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표범과 물소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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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은 하루에도 수십 번 지난 삶을 돌아본다.
그럴 때마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단 하나, 후회였다.
‘이번 생에는 진짜 천재가 되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지난 생에서도 그 ‘천재’라는 소리를 듣긴 들었다는 소리였다.
‘비록 실패한 천재에 불과하지만······.’
그는 어깨를 풀며 전생의 기억 속 한 남자의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이현욱! 이 한심한 놈아, 넌 부끄럽지도 않아? 그런 미친 재능을 가지고 지금까지 대체 몇 년을 낭비하고 살아온 거야?’
이현욱을 그렇게 질타하는 이 목소리는 훗날 ‘검성(劍聖)’이라고 불리게 될 남자,
현 시점상 병장 계급인 최영준이었다.
‘네가 정신만 차렸다면 구할 수 있었던 목숨이 몇 개인지 생각은 해봤어?’
그의 목소리는 질타였지만, 그 속뜻은 상당한 고평가였다.
‘이현욱, 솔직히 말하면······ 네가 나보다 훨씬 낫다. 진심이다.’
검성보다 더 낫다니······ 당시의 이현욱은 믿지 않았다. 그저 과장된 북돋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영준의 표정은 언제나 진지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열심히 해서······ 우리를 지켜라. 어떻게든. 너한테는 그런 재능이 있다.’
싸움에 특화된 천부적인 감각, 검성 최영준은 그런 재능을 ‘전사의 심장’이라고 불렀다.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을 필요가 없는 현시대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원초적인 천재성······ 이현욱의 DNA에는 그런 게 잠재되어 있다고 했다.
‘그 말이 거의 맞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그런 걸 가지고 있다고 한들 제대로 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이 이현욱은 F급이라는 오명 아래 꽤 긴 시간 동안 그 재능을 썩히고 말았고,
처참하게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 생은 아니다.’
그는 다시금 후회로서의 과거를 끄집어내어 되새겼다.
무너지는 도시, 쓰러진 동료, 무기력한 결말······.
‘모든 면에서 성장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한다.’
삑-
결투 시작 1분 전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리자 이현욱은 고개를 들고 상대를 마주 보았다.
“흐흐, 이현욱 상병님?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근육질의 덩치가 플라스틱 소재의 훈련용 대검을 쥐고 서 있었다.
바바리안 이원석, 그는 오른쪽 발을 일찌감치 앞으로 빼고 상체의 무게 중심으로 상당히 앞으로 두고 있었다.
‘저 자세, 달려들겠다는 뜻이다.’
그건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준비 자세였다.
하지만, 대상을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이현욱 역시 맹수였다.
그것도 노련한 맹수다.
‘팔꿈치가 들리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 달려듦과 동시에 큰 베기 공격이 나온다.’
그는 천부적인 감각과 적지 않은 전투 경험이 적의 의도를 짚어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원석은 비실비실 웃으며 오른손에 쥔 훈련용 검을 이리저리 휘둘러대는 중이었다.
반면 이현욱은 빈손이었다.
결투 훈련의 규칙상 플라스틱 재질의 훈련용 무기밖에 사용할 수 없었고 이현욱에게 맞는 무기는 딱히 없었기에, 그냥 맨손으로 전투 박스에 올라왔다.
“제가 딱히 의도한 건 아닌데, 구경꾼이 많아져 버렸습니다. 으흐흐······.”
이현욱이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이원석은 저 혼자 떠들어댔다.
이현욱이 주변을 둘러보니 이원석의 말대로 어느새 꽤 많은 구경꾼이 모여 있었다.
같은 중대 소속 병사들뿐만 아니라 옆 중대 병사들도 잔뜩 모여서 족히 서른 명은 될 것 같았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일병이 상병을 몇 분 안에 피떡으로 만들지 내기하고 있었다.
‘의도하지 않기는 무슨······.’
이 녀석의 말과 달리 이 상황은 다분히 누군가의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아마 이현욱을 망신줄 작당을 하고 사방팔방 소문을 퍼뜨려 구경꾼을 모은 듯했다.
하긴, 지루한 군 생활에서 이런 결투 훈련은 특별한 구경거리다.
특히나 유망주 후임과 무능한 선임의 대결이라면 꽤 흥미로운 이슈였다.
“그래도 최대한 살살해드리겠습니다. 후임한테 심하게 맞으면 너무 추하지 않겠습니까?”
삑- 삑- 삑-
어느새 가쁘게 울리는 신호음, 이원석이 비릿하게 웃었다.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띠-잉!
결투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며 중앙을 막고 있던 마법 벽이 사라졌다.
이현욱은 몸에 힘을 빼고, 오른발을 뒤로 슬쩍 뺐고,
“우-아아아!”
이원석은 한 마리 불곰처럼 거칠게 밀고 들어왔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이현욱은 별다른 움직임 없이 그저 오른손을 앞으로 슬쩍 내밀어 ‘작은 금속’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걸, 놈의 움직임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윽?”
정면으로 달려오던 녀석이 순간 움찔했다.
마치 누군가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 것 같은 저항을 느꼈기 때문이다.
“으! 뭐, 뭐야!”
전투화에 달린 금속 지퍼. 이현욱은 그 작은 지점에 2,558g의 힘을 실었을 뿐이지만 같은 무게일지라도 어느 지점에 힘을 집중하는가에 따라 천차만별의 힘이 작용한다.
‘저 녀석을 밀어내거나 멈춰 세울 수는 없을지언정, 균형을 흔들 수는 있다.’
그리고 싸움에서 균형의 붕괴는 치명적인 ‘틈’이 발생했음을 뜻했다. 이현욱은 경기장의 바닥, 금속 재질을 밀어내며 그 반동으로 앞으로 치고 나갔다.
쩍!
그의 왼손 주먹, 빠른 잽 공격이 이원석의 안면에 적중했고 머리가 뒤로 크게 젖혀졌다.
“큭! 이런 시발!”
녀석은 악다구니를 내뱉으며 훈련용 대검을 종으로 크게 휘둘렀다.
부-웅!
그다지 정돈되지 않은, 그리고 힘이 너무나 많이 실린 일격이었다.
이현욱은 상체를 숙이며 쉽게 피해냈다.
‘역시 힘만 믿고 돌진하는 스타일이다. 변칙적인 한 방만 조심하면 돼.’
붕- 붕-
이원석이 내지르는 공격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식의 막무가내의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틈을 드러내기 마련이었다. 이현욱은 그 타이밍을 기다렸다.
‘바로 지금이다.’
궤적이 큰 공격이 빗나가는 순간, 고개를 숙이고 녀석의 하체를 향해 파고들었다.
“······응?”
양손으로 녀석의 왼쪽 다리를 잡고 잡아당기며 ‘금속 통제력’을 사용, 오른쪽 전투화의 금속 지퍼를 바깥 방향으로 밀어냈다. 그러자 이번에도 균형이 무너지며······.
“윽!”
고목처럼 두꺼운 두 다리가 동시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쿠-웅!
육중한 소리와 함께 거구가 뒤로 넘어졌다.
완벽한 싱글 렉(Single Lag) 타이밍 태클이었다.
하지만 이현욱은 굳이 놈의 위에 올라타지 않았고 뒤로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저 거구에게 붙잡혔다간 옴짝달싹 못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사방에서 당황이 섞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
“어? 마, 말도 안 돼!”
“방금 뭐야? 어떻게 한 거야?”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큭, 이런 시발······ 전투 박스 바닥이 너무 미끄러운 것 같습니다.”
이원석은 마치 모두가 들으라는 듯 그렇게 소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한 번 넘어진 것 정도로는 아무런 데미지도 없었다.
다만, 그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시발, 고작 F급한테 이딴 식으로 당하다니······.’
쉽게 이길 줄 알았던 상대한테 한 방 먹었으니 굴욕감이 샘솟았다. 다른 말로 하면 분노였다. 그는 씩씩거리며 결투용 대검을 고쳐잡았다.
“후, 아무리 그래도 선임이니까 적당히 패주려고 했는데······.”
그의 이마에 혈관이 돋아났다.
우적-
그리고 그가 쥐고 있던 훈련용 대검이 우그러졌다. 바바리안 특유의 ‘신체 강화’ 스킬이었다.
“······꼴 받아서 안 되겠네. 반쯤 죽여야겠네.”
이내 더욱 거친 공격이 시작되었다.
***
전투 시작과 동시에 이현욱의 공격이 먹혔지만, 그 이후에는 이원석의 우세였다.
부-웅! 부-웅!
“어, 어, 저거 한 대만 제대로 맞으면 뻗겠는데?”
“잘 피하기는 하는데, 상대가 안 되네······.”
반전된 분위기에 오상국과 곽진철의 얼굴에도 다시금 웃음이 피어났다.
“거봐, 내가 말했지?”
“하긴, 후······ 제가 괜히 걱정했나 봅니다.”
안면 타격에 이어 태클이 들어갔을 때, 곽진철은 저도 모르게 꽥, 하고 소리를 질렀었다.
혹시나 했는데, 눈앞에서 이현욱이 유효한 공격을 먹였으니 놀랄 만도 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로 보였다.
“내가 볼 땐 1분 안에 끝날 것 같다. 한 대만 맞으면 기절이야, 저거.”
오상국이 팔짱을 끼고 의기양양하게 예측했다.
그때였다. 그들의 등 뒤로 누군가 다가왔다.
“어이, 오상국이.”
“······어? 충성! 수고하십니다.”
오늘 당직 사관인 강성춘 상사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준위’ 계급의 중년 남자가 한 명 동행했는데······.
“헉! 저기 봐!”
무슨 일인지, 결투 훈련을 구경하던 병사들의 시선이 하나둘 그쪽으로 쏠렸다. 그리고 마치 유명인을 목격한 듯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저거 흑호 부대 마크 아니야?”
“어? 진짜다! 흑호 부대다!”
준위의 전투복에 부착되어있는 검은색 호랑이 모양의 부대 마크, 모두가 그걸 보고 반응하는 것이었다.
흑호(黑虎), 그 이름은 AMT 산하의 최정예 특수부대를 뜻했다.
“오상국이, 무슨 일인데 이렇게 모여 있나?”
“아······ 결투 훈련입니다. 원석이가 올라가서 그런지 관심이 꽤 쏠린 것 같습니다.”
강성춘 상사의 물음에 오상국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이원석에게 죽도록 패라고 주문했는데, 간부가 있으면 그 정도까지 몰아붙이지는 못할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 원석이가? 마침 잘 됐다!”
무슨 일인지, 강성춘은 어딘가 신이 난 표정이었다.
“선배님, 저기 저 덩치 큰 녀석이 아까 말한 그 바바리안입니다. 첫 작전 나가서 고블린 찢어버렸다는 놈이 말입니다. 최영준 병장만큼은 아니지만, 앞날이 기대되는 유망주죠.”
“음, 그래?”
“예, 한 번 지켜보시죠. 구미가 당기실 겁니다.”
흑호 부대 소속 천명호 준위, 그가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꼈다.
부-웅! 부-웅!
상황은 여전히 이원석의 일방적인 공세였다. 그의 힘이 담긴 공격을, 상대는 피해내는 데 급급했다.
“새끼 역시 힘 하나는 좋네! 어떻습니까? 딱 봐도 꽤 물건 아닙니까?”
“흠······ 바바리안이 ‘난투’ 스킬을 사용했군.”
“아주 공기를 찢을 기세 아닙니까?”
“······공기만 찢으면 뭐 하겠나?”
“저거 저놈, 타율이 낮아도 홈런 타자입니다. 곧 만루 홈런 하나 날릴 겁니다.”
강성춘은 호들갑을 떨며 말했고 천명호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퍽 의미심장한 미소짓더니 강성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성춘아······.”
“예, 선배님, 왜 그러십니까?”
“네가 그러니까 아직 C급인 거다.”
“······예?”
난데없는 말에 강성춘은 눈을 크게 떴다.
“선배님 갑자기 왜 면박을 주고 그러십니까?”
“한 번 봐라. 저 덩치, 곧 제대로 깨질 거다.”
“아니, 그게 무슨······.”
그 말에 놀란 건 강성춘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서 있던 오상국과 곽진철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흑호 부대의 간부라지만 당최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이었다.
“저, 죄송합니다만······ 이원석 일병의 상대는 F급 플레이어입니다.”
오상국은 순간 당황하여 저도 모르게 끼어들고 말았다.
자칫 무례했을까 걱정했는데, 준위는 인자한 얼굴로 결투 훈련을 바라볼 뿐, 오상국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겉으로 보이는 위세가 아니라 전반적인 움직임, 그러니까 형세를 봐라.”
형세라니······ 이 세 사람은 사실,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다시금 상황을 살펴보았는데, 여전히 이원석이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었고 이현욱은 맨손으로 피해 다니기 바쁜 꼴이었다.
달리 보이는 게 전혀 없었다.
“대체, 어디가······.”
세 사람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준위는 피식 웃었다.
“쉽게 말하자면, 애초에 급이 다르다.”
“예, 다르긴 하죠. F급이랑 곧 C급이 될지다 모르는 D급인데.”
“아니, 그 등급 말고.”
“그런 대체 무슨 급입니까?”
천명호의 눈은 어느새 F급 병사, 이현욱을 훑고 있었다. 아주 재밌다는 듯.
“재능의 급.”
뻑!
묵직한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훈련용 검을 내던지고 주먹을 쥔 이원석이 오른손을 휘둘렀고, 이현욱의 가드를 올려 막았다.
그런데 그 힘이 어찌나 센지, 막았음에도 그의 몸이 순간 붕 뜬 것 같았다.
“와!”
“미친, 저 힘 뭐야?”
사방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선배님, 저것 보십시오. 저건 잘 피해도 어쩌다가 한두 대 맞으면, 그냥 골로 갈 겁니다.”
“성춘아, 눈 똑바로 뜨고 다시 봐라. 홈런 타자가 홈런을 못 치면, 결국 삼진 아웃이다.”
“흠······.”
쩍!
이번에는 더 큰 소리가 울렸다.
“······어?”
이번에는 F급 상병의 공격이었다.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며 찬 ‘아웃사이드 레그 킥’이 적중했다.
다음 순간, 바바리안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뭐야······ 저거 그냥 발로 찬 거 맞아? 소리가 무슨······.”
“나는 순간 경기장 벽이 박살 난 줄 알았어.”
듣는 사람들도 그렇게 이질감을 느낄 정도라면, 직접 맞은 사람은······.
“큭, 시, 시발! 바, 방금 뭐야?”
공포감을 느낄 정도였다.
‘겨우 발차기가 왜 이렇게 아파?’
이원석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오른쪽에서 채찍처럼 날아든 레그 킥을 맞는 순간 다리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마치 칼날로 도려내어 피가 쭉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F급의 공격이라고?’
그가 그렇게 당황을 숨기지 못하자, 이현욱이 다시금 스텝을 밟으며 접근했고 이원석은 당황하여 주춤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이현욱의 눈에는 ‘틈’이었다.
‘다시 열린다. 킥을 방어할 줄 모르는군.’
이현욱은 또 한 번 같은 자리를 노렸다.
쩌-억!
“악!”
결국, 원색적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원석이 반사적으로 양쪽 주먹을 붕, 붕, 휘둘렀지만, 이현욱은 뒤로 물러서며 가볍게 피해냈다.
‘역시, 움직임이 너무 뻔해.’
더군다나 다리에 유효한 데미지를 입히자 움직임이 훨씬 둔해졌다.
- 마나 (25/30)
한편 이현욱의 ‘마나’가 떨어지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스킬을 사용 중이었다.
‘강체화 공격, 맨몸으로 버티는 건 불가능하다.’
직전에 얻는 스킬 강체화를 오른쪽 다리에 두르고 레그 킥을 찬 것이었다.
‘쇳덩이로 맞은 것처럼 아프겠지.’
이현욱은 미소를 지으며 이원석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한 마리 맹수와 같은 호기를 담고 있었으나 이내 흥분한 유인원 같은 광기로 바뀌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겁먹은 사슴과 같은 눈빛이 되었군.’
저벅- 저벅-
이제 이현욱은 스텝조차 없이 정면으로 정직하게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으, 으으······.”
이원석, 그 덩치 큰 바바리안은 쩔뚝거리며 뒷걸음질할 뿐이었다.
“······.”
예측 밖의 상황에 훈련장은 고요해졌다.
그 가운데, 흑호 부대 준위의 목소리만이 나지막이 울렸다.
“표범이 물소와 힘으로만 붙으면 당연히 처참하게 깨지겠지만······.”
그가 미소를 머금고, 검지를 들어 올려 이현욱을 가리켰다.
“······결국, 표범이 물소를 잡아먹는다. 둘의 대결에서 힘 차이는 중요하지 않아.”
천명호의 눈에는 노기(老氣)를 억누르고 사냥에 나선 한 마리 표범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