝으로 모든 작업이 끝났다.
이현욱 분대원들에게 경계 명령을 내리고 놀이터 한쪽, 벤치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새롭게 얻은 무기 ‘구름의 검’을 꺼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구름의 검
- 효과 : 물을 흡수하여 ‘물안개’를 방출한다.
아직은 그 조촐한 정보 메시지가 끝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달라질 거다.’
이현욱은 수통을 꺼내어, 구름의 검의 검신(劍身) 위로 천천히 기울였다.
조르륵-
물을 칼날을 타고 흐르다가, 검신 안으로 스며들었다.
- ‘구름의 검’이 물을 흡수합니다. (11%)
“이현욱 상병님, 뭐하십니까?”
안민태가 다가왔다.
“음, 장전한다.”
“예? 장전을······ 합니까? 검에? 그러고 보니 못 보던 검입니다, 그거.”
“이번에 대대장님 포상으로 받은 거야.”
“오! 그럼 꽤 괜찮은 물건입니까?”
그때, 이현욱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구름의 검’ 스킬 ‘물안개’가 사용 가능한 상태입니다.
스킬 장전이 완료됐다.
“쓸만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들어 햇볕에 비추어 보았다.
‘······상당히 쓸만하지.’
***
작전지 인근,
10층짜리 건물 위, 검은 전투복을 입은 이들이 엄폐 중이었다.
- 치직- 게이트 인근, 움직임 포착 없음, 이상.
AMT의 저격수들이었다.
“흠······.”
그리고 그들 뒤, 야전 의자에 서은하 중위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검은색으로 도색된 전신 갑주 ‘풀 플레이트 아머(Full plate armor)’를 입고 등에는 대검을 매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벽에는 거대한 방패를 기대어 놓았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완전무장으로, 성기사 특성에 걸맞은 중장갑 무장이었다.
“강 하사, 저기 보여?”
서은하의 물음에 안경 쓴 남자가 다가왔다.
공략소대 소속의 마법사 플레이어, 강익준 하사였다.
그런데 ‘마법사’라는 특성에 걸맞지 않게, 그는 지금 ‘Barrett M82A1’ 대물 저격총을 어깨에 얹고 있었는데, 총구 끝에서 파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 씨, 깜짝이야! 어디서 불 나는 줄 알았잖아.”
“하하, 죄송합니다.”
“굳이 지금 마탄(魔彈) 장전해둬야 해?”
마법사 플레이어라고 해서 무조건 마법만 쓸 필요는 없었고 검과 방패에 마법을 걸고 육탄전으로 싸우는 마법사도 흔했다. 강익준은 총알에 마법을 거는, 마탄사수였다.
“이미 캐스팅되어서 15분 지나야 꺼집니다. 음, 그런데 소대장님, 어디 말씀입니까?”
“저기, 중간 거점, 놀이터 쪽 좀 봐봐.”
서은하는 쌍안경을 사용해야 하지만, 강익준은 맨눈으로도 볼 수 있었다. 그가 쓰고 있는 안경의 렌즈가 마법 공학으로 만들어진 아이템이었기 때문이었다.
“예, 뭔가 설치하고 있는데요? 지원 분대 같습니다.”
“맞아. 그리고 거기 분대장, 걔가 오늘 우리 임무 대상자였어.”
“······예?”
강익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녹색 견장을 찾았다.
“그러니까 지금, 지원 분대 소속 병사가······ 우리 소대, 막내 후보라고요?”
서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공략소대원 후보······.
물론 대대장 김강석이 이 임무를 지시할 때, 딱히 그런 언급을 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가 눈여겨보고 있는 병사라면 앞으로 간부로 뽑힐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으며, 그중에서도 대대장 직속 부대인 ‘공략소대’ 전입이 유력하다고,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었다.
“아니, 저는 대대장님께서 병사 한 명 눈여겨보라기에 최영준, 그 녀석인 줄 알았습니다.”
강익준 역시 병사 출신으로 그가 1분대장일 때 최영준이 막내로 들어왔었다.
“최영준은 지금 휴가 중이야. 그리고 걘 이미 흑호 부대에서 점 찍어뒀고.”
“흠······.”
강익준이 탐탁지 않다는 듯 턱을 긁적였다.
서은하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분명 F급이다.’
며칠 전 당직 근무를 섰을 때 이현욱을 처음 마주했었다.
아니, 전에도 몇 번 봤겠지만 기억에 남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존재감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날, 혼자서 고블린 샤먼을 잡았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녀가 가장 먼저 확인했으니까.
“쓰-읍, 혹시 뭐, 어디 윗분 자제 아닙니까? 유착 관계 때문에······.”
“강 하사, 대대장님이 그럴 분이냐?”
“하하, 제가 충심이 좀 부족하긴 하죠. 병사 출신이 간부를 어떻게 사랑하겠습니까? 아, 우리 서 소대장님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닥쳐. 그냥 뭔가······ 다른 착각이 있으신 것 같아.”
착각이 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는 F급을 눈여겨볼 리가 없었다.
그리고 고블린 샤면을 처리한 건······.
“······우연이겠지.”
“예? 뭐가요?”
“에이, 모르겠다.”
서은하는 들고 있던 쌍안경을 강익준에게 넘기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튼, 잘 살펴보다가 문제 생기면 연락해.”
“예? 소대장님은 어디 가시는 겁니까?”
“잠깐 만날 사람 있어서. 내 방패 잘 챙기고.”
“비싼 방패, 그렇게 함부로 두고 다니시면 고물상에 팔아서 엿 바꿔 먹을 겁니다.”
“자, 여기.”
서은하는 등 뒤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계단을 내려갔다.
***
후-우-웅-
바람이 한바탕 불자, 화단에 쌓여 있던 낙엽들이 흩날렸다.
“······.”
놀이터, 중간 거점에는 고요함만이 감돌았다.
1소대가 게이트를 봉쇄한 채 2차 분열을 기다리고 있기에 곧 소란이 시작될 테지만, 주민 대피 명령이 내려진 주택가엔 작은 소음조차 일지 않았다.
그리고······
‘소음은 게이트가 아닌, 이곳에서 먼저 시작된다.’
이현욱은 허리춤의 대검 덮개를 열고, 등에 메고 있는 ‘구름의 검’의 안전끈도 풀었다.
그리고 방탄 헬멧을 확실하게 조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박준모, 이쪽으로 와. 맨홀 근처에 있지 말고.”
“예!”
이현욱의 눈앞에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올렸다.
‘저 자리에 서 있던 박준모의 목덜미에 독침이 박히며 소란이 시작되었지.’
물론 지금은 오는 길에 미리 경고한 만큼 카라를 바짝 세워 목을 보호하고 있는 상태였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었다.
두려운 건 아니었다.
그저 나쁜 기억이 지금 이 순간과 겹쳐지며, 무의식적인 신체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삑- 삑-
어디선가 날카로운 신호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삑- 삑-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어, 뭐야?”
바닥, 맨홀 안이었다.
“움직임 감지 센서가 작동합니다! 4번 맨홀입니다!”
분대원, 최태용 일병이 그렇게 말하며 4번 맨홀로 걸어갔다.
“최태용, 가까이 가지마.”
“예? 하지만, 확인을······.”
“됐으니까, 그냥 이쪽으로 와.”
이현욱이 그렇게 말하며 총구를 들어 올려 맨홀을 겨누었다.
그 모습에 최태용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고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어? 이, 이현욱 상병?”
최선아 하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긴장이 역력한 목소리로 주춤거리며 다가왔다.
“부소대장님, 센서 반응입니다. 하수구 안에 뭔가 있습니다.”
“어! 오, 오작동은 아니겠지?”
이현욱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왼손을 들어 올려 분대원들을 집중시켰다.
“전원, 물자 근처로 엄폐한다. 그리고 방독면 준비해.”
“예? 방독면이요?”
“이현욱 상병, 방독면이라니?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코볼트는 독을 무기로 씁니다. 침 형태뿐만 아니라 연기 형태 무기도 간혹 동원하는데, 특히나 이렇게 하수구를 통해서 기습해온다면······ 연기부터 뿌릴 가능성이 큽니다.”
이현욱의 설명에 모든 분대원이 방독면 가방에 손을 얹는 순간······.
텅!
굉음과 함께 4번 맨홀 뚜껑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직후,
“미친!”
“모두 뒤로 물러서!”
푸-허-어-어-어-
이현욱의 말대로 검은 연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언뜻 봐도 인체에 치명적인 가스였다.
그것이 넘실거리며 밀려 나와 놀이터 바닥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가스! 가스!”
다행히도 이현욱이 경고하여 준비하고 있었기에 재빠르게 방독면을 착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가스는 벌써 머리 위까지 차올랐다.
“젠장, 시야가······.”
어느새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물자 뒤로 엄폐해!”
그 암전 속에서, 오로지 이현욱의 목소리만이 쩌렁쩌렁 울렸다.
“전원, 사격 금지! 즉시 총구를 바닥으로 내린다!”
“······예?”
“되묻지 말고 그냥 총구나 내려!”
검은 연기로 시야가 차단되었기에 함부로 총구를 들어 올렸다간 아군을 쏠 수도 있었다.
‘······이건 코볼트 흑마법사의 스킬이다.’
고블린의 엘리트 몬스터가 ‘샤먼’이라면 코볼트의 엘리터 몬스터는 ‘흑마법사’다.
이 명칭의 차이에서 알 수 있는 건, 고블린이 쓰는 스킬이 근본 없는 야생의 술법 정도라면, 코볼트는 꽤 계보가 있는 마법을 쓴다는 뜻이었다.
훗날 밝혀진 바로는, 코볼트 종족은 악마 종족인 ‘데몬(Demon)’의 하수인 중 하나였다.
“제, 젠장! 시야가······ 안 보입니다!”
“후, 후퇴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케케케케!
그렇게 우왕좌왕할 때, 검은 연기 속에서 사악한 웃음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그리고 가까워졌다.
“으으으으······.”
“우, 우린 다 죽었다······.”
몇몇 분대원이 앓는 소리를 냈다.
시야가 제한된 상태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으니 패닉에 빠지는 게 당연했다.
“어어, 모, 모두······ 치, 침착······.”
그건 최선아 하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현욱 아무렇지도 않게 제 할 일을 했다.
그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맨홀에서 올라온 적들-코볼트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케케케케!
비웃음,
자신들의 기습 전략이 정확하게 먹혔음에 기뻐하는 것이었다.
‘지난 삶에는 그랬지만.’
이현욱은 구름의 검을 빼 들었다.
‘이번에는 전혀 다를 거다.’
그리고 스킬을 사용했다.
- 구름의 검이 물안개를 방출합니다.
푸-우-우-우-
구름의 검 검신에서, 하얀 연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물안개였다.
푸-우-우-우-
이현욱은 방독면에 서리는 물기를 닦아냈다.
하얀 연기가 퍼져나가자, 코볼트 무리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시야가 차단됐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그 누구도 맨눈으로는 볼 수 없었다. 그저 양측 모두 당황이 담긴 숨소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안민태. 방패 들어 올리고 내 옆으로 와.”
전사 계열, 안민태가 카이트 쉴드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예, 여기 왔습니다.”
“우리가 뭉쳐 있으니 놈들이 쉽게 달려들지 못할 거야.”
“그런데 시야가 제로라서 큰일입니다. 뭐가 보여야 뭘 할 텐데······.”
이현욱은 눈을 감았다.
“아니, 내가 볼 수 있다.”
“······예?”
“그리고······.”
그 순간 안민태는, 자신의 허리춤 부근에서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슥-
마치 누군가 손가락으로 살짝,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너희 대검 좀 빌린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10개의 단검이 백색 연기 속에서 떠올랐다.
그것들은 마치 대형을 짜고 헤엄치는 돌고래 떼처럼, 물안개 속에서 천천히 회전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쉬-쉬-쉬-쉭!
깊은 바닷속으로 깊숙이 잠수하듯, 흑색 연기 안으로, 일제히 쏘아져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