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6화 (6/221)

6. 표범과 물소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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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란, 차원의 균열이 일어나고 그 틈으로 몬스터가 침략해오는 현상을 뜻한다.

그런 미지의 현상이 처음으로 관측된 지 현 시점상 약 11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발생 원인’ 및 ‘발생 시점’을 예측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저 모든 주요 장소를 실시간으로 감시하여 게이트 발생 포착과 동시에 대응에 나서는 것, 그게 게이트 경계 작전의 ‘최선’이었다.

“우리 초병들이 잘 대응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대대장, 김강석 중령의 말끝이 흐려지자 지휘통제실 내부에 찬기가 감돌았다.

그는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무려 중령이란 계급을 단 능력 있는 군인이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명성이 있었으니······.

그가 ‘한국 플레이어 랭킹’ 166위라는 점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가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여단장님께 F급 병사가 게이트의 1차 ‘분출’을 홀로 막아냈다고 보고하는 게 그리 가당치 않다는 걸, 여러분 모두가 잘 알 겁니다. 이건 형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식의 문제죠. 제 말은, 상식적으로 가능한 내용으로 보고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지금, F급 병사가 활약했다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있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오늘 새벽, 우리 부대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지휘통제실 내부의 ‘초기대응반’ 소속 간부 중 그 누구도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 어떤 증거도 없었다.

부대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게이트 발생과 동시에 터져 나온 다량의 마나가 일대의 전자장비를 일시적으로 먹통으로 만들고 말았다.

남아 있는 건 파편화된 증언뿐이었다.

상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6번 초소의 초병들은 아직 회복하지 못했고, 5번 초소의 부사수는 이등병이었기에 왠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때였다.

“대대장님, 호출하신 병사가 도착했습니다.”

김강석이 들여보내라고 손짓하자 지휘통제실 안으로 이현욱이 들어왔다.

“충성!”

그러나 김강석은 그 경례를 받지 않았다.

1중대장, 곽용준 대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대장님, 이 병사가 사건 발생 시간대의 5번 초소 근무자, 이현욱 상병입니다.”

김강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현욱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이현욱 역시 그를 바라보았다.

새벽에 급히 일어난 만큼 피로가 가득하지만 그래서 더욱 날카롭게 느껴지는 눈빛······ 그 눈빛에 병사는 물론이거니와 웬만한 간부들마저도 저도 모르게 기가 죽고 만다.

‘김강석, 남산의 산군으로 불리는 B급의 드루이드 플레이어······.’

김강석, 이현욱이 알고 있는 한 앞으로도 심심찮게 듣게 될 이름이었다. 현재는 B급이지만 곧 A급으로 승격한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별 하나 ‘여단장’이 되고 또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별 세 개 ‘AMT공략작전사령관’까지 오르게 되는 거물이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을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병사 혼자서 엘리트 보스를 잡았다길래 나는 최영준 병장, 그 친구인 줄 알았다.”

시큰둥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현욱을 무시하는 내용이었다.

“흠, 그런데 넌······ 병사, 네가 1차 분출을 격퇴해낸 게 사실인가?”

“예, 그렇습니다. 근무 중 게이트 발생을 포착하고 즉시 대응했습니다.”

이현욱은 곧장 대답했다. 하지만 김강석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기만 했다.

그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193cm 장신의 기골이 장대한 거구가 몸을 일으키자 작전 테이블 위로 두꺼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남산의 산군(山君)이라는 칭호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위협적인 풍채였다.

“글쎄,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병사 넌······ 그 자리에서 찢겨 죽었을 거다.”

그는 이현욱을 압박하여 진실을 끌어내려는 듯, 다소 과격한 말을 이어나갔다.

“F급이 홀로 ‘엘리트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렸을 리가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생략된 게 상당히 많은 것 같은데, 가령 6번 초소에서 튕겨 나온 전격 마법이 운 좋게 ‘고블린 샤먼’을 타격하여 빈사 상태로 만들었다던가······ 그래, 차라리 그게 말이 더 될 것 같지 않나?”

김강석의 냉소적인 말에, 이현욱은 과감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대대장님, 저는 지금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기당한 기분입니다.”

난데없는 폭탄 발언을 내뱉어서 지휘통제실을 싸늘하게 하게 만들었다.

“······사기? 지금 사기라고 했나?”

김강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예, 그렇습니다.”

“······왜지?”

이현욱은 김강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대답했다.

“대대장님께서 대대원들을 대상으로 집체 교육을 하실 때마다 강조하신 게 있습니다.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김강석은 대답하지 않았고 이현욱은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리 급이 낮은 플레이어일지라도 정확한 대응 방법을 토대로 공략을 한다면, 자신이 D급일지라도 아니, E급일지라도 트롤을 상대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꽤 오래전에 들은 내용이지만, 정말로 질리게 들었기에 지금까지도 기억이 났다.

“대대장님의 교육대로라면, F급인 제가 트롤은 아니더라도 고블린 정도를 제압했다는 게 그리 이상한 것 같진 않습니다. 저는 AMT의 <대 몬스터 전술 교본>에 따라 맞섰고, 적을 격퇴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목숨 걸고 이룬 승리를 불가능하다고 하시니······.”

사기당한 기분이다,

말꼬리를 흘리며 그걸 굳이 다시 언급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미 김강석의 사고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었다.

“······.”

김강석은 말없이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이현욱은 그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표정 변화는 없었지만, 사기당한 기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핏 내비쳤던 분노는 사라진 상태였다.

‘여기까지가 감정적인 압박이었고 이제부터는 이성적인 설득이 필요하다.’

이현욱은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운이 좋았습니다. 6번 초소에서 전격 마법이 터지는 순간, 게이트 근처에 있던 고블린 샤먼을 포착했습니다. 그때 평범한 고블린 게이트가 아니라 엘리트 등급이라는 걸 눈치챘고 무작정 지원 가는 것보다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어느새 김강석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이현욱은 운이 좋았다고 말했지만, 김강석은 그 내용을 정말로 운이 좋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었으며 오히려 신중하게 전황을 파악했다고 고평가할 터였다.

그는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른 군인이자 플레이어였기에 그 작은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어디 계속해 봐.”

역시 흥미를 보인다.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어나갔다.

다수의 고블린 권속을 부리는 ‘고블린 샤먼’의 특성상, 위기에 처한 6번 초소를 지원하는 것보다, 6번 초소를 미끼로 하여 보스 몬스터 고블린 샤먼을 직접 치기로 했다는 것······ 그리고 이후, 자신이 어떻게 엘리트 보스 몬스터를 1대1로 제압할 수 있었는지 설명했다.

“······비록 작은 금속밖에 조종할 수 없는 F급 능력이지만, 고블린 샤먼의 목걸이를 움직여서 놈의 목을 졸랐고, 놈이 그렇게 빈틈을 보일 때, 놈의 단검을 움직여 목을 찔렀습니다. 이렇듯,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놈에게 데미지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F급이 어떻게 그 현장에서 활약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빈틈없는 보고였다.

“대대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F급인지라, 무기도 인첸트 된 M9 대검 하나뿐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최악을 대비하고 최선으로 싸우는 것밖에 없습니다.”

최악을 대비하여 최선으로 싸운다, 그 마지막 말마저도 김강석이 자주 했던 말이었다.

이는 주장인 동시에 아부였다.

김강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만 나가 봐.”

그가 몸을 돌리며 말했고 이현욱은 경례하고 지휘통제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자리에 앉아 있던 당직 사령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렇지 않아도 영내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져서 잔뜩 예민해졌을 대대장 앞에서 일개 병사가 저렇게 또박또박 자기주장을 펼쳤다는 게 영 좋은 장면은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김강석은 깍지를 낀 채 생각에 빠졌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약 1분 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만약 F급이라면, 방금 저 친구 말대로 싸울 수 있었을 것 같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긍정도 부정도 어울리지 않는 순간이었다.

참모들의 침묵 속에서 김강석은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잠깐, 옛 생각에 잠겼다.

처음 게이트가 열렸을 때, 자신이 소위였을 때, 몬스터와 처음 마주했을 때······.

숱한 진짜 군인들이 파리 목숨 죽어 나갔던 그 옛 기억들을, 떠올렸다.

“이제 알겠군, 저 친구, 이현욱 상병은 F급 플레이어가 아니라 준비된 군인으로 맞섰고 그렇게 이긴 겁니다. 부끄럽게도 나는 저 친구가 군인이라는 걸 간과하고 판단했던 거고요.”

그는 이현욱의 증언을 믿기로 했다.

“1중대장.”

“예, 대대장님!”

김강석은 옅은 미소를 띄웠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표정이었다.

“저 친구에게 대대장 권한으로 특별 포상을 내릴 겁니다. 아, 그리고······ 대대 무기고에서 필요한 무기를 제한 없이 고르라고 하세요. 저런 친구의 전용 무기가 대검 한 자루라는 게 말이 됩니까?”

***

이현욱은 결과를 듣지 못하고 지휘통제실로 나왔지만, 계획대로 됐음을 확신했다.

‘취향 저격의 대답이었을 거다.’

김강석 중령, 그는 흔히 말하는 참 군인이었다.

그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막 소위로 임관했을 무렵,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오크 무리와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그때 소대원을 전부 잃고 말았다.

직후, 플레이어로 각성하여 AMT 설립 초기 멤버가 된다.

그는 미지의 침략에 대응하여 이 땅을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사는 남자인 것이다.

‘자신이 강조했던 말을 그대로 이행하는데, 미워할 수가 없을 거다.’

이현욱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철저하게 김강석을 공략하는 키워드로 구성되었던 것이었다.

잠시 후, 중대장, 곽용준 대위가 이현욱을 찾아왔다.

“이현욱, 수고했다. 너무 거침없이 말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대대장님이 널 좋게 보신 것 같다. 내일 중으로 ‘포상 포인트’가 지급될 거고 아마 표창장도 받게 될 거다.”

포상 포인트, AMT의 포상 제도로서 휴가나 외박은 물론이거니와 군용 아이템 상점에서 아이템으료 교환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교환한 아이템은 오롯하게 본인 소유가 된다.

“그리고 내일 군수 쪽 찾아가면 대대 무기고에서 아이템 하나 소유 이전 해줄 건데, 대대장님 명령으로 제한 없이 아무거나 가능하니까,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이현욱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나 원하던 포상이 떨어졌다.

김강석은 전투력을 가장 중요시하기에 이렇듯 아이템 포상을 주로 내리곤 했는데, F급이라서 가진 게 인첸트된 M9 대검밖에 없다고 한, 이현욱의 의도적인 언급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었다.

“내가 군 생활하면서 F급이 표창장 받는 건 처음 본다. 다시 봤다, 이현욱.”

“운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당연히 운도 따라주었겠지만, 잘했다.”

곽용준은 사람 좋게 웃으며 이현욱의 어깨를 툭, 쳤다.

그는 여전히 운일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그가 몇 개월간 지휘한 이현욱이라는 병사는 홀로 고블린 샤먼을 상대할만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 그럼 푹 쉬고 내일 보자.”

“예, 알겠습니다.”

어느새 오전 8시였다.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났으니 슬슬 피곤하긴 했다만 쉴 순 없었다.

- 금속 흡수까지 (05:12:49) 남았습니다.

아다만트, 이 비싼 금속을 빠르게 흡수한 뒤 남몰래 숨겨둔 ‘마나 스톤’까지 빨리 먹어치울 필요가 있었다. 그를 위해서는 운동을 통하여 흡수 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었다.

‘잠은 사치다. 운동 좀 하다가 휴가 계획을 짜야겠어.’

그리고 포상 포인트로 포상 휴가를 나갈 수 있게 되었다.

***

새벽에 일어난 영내 게이트 사건, 그리고 그 현장에서 활약한 F급 플레이어의 활약상, 그 이야기는 부대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대부분 의아함과 놀라움이 섞인 반응이었다.

다만······.

중대 상담실, 곽진철과 오상국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오 병장님, 이게 말이 됩니까? 그 새끼가 고블린 샤먼을 혼자서 잡았답니다.”

당직 부관 근무가 끝났음에도 곽진철은 잠들지 못했다.

“저 이거 꿈꾸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깨면 행정반 책상에서 졸다가 서은하 중위한테 쿠사리 먹는 게 아닌가······ 차라리 그런 상황이면 좋겠습니다. 진짜 말도 안 됩니다.”

그는 퀭한 얼굴로 연기를 뿜어댔다.

“인마, 걱정하지 마.”

반면 오상국 병장은 여전히 여유 넘쳤다.

“나도 그 얘기 믿기지 않긴 한데, 잘 됐어. 그 새끼가 그 일로 기고만장해졌다면 원석이가 대결 신청했을 때 안 빼고 붙을 가능성이 클 거 아니냐? 으흐흐······.”

고블린 샤먼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이긴 했다만, 사실상 C급으로 평가되는 D급의 바바리안 플레이어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오상국은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도 뼈 몇 군데 박살 나서, 힐러 두어 명 붙어서 마나 오링 날 때까지 치료해야 할 거다. 그렇게 개망신당하면 이현욱이 뭐 대단한 일 해낸 것 같다는 소문도 싹 사라질 거고.”

오상국은 그렇게 말하면서 낄낄거렸다. 곽진철도 피식 웃었지만······ 왠지 불안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불길해, 어딘가 확 달라진 것 같아.’

그는 어제, 이현욱과 대거리를 하던 순간을 떠올랐다. 그때 이현욱의 표정은······ 마치 늙은 맹수 같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질감이 느껴졌었다.

그때, 누군가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일병 이원석!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들어와!”

덩치 큰 까까머리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바바리안 이원석 일병과 그 동기들이었다.

“이야······ 우리 6월 군번들 봐라, 진짜 오크 부족 같다니까?”

“진짜 얘네들 녹색 옷 입혀 놓으면 기관총 맞을지도 모릅니다.”

두 선임의 말에 일병들은 왁자지껄 웃음을 터뜨렸다.

이들, 6월 군번 일병들은 ‘깍두기들’이라고 불렸다. 특성과 상관없이 하나 같이 덩치가 커서 다 같이 몰려다니면 마치 조폭들처럼 그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바바리안, 이원석은 한 뼘 정도 더 솟아나 있었다.

‘하긴 저 녀석 정도라면, 맨손으로 고블린 샤먼도 두 쪽 내 버릴만한 놈이긴 해.’

통나무도 쪼개는 악력을 가진 인간을 고작해야 턱걸이나 하는 놈이 어떻게 이기겠는가?

“그래, 원석아, 내가 말했던 거 기억하지?”

“예, 그렇습니다. 5분대, 이현욱 상병을······.”

“그래, 그래, 입 밖으로는 꺼내지 말자. 조심해야지?”

“아! 맞다, 제가 자주 깜빡합니다.”

본디 ‘죄송합니다’가 나와야 할 타이밍이었건만, 이원석은 그렇게 말하며 허허 웃어 보였다. 그러나 오상국 병장도 딱히 트집을 걸지 않았다. 특별 대우였다.

“지금 그 친구가 훈련장에 가 있거든? 가서 잠깐 만나고 올래?”

“아! 지금 바로 놀러 갔다 오면 가면 되겠습니까?”

“그래, 우리도 조금 뒤에 따라갈게. 같이 가면 영 이상하잖아?”

선임을 구타하라는 지시였다만, 이원석은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아주 스무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하하!”

이원석, 18살부터 24살까지 클럽 가드로 일하다가 25살에 각성하여 ‘플레이어 의무 복무 기간’을 채우기 위해서 AMT에 입대했다.

그리고 어쩌면 곧 부사관 임관을 할 수도 있으며 전역 후에는 꽤 괜찮은 길드에 가입할 가능성도 큰, 잠재력 있는 플레이어였다.

“제가 클럽에서 일하면서 버르장머리 없는 손님들 화장실로 데려가서 패본 적이 꽤 있습니다. 이게 적당히 패면 소란이 일어나서 귀찮아지지만, 어디 부러지지만 않게 제대로 조지면 잔뜩 쫄아서 조용히 넘어가기 마련입니다.”

“으하하! 이 새끼 이거 완전 전문가인데?”

“그럼, 잘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이처럼 그는 근본이 양아치였기에, 이런 규칙에 어긋나는 괴롭힘에 익숙했다.

***

“후······.”

이현욱은 <제2 실내 훈련장> 안, 전투 박스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전투 박스란, 쉽게 말하면 사각형의 링이었다. 다만 플레이어들이 스킬 사용을 할 수 있도록 ‘마법 방어막’으로 사방이 막혀있는 공간이었다.

이현욱은 방금 그곳에서 AI 허수아비를 상대로 근접 전투 훈련을 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머리가 멍했지만, 기분만은 상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 : 2,558g

‘역시 아다만트, 흡수 지연이 걸렸음에도 금속 총량이 대폭 증가했다.’

조종 가능한 금속량이 단숨에 1kg 이상이 뛰었다. 그동안 삼켜온 자물쇠 따위의 고철과는 비교가 안 되는 증량 폭이었다. 역시 질 좋은 금속을 삼키는 게 효과적이었다.

‘이 정도면 이제 단검이 아니라 웬만한 장검도 통제할 수 있을 거야.’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 축하합니다! 특별한 조건을 만족하여 새로운 ‘스킬’이 주어집니다.

레벨 외 성장 특성, 레벨은 존재하지 않지만 숨겨진 방법을 통하여 능력을 향상한다. 그리고 그건 이런 ‘스킬’ 획득 시에도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이현욱의 경우 특별한 효과를 가진 ‘마법 금속’을 삼키면 그에 걸맞은 스킬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금속을 반복하여 삼키면 해당 스킬이 강화된다.

‘아다만트는 특히나 굉장히 유용한 스킬을 주는데 이렇게 일찍 얻은 건 행운이다.’

[스킬 정보]

- 이름 : 강체화(剛體化)

- 등급 : D

- 효과 : 마나(5)를 소모하여 신체 일부분을 일시적으로 ‘강화’합니다.

* ‘고경도 마법 금속’을 일정량 이상 삼키면 스킬 등급이 향상됩니다.

아직 등급이 낮지만, 이 정도만 되더라도 웬만한 흉기나 둔기를 방어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현욱은 왼손을 들어 올렸다.

쩌-저-적-

주먹이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도 악력이 3배는 증가한다.’

그때, 훈련장의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덩치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뭐야?’

이현욱은 이상함을 느꼈다.

저 덩치들이 자신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면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느낌은 착각이 아니었는지, 그들은 이현욱이 있는 전투 박스 앞에 멈춰섰다.

그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남자, 이원석이 앞으로 나왔다.

“이현욱 상병님, 그 박스 지금 사용하시는 겁니까?”

이원석의 물음에 이현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혼자서 많이 쓰신 것 같은데, 이제 저희 좀 써도 되겠습니까?”

녀석이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자 패거리들도 낄낄 웃어댔다.

노골적인 무시였다.

‘이것들 봐라······.’

“아니면, 저랑 한 판 하시겠습니까?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떤 맥락인지 이현욱은 알아차렸다.

‘오상국과 곽진철, 유치하군. 이딴 장난질이라니.’

이현욱은 왼손의 강체화를 해제하며 손짓했다.

“그래, 올라와.”

그 장난질, 앞으로 다시는 못하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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