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8화 (8/221)

8. 표범과 물소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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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억!

레그 킥이 적중했다. 벌써 8번째였다.

“큭······.”

결국, 이원석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바로 그 순간, 이현욱이 달려 들어갔다.

그는 물 흐르듯 움직여, 눈 깜짝할 사이에 이원석의 뒤로 돌아가더니, 허리를 붙잡고 앞으로 고꾸라뜨렸다.

“백 마운트(Back Mount)!”

누군가 외쳤다.

그건 상대의 허리를 깔고 앉아 하체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자세였다. 그리고 저렇게 뒤를 잡으면 ‘바바리안’의 악력에 붙잡힐 우려가 없었다.

천명호의 비유를 빌리자면, 표범이 날뛰는 물소의 등에 올라타서 물소의 뿔에 맞을 위험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숨통을 노릴 수 있게 된 셈이었다.

“으으으으!”

하지만 물소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는 마치 뒷발질을 하는 것처럼 몸을 뒤흔들며 표범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그런데······.

“사냥은 이미 끝났다.”

천명호가 단 한 마디로 그 장면에 찬물을 끼얹었다.

“예? 선배님, 대체 어딜 봐서 그렇습니까?”

강성춘 상사, 그리고 오상국과 곽진철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이원석, 저 바바리안은 원체 힘이 센 만큼 당장이라도 뒤집고 일어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아직 계속 지켜봐야 합니다. 포지션을 뒤집어 버리고 역으로 두들겨 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천명호는 담담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저 덩치, 진짜 물소 같군. 날뛸 줄만 알지 급소를 방어할 줄 모른다. 반면 저 친구는 진짜 표범처럼 먹잇감의 급소를 지켜보며 이빨을 박아 넣을 준비를 하고 있다.”

“급소라면······.”

다음 순간, 이현욱의 양팔이 뱀처럼 움직여 이원석의 목을 감쌌다.

“억!”

이원석이 화들짝 놀라며 발작하듯 움직였지만, 반응이 느렸다.

“컥!”

리어 네이키드 초크(Rear naked choke), 양팔로 경동맥을 압박하여 뇌로 가는 피를 차단하는 기술이, 제대로 걸렸다.

“저거 봐라, 표범이 마침내 목덜미를 물었다.”

“······아?”

“순식간이다. 맹수의 이빨이 사냥감의 숨통을 끊듯······.”

이원석은 꿈틀거리며 이현욱의 팔을 잡아 뜯으려고 했지만, 그의 팔뚝은 이상하리만큼 단단하여 그립이 풀리지 않았다.

이 역시 ‘강체화(剛體化)’ 때문이었다.

강체화만으로도 악력이 거의 3배 정도 상승한다. 강철처럼 변한 두 팔이 맞물려 마치 자물쇠처럼 닫혀버린 것이었다.

이현욱은 온 힘을 다해 ‘그립’을 조였다.

‘여기에 내 능력까지 더해지면 절대 풀리지 않는다.’

강체화가 좋은 점은 금속으로 만든 자신의 몸에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현욱은 2,558g의 힘을, 강철처럼 변한 자신의 손가락에 집중하여 움켜쥐는 힘을 상승시켰다.

기-기-긱!

오죽하면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벅! 벅!

이원석이 할 수 있는 건 이현욱의 옷을 손톱으로 긁어대는 무력한 저항뿐이었다.

“커, 컥! 커흐······.”

그렇게 5초, 6초, 7초······ 시간이 지났고,

이원석의 몸뚱이가 축 처지더니,

이내,

턱-

그의 두꺼운 팔이 바닥 위로 힘없이 추락했다.

“······아!”

두 플레이어의 움직임이 동시에 멎었다.

“하하하! 그래, 저게 내가 말한 진짜 ‘급’의 차이다.”

천명호의 목소리와 동시에 이현욱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숨을 헐떡이지도 않았는데, 잠깐 몸을 푼 것처럼 아주 평온한 얼굴이었다. 반면 이원석은 뻣뻣하게 굳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엎어진 자와 일어선 자······

그렇게, 승자와 패자가 한눈에 드러나자,

“미친, 말도 안 돼. 이게 무슨······.”

곽진철은 고개를 내저으며 부정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현욱의 모습은 정말로······.

‘······표범!’

제 덩치의 2배나 되는 물소를 사냥하고 그 위에 앞발을 얹고 있는, 한 마리 표범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표범의 눈동자가 구경꾼들에게 옮겨지자,

“······.”

정적,

훈련장이 도서관이 된 것처럼 조용해졌다.

저벅- 저벅-

이현욱이 전투 박스를 내려오자 몰려 있던 구경꾼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끝에 전투복을 입은 남자, 흑호 부대 준위-천명호가 서 있었다.

그는 옅은 미소를 띠고 이현욱을 마주 보았다.

“병사, 이름이 뭐지?”

이현욱은 그의 얼굴을 보고 전투복의 명찰을 확인했다.

‘천명호 준위? 이 사람이 왜 지금 여기에 있지?’

이 인물 역시도 이현욱이 잘 아는 사람이었다.

‘곧 최영준 병장을 영입해서 최고로 길러낼 인물이다.’

그가 최영준을 흑호 부대로 데려가기 위해서 삼고초려 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지금이 그 첫 번째 방문인 듯했는데, 우연히 이 결투 훈련을 관람하게 된 것으로 보였다.

“저는 1중대 상병 이현욱입니다.”

천명호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나는 흑호 부대 레이드 전술교육관 천명호 준위다. 방금 결투, 상당히 인상 깊었다.”

그러더니 안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상병이라면 전역 후 진로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가 되었을 텐데, 자네 혹시 ‘특수전 레이드’에 관심 있나?”

사방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와······.”

“미친, 말이 돼?”

특수전 레이드란, 몬스터를 상대하는 임무 중에서도 고난도의 특수 임무를 뜻했다.

쉽게 말해서, AMT 소속의 특수부대였는데, 세간에는 보스 몬스터 암살이나 던전 침투 및 폭파 임무를 맡는다고 알려져 있을 뿐, 상세 임무는 국가 기밀이었다.

“지금 저거······ 흑호 부대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거지? 맞지?”

“그, 그런 것 같긴 한데, 아마도 F급인 거 모르시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이 돼?”

구경꾼들은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한탄을 내뱉었다.

방금 그 F급이 D급을 때려잡는 믿기지 않는 장면을 목격하긴 했다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들보다 한참 아래라고 여긴 F급이 흑호 부대의 러브 콜을 받다니, 믿기지 않는 걸 넘어서 믿고 싶지 않을 터였다.

“죄송하지만, 저는 F급 플레이어입니다.”

이현욱 역시 그렇게 말하며 명함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천명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명함을 들이밀었다.

“내 눈에는 F급이기 앞서, 전사로 보인다.”

전사(戰士),

천명호의 입에서 나온 그 거창한 말이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현욱도 잘 알고 있었다.

흑호 부대는 요원을 뽑을 때 플레이어 능력보다 개인의 판단력과 전투 감각을 중요시한다.

심지어 S급 플레이어일지라도 팀워크가 없으면 작전에서 제외해버릴 정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흑호 부대가 강했다.’

C급 플레이어로 구성된 한 팀으로 A급 던전을 공략해내는 특별함, 그게 바로 흑호 부대였다.

즉, 진짜 ‘스페셜리스트’를 양성하는 조직으로써 흑호 부대에서 싸운다는 건 엘리트 전사임을 의미한다.

‘아무리 등급이 높은 플레이얼지라도,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들어갈 수 없는 곳, 선택받아야만 속할 수 있는 곳······ 그리고 훗날 <비형랑 계획>이라는 대한민국 AMT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작전을 주도하는 곳이기도 하지.’

즉, 명예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현욱은 군에 남을 생각이 없었다.

‘군은 어쩔 수 없이 폐쇄적이다.’

폐쇄적인 곳에 머물며 빌런 집단에 맞설 순 없었다. 자유로이 활동할 수 없으니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 잡힐 것이었다.

“······이현욱 상병, 이거 계속 들고 있게 할 생각인가?”

천명호의 종용에 이현욱은 명함을 받아들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이현욱은 거수경례하고 그를 지나쳤다. 그리고 아무런 미련도 없는 것처럼 훈련장 밖으로 나가 버렸다.

천명호 준위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그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쉽다는 듯 입말을 다셨다.

“F급, 비운의 천재라······ 제격이군.”

그렇게 이현욱이 사라지자, 구경꾼들은 다시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회색 연기 한 줄이 피어올랐다. 그것의 발원지는 역시나 곽진철의 입가였다.

그는 한 방 제대로 먹은 게 아니라 적어도 두어 방은 더 먹은 기분이었다.

“오 병장님,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

곽진철의 물음에 오상국은 대답이 없었다.

“······오상국 병장님?”

오상국은 아무 말 없이, 축 처진 채 벽에 기대어 눈을 끔뻑이고 있는 이원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잔뜩 겁에 질려 울먹이고 있는 이원석의 눈을 보았다. 정신이 돌아왔으나 아직 사리분간을 못 하는 건지, 이상한 소리를 내뱉으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 순간, 소름이 들었다.

“시발······.”

만약 저 자리에 오상국, 자신이 있었다면 과연······ 이길 수 있었을까?

그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진철아. 나도 잘 모르겠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도대체 이게 무슨······.”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편, 그 근처에는 지원 분대, 5분대원들도 있었다.

정확히는 안민태와 박준모였다.

“야, 준모야, 이거 꿈 아니지? 그렇지?”

안민태 역시 넋이 나가 있었다.

“저는 어제 새벽 근무부터 꿈이 아닐까 고민 중입니다.”

“와, 그렇다면 저 양반이 진짜로······.”

안민태는 이현욱과 분대 선후임 사이로서 이현욱과 평소 친밀하게 지내긴 했다만, 솔직히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았다.

전장에서 믿고 따를 수 있는 선임이라기보다 그저 사람 좋은 형처럼 여겼다. 지난 1년 내내 그 생각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진짜, 진짜로······.”

그런데 그런 사람이 며칠 전부터 사뭇 이상해졌다 싶었는데, 오늘 새벽에 난데없이 엄청난 공을 세웠다고 했다.

그때도 우연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달라졌어.”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뀌었다.

그것도, 완벽하게.

***

영내 게이트 발생,

흑호 부대 간부가 참관한 결투 훈련,

하루에 벌어진 그 두 사건은 이 작은 사회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것도 그 사건의 주인공이 동일 인물이며 심지어 F등급의 플레이어였으니 그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수, 수고 많으십니다.”

이현욱은 복도를 걷고 있을 때, 평소보다 많은 인사를 받고 있다는 걸 체감했다.

방금 인사하고 지나간 병사는 평소였다면 모는 척 그냥 지나갔을 2분대 일병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시선과 수군거림, 그 모든 것들이 꽤 거슬렸다.

‘생각보다 일이 커졌군.’

자신이 달라졌다는 걸 너무 감출 생각은 없었으나 너무 소란스러워지면 그것도 번거롭기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는 없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더 빠르게 주변의 모든 걸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이현욱은 생각했다. 시선이 모였다는 건 더욱 손쉽게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가 생활관에 들어갔을 때였다.

“이현욱 상병님.”

누군가 다가왔다.

맞후임, 안민태였다.

이현욱이 곽진철과 갈등을 빚은 직후 그 이유를 따져 물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그때는 반발심에 가득 차서 항의했다면, 지금은 경외심이라는 감정이 담겨있었다.

“그······ 한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비법이 뭡니까?”

“응?”

“하루아침에 그렇게 달라질 수 있는 비법 말입니다.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안민태의 사뭇 진지한 질문에 5분대원 전체가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안민태뿐만 아니라 모두가 궁금한 질문인 듯했다.

‘궁금할 수밖에 없을 거다. 같은 처지의 누군가가 신세를 바꿔버렸으니, 자신들도 그렇게 되고 싶은 욕망이 들겠지.’

그리고 그건, 실제로 가능하다.

이현욱은 그 방법에 대해 말해줄 수 있었다.

“봐서 알겠지만, 매일 운동하면 돼. 하루에 턱걸이 100개씩 하고 구보 3km씩 뛰어.”

“······.”

그의 대답에 모두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몇몇은 기만을 당했다는 표정이었다.

이현욱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내 말은, 등급이라는 인위적인 제한 안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는 뜻이다.”

“그럼 지금 등급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안민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안민태, 너는 오늘 훈련장에서 뭘 봤지?”

“아······.”

그 말에 안민태는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가장 낮은 등급, F등급이 D등급을 쓰러뜨리고 기절시키는 장면을 똑똑히 보았음에도······ 등급이 절대적 가치인 것처럼 되묻고 말았다.

“모두가 5분대 소속은 누구와 싸워도 진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등급이 낮으므로.”

5분대, 이들은 지원 분대라 불리며 중대에서 가장 약한 플레이어라고 여겨지고 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F등급인 이현욱이나 박준모처럼, 능력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거나, 또는 ‘레벨 성장 특성’임에도 그 특성의 전투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로 사실상 전투에서 배제되어 레벨을 올릴 기회가 거의 없거나······.

“그런데 잘 생각해 봐. 이 등급이라는 건 이 미지의 게임이 규정한 게 아니야. 우리 멋대로 붙인 꼬리표일 뿐이지.”

안민태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 허공을 바라보며,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게임’으로 변했다.

이 초월적인 게임의 이유와 목적을, 인류는 여전히 모른다.

다만, 이 미지의 게임에 적응하여 나름대로 ‘규칙’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현욱 상병님 말씀대로, 꽤 많은 것들이 어떻게 보면 일종의 ‘사회적 제도’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애초에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무작위 특성을 부여할 뿐, 그 질적 수준을 명시하지 않는다. 즉 ‘플레이어 등급’이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규칙으로 일종의 ‘신분 제도’였다.

지금은 합리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몇 년 뒤, F등급의 재발견 사건으로 그 신분 제도의 치명적인 맹점이 드러난다.’

그렇기에 이현욱은 플레이어 등급 제도를 반대하는 쪽이었다. 일종의 낙인을 만들기 때문에.

“그리고 박준모, 너.”

“일병, 박준모! 예, 말씀하십시오!”

“오늘 새벽에 죽을 뻔했다. 알지?”

“어······.”

박준모는 떠올렸다. 고블린, 자신의 한심한 대응, 이현욱의 대검······.

“아, 예, 그렇습니다. 이현욱 상병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그리고는 무기력하게 고개를 푹 숙였다.

“비법이 뭐냐고? 그냥 모든 걸 다 떠나서 지원 분대랍시고 단련이나 훈련을 게을리하지나 마라. 하루아침에 달라지기는커녕 너희 목숨 하나조차 못 지킬 테니까.”

일침과 같은 그 말에 안민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맞습니다. 김호종 병장님 후송 가신 것도 그렇고 예전에 제가 이등병일 때, 부분대장이었던 박호민 상병도 코볼트의 급습에 전사했으니,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지원 분대의 사상률이 생각보다 높은 편입니다.”

‘역시 능력을 입증하고 나니 말의 무게가 달라진다.’

불과 며칠 전이었으면 진지하게 헛소리한다며, 코웃음을 치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는 사실 단순한 조언이 아니었다. 일종의 ‘암시’였다.

‘바로 내일 저녁, 그런 일이 벌어지니까.’

이현욱이 이렇게 무게 잡고 일장 연설을 하는 것도 모두 그 사건 때문이었다.

내일, 회귀 이후 첫 번째 ‘작전’이 시작된다. 1대대의 위수 지역에 게이트가 열리며 긴급 출동 명령이 내려온다.

그렇게 나간 작전 중 지원 분대가 있는 후방에서, 비교적 안전할 거라고 여기는 그곳에서 아주 큰 일이 터지고 만다.

‘지원 분대 역시 목숨을 걸고 전투를 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그때의 지원 분대 준비되어 있지 않았었다.

결국, 5명이 크게 다치고 1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심지어 그때는 이현욱마저도 허벅지가 7cm가량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었다.

‘이번에는 아무리 내가 있다고 해도, 누군가 크게 다칠 수도 있다.’

다만 분대원들이 조금만 정신을 차려준다면······

‘······이번에도 이 위기를 엄청난 기회로 만들 수 있다.’

그게 이현욱의 판단이었으며, 이 무게 잡은 연설의 의의였다.

그 순간,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 금속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마나 스톤)

*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가 상승했습니다. : 91g

* 마나 총량이 상승했습니다. : 11

-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 : 3,099g

고블린을 사냥하고 얻은 마나 스톤을 흡수함으로써 적지 않은 금속 조종 무게를 더불어 마나 총량까지 늘어났다.

‘이 정도면, 단검 10개를 동시에 움직일 수 있겠어.’

***

다음 날 아침,

이현욱은 중대장에게 전해 들은 대로, 대대장의 ‘특별 포상’을 받기 위해 대대 무기고를 찾아갔다.

“충성, 수고하십니다. 아이템 포상 인계받으러 왔습니다.”

“어, 왔구나! 우리 F급 영웅, 이현욱 상병님!”

부대 무기고를 관리하는 남자, 오정태 중위가 다소 과장된 목소리로 이현욱을 맞이했다.

“크, 새벽에 저지른 일 들었다! 운이 좋으셨구먼, 축하한다!”

“예, 운이 꽤 좋았습니다.”

“그래그래, 안 죽은 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건데 어쩌다가 고블린 샤먼까지 잡았으니, 대박이지 뭐!”

그는 그렇게 말하며 킬킬 웃었다. 하지만 딱히 비웃음은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중이었다.

‘불쌍한 동네 형 같은 D급 플레이어 오정태, 아마 곧 쫓겨나듯 전역하겠지······.’

AMT 내에서 이런 관리직이나 행정직 플레이어는 그리 좋은 대우를 받는 편이 아니었다. AMT가 철저하게 전투 효율 중심인 만큼, 어쩌면 당연한 처우였다.

장교임에도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이의 말로였다.

“자 그럼, 특별 포상을 고르러 가자!”

쿠-구-구-구-

오정태가 벽면에 달린 레버를 돌리자 안쪽 바닥이 열리기 시작하며 서늘한 공기가 올라왔다.

마법 공학으로 설계된 ‘결계’ 장치가 있는 지하 시설, 그곳이 바로 대대 무기고로, 약 700m² 규모의 공간 안에 수백 개의 아이템이 보관되어 있었다.

쿵!

수십 센티에 이르는 철문이 완전히 열리며 육중한 소리를 냈다.

“미안하지만, 느긋하게 쇼핑할 여유는 못 준다. 30분 안에 골라야 해. 아니면 보안 시스템이 울려서 상부에서 전화 와서 엄청 쪼아대거든.”

어차피 30분도 필요 없었다. 이미 정해두었으니 말이다.

F등급이라는 오명처럼, 인간이 멋대로 규정한 규칙에 묶여 있을 한 자루의 무기가 바로 이곳에 잠들어 있었으며, 본디 그 동면기는 꽤 길어질 예정이었다.

최영준이라는 전설의 인물이 우연히 그 칼자루를 쥐게 될 때까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의 기상 시간이 조금 앞당겨질 예정이었다.

‘바로 저기 있군.’

이현욱의 눈에 한 자루의 검이 눈에 들어왔다.

노련한 표범에게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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